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31화 (31/61)

제7장

소군은 자신의 몸 위로 정신을 잃고 엎어져 있는 진건곤의 몸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눕혔다.

진건곤이 자신의 몸에 욕망을 쏟아 붓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을 때 진건곤의 몸을 쓰다듬는 척하며 혈을 짚었다.

그리고는 백자가 가르쳐 주었던 대법을 다시 시행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진건곤의 몸을 들어 옮기려는데 육중하게 느껴지는 진건곤의 체중이 자신을 부끄럽게 하였다.

간밤에 이 무게가 자신을 얼마나 괴롭혔는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즐거운 기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기억!

어쩐지 두 번 만에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몰랐다.

손을 내밀어 진건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역시나 고집 있게 생긴 얼굴.

그리 잘 생겨 보이지도 않았다.

“어쩔까나? 이런 얼굴이 미워 보이지 않았던 것은?”

처음 진건곤을 보았을 때가 생각났다.

말을 타고 지나가던 무인이었는데 바쁜 일이 있어 보였는데도 도움을 청하자 그대로 멈춰 섰었다.

저런 청년 무인이라면 나쁘지는 않겠구나 싶었는데 그게 바로 호감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 후로 만날 때마다 깊어지던 인연들이 이제는 이런 식으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진건곤의 코를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잡아당겼다.

무엇에 화가 났을까? 괜스레 그래 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저 평범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소군의 마음은 평범한 여인처럼 변하고 말았다.

손가락으로 진건곤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 염정간옥의 검 때문에 진 공자를 따라다니는 것은 아닌지도 몰라요. 다음엔 절대 이런 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말을 해놓고도 부끄러웠는지 소군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르고 말았다.

아무도 없는 것이 틀림없는데도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더니 고개를 숙여 진건곤의 입에 입맞춤을 하고는 일어섰다.

소군의 얼굴이 작게 찡그려졌다.

일어서며 느껴지는 작은 통증 때문. 또다시 진건곤의 코를 손가락에 끼어 잡아당겼다.

그렇게 화풀이를 하고는 주섬주섬 주위를 돌며 옷가지를 챙겨 입고는 자리를 떠났다.

떠나기 직전에 혼인의 예물로 주었던 검을 찾아 진건곤의 등에 다시 매어주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군은 멀리 떨어진 동산위로 올라가 진건곤이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간이 지나자 진건곤이 깨어나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소군은 그렇게 숲 속으로 또다시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

“누님! 누님!”

등 뒤로 자신을 부르는 진건곤의 소리를 들었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 얼굴을 보아야 할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숲을 가득 메웠음에도 소군은 당당히 나서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자 여러 개의 봉분이 서 있고 바닥에는 청송과 그 사제들은 모두 객잔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말과 자신을 찾지 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소군이 시신을 묻고 떠난 것이리라.

하지만 진건곤은 곧바로 객잔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멀거니 앉아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이 보았던 그 몽롱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힘을 갈구하고 화령신을 증오하던 바로 그 순간, 이지를 잃었고 그 뒤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던 적이 또 있었다.

바로 지하 연무실에서의 일.

그와 함께 또다시 욕정에 이끌려 소군을 탐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님!”

소군을 불러보았지만 소군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진건곤은 소군을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누님! 누님!”

목이 터져라 불렀다.

벌써 일 각이 넘도록 소군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분명히 기절한 자신을 두고 멀리 갔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답이 없는 것을 보면 스스로 몸을 숨기고자 하는 것이었다.

진건곤은 그런 소군을 찾아 나설 수는 없었다. 그저 소리쳐 불러 스스로 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우두커니 앉아 한 시진이 넘게 시간을 보냈는데도 소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운을 읽어보아도 진건곤이 읽을 수 있는 곳에 소군은 있지 않았다.

진건곤은 해가 어두워지고 나서야 산을 내려왔다.

“무엇이? 전진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라고?”

공희국의 총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외삼신이라는 화령신과 함께 판 함정이었다.

화령신이라면 천하제일을 논할 때 거론되는 은거고수와 동급이었다.

현재 천하제일을 논할 때 직접 강호를 횡횡하는 고수로는 유일하게 소군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었다.

소군이 강호에서 달리 존중을 받고 모든 이에게 한수 양보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각파의 장문이라도 소군의 앞에서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세간의 평으로는 화령신이라면 능히 소군과도 일전을 겨룰 만하다는 평이었다.

