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여의 깊이로 땅이 파고 땅이 쩍쩍 갈라졌다. 땅은 그전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뒤집혔고 흙먼지가 날았다.
수백 명이 동시에 수련을 하고도 남을 만큼 너른 땅이었는데 두 사람의 싸움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상상도 못할 엄청난 위력의 무공의 충돌이었다.
그 힘을 만들어낸 존재인 백노신과 소군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고 가랑잎처럼 날아가고 말았다.
두 사람은 각기 솟구쳐 날아가더니 공터를 다지나 건물에 부딪히고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으……!”
“으……!”
빙백신은 눈을 홉뜰 수밖에 없었다. 소군의 무위가 자신을 상대할 때와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자신보다 상수임에 틀림없는 백노신이었거늘 그런 백노신과 완벽한 동수를 이루다니!
소군이 실력을 숨기고 자신을 농락했다는 생각을 하니 분노가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빙백신은 진건곤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는 소군을 보았는데 입가에는 선홍색의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틀림없이 내상을 입어 흘러나온 것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영원히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빙백신은 신형을 뽑아 올려 순식간에 진건곤과 소군의 곁으로 날아들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투명한 빙정으로 만들어진 검이 들려 있었고 순백의 강기가 덧씌워져 있었다.
“아아아앗!”
“나무아미……!”
천하에 적수를 찾기가 어려운 세외삼신이라는 고수가 암습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기에 그를 막아서는 아미의 고수는 아무도 없었다.
뒤따라 움직이기는 했으나 이미 그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수많은 단말마가 일어났을 뿐이었다.
퍽!
소음이 일고 번쩍이는 빛이 진건곤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파앗!
허공에는 붉은 피가 비산했다. 피분수가 시작된 곳은 바로 빙백신의 심장이었다.
털썩!
허공에 퍼져 나가던 피가 모두 땅에 떨어질 때쯤, 빙백신의 신형도 역시 땅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진건곤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빙백신의 심장을 꿰뚫었던 빛이 바로 진건곤의 검이었던 것이다.
장중의 인물들은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건곤의 무위가 그 정도라고는 상상했던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노신만이 진건곤을 보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죽어랏!”
북해의 전사들이 각기 검을 뽑아 들고 진건곤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그들은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들은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뚝 떨어져 내리고 말았는데 손발이 모두 축 처진 것이 의지를 상실한 모습이었다.
땅바닥에 닿기 직전에 그들의 몸이 백노신의 곁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아미의 고수들은 그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가공할 허공섭물. 아무도 알아보기 힘든 능력을 지닌 백노신이 그들을 막아 세운 것이라는 것을.
“백모는 검후의 무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소. 패배를 자인하고 이들을 데리고 물러나도록 하겠소.”
빙백신의 시신마저 허공으로 떠올라 움직였다.
백노신이 움직이는 대로 이끌려 5개의 몸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데 아무도 그를 저지하지 못하고 그저 놀라운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감사드립니다. 진인!”
진건곤과 소군이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인사를 올렸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아미의 고수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 그대 이미 이기어검을 부릴 수 있는 것을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은 안 되겠기? 영력이 부족한 게야. 영력은 내력도 힘도 아닐세. 대저 큰 뜻을 품어야 선택받을 수 있는 걸세. 선택받지 못한다면 진정한 영력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야! -
진건곤의 머릿속에 백노신의 몰아일여가 펼쳐졌다.
- 널리 이롭게 하리라! -
“대의(大義)……!”
진건곤은 자신도 모르게 대의라는 말을 뇌까렸다.
백노신이 물러가고 난 뒤, 소군이 백노신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장문에게 하였다.
“아미타불! 진인이 네게 천수불영검을 깨우쳐주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백 년 전의 검후님이신 검후 청영님의 천수불영검이라고 했습니다.”
“허어! 놀라운 일이로고……! 그럼 이제 천수불영검의 십 성을 보았느냐?”
“네, 그렇습니다.”
“진인이 왜 이런 선물을 주는지 모르겠구나.”
“상공의 말에 의하면 그분은 해동의 진인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 큰 전란이 있는데 그것을 막아달라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허허……! 해동의 진인이었단 말이냐? 전란을 막아 달라? 역시나 그랬구나. 부러운 땅이로구나.”
방장의 눈은 먼 하늘을 쫓았다.
고래로부터 해동에서 온 자들은 뛰어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뛰어난 자가 아니면 중원에 들지 않아서 그랬는지, 뛰어난 자들만 모여 있었는지는 몰랐다.
어쨌든 해동의 인문들이 중원에 들어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면 그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 본 진인의 경지 역시 아미 장문으로서 듣도 보도 못 한 전인미답의 경기가 아니던가? 땅은 작지만 놀라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다. 상상도 못할 만큼 실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빙 극사와 백 극사가 실패했다는 소식입니다.”
툭!
대공녀가 손에 들었던 물건을 떨어트렸다.
“백 노사께서요? 어찌된 일이랍니까?”
“빙백신은 패퇴하였고 백노신이 동수를 이루었는데 갑작스럽게 빙백신이 기습을 했다고 합니다. 백 노사는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물러났다고 합니다.”
대공녀의 얼굴은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지만 크게 실망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녀의 음성에 당황한 흔적이 역력했다.
“말이… 되지 않아요. 백 노사와 동수를 이룰 수 있는 무공이 존재하다니요?”
“아미의 전설인 검후가 탄생했다는 소문입니다.”
“아니에요. 백 노사의 무공은 제가 알아요. 이미 인간의 것을 넘어선 신선의 그것이에요. 아마도 백 노사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닐까요?”
귀제갈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아직도 그리 약한 소리를 하십니까? 냉정해지고 강해지셔야 합니다. 대공녀께서는 그자를 왜 그리 높이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지하에 계신 아버님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귀제갈이 아버님이라는 말을 꺼내자 대공녀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버님의 원한을 푸는 방법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법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세상에 이로운 법입니다. 그자들이 먼저 힘을 보였으니 우리는 갚아 줄 뿐입니다. 대공을 이루는 그날까지 약해지셔서는 안 됩니다.”
“……!”
아버지의 복수라는 말에도 대공녀는 입장을 확실히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시체가 산을 이룬다. 어찌 그것만 보십니까? 그 뒤에 오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겁니까? 상전도 노비도 없고 힘이 있어도 서로를 배려하며 사는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함께하는 겁니다. 사람 위에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신만이 있을 뿐입니다.”
“정녕 옳은 것이겠지요?”
“대공녀를 위해 선교주를 기리기 위해 한평생을 바쳐온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귀제갈의 눈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해 눈동자가 사라지고 회백색의 묘한 눈이 되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였다.
“저를 믿는다면 제 눈을 보세요.”
대공녀는 그 눈을 피하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은 수많은 생명에 대한 두려움일 뿐, 귀제갈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귀제갈의 눈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대공녀의 눈에도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나아갈 뿐입니다. 조아로교의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시는 것뿐입니다.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믿는 대로 행하실 뿐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조아로!”
“조아로!”
그렇게 다짐을 받고 나서야 귀제갈의 눈과 대공녀의 눈이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갔다.
“계획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세요.”
“그럼 저는 돌아 가보겠습니다.”
귀제갈은 대공녀에게 인사를 하고는 돌아 나왔다.
