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42화 (42/61)

제1장

“사형! 무진입니다.”

늦은 밤이었건만 무진은 무장의 처소를 찾아들었다.

“어서 오너라. 그래 어떻더냐?”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개방의 도움을 받아 행선지를 추적한 결과 운남으로 향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무진의 말에 무장은 탄식하듯이 입을 열었다.

“아아! 과연 활선당은 그들이 세상에 내민 미끼였을 뿐이야. 무섭구나, 무서워. 십 년이 넘도록 감시를 해왔거늘 꼬리조차 잡지 못하다니……!”

한동안 고개를 끄덕이던 무장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자! 장문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다.”

무장과 무진은 몸을 일으켰다.

늦은 밤 화산의 장문을 찾아든 무장이었다.

“어서 오시지요. 대장로님. 사숙님.”

장문은 곁에 같이 들어온 무진을 힐끗 보더니 무슨 사안인지 곧장 알아챘다.

“가셨던 일은 확인이 되셨는지요?”

“그렇네. 이미 행방이 묘연했던 터라 개방에 탐문을 해보았는데 운남으로 향했다는 결론일세. 틀림없이 백이현이 마교의 수뇌부와 관련이 있을 것이네.”

무진의 말에 장문은 눈을 감고 말았다.

“혹시나 했었거늘 역시였다니. 원시천존……!”

“이제 증거도 확보했으니 운현과 청명을 화산에서 축출해야 하네. 아울러 전진자도 함께 말일세.”

무장은 아직도 진건곤을 무곤이라 부르지 않고 전진자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백이현이 마교의 인물이라면 운현과 청명은 당연히 축출해야 하지요. 하지만…….”

“하지만이라니? 무엇이 문젠가?”

“무곤 사숙 말입니다. 절검 사숙조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가당치 않은 소리! 청명은 운현과 백이현의 핏줄이다. 운현이 이번 일로 마각을 드러내지 않았더냐? 내자는 마교의 괴수요. 본인은 검을 뽑아 강호 명숙을 베었다. 더 이상의 명분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전진자는 과거 운현의 제자였음을 알고 있는데 사숙이라도 당당하지는 못할 것이야. 청명이 돌연 마교의 괴수가 되어 일어선다면 전진자도 함께 일어설 터, 그런 위험을 안에 두고 마교를 상대할 수는 없지 않느냐? 책임지고 절검 사숙의 허락을 맡아내 거라.”

“원시천존……!”

장문은 절검이 진건곤을 내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만한 신뢰가 없었다면 화산수문위라는 막중한 임무를 그에게 맡겼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전진자가 알고 있는 무공은 어찌 회수하겠느냐? 이제 본파의 인물도 아닌데 그자가 본파의 무공을 샅샅이 알고 있다는 것은 보통 위험한 것이 아니다. 그 대책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무장은 제 할 말만 남겨 놓고는 무진을 데리고 돌아섰다.

다음 날 아침.

장문은 서둘러 절검을 보기 위해 절검의 모옥으로 발을 놀렸다. 뜨내기처럼 세상을 떠도는 절검이 마침 기거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가!”

“사숙조님! 본산의 안위가 걸린 일입니다.”

“불가! 그 아이라면 운현과 청명에 딸려갈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말릴 것이야. 나는 무곤에 대한 믿음이 두텁다. 내게서 허락을 맡을 생각은 하지 마라!”

“사숙조님! 이제 곧 마교와 싸워야 할 때입니다. 이런 때에 뒤를 정리하지 않고 어찌 앞으로 나아가겠습니까?”

“증거가 나오면 그리하자. 하지만 그전에는 어림도 없다.”

절검은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 앉았다.

장문은 절검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되돌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나무나 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굴이건만 매화향이 가득했다.

기사(奇事)다!

하지만 은은한 우윳빛이 피었다 사라지자 그 기사는 기사가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우윳빛 검기가 도를 끌고 매화향이 나면 고강한 무공을 지닌 화산의 도인이 틀림없었다.

번쩍이는 검광이 피고 지는 순간이 많아지자 더 진해지는 매화향이었다.

저벅저벅!

거침없는 발걸음이 동굴의 고요함을 깨트렸다. 거침없다기보다는 왠지 무례한 느낌이 드는 발걸음이었다.

