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39화 (39/61)

제5장

그렇게 앞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또다시 여러 개의 함정들의 흔적들을 보았는데 그곳마다 핏자국과 화골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조금 더 나아가니 수많은 길들이 합쳐진 곳이 나왔다.

이어지는 길들이 참으로 많아 입구에서부터 들어오는 길이 모두 그곳으로 모인 것 같았다.

“미로진이군요. 저길 보십시오. 동굴의 벽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진건곤이 지적을 해내었다.

소군과 일행들이 그 길을 바라보더니 놀라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한참을 쳐다보니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아! 이곳에서 바라보니 알 수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모르겠습니다.”

일행 중의 하나가 말을 꺼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렇게 대놓고 움직이는 것을 보여줄 정도면 자신이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저곳에는 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일행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미로 안에서는 아무런 함정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미로 자체가 벗어나기 어려운 훌륭한 함정이었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진건곤의 활약은 대단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길을 혼자서 열었다.

잠시간의 운기만으로도 몰아일여의 깊이에 들어 나아갈 바를 찾아내고 있었다.

“삼십 장과 십오 장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진건곤은 마치 눈으로 보기라도 하는 양, 사람들이 있는 곳을 집어내었다.

일행들은 신기했지만 이미 진건곤의 능력에 의지하여 함정을 통과했었다.

그들은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소군이 진건곤의 말에 따르고 있었으니 아무도 의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진건곤이 가리키는 곳마다 소군이 구멍을 뚫었다.

“이쪽입니다.”

진건곤은 간혹 가다가 우습게도 뒤로 돌아가는 구멍을 뚫기도 했는데 소군은 시키는 대로 묵묵하게 들어주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그 모습에 일행 중 하나가 물음을 던졌다.

적어도 일류고수라면 방향감각 정도는 있었으리라. 도저히 진건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소인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방향입니다. 그쪽이라면 이미 지나온 길이 아닙니까? 그럴 것 같았으면 애초에 이곳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낫지 않았습니까? 소인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면 하교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질이 급한 자가 나서서 입을 열었지만 뒤돌아보니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이제껏 앞으로만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틀림없습니다. 소인이 과민한지라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금을 그으며 앞으로 따라왔습니다. 이번에 잡으신 방향이 그 금을 다시 돌아가는 형국인지라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질문을 던진 자가 다시 나섰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라도 확인한 바가 있었으니 나섰으리라.

“금을 그은 방향이 그대로 앞을 향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하면 우리가 긴 통로에 들어섰다고 생각하십시오. 만일 누가 바깥에서 긴 통로를 통째로 들어 돌려놓는다면 선을 그어가며 간다고 해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일행은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모르게 그런 짓을 벌이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일행 중에 절정고수로 꼽히는 자가 입을 열었다.

“능력은 뛰어나지만 길을 잃고 앞에 모여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겠지요. 곧 그분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진건곤이 하는 말은 분명했다.

내놓으라 하는 고수들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일행이 길을 뚫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일행들은 또다시 조용히 입을 닫았다.

진건곤은 말을 마치자 또다시 운기를 하여 방향을 정했고 소군이 길을 뚫었다.

말이 있고 난 후 일곱 번째 동굴 벽을 뚫을 때였다.

“소리를 지르겠소. 귀를 막으시오.”

진건곤이 공력을 끌어올려 벽을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뒤로 물러서시오. 벽에 구멍을 뚫을 것이오.”

잠시 뒤에 진건곤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군이 동굴 벽에 구멍을 뚫었다.

“누구시오?”

경계심 섞인 말을 하던 자는 급하게 태도를 바꾸어 인사를 하였다.

“무당의 부운이 소검후를 뵙습니다.”

“곤륜의…….”

“청성의…….”

소군을 향한 인사가 줄을 이었다.

함정의 길을 빠져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나절 정도의 수고가 있었으나 미로에 빠져 헤맨 지가 이미 이틀 반이었다.

뾰족한 방법도 찾지 못하고 자리를 헤매 지쳐 있는 입장에서 그만한 고수가 자리를 들어냈으니 기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일단 뒤를 따라 주십시오. 또 다른 일행도 구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진건곤이 앞으로 나서며 한곳으로 가더니 또다시 동굴 벽을 가리켰다.

소군의 검이 하얀빛을 토해내며 동굴의 벽을 단박에 부숴내었다.

“원시천존! 경하 드립니다.”

“무량수불! 아미에 숙원이 풀렸군요.”

“허허허!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능히 검후라고 불러드려야겠습니다.”

역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인물들은 소군의 검이 뿜어내는 흰빛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천수불영검이 십 성에 도달하면 일시에 천 개의 검리(劍理)를 담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수많은 검광이 겹쳐 하얀빛의 덩어리로 보인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알아본 것이었다.

강기가 아니면서도 강기 못지않은 위력을 보인다는 신비의 무공. 한 번에 천 가지의 검리를 받아들이는 불법의 자비와 여성의 포용력이 만들어내는 현묘한 무리가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껏 같이 했던 일행들은 놀라고 말았다.

“이런……!”

그 탄식에는 전설의 무공을 보고도 알아볼 수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담겨 있었다.

“아아……! 천수불영검이 저런 것이었구나!”

반나절을 함께하고도 소군의 사용한 무공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었던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또다시 그렇게 여러 개의 동굴 벽을 뚫어내더니 또 다른 일행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미타불! 소검후를 뵙소이다.”

“종남의……!”

“청성의……!”

또다시 먼저 간 일행들과 합류를 하였다.

“이제 화산의 일행을 찾을 차례인가요?”

무당의 대표가 진건곤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그분들은 이미 미로를 벗어난 듯합니다. 여러분을 구했으니 이제 저희도 미로를 빠져나가야지요.”

