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중원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혈풍과 풍운이었다.
혈풍은 북쪽의 얼어붙은 대지, 중원에서 빙계라고 부르는 북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바로 빙계의 제왕 빙백신의 중원 나들이. 그 혈풍이 주는 충격은 작지 않았다.
북해에서 내려온 냉혈의 전사들은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손속에 전혀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들과 부딪힌 자들이라면 모조리 죽어야만 일이 끝이 났으니 그 파란이 쉬이 가라앉질 않을 것 같았다.
허나 중원의 무인들이 그를 공적으로 지적하고 싸우지는 못하였다.
그를 공격한다는 것은 북해의 빙계와의 전면전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들의 행로가 거듭될수록 그들의 악명이 퍼져나가 북에서 불어온 혈풍은 그들을 알아보고 피하는 무인들이 늘어나 그 파급이 줄어들고 있었다.
하여 북풍의 이야기는 점점 시들해져 갔다.
하지만 빙백신은 세외 삼계 중의 하나인 빙계의 전설이었다.
언제든지 무림을 통째로 뒤흔들 힘을 가지고 있는 자였기에 온 무림의 신경이 모두 쏠려야 하지만 무림은 그에게만 힘을 다할 수는 없었다.
바로 풍운의 바람 때문이었다. 풍운의 주인공은 능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환천삼보(換天三寶)!
이미 이백 년 전에 무림을 경동시켰던 환천삼보가 다시 나타났다.
막연히 그 존재만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그 환천삼보의 구체적인 정보가 드러났으니 천하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환천삼보의 면면은 이랬다.
가일구층황금공(加一九層黃金功)!
소성을 이루면 소림의 대반야신공 부럽지 않을 것이오.
대성을 하면 능히 천하제일내공을 이루리라!
내공의 끝을 보게 하리라.
광룡진천류(狂龍唇天瀏)
격류의 흐름이 미친 용처럼 흘러 하늘을 놀라게 한다.
검을 쓰면 그 예리함에 치를 떨어 노룡살검(怒龍殺劍)이라 부를 것이며 도를 쓰면 피를 쫓는 흉측함에 광혈마도(狂血魔刀)라 칭할 것이다!
오(五) 성에 이르기만 해도 일류고수라 이를 것이고 육(六) 성에 이르면 절정의 고수가 되어 능히 한 성(城)을 호령할 수 있으리라. 십 성에 이른다면 능히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이십칠파결(二十七把結)!
하늘을 가두는 데 백팔지주가 필요하지 않다.
능히 이십칠 지주라면 충분할 터.
돌멩이 열 개면 사람을 희롱하고 스무 개면 하늘을 희롱한다.
스물일곱 개가 모두 모이면 능히 하늘을 가릴 것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위시한 정파의 무인들을 비롯해서 사파와 마인, 낭인들 모두가 설렌 마음으로 환천삼보를 쫓았다.
강호무림을 위해 빙백신을 감시하고 희생하는 일보다는 보물을 취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 양, 강호무림의 행보는 풍운이 되어 일어났다.
낭인들의 왕 용병제와 태상제가 광룡진천류를 얻어 일약 고수가 되었고 화산의 군자검 운현이 가일구층황금공을 얻어 천하제일 내공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보물을 향한 욕망은 더욱 크게 일어났다.
한술 더 떠, 환천삼보는 물건이 아니라 거대한 동굴의 벽면에 기록된 무공이라는 소문이 돌자 저마다 병장기를 들고 길을 나서기 시작하였다.
한 명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이야기에 천하의 모든 무인들이 들떠 움직이게 되었으니 강호는 바야흐로 풍운의 시대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화산파 장로원주의 집무실은 본디 어두운 편이었다. 가구도 그렇거니와 불을 밝히는 황촉도 역시 과하게 켜는 법이 없었다.
도장(道場)의 건물들이 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직위 자체가 노인들의 것이다 보니 더욱 소탈하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등잔불이 껴지고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장로들을 불러들인 것은 무장 대장로였다.
본디는 무영이 이어 받을 대장로의 직위였지만 운현과 청명을 복원하는 것을 대가로 무영에게서 양보 받았던 것이었다.
“소검후가 어리디어린 전진자를 끼고 다닌다는 말은 있었지만 일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는……! 허어 원시천존!”
