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35화 (35/61)

제2장

하늘 아래 가장 험한 기세를 지녀 검을 거꾸로 꽂은 듯하다는 화산, 일반인들은 쉬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곳, 이곳에 드는 자 화산을 찾지 않는 자가 없었다.

허나 오늘 청진은 화산을 모르는 자가 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 조무래기! 빨리 가서 검후를 불러오든지, 아니면 장문을 불러오든지. 이도 저도 아니면 무곤인가 뭔가 하는 자를 불러내든지! 이왕이면 마지막이 좋겠어. 조 두들겨 패고 시작하는 게 좋으니까 말이야.”

“원시천존……! 원시천존……!”

청진은 눈앞에 있는 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긴 것은 울퉁불퉁 엄청난 근육으로 둘러싸여 있고 얼굴은 산적 같았다. 깊은 산속에서 도적질을 하거나 저잣거리에서 차력을 보이며 약장수라도 하면 ‘딱!’인 얼굴이었다.

고작 외공이나 익혔을까 싶은 자가 감히 화산을 능멸하고 있었다. 장문도 부족해 장로급의 배분인 무곤을 들먹거리고 있었다.

잠시간 도호를 외치며 마음을 가라앉힌 청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도우의 성명과 용무를 밝히고 지객원에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안에서 허락이 떨어져야 도장에 들어설 수가 있단 말입니다. 일단 도우의 성명부터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화산을 능멸하는 말을 하면 참을 수 없습니다, 도오오우!”

청진은 억지로 힘을 주어 꾹 눌러가며 말을 하였다.

“흥! 소림의 천무성승이 와도 그리 말할 테냐?”

“천무성승이요? 하하하! 그분이라면 당연히 안에 드실 수 있지요. 하지만 왜 갑자기 천무성승을 언급하시는지 모르겠소이다.”

“흥! 내 이름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문을 지키다니 화산도 정기가 다했던 모양이구나. 한동안 무당에 눌려 지내더니 제대로 된 제자도 들이지 못했나 보군.”

사내는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고 화산의 정기를 운운하고 들었다.

더군다나 청진이 누구던가? 같은 항렬에서는 사천왕이라 불리며 화산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가 아니었던가?

비록 청성, 청명, 청암 등의 기재들의 이름이 드높아 가려진 별이었을 뿐, 화산에서도 손꼽아주는 알아주는 인재 중의 하나였다.

“사과하시오! 화산의 정기를 들먹이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겠소. 사과하지 않으면 죄를 묻겠소!”

청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검을 꺼내어 사내를 겨누며 외쳤다.

“검을 뽑아? 흥! 네놈이 참지 못하면 어쩌려고?”

사내는 오히려 청진이 검을 뽑은 것을 좋아하며 손을 쭉 뻗어 청진을 때려갔다.

“흥! 어쩌려……!”

퍽!

“어어……?”

평범한 격타음과 함께 청진이 뒤로 물러섰다. 물론 코에선 쌍코피가 터져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감히 어디서……!”

퍽!

청진이 사내의 발어름을 찔렀는데 사내는 간데없고 눈앞에 별이 반짝이며 몸이 쓰러지고 말았다.

“짜식. 너무 약하구먼. 한참 멀었구나. 그 정도도 못 피하면서 문지기를 하는 건 화산의 이름을 모독하는 짓이다. 볼썽사나워.”

청진은 아프기도 했지만 억울했다. 화산을 모독한 것은 자기면서 어디다 뒤집어씌우는 건지.

“이 무식…….”

청진의 말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화산의 문을 책임지는 지객원주 운성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원시천존!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대무(大武) 원공도께서 오셨군요.”

아는 사람을 맞으며 이름을 댈 이유는 없는데 이름을 대었다. 청진에게 알아들으라고 한 것이었다.

‘대무 원공도? 저게 어디를 봐서 대무야?’

청진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의아함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비워? 비우긴 뭘 비워? 아까부터 저기서 쳐다보고 있더니만.”

대무는 손을 들어 지객원에 뚫려 있는 작은 창을 가리켰다.

나뭇가지에 가려 알고 보아도 잘 보이지 않을 것을 지적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좋은 눈을 가지고 있었나 보았다.

“하하하! 대무께서는 역시나 눈이 좋으시군요. 숨지 말고 얼른 나올걸 그랬습니다.”

청진은 여전히 자신이 인명록으로 외우고 있는 대무와 눈앞에 선 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어딜 봐서 이자가 강호최고수로 지목받는 십대은거기인에 들어가는 대무란 말인가?’ 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대무는 그 눈빛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크크크! 어떠냐? 듣던 것보다 더 멋지지 않느냐?”

‘전혀! 그게 무슨 멋진 모습이란 말인가?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가득 차 보이는 야수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거늘……?’

청진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의사를 가득 실어 보냈다. 아무리 무신경한 자라도 그 뜻을 알아볼 수 있도록!

“짜아식! 확실히 그렇다는 눈빛이군. 아주 눈이 돌아갔어.”

퍽!

대무의 손이 가볍게 움직이자 격타음이 들리고 청진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퍽퍽퍽!

보이지도 않는 손이 그를 두드릴 때마다 엄청난 고통에 빠졌건만 사숙은 자신을 구해주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지 않은가?

