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운남은 예로부터 중원을 흔들어 놓은 커다란 사건의 시작점이었다. 북경에서 가장 먼 지역이며 단결이 되지 않은 수많은 소수민족들. 빽빽한 수림과 독물. 그것이 아니라도 천혜의 복잡한 지형을 가진 십만대산까지.
몸을 낮추고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면 이처럼 좋은 조건인 곳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성인 사천성은 자연히 그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천성에는 구파일방의 거파인 아미파와 청성파가 있었다. 게다가 오대세가의 지주라 할 수 있는 당가가 있었다.
아미가 극단적으로 마를 싫어하는 것도. 당가가 건드리지 않으면 자신들도 건드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한 것도 운남성에서 시작된 사건들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교의 발호에 다른 때와는 달리 아미파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소군과 진건곤이 있었다.
“아미타불! 알겠다. 염려 마라. 네 뜻대로 아미가 먼저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야. 보조를 맞추는 것에 그치도록 하마.”
이미 소군이 검후의 무공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미파에서는 소군의 의중을 많이 존중하였다.
소군은 진건곤이 구파와 어울리기를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앞장서서 구파를 규합하는 일에 나서지 않았다.
“그럼 아미를 잘 부탁하마!”
“다녀오시지요.”
장문은 장문과 같은 동 자 배분의 고수 다섯, 일대제자 다섯 명을 거느리고 산문을 서둘러 나섰다.
이미 시일이 지나 마교의 개파대전이 열리는 날이 코앞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시지요.”
아미의 일행이 당도한 곳은 운남성의 외곽인 진양이었다. 이미 무림맹의 이름으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오천의 병사와 이천여 명의 무림인들이 모여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나온 무인들의 구성은 대동소이 하여 각문파와 세가를 대표할 수 있는 장문과 각주나, 대주 등의 일파의 실질적인 실세에 해당하는 이름 높은 무인들 대여섯에 일대제자들이 섞여 있었다.
마교라는 이름이 아니라면 그렇게 쉽게 모일 수 있는 진용이 아니었다.
그들의 수효만 이백여 명에 이르렀고 속가제자들이 모여들어 구파일방의 수효는 천여 명에 이르렀다.
또한 관에 잘 보여야 하는 지방의 군소방파나 명성을 떨치고 싶어 하는 낭인 등의 몰려든 무인들이 있었으나 그들을 유지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무인들을 돌려보냈다. 실제로 천여 명의 고수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려보냈다.
황제가 내린 관군이 오천(五千), 무림맹을 중심으로 모여든 무인들 이천(二千)이 함께 운남성과 사천의 경계인 진양에서 진을 치고 모여 있었다.
진양은 마교의 본산인 십만대산까지는 그리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있었기에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싸움을 시작할 수 있는 위치였다.
“대사!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종삼계의 좌오장군 고화인이었다.
중앙의 관직이나 비교하자면 지방 성주 정도의 지위를 넘어선 실세의 관리였다.
결코 낮지 않은 지위의 관리가 파견된 것으로 보아 마교의 이름은 언제나 관으로부터 경계의 대상이라는 느낌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무림인들을 무시하는 오만한 관리에 불과했을 터였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림의 맹주라는 무당의 천오 진인에게 기대는 구석이 많았다.
사전의 조사에 의하면 마교는 고루마군의 강시와 만독곡의 독을 사용한다고 했다.
애초부터 대규모의 전투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마교였으니 그 예봉을 감당하자면 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었다.
그 역할을 무인들이 나서서 해주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무인들을 융숭하게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본 맹주가 먼저오기는 했으나 구파일방의 장문들이 모두 나서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이틀 안에는 모두가 모일 것입니다. 그때 싸움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오오! 구파일방의 장문이라면 신선이라는 분들이 아니오? 무림은 과연 총력을 다 하고 있구려. 폐하께서도 그대들의 충정에 기뻐하실 것이외다.”
“마교는 천하에 피의 강을 불러오는 무리들이니 어찌 태만하게 다루겠습니까? 이토록 많은 무인들이 모였으니 페하께 무인들의 충정이 살아있음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좌오장군은 흡족한 표정으로 맹주를 대했다.
“하하하! 이를 말이겠소? 평소 관인들 중에 무인들이 황권으로부터 너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으나 오늘의 행사를 보면 그들이 그런 말을 계속하지는 못할 것이오.”
“원시천존! 무림이라도 황제의 은덕 속에 살아가거늘 어찌 황권에서 자유롭겠습니까?”