진건곤이 아니라 그 할아비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함정이었는데 객잔에 진건곤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홍로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해 봐. 그럴 리가 없단 말이다.”

명령을 받은 자가 방을 나서자 총관은 또 다른 자를 불렀다.

“너는 성주님께 이 편지를 올리고 오너라!”

그 편지는 성주와 함께 머물고 있는 공희국에게 전하는 편지였다.

<전진자가 함정을 벗어났다고 합니다. 총주께선 조금 더 몸을 가리고 있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놀랍게도 진건곤을 유인하였던 자는 공희국 본인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진짜 공희국은 이미 한 달이 넘도록 성주의 집에 머물며 두문불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어쩐다? 전진자가 총주님의 죽음을 믿고 있을 것인지 아닌지조차 불투명해졌구나.”

홍로에게 심부름을 갔던 자가 돌아와 소식을 전했다.

“틀림없답니다. 객잔에 전진자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허허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그럼 화령신이 소군에게 당했단 말인가? 소군의 무공이 알려진 것보다 더 높을 줄이야.”

총관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니지, 아니야. 어서 소식을 전해야 하겠어.”

총관이 글을 적어 내려갔다.

글에는 소군의 이야기는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신변에 대한 잡기들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무엇이? 전진자가 살아남았단 말이냐?”

침을 꼽던 귀제갈은 놀라고 말았다.

“그렇습니다. 소인도 그 소식을 듣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흐흠!”

귀제갈은 또다시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허허! 심상치 않은 일이구나. 전진자가 진정 천자인지도 모르겠어.”

“그렇다면 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대공녀께서는 분명히 천자의 운을 타고 태어나셨다. 두 개의 천자가 부딪힌다는 것은… 내 재주로는 그들의 싸움을 쉬이 예측할 수가 없구나.”

귀제갈의 말에 환자 역을 하던 자도 역시 심각한 표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만에 하나를 위해서라도 제거해야겠다. 빙백신과 고루마군을 불러야겠다. 비밀리에 그들을 부르도록!”

“극사님을 두 분이나 말입니까?”

“그렇구나. 화령신조차 감당하지 못했다면 전진자의 주위에 소군이나 절검이 지키고 있을 공산이 있다. 둘로도 감당하지 못할 수가 있겠구나. 전진자야말로 천자가 아닌가 생각이 되는구나.”

귀제갈의 말에 사내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존명!”

귀제갈의 의지가 전진자를 향했다.

작은 의원에서 천하의 향방을 결정할 천자들의 싸움을 주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사라는 직함을 아십니까, 형님?”

“모릅니다. 중요한 것입니까, 사조님?”

“일단은 화령신이 말을 했던 실마리니까요.”

“그럼 알아볼까요?”

“아닙니다. 일단은 개방에 의뢰를 했으니 어떤 답이 오는지 보아야겠습니다. 그들이라면 믿을 만 하니까요.”

진건곤은 공희국과 화령신의 대화에서 들었던 상 처사를 추적하기로 하였다.

이미 오는 길에 개방에 들러 조사를 부탁하고 오는 길이었다.

그로 인해 개방의 복건 지부는 발칵 뒤집히고 있었다.

진건곤의 요구가 적힌 종이를 받아 든 통용개가 희희낙락 한 기분이었다.

“흐흐흐!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가 원하는 정보를 내가 답해준다는 건가? 흐흐흐흐! 나도 이제 자랑할 거리가 생겼구나.”

진건곤은 강호의 별로 우뚝 설 것이 분명해 보이는 고수였다. 그런 고수의 행사를 직접 도와줬다는 것은 정보를 다루는 거지들에게는 자랑거리였다.

진건곤의 질문이 좀더 굵직한 사건과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면 종이를 펼쳐 들었다.

“처… 사? 처사라고?”

덜덜덜!

개방의 모든 정보를 주관한다는 통용개는 손을 떨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마교재림이라는 말인가?”

통용개는 처사라는 직함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십 년 전 자신이 개방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바로 마교와의 전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교와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곳에서 모든 재산을 잃고 거지가 되어버렸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자신의 고향을 휩쓸었던 전쟁의 기억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통용개는 몇 차례의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붓을 들어 양피지에 적어 넣었다.

