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32화 (32/61)

제8장

사흘 뒤. 의뢰한 지 정확히 스무 일이 지났을 때야 개방에서 답이 왔다.

개봉의 총단까지 소식이 오고 갔으니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사는 십 년 전 마교가 사용하던 명칭임.

당시에는 이십칠 처사가 있었음.

마교에 대해서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모두 모여 처리할 사안임. 극비요망.

주요 지위에 대한 병기가 있으니 참조하기 바람.

대공, 대공녀: 마교의 핵심인물. 그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펼쳐지고 그가 마교가 세상에 내걸 가치를 결정한다고 함.

극사: 무공의 극에 이른 사람을 이름. 적군을 섬멸하는 임무를 맡은 자. 과거에는 십이 극사가 있었음.

처사: 극사의 바로 밑의 인물로 세부적인 사항을 책임지는 자. 처사는 보통 무림이나 관부의 주요 요직에 들어 혼란과 조작을 일삼았음. 과거에는 이십칠 처사가 있었음.

봉려: 마교를 위한 재원(財源)을 마련하는 자들의 우두머리. 주로 상인이나 관직에 자리하며 돈을 모아왔음. 과거에는 십봉려가 있었음.>

“이럴 수가. 처사라는 말이 곧 마교의 인물을 의미한다니……!”

진건곤으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그 끝에 마교가 나오다니.

“화령신의 강함이 이해가 가는군요. 세외삼신이라면 극사라 해도 놀랄 것이 아니지요.”

소군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내심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그만큼 화령신의 무공은 놀랍기 짝이 없었다.

“화산에 소식을 보내야겠습니다. 물론 아미에도 같이 소식을 보내도록 하지요. 적어 주시겠습니까?”

개방에서는 극비요망이라고 하였지만 사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적어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회동이 마교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려야만 했다.

청송이 붓을 꺼내 소군에게 내밀었다.

소군은 아미파의 밀마를 적어 내밀었고 그것은 청송이 적은 밀마와 함께 각자 사문으로 보내질 것이었다.

“어떻습니까? 화산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사조님?”

진건곤이 복수를 위해 강호를 도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건곤에게 물어보는 청송이었다.

이럴 때는 영락없이 청송은 화산의 중책을 수임하는 자 다웠다.

“일단은 화산으로 가고 싶습니다. 화령신의 무공을 보건대 결코 당해낼 수 없는 상대였습니다. 힘을 얻어야겠습니다.”

청송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건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가지 않는다고 했다면 진건곤을 설득하기 위해 애를 먹었을 것이었다.

연이어 청송의 시선이 소군에게 향했다.

“화산으로 같이 갈 것입니다.”

마교의 극사가 진건곤을 노리고 있는 시점에서 진건곤을 혼자 둘 수는 없었다.

또한 자신의 무공을 좀더 다듬어 천수불영검을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교재림이 일어난다면 불완전한 천수불영검으로는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미에서는 소군 홀로 뚝 떨어진 고수인데 반해 화산에는 절검과 진건곤뿐만 아니라 많은 고수가 있었다.

소군은 그런 화산이 자신의 검을 정련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건곤 일행이 화산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다.

세외삼신 중의 하나인 화령신이 움직였던 것을 생각하여 더 이상 강적과 부딪히기 싫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여기도 유명한 볼거리가 있는데 말이에요.]

[그러게. 장문과 오라버니가 너무나 서두르는 것 같아.]

진려경과 청린이 소군의 눈치를 살살 보며 전음을 날렸다.

소군은 마차에 앉아 눈을 감고 앉아 명상수련을 하고 있었다.

소군의 명상에 나타난 것은 바로 화령신이었다.

강기를 품어내고 강기로 권벽을 만들어내던 화령신이야말로 그녀가 싸웠던 최강의 고수였다.

‘선대의 소검후들께선 검강을 만들지 않고도 천하제일의 자리에 오르신 분들이 있으셨다. 검강을 만들게 되는 것은 더 먼 후일의 일. 지금은 초식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 일에 치중하자.’

아미의 천수불영검은 내공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검이 아니었다.

미세한 진기를 가닥가닥 허공에 뿌려놓아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그 주요점이었다.

