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40화 (40/61)

제6장

진건곤과 소군은 질풍개에게 도움을 청해 추적에 능한 개방도를 지원받았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급하게 서둘렀는데 다행히 수라비도라고 생각했던 흑의인이 남긴 족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따라오라고 만든 흔적처럼……!

추적을 거듭하면 할수록 족적의 목표는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마인들의 성지. 십만대산(十萬大山)!

“그자 무엇을 위해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한 것일까요?”

“화령신과 빙백신의 시신을 부리고 있었어요. 분명 고루마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십만대산이라니 고루마군도 역시 마교란 말일까요?”

고루마군의 근거지라면 운남의 근처에 있는 삽협곡이 아니었던가?

갑작스레 고루마군으로 보이는 자가 십만대산이라니, 마교 무리의 세력이 그만큼 커졌다는데 문제가 생겼다.

“십만대산이라면 우리끼리 가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누님.”

“하지만 상공이 찾아가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시간이라도 있다면 당가나 아미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그럴 틈도 없고요. 그럴 시간을 주었다가는 운현 진인이 진정 강시로 제련될 수도 있는 일이고 말입니다.”

소군의 생각은 운현이 일시적으로 사술에 빠져 있을 뿐, 강시가 된 것은 아니니 얼른 가서 구해내면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늦게 구하게 된다면 이미 죽어서 강시가 되어버린 화령신이나 빙백신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에게는 시간도 동원할 수 있는 무력도 너무나 적었다.

분타에 들어가 확인할 것이 있다던 개방의 방도가 돌아왔다.

마도의 근원지 십만대산은 언제나 감시의 대상이었으니 이미 흑의인들에 대한 조사가 되어 있을 터였다. 그 흑의인들이 십만대산으로 돌아간 것이 맞는다면 일일이 종적을 추적하는 것보다 더 빠를 수 있었다.

“십만대산이 틀림없습니다.”

“아미타불……!”

“원시천존……!”

소군과 진건곤의 입에서 연방 불호와 도호가 쏟아져 나왔다.

고루마군과 수라비도가 십만대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지금에는 운현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할까요?”

개방에서 붙여준 추적자였다. 그가 물어보는 것은 자신도 함께하냐는 말이었다.

십만대산은 당대의 마의 소굴이었다. 고루마군이 아니어도 어려운 상대였다.

그런데 삼협곡에서도 구파일방의 토벌대를 막아내었던 고루마군이 그곳에 있는 것 같았으니 가히 철옹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건곤이나 소군이라면 무위가 있어 탈출이 가능할지 몰라도 자신으로서는 홀로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개방도는 겨우 세 명으로 그곳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소군이 그 마음을 읽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끼리 가보겠어요. 길도 아는데 괜한 위험에 함께할 이유는 없겠지요.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소군은 그 자리에서 그와 이별을 말하고는 그대로 말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진건곤도 함께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운현이 걱정될 뿐이었다.

십만대산은 그 작은 동산같이 치솟아 오른 곳이 무려 십만에 이른다는 복잡한 산이었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을 지라도 첫눈에 보기에는 세기를 포기할 정도로 많은 봉우리들이 솟아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 지리적으로 복잡함을 이유로 대대로 십만대산은 마교의 소굴로 이용된 적이 많았다.

일시에 대군이 들이닥치기 어려웠기 때문에 숨어들기에는 최적인 장소였다.

십만대산의 입구에 들 무렵, 멀리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나 사람의 음성인 것은 확실하지만 무슨 소린지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멀리서 진력을 담아 소리친다면 이랬을까? 진건곤과 소군은 자리에 서서 그 소리를 귀담아 들었다.

“같이 가자!”

멀리서 가물가물 들려오던 소리는 바로 대무의 목소리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무와 같은 고수라면 당연히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

소군이 대무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였다.

“고맙습니다. 대무님.”

진건곤도 역시 고마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흥! 너무 고마워하지 마라. 어차피 소군을 위해서 온 것뿐이니까.”

대무는 투박한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불퉁거렸지만 누구를 위해서 왔건 간에 진건곤은 불원천리(不遠千里) 멀리서 달려온 그를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 개의 인형이 고루마군의 근거지인 십만대산의 성곽을 두루두루 살피고 다녔다.

바로 십만대산의 성곽의 빈틈을 찾아보려는 진건곤의 일행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움직인 삼인들이 다시 모였다.