“대공녀는 너무 여리신 분이구나. 아직도 이런 모습을 보여서야……! 이런 방법을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진건곤과 소군은 아미에서 빙백신과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광우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개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커다란 마차가 이용되었다. 추영반쯤 되니 광우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같이 움직이는 자들이 제법 되었다. 모두 세 개의 마차가 움직였는데 하나의 마차에 소군과 진건곤, 광우와 그의 호위가 같이 탔다.
소군이 명상 수련에 들었다.
하루 중에도 말을 나누는 것은 일순간일 뿐, 거의 모든 시간을 명상수련에 쏟았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말을 걸기도 미안할 정도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진건곤은 자신의 무공을 더 강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언제까지 처에게 보호받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던가?
가끔씩 전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검후. 강호에서 가장 강해진다는 것,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줄로만 알았던 소군이 촌각을 아껴가며 수련을 하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수련에 박차를 다하는 이유는 자신이 더 강해질수록 전란을 막는 일이 더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건곤은 그 생각을 하며 현천기공을 수련하며 생각을 했다. 소군에게 자극을 받아서인지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이 덧없는 길처럼 느껴졌다.
단지 아버지의 복수와 동생을 건사하기 위함으로 달려온 길이었지만 이제는 무언가 다른 뜻을 품고 싶었다.
이제껏 타인에게 별관심을 주어본 적이 없었던 진건곤이었으나 이제는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무공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대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우와 이야기할수록 이미 관에 그 세력이 곳곳에 숨겨진 것으로 보이는 마교였다.
그들이 일시에 일어난다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위시한 전 무림이 나서서 마교를 억제한다고 해도 전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그들 외에도 극사처럼 뛰어난 고수들이 동참한다면 그야말로 전쟁에 가까운 싸움이 될지도 몰랐다.
진건곤은 그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이다.
자신과 같이 부모를 여의고 떠도는 아이들이 생길 것이었다. 생각만으로도 그들이 가여워졌다. 그렇게 생각하며 몰아일여에 들었다.
그날, 진건곤의 몰아일여는 삼라만상에 그 범위가 미쳤다. 바위도 강도 초원도, 그리고 사람들마저도 몰아일여의 경지가 되면 나와 너를 구분할 수 없는 경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다가올 피의 강과 시체의 산이 마음에 걸리고 걸리게 되었다.
이제와는 다르게 현천기공으로 몰아일여에 들어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아 있는 진건곤은 그동안 전혀 없었던 심마 자신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 심마를 잘라내고 싶지가 않았다. 어쩌면 현천기공이 심마에 들고도 주화입마에 들지 않는 것에는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심마는 바로 측은지심(測隱知心)이었다.
본디 불가의 측은지심은 그 범위가 삼라만상에 미친다 하였다. 진건곤의 몰아일여가 그랬고 측은지심이 그랬다.
삼라만상이 다시 일어서는 기쁨보다 쓰러져가는 것들이 더 가슴 아팠다. 소군이 검을 쓰게 되어도 손속에 사정을 두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그녀는 나에게 필요했던 사람일지도……!’
진건곤의 메마른 인생에 필요했던 감정이 그녀로 인해 채워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소군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몰아일여를 통해 그녀의 감정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지도 몰랐다.
진건곤이 귀제갈이 말하는 진짜 천자(天子)라면 그녀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전했는지도……!
어쨌거나 진건곤은 타인의 아픔을 막아가는 일에 나서기 위해 현천기공을 닦게 되었다.
진건곤의 눈이 마차 밖의 세상을 보고 있었다. 마차는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나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추영반이라는 직위를 생각하면 모두를 조아리게 하고 달려 나갈 수도 있었을 터지만 은밀하게 움직여야 했기에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건곤은 문득 배고픔을 느꼈다. 자신이 아니었다.
눈에 들어온 아이에게서 느낀 것이다. 아이의 옷가지를 보니 구멍이 듬성듬성 나 있었는데 기우 기는커녕, 이미 여러 날 빨지도 못한 것이었다.
쪼로로록!
아이의 배꼽시계가 울었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보다 못한 진건곤이 만두를 던졌다.
툭!
마차에서 날아간 만두가 비쩍 마른 소년의 손 안에 들어갔다.
받을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소년이었지만 떨어트리지 않아도 될 만큼 절묘한 솜씨로 던져진 만두였다.
소년은 손 안에 만두를 보고도 바로 먹지 못하고는 마차를 보았다. 허락을 구하는 것이리라.
진건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를 살피더니 그제야 만두를 입에 넣는 아이였다. 어른 주먹만 한 커다란 만두였는데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도 저랬었을까?’
과거의 운현이 자신을 보았을 때 그렇게 보였을까를 생각하는 진건곤이었다.
만두를 먹는 아이의 눈은 세상과 벽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만두를 던져 줄 때까지 이렇게 화려한 마차가 지나가는데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아이였다.
진건곤에게 아이의 눈빛이 참으로 슬퍼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게 감정을 가져본 것도 참으로 오래만이었다.
문득 진건곤의 손에 따스함이 느껴졌다. 소군이었다.
“처음 보네요.”
“뭘요?”
다시 묻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자신이 한 번도 타인에게 먼저 말을 건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먼저 무언가를 했던 것이었다.
“그런가요?”
“네, 상공. 이런 모습 처음이에요. 다행이에요.”
무엇이 다행이라는 것일까? 소군은 그저 흡족한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다.
어려서부터 헤쳐 왔던 약육강식의 숲이었다.
동생을 데리고 어린 나이에 나와 겪었던 배고픔과 고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긴 가뭄이 세상의 인심을 모두 사라지게 만든 후라서 더욱 그랬다.
세상에 떠돌며 진건곤이 느낀 것은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아니면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장 교원은 재산을 몰수하여 갔다. 그래도 전혀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있는 것을 모두 정리한 돈을 들고 길을 나섰었다. 떠도는 사이 방향이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어른들이 있는 그 일행은 어쩐 일인지 진건곤과 진려경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하여 진건곤은 그들의 일행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진건곤이 가지고 있던 돈뿐, 진건곤이 주머니에서 꺼내던 돈을 보고 친근하게 굴었던 것뿐이었다.
진건곤이 가지고 있던 돈이 떨어지게 되자 다음 날 새벽 그들은 떠나고 말았다. 진건곤과 진려경의 옷가지가 들어 있는 보퉁이까지 들고 말이다.
이제는 완전한 거지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야 했다. 진건곤의 몸이 어린 나이에 비해 지구력과 날랜 데가 있어 잔심부름이라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동네 토박이들이 나서서 텃새를 부렸고 진건곤과 진려경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쫓겨나야만 했다. 진건곤은 그들의 몽둥이와 발길질에 견딜 수 있었지만 진려경은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연히 진려경을 따로 떼어두고 음식을 훔쳐다 먹이기를 반복하며 근근이 버텼는데 그나마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네마다 각다귀라는 것들이 있어 시비를 걸어왔다. 한때는 진건곤의 남매를 데려다 길러주겠다는 말에 진건곤은 각다귀의 졸개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달이 지나기도 전에 그들이 진려경을 팔아먹을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나뭇가지로 눈에 구멍을 뚫어주고 동생의 손을 이끌고 도망쳤던 것이다.
세상천지 어느 곳에도 자리 잡을 곳이 없었다. 그렇게 삼(三) 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자 진건곤의 성격은 세상에 관심이 사라지고 말았다.