상대의 무공을 잘 느끼게 되면 상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내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파괴력의 극치인 강기공마저도 맞서지 않고 비껴 내거나 방향을 돌려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소군은 명상 속에 나타난 화령신의 권강과 싸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가는 땀방울이 화령신이 얼마나 강한 고수였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명상 속에 화령신을 떠올리면서 생사결을 해왔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마도 전날의 결전에서 그녀는 패했으리라.

다행히 그날에는 진건곤이 무력해진 상태로 분노와 증오를 키워낼 시간이 있었다.

만일, 비무가 지속되고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로 패하고 진건곤이 분노를 느낄 시간도 없이 당했다면? 아마도 그날의 멸절을 당하는 쪽이 되었으리라!

[정말 대단해요. 소군이라는 분 말이에요.]

[그럼 대단한 분이지. 현재 강호에 여중 제일인이라잖아. 동생은 그런데 무엇이 대단하다는 거지?]

소군의 대단함은 충분히 알고 있는 진려경이었지만 청린에게 다시 물었다.

자신의 자랑거리를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소검후께서는 이 마차를 타고 한 번도 다른 일을 하신 적이 없어요. 저렇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무미건조한 일일 텐데도 잘도 해내시네요.]

[하지만 그건 오라버니도. 청송 오라버니도 다 같잖아.]

[아니죠. 그건 좀 다르죠.]

진려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무엇이 다르다는 말이야?]

[남자니까요. 우리 같은 소중한 미인을 얻으려면 그런 능력을 갖추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지만 소검후께서는 저런 미모를 가지고도 그 미모를 자랑하지 않으니 대단한 것이라고요.]

청린의 미모는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었다.

십대의 봉오리를 지나 이십대의 피어나는 꽃이 되어가고 있었으니 길을 가던 사람들이 모두 길을 멈출 정도였다.

청린은 자신보다는 못하지만 웬만한 남자들을 사로잡고도 남을 만한 미모를 지닌 소군이 저렇게까지 노력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호호호호! 동생다운 생각이야. 호호호호!]

진려경은 소리 죽여 한참을 웃고는 청린을 바라보았다.

[내가 한마디만 하면 동생도 저렇게 열심히 할지도 몰라. 물론 대사매처럼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무슨 말인데요?]

[아니야 말하지 않을래. 알려주고 나면 동생이 대사매를 부러워하다 못해 시기할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아미파에 입적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르지.]

진려경은 특유의 말솜씨로 청린을 자극했다.

역시나 청린은 그런 말에 제대로 자극을 받아 속으로 소군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흥! 아무리 보아도 저 늙은 여자보다 내가 더 아름다운 걸. 려경 언니의 말은 들어보지 않아도 될 거야. 아미파라니? 언니가 아미출신이라는 것은 알지만 화산과 비교조차도 되지 않는 아미를 말한다는 건 웃기는 일이라고요.’

둘 사이의 대화는 그것으로 단절되었다.

하지만 이런 쪽에서 언제나 승자는 진려경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

‘하지만 무얼 말하는 거지? 려경 언니의 말은 언제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데. 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될까?’

묘한 정적이 흐르고 청린은 스스로 상상에 상상을 더하더니 점점 더 궁금해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묻게 되었다.

[언니? 그게 있잖아?]

[뭐가?]

진려경은 청린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는 다시 물었다.

[아까 하려던 말이요. 제가 소검후를 부러워할 것이라는 것 말이에요.]

청린은 똑똑하다고 소문난 지혜는 모두 사라져선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똑똑하기 때문에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위해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그런 표정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진려경이었다.

[으음……! 알았어. 동생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갈 것 같아?]

[……!]

잠시간의 정적이 이어지고 청린의 눈이 소군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이런! 그러니까 저 노인네가 아직도 저 얼굴로 돌아다닌다는 거지. 그러니까……! 저 노인네는 앞으로도 저 얼굴로 돌아다닌다는 거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저럴지도 모르는 거고……!’

[언니 절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화산에도 뛰어난 심법이 있으니 저도 소검후님처럼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동생. 대사매처럼 명상수련이 가능하지 않다면 이런 흔들리는 마차에서 수련하는 건 무리라고!]

[걱정 마세요. 화산에는 이런 상황에서도 내공을 닦을 수 있는 심법이 있으니까요. 그럼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청린이 심법을 수련에 들어가자 진려경은 후회하게 되었다.