“아하! 그렇습니까.”

화산의 일행에는 제갈신유가 있었다. 그의 진법에 대한 지식이라면 이런 진법을 벗어날 수 있었을 터!

‘허허허! 예전 같았다면 제갈세가의 인물은 소림이나 무당을 보필하였을 터……! 오늘 전진자 무곤을 보니 화산의 성세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어쩔 수가 없구나, 이제는 화산에게 무림의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 듯하구나.’

자신들을 구해준 진건곤은 진법을 풀어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당의 도인은 진건곤처럼 그냥 안다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무당에 가끔씩 저런 인물들이 나와 소림을 뛰어넘는 성세를 이루었는데 이번에는 화산에 저런 인물이 나오다니……! 원시천존!’

무당의 도인이 진건곤에게 크게 감명을 받고 있는 사이 진건곤은 또 다른 방향을 잡았다.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뚫고 나오는 것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계속해서 진행하던 진건곤은 끝없는 돌 말고도 다른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많은 사람들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 느낌이 전과는 사뭇 달랐다.

너무 먼 곳이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미로에 갇혀 있던 자들과는 다르게 모두들 단전의 기운을 팽팽하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누님 서둘러야겠습니다. 싸움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서두르지요. 각파의 장문인들께서는 일행을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진건곤과 소군이 진행을 빨리 해가며 앞으로 나서자 일행들도 역시 서둘러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각파의 인물들은 진건곤이 말하는 징조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두리번거리며 볼 뿐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누구 하나 알아채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보니 그중에 진건곤의 경지를 엿볼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만 느꼈다.

전대기인의 반열에 서 있는 소군조차도 그 뒤를 따를 정도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곳이 출구요. 허나 조심하시오. 내가 이 함정을 만들었다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게요.”

제갈신유는 말을 마치자 선두의 자리에서 빠져 나갔다.

“당신이 앞으로 나서시오.”

제갈신유는 운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 친근감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선두의 자리를 운현에게 넘겨주었다.

운현은 이미 일행의 우두머리 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것은 화산의 이름에 기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수많은 함정을 빠져나오면서 그가 보여준 침착함과 기민한 대처가 그를 우두머리로 인정하게 해준 것이었다.

그에게는 경험 많은 다른 문파의 장로들조차도 놀랄 만한 무공과 경험이 있었던 것이었다.

운현의 일행이 미로진의 출구부분을 나서자 암기와 독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단단하게 방비를 하며 나섰던 터라 별다른 피해 암기를 막을 수 있었다. 독도 역시 당문이 있었던 터라 크게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전과 다른 점은 이번 공격은 기관에 의한 공격이 아니라 무인들이 직접 쏘아낸 암기였었다.

흑의를 입은 복면인들이 넓은 공동(空洞)에 모여 그들이 나오기를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로진을 그리 빨리 뚫고 나올 줄은 몰랐구나. 어떻게 그리 빨리 나왔지? 며칠은 더 헤매어야 겨우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들이 미로를 빠져나가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흑의를 입고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누구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는데 그의 몸에서 나온 위압감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운현을 비롯한 구파일방의 고수들은 그 위압감을 느끼고는 함부로 싸움을 시작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네놈들은 누구냐?”

개방의 질풍개는 입도 빨랐다.

“아하! 질풍개! 발만 빠른지 알았는데 성격도 급하군. 먼저 내 질문부터 답을 하면 우리의 정체를 알려주지.”

“우리에게는 제갈신유가 있지. 이런 함정뿐이라면 우리에겐 장난이나 다름없지.”

“쯧쯧쯧! 역시 제갈씨란 말이냐? 그놈들은 언제나 무시할 수 없는 족속들이지. 하지만 무공도 없이 머리만 굴리는 반쪽짜리일 뿐이니 제거해 버리면 그만! 쳐라!”

음성이 떨어지자마자 흑의인들은 각자 병장기를 쳐들고 쇄도해 들어왔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고수들을 위시하여 절정과 일류고수 급들이 참여한 일행이니 그 무공의 경지가 자못 대단하였다.

하지만 흑의 복면을 한 자들의 무공도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어서 오히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고수들이 밀리는 싸움이 되었다.

“대답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에도 질풍개가 끈질기게 답을 하라고 소리쳤다. 역시 정보를 다루는 게 일처럼 되어버린 개방의 질풍개였다.

“하하하! 예전에 네놈들이 우리를 마교라고 불렀지.”

장내의 무인들은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마교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천륜을 저버리고 인두겁을 쓰고는 절대하지 않아야 할 짓을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런 자들을 마인이라 부르고 그들의 집단을 마교라 부른다.

또 다른 하나는 황제의 적을 말했다. 황권을 부정하는 단체를 이르는 말이었다.

전자의 마교는 언제든지 존재하여 왔고 그 수가 작았다. 그들은 언제나 음지 속에 숨어서 자신의 안위와 탐욕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자들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문제는 두 번째의 경우다. 황제와 싸워 나라를 뒤집을 생각을 하는 집단들이니 그 싸움의 범위가 작지 않았다.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는 참으로 좋은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힘이 없는 공허한 외침이었으므로 그들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항상 패배와 굴욕이 뒤따랐다. 대대로 물려온 한과 스스로 옳다고 믿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이 일반 사람으로서는 당해낼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만들어내게 하였다. 평생을 모아온 재산을 바치고 가족을 희생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바치게 하는 믿음.

그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기괴함으로 비쳤다. 그 기괴함으로 말미암아 마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었다.