타인이란 오직 자신을 이용해 먹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청명과 운현을 만났고 인정이라는 것을 알만해질 때쯤 그곳에서도 역시 순탄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 동생과 헤어져 지내야만 했던 것이다.
진건곤의 인생은 무공과 자신밖에 없었다. 스스로 강하여 버텨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생각. 스스로 누군가를 도우려고도,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공을 처음 펼치던 그날도 그의 손속에는 자비란 없었다. 초계산의 혈귀는 그런 진건곤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이제는 조금씩 깨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청명과 운현, 청송이 있었고, 광우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소군이 있다. 또한 몰아일여를 통해 경지가 높아질수록 다른 자들의 슬픔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몰아일여와 측은지심을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한 진건곤이었다.
하북성에는 전통의 명가가 있다. 바로 진주언가!
하지만 지금은 진주언가가 자신의 터전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환천삼보가 묻혀 있는 곳이 바로 평리라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위시한 정파의 문인들뿐만 아니라 사마외도, 낭인들이 모여들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이 있었는지 평소라면 그만한 인원을 모으는 것조차도 힘들 지경이었다.
“으으! 정말 많구나. 평생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어.”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평리의 객잔에 들어선 두 형제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당탕탕탕!
걸상이 나르고 탁상이 날았다. 거친 낭인들과 사마의 피라미가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나서라!”
“으이고! 저런 피라미들은 분위기가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건가?”
동생으로 보이는 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객잔 주인이 원하는 수리비만 받고 보네. 버릇을 고쳐주기에는 시기가 너무 좋지 않다.”
“형님도 참 너무하시오. 내가 그 정도도 모를 것 같습니까?
진주언가는 너무나 많은 무인들이 모여든 탓에 모든 힘을 세가를 방비하는 곳에만 집중하고는 외부로의 나서서는 규제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너무나 많은 인원 탓에 터전의 주인인 진주언가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탈이 나지 않게 최소한으로 관리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평리는 어떨는지? 그런 곳에 내가 가야 하는데 고작 저런 피라미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어야 한다니. 으이고.”
진주언가의 일원인 사내는 피가 끓었다.
강호를 독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내공과 무공. 그리고 진법이 숨겨져 있다는 곳에 왜 진주언가는 나서지 않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내는 이례 전 가주가 식솔들을 모두 모여 놓고 엄정하게 말하던 말을 떠올렸다.
“평리는 진주언가의 권한이다. 환천삼보가 있다면 자당 진주언가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환천삼보가 있다면 그런 것이다. 본인은 평리에 부는 풍운이 거짓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웅성웅성!
진주언가의 식솔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웅성거렸으나 가주의 표정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우리 진주언가는 평리에서 가장 가까운 무림의 세력이다. 우리가 어찌 안방과도 같은 평리의 보물을 내어주겠는가? 이백 년 전, 풍운이 식은 후에도 본장의 장로들이 매년 서너 달씩 비밀리에 평리를 수색하여 왔다. 그것도 근 이백 년이 다다른 기간 동안을 말이다.”
웅성웅성!
진주언가의 식솔들조차도 모르게 이백 년이 다 되도록 환천삼보 찾기를 계속해 왔다는 말이었다.
“그런 우리를 제치고 다른 자들이 환천삼보를 찾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함정(陷穽)! 함정(艦艇)! 함정(陷穽)일 것이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 식솔들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본가의 가주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리겠다. 진주언가는 평리에 나가지 않고 본가를 지키는 것에만 총력을 다하라! 장로님들이 계속해서 환천삼보를 쫓아 움직이고 계시니 환천삼보가 나온다면 반드시 얻어내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게 말이네. 진주언가의 자랑이라는 진상주먹 잔혹마 언진상이 이런 곳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왔냐? 그리 앉아라! 진상주먹은 빼라, 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상대는 진주에 자리한 개방 분타의 소개였다. 매듭은 겨우 두 개에 불과하나 그 내용은 만만치 않은 자였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매듭 4개는 달 능력이 있었던지라 적어도 분타주는 해먹을 자, 운이 좋다면 장로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진상아. 소식 들었냐?”
“무슨 소식?”
“흐흐흐, 따끈따끈한 소식이다. 어찌 맨입에 먹으려 하느냐?”
진상이 걸상을 당겨 앞으로 몸을 당겨 앉고는 손을 들어 점소이를 불렀다.
“구운 오리, 분주 한 병.”
이미 여러 번 정보를 거래한 탓에 오고가는 게 이미 정해져 있었다.
“평리에 글이 써진 동굴 벽을 보았다는 사냥꾼이 나타났다.”
“가짜 아니냐?”
언진상은 심드렁히 말을 이었다.
“다른 어르신들도 똑같은 의심이 있으셨지 그래서 개방에서 뒤를 캐보니 일단은 실제 사냥꾼이 맞는 것으로 나왔다. 어떠냐? 냄새가 솔솔 나지 않냐? 분주 대신 죽엽청으로 바꾸면 안 될까?”
“오리고기만 먹겠다고? 어이 점소이!”
“아냐. 아냐. 분주라도 먹어야지. 그런데 말이야 너 오늘 세게 나온다?”
평소라면 죽엽청 정도는 우려먹을 정보를 흘리는데도 꼼짝도 않는 언진상에게 던진 말이었다.
“평리. 그런 것 난 모른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접근도 하지 말라는 명이다.”
“에헤? 지척에서 환천삼보가 나왔는데 진주언가는 움직여 보지도 않는단 말이야?”
걸개가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언진상을 보자, 언진상은 손을 들어 걸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위험하다고 장로님들만 가신 댄다. 우리 같은 실력이 딸리는 것들은 그냥 기다렸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데. 그런데 넌 왜 이곳에 있냐? 구경이라도 하러가지?”
“쩝! 개방도 마찬가지다. 총분타에서 나온 고수들 몇 명이 나선 댄다. 여기서 잔심부름만 하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네.”
점소이가 가져온 분주를 받아 입에 털어 붓는 걸개였다.
“이 자식! 같이 마셔야지!”
털어 넣는 호리병을 낚아채는 언진상이었다.
환천삼보가 나타났다는 곳 평리!
이백 년 전 환천삼보의 소문이 있고 난 뒤에는 무인들이라고는 거의 볼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척에 깔린 것이 무인이었다.
그 많은 무인들은 어느 곳을 향해 움직이거나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한곳에 뭉쳐 우두커니 있을 뿐.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구파와 오대세가의 강호명숙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확인해 본 결과 사실이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확인해 봅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자는 제갈세가에서 나온 궁뇌 제갈신여였다. 머리 돌아가는 것이 화살처럼 빠르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임기응변이 뛰어난 자였다.
제갈신여가 일어서자 강호명숙들이 모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사냥꾼이 길안내 삼아 앞으로 나아갔는데 가리켰던 곳에는 일정한 곳에 가자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이상합니다요. 이곳에 분명 동굴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지 않습니까? 분명히 이곳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사냥꾼은 커다란 바위 절벽 아래에 멈춰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절벽의 벽을 만져 보기도 하고 두드려보기도 하며 절벽을 더듬고 있었다.
“하하, 나 참. 이곳에 있었을 텐데?”
사냥꾼은 참으로 열성적으로 찾고 있었다. 바로 무인들이 약속한 황금 한 냥 때문이었다.
“되었다. 가 보아라!”
