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진천뢰의 위력이 사방으로 3장에 달하는 영역 정도는 박살내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분타주도 역시 그 영역 안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말을 하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진천뢰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먼지가 가라앉을 때쯤. 그 원인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빙백신의 등 쪽으로 작은 얼음벽이 세워져 있었다. 크기도 별로 크지 않았다. 겨우 걸상 정도?
하지만 그 위치가 참으로 절묘했다.
진천뢰가 떨어진 곳의 바로 앞이었다. 진천뢰의 위력이 퍼져나가는 것을 바로 앞에서 막은 탓에 작은 얼음벽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얼음벽이 보호한 것은 빙계에서 온 인물들이 앉았던 탁자뿐이었다.
개방의 분타주는 그 탁자의 맞은편에 앉았기에 그 이득을 본 것뿐이었다.
툭투투두둑! 투득!
완전히 반파되어 버린 객잔에서는 아직도 물건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지만 시야만은 확보가 된 상태였다.
“쯧쯧쯧! 따뜻한 곳에 왔다고 마음까지 풀어진 게냐?”
빙백신의 음성이었을까?
수행원들이 일시에 고개를 숙이며 부복했다.
“돌아가고 나면 문책을 할 것이다.”
수행원들의 몸에서는 미동도 없었다.
빙백신의 한마디에 수행원들은 해이해진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감정이 없는 돌멩이 같았다.
“간다.”
빙백신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수행원들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잠깐!”
그들을 불러 세웠으나 빙백신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분타주는 서둘러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귀… 귀하가 중원에 방문한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소?”
“감히!”
수행원 중의 하나가 분타주를 향해 쏘아져 나오며 일 장을 날리고 있었다.
빙백신을 수행하는 자라면 무공이 평범할 리가 없었다.
그 기세가 남달라 분타주는 자신의 무공이라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대로 목을 내어줄 수는 없는 법. 지렁이도 꿈틀한다는 심정으로 타구봉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잠깐!”
엄청난 기세로 짓쳐들던 수행원의 몸이 그대로 뒤로 물러서 돌아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진퇴가 자유로우니 최소한 절정의 고수라는 말이었다.
분타주의 이마에서는 한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십 년 감수했던 마음이 땀방울로 바뀌어 나온 것이었다.
“소검후! 중원에 알려라! 빙백신은 친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아미파에서 소검후를 벌할 것이다.”
빙백신은 그렇게 자신의 행방을 알리고는 천천히 걸어 나가고 있었다.
수행원들도 역시 그 뒤를 따라 나가고 있었지만 분타주는 격동하는 마음에 잠시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세외삼신과 소검후라! 상상 밖의 거대한 일이 아닌가?”
세외삼신은 중원을 제외한 세상의 절대자들이었다.
소검후는 천하제일이라 칭하지는 않으나 천하제일에 도전해 볼만한 고수로 인정받고 있는 천의무봉의 고수가 아닌가?
시대를 흔들 거대한 흐름이 느껴지고 있었다.
“지급! 지급이다!”
진건곤이 걱정하는 일은 화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화산은 몰라도 아미파는 화산에 비해 그 성세가 떨어지는 곳이다.
화령신과 같은 고수가 하나라면 몰라도 둘이라면 그 피해가 여지간한 것이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외삼신 중의 두 명이 만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 감히 빙백신 님을 기다리게 할 작정이란 말인가?”
빙백신과 백노신은 아미의 지척인 악산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함께 아미파를 찾아갈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이틀이나 일찍 악산에 도착하여 백노신을 찾아보았지만 백노신은 보이지가 않았다.
물론 정해진 시간은 남아 있었지만 정해진 날짜가 되었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백노신이 못마땅해 보였던 것이다.
시간이 되지 않았으니 불쾌할 것도 없었지만 빙백신 역시도 그리 얼굴이 밝지는 않았다. 자신이 나선다면 백노신이 나서서 미리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오를 가리키기 일 각 전,
빙백신의 고개가 동쪽을 향했다. 지평선에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삽시간에 다가오더니 빙백신의 앞에 멈추었다.
실제로 빛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엄청난 돌진이 있자, 마치 번쩍거리는 물건을 쳐다본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투우우웅!