“빈틈이라고 할 것이 없다. 그냥 치고 들어가는 수밖에.”

대무다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너무나 위험한 방법이었다.

진건곤과 소군의 얼굴에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먹물로 써서 붙인 듯이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대무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도 없고 게다가 우리는 운현을 구하러 가는 거지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자리로 우리가 기어들어 가야 하잖아. 바로 운현이 있는 곳으로 말이야.”

그 말이 전혀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어차피 운현을 미끼로 자신들을 기다린다면 그곳에 꼭 가야 하니까.

“해봐요. 어차피 시간이 흘러가면 우리가 불리할 뿐이에요.”

소군도 역시 동의하고 나섰다.

이래도 저래도 독보강호를 해도 될 만큼 강한 자들은 상식 밖의 짓을 할 때가 있었다.

이번에는 장소가 마교의 본산이라는 십만대산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멀어서 알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도해 볼게요.”

진건곤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현천기공을 운용하며 몰아일여로 빠져들었다.

몰아일여의 범위가 넓어졌다. 땅과 흙, 바람. 십만대산의 성곽을 넘어서서 그 땅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느껴졌다. 그리고 땅속에 무언가가 묻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진건곤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그것들과 하나가 되려고 했는데 그것들이 진건곤을 거부했다.

진건곤조차도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재차 시도했지만 그것들의 거부는 변함없었다.

다만 그것들이 제법 많다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무슨 짓이냐?”

대무는 시간을 아껴야 할 판에 운기조식에 들어간 진건곤이 어이가 없었다.

“오라버니. 상공은 곧 일어날 거예요. 토납법을 익히고 있으니까요.”

소군은 진건곤의 무공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어, 토납법이라고 말을 하였다.

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럼. 소문대로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단 말이냐?”

“네.”

“토납법으로 지금의 무공을 이루었다고?”

“네, 오라버니도 소문을 들어 아시겠지만 상공이 익힌 내공은 전진의 무공이에요.”

“허허……! 그것참……!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여겼거늘, 그 소문이 사실이라니……! 어찌 화산의 문도가 전진의 심법만 익혔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뜨는 대무였다.

“땅속에 무언가 묻혀 있긴 한데……!”

말꼬리를 흐리는 진건곤이었다.

“화약인가?”

대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화약이나 무기들이 의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상공! 고루마군이니 강시일 수 있겠어요. 빙백신과 화령신만 해도 강시니까요.”

소군이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고루마군이 있다면 분명 강시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도 땅속에 강시를 묻어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함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은 무인들이 모여 있고 땅속에 강시가 묻힌 것이 전부입니다.”

진건곤이 앞으로 발걸음을 내밀었을 때였다.

“소군!”

대무가 불렀다.

“왜요? 오라버니?”

“너 절대로 어설픈 자비를 찾아선 안 된다. 이곳은 그야말로 마교니까! 팔 하나 잘린 것쯤으로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혈을 짚어도 이혈대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들은 강호에서 보는 사파 정도가 아니다.”

“알았습니다. 아미타불!”

소군은 망설이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다짐을 하였다.

소군이 다짐을 하자마자 대무가 앞장서서 뛰어 갔다.

수없이 많은 병기와 암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잠잠했다. 무모함의 상징인 대무마저도 어색함을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삼인은 함정에 빠진다 해도 서로가 구해 줄 수 있을 만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를 등지고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끼이이익! 휘이이잉!

육중한 성문이 소리를 내며 양쪽으로 갈라지며 지옥의 문이라도 되는 양,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무인들이 가득한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운현이 두 손과 두 발이 모두 묶인 채,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다행이군요, 상공. 보이지도 않는 곳에 꽁꽁 숨겨 놓으면 어쩌나 했는데 말이에요.]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누님. 조심하세요.]

[상공도요.]

서로를 생각하는 안부가 오고가는 사이 내공이 실려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클클! 왔느냐?”

복면 따윈 벗어 버린 지 오래인 늙은이가 있었다. 목소리로 보아 고루마군이라고 추정하고 있던 자.

그 옆에 서 있던 자가 한마디를 툭 뱉어냈다.

“미련한 것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는지.”

체형으로 보아 수라비도라고 추정했던 자였다.

“흥! 어디긴 어디냐? 죽어 마땅한 마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 모조리 쳐 죽이고 말겠다. 오늘 다 죽은 줄 알아라!”