제갈신여는 수행원에게 눈짓을 하여 황금 한 냥을 주어 보내라는 표시를 하였다. 무언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사냥꾼이 사라지자 기막을 펼쳐 음성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더니 입을 열었다.
“천리지은생진(擅離地隱生陣)입니다. 시간이 바뀔 때마다 입구가 바뀌는 진법이지요. 지금이 미시니까. 저쪽쯤에는 입구가 생겼겠군요.”
작은 돌멩이를 손으로 가리켰던 곳을 향해 던지니 아무런 저항도 없이 절벽을 통과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인들 중에 하나가 신형을 날려 돌멩이가 사라진 곳에 들어서려고 했다. 게다가 그 모습에 또 다른 무인들이 신형을 날리려고 했으나 그들은 그러하지 못했다.
빡!
“컥!”
돌멩이가 사라진 곳에 들어서려던 자가 바위에 부딪혀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유는 얼굴을 찌푸렸다.
“절묘한 배치에 엄청난 규모의 진이로다! 진주(陳主)로 사용한 것이 백장이 넘게 떨어진 바위산이요. 동산이니 이곳에 진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보지 않는 이상 누구라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진법입니다. 대단한 발상입니다.”
제갈신유는 말을 멈추고는 스스로 감탄한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약한 진입니다. 하루 사십팔 개의 입구 중에 열리는 곳은 오직 한 곳. 그중에 함정이 없는 곳도 오직 하나. 무려 이천삼백네 번의 조합이 있고서야 또다시 문이 열리는 겁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입구를 찾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게다가 그 입구라는 것이 열리는 시간이 한식경뿐이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요. 또다시 입구가 열리는 데에만 족히 여섯 달은 걸릴 겁니다. 지금 제가 던진 돌멩이가 들어간 곳은 그저 공기구멍입니다. 작은 빈틈으로 공기를 갈아주기 위한 것, 사람이라면 갓난아이라도 어림없는 크기입니다. 이러한 진이라면 제갈세가에서도 사용하고 있지요. 본가에서는 폐관수련을 하여야 할 때 사용하는 진법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제야 강호명숙들은 이해가 갔다.
여섯 달 동안 겨우 한번 열린다면 강제로 폐관 수련을 시키는 곳이 아닌가?
“그럼 이곳에 진법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말입니까?”
아직도 못 미더운 듯이 묻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모용세가의 천류엽 모용상이었다.
“그렇습니다.”
“뚫고 들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하! 그렇게 간단하게 될 일이라면 누가 저런 진법을 쓰겠습니까? 적어도 십 장 이상을 파고 들어가야 할 일입니다.”
제갈신유의 답에도 모용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곁에 있는 운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일위강 당수기도 역시 운현의 곁으로 다가왔고 개방의 질풍개도 역시 운현의 곁으로 다가섰다.
이미 살인막의 막궁에서 운현의 무지막지한 길 뚫기를 보았던지라 운현과 함께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자들은 그것을 다른 의미로 받아 들였다.
무림대회를 기점으로 화산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곳에 제갈신유도 역시 다가섰다. 아미에서 나온 정법 사태도 역시 그곳에 섰다.
소림의 곁에 종남과 형산, 산동악가, 황보세가가 모여들었고 무당의 곁에 곤륜, 청성, 남궁세가, 공동, 점창이 모여들었다.
“흐흠! 그럼 세 군데로 뚫고 들어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금 이대로 움직인다고 해도 불만은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제갈신유는 손가락 마디를 접어 계산을 하더니 세 곳을 짚어 표식을 남겼다.
“내일 낮 사시, 오시, 미시에 들어설 곳입니다. 준비는 각자 알아서들 하시고 어디로 들어갈 것인지 정하도록 합시다.”
순서를 정하고는 다음 날을 기약했다.
다음 날.
제갈신유는 무림인들을 모아 놓고 입을 열었다.
“이곳의 진법은 천리지은생진(擅離地隱生陣)이요. 이 진의 특징은 일 각마다 입구가 바뀐다는 것이오. 똑같은 입구를 찾아오는 데는 무려 육 개월 이상이 걸리는 진법이요.”
천리지은생진을 아는 자는 아는 자대로 모르는 자는 모르는 자대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무인들의 반응을 보면서 제갈신유의 입이 다시 열렸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숙들은 모두 세 조로 나누어 행동하기로 했소. 허나 동굴이라는 특성상 모두가 같이 들어갈 수는 없소.”
“우우우우우우!”
“빌어먹을 수작이구나.”
“네놈들만 해쳐먹겠다는 것이로구나!”
무인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제갈신유가 다시 손을 젓자 좌중은 다시 조용해 졌다.
결국은 들어갈 방법이 있고 고수들이 있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숙들에게 칼자루가 쥐여져 있는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대들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소.”
“와와와와와!”
짝짝짝짝!
“역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요.”
그들은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말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얼굴을 바꾸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우리가 들어가서 스스로 몸을 챙기기도 어려운 바, 동굴에 들어가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들만 같이 들어가기로 했소. 그 기준을 일류 고수 이상의 자만 나서시오.”
환호하던 무인들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더 이상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들의 사이에서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정인 사람과 일류인 사람은 좌우에 나누어 서길 바라오.”
그렇게 각각의 조에는 절정의 고수 오(五) 명과 일류 고수 이십 명이 배정되었다.
남아 있는 자들은 아무도 그들의 진입을 방해하거나 야유하지 못했다.
구파일방의 무인들은 검과 도에 도기와 검기를 두르고 바위를 뚫고 들어갔으나 그 구멍을 오래 쓸 수는 없었다.
일 각이 지나고 나면 환천삼보가 있다는 구멍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변해 버렸기 때문에 절벽에 구멍을 내어도 허사였다.
게다가 남아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곳에 시간을 맞추어 절벽을 깎아낼 능력이 있는 자들은 없었다.
치이이익!
소림의 장로가 자신의 선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말을 꺼냈다.
“크으! 지독하구려.”
쇠로 된 선장이 한순간에 녹아 흐물대니 촛농처럼 녹아 떨어졌다.
종남, 형산, 황보세가, 산동악가. 그 면면으로 보아 어느 하나 만만한 자들이 없었으나 그들의 표정이 이미 지친 흔적이 역력하였다.
동굴에 들어선 지 사흘. 함정에서 쏟아지는 암기와 독물들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면면이 훌륭한 고수들이었으니 처음에는 그럭저럭 잘 막아내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악랄한 함정을 막아 내고 나니 마음이 풀렸었다. 허나 함정을 설치한 자들은 그 마음의 빈틈마저도 노리고 있었다.
함정을 막아내고 난 뒤 통과하고 있었을 때였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던 곳에서 또다시 독액과 암기가 쏟아져 나왔다.
황망히 병기를 뽑아 막아갔으나 암기는 쳐내어도 독을 모두 막지는 못했다. 많은 무인들이 완벽하게 방어하지 못하고 자잘한 상처와 독에 중독되고 말았다.
시작은 그렇게 작았다. 허나 시간이 지나고 함정을 거듭하면 할수록 처음 방심으로 당했던 상처가 크게 작용했다.
함정은 심리적인 빈틈을 찾아 시간 차이로 작동하였다. 그것을 모두 피해내지 못하고 상처가 쌓이고 쌓이더니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진건곤의 일행은 부지런히 하남성의 개봉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본디 목표는 개봉에 있는 개봉부. 개방의 총단과 소림이 있는 곳. 그곳에서 개방의 힘을 빌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인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힘을 빌리기로 하였었다.