“하하하! 그리 말해 주시니 참으로 충성심이 깊다 하겠소이다. 이 전투에서 이기고 나면 황제 폐하께 돌아가 그대들의 충정을 꼭 전하고 말겠소이다. 하하하하하!”
마교도의 무인들의 수는 겨우 천여 명에 불과하였으나 그들은 정파의 노림을 피해 십만대산까지 도망쳤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고수들이었다.
게다가 고루마군이 이끄는 강시들이 대략 칠백 구가 있어 절정의 고수 같은 역할을 하니 순수한 무력에서는 이미 앞서는 바가 있었다.
관군들이 서둘러 전투를 시작하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강시들의 예봉을 꺾어줄 고수들이 필요했기에 더 많은 기인이사들이 모여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좌장은 멀리 삼색의 봉화가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장군! 봉화에 불이 올랐습니다. 선봉대입니다. 반나절 내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허허! 선공이라……! 적도의 무리들이 이리도 대담할 줄이야. 내 첫 교전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 것이다. 가서 맹주를 모셔오너라. 아… 아니다. 같이 가보자.”
서둘러 몸을 일으킨 좌오장군이었으나 천막을 나서기도 전에 맹주와 구파일방의 장문들의 예방을 받아야만 했다.
맹주도 역시 선봉대의 출현을 알고 구파와 오대세가의 가주들을 모아 좌오장군의 처소를 찾은 것이었다.
“하하하! 역시 맹주시오. 안 그래도 뵈러 가려했건만 이리 오셨구려.”
“장군을 뵙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다니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흥! 이미 알고 그대들을 찾은 것이 아니겠소? 긴 말하지 마시오.”
좌오장군이 맹주를 극진하게 대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부장이었다.
“허어! 개방의 정보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자는 처음 보는구나. 육선문의 정보가 그리 놀라운지 처음 알았군.”
개방의 방주가 코웃음을 쳤고 그런 그를 뚫어져라 보는 부장이었다. 좌오장군이 그런 틈을 정리했다.
“말해 보시오, 맹주!”
“개방의 정보에 의하면 적들은 천여 명에 불과하고 그중에 반이 강시라고 합니다. 마교의 고수와 강시들이 반반 섞여 있으니 일반 정병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습니다. 필시 선봉대로 하여금 승리를 거두게 하여 사기를 꺾으려 함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총력을 기울여 승리를 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좌오장군과 그의 부장들은 놀라고 말았다.
저렇게 거침없이 방책을 내놓았다면 이미 회의를 끝낸 후에 방문한 것이라는 것이 아닌가?
자신들이 생각한 것 이상의 능력을 보이는 무림맹이었다. 또한 정보도 역시 봉화보다 더 빠르고 상세하지 않은가?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일반 병사들이 보지 못하도록 무인들이 앞장서서 나아가 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개방의 방주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보태었다.
“무슨 소리요. 전쟁은 기세의 싸움이요. 첫 교전을 승리로 장식하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기세가 오를 것이오. 그대들은 자신이 없는 것이요?”
또다시 부장이 나서며 타박을 하였다. 좌오장군은 손짓으로 부장을 나무라더니 그 또한 걱정스레 맹주를 쳐다보았다.
“혹시 패할지도 모른단 말씀이오?”
맹주는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고르고 고른 고수 이천 명이 겨우 일천의 선봉대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흥! 그런데 왜 병사들이 없는 곳에서 싸움을 한단 말이요? 솔직하게 말을 하시오.”
부장이 또 나섰다.
“정병의 사기가 높고 충정이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강시 같은 마물들이 도검을 맨몸으로 당해내는 것을 보고 나면 크게 위축될 것입니다. 도검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보았으니 어찌 기세가 오르겠습니까? 오히려 불안과 혼동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적들도 그 점을 노리고 강시를 앞장서서 내세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강시라는 말에 부장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좌오장군은 그런 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허허허! 역시 맹주요. 천외천의 무인들이라 하였는데 오늘 보니 무공만 강한 것이 아니구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병사들이 없는 곳에서 싸움을 할 수는 없지 않겠소? 몇 천 명이 하는 전쟁은 며칠 사이에 끝나는 것은 아니요. 언제까지 뒤로 물러설 수는 없소이다.”