무장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대놓고 서방이라고 한 것은 진건곤을 인정하지 않겠다던 자신을 타박한 것이리라.
소군이 보기 드문 고수라 하여도 딸보다 어린 여자에게 그런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열이 뻗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여인이 아들 벌에 불과한 전진자와 그런 사이일 줄이야. 누가 그녀를 명문정파인 아미파를 대표하는 고수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감추어도 부족할 일을 그렇게 대놓고 말하니 더 뻔뻔해 보입디다. 게다가 본 산에 들어서도 처소를 함께 쓰다니……! 창피한 것을 모르는 후안무치 같습니다.”
무진의 말에 무영은 속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본디 화산은 혼인을 허용하고 있는 도문인데 어찌 부부가 한 방을 쓰는 게 흉이 되겠소? 사형들의 사심이 일을 그르게 보는 것이외다.’
무장과 무진의 거듭된 힐난이 이어지자 장로들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감돌았다.
안 그래도 무장이 성급하게 나선 탓에 소검후와 어색한 사이가 된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장로들은 더욱 속이 끓었다.
하지만 무장과 무진의 원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찌 그런 소릴 하겠는가?
“지금 그런 것을 따지자고 모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소검후는 절검 사숙께 비견되는 고수입니다. 그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미파도 말입니다. 하물며 그녀가 본산의 품에 안겼는데도 환심을 사지 못한다면 오히려 문제가 될 것입니다. 아미파가 무당의 편에 선다면 곤란해지겠지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무영뿐이었다.
“까짓 아미파 정도야.”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절검 사숙이 세상에 공표하셨고 장문인이 추인한 일입니다. 어찌 사형만이 그것을 부인하십니까?”
“추인이 문제이지 않은가? 추인이! 절검 사숙과 같이 배분이 높으신 어른이 제자를 들이는 것은 문파에 실로 큰일이 아니던가? 어찌 그리 쉽게 보는 것인가? 사숙이 아무나 들여와 우리의 사형제라고 내보이시면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아무나가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아무나가 아니면?”
무장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좌중을 훑었다.
반대의견이라도 낸다면 자신과 싸우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표현이었다.
“아무나가 아니면? 진건곤이야말로 십 년 전에 이미 품성이 독하여 도문에 들지 못할 아이로 찍히지 않았던가? 그 일을 결정하였던 것이 바로 현 장문인일세. 나야 그랬다 쳐도 현 장문이 사심으로 일을 했다고 할 텐가?”
무장은 이미 무곤을 인정하고 있는 장문까지 끼어 들였다.
“하오나 장문인은 무곤을…….”
무소가 나섰다.
“누가 무곤이라는 것인가?”
“…….”
무장은 무곤이라는 말을 꺼낸 무소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어찌나 매섭게 보는지 무소는 무장의 서슬 퍼런 눈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화산에 어찌 나 무장이 모르는 제자가 있단 말인가? 아미파가 어디로 간들 어쩌겠는가? 개방이 그랬고 남궁세가와 사천당문, 모용세가가 이미 우리 화산과 뜻을 같이 하고 있는데 이미 대세는 기울었네. 아미파가 다른 뜻을 품는다고 해도 안 될 것이 있겠는가?”
무장의 의도는 명백했다. 지금 이 자리는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무곤을 쳐내고 소검후를 내칠 자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내 장로원의 이름으로 전진자를 내칠 것을 장문에게 전언할 것이야. 분명히 이 자리의 어떤 사람도 나와 의견이 다르지 않음을 전할 것이야. 그래도 되겠지? 크흠!”
무장은 장로원의 거수조차도 묻지 않고 장로원의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무 자 배는 장문보다 배분이 높은 자리입니다. 아무나 사제로 들여와 장문에게 부담을 지울 수는 없지요. 절검 사숙조라고해도 말입니다.”
무장의 심복인 무진이 얼른 나서서 무장을 거들었다.
“흐흠! 이제는 조용히 물러나 앉아야 할 분입니다. 단지 배분이 높다는 것만으로 후세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되겠지요.”
“맞소이다.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장을 따르는 장로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성토하고 들었다.
일이 이쯤 되자 진건곤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 무영마저도 더 이상의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덜컹!
“쯔쯔쯔쯔!”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고 혀를 차는 소리가 울렸다.