요즘 들어 부쩍 마차 밖을 많이 보는 진건곤이었다.
몰아일여를 통해 세상에 관심이 많아진 탓이었다.
마차가 관도를 따라 달리고 있었는데 길 밖의 숲속에 검은 기운이 높이 솟구쳐 있는 것을 보았다.
“무엇 때문인데요?”
소군이었다. 진건곤의 얼굴에 거리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검은 기운이 있소. 요괴의 기운이 너무 진한 것 같소. 사람을 해칠 만한 요괴라도 있는 것 같구려.”
“상공이 걱정하실 정도면 위험한 놈인가 보군요.”
“그렇소. 저건 웬만한 도인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구려.”
기실 동네에 기변이 생기면 동네 사람들은 돈을 모아 주술사나 도인들을 사와 해결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 진건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 불길한 기운이나 요기가 하늘에 뻗치고 있는 것이었다.
중원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주술사라도 쉽게 보고 덤빌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가요!”
소군이 검을 들고 일어섰다.
하지만 진건곤은 광우의 의중을 살펴야 했다.
“이대로 달려가세요. 우리가 마차를 따라잡지요. 일정에는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을게요. 그래도 되겠지요, 아주버님?”
소군의 말이 모든 것을 해결해 버렸다.
“하하하! 제수씨가 그러고 싶으시다면 그래야지요. 일정에 차질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다녀오세요.”
광우는 말은 그리했지만 이미 아미에서 검후의 무공을 견식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런 검후가 사부와 함께 움직이면 지체될 만한 일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군은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진건곤을 채근하여 데리고 나갔다.
두 사람은 허공을 날듯이 마차를 빠져 나가자 광우의 곁에 있던 자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사부님께서 요괴를 볼 수 있다니 말입니다.”
상관의 사부이니 상관의 체면을 보아 자신도 그렇게 불렀다. 나이가 많으면 노사라는 호칭으로 무난했으나 나이가 너무 젊으니 딱히 호칭이 애매했다.
“하하하! 그러니 내 사부가 아니겠느냐? 나 광우의 사부야말로 대단한 사람이고말고. 검후마저 안 사람으로 거둘 정도는 되는 사람이란 말이지.”
광우의 거드름이었지만 그는 진심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추영반님의 사부님 덕에 천하제일인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니 대단한 영광이지요.”
그도 역시 소군이 천수불영검을 완성하는 장면을 보았던지라 천하제일인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하늘을 날아가는 경공을 보여주는 소군을 보면서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자신과 같은 마차를 타고 있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진건곤이 본 검은 기운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은 화전민들이 오십여 호 정도가 모여살고 있는 작은 촌락이었다.
“오싹한 기운이 드네요.”
소군조차도 도착하자마자 오싹함을 느낄 정도로 음습한 기운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이것을 보십시오.”
진건곤이 소군의 손을 잡았다.
진건곤의 몸에서 일렁이는 백색의 빛이 일어나더니 소군에게로 옮겨 갔다.
“세상에나……! 아미타불!”
소군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어쩔 줄을 모르고 연방 불호를 외쳤다.
맨 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진건곤의 상천의 힘이 자신의 몸에 깃들자 온 마을에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을을 꽁꽁 휘감고 있어 그야말로 거미소굴이라도 온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얼마 묵지도 않은 놈이 요기가 엄청나네요. 가만히 두면 틀림없이 재앙이 될 놈입니다. 갑시다. 저곳이네요.”
진건곤이 말하는 곳을 보니 검은 기둥이 솟아 있었고 연기가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군은 사방에 퍼진 거미줄에 자신도 모르게 위축이 되어 진건곤을 따라 움직였다.
진건곤과 소군이 움직이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주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손에는 쇠스랑과 도리깨, 호미 등과 같이 무기로 쓸 만한 것들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퀭하고 기력이 쇠해 보여 오랫동안 요괴에게 시달려 온 것처럼 보였다.
“어딜 들어가느냐?”
촌민들은 저마다 소리를 치며 손에든 것들을 휘둘러 진건곤과 소군을 공격해 왔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진건곤과 소군의 그림자조차도 스치지 못했다.
진건곤은 그들을 무시하고 검은 기둥이 서 있는 곳으로 곧장 나아갔는데 그곳에는 화전촌에서 가장 큰 집이 있었다.
촌민들은 감히 그곳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듯, 집의 바깥쪽에 멈추고 말았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아!
가까워질수록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닌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는데도 묘하게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가아아아! 가아아아아아!
-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이곳의 사람들이 당장 죽을 것이야. -
진건곤은 그 소리에 웃음을 터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하하하하! 그럼 그냥 가면 사람들을 놓아주겠느냐?”
끼이이익!
방문이 열리자 그 안에 자리 잡은 미부(美婦)가 보였다. 춥지 않은 날씨였는데도 이불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이상할 정도로 기이한 열기가 올라왔다. 욕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원시천존!”
“아미타불!”
도호와 불호가 울리고 욕정의 기운을 끊어내자 미부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올랐다.
“흥! 요망한 것. 이미 네 정체를 아는데 감춰서 무엇하려고? 구차하게 굴지 말고 일어서라.”
진건곤은 그 모습에 가멸찬 듯 냉소를 피웠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아!
- 흥! 네놈이 물러서면 사람들이 당장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
파바밧!
진건곤의 손에서 권풍이 일어 돌개바람이 불었다.
이불이 날아가고 그 속의 모습이 들어났는데 아름다운 미부의 얼굴에 여덟 개의 다리가 달려 있었다.
이상한 것은 거미의 꽁무니 쪽으로 투명한 주머니 같은 것이 달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작은 게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인면지주의 새끼들이었다. 여덟 개의 다리 옆에는 이미 인골이 여러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새끼들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인간의 것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소군이 그것을 보더니 얼굴에 무서움이 사라지고 노여움으로 가득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간악한 것. 당장 눈앞에 인골이 있거늘, 거짓말을 치는구나.”
가아아아아! 가아아아아!
- 흥! 적어도 당장 죽지는 않겠지. -
“이 작은 화전촌의 주민들이 네 욕심을 채울 수 있다는 거냐? 네놈은 어찌어찌 참더라도 새끼를 낳으면 결국에는 다 잡아 먹고 다른 곳을 찾을 것이 아니더냐? 지금도 새끼를 위해 남겨 놓은 식량일 터. 몸이 가벼워지면 네놈은 또 다른 곳을 찾겠지.”
가아아아아! 가아아아아!
- 네놈. 옥주궁파에서 나왔더냐? 지나가던 도인이 아닌 것 같구나. 그곳에서 나왔다면 피해갈 수 없겠지. -
옥주궁파라면 모산파다. 진건곤이 자신의 앞일을 손바닥 보듯이 하자 당장 모산 옥주궁파라는 말이 나왔다.
우드드드득! 우드드득!
인면지주가 몸을 일으키자 투명한 주머니가 뜯어지고 그 안의 새끼들이 밖으로 새어 나왔는데 공기를 쏘이자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발광을 하다가 잠잠해졌다.
가아아아아! 가아아아아!
- 네놈 때문에 백일적공(百日積功)이 사라졌다. 네놈과 저년의 몸으로 양분 삼아 더 많은 새끼들을 낳으리라. -
인면지주의 눈에 혈광이 번쩍이고 살기가 흘러 나왔다.