부장은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이견을 펼쳤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히 마교의 고수들보다 강호의 고수들이 그 수효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마교의 일천여 병력에 비해 강호의 고수들이 두 배에 달합니다. 그들은 모두 첫 싸움에서 강시들을 처리하는데 사력을 다할 테니, 어느 정도 강시가 정리가 되고 나면 그 후로는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맹주의 의견이 일리가 있었지만 좌오장군과 부장들은 아직 강시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위력을 본 적이 없으니 그 공포도 역시 적을 수밖에.
“겨우 일천의 선봉대요. 우리는 칠천의 병사요. 무엇이 두려워 싸움의 장소를 가린단 말이오. 오히려 비밀스럽게 싸우는 것으로 사기가 저하될 것이오. 차라리 칠천의 정병과 무인들로 포위하여 사로잡는 것이 어떻겠소?”
[쯧쯧쯧. 강시를 사로잡을 생각을 하다니. 과연 강시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자의 판단입니다. 관부의 자존심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어차피 겪어보고 나면 알 일. 일단은 부딪히게 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일단 겪고 나면 알 일이 아니더이까?]
제갈세가주의 전음이 무림맹주의 귓가에 울렸다.
맹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좌오장군에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을 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히 장군님께 약속을 요구해?”
좌오장군의 부장 중에 하나가 맹주를 보며 건방지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내었으나 좌오장군이 손을 들어 그의 부장을 제지하였다.
“무엇이오, 맹주?”
“일단 강호의 고수들은 뒤로 빠지겠습니다. 사병들만으로 싸워 주십시오.”
“무엇이……? 그대들은 싸움에 나서지 않겠단 말인가?”
성질이 급한 부장이 또다시 소리치며 앞으로 나섰다.
“강시를 사로잡을 생각을 하다니 일단은 강시가 어떤 물건인지 알아야 작전을 짜는데 도움이 될 듯하여 그렇습니다.”
부장은 자신이 강시를 몰라봐 그렇다는 말에 기분이 나빠져 맹주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맹주의 말에는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강시들의 위력 알게 되면 반드시 사병들을 뒤로 물려주셔야 합니다. 그때에 강호의 고수들이 나와서 그들과 싸움을 시작할 것입니다. 일단 강시들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절대로 후퇴명령을 내리는데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됩니다.”
강시의 위력을 그들의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사병들의 희생이 목적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약속하지요.”
부장은 여전히 눈을 부라리고 있었으나 좌오장군이 나서서 그 제안을 수락하였다.
“원시천존! 장군같이 현명하신 지도자를 만난 것이 사병들에게는 큰 행운일 것입니다.”
좌오장군이 흔쾌히 조건을 수락하자 맹주는 덕담을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부장은 강시들과 싸움을 할 진형을 짜는 것에 골몰하였고 맹주는 강시들을 맞이할 고수들을 차출하여 조를 지었다.
맹주가 뽑는 고수들은 모두들 절정의 고수와 일류고수 이상의 자들로 강시들에게 쉬이 당할 자들이 아니었다.
세 시진이 흐르고 난 뒤, 강시들을 포함한 마교 일천의 고수들이 멀리서 먼지를 피우며 나타났다.
둥둥둥! 둥둥둥!
뿌우! 뿌우우우! 뿌우우!
북과 고동소리가 울리자 오천의 병력이 움직였다. 제자리에서 북소리에 맞춰 발을 굴렀다.
쿵! 쿵! 쿵!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평생을 싸움 속에서 살아온 강호인들이었지만 오천의 대군 앞에서 그 장엄한 순간에 짓눌리고 말았다.
부장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검을 들어 하늘로 치켜들었다.
“첨군과 좌일군, 우일군 출정!”
“와와와와! 와와와!”
부장의 명령을 복창하며 전달이 되고 각각의 일천의 병력으로 된 세 부대가 동시에 앞으로 움직여 나갔다.
합이 3천 대군이 마교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가히 하늘이라도 쪼갤 것 같은 기세가 느껴졌는데 마교의 일천의 병력은 전혀 흔들림이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강시들을 앞세운 마교의 기세에 부장은 스스로 말에 올라타며 또다시 명령을 내렸다.
“본영은 진격하라!”
“와와와와와!”
카가가가강! 가가각!
천지를 가르는 함성을 지르는 황군과 아무런 표정도 함성도 없는 강시군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서로가 부딪혔다.
무표정한 강시들은 두 손을 치켜든 채로 그대로 앞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고 첨군의 대장인 서군명은 두 개의 철부를 휘휘 돌려가며 기세를 살린 일격을 날렸다.