대무는 수없이 많은 흑의인들을 바라보면서도 기가 죽지 않고 소리쳤다.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두 조심해라. 함부로 중앙에 들어가면 안 된다. 철저하게 외곽으로 돌아 헤집어 두어야 한다. 운현을 단박에 구할 수 있을 만한 빈틈을 만들기 전에는 절대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대무는 이런 싸움에 익숙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싯적에 산채 하나를 박살냈든지, 중소문파 하나를 뒤집고 다닌 적이 많았던 인물이었다.

진건곤과 소군은 많은 무인들에 둘러싸여 긴장한 상태였다. 아무리 고수라고 한들 십만대산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갈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와 반대로 대무는 여전히 당당하게 소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클클클! 천하의 대무라면 그런 소리를 할만도 하겠지. 하지만 그건 나 고루마군이 없는 곳에서나 통할 말. 오늘 어리석은 자들의 말로를 보여주지. 클클클클!”

고루마군은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어간다는 냥, 웃음을 지었다.

“흥! 네놈이 고루마군이든 뭐든지 간에 사부를 건드린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네놈의 목은 반드시 내가 따주지!”

조용히 있던 진건곤이 돌연 앞으로 치고 나가며 소리쳤다. 마인들도 역시 만만치 않은 무공을 가지고 있었는지 진건곤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하여 병장기를 맞부딪혔다.

까아앙! 까앙!

드디어 싸움이 시작되었다.

소군과 대무도 역시 앞으로 나서니 광장은 무인들의 출렁이는 물결로 파도치기를 시작하였다.

진건곤은 긴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내력이 적게 들어가는 화력직검의 쾌검식을 사용하며 날카롭게 기세를 세워 들어갔다. 진건곤은 나름대로 깊게 들어가는 듯하면서도 일정한 깊이가 되면 뒤로 방향을 틀어 나오기를 반복했다.

이미 진건곤의 무공은 구파일방의 장로들의 수준을 넘어섰는데 마인들은 간단하게 쓰러지지는 않았다. 진건곤의 칠 성의 무공에도 열에 다섯 정도는 화련직검의 쾌검식에 반응하며 병장기를 맞부딪혀 왔다.

가장자리를 유지하라는 소리를 했던 대무는 오히려 깊게 들어가 싸우고 있었다.

그는 내공에 제한을 받지 않기라도 하는 듯이 초반부터 무력을 발휘했다. 검을 휘두르기를 창을 휘두르듯이 하면서 여러 명의 인물들을 동시에 제압하고 있었다.

마인들은 그의 검을 막았다고 해도 그 경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버렸다.

소군의 검은 그야말로 무적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천수불영검은 바로 이런 때 써먹는 검법이라도 되는 것이었을까?

가닥, 가닥으로 나온 섬세한 기운이 주위를 모두 지배하고 있었다. 검이 움직일 때마다 실과 같은 기운들이 뻗어 나오더니 주위를 감싸는 무인들이 딱딱하게 굳어 버려 그 자리에 나무 조각이라도 되는 듯이 쓰러지고 말았다.

무대의 걱정대로 소군은 마인들의 목숨을 끊어내지 못하고 마혈을 짚는 것으로 끝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검기점혈과 같은 상승의 수법을 쓰고 있었기에 좀처럼 풀어낼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소군의 측은지심은 마인들을 향해서도 변함이 없었다.

‘쯧쯧쯧!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너답지 않다고 하겠지.’

힐끗거리며 소군을 본 대무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클클클! 애송이! 나를 강시놀이만 하는 노인이라고 생각하나 보군. 겨우 그 정도의 무공으로는 내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 클클클클……!”

장내를 지켜보던 고루마군이 내뱉은 말이었다.

“하하하하! 늙은이 설마 이게 내 모든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진건곤은 싸움을 하면서도 여유로운 목소리로 고루마군의 말에 맞받아치고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제각각 진퇴를 거듭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잘해 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가자 고루마군의 얼굴이 제법 진지해졌다.

“생각보다 피해가 큰걸!”

“이러니 저러니 해도 중원 최강으로 손꼽히는 자들이니까 말이오.”

수라비도가 말을 받았다.

“클클클! 클클클……!”

고루마군이 즐거운 듯이 웃음을 지었다.

“흥! 저들을 강시로 부릴 생각을 하니 즐거운 모양이요.”