“무얼 하나 보려고 왔더니 과연 그랬구먼. 속 좁은 짓들을 하고 있었어. 쯔쯔쯔쯔!”
절검이 혀를 차며 장로들을 바라보자 금방까지 성토하던 자들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절검의 눈을 피하기 급급했다.
“무장!”
“네, 사숙!”
아무리 무장이라도 절검의 면전에서 뻣뻣할 수는 없었다. 절검은 화산이 자랑하는 초고수, 화산의 저력 중에 가장 큰 힘이 아니던가?
“무곤을 인정해라. 화산에 크나큰 힘이 될 아이야. 개인적인 원한은 이제 잊어라.”
“하오나……! 무곤의 배분이 너무 높지 않습니까, 사숙! 이제 겨우 입문하는 자가 장문보다 더 높은 배분이라는 것은 지나친 바가 있습니다.”
무장은 절검이 직접 나섰음에도 굽히지 않으려 했다.
진건곤의 배분이 장문보다 높다는 것은 지나친 바가 있었으니 그것을 물고 늘어지려 했다.
“아니다. 이제 겨우 입문한 자가 아니다. 십 년 전, 네가 그 아이의 무공을 조사해 달라고 했을 때 그때 이미 내 제자가 된 아이다. 너와 장문이 그 아이를 꺼렸기에 감추었던 게지.”
“이… 이런……! 원시천존!”
무장은 이마를 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락도 없이 화산의 무공을 익혔을까 조사해 달라고 했던 아이에게 오히려 무공을 전해 주었단 말입니까?”
“그렇다. 그만큼 가르쳐보고 싶은 아이였으니까. 틀림없이 화산에 굴러온 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당당하게 그때 제자로 들이지 않으셨습니까?”
무장은 기가 막힌 듯이 물었다.
“화산을 밝힐 재목을 오히려 해하려 하는 너희들을 보았으니 나 또한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운현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때의 너는 도인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무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지금의 처사는 너무하신 겁니다. 이제 막 약관을 지난 제자가 장문보다 배분이 높다는 것은 너무한 처사입니다.”
“높지 않다. 딱 맞아! 항렬이 그렇다. 무곤은 내 제자니까. 너와 사형제 지간이 아니더냐?”
“안 됩니다. 너무 높습니다. 사숙. 그런 식이라면 눈에 드는 아이에게 가르침만 내려도 배분이 바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무장의 눈에는 절검에 대한 공경이 사라져 있었다. 진건곤에 대한 미움이 이젠 절검을 공경하는 마음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무장은 흉흉한 눈으로 좌중을 노려보았다.
“마침 장로들이 전진자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심사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직접 사숙의 눈으로 지켜보시고 확인하시지요.”
본디 무장은 장로원의 거수도 없이 장로원의 이름을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절검의 기를 꺾기 위해서는 장로원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무장은 진건곤의 배분이 너무나 높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약관을 벗어난 진건곤이 대화산의 장로라고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데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찬성하는 자 거수하게!”
무장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울렸다.
맨 먼저 무영이 손을 들자 무장은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몇몇의 장로들이 무영을 따라 손을 들었다. 그들은 이미 무영의 사람으로 찍혀 무장의 눈에서 난 사람들이었다.
“흥! 겨우 넷이란 말인가? 반대하는 자 거수하게!”
무장이 직접 손을 들어 올리자 나머지 장로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여덟 대 넷!
장로원의 뜻은 이미 무장의 뜻과 마찬가지였다. 무영과 그 일당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결과는 흡족한 것.
무장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절검을 보았다.
“사숙도 보았듯이 장로원의 뜻은 이렇습니다. 추인은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장문이 원한다면 가능할 터, 장문은 무곤의 무공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물론 청송도 그렇고 말이다.”
“허허허허!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장문이라면 제 말을 듣고 말 것입니다. 전진자는 절대로 화산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무장은 자신의 말에 절대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럼 사숙도 함께 장문을 찾아가시겠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지 않습니까?”
무장은 절검을 청하며 장로원의 문을 열었다.
‘사형이 저리도 자신 있어 한다면 미리 약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건곤이는 화산과 인연이 없었는지도 모르지.’
무영은 무장이 절검을 이끌고 장문을 찾아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진건곤과 화산이 인연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두절미하고 진건곤 그 아이를 화산에 받아들일 수 없네. 이것은 장로원의 공식적인 결정이야. 절검 사숙께서도 그 현장에 있으셨으니 그리 알게!”