첨군의 대장으로 있는 서군명은 두 개의 철부를 다룬다. 손잡이까지 철로 만들어진 철부는 그 무게가 각각 오십 근에 이르러 철로 만든 방패라고 해도 쪼갤 수 있는 중병이었다.
서군명의 철부가 기마의 기세를 그대로 담아 강시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하아압!”
까아앙!
불똥이 튀고 철부가 튕겨져 나갔다.
푸욱!
서군명이 놀라 눈을 홉뜬 순간, 강시의 두 손이 그대로 서군명의 가슴에 꽂혀 들어 두 개의 구멍을 뚫어내었다.
첨군의 돌격대장이라는 서군명이 그렇게 쉽게 목숨을 잃었고 서군명의 죽음을 본 첨군은 삽시간에 사기가 꺾이고 말았다.
좌일군과 우일군도 마찬가지, 도검이 통하지 않는 강시들이 치고 부수며 앞으로 나아가고 좌우로 휘젓자 황군이 가지고 있던 장벽이 깨어지고 말았다.
“전진! 전진! 깔아뭉개 버려!”
부장의 명령이 내려지고 여기저기서 복창소리가 울렸다. 잠시 멈칫거렸던 5천의 군대가 앞으로 나아가며 거대한 흐름이 되어 강시를 넘어트리고 짓밟았다.
“크하하하하! 그것 봐라,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
부장은 강시들이 사병들의 발밑에 깔려 밟히는 것을 보면서 호탕하게 웃음을 지었다.
무림인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많은 군사들의 발에 밟힌다면 제대로 된 시신도 건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인들 스스로를 빗대어 해본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무인들은 강시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부장은 무인들의 표정을 보면서 자신의 승리를 확인한 듯 웃음을 지었지만 무인들은 오히려 그런 부장의 표정을 보며 비웃고 있었다.
동상이몽의 순간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간. 허공으로 병사들이 날아올랐다. 강시들이 집어 던진 병사들이었다.
강시는 수많은 병사들의 발밑에 깔렸지만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듯이 일어서 병사들을 집어 던졌던 것이었다.
“아악!”
허공으로 날아든 병사들이 떨어져 내리며 아군의 창에 꿰이는 일이 속출했다.
까가가가강!
비명에 정신 차린 병사들이 도검을 빼 들고 강시를 쳐갔지만 첨군의 최강이라는 돌격대장 서군명의 철부도 소용이 없었던 강시들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아아아악!”
“아악!”
“요괴다. 귀신이야.”
도검이 통하지 않는 모습에 놀라버린 병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본 부장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서렸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삼군을 물러나게 하고 기마대를 투입하라!”
깃발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복명복창이 울렸다.
5천의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려고 하자 강시들이 더욱 사납게 달라 들어 병사들을 해쳤는데 가히 양떼들 사이에 늑대와 같았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나고 기마 1백여 병사가 나타났다. 쫓기던 병사들이 모두가 기마대의 모습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쳐라! 강병의 모습을 보여라!”
기마대를 지휘하는 강오상의 명령이 쩌렁쩌렁 울리고 일천의 기마대는 각기 중병을 꼬나들고 강시를 향해 들었다.
까앙! 깡! 까앙!
기마대의 병기가 강시들의 몸에 꽂히자 강시들은 인마합일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날아가 떨어졌다.
“와와와와와와와! 와와와!”
병사들의 함성이 일었다. 사기가 일어 천지가 뒤집힐 듯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벌떡! 벌떡!
굽혀지지 않는 무릎으로 벌떡 일어서는 강시들의 모습은 사병들에게는 공포와 다름없었다.
강시들은 아무런 상처도 입은 것 같지 않았고 자신을 공격했던 기마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몇 번은 기마대의 공격이 성공하는 듯했지만 결국은 기마대의 일원이 피를 쏟으며 찢겨져 죽음을 당했다.
사병들의 얼굴에는 실망과 공포가 쌓였다.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다는 절망이 쌓여가고 있었다.
“포를 준비해라!”
부장의 명령이 있자 맹주가 나섰다.
“장군. 포를 쏘면 그들은 아군의 틈 속으로 스며들 것이외다.”
5천의 군사 속에 스며든 강시란 처치곤란의 골칫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장도 알고 있었다.
차마 발포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좌오장군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속하의 무능을 용서해 주십시오.”
부장의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갈랐다.
좌오장군의 손이 들어지자
둥둥둥둥! 둥둥둥!
뿌오오오오오! 뿌오오오!
