제4장
‘하아! 생각보다 심각하다. 의선이라도 계신다면 좋으련만. 한동안 강림하지 않으실 듯하니…….’
청명의 단전을 샅샅이 살펴본 진건곤이었다.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걸렸다.
외견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청명의 단전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기의 흐름을 이어갈 수 없도록 싹둑 잘라진 모양이었다.
“어렵지요?”
이미 의원들이 여럿 거쳐 간 터라 청명은 자신의 단전이 회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건곤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으니 시도해 보자꾸나.”
진건곤의 말에 숙여져 있던 청명의 고개가 벌떡 세워졌다. 그의 눈에는 열망이 불타고 있었다.
“진짜요?”
하지만……! 청명은 스스로 삽시간에 불타올랐다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진건곤의 말에 희망을 가졌다가도 그게 그저 좋은 말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아… 아닙니다. 후후훗! 그저 용기를 주시려는 말씀이 아닙니까?”
“아니다. 의선이 계신다면 당장에라도 고칠 수 있을 것이야.”
“의선이요?”
청명은 백자의 존재를 몰랐다.
전설상의 의선이라는 말이 그저 황당하게만 들렸을 뿐이었다. 운현을 닮아 평소 농이라고는 전혀 없는 진건곤의 말이니 어쩌면 기대를 할까도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의선을 뵐 수 없으니 그것이 문제구나. 의선께서 말씀하신 당분간이 언제까지인지 모르니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일. 나라도 어떻게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의… 선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글쎄다. 아마도 화타가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다만… 스스로 그리 말씀하신 적은 없다.”
마치 의선을 만났던 것처럼 말을 하는 진건곤을 보면서 청명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녀석!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구나. 그럼 차분히 이야기를 해주지.”
진건곤은 모산파의 삼영진군인 백자와 그의 능력을 설명해 주고 나서야 청명의 이상한 눈초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옥주궁파라……! 참으로 신기한 일이군요. 그 분은 언제 오신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분들이 말한 당분간은 그게 얼마를 의미하는지 모를 일이 아니더냐? 네 평생을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어떻게든 이라니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지.”
소군의 생기를 부여잡고 지냈던 기간이 있었던지라 어느 정도는 자신의 영력이 어떤 묘용이 있는지 깨닫고 있는 진건곤이었다.
무언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가부좌하고 앉아라!”
천천히 청풍의 몸 안에 진기를 넣어 살펴보았다. 역시나 싹둑 잘라진 단전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진기의 흐름을 막아 세웠다.
‘하아! 사부도 그렇고 청명도 그렇고 참으로 고달픈 인연이구나.’
진건곤은 절로 그들의 신세를 한탄하게 되었다. 청풍의 단전은 치료를 한다고 해도 앞으로도 단전의 보고로서는 그 역할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고심하던 진건곤은 자신의 영력으로 청명의 단전에 통로를 놓아주기로 결심하였다. 영력을 다른 사람의 몸에 심어준다면 생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선의 말도 기억이 났지만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의선이 아닌 진건곤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진건곤은 자신의 영력을 꺼내어 청명의 몸속에 집어넣었다. 자신의 영력의 일부를 청명의 잘라진 단전에 통로로 사용하도록 두고 올 생각이었는데 그게 되지가 않았다.
아무리 해보아도 그것이 되지 않고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중단전을 열어 보는 것은 어떨까? 누님도 사부님도 중단전을 여셨다고 하니 그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야.’
단전을 포기하고 중단을 살피던 진건곤은 자신의 진기를 넣어 돌려보았지만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청명의 중단전은 여태껏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기에 단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단전에 기운이 흐르게 하지 못한다면 중단전을 열어도 그 공력이 하반신으로 흐르지 못할 것이었다. 반쪽짜리 무인을 만들 수는 없었다.
결국은 단전에 영력을 심어두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었다.
드르륵!
묵중한 소리가 울리고 석문이 열렸다.
“후우!”
청명을 데리고 들어가 연무실에서 두문불출하던 진건곤이 나섰다.
“고맙다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구나.”
운현은 진건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눈치였다. 그의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진건곤이 무언가를 하는 그동안이 바로 그에게 커다란 인간적인 고민의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운현의 눈은 이미 반쯤은 풀려 있었다.
“너와 나 둘이서만 알았으면 좋을 이야기구나.”
진건곤의 주위로 커다란 기막이 형성되었다. 아무도 엿듣지 못할 것이었다.