무장은 화산 장문 운령에게 통지하듯이 말을 하였다.
“하오나 무곤 사숙은 화산에 크게 도움이 될……!”
“허허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이게 다 자네를 위한 일이네. 그런 애송이가 장문의 윗사람이 되는 것이 고까운 게야. 알겠는가?”
장문에게 무장은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틀림없었다. 장인이자 전대 장문이었으니 그랬고 장인에 해당되는 사람이니 더더욱 그랬다.
“전날 청명과 운현을 복귀시킬 때, 이미 약속을 한 것이 있지 않았는가? 지금 그것을 원하는 것일세. 당장 무곤의 추인을 거부해 주게!”
무장은 장문에게 말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절검에게 웃음을 보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허허! 무장은 다른 일에는 사리분별을 잘하면서 운현만 관련이 되면 이런단 말인가? 무곤뿐이라면 몰라도 소검후까지 내치는 결과를 가져올 텐데 그것이 안 보인단 말인가? 원시천존! 화산의 앞날을 위해 사원을 버릴 수 있게 살펴 주십시오. 원시천존!’
절검이 마음속으로 화산의 강녕을 비는 동안에도 무장의 득의의 미소는 잦아들지 않았다.
‘하하하하! 이 정도면 끝이 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사숙은 그렇게 측은한 눈으로 나를 보는 겁니까? 당신이 졌습니다. 분해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문득 절검에게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측은해진 것을 느낀 무장은 영 꺼림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절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장문의 뜻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무곤이 화산파의 제자라는 것은 뒤집지 못할 것이다. 무곤이 화산의 제자라는 것은 이미 조사님들의 뜻으로 정해진 바이니라.”
“사숙! 아무리 사숙이라 하셔도 장로원과 장문의 결정에 따르지 않으실 수는 없는 겁니다.”
절검의 말에 얼른 무장이 말을 받았다.
“그러지 않아도 될 때가 있지. 조사령으로 만들어진 율칙이라면 말이다. 무곤은 바로 조사령으로 만들어진 화산수문위의 직책을 잇고 있으니까 말이다. 무곤이야말로 당대의 화산수문위니까 말이야.”
절검의 말에 무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
무장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절검은 그 말만을 남기고 장문의 처소의 문을 열었다.
무장은 입술을 깨어 물며 분함을 금치 못하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아울러 그 아이의 직책이라면 무 자 배에 아주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구나. 알겠느냐?”
절검이 나가며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화산수문위라면 본디 그 직위가 장로에 해당한다. 현재의 무 자 배가 장로 직에 있으니 진건곤의 항렬도 무 자 배로 잡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일이었다.
무장은 다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이… 이……!”
뾰족하게 솟은 기암들이 산을 이루고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한 곳. 그중에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바로 화산의 절봉 중의 하나라는 조령봉이었다.
조령봉의 중턱,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한 인형이 앉아 있었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인형은 미동도 없이 있으니 한 폭의 산수화에 속에 그려진 그림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는 바로 운기행공에 빠져든 진건곤이었다.
그런 진건곤을 멀리서 바라보는 절검은 탄성과도 같은 말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보고 있으나 느낄 수 없으니 마치 바위 같구나.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보니 알아볼 뿐, 몰랐다면 찾아볼 수도 없었을 것이야.”
절검이 보기에 진건곤은 그야말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저 자연의 풍경으로 보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쯧쯧쯧! 저렇게 뛰어난 녀석이 절로 화산에 들었건만 그를 감싸지도 못하면 도장이라고 할 자격이 없지.”
절검은 속 좁은 사질들이 못마땅해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 진건곤은 몰아일여(沒我一如)의 경지에 있었다. 현천기공을 통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올라가 보자고!”
절검이 느린 발걸음을 옮겨 진건곤을 향했다. 절검마저도 진건곤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바위처럼 움직일 줄을 모르던 진건곤의 눈이 번쩍 떠졌고 눈에서는 백색의 신광이 토해져 나왔다.
두 손이 검결지를 만들자 그 끝에는 백색광이 일렁였고 검결지가 땅바닥에 놓인 검을 가리키는 순간.
번쩍!
백색광이 번쩍이며 검속으로 스며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은 스스로 생명을 지닌 아기 새처럼 날아올랐다.