북소리와 고동소리가 울리고 전군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강시들은 그들을 쫓으려 했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물러난 군사들의 빈자리에 이미 준비하고 있던 무인으로 만들어진 일천 수호대의 모습이 드러난 탓이었다.
강시들도 역시 그제야 자신들의 적수가 나타난 것을 알았다는 듯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들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일천 수호대는 나서라!”
미리 준비한 고수들 중 일조가 앞으로 나서자 오천의 병사들이 함성을 질러 그들을 독려하였다.
이미 강시들을 겪어본 사병들에게 마지막 희망이란 신선과도 같은 능력을 지녔다는 무인들이었으니 그 응원의 함성이 작을 수가 없었다.
“와와와와와!”
“황제를 위하여!”
“출정!”
“와와와와와와!”
하늘이 무너질 듯이 커다란 함성에 힘을 얻은 고수들이 맹주의 명에 따라 앞으로 나섰다.
사뭇 장엄한 광경이어서 무인들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일천 수호대의 지휘를 맡은 자는 소림의 사대금강 중의 하나인 굉각이었다.
그 무위가 이미 절정을 넘어선 지 오래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였다. 강시라면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무공을 지닌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크하하하하하! 가라 내 새끼들아! 이제야 진정한 신교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세상을 뒤집어보자!”
고루마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뜻밖에도 거물의 출현이었다.
일천의 선봉대라고 생각했던 무리들은 마교의 최고수들과 강시들로 이루어진 마교 최강의 전력이었다.
일반적인 선봉대에 관한 선입관으로 ‘그저 강한 편이려니’라는 선입관으로 상대해서는 안 될 자들이었다.
뜻밖에 거물의 출현으로 전쟁의 승패가 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맹주는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진건곤이나 모산파가 개입하기 전에 큰 성과를 보려고 하는 귀제갈의 작전이었다.
마교의 무리들이 지척으로 다가오자 일천수호대의 수장인 굉각은 앞장서서 선장을 휘둘렀다.
굉각은 과연 선봉을 맡을 만한 소림의 절정 고수.
“아미타불!”
불호와 손이 움직이자 제마곤의 수법에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일어나 소림의 광명정대한 기운을 담고 쏘아져 나갔다.
그 웅혼정대하고 강맹한 힘에는 강시라고 해도 당해낼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쩌엉!
놀랍게도 그의 앞을 가로막은 자는 강시가 아니라 마교의 고수였다.
“크하하하하! 그렇겐 안 된다. 땡중!”
짧은 몽둥이를 두 개를 들고 있는 자가 굉각의 선장을 막아내고 있었고 그 사이 강시는 굉각의 뒤에 있는 자들을 향해 들어갔다.
삽시간에 어지럽게 얽혀들며 일천 대 일천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철산곤마!
절강성의 철산을 근거지로 삼아 절강성의 상권을 지배하려다가 공적으로 몰려 마교에 투신한 자였다.
무공을 앞세운 무력의 싸움으로 상권을 어지럽히고 밀수와 인신매매 등의 수법을 사용하여 관에서도 수배령이 내렸던 자.
그의 곤에는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어 이미 절정에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류에 불과한 자를 직접 잡아다 관아에 보냈던 굉각이었기에 그의 무공이 변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굉각이었다.
“크하하하하! 땡중! 나를 예전의 나로 보았다가는 단매에 쳐 죽여 주마!”
굉각이 주위를 살펴보니 일천수호대는 이미 어지럽게 얽혀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단신으로 강시를 처리할 만한 고수들은 이미 각각 상대에게 붙잡혀 버리고 약한 자들만이 강시를 상대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세심한 작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마교의 고수들이 정파의 고수들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굉각은 면면이 마교의 고수들은 소문보다 한 수 위의 상대들을 붙들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미타불! 어떤 사이한 수법으로 무공을 끌어올렸는지 몰라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굉각은 진실로 철산곤마의 무공이 사이한 대법에 의해 올라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흥! 사이한 수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전에 쳐 죽여 주마.”
겨우 일류고수라고 알려져 있던 철산곤마가 두 개의 곤에서 진한 아지랑이를 피우며 쇄도해 들었다. 절정 중에서도 무위가 약하지 않은 듯했다.
굉각이 선장을 떨쳐내자 선장이 작은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데 선장의 끝도 선장을 잡은 손도 모두 원을 그리는 현기를 보이자 그의 곤법에는 허점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까아아앙!
철산곤마가 튕겨져 날아가는 곤을 잡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럴 수가! 무기를 튕겨내는 탄자결이 들었거늘, 그것을 감당해? 이렇게나 많이 무공이 늘었다니……!’