“너는 화산을 미워하지 마라. 나도 화산을 미워하진 않으니까.”
“사부님! 그래도 청명의 복수는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수라! 좋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복수를 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내가 운령이라도 그리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네가 모르는 일이 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구나.”
평소 칼날 같은 엄정함과 무뚝뚝함으로 굳어진 운현이 저리도 술을 마시고 취한 것이라면 사연이 있겠다 싶었다.
“무장만큼은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청명이 무공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이제는 모두 다 잊으련다.”
“알… 고 계셨습니까?”
“그래! 그리고 청명의 단전은 이미 복구하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게 망가져 있지. 그런데도 그것을 복구하려면 아마도 네 수명을 깎아 먹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벌컥!
운현은 또다시 술병을 기울였다.
그의 고민은 바로 이것이었다.
제자의 수명을 깎아 아들의 단전을 고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말려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말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닙니다. 제겐 의선께서 보여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사부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의 생기를 나누어주는 일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단지 청명에게 중단전을 사용하게 해주려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참으로 다행이야.”
운현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제야 한 짐을 덜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한참을 다행이라고 주억거리더니 다시금 운현의 입이 열렸다.
“청명이 참회동에 갇힌 이유를 말해 주마. 청명의 생모가 살아 있다는구나. 백이현. 그것이 생모의 이름이다. 관군에 의해 마교로 낙인이 찍히고 멸절되어버린 활선당 당주의 딸이었다. 비록 관부에 마교의 낙인이 찍혔지만 활선당은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가난한 자들에게 저렴하게 의술을 펼치며 세상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던 집단이었다. 다만 그들이 황제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죄였다. 이십 년 전, 그날 청명의 어미는 청명만을 남기고는 그들에게 돌아갔다. 활선당이 멸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청명의 어미도 죽은 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고 하는구나. 마교의 수뇌부일 것이라는 추측이구나. 예전의 지위로 보아 아마도 마교의 교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진건곤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서렸다.
운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화산이라고 해도 마교 교주의 아들과 남편을 품을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까.
“청명의 무공이 회복되는 대로 이곳도 떠날 것이다. 아미도 역시 우리를 꺼릴 것은 틀림없는 일이니까.”
“……!”
운현의 말이 너무나 놀라운지라 진건곤 역시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네게도 짐을 남기는 것 같구나. 군자검이 아니라 절검 사조님의 제자로 남는 것이 좋을 것이야.”
“하하하하! 사부님. 려경이와 청명은 이미 한 가족이지 않습니까?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걸 어쩌겠습니까? 일이 잘 풀리도록 수습해 보아야지요. 아니면 중원과는 상관없는 곳으로 가서 살아 보던지요.”
“훗! 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후!”
운현은 술기운 때문인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지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해 있었다.
‘고맙구나!’
운현은 입으로는 뱉어내지 못할 말이 있었다.
진건곤이 말로는 소군과 다르다 하였지만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운현이었다.
진건곤의 이마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땀이 맺혀 있었다.
진건곤만한 고수가 땀을 흘릴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면 십중팔구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나지 않을 일이었다.
“오라버니, 소식 들었나요?”
“무슨 소문 말이냐?”
“마교와의 싸움에서 고루마군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 술수를 부렸데요. 아버님의 경우와 같은 일이 발생해서 각 문파마다 사람을 몰라보고 모두를 해친 사람들이 있었데요. 어쩌면 아버님의 오명이 씻길 것 같아요.”
“씻기지 않을 것이다.”
진려경과 청명에게는 백이현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 진려경은 운현의 무고가 밝혀지면 화산이 사죄를 해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백이현이 마교로 향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럴 리가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절검 사부가 앞으로 나서 그들을 잡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는지 몰랐다.
화산의 최고수이자 전대 기인인 절검조차도 나서서 결정하지 못하니 그 파장이 너무나 커서 쉽게 발설할 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백이현이 마교의 인물이라면 운현과 청명은 화산에서 빛을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화산을 떠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흥! 못난 놈들. 그따위 강시쯤이야 오라버니가 나서면 한 방에 정리가 될 것인데 말이에요. 꼴 보기 싫은 화산 때문에 나서기도 그렇고…….”
진려경은 말을 꺼내며 진건곤의 눈치를 살폈다.
실은 소군의 부탁으로 진건곤에게 말을 붙이는 진려경이었다.