초절정 고수들만이 펼칠 수 있다는 보기 드문 기예를 일컫는 허공섭물이라는 이름을 굳이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신기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진건곤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허공섭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한참 뛰어넘은 몰아일여(沒我一如)의 경지를 검에 시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습게도 폭주를 통해 인성을 잃어버리고 주위를 초토화할 것이라는 염정간옥의 검이 진건곤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염정간옥의 검은 욕정을 자극하고 그 극에 달한 염원만으로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검이었다. 비록 뒤틀렸다고는 하지만 정신의 힘을 실제 하게 해주는 검이었다.
보통 다른 무인들에게는 하단과 중단의 힘을 자극하여 일순간에 힘을 뽑아 쓰게 하는 것에 그치고 말뿐이었다.
하지만 상천을 열었던 진건곤에게는 좀더 다른 형태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극한의 염(念)이 검을 움직이게 하였고 그 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바로 상천의 힘을 실제의 세상에 내보내는 방법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폭주 상태에서 발휘했던 검을 재현하고자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던 진건곤은 몰아일여의 경지를 검에 시전하면 이기어검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땡그랑!
몇 차례 허공을 선회하던 검이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후우! 실전에 쓰기에는 역부족인가?”
전날 화령신을 꺾었을 때의 이기어검을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요원하기만 한 것이었다.
화산에 들어 한 달 동안 기를 쓰며 만들어낸 것이 고작 원을 그리며 허공을 세 차례 선회하는 것이 전부였다.
모든 진력을 다 쏟아 부은 진건곤은 또다시 현천기공을 운용하며 운기에 들어가려 했다.
검을 움직이게 하는 진력은 내력과는 다른 힘이었는데 그것은 현천기공을 아무리 운용해도 늘어나는 것 같지가 않았다.
“허허! 잘 안 되는 가보구나.”
“제자가 사부님을 뵙습니다.”
절검의 목소리에 진건곤은 얼른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던 절검이 이제야 진건곤에게 도착했던 것이다.
“배분의 일은 내가 해결했으니 그리 알아라.”
“군자검 사부의 인연을 털지 못하나 봅니다.”
절검의 표정을 보고 순탄치 못했다는 것을 느낀 진건곤의 답이었다.
“그러니 더욱 한심한 게지. 운현도 그만큼 고통을 받았다면 충분한 것을. 모두가 잊어버린 원한을 아직도 혼자만 짊어지고 있으니… 쯧쯧쯧. 원시천존! 어쨌거나 네가 수문위라는 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 배분의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지는 못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진전은 전혀 없느냐?”
“네. 거의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또다시 화령신과 같은 자를 만난다면 꼼짝없이 당할까 걱정입니다.”
진건곤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을 보고는 절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어쩌면 네가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너처럼 무공의 진전이 빠르기란 고금을 통틀어 보기 드문 것이다. 전에도 이기어검이 세상에 등장한 일도 있었지만 그분들은 모두가 세수가 일백에 가까워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었지. 너 만한 나이에 그런 경지란 것은 일찍이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이다. 서두르지는 마라. 자칫 탈이 날까 두렵구나.”
절검의 말에도 진건곤의 얼굴은 밝아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허허! 급하다고 묘목으로 기둥을 삼을 수는 없지 않느냐?”
“화령신과 같은 자들이 셋만 모여도 화산조차도 안전하다고 할 수가 없으니 문제지요. 내 집에서조차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답답합니다.”
“걱정 마라. 그런 자가 셋이 온다고 해도 화산은 그들을 감당할 수 있다. 일대일로 상대할 수는 없다고 해도 합격이라면 감당하고 남을 고수들이 즐비하구나. 구파라면 천하제일인이라도 홀로 상대할 수 없는 곳들이다. 구파의 일원인 화산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네 이놈! 어찌 사문의 재산을 감추고 있었단 말이냐?”
진건곤의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무장은 그 화를 운현에게 퍼붓고 있었다. 환천삼보의 일로 흠이 잡혀버린 운현에게 서슬 퍼런 소리를 치고 있었다.
한때는 사부였고 장인이 될 사람이었던 무장은 운현에게는 참으로 모진 인연이 되어버렸다.