허공이 출렁이는 듯하게 움직이고는 잔물결처럼 춤을 추더니 곧 멈추었다.
그 중앙에는 백발과 하얀수염이 휘날리는 한 인형이 서 있었다.
“허허허! 빙백신 되십니까? 소생은 백노신이라고 불리더군요.”
백노신리라고 불린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자, 길게 늘어져 허리춤까지 오는 순백의 머리와 아래턱을 가득 채우고 내려오는 수염은 가슴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선과 비슷한 풍채. 경외감이 절로 일었다.
“허허허! 소생이 빙백신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백 노사!”
백 노사라는 호칭에 수행원들은 놀라고 말았다.
노사라는 것은 나이 먹은 사람을 공경한다는 표현이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빙백신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공경의 표현 같은 것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빙백신이 스스로 백노신을 노사라고 추켜올리는 것은 백노신이 더 고수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챈 것이었다.
수행원들은 빙백신의 무위보다 더 위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백노신을 보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만난 것처럼 맹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허허허! 참으로 놀라운 경공입니다. 듣자하니 백 노사께서는 동쪽의 끝에 있다는 장백산에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곳까지 오시는데 겨우 한나절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한나절?
수행원들은 놀람이 극에 달했다.
그 먼 거리를 한나절에 달려왔다는 말을 다른 자가 했다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꺼낸 것이 허언을 하지 않는 빙백신이고 보니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몸에 익은 것이니 그저 하찮은 재주일 뿐이지요. 빙 노사야말로 신비지경 빙계의 제왕이시니 대단하신 분 아니겠소. 허허허허!”
“허허허! 빙 노사라 불러주시니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평소 대공녀가 무공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하며 백 노사를 언급하더군요.”
빙백신은 지그시 백노신을 바라보았다.
“대공녀야 인정을 하겠지만 듣도 보도 못 한 사람을 들며 저를 타박하더란 말입니다. 어떤 인물인지 보고 싶었는데 오늘 백 노사를 뵈니 안 보느니만 못 하단 생각이 듭니다.”
“허허허! 그렇지요. 그저 늙은 사람뿐이니 괘념치 마시오.”
“허허허!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대공녀께도 밝혔듯이 본인은 있는 듯 없는 듯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허허! 그러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겠습니다. 백 노사. 평생 듣도 보도 못 한 경공이었습니다. 하찮은 재주라니요. 어림도 없는 말이 아닙니까? 천하제일신이라는 만리추영조차도 백 노사의 경공을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되는 빙백신의 감탄에 백노신은 손사래를 치며 겸양을 떨었다.
“허어! 그나저나 화령신이 소검후에게 꺾이다니 참으로 의외의 일이었습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백 노사?”
“그라면 이미 신인(神人)이라고 불러도 될 터. 도망치자고 하였다면 피하지 못했을 리가 없지요. 목숨을 잃었다면 아마도 흡족하게 싸우다 갔을 겁니다.”
“하하하하! 그렇지요. 그랬겠습니다. 제게도 그런 일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하! 마음껏 싸워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빙백신이 소리 내어 웃었지만 백노신은 별다른 화답이 없었다.
‘허어! 백 노사는 아무래도 호승심을 초월하신 지 오래인 듯하구나. 도무지 인간 같지가 않아.’
빙백신은 백노신에게 또다시 경외심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하하하! 백 노사께서는 승패에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기대가 큽니다. 이제 곧 소검후를 만나게 되겠지요. 기대가 됩니다. 기대가 되요.”
빙백신은 소검후를 생각하며 온몸에 힘을 불어 넣었다.
빙해의 땅에서는 이미 상대가 없어진 지 오래인 그였다. 오랜만에 적수다운 적수로 생각되는 소검후를 생각하니 무인으로서 호승심이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천천히 가시지요. 그들이 도착하려면 시일이 걸릴 겁니다. 중원에는 간만에 나온 길이실 테니 두루두루 살펴봅시다.”
“허허허! 아미의 무공을 먼저 맛보고 싶었지만 백 노사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기꺼이 따르지요.”
불현듯 백 노사는 빙백신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허허! 빙 노사의 너그러움이 덕이 될 것입니다.”
빙백신은 웃음을 지었다.
“허허, 이제 보니 백 노사께서는 아미의 여승들을 걱정하시는 게였군요.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