흑의인들이 환천삼보로 일을 꾸민 규모와 무공으로 보아 두 번째 것이라는 것을 모두 다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운현을 비롯한 각 파와 각 가를 대표하는 고수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발이 묶여 있었다. 뒤쪽에 서 있는 두 흑의인이 발산한 기세가 그들을 묶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놀랍게도 항거불능의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마교는 그런 고수들이 둘이나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렵겠구나. 어려워. 천하에 보기 드문 고수가 둘씩이나 있다니……!’

운현은 마음속으로 오늘의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동안의 싸움이 지속되었는데 처음의 싸움의 기세와는 달리 제법 균형이 맞아 오랫동안 싸움이 지속되고 있었다.

허나 싸움이 희망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는데도 운현과 제갈신유를 비롯한 노회한 고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갈 뿐이었다.

“저자들이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무공은 떨어지지만 안목만은 최고인 제갈신유가 먼저 확언을 하듯이 내뱉은 말이었다.

“원시천존! 아무래도 저들은 우리들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하겠다는 걸까요? 제대로 된 싸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각파의 고수들도 역시 산전수전을 겪은 노회한 장로들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제갈신유의 확언은 그런 그들의 가슴을 더욱더 답답하게 하고 있었다.

운현도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흑의인들이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싸움을 질질 끌고 있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마음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쌍방에 소득도 없는 싸움이 지속되는 듯하더니 돌연 흑의인들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운현의 일행들은 자신들이 비세(非勢)인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그들의 유인작전에 들어가지 않기로 하였다. 그 자리에 그대로 눌러 있으며 흑의인들의 반응을 보았다.

그렇게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있을 무렵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잔뜩 긴장한 채로 경계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제가 왔습니다.]

새로운 배분이 껄끄러운 진건곤은 운현에게 전음을 써서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바로 소군이었다. 전대기인에 비견되는 절대고수인 소검후라는 든든한 응원군이 온 것이었다.

진건곤은 운현과 인사를 나눌 틈이 없었다.

그들이 등장하자마자 흑의인들이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숫자가 세 배나 많아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일행들이었지만 흑의인들과의 싸움에서 크게 득의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역시나 흑의인들은 꿍꿍이가 있어 시간을 끌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진건곤과 소군이 나서서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기도 한데 흑의인들도 역시 고수로 보이는 자들 둘이 뒷짐을 진 채로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진건곤과 소군은 들어서자마자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기에 그들을 견제하며 서 있을 뿐이었다.

‘놀랍구나. 빙백신의 밑이 아닌 자들이 둘이나 모여 있다니……!’

소군도 역시 그들의 존재감에 놀라고 있었다.

[사부님 저들은 누구입니까?]

[마교라는 것은 알아내었다.]

[마교요? 그들이 왜 이곳에……?]

[모르겠구나. 돌연 길을 막아서 공격해 온 자들이건만 아무것도 알아낸 바가 없다. 무엇을 꾸미는 건지도 모르겠다.]

[뒤쪽의 고수들은 검후와 비슷한 경지의 고수 같습니다.]

진건곤의 말에 운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상치 않은 고수라는 것은 생각하고 있었지만 소군과 비슷할 줄이야.

기척을 읽는 고수들과는 다르게 기운을 읽어내는 진건곤의 말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확실히 그들의 몸에서 나온 기세는 여전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고수들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운현도 역시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나서지 못하고 서 있지 않았던가? 싸움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싸움은 점점 격렬해지고 있었다.

숫자가 많아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측에서 더욱더 과감한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소군의 존재를 믿고 몇몇 문파의 장로들이 앞장서서 싸움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전원 퇴각!”

싸움을 주시하던 두 흑의인들의 입에서 뜻밖의 명령이 새어 나왔다. 뒷짐을 지고 서 있던 두 흑의인의 고수들은 싸움 대신 회피를 선택했다.

싸움을 하던 흑의인들은 절도 있는 모습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 그 넓은 공동이 텅 비고 말았다.

일순간 일행들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있었다. 흑의인들이 빠져나간 곳은 넓은 공동이어서 많아진 일행들이 들어서기에는 적절한 장소였다.

하지만 흑의인들의 움직임에는 이해하기 힘든 점들이 있었으니 함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동굴 속에서의 함정이란 참으로 무서운 구석이 있는 곳이었으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아주 짧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기름 냄새……!”

“불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동시에 외쳐댈 만큼 진하게 풍기는 냄새가 있었다.

일행들이 지나왔던 작은 동굴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흑의인들이 물러간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흑의인들이 서있던 공동에 내려섰는데 역시나 함정이 있었다.

공동의 천장과 벽에서 암기와 독물이 쏟아져 내렸다. 무인들은 저마다 준비해 왔던 방법으로 독물을 막아내고 암기를 당해내었으나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화르륵! 화륵!

뒤에서 다가서는 화마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또다시 공동까지 뜨거운 입을 날름거리며 범위를 확장시켰다.

뒤쪽에서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기름을 보면 이 또한 기관에 의한 함정이었을 것이었다.

오직 탈출구는 흑의인들이 물러난 통로 하나밖에 없었다. 역시나 그곳으로 들어선다면 또 다른 함정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진(前進)!”

운현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불길 속에서 타 죽고 싶었던 자들은 없었으리라.

기다리고 기다리던 명령이었던지라 앞 다투어 쇄도해 들어가는 무인들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우모침과 같은 세세한 암기가 쏟아져 내렸다.

너무나 많은 무인들이 일시에 몰린 터라 상당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우모침에 당한 자들의 피부에는 붉은 기운과 함께 퍼런 기운이 같이 감돌고 있었다.

“이런!”

당가에서 나온 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독의 증세가 당가의 독에서 나오는 증세와 한 치도 다름없이 똑같지 않은가?

“해독제를 나누어 주어라!”