“환천삼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무공이었습니다. 가일구층황금공은 내공을 얻을 때마다 자신의 내공을 버려야 하는 무공이었기에 쓸모가 없었고 광룡진천류는 살기가 과도해 정파의 태두라 할 수 있는 화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공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 가지 무공자체가 환천삼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무공들입니다. 또한 이미 무곤 사숙의 증언으로 광룡진천류가 좌도방문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흥!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지 좌도방문인지 아닌지는 화산이 판단할 일이지 네놈이 판단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 네놈은 그저 화산에 가져다 바치기만 했으면 됐을 일이었단 말이다. 네놈이 감히 화산에 앙심을 품고 홀로 가로챈 것이 아니더냐? 이런 배덕한 놈 같으니라고. 원신천존! 원시천존!”
무장은 자신의 제자였던 운현을 배덕한 자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구원은 질긴 꼬리가 되어 무장과 운현은 이미 한 배를 탈 수 없는 사이였다.
장내에는 장문인 운룡을 비롯하여 많은 장로들이 함께하고 있었지만 무장이 성을 내기 시작하자 쉽게 나서고 있는 자가 없었다.
이럴 때 나설 수 있는 자는 역시 무영뿐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무턱대고 운현의 편을 들어주는 자는 아니었다.
그의 중심에는 화산이 있고 인정이 운현과 청명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화산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그들의 편에 서서 무장과 싸워주고 있었다.
“운현. 지금이라도 가일구층황금공과 광룡진천류를 내놓아라. 화산이 판단할 일이라는 것은 맞는 것 같구나.”
본디 무영은 무장의 일에 편승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무장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었다.
“그렇다지 않느냐?”
무장이 그것보라는 듯이 재차 면박을 주고 나섰다.
그 순간 무영의 눈이 무장을 향했다.
“하지만 화산이 두 가지 무공을 꼼꼼히 살피고 난 뒤에 무공에 흠결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거든 사형도 역시 운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무장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운현에게 사과 따위를 하고 싶었던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흥! 네놈이 천하제일의 내공을 지녔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한데 그런 일이 있겠느냐?”
무장의 악의에 가득 찬 소리가 있을 때마다 운현은 차라리 화산을 떠나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하였다.
화산에 돌아온 후에도 무장의 반대를 위한 반대는 계속되어 이미 감정이 극에 오른 지 오래였다.
그나마 청송이 청명을 중히 여기고 있지 않았다면 언제고 뛰쳐나갔을지도 몰랐다.
무영이 그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허어! 본디 사형은 판단이 흐리지가 않는데 운현만 관련이 되면 왜 저리 되시는……! 원시천존! 어서 사형이 구원의 늪을 빠져나오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원시천존!
“흥! 이미 네놈의 내공이 하늘을 찌른다는 말이 개방과 당문, 모용세가의 입으로 흘러나오고 있거늘 거짓을 고한다고 해서 통하겠느냐? 네놈은 화산에 악심을 품고 배신행위를 한 것이 아니더냐?”
운현이 답답한 듯이 하늘을 바라보자 또다시 그를 모욕하는 무장이었다.
그 모습이 도인의 것 같지 않았지만 화산의 도인들은 둘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지라 용인하다시피 하였다.
허나 당금에 와서 무장의 미움이 큰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흠결이 있는 무공을 내세워 환천삼보라 포장을 한 것을 보면 분명히 좋은 의도가 아닐 것이 틀림없습니다. 화산은 진중하게 상대하여야 합니다. 장문!”
운현은 더 이상 무장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장문에게 전하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무장에게는 거짓처럼 보일 뿐이었다.
“장문! 운현으로 하여금 환천삼보의 나머지 하나까지 찾아오게 하여야 하오. 그가 그것을 찾아오지 못한다면 무공을 숨긴 죄를 물어 파문시켜야 할 것이오.”
“제가 내어 놓은 구결을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흠결이 있는 무공이라고 하였습니다.”
답답하다는 듯이 눈을 뜨며 다시금 항변하는 운현이었다.
“원본이 없거늘. 네놈이 거짓으로 흠결을 만들어 내었는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이냐?”
또 눈을 부라리며 운현을 핍박하는 무장이었다.
더 이상 놔두어서는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안 장문이 결론을 지었다.