굉각의 놀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다시 철산곤마의 쌍곤이 굉각을 향해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굉각은 이미 사대금강으로 강호에 알려진 명숙이었다. 상대를 허투루 보지 않고 정식으로 상대하기 시작하자 철산곤마에게 밀리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굉각이 철산곤마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곤궁에 처하면 철산곤마는 보다 더 강대한 기운을 써 마치 딴 사람처럼 강하게 느껴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큰일입니다. 마교에 저토록 고수가 많았다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이상합니다. 이미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무위를 보이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철산곤마가 굉각과 비슷한 무위라니요……!”
“허허! 조량살귀 주첨오가 저리 강할지는 몰랐습니다.”
“흑오쌍부가 본파의 첨오각의 각주와 동수를 이룰 줄이야……!”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던 구파일방의 장문들이 제각각 한마디씩을 던져내었는데 그 말에는 공통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미 강호에 알려진 것에 비해 마교 고수들의 무공이 일률적으로 상승해 있다는 것이었다.
“위험합니다. 그들의 전력은 우리가 알던 바가 아닙니다. 더 많은 고수들을 보내야 합니다.”
제갈세가의 가주가 판세를 이미 확정짓고는 그 대책을 보였다.
“아미타불! 그러도록 해야겠소. 저런 수작을 보일 줄이야.”
탕!
“아니 되오!”
좌오장군의 부장이 또다시 서탁을 두드리며 일어났다.
“저 싸움은 승기를 잡기 위한 일천 대 일천의 싸움이요. 이미 싸움이 시작됐는데 또다시 인원을 충원한다면 사기를 잡기 위한 싸움이 오히려 사기저하를 불러올 것이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지는 것보다는 인원을 투입한다고 해도 이기는 것이 사기진작에 도움이 될 터.
부장은 좌오장군이 맹주에게 의존하는 바가 큰 것에 질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의 전력이 알려진 것보다 강합니다. 일시적으로 무공을 늘리는 사특한 수법이라도 쓴 것이 틀림없소. 신속하게 무인들을 증강하지 못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생겨나고 말 것입니다.”
“흥! 전력을 잘못 판단하였다라? 일천 대 일천의 싸움이거늘 마교도 들에게 밀리다니, 천외천의 신선처럼 굴던 구파일방도 별 볼일이 없구려.”
부장은 대어 놓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모욕하기 시작했다.
“원시천존! 부장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희 잘못으로 상대의 능력을 잘못 보았습니다.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하오나 저들은 차후에도 중요한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수입니다. 차후의 싸움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구해야 합니다.”
맹주는 자신을 낮추고 고수를 증원하기를 청하였다. 싸우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사제요. 사질. 자존심 따위로 머뭇거릴 자들이 아니었다.
“흥.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다면 장군께 증원을 허락 받으시오.”
부장은 잘못을 인정한다면 좌오장군에게 허락을 받으라 했다. 좌중에는 그 의미가 무언인지 모를 자가 없었다.
하지만 맹주는 거리낌 없이 허락을 청했다.
“청컨대 증원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좌오장군!”
“허락하겠소.”
좌오장군의 허락이 있자 부장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전초전에서 자신의 무능도 역시 전가하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허허,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의 싸움이 고되겠습니다.]
제갈세가주가 답답한 마음을 담아 맹주에게 전음을 날렸다.
“원시천존!”
“나무아미타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저마다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싸움은 마교의 우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정파의 고수들도 그리 약하지는 않았기에 순식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더 많은 고수들을 불러들이려는 함정에 불과했다.
정파의 무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선봉대를 향하자 그 모습을 확인한 고루마군의 입에서 명령이 터져 나왔다.
“서둘러라. 저들이 오기 전에 해치워!”
굉각과 싸우던 철산곤마의 곤이 순간적으로 더 민활하게 움직이며 굉각을 몰아갔다.
“정파놈들은 불리해지면 항상 숫자가 늘어나지. 뭐. 원래부터 안면몰수이니 상관없으려나?”
굉각은 철산곤마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숫자로 상대한다는 것이었으리라.
굉각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제 놈들이 한 짓은 전혀 모르는 후안무치에 분노했다.
“무인은 무인다울 때 무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뿐, 마인들을 무인으로 대접할 수는 없다. 아미타불!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가랴!”