소군은 화산이야 어찌됐건 간에 진건곤이 강시를 정리해 주었으면 하였다. 마물들에게 사람이 희생당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세상에는 많은 고수가 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만 해도 강시를 정리할 고수들은 많다. 절검 사부님만 보아도 강시쯤은 정리하시고도 남을 분이다. 그런 고수들이 무림에는 적지 않다. 한 번 패했으니 구파의 장문들은 장로들과 은거고수들을 불러들일 것이야. 그들이면 능히 강시를 감당할 것이다.”
말은 그리했지만 진건곤도 역시 강시를 없애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비록 본 적은 없지만 백이현이 마교의 수뇌라면 자신이 나서기에는 껄끄러운 면이 있었다. 그저 구파일방의 힘으로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게다가 청명의 단전을 치료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에서야 무림인들이라면 정이 안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마교는 첫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며 그들의 힘을 천하에 과시했다. 관군 5천과 무림맹의 2천 무인들을 겨우 1천여 명의 병력으로 격파한 것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싸움이 일어날 뻔하였으나 매번 관군과 정파가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도망쳤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마교의 기세는 오를 만큼 올랐고 관군과 정파의 사기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 그야말로 바닥을 기었다.
곧 마교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아울러 기세를 모아 마교는 방문을 발표하였다.
억울하게 마인이 된 자, 과거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자는 오라. 무공을 배워 새로운 세상을 여는 데 동참하고 싶은 자는 오라. 왕후장상의 씨가 없는 새로운 세상을 쟁취하고 싶은 자는 오라!
운남의 천지신교는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신분의 귀천 없이 오직 노력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세상을 열리라. 그 속에 살고 싶은 사람들은 오라!
마인들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다는 것은 작지 않은 유혹이었다. 천인공노할 짐승으로 여겨지며 공적으로 쫓기며 사는 인생을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정처 없이 떠돌며 쫓겨야만 하는 지긋지긋한 생활을 싫어할 나이가 있었다.
게다가 그런 자들은 이미 나이가 지긋했는데 오랜 세월을 버텨낸 만큼 무공이 높거나 지닌바 재주가 좋은 자들이었다.
속속들이 마교에 새로운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마인으로 낙인찍힌 자들이 아닌 사파인들도 천지신교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었다.
가혹한 세금과 권문세족에게 원한이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운남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활의 활기가 살아나고 있었다.
“큰일이외다. 운남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전부 봉쇄할 수도 없으니 저들이 세력을 더 키우기 전에 끝내야 할 일이지 않겠소? 대책이 없겠소이까?”
좌오장군은 맹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실제로 강시를 겪어본 후부터는 일반적인 병법을 포기하고 말았다. 도끼날이 튕겨나가고 기마대의 창에도 끄떡없으며 5천의 군사에게 밟히고도 발딱 일어나는 강시들을 상대하는 법이란 장수들에게는 없었다.
그나마 무림의 고수들은 강시와 싸워 이길 수 있으니 그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부장의 지휘로 펼쳐진 싸움을 본 좌오장군은 자신이 지휘를 한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무림맹주와 그 군사 제갈세가주에게 일임을 하다시피 되어버린 좌오장군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요. 강시만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나 강시들 틈에서 교묘한 수작을 부리는 고루마군이나 독마군을 상대하기 어려운 것뿐입니다. 무공이 높은 고인들께 연락이 갔으니 곧 당도하실 겁니다.”
“허허! 알아서 하시겠지요. 다만 저들이 시일이 지날수록 더 융성해질까 걱정이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들이라면 오늘 내일 상관으로 오실 겁니다.”
제갈세가주가 나서서 구체적인 날을 말하자 좌오장군은 그 말에 놀란 눈치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관군의 응원군이라면 이미 운용하고 있던 부대를 쪼개어 보내도 몇 달이 걸렸다.
하지만 고수들이 일반인들의 눈에 신경 쓰지 않고 서둘러 온다면 상상 밖으로 빠른 시간에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좌오장군은 강시 때문에 싸움을 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상으로 무인들이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고루마군의 술법에 휘말린 자들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부, 사숙, 사형제 간이었던 자들을 앞세우고 들어오는 싸움을 피하고 싶은 게 정파의 마음이었다.
“원시천존. 실로 간악한 자들이 아니겠소? 살아 있는 사람을 강시로 부리다니……!”