“무공에 흠결이 있으니 그리한 것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일단 무공을 화산에 보이지 않으신 것은 사형의 잘못입니다. 사형은 장로님 두 분과 일대제자 둘을 데리고 환천삼보라고 불리는 것을 회수해 오셔서 과거를 씻기 바랍니다. 물론 환천삼보를 얻게 된다면 사형이 손을 대서는 안 될 일입니다. 거짓이 아님을 보이고 싶다면 반드시 그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장문이 운현에게 환천삼보의 회수를 맡겼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무장에게도 말을 남겼다.
“또한 대장로님께서는 후일 흠결이 있는 무공이라고 판결이 나면 운현 사형의 진심을 사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문 운령은 그나마 공정함을 유지하려 하고 있었다. 운령에게는 한때의 질투와 서운함으로 지나간 일이었으니 화산에는 그나마 나은 일이었다.
“무엇이? 고극사가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단 말이더냐? 이미 빙극사는 사천에 다다른 모양이던 것을……!”
“가의단공을 이용하는 대법의 완성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일이 끝나고 난 뒤에야 움직이실 수 있답니다.”
“오호! 대법을……!”
귀제갈은 감동에 찬 얼굴이 되었다.
“하하하하하! 역시 대공녀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분이 틀림없구나. 때마침 가의단공을 이용하는 대법이 완성되다니 말이야. 하하하하하!”
한참을 그렇게 기뻐하며 웃음을 터트린 귀제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빙극사 혼자 소군에게 필승이랄 수는 없지. 시간 안에 그곳에 도착할 수 있는 극사라면……? 백극사밖에 없겠지. 백극사에게 전서구를 날려라!”
“존명!”
“하하하하! 두 명의 극사라면 필승! 게다가 진척을 모르던 가의단공이 완성된다면 이번에야말로 본교의 숙원이던 대계를 마무리 지을 수 있겠지.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좀처럼 흥분하지 않던 귀제갈이었지만 가의단공을 이용하는 대법의 완성이라는 말에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가의단공을 이용한다는 것이 무엇이 관데……?
사천으로 드나드는 물편이 가장 많이 지나드는 곳인 광원(廣元)은 사천의 입구라고도 불리고 있었다.
물길과 육로가 모두 있어 드나드는 사람이 많으니 자연히 객점이나 주루도 역시 발달 된 곳. 그중에도 단연 최고의 곳은 사천광루라는 곳이었다.
“허어! 이런 참……! 별 희한한 놈들이 다 있군.”
객점에 든 사내는 한여름에도 털이 달린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을 보고 구시렁거렸다.
그 소리가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조용했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깨어져 버렸다.
“별……!”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그 주위에 있던 자들의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들은 십중팔구 ‘미친놈!’이거나 ‘정신 나간 놈들이군.’이었기 때문이었다.
핑! 푹!
동시에 날아든 젓가락이 사내의 아혈을 찍어버려 사내의 말을 멈추게 하였다.
물론 젓가락에 실린 역도에 몽둥이로 후려친 것 같은 충격을 먹고는 쓰러지는 것은 기본이었다.
[멍청한 놈. 요즘처럼 북풍(北風)의 혈사 이야기가 세상을 휩쓰는 마당에 넌 경계심이라는 것도 없는 거냐? 저자들이 바로 구풍의 주인공들이다. 네놈처럼 그렇게 험담을 하다가 얼어 죽은 자가 한둘이 아니다.]
전음으로 북풍이라는 말이 들리고 나서야 사내는 겁에 질린 표정이 되어 스스로의 입을 틀어쥐었다.
[조용히 먹고 사라져. 목소리는 밥 먹고 나갈 때 풀어준다.]
아혈을 짚인 사내는 객점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것을 그제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젓가락을 던져 공연한 충돌을 막은 자는 개방 광원 분타의 분타주였다.
“하여간에 입이 말썽이라니까. 제 놈들과 다른 사람을 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일. 공연히 입을 씨부렁거려!”
분타주의 임무는 북풍의 혈사를 막아내는 것이었다.
빙계의 제왕인 빙백신의 행차를 막을 수 없었기에 만들어낸 고육지책이었다. 그 주위를 웽웽거리는 똥파리들을 쫓아내는 것이 일을 작게 만드는 지름길이었다.
차르륵!
주렴이 열리고 또 다른 녀석이 들어왔다.
조용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에 분타주의 눈에서 경계가 풀어졌다.
“소면. 만두 한 접시.”