당가의 장로가 명령을 내리자 당가의 제자들이 해독제를 풀었다. 허나 그 수효가 충분하지 않아 이십에 가까운 무인들이 죽어갔다.

사람이 많을수록 유리해야 하거늘 오히려 동굴에 갇힌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상공!”

소군이 앞장서며 진건곤을 불렀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생각에 앞으로 나선 소군이었다. 그 마음을 아는 진건곤이 소군의 뒤를 따라나섰다.

앞으로 나아가자 그 자리에 앉아 운기를 하며 몰아일여를 시도하였다.

“곤방 평. 삼 척 위. 진방 두 치 아래. 손방 좌로 두 자 반!”

소군의 검이 또다시 번쩍였다.

천수불영검의 진수가 담긴 검광이 번쩍였다.

세 번의 검광이었는데 동굴을 모두 밝힐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번쩍이는 검광이었다.

[소검후가 이제는 완전한 검후가 되었구나. 대단한 무공이구나.]

운현의 전음이 진건곤의 귓가에 울렸다.

[해동의 진인이 누님에게 무공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무림에 커다란 전란이 있을 것이니 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천수불영검을 깨우쳐 줄 정도의 고수가 한 말이라면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당장 바로 눈앞의 흑의인들도 세상에 전란을 몰고 올 마교가 아니던가?

[허허, 걱정이구나.]

소군과 진건곤이 또다시 앞장을 서며 전에 일행을 이끌던 방식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런! 저 젊은 놈은 누구기에. 이런 짧은 시간에 기관을 해체할 수 있단 말인가?”

동굴의 반대쪽에 선 두 명의 흑의인 중에 한 명이 놀란 눈을 하며 진건곤을 응시했다.

“저 녀석이 바로 전진자라는 녀석입니다.”

“허허허! 저놈이 그 골칫덩어리였군. 젊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저렇게 어린 녀석일 줄이야. 대단한 신진(新進)이로군.”

“대단해 봤자 신진이라면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검후와 전진자 따위가 무어라고 이런 일에 극사가 둘이나 투입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마교! 흑의인의 직위는 극사. 무의 극에 있는 두 인물이 환천삼보의 일에 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동굴에 들어온 자들만 하여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로급 고수들과 일대제자들이 여럿이요. 낭인들과 중소문파의 무인들 중 절정 이상의 고수들만 오십여 명이 넘었으니 중원의 무인들 중 삼분지 일이 모여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환천삼보의 사건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흑의인은 두 명이나 투입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허허허! 고깝게 생각하지 말게나. 나 역시 전진자를 얕보고 있었는데 귀제갈의 계산이 맞아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전진자가 이곳에 왔다는 말은 곧 빙백신이 소검후에게 졌다는 말이지. 그의 예측이 옳지 않은가?”

“흠흠!”

또 다른 흑의인은 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빙백신이라면 소검후와 전진자를 처리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주장했었는데 그의 예측이 빗나간 것이었다.

“계획과는 다르게 처리해야겠어. 저렇게 두었다가는 생각보다 희생이 너무 적지 않겠는가? 조금 더 괴롭혀 주어야지. 환천삼보가 더 값지게 보이지 않겠는가?”

흑의인의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뒤쪽에 서 있던 흑의인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펑! 퍼버벙!

파라라라락!

장풍과 검풍이 번갈아가며 불길을 멀리 몰아내고 있었다.

열기가 등 뒤로 따라붙었다.

진건곤이 매우 빠르게 기관을 해체하였지만 불길보다 더 빠르기는 힘들었다.

운현이 사태를 지켜보더니 결심을 굳힌 듯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면 소리를 질렀다.

“모두 앞으로! 전진!”

그 순간, 운현의 검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우윳빛으로 둘러싸였다.

아직은 검강이라고 할 수 없으나 시간이 지나면 검강을 이룰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한 우윳빛이었다.

푸욱!

우윳빛의 검이 동굴 벽에 깊게 꼽혀들어 갔다. 마치 진흙으로 만들어진 벽을 갈라내듯이 쭉 갈라내자 무려 일 장의 깊이로 벽이 갈라져 끊어진 기관들이 나타났다.

소군의 무공에는 비할 수 없으나 운현의 무공 또한 절정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높은 것 같았다. 절정의 무인이라고 한들 이렇게 길게 일 장의 깊이로 벽을 갈라낼 수는 없었다.

운현이 한쪽의 벽을 갈라내자 나머지 한쪽은 소군의 검에서 나온 번쩍이는 섬광이 쓸어내었다.

그 과정에서 가끔씩 터져 나오는 암기와 독물들이 있었지만 중간에서서 진건곤이 검풍을 일으켜 날아오는 암기들을 쳐내고 있었다.

각파의 고수들도 나서서 똑같은 방식으로 뒤를 따랐다. 그들이 지나고 난 곳에는 마치 폭약이라도 터트린 듯이 동굴이 파괴되어 있었다.

펑! 푸부북!

치이이익!

암기와 독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여전히 들렸다.

“아아아악!”

“사형!”

“사부!”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비명!

기관 중에는 시간을 두고 재차 작동하는 것들이 있었다. 운현과 소군이 치고 나간 곳이었지만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어서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함정들이 있었다.

평소라면 충분히 막았을 것이었지만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무인들이 있었던지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당하는 자들이 속출하였다.

뒤에서는 불길이 쫓아오고 동굴 벽에서는 암기가 터져 나오고 연기가 일어나기 시작하니 아비규환과 같았다.

“클클클! 대단하군! 대단해! 본교의 회혼단이 없이도 가일구층황금공을 익힐 수 있었다니 참으로 대단한 일이야. 그가 과거에 왜 천하제일의 인재로 주목을 받았는지 알 수가 있겠어. 벌써 팔 성의 가의단공이라니……!”