‘피잇! 청린도 수련을 시작하니 나만 심심해진 것뿐이잖아? 나도 수련이나 해볼까?’

하지만 진려경은 수련을 할 수가 없었다.

움직이는 동안에 무공을 닦을 수 있는 심법이라고는 배운 것이 없었으니까.

한참을 머리를 굴리던 진려경은 아주 어릴 적에 배웠던 현천기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원시천존! 화산이 소검후를 환영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반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시 소검후. 화산의 장문인인 운령이 입구까지 나서서 소검후를 반겼다.

웬만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수련에만 힘쓰던 장로 중에서도 소검후를 보겠다고 나선 자가 있을 정도였다.

무장도 역시 그중에 하나였다.

장문 직을 사위에게 넘기고 난 뒤, 화산의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무장이었다.

무진은 아직도 장로로 남아 화산의 일에 관여하고 있었지만 그는 태상장로라는 감투만 썼을 뿐, 사실상 화산의 일에 관심을 잃고 있었다.

새로운 화산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탓이었다.

운령이 장문이 되고는 한동안은 자신의 뜻을 살피는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운령은 자신의 제자인 청송의 뜻을 좇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녀사위감인 청송을 따르는 것인지도 몰랐다.

청송이 워낙에 걸출한 인재이다 보니 그를 중심으로 화산을 다시 짜려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뒷방늙은이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은거에 들다시피 한 무장이었지만 소검후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하여 장문과 함께 나섰던 것이다.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던 것이 있었다.

바로 무곤. 전진자라고 불리는 진건곤의 존재였다.

절검 영은이 자신의 제자라고 세상에 공포해버린 탓에 화산에서 거부하지 못하고 인정해 버린 사제.

무 자 배로 인정받아 도호가 무곤 이라 칭해진 진건곤이었다.

사손으로도 못마땅하거늘 핏덩어리처럼 어리게 보이는 진건곤이 자신을 사형이라고 부르는 꼴을 어찌 참는단 말인가?

“흠! 네놈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무장이 진건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곤이 사형을 뵙습니다.”

“흥! 누가 네 사형이라더냐? 지금은 말하기 귀한 손님이 있어 말하기 적절하지 않으니 물러가라. 현 장문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여 통지할 것이다.”

그때까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진건곤이었는데 무장의 발언에 한눈에 띄고 말았다.

웅성웅성.

도인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경우로 따진다면 절검과 현 장문이 인정한 무곤을 사숙이나 사조로 대해야 하지만 무장이 저렇게 서슬 퍼렇게 나오는 한 면전에서 그리하기가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장의 말에 진건곤은 부아가 치밀었다.

‘사부와 나를 그리 못살게 굴고도 아직도 저런단 말인가?’

[참아주어라. 지금의 굴욕은 어렵지만 나를 봐서라도 넘어가 주기 바란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서신 분이다. 앞으로는 뵙기도 힘들 것이야. 부탁이다, 동생.]

전음을 사용할 때는 형님 동생으로 칭하기로 한 청송의 전음이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사형.”

진건곤은 청송의 얼굴을 봐서 참기로 하였다.

“흥!”

무장의 냉랭한 음성이 분위기를 딱딱하게 굳게 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건곤이 곱게 넘어가 준다는 것이었다.

[누님,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진건곤이 절검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자 소검후도 역시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장문을 제외하고는 아직 인사도 나누지 않았건만 어디로 간단 말인가?

청송과 청암, 청명이 모두가 이마를 때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거…검후! 어디로 가시는 게요?”

무장이 소군을 불렀다.

자신이 망친 분위기에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했기에 비위를 맞춰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려서 아미에 들어서느라 배운 것이 없습니다만 하지만 아버님께 배우기를 여필종부(女必從夫)라 배웠습니다. 아버님이 정해주신 지아비가 걸음을 옮기니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군이 손을 들어 걸음을 옮기는 진건곤을 가리켰다.

“저분이 제 아버님이 정해주신 서방님입니다.”

꽈과과광!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일행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머릿속에 벽력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맙소사! 절검 사숙을 사부로 두고 소검후의 서방이란 말인가?’

무장의 머릿속에도 역시 벽력탄이 터지기는 마찬가지. 아니 해놓은 짓이 있으니 더욱더 강력한 벽력탄이었으리라.

자못 놀라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소군은 걸음을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진건곤을 따라붙어 왼쪽의 뒤에서 세 걸음을 떨어져 걸었다.