사내는 걸음을 옮기는 그대로 점소이에게 주문을 하더니 곧장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빙계의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에서 사선으로 떨어진 곳. 바짝 붙지도 멀지도 않은 곳이었다. 우연치 않게도 그런 자리가 암기를 사용하기에는 최적의 거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혼자 실실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를 경계하던 분타주의 생각이 옅어지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점소이가 가져온 소면과 접시를 탁자에 놓으려는 순간, 사내의 모습이 점소이에 의해 가려졌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폭발음이 있었다.
펑! 퍼버버벙!
번개같이 소매에서 꺼낸 죽통이 불을 뿜고!
우수수수수수!
놀랍게도 암기가 쏟아져 나온 곳은 모두 다섯 군데. 전에 들어와 아혈을 봉인 당한 자들도 역시 손에는 똑같은 죽통을 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분타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행여나 상처라도 나는 판에는 혈사가 일어난다!’
하얀 연기가 가라앉자 놀라운 모습이 벌어져 있었다. 허공에는 커다란 원반과 같은 얼음이 맺혀져 있고 세모침들이 그것들에 가로막혀 있었다.
“쳐랏!”
죽통을 쏘아냈던 사내의 잎에서는 침음성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고,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자들은 소매에서 비수를 꺼내 들고 달려들었다.
칼날이 시퍼렇게 번쩍이는 것이 극독이 잔뜩 발려진 상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부나방 같은 것들!”
빙백신은 그런 일들에는 하등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으로 여전히 음식을 먹었고 네 명의 수행원들은 벌떡 일어나 사위를 막아섰다.
극독이 발린 비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가는 그들의 손에는 하얀 기운이 서렸는데 마치 얼음으로 손을 감싸고 있는 것과 같았다.
탱! 태대대댕!
쯔즈즈즈즈즛! 쯔즈즈즈!
한 손으로 비수를 막고 다른 손으로 살수들의 손을 잡자 그들의 몸이 기음을 터트리며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마치 얼음으로 만든 조각상과 같은 모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빙궁의 소수빙공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여 그 장면을 지켜보던 개방의 분타주조차도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흥! 하룻강아지 같은 놈들!”
퍽! 퍼버버벅!
수행원들이 가볍게 얼음 조각을 두드리자 산산조각이 난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겉모습은 하얗게 서리가 앉았으나 그 파편은 붉디붉어 조각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으으으……! 너무나 잔인하시구려!”
개방의 분타주가 자신도 모르게 신음처럼 뇌까렸다.
“흥!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이게 싫다면 좀더 엄중하게 경호를 하던지!”
빙백신의 수행원 중에 하나가 비웃음을 던지며 뱉어낸 한마디였다. 십만방도를 거느린다는 중원 최대의 거파 개방이 일개 호위군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감히 세외의 오랑캐 따위가 개방을 우습게보다니……! 환천삼보 때문에 주력이 빠져나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우습게보이지는 않았을 텐데.’
분타주는 환천삼보에 휘말려 버린 개방의 내부사정이 자못 원망스러웠다.
탱! 탱그랑!
잔인한 장면에 놀란 점소이가 뒤늦게 들고 있던 쟁반을 떨어트리며 나는 소리였다. 그리고는 점소이의 가랑이 사이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실금(失禁)!
“크하하하하! 못난 놈!”
빙계의 수행원이 점소이를 비웃었다.
빙계에서는 이런 자들은 겁쟁이라면 도태되어 살아남을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수행원들의 시선이 제자리로 돌아가자마자 점소이의 눈이 번뜩이며 소매에서 기물이 나왔다.
“진천뢰!”
분타주가 경악성을 울렸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꽈과과과광!
진천뢰가 터지기 직전 점소이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다.
아마도 5인의 살수들은 이것을 위한 재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점소이의 실금조차도 그들을 방심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실금을 하던 겁쟁이가 스스로 목숨을 바쳐가며 진천뢰를 터트릴 것이라는 생각도 하기 힘든 것이었다.
수행원들의 방심이 바로 지척에서 진천뢰를 터트릴 기회를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꽈과과광!
폭음이 터져 나오고 엄청난 위력의 힘이 객잔을 휩쓸었다. 객잔이 터져 나가고 나무 조각들이 휘날렸다.
끼이이이익!
“빌어먹을……! 무슨 짓이야?”
분타주는 경악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빙계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타주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