“흥! 머저리일 뿐이지요. 알지도 못하는 무공을 덥석 익혀놓은 꼴이라니.”

“클클클! 그래도 한때 시대최고 기재라는 평을 받았던 인물이지. 화산에서 버림받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우리를 뛰어넘었는지도 몰라. 클클클! 비참한 인생이야.”

“어차피 버려진 녀석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허허허! 자넨 참 직선적인 성격이야. 안 그런가?”

흑의인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네. 바로 저자를 분탕질 치게 하라는 명을 받았단 말이지. 그런데 천수불영검을 완성해버린 검후는 좀 버겁군. 자네가 저 세 명의 고수들이 한순간 무력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네.”

“셋입니까? 둘만 막으면 되지 않습니까?”

사내의 눈초리에 의혹이 생겨났다.

“셋이 틀림없네. 저 셋을 묶어두지 않으면 내 맘대로 대법을 펼칠 수가 없을 것 같으니 말이네. 내가 대법 도중에 역습이라도 받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둘이면 되지 않습니까? 운현이야 노사가 맞으면 될 것이니까요. 아무리 저라도 저들 셋을 동시에 무력화하려면 힘이 든데요.”

힘이 들다.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소군이 껴 있는데도 가능하다는 말이었으니 흑의인 또한 소군과 대등한 경지임에 틀림없었다.

“클클클! 아무리 가의단공을 익혔다고 해도 운현 만한 고수가 단번에 넘어오겠는가? 그의 심력을 뒤흔들 만큼의 충격이 있어야지. 짧은 순간에 그럴만한 능력을 가진 자는 자네가 유일하지 않겠는가? 자네는 내가 직접 챙길 테니 걱정 말고! 이 정도라면 틀림없겠지?”

터벅! 터벅!

흑의인이 손을 흔들자 뒤에서 동작이 부자연스러운 자 둘이 앞으로 나섰다. 그 행색에 부자연스러워 손발에 막대라도 지운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호오! 이 보물들을 사용하겠다는 겁니까?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데?”

“어쩌겠나? 상대는 바로 전설의 검, 천수불영검을 완성한 당대의 검후인걸. 저것들과 내가 같이 나서도 어려울 것이야. 하지만 운현이 걸려들고 말면 도망치는 것이라면 충분하겠지.”

그 말에 곤란하다는 눈초리를 품었던 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무기는 비도였다. 보통의 비도라면 정교함과 예리함을 자랑한다. 허나 그의 비도는 달랐다.

일수광거혼백(一手狂祛魂魄)!

손짓 한 번에 미칠 듯이 혼백을 담는다.

전 공력을 실어 한 번밖에 시전할 수 없는 비도였다. 딱 한 번의 위력이 대단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

운기조식을 취하지 않는 한 다음 초식 따윈 없었다. 오직 한 번을 위해 내공을 모두 소진해 삼류무인만도 못해지는 무공이었다.

그들은 이제껏 팔짱을 끼고 남의 일을 보듯이 했었는데 처음으로 흑의인들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부자연스러운 걸음을 보여주는 둘을 앞으로 내세우고는 기운만으로도 주위를 압도했던 두 고수가 앞으로 나왔다.

구파일방의 일행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진건곤과 운형, 소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출렁!

기운이 출렁거렸다. 공기가 아닌 기운이 출렁거렸다.

아무도 느끼지 못했을지 몰라도 진건곤은 몰아일여의 경지 이후로 얻은 특유의 민감함으로 그 차이를 느꼈다.

‘주변의 기운이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어! 저자! 위험하다.’

엄청난 기운이 흑의인의 몸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조심……!”

진건곤의 경호성이 다 끝나기도 전에 흑의인의 손이 한순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자의 손은 마치 손바닥을 털듯이 가볍게 손뼉을 치는 듯하였다.

우우우웅!

놀랍게도 흑의인과 진건곤 일행의 중간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비도가 나타났다.

쇠로 된 것이 아니었다. 허공에 만들어진 것은 내력으로 그 모양을 만들어낸 강기였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나타난 비도가 선봉에 선 진건곤과 소군, 운현을 노리며 쏘아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검은 안개가 뭉클거리며 뒤따라 들어갔다.

모름지기 손을 떠난 물건은 점점 힘이 빠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흑의인이 허공에 만들어낸 비수는 신기하게도 앞으로 날아올수록 그 속도와 기세가 점점 증폭되고 있었다.

일행의 앞에 다가와서는 각각의 비도가 마치 뇌전과도 같은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쐐애애액! 쐐액! 쐐액!

앞에서 치고 나가던 검후와 운현은 하던 일을 멈추고 출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밀려오는 사람들이 있어 그대로 손을 떼었다가는 많은 희생자가 생길 것이 자명했는데도 손을 떼고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소군과 운현이 비도에 실린 폭발적인 힘이 진건곤 혼자서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조심……!”

소군의 음성에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진건곤으로서는 방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내력을 모아 검에 불어 넣었다.

진건곤의 검에 순백을 지나 일렁이는 흰빛이 피어났다. 검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허공에 검영을 뿌리기 시작했다.

무량만회(無量挽回)!

절검의 최후의 심득이 담긴 초식이었다. 십대은거기인이라는 무대와도 겨룰 수 있었던 초식에 진건곤이 담을 수 있는 모든 힘이 서렸다.

일렁이는 백색의 빛이 그물처럼 펼쳐지고 날아든 강기의 비도와 부딪혔다.

꽈드드드등!

그와 동시에 소군과 운현의 검과도 부딪혔다.

떵! 떠덩!

비수를 막았는데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굉음과 엄청난 경력이 터져 나왔다.