“청명! 나오너라!”

“사숙을 뵙습니다.”

청명이 무진에게 인사를 건네었지만 무진은 그런 청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따라오너라!”

청명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무진의 태도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딱히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무진이 멈춘 곳은 바로 참회동!

“죄인은 참회동에 들어라!”

“사조님! 제 죄를 하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청명은 당황하였지만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참회동이라면 죄를 지은 자들이 스스로 참회하며 반성하는 곳이다. 죄가 없이 들어설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서 들어가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게냐?”

적막한 목소리.

그 음성은 차갑기 그지없어 청명의 요구를 들어 줄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반성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조님! 이유를……!”

스릉!

무진은 다짜고짜 시퍼런 칼날을 들이밀었다. 일이 이쯤 되면 아래 배분의 청명으로서는 도리가 없었다.

‘하아, 아버님의 일이 있어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구나.’

운현이 정파의 명숙들에게 검을 들이밀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자신이 또다시 화산에서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비의 죄를 뒤집어쓰고 참회동에 들어가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이다.

‘사형의 시대가 오면 내 억울함이 풀릴 것이야. 사형은 선대의 잘못을 후대에 물릴 사람이 아니니까.’

죄는 없었으나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청송을 믿는 마음으로 참회동 안으로 들어섰다.

“가져와라!”

무진의 말에 어린 제자들이 쇠사슬을 끌고 들어왔다.

쇠사슬을 본 청명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슨……? 참회동에 웬 사슬입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제 죄목을 말해 주십시오.”

아비의 죄를 이어받아 문파의 외톨이가 될 것은 이미 각오했던 바였다.

그런 일까지 전혀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직접 죄를 지은 자인 양, 처벌을 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참회동이 아니라 뇌옥에 온 것 같지 않은가?

청명이 쇠사슬을 쓸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자 무진은 차갑게 내뱉었다.

“감히 사조의 말을 듣지 않는단 말이구나. 네놈의 무공이 그리 높았는지는 처음 알았구나. 하지만 진려경! 그 아이의 무공은 아직 멀었지?”

진려경을 인질로 삼겠다는 소리였다.

“원시천존! 사… 사조는 도인이 아닙니다. 어찌 그런 말을 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흥! 마교의 주구를 가두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쓸 준비가 되어 있다. 인질을 끌고 와야만 스스로 쇠사슬을 채울 것이더냐?”

철컹! 철컹!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말에 청명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는 스스로 쇠사슬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더 불같은 성격을 가진 려경이 화산의 문도의 손에 순순히 끌려올 리가 없었다.

아마도 큰 고초를 겪은 후에야 인질로 이 자리에 나타날 것이었다. 려경이에게까지 그런 일을 겪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청명이었다.

려경을 생각하자 청명의 마음속에는 진건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건곤의 얼굴이 떠오르자 기다리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명이 쇠사슬을 채우자마자 무진의 손이 신속하게 움직여 청명의 마혈을 짚었다.

청명의 몸은 짚단이라도 되는 양, 맥없이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교의 주구에게 내력을 쓰게 할 수는 없지.”

무진의 손이 정신을 잃은 청명의 단전을 만졌다.

풀썩!

이미 정신을 잃었던 청명의 몸이 커다란 충격에 경련을 일으켰고 그의 입가에서는 선혈이 흘렀다.

“사부님이 고루마군의 사술에 걸려 강시가 되었을 때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그랬다. 수라비도를 막아내며 강력한 힘에 흔들렸는데 그때 고루마군이 뿜어낸 연기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기운이 단전을 지배하고 기맥을 지배하더니 그다음부터는 고루마군의 의지가 내 몸을 지배하더구나. 멀쩡한 정신이었지만 고루마군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너와 네 처가 고생이 많았구나. 고맙구나.”

운현은 진건곤과 소군이 겪은 일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그리됐다면 사부님이라도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진건곤이 말에 무뚝뚝한 운현은 답이 없었다. 다만 그 무뚝뚝한 얼굴에 작은 웃음이 번졌을 뿐이었다.

“무곤 사숙이라고 불러야 할까?”

운현의 말이었다. 공교롭게도 무곤이 된 후부터 급한 상황이 아니면 서로의 호칭을 피해왔던 두 사제였었다.