“아미타불. 무서운 일이외다. 인두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오. 어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소.”
“일단은 검후와 전진자가 오기를 기다려 봅시다.”
화산은 전진자가 운현을 구해온 일에 함구령을 내렸지만 아미는 굳이 함구령을 내리지 않았다.
아미의 입장에서는 운현 부자에게 얽힌 비밀을 모르니 그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운현이 환천삼보 사건에서 뒤집어쓴 오해를 풀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일을 입에 올렸던 것이다.
“부디 그들도 운현처럼 구할 수 있으면 좋겠소이다.”
“그래야겠지요. 하늘이 무심치 않다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원시천존! 본파가 성급하게 운현 진인에게 혐의를 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겠습니다. 고루마군이 저런 수작을 부렸을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간의 결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허허! 본파도 용서해 주시구려. 이런 해괴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었소이다.”
“저희 문파도…….”
청성, 곤륜, 황보세가의 문주와 가주들도 역시 한 자리에 있었기에 화산의 장문인 운령에게 사과를 하고 나섰다.
“그저 작은 오해에서 벌어진 일, 다른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으니 잊는 게 대수겠습니까? 다만 앞으로는 화산의 일에 조금 더 여유를 두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운령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처하자 청성, 곤륜, 황보세가의 인물들이 마주 웃으며 그러마라고 약속을 하였다.
“아울러 운현을 믿어주신 소림, 무당, 개방의 협사들께는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운령은 매끄럽게 상황을 정리했지만 속으로는 찹찹하기 그지없었다. 운현의 부인이 마교의 수뇌라는 것을 알면 어떤 태도를 보일까?
또한 진건곤이 그들을 위해 일을 하여 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그들의 사과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모두가 전진자와 소군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궁세가주는 그 마음이 더욱더 깊었다.
바로 친혈육이 고루마군의 술수에 걸려 강시처럼 변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광환삼검이라는 별호를 지니고 막대한 내공을 바탕으로 남궁세가의 외단을 지휘하던 고수가 맥없이 고루마군의 술법에 홀려 버린 것이었다.
“전진자가 어서 와 주었으면 좋겠구려.”
“허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모두가 진건곤과 소군이 당도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운령의 마음은 더욱더 복잡해질 뿐이었다.
화산에도 역시 고루마군의 술법에 걸려든 고수가 있었으니 그들도 역시 진건곤과 소군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무곤 사숙이 행방이 묘연하니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원시천존!”
다음 날. 무림맹주와 제갈세가주의 호언장담처럼 명문정파의 은거 고수들과 장로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세상에 관여하지 않은 지 오래된 은거고수들일지라도 대거 전선으로 나설 만큼 마교의 득세는 그 만큼 커다란 사건이기도 했다.
황제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의 좌오장군은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보낸 첨병이나 다름없었다.
정파 무림이 마교를 진압하지 않으면 그 싸움은 전쟁으로 번진다. 그런 후에 황제가 마교와 같은 무리가 등장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다는 명목으로 무림에 무엇을 요구하고 들지 몰랐다.
사건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강호무림이니 은거고인들까지도 동원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저… 저것!”
경계를 보던 초병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적이야?”
다른 초병이 물었다.
소리를 지른 초병은 몽골에서 흘러들어온 자였는데 눈이 밝기로 소문난 사람이었기에 그가 발견한 것을 자신은 보지 못하는 수가 많았다.
“왜 그래? 눈 좋다고 자랑이더만 남들 못 보는 참새 궁둥이라도 본 거야?”
“저… 저기!”
초병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자 시커먼 점으로만 보이는 것을 유심하게 바라보았다.
“세상에……!”
그 점은 빠른 속도로 커지더니 자신의 정체를 보여주었는데 바로 검을 타고 날아오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 사람이 나…날아와?”
뎅뎅뎅뎅! 뎅뎅뎅뎅!
초병은 서둘러 종소리를 울렸다.
바로 경계에 해당되는 신호였다. 무림맹의 맹주와 장문들이 거하는 곳의 처소 밖에서 신속하게 파란색 깃발이 펄럭였다.
“휴우……!”
초병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호에 의하면 하늘을 날아오는 신선이 바로 같은 편이니 경계를 해제하라는 것이었던 것이다.
“와와와와와!”
“세상에……!”
“검선이다. 검선!”
“와와와와! 와와와와!”