동굴이 그대로 무너져 내릴 듯이 흔들리고 그들이 서 있던 곳에 사방 오 장의 공간의 동굴이 작은 돌로 바뀌어 무너져 내렸다.

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위력의 부딪힘이었다.

다행이라면 진건곤과 운현의 검에 비수들이 궤도가 크게 틀어져 동굴의 벽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절검의 심득인 무량망회는 진건곤이 이기어검을 연구할수록 더욱 강해져 가히 십 성으로 연마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었는데도 겨우 한 개의 비도를 막아낸 것에 불과했다.

소군은 세 걸음. 진건곤과 운현은 각기 다섯 걸음과 일곱 걸음을 뒤로 물러서고 나서야 몸을 추스를 수 있었는데.

스스스스슷!

그 순간 검은 연기가 섬뜩한 소리를 내며 칠공을 통해 운현의 몸에 스며들고 말았다.

검은 연기가 살아 있기라도 한 듯이 눈과 귀, 코를 통해 들어가는 모습이 괴이하기만 했다.

“컥! 커커컥!”

“사부!”

고통스러운 음성이 울리고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그런 운현을 돌보기 위해 다가가는 진건곤이었다. 그리고……!

스각!

운현의 검이 진건곤을 베어왔다.

급히 물러났지만 운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예측할 수 없었던 진건곤이었던 지라 그의 검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쩡!

소군의 검이 운현의 검을 막았다. 운현의 검이 비껴나가며 진건곤의 어깨를 베었다.

너무나 가까웠던지라 소군조차도 운현의 검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상공!”

소군은 운현의 검을 계속해서 쳐내며 진건곤을 불렀다.

“괜찮습니다.”

진건곤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흑의인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네놈들!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크하하하하! 이제 운현은 나의 충실한 종인 게지. 크하하하하핫! 가랏!”

운현은 돌연 검을 접고 뒤쪽으로 뛰어들었다.

소군의 검이 운현이 움직이지 못하게 퇴로를 막았다.

불쑥!

운현이 소군의 검 앞에 스스로 몸을 들이밀자 놀란 소군은 검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남편의 사부가 아니던가? 차마 베지 못하고 물러섰던 것이었다.

“아아악!”

“크윽!”

순식간에 세 명의 무인이 운현의 검에 맞고 쓰러졌다.

깡! 까앙!

다른 자들도 이미 고수라는 소리를 듣는 자들, 서로가 협력을 하며 운현의 검을 막아내었다.

“운현이 적의 수작에 당했소. 막으시오.”

운현의 눈에는 빨간 혈광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악적!”

소군이 앞으로 달려들어 흑의인을 치려고 했으나 예의 구부정한 흑의인들이 나서서 그녀를 막았다.

까아앙!

놀랍게도 흑의인의 속에서는 열기를 동반한 붉은 강기가 피어올랐고 또 다른 흑의인의 손에서는 엄청난 한기를 동반한 얼음이 맺혔다.

“세상에……! 죽은 자를 이용하다니……!”

소군은 그 두 흑의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화령신과 빙백신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무위는 생전에 비해 못한 바가 있었으나 수가 둘로 늘어나 있으니 쉽게 그들을 뚫고 나가지 못했다.

그사이 검은 연기를 일으켰던 흑의인은 이미 작은 동굴에서 빠져나가고 없었다.

[크하하하! 운현을 고치고 싶거든 나를 찾아오너라!]

소군이 화령신과 빙백신의 강시에 손이 묶여 있는 동안 운현은 또다시 희생자를 늘렸다.

모두 다섯 명의 후기지수들이 운현의 검에 쓰러져 갔다.

“이런! 무도한 놈. 그리도 보물이 욕심이 났더냐?”

뒤쪽에서 그 상황을 보지 못했던 자들이 운현에게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운현이 사욕에 눈이 멀어 변심한 것으로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화령신과 빙백신이 뒤로 물러나 떠나고 나니 운현이 돌연 검을 떨어트리고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죽어 마땅한 자!”

“사욕에 눈이 멀었구나!”

무인들은 제 각기 살기를 머금고 운현을 향해 병장기를 찔러 넣었다.

까가가강!

소군의 검과 진건곤의 검이 그것들을 막아 세우자, 분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후! 무슨 짓입니까?”

“전진자! 그대도 한통속이었던 게요?”

신날한 소리가 쏟아졌지만 진건곤은 그런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부! 사부! 정신 차리세요.”

진건곤은 소리치며 운현을 받아들었다. 소군이 가까이 다가서며 진건곤과 운현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운현과 소군이 하던 일이 중단되고 말자 많은 암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많은 무인들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암기에 맞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주 잠시 동안 기관을 해체하지 못했을 뿐인데 그 피해가 아주 켰다. 뒤에서는 연기와 함께 불길이 밀려올라와 무인들은 기겁을 하며 치달아 나오고 있었다.

잠시라도 발길을 멈추면 밟혀 죽을 판국. 한순간의 정체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며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빌어먹을! 네놈들이 어찌 그럴 수가!”

흑의인들이 만들어낸 상황과 보물에 대한 욕심이 진건곤의 일행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운현의 칠공으로 스며들어간 검은 연기를 보고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던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다 같이 죽을 수는 없는 일.

“누님!”

“상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외쳐진 음성. 눈을 맞춘 둘이 동시에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진건곤의 검에 또다시 백광이 피어나고 강기가 뻗어 나오는 검이 동굴의 벽에 박혔다.

운현이 했던 일을 진건곤이 해내며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좁은 동굴을 빠져나오자 그 뒤를 따라 다른 무인들도 역시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불길의 연기가 가득해 사방이 흰색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보이는 것마저 투명하지 않으니 혼란의 틈을 타고 희생된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소군과 진건곤의 도움으로 위험을 벗어났지만 그들의 눈에는 여전히 분노가 실려 있었다.