“하하하하! 어림도 없습니다. 사부님. 다른 눈이 있다면 전음으로 하면 될 일이지요. 우리끼리 있을 때는 사부님이라고 부르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자꾸나.”

운현은 싱겁게 그리하자고 하였다. 그것이 좋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지도 몰랐다.

진건곤은 운현의 유일한 제자였으니까. 차라리 전음으로 대화를 나눌지언정 유일하게 세상에 남긴 것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사부님의 인맥은 참으로 복잡합니다. 백자 인사드리겠습니다. 태사부님.”

곁에 있던 백자가 나서서 운현에게 인사를 올렸다.

“태사부라……! 너와 나는 문파도 다르지 않더냐?”

“하지만 사부의 사부이니 어찌 다르게 부르겠습니까? 사부님에게 현천기공을 전해주신 분이 태사부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무공이 이어졌으니 태사부인 것은 확실한 일이지요.”

백자가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답하였다.

“허허! 현천기공이라……! 익히지도 않은 무공으로 사승이 생겼구나.”

운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진건곤이 운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맥을 해보아도 되겠습니까?”

“부탁하마.”

운현은 진건곤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도 고루마군의 주구가 되었던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일 것이었다. 그건 자신도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진건곤의 영력이 운현의 몸속에 들어가 구석구석을 누볐다.

“이……!”

꺼림칙하고 칙칙한 기운이 운현의 몸에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 기운은 다 녹아 부스러지고 흩어져 그 본연의 기운을 찾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다시 지인이 강시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지라 아주 작은 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 몰아일여를 펼쳐 자신의 몸처럼 느껴가며 한참을 살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건곤이 더 이상의 노력이 소용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영력을 운현의 몸 안에 넣어 탁기를 태워 없애듯이 모두 소멸시켜 버렸다.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가일구층황금공과 광룡진천류(狂龍唇天瀏)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진건곤은 확실한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말을 흐렸다.

“정확한 인과는 몰라도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들이겠지. 마교가 환천삼보라는 말로 그것들을 세상에 퍼트리는 이유가 바고 그것일 테고 말이야.”

“마교의 마음대로 이지(理智)를 흩트리고 멀쩡한 사람을 강시로 만들어 부릴 수 있다면 아마도 커다란 혼란이 오겠지요. 바로 사부님처럼요.”

“그렇겠지.”

운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유를 찾아 제거하지 않는 이상, 마교를 찾아간다 하여도 또다시 고루마군의 주구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언제 강시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불안한 일.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의선께 물어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알지도 모르지요.”

“그래 그럴 수 있다면 좋겠구나.”

진건곤과 운현이 기꺼워하며 답을 하였다.

백자가 두 손을 모아 인을 맺고 진언을 외워보았지만 의선은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이고 공을 들여 다시 해보았지만 나타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오지 못할지도 모르신다더니 그렇게 되셨나보구나.”

진건곤과 운현은 의선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 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백자는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해 보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런 적이 없었는데……!”

백자의 노력에도 의선은 요지부동 강림하지 않으니 종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세 시진이 지나자 소군이 눈을 떴다.

“사…상공!”

휘익!

소군의 작은 음성에 진건곤은 순간적으로 움직여 소군에게 다가왔다.

“정신이 드십니까?”

이제 막 눈을 뜬 소군은 벌떡 일어나 진건곤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진건곤의 멀쩡한 모습을 확인하고는 안심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허물어지듯이 몸을 뉘였다.

“누님! 누님!”

힘없는 눈초리로 다시 눈을 뜬 소군이었는데 그녀의 손이 올라와 진건곤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다행이라는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소군의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한 달 전, 진건곤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목숨이 날아갔다 돌아온 줄도 모르고 자신의 일보다 진건곤의 안위가 먼저인 소군이었다.

“저…전 괜찮습니다. 누님.”

진건곤은 그런 소군이 너무나 안쓰럽고 고마워 눈물을 흘렸다.

한 달 만에 깨어난 소군의 존재는 너무나 고맙고 소중했다. 하물며 자신을 살리기 위해 대신 목숨을 버렸던 소군이고 보니 무엇보다도 더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누님! 먼저 몸부터 회복을 하셔야지요. 제가 돕겠습니다.”