<전진자가 마교의 직위를 물어옴.

어찌 대답할지 알려주기 바람.>

통용개는 서둘러 자신이 쓴 종이를 접었다.

전서구 통에 집어넣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후에 그곳에 촛농을 떨어트려 밀봉하고는 직접 전서구를 띄우는 곳에 들고 갔다.

“어쩐 일이십니까?”

통용개를 본 거지들이 일제히 일어나 너도 나도 인사를 올렸다.

“지급! 대지급으로 총단에 알린다. 너는 금황의 서를 꺼내 오너라.”

통용개는 자신이 홀로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총단의 답이 올 때까지는 처사에 대한 답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었다.

진건곤을 둘러싼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건만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

진건곤은 마음이 비어버린 듯이 허전했다.

그동안 쫓던 공희국을 처단해 버려 더 이상 바라볼 것이 없는 것도 그랬고 소군이 없다는 것도 그랬다.

전진자의 거처도 이미 다른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널찍이 호반(湖畔)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차를 마시며 놀러온 연인들의 즐거운 한때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찻잔을 들고 하염없이 보고 있는데 청송이 찾아와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생각하십니까, 사조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건곤은 청송이 찾아왔건만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호반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청송은 한참 동안 진건곤을 바라보더니 그냥 일어나 돌아갔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오라버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사조님?”

진려경과 청명이 와서 말을 걸었다.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라버니, 괜찮은 거죠?”

진려경이 걱정이 담긴 소리를 했다.

그날의 모습을 청명이 말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강기벽에 부딪혀 곧 목숨이 끊어져도 좋았을 모습에 이르렀다가 스스로 일어서 다시 검을 날렸던 것까지.

청명은 뒤에서 보고 있었던지라 진건곤의 눈에서 붉은 혈광이 흘렀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 말을 전해들은 진려경도 역시 알 리가 없는 부분이었다.

진건곤의 호반 바라보기를 하루 종일 계속하였다.

어느새 시간은 또다시 흘러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보고 싶습니까?”

“응……?”

누군가의 물음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느새 청송이 서 있었다.

“하하하, 이렇게 넋 놓고 앉아 있는 모습은 사조님답지 않습니다. 개방에서 답장이 올 때까지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까, 사조님?”

“하하하! 그런가요? 어느새 밤이 되었군요.”

진건곤은 또다시 호반을 바라보았다.

작은 놀잇배를 빌려 타고 나온 연인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찾아 가십시오. 찾아가 빌어도 좋고 안아주어도 좋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지 마시고 함께 있어 주세요. 그게 좋습니다.”

청송의 말에 진건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형님!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사제들을 이곳으로 이끌고 온 뒤, 사조님이 걱정이 되어 혼자서 돌아가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은 아니시지요? 매우 침착하신 모습이던데요. 물론 소검후께서 진법을 설치 하셨기에 볼 수는 없었지만 두 분의 특별한 관계는 다 알게 되었습니다. 어서 찾아가 곁에 있어 주세요. 소검후님은 어른이기도 하지만 여인이기도 하니까요.”

진건곤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형님.”

“이를 말이겠습니까, 사조님. 아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니 그건 걱정 마시고 얼른 소검후님을 찾아오시지요.”

진건곤의 얼굴은 또다시 호반을 향했다.

무척이나 힘이 없어 보였다.

“그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디 계신지 모릅니다.”

“떠나세요. 떠나서 혼자 계세요. 그러면 나타나지 않으실까요? 지금 이렇게 있으신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그럴까요? 내 앞에 나타나실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청송은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나 돌아갔다.

진건곤은 우두커니 혼자 남아 있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에 그곳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청송의 말대로 떠난 것인지도 몰랐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진건곤이 선택한 것은 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소군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 틀림없었다.

몸을 숨길 곳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가면 자신을 뒤따르는 소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허허벌판을 해맨 지 사흘이 넘도록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진건곤은 어느 순간 움직이기를 멈추고는 그 자리에 앉아 다시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기운을 읽는 상천의 힘을 빌려 그녀를 찾을 생각이었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읽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녀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수련을 할 생각이기도 했다.

그렇게 수련에 들어간 지 사흘이 지났다.

역시나 소군은 진건곤을 쫓고 있었다.