바로 운현을 향한 분노.

“그 악도를 내놓으시오.”

“당장 찢어 죽여야 하겠소.”

“그 악도를 내놓지 않는다면 화산과 일전을 불사하겠소. 어서 내놓으시오.”

자신의 제자와 사질을 잃은 청성과 곤륜, 황보세가의 장로들이 살기를 띠며 진건곤과 소군을 핍박하였다.

“여러분! 사부는 흑의인의 수작에 걸려든 것입니다.”

진건곤이 나서서 그들에게 말을 하였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일 뿐!

“흥! 운현만큼 무공이 높은 자가 그런 간단한 사술에 빠져든단 말이오? 화산의 도가 그리 낮다고는 믿을 수 없소.”

“여러 말 하지 마시구려. 흑의인의 수작에 당한 자가 왜 운현뿐이냔 말이오? 납득할 수 없는 말이외다.”

진건곤의 말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둘의 관계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던가? 그들의 눈에는 그저 변명을 늘어놓는 진건곤만이 보였을 뿐이었다.

“허허! 왜들 이러시는가? 틀림없이 운현은 적의 수작에 당했을 것이야. 본래 그럴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나 개방의 질풍개가 내 이름을 걸겠네!”

질풍개가 나서서 그들을 말렸으나 그들의 눈에 살기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증거가 있소이까? 정녕 질풍개께서 운현이 당하는 모습을 보았단 말이요?”

질풍개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도 스스로를 방비하느라 앞을 볼 여유는 없었으니까.

질풍개가 답을 하지 못하자 그들의 눈에 살기가 다시 치솟았다.

“다른 소리 필요 없소. 그 악도를 내놓으시오.”

운현에게 희생을 당한 자들의 문파들이 단단한 게 뭉쳐 운현을 내놓으라고 외쳐대니 난감한 상황이었다.

허나 다행인 것은 무당과 소림의 제자도 운현의 손에 희생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운현을 핍박하는 것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과연 무림의 태두라 불릴 수 있는 소림과 무당의 장로들이었다. 그 위급한 순간에도 자신의 몸을 지키며 앞을 볼 여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소군의 눈이 그쪽을 향했다.

“일원 대사님! 정진 진인! 본 것을 말씀해 주시지요.”

소군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그들도 난감한 듯이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시 후에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나무아미타불! 진정하시오. 소승의 제자도 역시 운현에게 해를 당하였소. 허나 그전에 흑의인이 운현에게 수작을 부리는 것을 보았으니 운현이 제정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오.”

“원시천존! 본도 역시 그것을 보았소이다. 혼전 중에 벌어진 일이나 틀림없이 흑의인이 뿜어낸 검은 연기가 운현의 칠공으로 스며들어간 후에 생긴 일이오.”

“틀림없소이까?”

“정녕 사문에 명예를 걸고 답할 수 있습니까?”

“책임질 수 있느냐 말입니다.”

제자와 사질의 복수를 가로막는 소림과 무당을 향해 거친 음성이 쏟아져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그 속 내막까지야 어찌 알겠소.”

“원시천존! 사람의 마음속까지 책임지라 하시면 할 말은 없소이다.”

그것보라는 듯이 청성과 곤륜, 황보세가의 인물들의 얼굴에 노기가 솟아올랐다. 그것을 본 일원 대사와 정진 진인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런 것을 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외다. 소림은 운현 진인을 단죄해야 할 것인지 사정을 두고 알아봐야 할지 생각하는 중이요. 아미타불!”

“본파의 제자도 운현의 검에 맞아 중상이요. 하지만 당장 운현을 단죄함은 옳지 않다고 보오. 사정을 알아보아야 하지 않겠소? 원시천존! 만일 그의 사욕이 판명된다면 무당이 책임지고 그를 단죄 하겠소. 화산과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오.”

무당의 이름으로 화산을 벌하겠다?

진건곤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말이었지만 어쨌든 상황을 종식시킬 수 있는 말이지 않은가?

“아미타불! 소림도 한손 거들겠소이다.”

소군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일원 대사와 정진 진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은연중에 소검후도 운현을 처치하는 것에는 반대라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라 청성과 곤륜, 황보세가의 인물들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흐흠! 그 말책임을 지셔야 할 것이요.”

청성 등은 일일이 대답을 듣고서야 진정하는 듯하였다.

좁은 곳을 빠져나오자 흑의인들이 대기하고 있던 넓은 공동에 들어왔는데 그곳에는 이미 불길에 의한 하얀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꽈과과광!

운현의 문제로 무림의 태두들이 다투고 있는 사이 무인들이 공동에 모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한순간에 폭음이 들리더니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기겁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쏟아져 내리는 것은 바위가 아니었다. 그저 천장을 막아 놓았던 나무나 가죽의 조각일 뿐이었다.

화아악!

한순간에 바람이 일고 연기가 확 트인 구멍으로 날아가 버렸다.

연기가 사라진 절벽은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이 병풍이 쳐지기라도 한 듯이 넓은 공동을 감싸고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눈에 잘 띄는 굵고 붉은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

환천삼보(幻天三寶)

가일구층황금공(加一九層黃金功)!

소성을 이루면 소림의 대반야신공 부럽지 않을 것이오.

대성을 하면 능히 천하제일내공을 이루리라!

내공의 끝을 보게 하리라.

광룡진천류(狂龍唇天瀏)

격류의 흐름이 미친 용처럼 흘러 하늘을 놀라게 한다.

검을 쓰면 그 예리함에 치를 떨어 노룡살검(怒龍殺劍)이라 부를 것이며 도를 쓰면 피를 쫓는 흉측함에 광혈마도(狂血魔刀)라 칭할 것이다!