“클클클! 즐겁지. 즐겁고말고. 저들을 상처 없이 잡을 생각으로 이곳에 들이게 한 것이니까. 흐흐흐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볼 생각이라네.”

고루마군이 손을 비벼대며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 표정을 지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또다시 동굴에서처럼 손을 움직여 수인을 맺더니 진언을 외워대기 시작했다.

푸확! 푸확! 푸확!

광장의 곳곳에서 흙이 솟구치듯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손 하나가 솟아 나와 삼인의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흥!”

진건곤은 콧소리를 내며 그 손을 피해나갔다.

이미 땅속에 강시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으니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인들의 공격과 땅에서 솟구치며 일어나는 강시들의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지자 제법 정신 사납게 검을 떨쳐내며 그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소군과 무대도 역시 미리 알기라도 한 듯이 수월하게 피해내자 수라비도가 웃음을 지었다.

“오호! 강시라면 기척도 없어서 눈치 채기 어려웠을 텐데. 제법이군! 저 꼬맹이 짓인가?”

수라비도의 웃음에는 고루마군을 비웃는 듯한 마음도 함께 서려 있었다.

그것을 모를 고루마군이 아니었다. 자신도 역시 내심 땅속에 묻어둔 강시들에 저렇게 태연한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클클클! 기척 자체가 없는 강시건만 그것을 알아챈단 말인가?”

의문에 찬 표정을 하더니 곧 스스로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소군도 저 꼬맹이에게 무언가를 보았으니 몸을 맡겼겠지.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 아직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가랏!”

고루마군의 뒤에 서 있던 강시들이 광장으로 쏜 살같이 날아갔다.

날아가듯 뛰어오는 강시들을 보며 진건곤과 소군이 놀라고 말았다.

강시들도 복면을 쓰지 않았는데 화령신과 그의 수하들. 빙백신 등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용병제와 태상제 등도 그곳에 함께 날아들었다.

“이 악마 같은 놈들!”

이미 알고 있던 자들이 강시로 변해 공격해 오는 모습을 보자 긴건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건곤은 공력을 더 끌어올렸다. 검에 백광이 일렁였다.

검이 움직일 때마다 피가 튀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십이면 십. 쳐내는 검마다 피를 부르고 있었다. 화련직검의 검광이 번뜩이기만 하면 주위를 감싸고 있던 무인들이 모두 비명을 흘리며 쓰러졌다.

전력을 다한 진건곤의 검은 소군에는 미치지 못하나 대무의 무력과 비슷했다.

거칠 것 없는 힘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진건곤이었다.

진건곤의 기세가 확 변하자 마인들은 잠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오호……!”

멀리서 그 광경을 본 수라비도의 눈에 관심이 서리고 입이 열렸다.

“강기(剛氣)……?”

강기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진건곤의 검에 머무른 백광은 온전한 강기는 아니었다. 내공과 영력(靈力)이 섞여 만들어진 힘이었다.

굳이 말을 한다면 상천의 힘. 진력의 힘이요. 영력의 힘이었다.

고루마군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강기의 힘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저건……!”

고루마군은 진건곤의 검의 솟은 일렁이는 백색의 빛을 보면서 강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의 정확한 정체를 판단하지 못하고 골똘히 보고 있었다.

마인들이 진건곤의 기세에 눌려 뒤로 물러서자 잠시간의 틈이 생겼는데 그 틈으로 땅속에서 일어선 강시들이 그곳에 모여들었다.

“상공!”

“전진자! 돌아와라!”

소군이나 무대가 앞으로 치고 나가는 진건곤을 보면서 경호성을 지르며 다가왔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강시들에게 둥그렇게 둘러싸여 버린 진건곤이었다.

“클클클! 버릇없는 꼬맹아, 먼저 가라! 클클클!”

고루마군은 전진자를 향해가던 화령신과 빙백신, 용병제와 태상제 들의 강시들을 불러들였다.

땅속에서 나온 강시들만으로도 충분히 진건곤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루마군의 강시들은 일반적으로 도검이 통하지 않았다. 검기나 도기를 끌어올려도 관절의 부분을 노리지 않는 이상 쉽게 파괴할 수 없는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절정의 고수들이 검기를 사용하고도 특정한 관절과 같은 부위를 노려야 한다면 그 싸움은 상당히 힘들어진다.