두 번째의 사건 때문에 이상할 정도로 알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처음이었다면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고에 불과했다고도.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미 가문의 보물로 여겨지던 검이 진건곤의 손으로 넘어간 상태. 무슨 생각으로 진건곤의 얼굴을 보아야 할지 너무 부끄럽기까지 했다.

‘겨우 마음을 닫았는데 이런 일이 터지다니……! 아니야! 이미 영현이 진 공자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동생에게 질투를 하지 않았었니? 이미 진 공자에게 내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어.’

하지만 소군은 애써 정리했던 마음을 고개를 흔들어 다시 씻어내어 버렸다.

‘절대 아니야. 또 다른 자가 진 공자를 노릴까 따라온 것일 뿐이야. 마음을 정리해야 해. 이런 식으로 흔들려서는 안 돼! 강호의 후기지수를 보호하려 따른 것뿐이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소군은 속마음을 정리하지 못할 때마다 불호를 불렀다.

하지만 불호의 힘으로도 쉽게 정리되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이었다.

소군의 내력이 아직은 진건곤을 앞서고 있었기에 진건곤보의 시야보다 더 먼 곳에서 진건곤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군도 역시 명상을 통해 수련을 하고 있었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심마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눈을 떠 진건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역시나 또다시 소군의 눈은 떠지고, 진건곤을 향해 시선을 고정해 두었다.

또다시 진건곤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가 고개를 흔들기도 하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런! 진 공자는 이미 삼 일째 먹을 것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있어! 도대체 어쩌려고……!”

닷새째 되던 날.

소군은 안달이 난 모습이 되었다.

진건곤이 몰아지경에 빠져 사흘을 입정에 들었던 것을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길었다.

명상수련을 하며 가끔씩 눈을 뜰 때마다 진건곤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해졌다.

이레째 되던 날.

“저 사람. 몰아지경이 아닐 거야. 그럼 어떻게 하지?”

소군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레가 되면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몸이 축날 수밖에 없었다.

몰아지경이라면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몰아지경에서는 종종 말로는 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레가 되던 날부터 소군이 명상을 하겠다고 눈을 감았다 뜨는 시간은 겨우 일 각에 불과했다.

아흐레가 되던 날.

소군은 벽곡단을 들고 일어섰다. 진건곤에게 다가가는가 싶더니 문득 반대 방향으로 경공을 펼쳤다.

잠시 후, 진건곤을 지켜보던 자리에 다시 몸을 나타낸 소군의 손에는 작은 물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진건곤에게 신선한 물을 주기 위해 근방에서 물을 떠온 것이었다.

소군은 그대로 진건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진 공자, 그렇게 굶고 있어서는 안 되지요. 벽곡단이라도 챙겨야 합니다.”

소군은 진건곤이 왜 저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진건곤이 한 짓이라고는 자신을 부르기 위해 이곳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으니까.

자신에게 보다 더 잘 보이는 곳을 찾고, 오직 둘이만 있는 곳을 찾아 이 초원으로 온 것이었다.

이곳에는 오직 둘이만 있다는 것을 멀리서 지켜본 자신이야말로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가까이 다가간 소군은 천천히 움직여 걸었다. 그녀의 손에는 물과 벽곡단이 들려 있었다.

문득 진건곤이 기운을 느끼고 눈을 뜨자 그곳에는 소군이 있었다.

“누이!”

“진 공자! 이거라도.”

소군은 물과 벽곡단을 내밀었지만 진건곤은 물건이 아닌 소군의 손을 잡았다.

소군은 부끄러워하며 손을 빼려고 했지만 진건곤은 그 손을 놓아 주지 않았다.

“진 공자! 놓아주세요.”

소군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부끄러움에 목소리가 잠겨버린 듯하였다.

진건곤은 더욱더 세게 힘을 주어 소군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안았다.

“보고 싶었습니다. 누이!”

소군은 힘이 없는 소녀처럼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소군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리자 진건곤은 두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사랑해요. 이곳에 앉아 있는 동안, 내내 누이 생각을 했어요. 언제부터 누이를 좋아했는지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마도 처음 보던 그 순간부터 좋았었나 봅니다. 사랑합니다.”

진건곤의 말에 소군은 망부석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녀를 안았던 손을 풀었는데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마도! 나도! 그때였는지 몰라!’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그녀의 목에서만 맴돌았다.