오(五) 성에 이르기만 해도 일류고수라 이를 것이고 육(六) 성에 이르면 절정의 고수가 되어 능히 한 성(城)을 호령할 수 있으리라. 십 성에 이른다면 능히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이십칠파결(二十七把結)!

하늘을 가두는데 백팔지주가 필요하지 않다.

능히 이십칠 지주라면 충분할 터.

돌멩이 열 개면 사람을 희롱하고 스무 개면 하늘을 희롱한다.

스물일곱 개가 모두 모이면 능히 하늘을 가릴 것이다.

진건곤과 소군은 놀라며 급히 날아올라 절벽을 부수었지만 그 넓고 높은 절벽을 부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이미 진건곤과 소군이 비급을 읽지 못하도록 파괴할 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사방 천지에 다 비급이 반복적으로 적혀 있었던 것이었다.

“우우우우!”

“비열한 수작!”

수많은 비난과 질타가 진건곤과 소군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이내 절벽에 쓰인 글귀들이 똑같은 것을 알아채고는 그 글귀들을 외우는 무인들, 글로 적는 무인들이 있었다.

“이것들은 주화입마를 부르는 무공입니다. 익혀서는 안 될 일입니다. 각파의 장로님들도 이 비급들을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소군의 음성이 울렸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진건곤과 소군이 부수는 벽을 피해 다른 글을 찾아 외우고 적느라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

소군과 진건곤은 많은 부분을 지웠으나 충분하지 않았다. 절벽의 면은 너무나 높고 넓어 쉽게 지울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무공을 본 무인들에게도 그 무공들을 익혀서는 안 된다는 말을 했으나 겉으로만 듣는 척을 할 뿐, 모두들 돌아가 그 무공을 익힐 궁리만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나갈 길을 막고 있던 불길이 꺼지고 나자 무인들은 모두가 서둘러 사라지고 말았다.

진건곤과 소군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저 하늘 위, 절벽의 끝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바로 운현에게 검은 연기를 불어 넣어 사술에 빠지게 한 자였다.

“크크크! 네놈들로 인해 세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크하하하하! 하하하하!”

비웃음이 남아 절벽과 공동에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진건곤과 소군도 보았으나 너무나 높은 절벽이었기에 어찌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다.

“비겁한 놈들! 사술을 쓰다니……!”

진건곤이 분노에 차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절벽 위에 선 자가 두 손을 모으고 진언을 외웠다.

벌떡!

쓰러져 있던 운현이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하였다. 화산의 경공술을 극성으로 펼쳐 달리더니 절벽에 가까워지도록 멈추지를 않았다. 그대로 벽을 타고 위로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벽호공을 익히지 않은 이상 떨어질 것은 명확한 일이었다. 게다가 운현의 뒤를 쫓는 두 개의 인형이 있었다.

진건곤과 소군이었다.

운현은 마지막으로 힘이 다해 떨어질 때가 되자 절벽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진건곤과 소군도 역시 운현을 잡기 위해 뛰어올랐다.

소군의 경공이 더 뛰어 났으니 소군의 손에 잡힐 것 같았는데……!

피잉!

운현의 머리 위로 위에서 날아드는 비도가 있었다.

“이런……!”

소군은 운현을 잡기 위해 손을 뻗은 상태인지라 검을 뽑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운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아주 절묘하게 잡아채는 운현이었다.

운현의 신형이 갑자기 허공으로 쑥 올라가는 것 같았다.

소군의 손은 운현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운현은 하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위로 아주 얇은 실 같은 것이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천잠사?”

천잠사라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얇은 실로 거미줄 같은 굵기로도 능히 사람의 몸무게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거기에 진기라도 주입이 된다면 집채만 한 바위 덩어리라도 견딜 수 있는 것.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수라비도(修羅飛刀)……!”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소군이 신음처럼 뱉어낸 이름이 있었다. 이제야 생각이 난 이름들이었다.

천잠사와 비도라면 이미 은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수라비도의 성명무기가 아니던가?

“다른 자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틀림없어요. 너무 오래된 이름이라서 잊어버렸지만 그만한 비도를 구사하는 자라면 하오문의 전설의 수라비도(修羅飛刀)밖에 없어요.”

수라비도(修羅飛刀) 일찍이 천하제일 신투였던 자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도적질을 업으로 삼는 자도 아니었다.

그가 도적질을 한 것은 겨우 일곱 번. 하지만 그는 그 일곱 번으로 천하제일 신투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게는 그런 자격이 있었다.

그가 훔쳐가는 재물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 들어가면 언제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가뭄이 돌거나 역병이 돌면 언제나 커다란 재물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고 중원 곳곳에 구호물자가 보내지곤 했다.

그가 털었던 재물은 천하삼대 거상이라는 만금당, 황금상회, 상신표국의 재물들이었다. 그리고 구호물자는 그들의 이름으로 보내어졌다.

수라비도라는 이름은 십 년 전 큰 가뭄이 있었을 때 지어진 이름이었다. 황궁의 황궁비고를 털다가 꼬리를 잡힌 적이 있었는데 당시 강호 십대고수이자 황궁의 최고고수이며 황실수호를 책임지는 철완호완에게 쫓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수라비도는 단 한 번의 비도를 던져 그의 추적을 끊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철완호완이 붙여준 이름이 바로 수라비도였는데 강호십대고수인 철완호완이 수라만큼 무서운 비도였다고 붙여준 이름이었다고 했다.

큰 가뭄이 들었던 지역에는 황상의 이름으로 엄청남 구호물자가 돌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 또한 수라비도가 황제의 이름으로 보낸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허나 황제는 구호물자를 자신이 보낸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후일 수라비도에게 내린 수배령을 풀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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