“주제를 알아야지. 네놈 같은 미물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네놈은 오늘 소멸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진건곤은 인면지주를 아주 얕보고 있었는데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인면지주는 살기와 요기가 아주 짙어 대요괴가 될 자질은 있었으나 천 년도 되기 전에 상천의 힘을 쓰는 진건곤을 만났으니 그 운명이 짧은 놈이 틀림없었다.
우연히 지나치다가 요기의 기둥을 보게 된 것은 필시 하늘이 요괴가 자라기 전에 미리 싹을 자르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누님은 저와 영력(靈力)을 나누고 있습니다. 영력을 나누고 있는 이상 누님도 역시 저놈과 싸울 수 있습니다. 누님이 단죄하셔도 됩니다. 그다지 오래 묵은 놈이 아니니 충분할 겁니다.]
소군의 손이 인골을 보는 순간 잠시 분노에 떨렸던 것을 알고 있었던 진건곤은 소군에게 기회를 주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아 몰랐거늘. 네놈 같은 것들이 세상을 좀 먹고 있었구나.”
가아아아아! 가아아아아!
- 크크크! 네놈들의 솜씨로 그럴 수 있겠는가? -
소군의 손이 움직이자 섬광이 토해졌다. 아미파의 전설인 천수불영검이 영력의 힘을 빌려 또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인면지주는 소군이 쏘아낸 섬광을 피하지 못하고 입에서 거미줄을 토해내 섬광을 막아갔다.
파샤샥!
섬광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거미줄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나가고 인면지주의 인면에는 놀라움이 서렸다.
하지만 그 표정이 완성되기도 전에 섬광은 인면지주를 산산조각으로 파쇄(破碎)해 나갔다. 머리부터 꽁무니까지 한 점도 온전한 부분이 없었다.
한 번의 출수만으로 싸움이 끝났다.
기본적으로 소군의 무공은 인세에 보기 드문 것. 그 위의 상천의 힘을 쓰는 진건곤의 영력이 쌓였으니 인면지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소군은 또다시 섬광을 쏘아내었다. 인면지주가 남겨놓았던 알주머니를 향한 것이었다.
그것마저도 산산조각이 나자 그제야 표정을 푸는 소군이었다.
“가…감사합니다.”
진건곤과 소군을 보며 고맙다는 말을 하는 농군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 중에 혼자만 집안에 들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마도 집주인이거나 촌민들의 대표인 듯하였다.
인면지주가 죽자 최면이 풀렸고 이지를 회복한 것이리라.
“어… 어찌 이 은혜를…….”
“갑시다.”
진건곤이 경공을 시전하여 날아올랐다. 소군도 역시 경공을 펼쳐 진건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농군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선이여. 신선인가벼!”
촌민은 급히 방에 들어가더니 향을 가지고 나와 불을 붙였다. 진건곤과 소군이 사라진 방향으로 대례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촌민들의 감사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하하하! 벌써 오십니까?”
광우가 기쁜 얼굴로 반색했다. 믿고는 있었지만 떨어져 가는 것이 좋지는 않았다.
앞으로의 일에 소군에게 의지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쉬운 상대였습니다.”
“하하하! 사부님에게 어려운 상대가 있겠습니까? 당연한 일이지요. 사모님도 함께 가셨으니 더더욱 그랬겠지요.”
“하하하! 형님은 저보다 누님이 더 미더우신 모양입니다. 섭섭합니다.”
진건곤의 말에 광우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하하하! 사부가 그런 말도 하실 줄 압니까? 하하하하! 역시 남자는 장가를 가야 변하나 봅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광우가 기쁜 모습을 하자 진건곤이 머쓱해했다.
소군도 역시 기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하! 이제 아기만 보면 사부도 많이 부드러워지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사모님. 하하하하!”
아기라는 말에 소군이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광우는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
“하하하하! 검후께서도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군요. 그렇게 웃기만 하면 딸이 나온 답니다. 그리 숫기가 없으면 줄줄이 딸만 셋을 볼 수도 있겠어요. 하하하하!”
한참 동안 광우의 웃음만 울렸다.
소군과 진건곤은 손을 탈탈 털었다.
그들의 앞에는 호랑이에게 들러붙은 아귀의 시신이 있었다. 어쩌다 사람의 고기 맛을 본 아귀는 호랑이에게 들러붙어 산신의 역할을 하며 인간을 제물로 받아먹으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또다시 산중에 솟은 검은 기운을 보고 움직여 찾아낸 것이었다.
“나무아미타불! 이런 것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줄 저도 역시 몰랐습니다. 사흘에 한 번이 멀다 하고 이런 것들이 눈에 뜨이다니요. 세상에 너무 많은 마물들이 있나 봅니다. 옥주궁파에 필요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으니 이들 요괴나 마물이 설치는 것이겠죠.”
“하아! 모산파가 이런 일을 하다니요. 그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정화하는 일을 했던 것이군요.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무공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이 하고 있다는 게 참으로 대단하여 보입니다.”
소군은 천수불영검을 얻고 무공의 끝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진건곤이 영력을 빌려주지 않으면 요괴나 마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소군이 볼 수 없다면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는 무인은 세상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도 무인들이 이런 것들을 보고 상대하려면 진건곤처럼 상천을 열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공으로 상천을 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진이라는 명문도가가 사라진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백자에게 들으니 가끔 도문과 불문에도 깨달음을 여신 분들이 있으시다 들었습니다. 그분들께서도 이런 마물들을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 최근에 들어 도문과 불문에 깨달음을 얻으신 불들도 잘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참으로 암울한 시기입니다.”
소군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어찌 그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깨달음은 없어도 수련으로 정진하여 도력과 불력이 높으신 분들이라도 있으면 이런 것들을 제압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천의 힘을 사용하는 모산파의 능력에 비하면 미비한 것이지요. 지금처럼 이런 것들이 설치는 이유라면 모산파에 그런 인재들이 없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겁니다.”
“앞으로는 좋아지겠지요. 백자가 상공에게 현천기공을 배워갔으니까요. 백자가 모산파의 힘을 기를 동안 상공께서 조금 더 힘을 써주면 될 겁니다. 저랑 같이 해요. 이런 것들에게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모르면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됐으니 앞으로 이런 일을 없도록 노력해야지요. 나무아미타불!”
소군은 은근히 진건곤이 이런 것들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하고서도 사람들이 마물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향해 명복을 비는 소군이었다.
진건곤으로서는 자신과는 다른 그런 소군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달라서 너무나 소중해 보이는 진건곤이었다.
‘누님의 마음이 보기 싫지가 않소. 그럼 나도 앞으로 열심히 나서 보겠소.’
소군의 측은지심은 진건곤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아! 빨리 돌아가지요. 추영반께서 걱정하시겠어요.”
벌써 여러 번 마차를 떠나 요괴를 사냥해 온 진건곤과 소군이었다.
그때마다 짧게 끝난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걸렸다. 산신(山神)을 자처하며 인신공양을 받던 호랑이는 진건곤과 소군이 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사정없이 달려 도망을 쳤던 것이다.
아귀가 붙은 호랑이의 질주가 너무도 빨라 따라잡는데 시간이 좀 소용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겉으로는 좋다고 해도 우리가 나서면 조금은 서운한 눈치입디다. 하하하!”