자신의 몸이 이렇게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안간힘을 써가며 입을 열었다.

‘아마도 나도 그때부터였는지 몰라. 사… 사… 사랑해!’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진건곤은 똑똑하게 들었다.

진건곤은 안도하는 낯빛으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겁니다.”

진건곤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소군에게 입맞춤을 하였다. 그녀의 어깨는 심하게 흔들렸지만 몸을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진건곤의 입술이 소군의 입술을 훔치고 당연한 손이 그녀를 안았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의 혀가 얽히고 진건곤의 두 손이 소군의 옷고름을 열어갔다.

소군은 마치 거미줄에 붙잡힌 나비처럼 꼼짝 못 하고 진건곤에게 모든 것을 맡길 뿐이었다.

진건곤은 소군을 소중하게 다루었다.

마검에 휩싸여 그녀를 다루었던 기억이 모두 달아날 수 있도록 세심하고 부드럽게 그녀를 다루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소군의 입에서는 흐느낌과 같은 신음이 흘러나오고 두 손을 들어 진건곤을 부둥켜안았다.

주르륵!

진건곤의 체중이 그녀에게 실리자 그녀는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진건곤은 미안한 마음으로 그런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걱정하지 마요.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니까요.”

“누이! 이제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은 이렇게 소중히 다루기에도 아까운 사람이니까요.”

진건곤의 말에 또다시 소군은 눈물을 흘렸다.

진건곤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자 이번에는 소군이 먼저 입맞춤을 하였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탐닉하는 시간이 오고 그 둘을 하나가 되었다. 처음으로 맛보는 기쁨과 애정이 그 둘에게 함께했다.

둘이 서로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하늘을 보았을 때는 어스름한 어둠이 밀려와 있었다.

소군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진건곤의 두 손은 그녀를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누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상공.”

소군의 입에서 상공이라는 말이 나오자 진건곤은 기쁨을 얻고는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진건곤의 손이 그녀를 탐하자 소군은 뒤로 몸을 빼려 했으나 결국은 진건곤의 손을 당하지 못하였다.

결국 소군은 진건곤에게 이끌려 서로를 재확인하기 시작하였다.

가타부타 아무런 말없이 사라진 진건곤이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일을 하다가 사라진 터라 진려경은 진건곤의 걱정을 많이 하였다.

진려경은 잠이 들기 직전까지 객잔의 입구에 앉아 문을 쳐다보고는 했는데 그러기를 보름 만에 진건곤이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옆에는 청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오라버…….”

보름 만에 나타난 진건곤의 곁에는 소군이 함께했다.

진려경은 놀라 몸을 세우고는 다시 인사를 올렸다.

“대사매를 뵙습니다.”

“사조님을 뵙습니다.”

진려경과 청명은 얼른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소군이 그 인사를 다른 때와는 다르게 더욱 부드럽게 받았지만 그런 차이를 알아채기에는 진건곤에 대한 걱정이 더 컸었다.

가뜩이나 화령신과의 싸움에서 알 수 없는 일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은 후였기에 걱정은 작을 수가 없었다.

“오라버니? 어딜 다녀오신 거지요? 걱정하며 기다렸어요.”

“걱정 마라. 이제는 걱정 끼칠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보다 좋은 소식이 있다.”

난데없는 좋은 소식이라니?

청명은 혹시나 하는 눈으로 소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두 분이……?”

진려경은 놀라는 눈이 되어 민망해하며 청명을 꼬집었다.

“대사매께 실례가 되는 소리에요. 어서 사과하세요.”

진려경의 두 눈에는 청명이 쓸데없이 나선 것을 나무라는 눈빛이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소검후님.”

청명이 주뼛거리며 사과를 하였으나 소군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제는 진 공자… 아니 진 상공의 사람이 될 테니까요.”

소군의 답에 진려경은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릴 뻔하였다.

“어… 어떻게……?”

진려경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말을 더듬거리기까지 하였고 청명은 그것 보라는 듯이 진려경에게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사매는 내가 탐탁지 않은 건가?”

“서…설마 그럴… 그럴 리가요! 대… 대환영이지요.”

진려경은 대경하여 정신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려경이는 기뻐할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누이? 물론 청명도 마찬가지지요. 안 그런가?”