진건곤은 소군을 조심스럽게 한 번 안아주고 나더니 손을 놓았다.

둥실!

소군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자연스레 가부좌를 취하게 되었다. 대단한 경지의 허공섭물이 펼쳐진 것이었다.

“상공……! 무… 무공이……?”

허공섭물이 지극히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소군은 진건곤의 무공이 크게 늘어난 것을 알아챘다.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될지는 몰라도 무공이 늘은 것도 누님 덕입니다.”

소군을 걱정하는 마음이 바로 어느 때보다도 더 절절한 안타까움이었다. 그 안타까움이 바로 측은지심의 발로였으니 진건곤의 영력의 근원이 더 깊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소군의 생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영력을 끌어올려 현천기공을 운용하기를 한 달 반을 지속했다. 어느 때보다도 더 깊고 정성스럽게 말이다.

진건곤은 소군의 등 뒤에 장심을 가져다 대었다. 그 뜻을 모를 리 없는 소군이 운기를 시작하였다. 허공에 떠 있는 두 사람이 운기를 시작하자 진건곤의 몸에서 하얀 서광이 흘러나와 둘을 감싸며 둥그런 구를 만들어내었다.

“하아! 원구현신! 대단한 사부로군요.”

백자가 그 모습을 보며 원구현신이라는 말을 하였다. 영력을 다루는 문제에서 원구현신이란 스스로 영력이 움직여 자신을 돌보는 경지를 말했다.

원령체로 나아가기 전의 단계로 스스로의 자각은 없으나 영성을 가지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이렇게 편안한 기운이라니……!’

소군은 진건곤의 손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운이 흘러 들어오자 놀라고 말았다.

그 기운의 양이나 정순함에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진건곤의 진기가 가진 성격에 놀란 것이었다.

진건곤의 기운은 참으로 따스하고 자연스러웠다. 너무나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움직여 타인의 기운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할 정도였다.

이미 소군의 몸의 일부는 진건곤의 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렇게 느끼지는 것이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소군이 진기를 인도하고 진건곤이 그 뒤를 받치는 식으로 운기조식에 빠져들었다.

소군의 운기조식은 며칠이나 계속되었다. 의선의 손길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이제야 생명을 건진 것에 불과했다. 예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동안 운현과 백자는 진건곤의 곁에서 호법을 보았으나 사실상은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운기 중에도 언제든지 멈추고 일어날 수 있기도 했고 원구현신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도 있는 진건곤이었기 때문이었다.

소군과 진건곤이 펼친 운기는 참으로 오래 걸렸다. 무려 십오 일이 지나고 나서야 눈을 떴을 지경이었다.

“세상에 벌써 십오 일이나 지났다고요? 그리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저도 그런 적이 있었지요. 몰아지경에 들었을 때 말입니다.”

소군 같은 무인이 몰아지경에 들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그전에 겪었던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던 것이었다.

“이토록 오래도록 몰아지경에 빠졌다니……! 그럼 무엇이 변했는지 봐야겠네요.”

소군이 검을 뽑아 들자 그녀의 검에는 일렁이는 백색의 빛이 서렸다.

“상공!”

소군은 일렁이는 백색의 빛에 놀라 이 진건곤을 불렀다.

자신의 검에 진건곤의 영력과 같은 힘이 일렁이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십만대산에서 싸움이 있고 나서 얼마나 흘렀다고 생각합니까?”

“…….”

소군은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진건곤의 말에 소군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님은 그때 저를 구하고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을 입었었지요…….”

진건곤의 입에서 운현과 소군을 챙겨 나오던 때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진건곤의 목소리가 절절해지고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소군도 역시 진건곤의 감정에 빠져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렇게 진건곤의 일행의 위급함이 마무리 되어가는 동안에 세상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신교, 정식 명칭으로는 조아로 교이나 중원의 이름으로는 천지신교인 신교의 등장이었다.

“크악!”

“아아아악!”

익숙한 음성이 지어내는 비명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수호위들의 비명이라면 더욱 그랬다.

“나리……! 무섭습니다.”

애첩이 자신의 뒤로 숨으며 머리를 처박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심난하기 짝이 없어 운남성의 성주는 굳은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찾아온 부하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바로 수호위들의 비명이 아니던가?