더군다나 강시들의 수가 더 많다면 여러 손발을 당하기 위해 바쁘게 검을 놀려야 하므로 그렇게 노려서 싸움을 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과거 구파일방의 척마대가 고루마군의 근거지를 노리고도 실패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삼인 중에 가장 약한 공력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진건곤이라면 강시들의 틈에서 끝없는 수렁과도 같은 발악을 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건곤도 역시 강시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는지라 잔뜩 긴장을 하고는 화산의 쾌검식 화련직검을 시전하였다.

번쩍이는 검광이 쏟아져 나오며 진건곤의 주위를 감싼 강시들을 일시에 치고 나갔다.

퍽! 퍽! 퍼억!

스스스! 스슷!

놀라운 일. 진건곤의 검에 맞은 강시들이 순식간에 모래로 변하며 그 형체가 부서져버렸다.

“이런……!”

그 싸움을 냉소적으로 보고 있던 수라비도조차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앞으로 치고 나왔다.

고루마군의 강시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호의 전설 중에 하나인 천수불영검을 완성한 소군이라면 모를까, 대무라도 저렇게 쉽게 강시를 박살낼 수는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강시가 너무 쉽게 깨어지고 있었다.

마치 바닷가 모래로 만들어 놓은 인형처럼 검이 지나가면 부스러지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빌… 빌어먹을 영력(靈力)이구나! 상극이야! 혼마대는 살형추진을 펼쳐 꼬맹이를 쳐랏. 투마대는 살형주진으로 뒤를 받치고. 거마대는 살형투도진을 써라!”

고루마군의 눈이 찢어질 듯이 홉떠지고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진건곤이 사용하는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된 후부터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잔뜩 긴장해서 움직였다.

마인들의 중앙에서 전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 창과 암기 등이 진건곤을 향해 날아들어 갔다.

미처 진건곤의 곁을 벗어나지 못한 마인들이 있었으나 그것은 개의치 안고 공격을 하고 있었다.

진건곤의 검이 백광으로 일렁이고 허공을 긋자 허공에는 백광으로 만들어진 그물이 만들어졌다.

허공에 만들어진 그물에 병기와 암기들이 걸려들고 그대로 땅에 떨어져 내렸다.

진건곤을 향해 모여드는 마인들의 포위망은 그 사이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마도 살형추진을 이루는 혼마대였을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고루마군은 곧바로 손을 모아 수인을 맺고는 다시금 진언을 외웠다.

땅속에서 나왔던 강시들이 진건곤의 주위를 벗어나더니 소군과 대무에게 다가섰다.

하지만 소군과 대무는 역시 강호를 울리는 강자!

강시들이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소군의 검은 여전히 예리하게 춤을 추며 강시들의 관절을 잘라내었고 대무의 검에 맞은 강시들은 처박혀 날라 갔다.

땅속에서 나온 강시들은 전날에 소군이 만났던 화령신과 빙백신의 강시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해 그리 전세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하하하! 역시 강자들이 모이니 다르군요. 강시들이 저렇게 맥을 못 추는 상황은 처음 봅니다.”

수라비도가 웃음을 지었다.

강시들이나 부려 약한 것들이나 상대한다는 비아냥거림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고루마군은 그런 수라비도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언이 계속해서 외웠다.

화령신과 빙백신 등의 강자들을 제련해 놓은 강시들이 소군을 노리고 날아들어 갔다.

“신교천하 득 신세계!”

고루마군이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며 전 공력을 끌어 모아 건곤일척의 기세를 가지고 진건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수라비도도 역시 진기를 잔뜩 끌어올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대무와 소군도 역시 고수 중에 고수. 전체적인 판세를 볼 능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고루마군과 수라비도의 쇄도를 놓치지 않았다.

소군의 검에서 백색의 섬광이 피어올랐다. 소군의 앞길을 막는 것들에게 쏘아졌는데 그 섬광에 닿은 것들은 강시든 마인이든 산산이 갈라져 버렸다.

소군의 검에는 한 점의 측은지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최고의 위력을 가진 청수불영검이 백광의 형태로 쏘아져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는 것들을 말 그대로 분쇄하고 있었다.

화령신과 빙백신 등의 강시들조차도 그 백색의 섬광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과연 천수불영검이 대대로 검후의 무공으로 이어져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무도 역시 엄청난 기세를 피워 올리며 날아들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대무가 가장 먼저 진건곤의 곁에 날아들었다.

대무가 살형추진, 살형주진, 살형투도진 등의 겹겹이 쌓인 진을 뚫고 들어갔지만 그들은 다른 강자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하였다.