“대무께서는 어찌 그리 확 달라진 모습을 하고 오셨습니까? 안 그랬다면 우리 청진도 대무님을 단박에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하하하! 이곳에 소검후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잡털 좀 정리하고 찾아왔지. 어떤가? 좀 잘나 보이지 않나? 아아! 그리고 그 세상에 가장 나쁜 놈 무곤도 있겠지?”

‘빌… 어… 아흑! 먹을! 인명록에는 아흑! 얼굴을 다 뒤덮는 수염이라고 적힌 아흑! 자가 털을 왜 밀고 다녀? 아흑! 그리고 깎아 봤자 아흑! 야, 이 도우야!’

청진은 고통 속에서도 대무라는 자의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허허! 대무님이라면 그리 부르실 수는 있겠지만 화산에서 무곤 사숙을 그리 부를 수는 없지요. 삼가 주시지요.”

“하하하하! 웃기는 소리. 나는 본디 배분과는 상관이 없는 자 아니겠는가? 나보다 어린놈 따위에게 말을 올릴 수는 없다.”

퍽! 퍽! 퍽!

말을 하면서도 청진을 두드리는 것을 같이 하는 대무였다. 그런데 그 구타에는 묘하게 박자가 실려 있었다.

‘사… 사숙! 아흑! 어찌 말려주시지 아흑! 않으시는가요? 아흑!’

“원시천존! 대무께서는 여전하시군요. 암튼 들어가 보시지요. 저놈은 저만 하면 됐을 것입니다. 너무 많이 도와주면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퍽퍽!

그때까지도 손을 멈추지 않는 대무였으나 운성의 말에 손을 거두고 말았다.

“도장에 왔더니 능구렁이가 나를 찾는구나! 다 끝나려 하니 끝을 보자는군. 그런데 말이네. 자네 말도 맞는 것 같으이. 저만한 놈이 아직 이름도 없이 문지기나 하는 꼴을 보니, 생긴 것과는 다르게 멍청한 구석이 있나 봐. 하긴 나도 몰라보는 멍청한 놈이니까, 그게 당연하겠지. 들어가지!”

‘도와주다니요? 어딜?’

“아… 으… 으……!”

대무가 돌아서고 몸을 일으키자 신음이 절로 나는 청진이었다.

[녀석! 크나큰 덕을 입었구나. 당장 그 자리에서 운기조식에 들어가거라! 생사현관을 두드려라. 생사현관이 뚫리기 전까지는 절대 운기를 풀어서는 안 될 것이야. 운기가 끝나거든 대무를 찾아 인사드리는 것도 있지 말고. 원시천존!]

“생사현관은 아직……!”

번뜩!

청진은 대무에 관해서 인명록에 적힌 나머지 부분을 떠올렸다.

대무 원공도.

특징. 얼굴을 뒤덮는 털. 강호무림 출도 이후 한 번도 털을 깎은 적이 없음. 근육 등등의 기타 특징이 있지만 털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으니 생략.

무공. 권으로 일세를 이룬 인물. 특이하게도 그의 주먹에는 활법(活法)이 실려 있음. 그에게 맞은 자 하나같이 무공의 진전을 보았음. 특히 내공에 있어 증진이 크다고 함. 아무나 때려주지 않음. 그에게 구타를 당하면 당할수록 기연.

“아……!”

깨달음과 같은 신음을 흘리고는 청진은 그렇게 눈을 감았다. 청진. 그의 이번 운기조식은 참으로 길 것만 같았다.

“흥! 자네가 무곤인가?”

대뜸 반말이다. 누가 봐도 산도적 같은 사내. 진건곤은 상대의 귀밑머리가 희끗한 것을 보고는 그러려니 했다.

“그렇습니다. 저를 보러 오셨습니까?”

“허허! 소검후를 보러 왔지. 자네는 좀 때려주려고 왔고 말이야.”

소검후를 보러왔다는 말에 손님이려니 싶었는데 난데없이 대무의 주먹이 진건곤을 때리려들었다.

그의 주먹에는 기세도 살기도 내력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저 빠른 주먹에 불과했다.

허나 화산의 인재 중의 하나인 청진은 눈으로 쫓지도 못했던 빠른 주먹이 아니었던가? 그냥 맞아 줄 수는 없는 법.

진건곤은 검을 들어 검집 채로 그의 손을 막아갔다.

턱! 터덕!

연거푸 뽑아낸 출수가 진건곤의 검집에 부딪혀 막히고 말았다.

대무의 표정이 바뀌었다. 제법 진지한 표정.

“이것도 막아봐라!”

그의 주먹이 기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잠시 멈칫하는가 싶은데도 빠르게 뻗어들어 온다. 그런가 하면 멈칫하는 사이에 움직임이 판이하게 달라져 호선을 그리고 들어오기도 했다.

진건곤은 도저히 한 손으로 해결할 수 없어 다른 손으로 그의 주먹을 받았다.

퍽!

진건곤의 신형이 뒤로 튕겨지고 말았다.

진건곤은 단순히 막아가기만 해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고 검집으로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피잉!

화련직검의 빠름이 허공을 갈랐다.

텅!

하지만 대무의 손은 그것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았다. 여유로운 손짓이 아직도 남아 있어 용병제나 태상제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던 자들보다 훨씬 더 윗길의 무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다시 진건곤의 검이 움직였다.

매화분분의 초식.

하지만 내력을 싣지 않으니 허공에 매화가 피지는 않았다. 대신 검영이 어지럽게 날아들어 대무를 향해 쇄도했다.

“허! 좋구나!”