“하지만 이런 요괴를 알고도 눈감을 수는 없지 않아요? 어쨌건 마차를 따라잡으면 일정에도 지장은 없는 것이고요. 그렇지요, 상공? 나무아미타불!”
소군에게 조금은 참아보자는 눈치를 준 것이건만 소군은 전혀 참을 마음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추영반보다 고통 받고 있을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나 보았다.
“하하하! 누님 말이 맞습니다. 원시천존!”
진건곤은 역시나 소군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형님! 무인입니다.”
진건곤이 광우에게 언질을 주었다.
광우의 곁에 있던 자가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자 마부와 마차 위에 타고 있던 자들이 모두 검을 꺼내어 방비를 하였다.
“곤방(坤方)에 걸인 출현.”
소리가 울려 보고가 들어왔다.
잠시 후 마차의 안으로 서찰이 하나 전해졌다.
<환천삼보의 장소가 밝혀짐.
이미 구파일방의 고수들이 삼 개조로 나뉘어 진입했음.
군자검 운현도 역시 투입되었음.>
“환천삼보라! 그것 참 문제로 군요. 세상을 혼란시킬 것이에요.”
“세상에 그런 것들이 풀린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겠습니다.”
진건곤과 소군의 걱정스러운 대화를 듣던 광우가 끼어들었다.
“환천삼보라면 이백 년 전부터 소문이 떠돌던 보물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게다가 가일구층황금공으로 군자검께서 천하제일 내공이 되었단 소문도 있는데 말입니다.”
광우는 그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원래 보물이 나타나면 세상이 술렁이는 것 정도는 상식이 아니던가?
“형님. 실은 그중에 두 가지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두 가지나?”
광우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이미 한 가지 무공이 이지를 상실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살기가 진해지고 무공이 강해지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일정한 경지를 넘어서면 이지를 상실하고 피와 살육을 즐기게 됩니다. 아울러 욕정을 풀기 위해 닥치는 대로 여자를 밝히게 되고 말입니다.”
“만일 강호명숙 중에 한 명이 그런 일을 벌인다면 그 문파에는 커다란 혼란이 일지 않겠습니까? 또한 내외적으로 신뢰가 깨어지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말입니다.”
진건곤의 말에 소군이 보충 설명을 하였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의 내공을 흩어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무공입니다. 성공률도 극히 희박하고 말입니다. 실패한다면 내공이 없어지는 당연할 뿐만 아니라 생명이 위독할 정도입니다. 가히 익힐 만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허나 어디 무인들의 심정이 그것을 참아 내겠습니까? 내심 한 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어지고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요.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강호무림의 정기가 훼손될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이 누군가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떨까라는 점입니다. 추영반님.”
광우도 역시 암계를 겪어볼 만큼 겪어보았는지라 소군이 하는 말의 핵심을 꿰뚫을 수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그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그 틈을 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군요. 그리고 이렇게 강호무림의 정기를 흐려야 할 정도라면 그 일이 작은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두려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자 거기에 진건곤이 쐐기를 박았다.
“그 무리들이 무림에 자중지란을 일으켜 황권수호에 힘을 보태지 못하게 하는 의도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광우는 진건곤의 말에 한층 더 심각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관과 무림이 따로라는 철칙은 존중되었으나 그것은 오로지 황제가 그것을 인정하고 묵인할 때에 한한 것이었다.
황제가 무인들에게 준 선물과 같은 것이었는데 그것에는 한 가지 대가가 있었다. 황제가 필요할 때 빌려 쓸 수 있는 무력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강호무림을 동원할 수는 없었으나 바로 황권수호, 전란이나 전쟁과 같은 일이 나면 황제의 신민으로 싸움에 나서 도움을 주는 일을 했다.
실제로도 역대 왕조가 일어설 때, 무인들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고 또 이번 일에도 여차하면 무림인들을 동원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아마도 저희가 가서 환천삼보를 회수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아미타불!”
“형님! 환천삼보의 풍운은 향후의 향배와 관련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일은 꼭 처리해야 할 일입니다.
진건곤은 자신이 겪은 독룡살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안 그래도 민심이 흉흉해질 터인데, 이성을 상실하고 발작을 해대는 무인들이 수시로 나타난다면 민심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모른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광우도 역시 그 점에서는 공감을 하는 모양이었다.
향후에 전란으로 번진다면 무인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인들이 자중지란으로 무너지게 된다면 그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을 하고 난 광우는 쉽게 ‘그러마.’ 라고 허락해 주었다.
“하면 한 달 후까지 낙양에서 만나기로 하세. 가장 높은 객잔에 묶고 있을 것이야. 그곳으로 찾아오게. 물론 사모와 함께 와야 함이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광우에게는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다시 만나기로 하고는 따로 떨어져 움직였다.
진건곤은 소군과 함께 움직이는 동안 염정간옥의 검과 가일구층황금공의 구결을 알려주었다.
소군에게 다른 내공은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가일구충황금공에도 염정간옥의 검과 같은 함정이 숨겨져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가일구층황금공에 대해서는 더 연구를 해야 알겠지요. 하지만 염정간옥의 검은 분명히 있어서는 안 될 검이에요. 오랫동안 그 구결을 새겨본 결과 분명 십 성에 들어서면 더 이상 억눌린 살욕과 욕정을 참지 못하게 되요. 분명히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에요.”
“가일구층황금공도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제껏 있던 내공을 포기해야 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더 강해지기를 바라는 무인이라면 현재의 내공을 흩어내어 무(無)로 돌아가야 하니 삼류 무인만도 못 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사이 싸움이 나거나 암수라도 당한다면……?”
“또다시 혼란이 가중되겠지요.”
둘은 나란히 말을 타고 달리는 도중에 눈을 맞추었다.
가일구층황금공은 무림의 힘을 약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라고 단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일구층황금공의 전부는 아니었다.
전날 고루마군이 가의단공의 대법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 하여 귀제갈이 크게 기뻐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가일구층황금공에는 아무도 상상치 못하던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마교가 가일구층황금공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였던 것이다.
“가서 알려야 합니다. 아미타불!”
“알려도 믿어줄지 그게 걱정입니다. 누님.”
“다른 자들이 찾기 전에 없애야지요.”
“반발이 심할 텐데요.”
“어쩔 수 없습니다. 상공.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무림이 혼란에 빠져들 겁니다. 그게 바로 마교가 환천삼보를 세상에 뿌리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소군이 돌연 말에서 내려 달리기 시작하였다. 진건곤도 같이 말에서 내려 달리기 시작하였다.
일 각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행히 현천기공은 움직이면서도 시전할 수 있는 것이었던지라 현천기공을 운용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의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놓지 않았다.
진건곤과 소군이 평리에 도착한 것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일행이 진입한 지 삼 일이 지난 후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인들이 들어간 지 삼 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많은 무인들이 모여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실력이 출중한 이들이 온다면 그들을 따라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자들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절벽에 뚫려진 세 개의 구멍을 보면서 진건곤이 물었다.
“이미 들어간 자들이 있소?”
“눈에 안 보이쇼? 저기 저 구멍들이 왜 뚫렸겠소?”
무인들은 진건곤과 소군의 나이가 어린 것을 보고는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천하가 넓고 무인이 많다고 한들 수천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데 소군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소군을 알아보는 자들이 앞을 다투어 모여들었다. 또 소군을 본 적이 없어도 그 흐름을 보고 눈치껏 그 무리에 합류한 자들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기름을 부은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개방의 거지들이었다.