“물… 물론입니다. 대환영이지요. 그런데…….”

“그런데……?”

“이거 처가댁이 너무 대단하니 앞으로는 고생문이 환하겠는데요. 비교할 데 없는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 전진자에 무려 천하제일을 바라보는 고수 중에 고수 소검후께서 처남댁이시라니… 이거 든든하기만 한데요. 하하하! 이거 정말 든든해요.”

물론 진려경의 한 손이 청명의 허리춤을 꼬집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진려경은 그런 청명에게 가볍게 눈을 흘겨주고는 소군의 손을 잡아 이끌어 자리로 옮겨갔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대사매?”

진려경의 질문에 난데없이 진건곤이 등 뒤에서 검을 뽑았다.

“이것이 바로 누이의 아버님께서 주신 혼인 예물이다. 용병제와의 비무가 있던 동안에 누이의 장원에 신세를 졌단다. 그때 장인어르신께서 내게 주신 것이지. 황상께 하사 받은 명검이란다.”

진려경도 역시 진건곤이 등에 검을 두 개를 꼽고 다니던 것을 보았던 터라 그 검이 전부터 가지고 다녔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이제야 하시다니요. 오라버니도 참으로 무심하기도 하네요. 대사매가 걱정이에요. 정말.”

“하하하! 이런, 이런. 생전 받아보지 않던 타박을 들어보는구나. 지금 오라비를 빼앗겨서 싫다는 거냐?”

“그런 것이야?”

“그런 것 맞아요. 이 사람 생각보다 질투가 심하단 말이지요.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를 겁니다.”

청명이 너스레를 떨자. 진려경이 또다시 청명을 꼬집었다.

“아얏! 이 보십시오.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이렇게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니까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진건곤과 소군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은 무엇에라도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마음이 뿌듯하고 따스한 감정이 가득해 있었으니 이런 작은 일에도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중에 두고 봐요.”

진려경이 청명에게 경고를 날렸다.

탁상 밑으로 소군의 손이 진건곤의 손을 잡아갔다.

고마움의 표시였다.

진건곤이 검을 내밀며 상황을 잘 정리한 덕에 민망한 이야기는 물론이며 당당하게 되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아 제 입으로 말하기가 곤란한 지경이었는데 부모님이 허락해 준 사이라는 것은 조금은 당당할 만 한 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 축하드립니다. 사조님.”

호쾌한 웃음. 청송의 등장이었다. 청송의 곁에는 청린이 함께해 있었다.

“소검후께서 사조님의 짝이 되시다니 참으로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십니다.”

“축하드려요. 사조님!”

청송과 청린의 인사가 이어졌다.

“그러는 형님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짝이 있지 않습니까? 형님이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청린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었다.

진건곤이 자기를 칭찬해 준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진건곤의 말에 청송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바로 호칭의 문제 때문이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우리들의 사이를 알고 계십니다. 서로 공대하는 사이라는 것쯤은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언제든지 실수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사문의 어른들이 알게 된다면 좋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는 하대를 해주셔야 합니다.”

“이런! 이런! 우리 차기 장문감께서 이렇게 꽉 막혔으니 앞으로는 고생길이 훤합니다.”

“하하하! 제가 왜 고생을 하겠습니까? 사조님 같은 고수와 같은 시대에 사니 저는 편할 겁니다. 어려운 일은 사조께서 다 해결해 주시면 되니 말입니다. 그것도 부족하다 싶으면 사조모님도 계시니까요. 하하하하! 이게 다 화산과 아미의 흥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하하하!”

“이런, 이런! 벌써부터 일을 시키실 생각을 하시다니 무섭습니다.”

“하하하. 얼른 말투부터 고치시지요.”

[하하하!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전음으로 할 때만 서로 공대를 하는 거지요. 소검후께서는 아미파의 손님이신데 그 앞에서 사손 간에 공대를 하는 것은 그리 좋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습관을 들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사조?]

[하하하! 형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음이라면 사손을 벗고 전처럼 형님 동생으로 지내면 안 되겠습니까, 형님?]

[그래! 그러자꾸나. 그래야 일을 시키기에도 편할 테니 말이다.]

청송은 흔쾌히 허락하고 말았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둘이 난데없이 웃음을 터트리니 모두들 둘만의 이야기가 오고갔음을 눈치 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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