그야말로 여필종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무장은 도호를 외우며 자신의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무량수불!”

화산의 입구에 때 아닌 도호란 도호는 모두가 출동하고 있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도호를 외우며 탄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호호홋! 언니도 꽤 하시는데요?]

[그러게.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대단하시네.]

[호호호호! 앞으로 언니랑 지내는 것이 재밌게 될 것 같네요.]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둘이 있었다. 바로 진려경과 청명이었는데 그들의 전음이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진건곤은 절검을 향해 대례를 올렸다.

물론 소검후도 역시 대례를 올렸다.

남편의 사부를 대하는 예였다.

절검의 얼굴에는 웃음이 담겨 있었다.

“허허허! 전과는 많이 변했어. 서방님이라고?”

소군이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답을 했다.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정해주셨습니다.”

소군은 ‘나이 많은 여자가 어쨌을까?’라는 소리를 의식했는지 말끝마다 아버지가 정해준 정혼자라는 말을 꼭 밝혔다.

“그런데 이곳엔 왜 왔을꼬? 내게 인사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절검의 말을 듣자 진건곤과 소검후의 얼굴이 굳어졌다.

절검의 얼굴도 역시 굳어졌다.

그들이 얼굴을 굳힐만한 사건이라면 필히 대단한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의 원수를 쫓던 중에 마교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무엇이라고? 마교가 틀림없단 말이더냐?”

“세외삼신 중의 하나인 화령신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자가 흘린 말 중에는 처사라는 말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마교의 처사라고 합니다.”

절검은 마교라는 말보다 화령신이라는 말에 더 강한 반응을 보였다.

“정녕 화령신이었단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또한 그자의 무위가 대단하여 강기를 만들어내는 경지에 있었습니다.”

“강기까지……!”

절검은 따로 화령신을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화령신에 관한 반응이 너무나 민감하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화령신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랬지. 십 수 년 전에는 직접 겨루어 보기도 했었는걸. 승부를 내지 못하고 그만두었다마는 아직도 화령신보의 신묘함을 깰 수가 없구나. 그래, 화령신은 어찌되었느냐?”

“죽었습니다.”

절검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누가? 소검후 자네인가?”

절검이 소군을 지목하자 소군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아닙니다. 아마도 사고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뽑아낼 수 없는 힘일지도 모르니까요.”

절검의 시선이 자연히 진건곤을 향했다.

“저와 관련은 있으나 제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죽음의 직전까지 몰려 정신을 잃었을 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기억도 없고 그 힘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상천의 힘과 관련된 일인 것 같습니다.”

절검은 상천과 관련되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절검도 역시 상천이라면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은 이곳에 온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극사의 무위는 실로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미 제가 노림을 당하고 있는 바, 그들과 마주친다면 그날이 바로 죽는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의 그늘에서 힘을 길러 두어야만 훗날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극사 하나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어르신의 그늘에서 힘을 기르려 합니다.”

“허허허!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겠지?”

소군의 답에 절검이 되물었다.

“맞습니다. 어르신.”

“나와 비무를 하며 무공을 다듬는 것이 바로 그것일 테고, 그런 후에는 그 무공으로 나를 꺾어 검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목적일 테고!”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고?”

“검후가 되는 길은 천하제일의 무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허나 천하제일이 꼭 하나란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허허허허허허! 허허허허!”

절검의 웃음이 길게 이어졌다.

“허허허! 서방님의 스승이라서 봐주겠다는 게로군.”

“그게 아니…….”

“상관없네. 그게 아니든 기든.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건 자네 때문이 아니니까. 마음을 편히 먹어도 상관없네.”

절검은 평생 동안 무당의 그림자를 밟아야 했다.

천하제일 도문인 무당을 꺾고 화산의 이름을 그 위로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살아온 인물이었다.

평생 동안을 무당을 연구하고 살았으니 그만큼 무당의 무공을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절검이 지닌 무공의 문제였다.

무당의 것을 연구하고 고려하는 동안 무당의 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절검의 검은 화산의 상징인 절도와 서릿발같이 엄정한 기운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당의 검처럼 흘러가는 대로 자유스럽게 움직이며 피를 보지 않는 검에 심취하고 말았던 것이다.