들어간 자들의 뒤를 봐주기 위해 그곳에 남아 지키고 있던 거지 중에 하나가 황급히 다가와 소군에게 인사를 하였다.
“소검후와 무곤님을 뵙습니다.”
“소검후?”
“와와와와와!”
무인들의 함성에 소검후의 인사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미 안으로 들어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고수들처럼 자신들을 들여보내 줄 고수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제야 개방의 거지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왜 이런 것이죠?”
어리둥절해진 진건곤과 소군이 그 이유를 물었다.
개방의 거지를 통해 전의 일을 알게 된 진건곤과 소검후였다.
“상공. 통로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진건곤은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답을 하였다.
몰아일여의 능력이라면 보이지 않는 곳도 어찌 움직이는지 알 수 있었다.
대답을 확인한 소군은 뒤를 돌아 무인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환천삼보는 가짜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환천삼보를 지우려고 왔습니다.”
“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우우!”
환호성보다 더 많은 아유소리가 울렸다.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자는 같이 들어가도 좋습니다.”
“와와와와와와!”
소군의 말에 또다시 야유가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무인들에게는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방법은 전과 같습니다. 일류 이상의 고수들만 같이 동행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몇몇의 인물들이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무공이 따르지 않는 자들은 또다시 똥 씹은 표정이 되어 뒤돌아섰다.
진건곤과 소군을 따라 들어갈 자들은 그 수가 도합 일곱 명에 불과했다. 절정의 고수가 한 명에 여섯의 일류고수였다.
소군은 그들을 확인하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상공!”
진건곤은 지체 없이 절벽의 한곳을 가리켰다. 이미 운기를 하며 몰아일여로 진의 흐름을 찾고 있었던 터였다.
번쩍!
꽈드드등!
소군의 검에서 빛살처럼 빠른 검광이 터져 나오고 절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번쩍! 번쩍!
해동의 진인 백노신의 도움으로 완성된 검후들의 검법인 천수불영검이 완벽하게 재현된 것이었다. 그 위력 또한 놀라워 일 검에 삼 장 여의 동굴이 파이고 있었다.
깨어 부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곳에 구멍만을 뚫어내는 것이니 더욱 어려운 일인데도 소군이 하는 일은 그리 어렵게 보이지 않았다.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 경지로 넘어가 버린 소군이었다.
무인들은 그 광경에 눈멀고 귀먹어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꽈드드드등!
꽈드드드등!
연달아 소리가 울리더니 속에 뚫린 구멍이 드러났다.
“갑시다.”
진건곤이 앞장서서 진입해 들어갔다.
몰아일여의 감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앞장선 것이었다.
절벽을 뚫고 진법의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화살과 표창이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누님!”
진건곤의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소군이 앞으로 다가와 암기들을 쳐내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이제는 말이 필요 없는 두 사람이었다.
진건곤은 그대로 앞으로 치고 나가 동굴의 벽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그그그극!
쇠가 동굴 벽을 긁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리고 더 이상 암기가 쏟아지지 않았다.
“들어오시오.”
나머지 인원들이 들어섰다.
진건곤과 소군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진법이 이동하길 기다렸다.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와 괜히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자 진(陣)이 바뀌며 입구에 어둠이 내리며 막혀버리고 말았다.
“갑시다.”
진건곤과 소군이 앞장서서 길을 열었다.
한참을 앞으로 나아가다가 갑자기 멈춰 선 진건곤이 검을 들어 동굴의 벽에 찔러 넣었다.
때로는 소군도 같이 나서서 벽을 통째로 잘라 내거나 동굴 벽에 검을 찔러 넣었다.
일행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게 있다가 진건곤의 허락이 떨어지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상하구나. 이백 년 전의 함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게다가 이렇게까지 많은 함정이라니 이건 아예 애초부터 작정을 하고 만든 곳과 같지 않은가?’
다른 이들은 눈으로 보지 않아 몰랐지만 함정을 해체하며 전진한 진건곤으로서는 그 많은 함정을 알 수 있었다.
땅바닥이 파여 있는 함정도, 지붕이 떨어져 내리는 함정도, 독액을 뿜어내는 함정도 있었다. 숱하게 많은 함정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함정의 수가 너무 많아 방비할 목적이 아니라 애초부터 사람들을 상하게 할 목적이었던 것 같았다.
“상공. 이런 것들이 이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는 생각지 못하겠어요.”
마침 소군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맞습니다. 함정의 종류도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동굴의 길이도 터무니없이 길어요. 이건 애초부터 사람들을 해치기 위한 것 같습니다.”
뒤따라오던 일행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빨리 가야 합니다. 그래야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어요. 아미타불!”
“우리도 빨리 가야 합니다. 이미 목표에 도달했거나 한곳에 갇혀 있을 겁니다. 이런 동굴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으니까요.”
일행 중의 하나가 진건곤과 소군의 대화에 끼어들었는데 그의 음성에는 조급함이 들어 있었다.
필시 보물을 차지하지 못하면 어쩔까 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을 것이었다.
“아미타불! 소승이 분명히 단언컨대, 환천삼보는 이미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으로 판단되었습니다. 환천삼보의 소문은 그 부작용을 무시하고 알려진 것입니다. 그 무공은 익히지 못할 겁니다. 제 손으로 지워버릴 것입니다.”
일행으로 따라온 자들의 얼굴에는 실망스러운 표정이 스쳐갔지만 그래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소검후라고 해도 눈보다는 빠르지는 못할 것이오. 석벽에 새겨져 있다고 하니 앞으로 나아가 보기만 하면 된단 말이오. 하하하하! 내가 점안공을 익히고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오.’
점안공이란 일시에 본 것을 담아두는 방법이었다. 과연 잠시의 틈만 있어도 충분한 것이었다.
이렇게 소군의 단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이 있었으니 진건곤과 함께 들어온 자들 중에 절정고수라 이를 수 있는 염자추 소광이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확인하고 싶어 들어온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느냐?”
“네, 그렇습니다. 그저 확인할 뿐입니다.”
소광은 얼른 대답을 하며 다른 이들까지 채근하여 답을 하게 하였다.
[누님 그들에게 그리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순한 양처럼 따른다 해도 석벽 앞에 서면 그들은 한순간에 바뀔 것입니다. 무인이라면 무공에 목말라할 테니까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우는 수밖에요.]
[그래야겠지요.]
진건곤과 소군은 믿을 수 없는 대답을 뒤로한 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앞서나간 자들은 그들의 면면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자랑하는 고수들이었다.
면면히 뛰어난 고수들이니 그들이 함정을 뚫고 나가는 것이 느리지는 않을 것이었지만 진건곤과 소군처럼 쉽게 뚫고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앞으로 한 시진 정도를 나아가니 다른 동굴과 합쳐지는 곳이 나왔다.
계속 나아가자 함정을 뚫고 나간 흔적과 많은 핏자국이 있었고 간간이 끈적끈적한 점액이 바닥에 붙어 있는 것도 보았다.
“화골산!”
일행들은 그것을 보며 놀랐다.
화골산이라면 시신이나 신체의 일부를 남기지 않으려고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앞서간 자들의 면면이 고수가 아닌 자들이 없었으니 함정이 얼마나 음험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제야 일행들은 진건곤과 소군 덕에 쉽게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