검선을 알아본 무인들의 소리에 사병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신선 중의 신선이라는 검선이 하늘을 날아 자신들을 도우러 왔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시를 보고 놀란 마음이었지만 하늘을 나는 신선이 함께한다면 절대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조님을 뵙습니다.”
“검선을 뵙습니다.”
맹주와 장문인들이 천막 밖으로 나와 검선을 환영하였다. 인사 소리가 여러 번 오고갔다.
“원시천존! 귀한 분들을 뵙습니다. 급하게 오느라 먼저 왔소. 다른 사람들은 뒤따라 올 것이외다.”
검선은 전황이 걱정스러워 홀로 어검비행을 하여 날아온 것이었다.
한 시진쯤이 지났을까?
진영의 동쪽에서 흙먼지를 뚫고 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의 옷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손에는 녹색 연녹피 장갑이 씌워져 있었다.
당가의 장문이 진영의 밖까지 나아가 그들을 모셨다.
군영에는 당가의 멸독이 왔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후우웅!
공기를 윽박지를 만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던 커다란 구가 멈추어 서자 바람이 울음을 터트렸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체 속에는 진건곤과 소군이 있었다. 한순간 구체가 흩어져 사라지자 소군이 아쉬운 듯이 입을 열었다.
“정말 빠르군요. 어린 시절 말을 처음 탓을 때가 생각나요. 그땐 그게 너무나 빨라서 두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는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네요. 상공과 있으면 이제는 항상 태워달라고 해야겠는걸요.”
“놀라긴 일러요. 백 노사에 비하면 아직 멀었는걸요. 먼저 가세요. 저는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무림맹과 군사가 진을 치고 있다는 송산들에서 십리의 거리가 되는 산길에서 멈춰선 진건곤이었다.
“위험해지면 구하러 올 거죠?”
소군은 마치 든든한 오라비에게 와줄 것이냐고 묻는 소녀 같았다.
“하하! 그럴 일이 없겠지요. 이미 검후라 불리지 않습니까?”
“호호호! 마교는 어떤 수단을 쓸지 모르니까요. 무섭지요. 내가 위험해지면 언제든지 달려와 준다고 해줘요.”
“언제든지 달려갈 게요. 항상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소군이 감회가 새로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보았을 때만해도 후기지수였는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이렇게 의지가 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상공이 이렇게나 강해질지는 몰랐는데 말이에요.”
“음……! 세간의 소문에 의하면 검후가 잘 나갈만한 후기지수를 후렸다는 평이 우세하던데요?”
진건곤이 장난기를 섞어 말하자 검후도 짐짓 과장된 표정으로 이어 받았다.
“어머?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상공?”
“하하하! 나는 그렇지 않지요.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어쩌겠습니까, 누님? 하하하하!”
“세간이 그런다고 해도 어째 상공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얄미운걸요.”
“하하하! 저는 그런 말을 하는 누님은 더 놀랍습니다.”
“흥! 이제 갈래요. 나는 내가 잘 알아서 피할 테니 걱정 말고 사병들을 잘 지켜 줘요.”
“알았습니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겠습니다. 누님이 위험해져도 사병들만 잘 살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소군은 이제 막 발걸음 떼려던 것을 멈추고 몸을 돌려 진건곤을 보았다.
“음? 점점 짓궂어지는 상공이네요.”
“하하하! 앞으로는 도인도 아니니 좀더 편하게 지내보려고요. 하하하!”
소군은 멀리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진영으로 다가갔다. 얼마쯤 다가가자 진영이 반으로 갈라지며 일단의 무리가 마중을 나왔다.
맹주를 비롯한 각 문파와 세가의 대표들이었는데 소군을 살갑게 맞이하였다.
“어서 오시지요. 검후!”
“원시천존. 명실상부 검후가 되셨다고 들었소이다. 경하 드립니다.”
“무림의 홍복이외다.”
저마다 좋은 소리를 하였지만 한 가지 의아함을 품은 듯이 소군을 보았다. 운현을 치료했다는 진건곤이 보이지 않는 탓이었다.
누구 못지않게 마음이 급했던 남궁세가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전진자는 오지 않았습니까?”
“네. 상공은 볼 일이 있어서 저 혼자 왔습니다.”
소군의 대답에 모두들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는데 남궁세가주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급한 볼일이 있관대…….”
“흐흠!”
곁에 있던 아미의 장문이 헛기침을 하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남궁세가주가 질문을 바꾸었다.