이미 자신의 권위로도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시작된 것이었다.

드르륵!

“성주님을 뵙습니다.”

“문국공이 여긴 웬일인가?”

만나고 싶다는 청을 거절하여 놓고도 모른 척 다시 물어보는 성주였다.

이미 수호위들의 비명을 들었으니 보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지만 괜히 아는 척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문국공의 양옆에는 도와 검을 들고 안광이 번뜩이는 고수들이 그림자처럼 따라 들어왔다.

그들의 흉흉한 안광에 성주는 절로 기가 죽고 말았다.

“성주님께 성교(聖敎)를 전하러 왔습니다.”

“자네, 신교의 제자였던가?”

문국공은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주는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눈을 감자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성교. 조아로 교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말한다.

성교를 받지 않으면 죽음을! 성교를 받으면 영생을!

성교는 황제를 부정하고 황족과 황권의 체계 자체를 부정했다. 황제에게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신 앞에 평등한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하라는 것이 바로 성교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더군다나 황제의 천자로서의 지위를 빼앗아 신의 사도라는 대공이나 대공녀에게 이전하지 않는가? 신의 사도라는 말을 하지만 황제가 볼 때는 반역이고 황권의 찬탈에 불과했다.

역대 황제들은 신교의 등장에 노발대발하여 신교의 그 자락 하나하나까지 발본색원하여 능지처참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리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성주는 성교를 받는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천지신교가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을 기도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교를 받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목이 떨어지고 말 것이었다. 바로 그 점이 무서웠다.

“내… 내가 무엇을 하게 되는가?”

문국공은 성주의 질문에 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주의 직위도 그대로요. 재산도 그대로 유지가 될 것입니다.”

“그… 그것이 전부인가……? 그럴 리… 가……?”

그것으로 끝이 날 리가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신교는 이런 집단이 아니었다.

“신교는 과거의 실패가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예전의 실패는 기득권의 반발이 문제라고 생각했죠. 하여 기존의 것을 많이 인정하고 시작하겠다는 대공녀님의 말씀입니다. 다만 직위는 세습되지 않습니다. 또한 일정한 기준을 두어 매년 성주님을 평가할 것입니다.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신교에서 그 지위에 어울리는 다른 사람을 찾아 대체할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그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분별에 어긋나는 일을 하였다면 그것을 추적하여 처벌할 것입니다.”

“내… 내가 성교를 받지 않겠다면 내 식솔들은 어찌되는가?”

“물어 무엇 하겠습니까? 굳이 대답한다면 성주님의 가족들은 성주님의 운명과 함께할 것이라는 정도지요.”

잠시간의 침묵 끝에 성주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바…받도록 하겠네.”

“진심으로 경하 드립니다. 성주님께서도 성교를 알게 되면 진실로 옳은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알겠네. 학문에 밝은 자네가 그렇다니 옳은 소리겠지. 자네를 믿겠네.”

성교를 받기로 정하자 성주를 바라보는 문국공의 눈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변하였다.

“나는 이제 신교의 사도로서 말을 하겠소. 지금처럼 나태하게 일을 한다면 일 년 뒤에 성주 직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요. 애첩의 진주 목걸이보다는 백성들의 울음에 귀 기울이기를 바라겠소.”

문국공의 싸늘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얼마 전 애첩에게 값비싼 보석을 선물하기 위해 세율을 바꾸었던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아하! 신교는 나를 환영하지 않는구나. 그저 잡음이 없이 인수인계를 하길 원할 뿐이야……!’

본래 타지 사람으로 발령을 받고 온 성주와는 다르게 운남성의 권문세족과 황족들의 집에서는 열에 아홉의 경우 성교의 가르침을 거부했다. 자신들이 기르고 있던 사병을 믿었던 것이었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혈풍이 일었다. 일방적인 도살이 펼쳐지고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이승을 떴다. 모든 것이 정리되는 데에는 겨우 반 시진 남짓도 걸리지 않았다.

마교의 무력은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개파하던 날에만 천여 개가 넘는 목숨이 사라졌다.

신교의 사도로서 문국공이 내세운 기치는 바로 만민평등(萬民平等) 일벌일상(一罰一賞)이었다.