입으로는 탄성을 흘렸지만 그의 손은 침착하기 짝이 없었다. 전혀 서두르는 기색도 없지 날아오던 손이 잠시 멈칫거렸을 뿐인데 화려한 검영들이 모두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무… 당……?”

진건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화경(化境)에 무당을 떠올렸으나 대무의 입이 그것을 부정하고 들었다.

“무당은 개뿔! 만류귀종(萬流歸終)이라. 다 똑같은 것일 뿐이다. 매화분분 훌륭한 초식이긴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필패(必敗)일 것이야!”

대무는 말을 하면서도 안으로 밀고 들어오며 또다시 기묘한 호선을 그리며 들어왔다.

잠시 멈칫거리는 듯이 흐르는 곡선이 참으로 어려웠다. 벌써 몇 차례 보았는데 눈에 들어올 듯하면서도 매번 다른 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대무의 주먹이 쇄도하고 있는 도중에도 진건곤은 검을 땅 아래로 내려 땅을 가리켰다. 그리곤 다시 올라오며 검이 묘하게 흔들렸다.

검영이 흔들리고 흔들려 겹쳐지더니 검첨이 하나의 그물을 그려내고 있었다.

스스스슷!

검이 공기를 찢어내는 소리가 사위에 울려대었다.

그것을 본 대무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게 변하더니 또다시 주먹이 멈칫거렸다.

‘허어! 저 나이에 가능할 것이 아니련만……!’

그렇게 허공에서 멈칫거리기를 몇 번!

하지만 보는 이에게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 담긴 뜻이 멈칫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런 변칙만으로는 대무와 같이 강호에서 인정받을 수는 없었다.

작은 원을 그리는 과정인데 그것이 너무나 빨라 정명에서 보는 상대에게는 그리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옆에서 본다면 그것이 손목이 돌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원을 그릴 때마다 그의 손에서도 수영(手泳)이 나와 공간에 가득 찼다.

수많은 검영과 수영이 둘 사이에서 부딪혔다.

터더더더더텁!

놀랍게도 수영은 그 하나하나가 살이 있는 듯이 움직여 검영을 부러트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검영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마지막까지 남았던 것은 바로 수영! 초식의 대결에서 대무의 초식이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몇 성인가?”

스스로는 너털웃음을 터트렸지만 듣는 자에게는 광소와 같은 웃음이 울렸다.

“칠(七) 성에 있습니다.”

“내 것은 구(九) 성이네. 자네의 무공은 내 것에 뒤지지 않았네. 다만 화후가 부족할 뿐이야.”

“알고 있습니다.”

진건곤의 짤막한 대답이었다.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 약간의 겸손도 없었다.

대무는 그 말에 약이라도 오른 표정이 되었다.

“흥! 자네가 십 성이 된다고 해도 나를 넘어설 수는 없네.”

“하하하!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진건곤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무는 반박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분명히 진건곤이 펼친 무공이 자신의 것에 비해 격이 높은 것이었다. 같은 종류의 것인데 격이 높다면 이미 승부는 끝난 것과 같았다.

“빌어먹을! 이놈의 말코는 어디서 이런 걸 훔쳤데?”

대무는 혼자서 투덜거렸다.

훅!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의 끝에는 절검 영은과 함께 소군이 나타났다.

“훔치긴 어디서 훔치겠소? 본도가 스스로 깨우치고 창안한 거지요. 그나저나 오랜만이요.”

“소군이 오라버니를 뵙습니다.”

소군의 인사에 대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바로 대무가 털을 밀었던 이유가 바로 소군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무에만 빠져 사는 대무였다. 강하지 않으면 같은 탁자에 앉아도 쳐다보지도 않던 대무였는데 소군만은 눈에 들어왔던 모양이었다.

그의 능력이라면 강호에 세력을 거느리고 어떤 미인이라도 품어가며 살 수 있건만 대무는 그렇지 않았다.

유독 소군만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무가 보기에는 이 세상에 유일하게 자신과 어울릴 수 있는 무공을 지닌 여인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흠! 나 이 혼인 반댈세!”

뜬금없는 한 소리. 소군의 아버지가 정해준 짝인 걸 무슨 자격으로 이런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그에게는 자격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방금 시험해 보았네. 나보다 더 강한 신랑을 맞겠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싫으면 싫다고 해야지 왜 이런 식으로 거짓을 말하는가?”

“상공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다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세상에 누구도 당해내지 못할 무공이 있습니다.”

대무는 소군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지만 나이 차이가 많으니 차마 소군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

잔뜩 부풀어 오르는 감정을 숨기고는 그때부터 대무는 무작정 소군을 따라다녔다.

소군도 역시 자신보다 고수를 곁에 두고 배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던 것이 대무가 소군을 따라 다닌 지 반년이 지나자 조금은 친해져 오누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대무는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소군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소군은 온통 무에만 관심이 있었던 시절, 자신이 검후가 되거나 평생을 노력해도 따라잡을 자신이 없는 자가 생기기 전에는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무에 빠져 세상을 거부하던 그가 무에 빠진 여인에게 거절을 당한 것이었다. 참으로 돌고 도는 세상이었다.

자신도 역시 무에 빠져 세상을 등졌던 적이 있었던 대무는 소군의 심정을 이해하였다. 그런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곁에서 지켜볼 자신이 없어 그녀를 떠났던 것이었다.

“거짓말! 믿을 수 없다. 절검의 무공을 잇는다고 해도 당장 무당의 검선에는 못 미치지 않겠느냐?”