“하하하! 꼭 필요한 일이 있었겠지요. 하하하! 한 가지만 물읍시다. 전진자께서 운현 진인을 치료했다는 것이 사실이지요?”
소군은 그제야 자신을 향한 환대가 어떤 연유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차례였다.
“치료라……? 일단 이지를 회복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고루마군의 술법이 다시 펼쳐져도 괜찮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오오! 그렇단 말이지요. 일단 이지만이라도 회복시킬 수 있다면 그들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구려.”
각파의 수장들의 반응은 반쯤은 기뻐하였고 반은 걱정이 남은 표정을 보였다.
“이지를 회복한다고 해도 또다시 술법에 빠질 수도 있단 말이요?”
“상공께 원인을 모르니 무어라 장담할 수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미타불! 검후는 먼 길을 왔으니 차라도 한 잔 권해야겠습니다. 예서 이러지들 마시고 들어가지요.”
아미의 장문이 소군을 이끌며 거소로 향했다. 남궁세가주의 질문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군은 그곳에서 절검과 무영과 무진을 보았으나 그들과 특별한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마치 진건곤에 관한 기억이 없는 듯하였다.
제갈세가주의 장담대로 그렇게 하나둘씩 모여든 은거고수 중에 천하제일을 다툰다는 고수들이 모두 여덟이었다.
소림의 료굉. 무당의 검선. 화산의 절검. 곤륜의 설검. 해남의 파검. 사천당가의 멸독. 남궁세가의 창천검. 산동악가의 묵권, 아미의 검후 등이 그들이었다.
이미 진건곤의 손에 죽어버린 대무는 행선지가 모연하여 연락이 되지 않았고 진건곤은 이미 도착한 지가 오래였지만 일반 병사들의 틈에 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꼭 필요한 시기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마군! 정파의 고수들이 대거 참여했다고 하오. 오늘이야말로 거사 중의 거사요. 꼭 성공하시기 바라겠소이다.”
귀제갈이 나와 고루마군과 독마군의 손을 쥐고는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였다.
“하하하핫!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많은 출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오늘만큼 든든한 날이 없지 않습니까? 대공녀께서 함께하시는데 어찌 실패하겠습니까?”
고루마군의 시선이 공손하게 변하여 여인을 향하였다.
여인은 무인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부드러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무인이라고 한다면 상상도 못할 고수임에 틀림없을 것이었다.
“본녀를 믿어주셔 감사드립니다.”
“허허허! 대공녀를 만난 것이 늘그막의 새 삶이었습니다. 허허허허!”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대공녀가 아니었다면 그저 욕심 많은 늙은이로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귀제갈은 그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고는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갑시다. 오늘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싸움입니다. 천지신교! 조아로!”
“조아로!”
“조아로!”
소군보다 한참 뒤에 나타난 진건곤은 머리를 풀어 반쯤은 얼굴을 가리고 왼쪽에는 안대를 차 외눈박이로 위장을 하였다.
진건곤이라고 생각하고 보지 않는다면 알아보기 힘들었다. 진건곤은 사람들의 시선을 태연하게 받으며 사병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어이! 너! 무어야?”
건달 같은 목소리로 시비조가 잔뜩 묻은 음성이었다. 바로 진건곤을 불러 세우는 음성.
머리에는 수술이 달린 모자를 쓰고 허리춤에 있는 박도 이외에도 한 손에는 육모 방망이를 들고 있었는데 보기에 사병들의 규율을 잡는 자처럼 보였다.
“자네, 이리 오게!”
진건곤이 놀라는 법도 없이 오히려 소리를 쳐 부르자 사내는 언제 목소리를 높였는지 모르게 얼른 꼬리를 말며 쪼르르 달려왔다.
“무슨 일인 갑쇼, 나리?”
그 태도가 너무나 부드럽고 매끄러워 사내가 하는 짓에 어이없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리라고?”
“그럼요. 나리! 상 소호장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이름이 상모입니다.”
“하하하! 자네가 보기에도 내가 나리같이 보이는가? 참으로 뛰어난 안목일세그려. 이번에 내가 한 벼슬을 받아 이곳에 부임했단 말이지. 앞으로 잘 지내보세.”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척 보아도 나리에겐 후광이 비치는 걸요. 하지만 제 일이 일인지라 나리가 무엇을 하는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확인 좀 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윗사람을 불러올 깝쇼?”