모든 사람이 신 앞에 평등하며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벌과 상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지, 삼 일(三日). 운남성은 완전히 마교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점창파는 운남에 자리 잡은 도가의 일맥. 조용해야만 할 이곳 도장에 소란스러운 일이 만들어졌다.

“원시천존! 큰일이요.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요?”

“그러게 말입니다. 왜 하필이면 운남이냐는 말입니다. 바로 코앞에서 마교가 발호하다니… 이런 일이! 원시천존!”

“애초부터 독마군을 쳐내지 못한 죄가 아니겠소?”

장로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점창 제일의 무공을 지닌 선운 진인이었다.

일찍이 만독곡을 쳐내자고 주장하던 자였는데 장문과 대장로인 사제의 반대에 부딪혀 그 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마교가 만독곡을 그 근거지로 삼아 십만대산에 개파를 하자 날이 선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허허!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만독곡을 안 쳐낸 것이 아니라 못 쳐낸 것이지요. 십만대산이 어떤 곳입니까? 우리 손으로 가당키나 하겠습니다. 게다가 당가조차도 해독을 하지 못하는 독을 가진 곳인데 우리가 어찌 만독곡을 몰아낼 수 있었겠습니까, 사형? 능력 밖의 일이었습니다.”

“흥, 닥쳐라! 상대를 가려가며 만만한 상대하고만 싸우는 것이 도가의 가르침이더냐? 사천에 당가와 아미, 청성파가 있거늘 그들과 손잡아 일을 시작했다면 어느 정도의 피해는 있었어도 만독곡이 이곳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억조창생을 보살필 생각은 하지 않고 제 몸의 안위만 챙겨온 대가가 지금에 온 것이 아니더냐? 대대로 마교가 일어날 때마다 피해를 당한 것은 우리 점창이 아니고 어디더냐?”

“제 몸 하나 편하자고 한 선택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대로 된 해독약도 없는 상황에서 싸움을 벌인다면 어느 정도 피해에서 그칠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형!”

“일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교가 설치는 것을 그냥 지켜볼 셈이더냐?”

선운 진인은 사제의 말을 일축하고는 오늘의 안건에 대해서 말을 꺼내었다.

“사숙님께 의견을 여쭈려고 두 분을 모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점창의 장문은 두 사숙의 팽팽한 신경전에 기를 못 펴고 있다가 이제야 입을 떼었다.

장문의 시선이 먼저 선운 진인을 향했다. 어차피 장문과 대장로의 의견이 맞으면 선운 진인의 성질이 아무리 대단해도 일을 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전에 이런 식으로라도 조율을 하여 노여움을 줄여보고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장문과 대장로의 눈이 선운 진인의 입에 걸렸으나 신경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의 입에선 필시 싸우자는 소리가 나올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유도하여 구대문파와 동맹을 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는 것이 장문과 대장로가 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대장로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당연히 물러서야 한다.”

“아니 되옵니다. 당연히 물러서다니요. 절대로 싸워서는 안 됩니…….”

선운 진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장로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 원 참! 마교와 싸우자는 말이냐? 네놈 입에서 싸우자는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구나!”

“무슨 소립니까, 사형? 저는 당연히 싸우지 않아야만 한다는 말을 드리고 있는……!”

“허험! 허허험!”

장문이 헛기침을 하며 대장로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선운 사숙께서는 물러서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엇이……?”

대장로는 그제야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사형께서는 싸우자고…….”

“당연히 물러서야 한다고 말했지.”

대장로의 말을 선운 진인이 가로챘다.

“사형께서요?”

대장로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 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쯧쯧쯧! 이젠 사형 말이라면 덮어 놓고 반대하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이구나. 실망이구나! 원시천존! 원시천존!”

“사… 사형! 그… 그게 아니라. 안건이 안건인지라……!”

“닥쳐라. 이놈. 안이고 바깥이고 실망이구나.”

선운 진인의 말에 쩔쩔 맬 수밖에 없는 대장로였다.

장문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크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원하는 방향의 결정이 나왔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어쨌거나 물러서는 것으로 중지가 모여졌으니 다행입니다. 일단 점창은 물러나 구대문파와 연합을 하기로 하겠습니다.”

장문은 사숙들의 언쟁이 오가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바쁘게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장문의 행동을 막아 세우는 것이 있었다.