절검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평생 무당을 이기는 것이 그 목표였는데 자신의 마지막 심득이 무당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령신은 강기를 사용하더군요. 두 손에 강기를 실어 강기벽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또한 공격을 하면서도 제가 지쳐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기를 유지하더군요. 적어도 오백여 초수는 거뜬히 유지할 수 있어 보이더군요. 그런 화령신을 물리친 것이 상공이라면 믿겠습니까? 물론 지금은 화령신과의 싸움에서 얻은 내상으로 말미암아 실력을 보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화령신을 꺾은 자가 소군이 아니라 무곤이었단 말인가?’

대무는 소군의 말에 크게 놀라는 듯하였다.

[내상이라니요?]

[그래야 합니다. 안 그럼, 대무 오라버니에게서 시달려야 하죠. 제 말을 따라 주세요.]

[하지만……!]

“거짓말! 강기벽이라니 믿을 수 없다. 강기를 오백여 초수나 유지할 수 있는 자가 있단 말이냐?”

십대은거기인이라며 강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기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초수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오백여 수라면 천하제일에 가까운 대단한 능력이었던 것이다.

증인이라면 댈 수 있습니다. 바로 화산의 차기 장문이죠. 소군이 언급한 것은 바로 청송이었다.

“흥! 내상이란 말이냐? 까짓것 내가 고쳐주고 말겠다. 일단 맞고 보자.”

대무는 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진건곤의 맥문을 쥐고 나섰다. 강호가 인정하는 권사. 권으로 활법의 경지를 연 자였으니 충분히 내상을 고쳐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으리라.

[누님! 어떻게 하시려고요?]

[상공은 그저 가만히 있으시면 됩니다.]

“소군! 네가 잘못 알았다. 음양이 적절하게 균형이 잡혀 있어. 오히려 가장 평온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자는 처음 볼 지경이다. 전혀 다친 곳이 없다.”

역시나 대무는 진건곤의 상태를 정확하게 집어내었다.

“그렇지요? 오라버니. 상공은 대단한 경지에 오른 무인이에요. 하지만 상공의 내공이 그 경지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진건곤은 그 말을 듣고는 소군이 생각하는 바를 알았다.

소군은 진건곤의 내공이 세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이용해 대무를 속여 넘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소군과 절검도 역시 진건곤이 말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를 찾을 수 없었던 상단전이 아니던가?

혹여 대무가 진건곤의 내공의 비밀을 밝혀낸다면 오히려 상단전에 대해서 배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공은 이기어검이 가능한 경지입니다.”

대무의 얼굴에는 놀람이 가득했다.

‘화령신의 경지도 생각 밖이었는데 전진자는 천외천이었다니……! 귀제갈의 계산이 어긋날 이유가 있었어……!’

대무가 귀제갈을 떠올리다니……!

대무는 귀제갈이 부리는 팔극사 중의 일인이었던 것이다. 대무 같은 은거기인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로울 뿐이었다.

대무는 눈을 감고 진건곤의 혈맥과 기맥을 샅샅이 살폈다.

‘딱히 다친 곳은 없는데 하단전에 쌓인 내력으로는 고작 일류고수에 불과하구나. 과연 이것이 어찌된 일일꼬? 허나 이 아이가 내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내손으로 죽여야 할지도 모를 터! 소군이 슬퍼할 일이니 차라리 이대로 회복이 되지 않는 일이 좋겠구나.’

대무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흠! 알 수 없는 일이네. 최적의 상태로 자연지기를 품고 있다. 이 정도라면 내가 지닌 활법보다도 더 뛰어난 경지.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상처를 치유하고도 남을 터. 왜 그렇게 되지 않는지가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네. 천천히 두고두고 연구해 봄세.”

“오라버니가 도와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 그럼, 대게! 일단 맞고 시작 해보자고!”

대무의 말에 진건곤은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무의 주먹이 진건곤의 혈을 찾아 꼽혀들기 시작했다.

이미 소군의 짝이 되어버린 진건곤에게 묘한 시기심까지 담겨 제법 아프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진건곤은 눈 한 번 깜짝거리지 않고 대무의 주먹을 받아내니 대무도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소용은 없을 테지만 일단은 운기조식을 해보게!”

진건곤은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대무를 한쪽으로 끌어온 뒤, 절검이 물었다.

“어차피 소용이 없다니? 무슨 말인가?”

절검은 제법 신중하게 물었지만 대무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말했지 않은가? 저 녀석이 가진 기운이 활법의 도보다 더 높다고. 내 활법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이미 애초에 끝났을 것일세.”

이렇게 말이 나오니 오히려 궁금해진 것은 절검이었다.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왜 이런 짓을 했는가?”

“하하하!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가 아닌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넘어가야지. 그나저나 자네야 말로, 다 늙어가는 처지에 말코 흉내는……! 아무리 봐도 자네 제자가 펼쳤던 초식은 무당의 것과 많이 닮았다. 아니 완전히 무당의 것 아니냐?”

대무와 절검은 이미 무리를 함께 연구하던 시절이 있었던 사이였다.

“허허허! 자네가 그리한다고 남도 그리한다고 생각지는 마시오.”

“하지만 이거 부드럽기가 태극혜검의 마지막 초식 저리가라 하는데? 검을 꺾었다고 하고는 무당에 가서 훔쳐온 것 아니냐고.”

“그런 일 없네.”