확인은 하겠으나 내가 낄 자리가 아니면 윗사람을 불러오겠다는 말. 확실히 처세에는 재주가 있어 보였다.
“흐흠, 자네가 아주 맘에 들어. 특별히 알려주지. 그런데 말이네, 자네 같은 말단이 알아볼지 모르겠네. 살짝만 보아야 하네.”
진건곤은 온갖 거드름을 다 피우며 소매의 속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옥으로 된 호패, 즉 옥패가 있었는데 광우에게서 받았던 호패를 아직도 돌려주지 못하고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히… 이…….”
상 소호장은 그것을 알아보며 깜짝 놀라 맨땅에 무릎을 꿇으려 했으나 진건곤이 마혈을 짚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이보게. 척 봐도 암행 중인 것처럼 보이지 않나? 내 진실한 신분이 들통 나면 자네에게 벌을 내릴 것이야. 알아서 처신하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면 눈동자를 위 아래로 움직여 보게.]
상 소호장은 눈동자를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여 표시를 하였다.
할 말을 마친 진건곤이 혈을 풀어주자 움직일 수 있게 된 사내는 죄를 짓고 형장에 끌려 나온 죄인이라도 되는 양,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거듭 말하지만 내 신분이 탄로 나면 자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야. 알아서 잘 행동하게! 자네의 바로 아래 서열로 하지. 그리고 자네와 붙어 다니는 게 편하겠군. 알겠지?]
사실 황족과 마주 대화를 나누기에 상 소호장은 직급이 너무 낮았다. 그는 겨우 오십여 명을 책임지는 소호장이었던 것이다.
“예… 예… 끼 이… 사람. 이건 조… 조장의 발령장이 아닌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가 했더만 내 밑… 으로 들어오는 것뿐일세. 잘 해보자고.”
“하하하! 그런가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아니 이쪽으로 오게 조장.”
상 소호장은 말로는 반말을 하였지만 진건곤을 말 그대로 모시다시피 하며 진영으로 들어갔다. 군복을 입고 작은 손 방패에 박도를 손에 들으니 영락없는 사병으로 보였다.
“나만 따라다니게. 잘 모셔… 살펴줌세.”
사내가 움직이자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 진건곤이었는데 문득 눈에 이채를 띠웠다.
‘역시! 세상은 넓고 그 끝을 알 수 없다고 했던가? 저 멀리서 나를 알아보는 자가 있을 줄이야.’
진건곤은 무림맹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예리한 기운이 자신을 훑는 것을 느끼고는 내기를 더욱더 깊게 갈무리하여 자신을 숨겼다.
내기를 감추자 예리한 기운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시각, 무당의 검선은 시선을 한곳에 모우고 있었다. 바로 군영의 한쪽이었는데 그 모습이 하도 골똘하여 다른 자들도 다른 고수들도 그 시선을 쫓았다.
놀랍게도 그의 시선은 멀리 거리를 격하고 진건곤의 신형을 보고 있었다.
‘과연 검선이로구나. 이 먼 거리에서도 상공을 알아보신단 말인가?’
소군은 그런 검선의 시선을 보고는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고수들은 검선의 눈이 향하는 곳을 보았으나 무엇이 검선의 시선을 사로잡는지 찾아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워낙에 거리가 멀었던지라, 비록 변용을 하였다고는 하나 절검도 역시 진건곤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눈을 돌렸으니 다른 자라고 해서 알아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허허허! 검선께서는 무엇을 보시오? 참으로 골똘히 보고 있으니 호기심 많은 거지가 참지 못하겠구려. 이 거지도 알게 해주시구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천지풍파개가 물음을 던졌다.
그의 별호는 온갖 사건을 다 들쑤시고 다니는 터라 붙은 것이었는데 오늘만은 다른 사람들도 천지풍파개의 성정이 반갑게 느껴졌다.
검선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고 자신을 보고 있는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글쎄올시다. 문득 현기가 느껴져 보았는데 더 이상 찾을 수가 없군요.”
“검선은 너무 말을 아끼는구려. 다 늙어가는 처지에 무슨 말을 그리 아끼는 건지… 하여간 말코들은 거지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단 말이요. 이 거지는 눈이 빠지라 보아도 모르겠소. 무슨 현기인지 말해주면 좋겠소.”
“허허허! 내가 알면 이리 앉아 살피고만 있겠소이까? 알게 되면 말을 하리다.”
검선의 입은 그것으로 닫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