뎅뎅뎅! 뎅뎅뎅! 뎅뎅뎅!

“이런! 사숙께서도 서둘러 주십시오.”

장문은 짚이는 것이 있어 사숙들에게 소리치며 산문으로 경공을 펼치며 달려 나갔다.

한 걸음에 삼 장 여를 앞으로 치고 나가니 산문에 당도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이미 많은 제자들이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땅바닥에 널브러진 것을 보며 일갈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이 너희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네… 놈들이!”

장문인의 뒤로는 속속들이 도착하는 점창의 고수들이 떨어져 내렸다. 어찌나 빨리 달려 나왔던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중에 한 명은 아예 적들의 한복판에 떨어져 내렸다. 바로 상운 진인이었는데 착지하자마자 자신의 절기 중에 절기인 상절복마검을 펼쳐 적들을 베어가고 있었다.

상운 진인의 무공은 과연 점창의 일절. 삽시간에 검기가 가득 메워지고 적중에 한 명이 오체분시될 것만 같았다.

따다다당!

격렬한 격타음이 울리고 불똥이 튀었다.

사람의 몸을 베었거늘 불똥이라니? 게다가 상운 진인의 검에 검기가 실렸거늘 적들을 베지 못하고 상처만 입히는 것이 고작이라니 심상치 않은 문제였다.

“이놈들 강시로구나!”

반격해 오는 강시들 틈에서 급히 몸을 빼 점창의 고수들이 있는 곳으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하지만 적들에게는 딱히 상운 진인을 쫓는다거나 하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뒤쪽에서 유유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하하하! 점창엔 성격이 급한 도인들뿐이구나. 문지기도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싸움을 걸더니, 타종소리를 듣고 나온 고수라는 것들도 똑같은 꼴이라니!”

강시라는 말에 점창파의 고수들은 적들의 정체를 반쯤은 파악했다.

고루마군일 것이다. 아마도 만독군과 같이 마교에 투신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슨 소리? 찬찬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평유건만, 평유가 네놈들을 공격했단 말이더냐?”

“그렇다. 몇 마디 하기도 전에 검을 뽑더구나.”

“평유가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네놈들은 평유에게 무슨 말을 건네었더냐?”

상운 진인이 또다시 급하게 끼어들었다.

“허허허! 별 소리 안 했지. 오늘 점괘를 보니 하늘과 땅이 뒤집혀 점창의 장문이 점창의 문도들을 주살할 것이라는 소리밖에! 허허허허! 허허허허!”

고루마군의 소리에 점창의 고수들은 평정을 지키지 못하고 저마다 얼굴이 붉어져 올랐다.

“그깟 강시를 믿고 점창을 도발한단 말이더냐, 고루마군? 점창을 핍박하기에는 강시의 숫자가 너무 작구나.”

고루마군이 끌고 온 강시의 숫자는 겨우 30구였다.

상운 진인이 앞으로 나서자 또 다른 장로들도 앞으로 나섰고 장로 휘하의 문인들도 나섰다. 그들의 수효는 거의 삼십 명에 이르렀다.

강시를 상대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검기를 뿜어낼 수 있는 고수들이 목이나 다리를 베어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검에는 뿌연 연기와 같이 흐릿한 기운이 가득 서려 있었다.

“과연 점창이 새롭게 구파일방에 들어선 것이 운만으로는 된 것이 아니었겠군. 절정의 고수가 이리도 많단 말인가? 크허허허허허! 덕분에 거사가 쉬워졌지만 말이야. 크허허허허허!”

고수가 많은데 일이 쉬워졌다?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더 이상 신경 쓸 일은 없어 보였다.

“요망한 말을 들을 필요 없다. 돌아가야 할 곳으로 보내주자!”

선운 진인을 필두로 점창의 고수들이 검을 휘두르며 강시들에게 다가가자 강시들도 달려들어 싸웠다.

점창의 검이 현란하게 검광을 뿌렸지만 강시들은 뻣뻣한 두 손을 들어 목을 보호하며 싸웠다.