오직 진건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옆의 동료가 대무의 검에 죽어나가도 그따위 일에는 한 치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살형추진을 이루고 있던 자들은 진건곤에게 달라 들었다. 말 그대로 달라붙었다.

무공이 아니었다. 무조건 몸으로 들이미는 행위. 그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 위로 쏟아지는 병장기와 암기의 세례들, 자신의 몸이 꿰뚫리게 생긴 상황이었지만 그들의 관심은 오직 진건곤의 움직임을 방해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건곤의 몸에 닿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진건곤의 검이 더 빨랐다. 그들이 진건곤에게 다가가기 전에 검광이 스치듯 지나가자 반으로 잘려 그대로 지면을 굴렀다.

그런 자들이 모두 열둘이나 되었다. 그들이 쓰러짐과 동시에 자연히 그들의 몸 뒤에서 솟구치듯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암기들.

진건곤은 이미 그 기운들을 느끼고 있었기에 연결식으로 바쁘게 허공에 그물을 그려냈다.

무량망회!

그물에 빨려드는 암기들. 과연 절검이 자신의 최고 절기로 전해준 심득은 대단한 것이었다.

무량망회의 그물에는 모든 것이 빨려들었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진건곤에게 쇄도해 달려드는 자들이 있었다.

거의 동시에 이 모든 일이 다 벌어지고 있었다. 매우 짧은 순간의 시간 차를 가지고 벌어지는 사생결단의 순간이었다.

암기를 타고 날아드는 듯한 시간을 맞춘 자들이 그대로 도를 들고 찔러 들어왔다.

그들은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오직 도를 찔러 넣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수비 따윈 일절 없었다. 바로 동귀어진. 마지막의 살형투도진은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세 번이나 연달아 펼쳐진 진법. 잘 짜인 시간 차에 그들의 몸은 이미 진건곤의 신형에 바짝 다가가 있었다.

그 앞에서 무려 열둘이나 되는 자들의 동귀어진의 진법이 진건곤에게서 틈을 만들어내었다.

“큭!”

가히 진건곤이라도 일 검에 그들을 모두 다 베지 못할 순간이 만들어졌던 것이었다.

진건곤의 검이 어느 때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였지만 다섯 명을 베어 갈 때쯤에 그들의 검이 진건곤을 베어가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번쩍!

푸화화악!

뒤쪽에서 날아온 섬광이 그들을 산산조각으로 분쇄하며 날려버렸다. 어느새 따라붙은 소군의 천수불영검이 만들어낸 검광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右)!”

소군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쐐애애애액!

엄청난 두 줄기의 경력이 진건곤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수라비도의 일수광거혼백(一手狂祛魂魄)이 왼쪽에서 빛처럼 번쩍거렸다. 전력으로 펼쳐지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알려진 일수광거혼백의 거력이었다.

무림의 전설 중에 한 가지가 진건곤의 심장을 노리고 섬전처럼 꽂혀 들고 있었다.

아울러 고루마군의 손에는 묵령조강이라는 독문무공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은 조강이 넘실대며 진건곤을 노리고 있었다.

진건곤은 이미 진법을 겪으며 흐트러진 상태.

이미 날아들고 있는 절대 강자의 비도와 조강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막아낸다고 해도 최소한 중상을 입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

번쩍!

소군의 검에서 토해내진 섬광이 수라비도의 엄청난 경력과 맞부딪혀 가고 우측에서 불쑥 나타난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대무.

순간적으로 나타난 듯한 그의 검이 백색의 강기를 뿜어내며 고루마군의 조영을 막아가고 있었다.

“헛!”

하지만 진건곤의 경호성이 터져 나오고……!

퍼억!

진건곤의 신형에 조강이 꼽혀들었다.

피윳!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놀랍게도 고루마군의 조강을 막아가던 대무의 검이 방향을 틀어 심장을 노렸던 것이었다.

배신! 대무의 배신이었다. 대무와 같이 강호에 명성이 높은 자가 배신을 할 줄이야. 세상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순간.

진건곤은 기겁을 하며 가까스로 검의 방향을 바꾸어 대무의 검에 맞부딪혀 갔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파앗!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가슴이 크게 벌어져 속이 다 보일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루마군의 흑색 조강이 곧 진건곤의 머리를 부숴버릴 듯이 쇄도하고 있었다.