굉각의 손짓에도 힘이 넘쳤다. 굉각도 역시 지원이 오고 있는 마당에 힘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루마군은 전황을 주시하며 입맛을 다셨다. 전력을 다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도 당장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구파일방이란 말인가? 전진자만 아니었다면……! 아니, 빙백신과 화령신만 있었어도 간단하게 마무리가 되었을 것인데……!”
진건곤의 손에 사라진 최정예 일천의 강시들이 아쉬웠다. 영력만 아니었다면 그리 쉽게 부서지지 않았을 것을……! 급조한 칠백의 강시만으로도 이렇게 쉽게 전황이 펼쳐지거늘 그들이 있었다면…….
고루마군은 작은 소리로 아쉬움을 뇌까리며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손은 앞을 가리켰지만 머리와 입은 타인을 향하고 있었다.
“독마군께서도 수고해 주셔야겠소.”
“그럽시다.”
고루마군의 곁에 있던 자가 일어서 손을 들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제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라운 경공을 펼치며 싸움터를 향한 그들은 이천 명이나 되는 무인들의 싸움터를 거침없이 헤집고 들어갔다.
놀라운 무공을 지니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는 싸우다 말고 픽픽 쓰러지는 자들이 생겨났다.
독마군의 제자이니 독을 썼을 터, 그렇게 쓰러진 자들은 순식간에 강시들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들은 양떼들 사이를 가르는 늑대인 양, 싸움터를 누비고 다니며 전세를 순식간에 뒤집어 버렸다.
굉각이 나서서 그들의 움직임을 막고 싶었지만 철산곤마는 예전의 철산곤마가 아니었다. 쉽게 이길 수도 없었고 떨쳐낼 수도 없었다.
지원을 위해 달려오던 무인들 중에서도 고수에 속하는 자들은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알고는 앞으로 쑥쑥 치고 나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게 서라!”
그중 하나가 바로 당가의 고수 당만호였다.
당만호는 은거고수로 꼽히는 멸독의 대제자, 그 무위가 평범할 리가 없었다. 그 무위가 장로급은 족할 것이라는 평을 듣고 있었으니 정파의 입장에서 전장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손이 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오자 전세를 뒤집고 있던 삼인에게 수많은 암기들이 쏘아졌다. 암기들은 사위를 가득 메우고 쏟아져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패래랙! 패래랙!
후두둑!
삼인은 피풍의를 벗어 그곳에 공력을 주입하자 철판과도 같이 뻣뻣하게 일어섰다.
피풍의가 허공에서 춤을 추고 그 춤이 멈추고 나자 피풍의에서 많은 암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당만호가 나섰어도 그들의 무위는 쉽게 잡을 수 없었다. 당만호의 암기를 피하는데 여유를 보여 오히려 삼인이 합격을 한다면 당만호가 위험해 보일 정도였다.
삼인은 당만호를 피해가며 정파의 무인들의 허점을 찔러가며 판세를 뒤흔들었다. 삼인의 활약이 계속되자 숫자가 보강된 무인들의 전투에서도 그다지 크게 전세가 바뀌지는 않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버러지 같은 자들. 신교의 신심은 대단한 것이다. 너희들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 안 그렇습니까?”
“당연하지요. 이번이야말로 천하를 신교의 지배에 둘 차례입니다.”
고루마군과 독마군의 대화가 한가롭게 오고 가고 있었다.
하지만 좌오장군과 맹주들이 있는 곳에서는 한결 숨 가쁜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다.
“물려야 합니다.”
“불가하오! 황군에게 패배란 없소. 그대들이 나서서라도 전세를 바꾸시오.”
부장의 말에 구파일방의 맹주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무림의 상징. 그들이 나서서 싸운다면 최후의 싸움이다. 그들이 나서서 지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무림의 패배, 마교의 시대가 재래하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소. 본인들의 패배는 강호무림의 패배를 말하오. 지금과 같이 패색이 진한 때 마지막 패를 내세우는 것은 옳지 못하오. 저들을 뒤로 물리고 좀더 준비를 하여 다시 싸울 것이오.”
제갈세가의 가주가 손을 들어 올려 신호를 보내자 십여 명의 인원이 앞으로 나아가 커다란 돌멩이를 땅에 박았다. 그러기를 수십 회가 넘어가자 진형이 짜이고 그 위로 뿌연 안개가 피어나자 제갈세가의 한 인물이 소리쳤다.
“각 대주는 불퇴항마진을 통과하여 퇴각하시오. 통과한 자들은 각기 이첨삼두진을 유지하며 불마항마진의 뒤로 늘어서시오.”