절검의 평생의 심득으로 진건곤에게 전해진 검은 바로 수비에 가까운 검이었다. 남을 해치기보다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남을 제압하는 쪽으로 발달된 무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와 무승부를 보기는 좋을 것이야.”

절검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말이야. 참 좋을 때가 아니겠는가? 이곳을 거처로 쓰도록 하게. 이곳만큼 조용한 곳도 없으니 말이야. 나는 외따로 나가 움직이는 법이 많은 늙은이니까. 이곳에 새살림을 차린다고 해도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야.”

절검의 말에 진건곤과 소군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둘은 따로 떨어지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나이야 어쨌거나 한참 불타오르는 신혼이었던 것이다.

진건곤은 일찍이 일어나 절벽 바위 위에 앉았다.

휘이잉!

상쾌한 바람이 불어 몸을 식혀주었다.

언제나 절검이 앉아 화산을 굽어보던 절벽 위였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스스로 호흡의 길이를 정리해 보니 모두 천을 헤아려도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스스로 끊어지지 않는 호흡을 가지고 있었으니 면면부절이라는 말이 더 이상 어울리는 심법이 없었다.

“현천기공의 기능이 상천을 깨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의선께서 짚어주셨듯이 유기에 그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백자가 떠날 때 남긴 말이었다. 아마도 백자가 준 선물일 것이다.

보통의 심법에는 호흡을 흡기(吸氣)와 정기(停氣), 배기(排氣)로 나뉘는데 진건곤의 호흡은 독특한 것이 있었다.

바로 정기가 아니라 유기(流氣)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 습관이 생겼는지는 몰랐지만 그만의 차이라면 바로 유기에 있었다.

유기는 정기와는 달리 호흡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몸 안에 들어온 기운이라도 호흡하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입구를 열어둔 채로 있는 것뿐이었다.

정기라 함은 몸 안에 들어온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입구를 닫아버린다.

그리고는 그것을 단전에 강제로 담아가는 일을 반복한다.

유기는 그 기운이 들고남에 강제가 없었다.

어찌 보면 자연의 기운이 그대로 들어왔다가 노닐다가 나가는 꼴이어서 축기가 적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이것이 바로 상천을 여는 비법이 되었던 것이다.

자연의 기운이 들고나가며 몸에 어울리는 기운들이 스스로 단전에 눌러 앉아 내력을 쌓으니 그 내력이 정순하기 짝이 없었다.

또한 그 내력들은 굳이 단전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었다.

스스로 앉아야 할 곳에 앉았으니 그곳이 상천과 중천, 하천으로 나뉘어 있었다.

남들은 차곡차곡 단전에 담을 때, 진건곤은 세 곳에 나누어 담았으니 쌓인 내력이 많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현천기공은 그 면면부절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심법이 아니었던가?

심지어는 움직이거나 심법을 갑자기 멈춰도 상관이 없었고 심법을 수련 중에 방해를 받아도 상관이 없었다.

자연스레 호흡의 길이가 길어지고 그게 익숙해지게 되면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심법을 수련하게 되는 것이었다.

진건곤이 상천의 내력을 사용하기 위해 전중혈을 사용하였는데 그곳은 바로 중단전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중단전의 힘은 하단전과 상단전을 잇는 곳으로 그곳에서 내력을 운용한다면 세 가지 단전의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단전의 힘을 사용하자마자 내력이 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 효과였다.

세 가지 주머니 중에 한 가지만 쓰다가 세 가지 주머니를 동시에 사용하니 세 배로 많아질 수밖에.

또한 상천의 내력은 의념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반응의 속도가 극히 빨랐다.

진건곤의 무공이 한층 더 발전한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천기공이 가지는 상천을 열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천기공이 부수적으로 가지는 내공을 쌓는 능력 때문이었다.

본디 상천을 위해 굳건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 하단전과 중단전에 내공이 쌓이는 것이었는데 그 부수적인 것을 보고 내공을 얻는 방법으로 오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천기공은 내공을 쌓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른 내공수련법의 삼분지 일에 해당하는 효과밖에 없었다.

그것도 본연의 뜻을 살렸을 때의 이야기였다.

내공을 얻고자 유기가 아닌 정기를 선택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천기공은 본디 내공을 수련하는 방법이 아니었기에 유기가 아닌 정기를 선택한다면 오히려 그 효율이 떨어지고 말았다.