“안 돼!”

소군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고의 고수는 소군이 틀림없었지만 지금 이순간은 무력하기만 했다.

오직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인 일수광거혼백. 그 기이할 정도로 극단적인 비도의 수법은 장내의 최고수였던 그녀의 중심을 무너트려 뒤로 물러서게 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는 이미 검을 뻗는 것이 늦었다는 것을 알고는 진건곤을 잡아당기며 감싸 안았다.

소군의 등으로 희미하게 흰 빛이 일렁였고 고루마군의 조영은 그대로 소군의 등에 꼽혔다.

텅! 터더덩!

진건곤과 소군의 몸은 허깨비라도 되듯이 날았다.

툭투둑… 치이이이이!

아주 먼 거리를 날아 땅바닥에 끌렸다.

머리는 풀어져 봉두난발이 되었고 온몸에는 피투성이로 범벅이 되었다. 바닥을 끌며 의복마저 찢겨져 완전히 초라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터더덕!

일수에 탈진한 수라비도를 제외하고 고루마군과 대무가 그들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대무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군! 오라비를 용서해 줘라! 나를 위함이 아니다. 이건 신세계를 위한 길이다. 단 한 번만 피를 흘리면 이 악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단 말이다.”

대무의 눈에는 사심이 없었다. 자신의 길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신념의 눈이었다.

소군을 내려다보던 신념의 눈이 차츰 일렁이며 눈물을 자아냈다. 자신이 좋아했던 유일한 여인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눈물이 가득한 눈과 번쩍 치켜든 피가 묻은 검. 그것들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대무의 검이 서서히 내려와 소군의 심장을 찔러가려 했다.

이미 죽음이 정해진 진건곤과 소군이었다.

가슴이 쩍 벌어지고 심장에서 뜨거운 선혈이 허공에 품어진 진건곤과 상반신의 일부가 모조기 뜯어져 나가 헐떡이는 소군. 차라리 죽여주는 것이 자비일지도 몰랐다.

차갑게 식어가는 육체였지만 소군의 비참함이 진건곤의 눈에 들어왔다.

장내의 최고수이면서도 자신을 감싸며 목숨을 내어놓은 소군. 그런 소군의 모습이 너무나 비참해 보였다.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깊은 곳에서 아주 진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뜨거웠다.

불에 덴 것 같은 뜨거움이 가슴에서 피어올랐다.

아픔이 아니었다. 억울함도 아니었다. 진건곤의 가슴에서 피어오른 감정은 안타까움. 바로 소군을 향한 마음이었다.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부족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고 죽어가는 소군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비로소 진건곤은 측은지심을 이해했다.

가슴속을 울리는 절절한 아픔. 누군가가 그토록 불쌍하다고 느껴 본 적은 없었으나 지금 이 순간 평생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는 측은지심이 진건곤에게 찾아들었다.

화악!

눈앞이 밝아졌다. 눈을 뜰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빛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찾아들어 왔다.

진건곤의 손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투확!

순간적으로 번쩍거린 검광에 대무의 심장을 꿰뚫리고 선혈이 터져 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고루마군이 화들짝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가까운 곳에서 본 고루마군이었지만 한눈에 사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우우우웅!

어느새 허공을 돌아온 검은 떨어지지 않고 진건곤의 신형 위에서 몸을 떨며 검명을 토하고 있었다.

검첨이 살아 있는 것처럼 고루마군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에 고루마군은 섬뜩함을 느꼈다.

대무의 가슴에 구멍이 나는 순간, 검의 움직임을 전혀 따라잡지 못했었다.

검이 또다시 움직인다면 꼼짝도 못해 보고 목숨이 떨어져 나갈 판이었다. 가슴속에서 공포가 피어오르고 몸이 떨려왔다.

문득 붉은 선홍빛이 검을 비추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내려 보았는데 진건곤의 가슴에 상처에서 핏빛으로 붉은 선홍빛이 일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진건곤의 몸이 서서히 떠오르더니 붉은빛 속에서 상처가 저절로 아물어가며 사방으로 광채를 뿜어내었다.

이적(異績)! 기적(奇績) 같은 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빌어먹을!”

고루마군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낮추고 바닥을 기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행히 진건곤의 검은 사납게 검명을 울리고 있을 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고루마군은 조심스레 수인을 맺고 소리 낮춰 진언을 외웠다.

두두두두두!