“허허! 솔직하게 말해 보세. 내 비밀을 절대 지켜줄 터니까!”

부인을 하여도 계속해서 무당을 언급하는 대무의 말에 절검은 무반응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무의 말대로 진건곤에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청진과 같이 자신의 능력을 다 꺼내지 못했던 자들이라면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활법의 차이가 크겠지만 이미 진건곤은 그런 것들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현천기공 자체가 내공을 더디게 쌓는 심법이었을 뿐이었다.

대무가 이따금씩 찾아와 이런저런 것을 시켜보기도 했지만 별반의 차이가 없었다.

진건곤도 별반 관심이 없이 계속해서 현천기공에 매달릴 뿐이었다.

한 달여가 지났을 때, 대무가 보낸 신호가 귀제갈에게 도착하였다.

전진자 내상을 입고 요양 중.

전진자의 무공 수위 상향 조정. 이기어검이 가능한 고수.

내상을 치료한다면 대공녀만이 상대할 수 있는 고수.

최소한 두 명 이상의 극사가 합공해야만 승산이 있음.

암습을 한다고 해도 필살을 생각하기 어려움.

소군과 절검이 함께하고 있어 기회를 얻기 어려움.

철수하겠음.

와그작!

서찰이 거칠게 구겨져 나갔다.

“빌어먹을! 이기어검이라! 애초부터 정체를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정말 감쪽같았군그래!”

귀제갈이 숨을 크게 내쉬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하늘아래 천자(天子)가 둘일 수는 없는 법. 애초부터 완성된 고수가 정체를 숨긴 것이었다면 이제 것의 일이 모두가 설명이 되니까 말이야.”

귀제갈은 그동안 진건곤이 천자가 아니기를 빌고 또 빌었다. 마음이 가는 곳에 없던 길도 보인다고 그토록 명석했던 귀제갈도 자신의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진건곤은 천자가 아닌 정체를 숨긴 고수로 변해가고 있었다.

운기에 빠져든 진건곤이 눈을 떴다.

몰아일여의 지경에서는 눈을 감아도, 신경을 쓰지 않아도 주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삼라만상과 하나가 되어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세요. 누님!”

등 뒤로 나타난 소군이었지만 진건곤은 그게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소군의 손이 진건곤의 어깨 위로 올라가고 어깨를 살짝 주무르고 있었다.

“몰아일여로 알아챈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누님.”

“대단한 일이에요.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기운을 판별할 수 있다니 말이에요.”

“하하하! 하지만 누님도 기척 정도는 읽어내지 않습니까?”

“물건이나 사람이라는 것은 알아도 누구인지는 알아낼 수가 없죠. 습관이나 특징을 보고 알 수는 있어도 상공이 말씀하신 것처럼 눈으로 보듯이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누님도 곧 상천을 열게 되시겠지요.”

“호호호! 아직 멀었어요. 중단을 열고 상단을 열려면 백발할머니가 되고서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진건곤과 소군, 절검이 내린 결론이었다.

단전을 열고 고련을 통해 중단을 연다. 중단이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면 상단전이 열린다는 것.

과거 전설적인 경지에 올랐던 고수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백수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 이기어검을 사용한 분들이 있기도 했다.

진건곤의 상단의 힘이 이기어검을 가능하게 했다면 과거의 무인들도 상단의 힘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하하! 하지만 누님은 좀더 빠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사부님께서도 놀라신 기재이니까요.”

“호호호! 절검님께서 상공을 보아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 거지요. 그리 믿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누님! 이곳에는 오는 일이 없으시더니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진건곤이 표정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진건곤의 수련에 방해가 될까 싶어 좀처럼 수련장을 찾아오지 않던 소군이었으니 왔으면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개방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소군은 서찰을 꺼내 내밀었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빙백신과 백노신이 아미파를 향해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틀림없이 화령신을 꺾은 소군일 것이었다. 실제로 화령신을 물리친 것은 진건곤이었지만 소문은 그리 나지 않았다.

세상은 그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화령신에 응대할 자가 오직 하나 소검후뿐이었다고 판단을 한 듯, 소검후가 화령신을 꺾었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퍼진 후였다.

“세간에는 화령신을 꺾은 사람이 저라고 알려져 있으니 그들이 찾는 자는 저이겠지요. 서둘러 아미에 가지 않으면 큰 피해가 있을 겁니다. 가보아야겠어요.”

소군의 얼굴에 비장한 각오가 보였다.

세외삼신 중의 하나인 화령신과도 악전고투를 치렀는데 둘이라면 쉽지 않은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건곤은 그런 그녀의 손을 덥석 쥐었다.

“어딜 혼자 가신다는 겁니까? 같이 가야지요. 당장에 사부님은 안 계시니 소식을 남겨 놓고 가지요. 사부님이라면 분명히 도움을 주시러 움직이실 것입니다. 일단 저라도 같이 가지요.”

“하오나 상공은 아직 무공을 완성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아내의 사문에 일어난 일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명색이 절정의 고수 축에는 드는 모양이니 도움은 될 것입니다.”

“하오나……!”

진건곤의 무공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소군이었다.

“무공이 부족하다고 해도 부인이 홀로 사문으로 달려가도록 할 남자가 어이 있겠습니까?”

진건곤은 소군의 손을 꼭 잡았다. 소군도 역시 그런 진건곤의 손을 꼭 잡았다.

“서둘러 움직여 보도록 하지요.”