이천의 무인들은 이미 사전에 약조된 대로 뒤로 물러섰다.
강시들은 뿌연 안개로 둘러진 곳을 지나지 못하고 멀리서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고 강시들이 뒤따르지 못하자 마교의 고수들도 역시 그곳에 머물러 정파의 무인들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쯧쯧쯧! 불퇴항마진이라니? 저런 준비를 하고 있었구려. 어떻소? 저것은 마군께 내려진 숙제 같구려.”
독마군이 고루마군에게 책임을 물었다.
“하하하! 저런 것쯤이야 크게 문제가 될 일이 없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고루마군이 직접 앞으로 나섰다.
정파의 무인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미 많은 수가 줄어 1천 7백을 겨우 넘길 지경이었다.
삼백여 명의 동료를 잃은 무인들의 눈초리가 고루마군에게 쏟아졌는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살기만으로도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고루마군은 마교 고수들을 앞세우고는 태연하게 앞으로 나섰다.
정파의 고수들은 그가 강시 없이 앞으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앞으로 나와 무언가 제안을 하려는 줄 알고 지켜보고 있었다.
불퇴항마진을 벽 삼아 있는 정파의 고수들의 지척에 다가온 고루마군이 두 손을 모아 인을 짓자 그의 몸에서는 또다시 시커먼 연기가 솟았다.
“피해!”
무엇인지 몰랐지만 불길한 느낌이 가득한지라 도인들이 먼저 소리 지르며 반응하였다.
고루마군의 연기는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마치 나무의 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정파인들을 향해 날아들더니 그들의 몸으로 스며들어 버렸다.
검은 연기가 스며든 자들은 구파에서도 제법 고강한 무공을 가진 자들이었다. 고루마군이 만들어낸 연기를 피하려 했으나 무슨 사술이라도 되는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고 피할 수도 없었다.
“크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시작해라!”
고루마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갑작스레 주위의 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악!”
“피햇!”
정파의 무인들이 동료가 쳐오는 도검 등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죽어가자 삽시간에 혼란에 빠져들었다.
“네놈들은 가서 진을 걷어라!”
정파인들이 혼란해진 틈을 타서 고루마군이 마교의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의 도검이 돌을 깨트리자 불퇴항마진은 깨어지고 또다시 강시가 난입해 들어갔다.
“크아아악!”
“물러서라! 도망쳐!”
안과 밖에서 동시에 쳐오는 공세에 혼란스러움을 느낀 무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기실 그렇게 쉽게 무너질 무인들은 아니었으나 그들에게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바로 패륜이었다.
고루마군의 술법에 당해 공세를 펼친 자들은 사숙이나 사질, 사형제에 해당하는 자들이었다.
고루마군의 사술에 걸려 도검을 휘두르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들에게 단호하게 손을 쓸 수 있는 자가 없었던 것이다.
무위가 높은 자는 고루마군의 대법에 걸려 살수를 사용하고 오히려 무위가 낮은 자들은 그런 자를 사로잡으려 했으니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고루마군의 대법은 사숙이 사질을. 사부가 제자를. 사형제가 사형제를 죽이는 패륜을 벌였다.
“이런! 고루마군……! 네놈을 용서치 않겠다.”
“고루마군!”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다!”
고루마군을 향해 원독한 음성이 많이 날아들었지만 고루마군은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크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
고루마군의 광소 속에 정파인은 패륜을 겪으며 뒤로,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나무아미타불!”
“원시천존!”
“어찌… 저런 일이……?”
무림의 영도자들은 하나같이 놀라며 경호성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문파에 벌어진 패륜. 그리고 그 패륜을 만들어낸 고루마군. 진실로 마귀와 같은 종자들이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화산의 장문인 운령에게는 더욱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일도 그렇지만 운현의 일도 익히 짐작이 가는 것이었다.
운현이 했던 일과 청명의 친모인 백이현이 마교의 수뇌부일 것이라는 추측은 딱 들어맞았다. 운현이 마교의 주구로 활동하며 환천삼보를 마교로 가져가려고 했던 수작이라고 생각했거늘……!
이제와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운현도 역시 그저 마교의 술법에 사로잡힌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곤 사숙을 그냥 쫓아낸 셈이 되었구나.’
혼란한 시국에 초고수 한 명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역대 최강의 화산의 고수를 스스로 쫓아내고 말았다니!
“후퇴! 후퇴하라.”
“회군! 회군하라!”
맹주와 좌오장군은 같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관군과 무림맹의 첫 출진은 그렇게 첫 패배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