오죽하면 세상을 떠도는 심법으로 토납법이라 불리며 세상에 돌고 있었을까?

무공을 익히고자 현천기공을 택한 자들이 그 효용이 쓸모없음을 알게 되자 세상에 아낌없이 뿌려놓은 것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력을 쌓으려 했다면 족히 백 년이 넘어야 겨우 일류에 불과한 내력이 쌓일 뿐이었으니 누가 백 년이나 살아남아 겨우 일류 무인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겠는가?

현천기공은 상천의 정신을 단련하고 영적인 힘을 지닌 진기를 기르는 것이었는데 내공을 원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보잘것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소군과 진건곤의 수련방법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소군은 절검의 소개를 받아가며 화산의 고수들과 하루 종일 검을 섞었고 진건곤은 이곳에 앉아 하루 종일 호흡과 명상을 하였다.

신혼이라고는 했지만 겨우 밤이 되어서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긴 그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너무 빠르게 달아오르면 너무 빠르게 식어버릴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절검은 노인이 되어서도 눈치는 비상했기에 주기적으로 모옥을 떠나 외유를 하고 왔다.

진건곤과 소군이 거사를 치르면서도 눈치를 보지 않게 해주었다.

“대공녀께 아룁니다. 본교의 존재가 알려졌다고 합니다.”

대공녀라고 불린 여인은 언제나 깊은 어둠 속에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스스로 죄를 지어 하늘을 볼 낯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번엔 어디서부터랍니까?”

“공희국 봉려입니다. 십 년 전에 죽은 자의 아들이 자라 복수를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불행히도 자신의 무공에 자신을 가졌던 화령신 극사가 입을 조심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사실과 관련된 자는 누구랍니까?”

“화산의 무곤이라고 합니다.”

“무곤?”

어둠 속에서 여인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화령신 극사가 목숨을 끊지 못했을 리가…….”

“전진자가 화산의 제자로 밝혀지면서 알려진 그의 도호입니다. 전진자는 알고 보니 절검 영은의 제자로 화령신 극사와 싸울 때는 그 자리에 소검후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소검후! 그녀가 그리 강했던가요?”

“화령신 극사라면 충분했을 것이라 여겼는데 그만……! 속하의 판단이 잘못된 탓입니다.”

사내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용서를 빌었다.

“그만 하세요. 귀제갈이 실수라니요. 귀제갈의 표현을 빌자면 그도 천자였겠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공녀야말로 진정한 천자의 길을 걸으시는 분. 대공녀님과 뜻이 다르다면 그저 조약돌처럼 연못에 잠기게 될 뿐입니다.”

대공녀라고 불린 여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자는 없어요. 천자가 되려고 노력을 할 뿐이지요. 백노신 극사님은 다른 말씀이 없으신가요?”

귀제갈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분의 말씀이 듣고 싶은데 언젠가부터 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게 되셨어요.”

“대공녀님, 그는 일개 극사에 불과합니다. 그의 말을 좇아서는 아니 됩니다. 그저 대공녀님의 뜻이 가는대로 가시는 것이 옳습니다. 대공녀님은 진정한 천자이시니까요.”

대공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미 밝혀졌다니 어쩔 수 없겠지요. 대계의 일계를 열어주세요.”

“존명!”

귀제갈은 뒤로 물러서며 문을 빠져나가려 했다.

“귀제갈!”

“네, 대공녀님!”

“우리가 선택한 것이 잘못 되지는 않았겠지요?”

“절대로 옳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옳습니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세상에 피가 흐르지 않는 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습니다. 오늘의 피가 바로 내일을 위한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귀제갈은 확신에 차서 뜨거운 열변을 토했다.

“하아……! 그러길 빌고 또 빌어야겠지요. 제발 이번에는 우리가 옳기를 바라고 또 바라야겠지요.”

“절대로 옳습니다. 속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옳기를… 바랄… 뿐… 입니다.”

대공녀는 끝내 귀제갈에게 믿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공녀가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가자 귀제갈의 손아귀가 꽉 쥐어졌다.

“세상 아래 천자(天子)가 둘일 수는 없는 법! 이제는 죽어줘야겠다. 전진자! 그대를 천자라고 생각하는 한, 그만한 대접을 해주지. 더 이상의 실수는 없을 것이다!”

<5권에서 계속>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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