진건곤과 소군은 그 길로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는 장문에게 허락을 받고는 길을 나섰다.

하지만 화산의 정문을 나설 때였다.

“네 이놈! 어딜 간다는 것이더냐?”

무장과 그를 따르는 다른 장로들이 함께했다.

“무곤이 사형님들을 뵙습니다.”

진건곤은 무장과 그의 일행을 무시하지 못하고 인사를 올렸다.

“너는 이미 화산의 재… 인물. 네 마음대로 들고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아마도 재산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리라. 그것을 눈치 챈 소검후의 눈에 한광이 맴돌았다.

“흥! 소검후께서는 본인께 할 말이 많은 듯싶구려. 하지만 이것은 문파 내의 일이니 나서지 마시구려.”

어차피 진건곤을 무곤으로 받아들인 터라 소검후는 화산을 등지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 무장이었다.

무곤과 맞서는 입장에서 구태여 소검후에게 예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않았다.

“이……!”

“누님! 괜찮습니다.”

진건곤은 서둘러 앞으로 나서며 소군이 나서지 못하게 하였다.

“화산의 아무도 나를 막거나 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형!”

진건곤은 화산수문위의 권한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연한 권리였지만 화산수문위의 직책은 진건곤이 스스로 밝히기 전에는 문파의 내부에서라도 비밀에 쌓여 있는 것.

그것을 알 도리가 없는 다른 장로들은 진건곤의 태도가 건방지다는 생각을 하였다.

“원시천존! 이런! 무엄하구나!”

“그리 말을 하다니… 에잉! 십 년 전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어! 무량수불!”

다른 자들의 불만이 토로되자 무장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바로 이것을 위해 장로들을 끌고 왔던 것이 아니었던가? 사정이야 어찌됐건 이렇게 미움을 쌓아가는 것이 기꺼웠던 것이다.

하지만 진건곤은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화산수문위는 화산의 내부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며 행동에 제어를 받지도 않는 것이 아니던가?

“이미 장문의 허락을 받았으니 저는 이만 길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건곤은 경공을 펼쳐 날아올랐고 소군도 역시 기탄없이 날아올랐다.

“아니… 저… 저… 저저저……!”

진건곤의 화산수문위라는 것을 모르는 다른 장로들은 진건곤의 태도가 너무 무례한 것에 대해 거품을 물어 올렸다.

“전통의 화산에 어쩌자고 저런 자가……!”

“이런 무례한 일이……!”

장로들의 성토가 높아질수록 미소가 짙어지는 자가 있었다. 바로 무장이었다.

‘흐흐흐! 이노오오옴!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내게 힘이 될 것이다.’

진건곤과 소군이 떠난 곳에 무장의 미소가 길게 여운지고 있었다.

아무리 길을 서둘렀다고 한들 섬서성에서 출발한 진건곤과 소군이 사천성 지척에서 움직이는 빙백신의 일행을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소군의 걱정은 깊어지고 종국에는 말이 달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경공을 펼쳐 지름길로 달려가기로 하였다.

그렇게 진건곤과 소군이 서두르고 있었지만 빙백신의 일행은 이미 아미산에 도착하고 말았다.

빙백신과 백노신을 비롯해 수행원이 모두 넷이 붙었다.

여섯 명의 일행이 여유 있는 걸음으로 아미파의 본전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아미타불! 이쪽은 향배객들이 들 곳은 아닙니다. 혹여 아를 찾아 오셨는지요? 향배객이라면 저쪽의 큰길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향배객들이 오고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큰 길을 외면하고 좁은 길을 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장문인과 같은 배분의 정연이 일주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흥! 이미 빙백신께서 왕림하셨다는 것을 알 터. 수작을 부리는구나. 여러 말할 것 없다. 소검후를 불러오너라!”

빙백신의 수행원 중에 우두머리가 소리쳤다.

“소검후께서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후일 다시 오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흥! 네년들이 감히 빙백신님을 두 걸음 하게 할 셈이냐?”

백인형의 신형이 번개같이 움직이며 일장을 내뻗었다. 그의 일장은 어찌나 빠른지 정연은 대처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빗나간 백인형의 일 장이 정연이 서 있던 자리를 지나 일주문에 꽂혔다.

팡!

쩌저저저저적!

격타음이 울리고 이상한 기음이 울렸다.

법정이 이상한 소리에 놀라 일주문에 눈을 돌렸을 땐, 더욱 놀라운 것을 보아야 했다.

아미파의 일주문의 기둥이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져 있었던 것이다.

백인형의 손이 얼어붙은 기둥을 퉁겨내듯이 가볍게 때리자!

쩌저저저저적!

텅! 투두툭! 투두두둑! 와지끈!

한쪽 기둥이 부러져나간 일주문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런 나쁜 놈들!”

수행원들이 앞장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정연의 제자인 법정이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그들에게 휘둘렀다.

아미파 특유의 호선이 허공을 수놓았다.

“안 돼!”

정연의 음성이 법정을 말렸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이었다.

쩌저저저적! 쩌쩡!

법정의 검은 얼음이 깨지듯이 깨어지고 법정도 역시 그렇게 부서져 내리고 말았다.

“이 잔악한 놈들!”

정연의 의복이 바람결에 날리듯이 떨며 스스로 울었다. 제자의 죽음에 자신의 모든 무공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흥! 서두르지 않아도 죽었을 것이야.”

댕! 댕! 댕!