장내의 강시들이 모조리 달려들었다. 이미 나와 있던 강시뿐만 아니라 땅에서 새로운 강시들이 솟구쳐 나오며 진건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악!

검광이 번쩍거리고 폭음이 터져 나왔다. 검이 움직이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공기가 울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콰아아아악! 퍼버버버버버벅!

굉음 속에서 강시들이 일제히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시작한 모래먼지가 한순간에 장내에 가득 찼다.

검광이 번쩍일 때마다 스무 개 이상의 강시가 터져나가며 흙먼지로 변하고 말았다.

콰아아아악! 퍼버버버버버벅!

굉음과 기이한 음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한순간에 무려 일천여 구에 가까운 강시들이 모래로 변하고 말았다.

시대의 강자로 마교 최강의 무력인 팔극사의 일인으로 군림하던 고루마군은 그 장면에 경이와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 한순간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무력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평생에 걸쳐 모아온 강시들이 눈앞에서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최악의 흉몽(凶夢)이었다.

고루마군의 최강의 강시였던 화령인과 빙백신의 강시마저도 진건곤의 검이 비행(飛行)을 것을 한순간도 막지 못했다.

그저 스쳐 지나간 것만으로도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아아아악!”

고루마군은 미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진건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진건곤은 영력을 다스린다. 영력을 쓰는 자는 강시의 천적이었다. 처음의 느긋한 심정이 바뀌어 일순간에 몰아쳐 진건곤을 없애려 한 것에는 그런 위기감이 있었던 것이었다.

극사이며 동시에 처사의 역할까지 함께했던 대무의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진건곤을 없애려 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강시를 상대하던 검이 백색의 빛을 일렁이며 허공에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는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스팟!

백색의 빛이 일렁이고 어느새 고루마군의 전면에 나타났다. 그리고 허공에서 붉은빛에 감싸여 누워 있던 진건곤의 신형이 곧바로 세워졌다.

번쩍!

진건곤이 눈을 뜬 순간 신광이 장내에 번뜩였다.

고루마군은 진건곤이 눈을 뜨자 더 이상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화령신과 빙백신 등의 강시를 잃었을 때 복받치는 감정에 앞으로 나섰으나 진건곤이 신광을 번쩍이며 눈을 뜨자, 또다시 공포가 느껴졌던 것이었다.

영력은 강시공과는 극성의 관계,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꼼짝을 못하게 된 것이었다.

“누님!”

진건곤의 다급한 목소리가 소군을 찾았다.

소군은 이미 이지를 상실했고 곧 생명의 빛이 꺼질 것처럼 불안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소군의 등판에는 깊게 파인 조강의 자국이 있었다. 살이 떨어져 나가고 등뼈가 부서져 상반신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이미 생명이 끊어졌어야 할 상처.

뛰어난 무공으로 다져진 생명력이 아주 잠시간 생명을 더 붙들어 놓았을 뿐이었다. 지금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었다.

고루마군의 조강에 맞을 때, 소군이 등 쪽으로 일시에 기운을 모아 호신강기와 같은 효과를 보기를 원했지만 호신강기가 처음 시도하는 것으로 펼쳐질 리가 만무했다.

그나마도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아직까지 숨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진건곤의 손이 소군의 손을 잡았다. 진건곤의 손에서 일어나 백색의 일렁임이 소군에게로 넘어갔다.

소군의 몸에 백색의 기운이 서리자 덜덜덜 떨리던 몸의 경련이 가라앉고 소군의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진건곤은 그런 그녀가 못내 불쌍하기만 하였다.

“누님! 포기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 포기하면 안 돼요.”

진건곤의 몸에서 둥근 막이 피어올라 두 사람을 감쌌다.

이제껏 진건곤의 곁에서 허공에 떠 있던 검은 스스로 움직여 광장의 중앙에 있는 운현을 묶어둔 줄을 끊었다.

운현은 두둥실 떠올라 검과 함께 날아 진건곤의 곁으로 날아들었다.

가히 삼십 장이 넘게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진 허공섭물이었다.

운현의 몸이 둥근 구체의 안으로 들어가자 진건곤의 신형이 그대로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모습이 까마득하게 사라지는데 촌각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네놈, 기다려라! 누님이 직접 네 목을 베러 갈 것이다. -

고루마군은 음성이 아닌 마음속에서 울리는 뜻을 들을 수 있었다. 쥐가 고양이 울음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처럼 경련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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