그들의 싸움은 잠시간 팽팽한 듯하였지만 선운 진인과 대장로를 비롯한 몇몇의 고수들이 몇 개의 강시들을 파괴하자 싸움이 급격히 기우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고루마군의 표정은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얄미워 장문은 소리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두! 도망쳐도 소용없다. 점창에 와 점창의 제자를 살해한 죄는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장문인이 소리치자 고루마군이 웃음을 터트렸다.

“장문은 무엇을 하는가? 어서 제자들의 피를 보지 않고?”

고루마군이 두 손을 쥐어 인을 맺고 진언을 외우자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일어나 장문의 몸으로 흡수되어 들어갔다.

“가거라!”

“말도 안 돼! 장문님을 막아야 하오. 장문을!”

검은 연기가 장문의 몸으로 스며드는 것을 보자 환천삼보를 찾으러 갔다 왔던 장로가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운현에게 벌어졌던 일과 똑같지 않은가?

하지만 이미 늦었다.

퍼억!

장문은 어느새 뻣뻣하게 굳은 손발을 휘둘러 좌우에 서 있던 자들의 가슴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왜……?”

장문의 손에 의해 가슴에 구멍이 뚫린 자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단말마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선운 너도 마찬가지니라!”

고루마군이 선운을 부르자 고루마군의 몸에서 일어난 검은 연기가 선운을 향해 날아갔다.

선운은 그 연기를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검은 연기는 순식간에 선운의 몸으로 스며들고 말았다.

“장문!”

그동안에도 장문은 손발을 휘둘러 어린 제자들의 목숨을 취하고 있었는데 점창의 고수들은 한순간에 펼쳐진 패륜의 현장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선운이 한차례 목을 흔들더니 선운도 역시 자신의 곁에서 강시와 싸우고 있던 장로의 목을 쥐었다.

뿌득!

한 수에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물러서라! 물러서!”

대장로가 사태를 확인하고는 앞장서서 수습하려 나섰다.

“클클클, 네놈도 예외는 아니지! 점창의 수뇌부들이 모두 점창의 무공이 아닌 것을 익히다니… 쯧쯧쯧! 말로만 도인이요. 강함을 위해서라면 사문도 버릴 놈들이로고!”

고루마군의 말에 또다시 검은 연기가 대장로를 덮쳤다.

방금까지도 점창의 문도를 정리하던 대장로가 강시처럼 뻣뻣한 손짓으로 주변의 문도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점창의 문인들은 모두가 패륜의 현장에 망연자실하여 사기가 꺾이고 말았다.

“물러서라! 물러서!”

차기 장문의 후보로 꼽히던 정진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사태가 정리될 리가 없었다.

장로들은 강시에게 손발이 묶여 있었고 장문과 대장로, 점창 제일의 고수는 모두가 강시가 되어 스스로 자신의 문도들을 살육하고 있었다.

점창에는 아비규환의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고루마군만이 크게 웃음을 지으며 광소를 터트렸을 뿐이었다.

“도망쳐라! 도망쳐!”

이미 승패는 갈라졌는데 젊은 제자들의 목숨을 아끼기 위해 강시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고수들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을 뿐이었다.

쾅!

“이런 나쁜 놈들이 다 있나? 개파식을 선언해 놓고 뒤통수를 치다니? 이런 일이 화산에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장의 주먹이 탁자를 내려쳤다.

마교는 점창의 일을 개파식을 앞두고 불안의 요소를 제거했다는 식으로 세상에 소문을 흘렸으나 강호무림으로서는 마교의 간악한 수단이 또다시 펼쳐진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화산도 역시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화산에서는 더 심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점창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무장으로서는 이빨이 갈리고 갈리는 소식이었다.

“어서 운현과 전진자를 처리해야 하는데… 행방이 묘연하니 처리할 수도 없고……!”

삐리리릭! 삐리리릭!

풀피리 소리가 들려오자 무장은 급하게 검을 집어 작은 새가 창을 빠져나가듯이 날아 빠져나갔다.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기뻐 한마디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운현! 드디어 네가 왔구나.”

화산은 운현을 잡기 위해 새롭게 신호를 만들어 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풀피리 소리였던 것이었다.

무장의 신형이 쏘아진 화살처럼 움직이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그림자들이 참으로 많았다. 저마다 무서운 경공을 보이고 있었다.

화산의 장로들이 모두 출동하는 모습은 장관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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