멀리서 일주문이 부서지고 아미의 제자가 죽는 것을 본 아미승이 비상타종을 울렸다.

이미 빙백신의 혈풍을 대비하고 있던 터라 삽시간에 무승들이 몰려 나왔다.

정연의 검이 불연선검의 초식을 타고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바위도 부수는 경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빙계의 수행원은 혹독한 북해에서도 고르고 골라서 나온 무인이었다. 정연의 검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민활하게 타고 들어갔지만 수행원의 손에 걸리고 말았다.

쩌저저……!

정연은 급하게 손을 빼, 검을 뒤로 물렸다.

쩡!

하지만 이미 늦었는지 정연의 검은 검첨이 부러져 나갔다.

“흥! 도망만 칠 것인가?”

수행원의 두 손이 하얗게 변해가며 공간을 휘저었다. 하얀 손이 길게 뻗어 나오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길게 뻗어 나온 손이 정연의 검을 잡고 또 다른 손목을 노리고 들어갔다.

쩌저저저……!

급속하게 검이 얼어붙어갔다. 그 소리가 정연을 겁먹게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손도 역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은 검을 버리고 뒤로 물러서며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다들 그렇게 하더군.”

하지만 북해의 전사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정연이 착지하고자 하는 곳을 미리 선점하고는 또다시 두 주먹을 뻗어내었다.

허공에 떠버린 정연은 그 손을 피하지 못했다. 검마저 없는 상황이어서 죽음처럼 다가오는 하얀 손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쩌저저저적!

북해전사의 손과 맞닿은 곳에서 시작한 빙결이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완전한 얼음이 되었을 때 또다시 이어지는 일격이 있었다.

투확!

정연의 몸은 얼음조각으로 변해 산산이 깨어졌다. 선홍색의 붉은 얼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정연!”

“사부!”

“사숙!”

정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여러 여승들이 날아들었다.

바로 그때!

“아미타불!”

불경을 읽듯이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력이 실렸는지 낮은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들렸다.

“본산의 제자들은 모두 물러서라. 일대제자 이하의 제자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서지 말아야 할 것이야.”

아미파의 당대 장문인 정해였다.

정해는 싸움에 참가할 자들을 정 자 배에 선을 그었다.

일대제자라면 이미 이십 대 중초반의 나이이니 충분히 싸움에 투입될 수도 있었지만 정해가 그렇게 선을 그은 것은 북해의 전사들의 무공이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빙백신이 직접 가르친 제자들이어선지 그 무위가 장로가 아니라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자연히 장문과 같은 정 자 배와 그 위의 장로에 해당하는 무 자 배 고수들만 앞으로 나가서게 되었다.

“흥! 겁먹은 개들 같은 자들!”

북해의 전사들은 일단 싸움이 일어나면 남녀노소 누구나 싸운다. 지는 자들은 노예로 끌려가 비참한 싸움을 하기 때문이었다.

약하다고 뒤로 물러나서 기다린다는 것은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는 방법처럼 보였던 것이다.

차갑게 일갈을 뱉은 북해의 전사들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살기와 살기가 부딪히려는 순간!

“소검후는?”

빙백신의 음성이 흘렀다. 북해의 전사는 그 순간 얼음조각처럼 멈춰 서 아무런 움직임도 갖지 않았다.

빙백신의 언사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일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미타불! 소군은 지금 이곳에 없소이다. 소군을 찾아온 것이라면 잘못 온 것이오.”

“그럼 죽어라! 피로 소검후를 부르리라!”

빙백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북해의 전사들은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아미파의 고수들도 신속하게 앞으로 나오며 검을 뻗어내었다.

쩡! 쩌저저저적!

빙백신도 아닌 빙백신의 수호위로 온 전사들의 무공은 대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하얗게 변한 두 손을 내어 뻗어 맨손으로 아미고수들의 검을 튕겨내었다. 그럴 때마다 검에는 한기가 서리고 얼음이 맺혔다.

아미파의 여러 고수들이 번갈아가며 공격을 하니 검을 빼낼 여유가 있었다. 일대일의 싸움이었다면 틀림없이 아미파의 고수들이 낭패를 당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그들이 모든 공력을 다 쓴다고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십 합이 오고가더니 북해의 전사들의 손이 투명해지기 시작하였다.

까앙! 탱그랑!

아미고수의 검이 삽시간에 얼어붙어 버리고 그 중 하나가 부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이어진 검이 없었다면 검이 부러진 간극을 채우지 못한 아미의 고수는 속절없이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본연의 실력 차이는 어쩔 수 없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손이 바빠지는 아미의 여 고수들이었다.

쩌억! 퍽!

시간이 지나며 최초의 희생자가 나왔다. 바로 아미의 고수 중에 한 명이었는데. 몸이 얼어붙자마자 북해 전사의 주먹이 그의 몸을 두드려 산산조각 내어 버렸다.

사람의 몸이 얼음이 깨지듯이 산산조각 나 퍼졌는데 그 잔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미타불……!”

아미파 4대 고수 중에 하나에 해당하는 일령이 검을 뽑으며 그들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일령이라고 해서 압도적인 위세를 점하지는 못하였다. 놀랍게도 일령과 비슷한 무위를 지닌 자들이었던 것이다.

가히 여섯 명의 인원만으로 아미파를 찾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미타불! 저들만으로도 북해 빙궁이 모두 온 것 같군요.”

그 장면을 지켜보던 장문의 말이었는데 곁을 지키고 있던 삼인의 고수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저들이 저 정도라면 아직 나서지 않은 고수들은 보지 않아도 뻔하겠소. 어린 제자들을 피신 시켜야 합니다.”

장문의 손짓이 있자, 일대제자들이 어린 제자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물러나고 말았다.

일령이 전장에 뛰어들고도 전세를 바꾸지 못하고 또 한 명의 희생자가 생겨났다.

빙백신과 백노신을 경계하던 두 고수들마저도 결전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여차하면 두 노고수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분루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쩌저적! 퍼엉!

또다시 한 고수의 시신이 사방으로 깨져 나가고 그 악랄함에 치를 떨었다.

분에 받쳐 이성을 잃어가는 고수들이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미파의 고수들이 불리해져 가고 있었다.

“장문! 저 두 고수가 뛰어드는 것은 나중에 해결할 일. 아이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구려!”

“사숙! 아니 되옵니다.”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소이다.”

장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고수가 앞으로 나서자 모두가 함께 나아가 북해의 전사들과의 싸움에 합류하고 말았다.

터더더덩! 쩌엉!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아미의 4대 고수가 모두 투입이 되고서야 평수를 이루듯이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쯧쯧쯧! 북해의 4대 고수라는 것들이 고작 아미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다니!”

빙백신이 실망한 듯이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과연 북해에서 온 자들도 마찬가지로 고르고 골라서 온 자들이었다. 아미가 고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빙백신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쩌저저적! 쩌저저적!

빙백신이 공력을 끌어올리고 앞으로 나서자 빙백신의 앞길에는 땅이 얼어붙기 시작하였다.

과연 신(神)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만한 가공할 만한 신위였던 것이다.

“잠깐!”

한눈에 보아도 화려하기 짝이 없는 복장을 한 자가 아미와 북해전사들의 사이에 뛰어내렸다. 그의 손에는 금빛으로 만들어진 패가 들려 있었다.

“종삼계의 관리 추영반 고국양이다. 황명으로 명령하니 모두 물러서라!”

“멈춰라!”

빙백신의 명령에 북해의 전사들이 전장에서 몸을 빼어냈다. 아미파의 고수들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중원의 황제는 무림의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빙백신이 북해의 전사를 뒤로 물리고는 추영반에게 물었다.

“그렇소. 하지만 나도 역시 조정의 일로 소검후를 찾아왔으니 이런 일을 묵고할 수 없소. 아미파가 없어져 버린다면 소검후가 당신을 쫓아 움직일 것은 뻔한 것. 황명으로 전하는 중책을 쫓지 않을 수가 있지 않겠소?”

“황명이라? 북해의 사람인 나와는 상관이 없지 않은가?”

빙백신은 황명이라는 말에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렇소. 하지만 당신이 중원에서 빠져나가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오. 아니 어려움이 아니라도 귀찮은 일을 당할 것은 틀림없을 것이오.”

“귀찮음을 피할 수 있다? 딱 그만큼만 거래하지. 원하는 것은?”

빙백신은 선을 그었다. 황제라 하더라도 자신의 행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귀찮음을 피할 수 있을 만큼만 거래하겠다는 것이었다.

“열흘!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아무런 충돌도 없이 말이오. 소검후도 역시 소식을 듣고 달려오고 있을 터. 그때쯤이면 싸움을 할 수 있을 것이요. 어차피 소검후와 당신의 싸움이 모든 것을 결정짓지 않겠소?”

“하하하! 열흘이라? 좋다. 기다리도록 하마 하지만 소검후가 오지 않는다면 아미를 피로 씻겠다. 물론 소검후가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 더 이상 나서지 말도록! 더 이상의 딴소리엔 너도 역시 죽여 버릴 터, 주제넘게 나서지 말도록!”

황제의 명을 받은 사신을 무시하다니 광우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노기를 가지고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그 순간 빙백신이 광우를 노려보자 광우는 엄청만 위압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위압감은 그대로 현실의 힘이 되어 자신의 몸을 찍어 누르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견디지 못할 만큼의 딱 그만큼의 힘이었다. 이미 한눈에 광우의 모든 것을 알아챌 만큼의 고수라는 것이었다.

광우의 몸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알… 겠소.”

광우는 사력을 다해 답을 하였다. 그제야 온몸을 옥죄는 어마어마한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전날 보았던 사부와 비슷한 능력이로구나.’

소군의 마음은 바빴다. 개방의 전언으로 빙백신이 이미 아미에 들었다는 소식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소군은 전력에 가까운 경공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전력을 다하지 않음은 멈춰 서지 않고 달리기 위함이었는데 다행히 진건곤은 그 정도는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사력을 다해 달리기를 열이틀.

아미산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소군은 더욱 힘이 나는 듯이 앞으로 치고 달려 나갔다.

“누님!”

“상공!”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 자신을 부르는 진건곤이 못내 아쉬운 듯이 바라보는 소군이었다.

“누님이 저곳에 도착한들 세외삼신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잠시 멈춰 운기조식을 한 후에야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소군은 그 말을 듣고는 크게 심호흡을 하여 진기를 진정시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가시지요.”

“누님!”

“지척에서 죽어갈 자매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사치지요. 느긋하게 운기조식을 할 시간은 없어요. 가겠어요.”

소군은 또다시 발을 박차고 날아가듯이 신형을 쏘아 보냈다.

“허어! 부디 사부님이 오셔야 할 텐데.”

진건곤으로서는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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