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진 공자, 뒤로 물러나세요.”
진건곤의 곁에 한 명의 인형이 날아들었다.
하늘에서 날아오는 듯 부드럽게 날아 내린 자는 다름 아닌 소군.
“아미의 소군이 화령신을 뵙니다. 나무아미타불!”
“하하하하! 그대가 소검후시구려.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기다리고 있었소.”
화령신은 끌어올리던 진기를 풀어버리고는 소군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화령신의 하는 양은 누가 보아도 소개를 받는 듯한 태도가 아닌가? 대체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었단 말인가?
“하하하, 안 그래도 전진자를 만나면 소군을 뵐 수 있다는 말에 중원에 들었습니다. 소군을 뵙고 싶은 마음에 중원에 들었는데 보이지 않아 내 찜찜하던 참이었소.”
그랬다.
화령신을 중원으로 불러낸 것은 누구의 명령보다도 소군과 싸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서장의 절대자인 화령신은 언제나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었으나 중원의 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각 문파의 최고의 고수들은 꽁꽁 숨겨진 비밀처럼 은거를 하며 자신의 무공을 닦고 있었기에 쉽게 도전할 수가 없었다.
서장과 같이 도전을 하자고 치면 자칫 구대문파와 싸우자는 이야기로 듣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화령신이 반가워하는데도 소군의 안색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린 아이들과 싸우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오이다. 내 소군을 꺾으면 전진자를 서장으로 데려가겠소. 딱 십 년 동안만 데리고 있다가 풀어 주리다. 그럼 가겠소.”
“저를 알고 계시다니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반가워하는 화령신과는 달리 소군은 검을 꺼내어 준비를 하였을 뿐이었다.
화령신의 얼굴과 손이 모두 붉게 물들며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화끈하게 일어났다.
그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일어나 촛불이 불을 밝히듯이 주위에 밝은 빛을 뿌렸다.
그가 진건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염화멸세 충단일권이요.”
화령신이 주먹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주먹을 때려 가는데, 주먹을 들었을 때는 삼 장 밖의 거리였으나 막상 주먹을 휘두르니 소군의 지척에 있었다.
마치 공간을 잘라 들어와 마치 그 자리에서 초식을 펼친 듯한 장면이었다.
‘놀라운 신법!’
소군은 신비로운 보법에 놀랐지만 이미 천수불영검을 준비한 지 오래되었다.
소군이 뿌려 놓은 미세한 가닥 가닥의 진기에 화령신의 주먹이 걸려들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검을 뽑아 내밀었는데 마치 처음부터 모든 것을 걸고 부딪치는 것과 같았다.
화령신의 주먹이 순간적으로 붉은색으로 변하고 강기라고 생각할 만큼 진해졌다.
하지만!
스읏!
화령신의 주먹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르듯이 홀로 지나쳤다.
진건곤도 자세를 풀고 그들의 격돌을 지켜보는 청송도 역시 놀라고 말았다.
화령신의 주먹은 몇 번이고 소군을 놀리고 들었지만 그때마다 마찬가지. 소군의 검과 부딪혀간 그의 주먹은 바람소리만 일으킬 뿐이었다.
문득 화령신의 신체가 삼 장 여의 거리를 두고 뒤에 나타났다.
공격을 가할 때 보여주었던 바로 그 신법.
움직였다기보다는 그 자리에 나타났다는 것이 더욱 어울렸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무엇이 그리 통쾌했던지 화령신은 소리 높여 웃었는데 계곡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싸우던 중이었는데 아무것도 경계하지 않고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 바로 자신감의 극에 달한 인물처럼 보였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요. 내 근자에 들어 이렇게 헛손질을 해보기는 처음이요.”
화령신이 존경의 눈초리로 소군을 보며 입을 열었다.
“겸손하신 말씀입니다. 저 역시도 그런 권경을 처음 보았습니다. 과연 세외삼신 중의 한 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허허허! 과찬이시오. 충단일권으로는 당할 수가 없으니 이번엔 화류단천을 보여드리겠소. 조심하시오.”
화령신은 또다시 주먹을 들어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내밀며 예의 신법을 발휘했다.
훅!
소군의 지척에 나타나며 두 손을 들어 휘말아 갔는데 그의 손에서 일어난 붉은 기운에 불덩어리가 회오리에 말려 날아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소군의 검은 이번에도 진솔하게 움직였다.
아까와 똑같은 검이 그대로 화령신의 손과 만났다.
하지만 진건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소군이 펼치는 천수불영검법은 이미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천수불영검법의 핵심은 모든 무리에 달통하여 언제나 필요한 무리를 담은 무공을 펼치는 데 있었다.
아무런 내용도 담긴 것 같지 않은 소군의 검은 지금도 수도 없는 진기의 가닥, 가닥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또다시 세 가지 무리로 압축하여 들어가고 있었다.
화령신이 펼친 권법에는 회(回)! 소군의 검을 잡아갈 의도가 있었으나 소군의 검이 가지는 성질은 파(波)! 탄(彈)! 회(回)!의 세 가지 성질을 담고 있었다.
화령신도 역시 보통의 고수는 아니었는지 손끝이 아물지 않아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으니 소군의 검이 가진 무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령신의 두 손이 만들어낸 원 안으로 소군의 검이 빨려 들어갔다.
화령신의 눈에 득의의 빛이 담겼으나 나타났던 만큼 빠르게 사라져야 했다.
까앙!
소리가 울리고 불똥이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소군의 검이 화령신의 손을 벗어나 그대로 화령신의 어깨를 찔러가고 있었다.
팟!
허깨비가 꺼지듯이 그 자리에서 사라진 화령신은 또다시 삼 장 여의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으나 소군의 검은 그런 화령신의 신형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허!”
화령신은 미처 소군의 검이 자신을 따라잡을지 몰랐다는 듯이 경탄성을 터트리며 또다시 허깨비처럼 물러났다.
소군의 신형이 또다시 움직이며 검을 찔러 넣었는데 아무도 없는 곳을 찔러가는 것이 아닌가?
까앙!
놀랍게도 바로 그 장소에 화령신의 모습이 나타나고 소군의 검을 막아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더니 소군의 검 끝을 벗어났다.
“허허허허! 놀랍구려. 과연……! 과연……! 본좌는 오늘 안계를 넓혔소. 내 비록 화령신보를 익히기는 했으나 화령신보의 움직임은 신출귀몰하여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자부했는데 화령신보의 움직임을 꼭 집어낼 자가 있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거늘. 역시 세상은 넓고 기인이사는 많은가 보오.”
사실이었다.
화령신보는 화령신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것이었다.
신출귀몰한 신법이야말로 화령신의 신화 중에 지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숱하게 많았던 도전자들 중에 화령신의 무공보다 더 강했던 무공은 있었으나 그의 보법을 능가하는 것은 없었다.
화령신보야말로 화령신의 무공 중에 극의나 다름없었다.
강호의 은거기인으로 꼽히는 고수들조차도 쉽게 알아낼 수 없는 것이었는데 소군에게만은 통하지 않았다.
그건 천수불영검만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미 눈에 보이지 않을 미세한 진기를 가득 깔아놓았으니 진기에 걸리는 움직임을 알아채는 방식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야말로 신출귀몰한 보법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형환위가 아니고도 그런 움직임이라니요. 세외의 무공은 중원의 것으로 헤아리기 힘든 신묘함이 있군요.”
소군이 가볍게 손을 올려 화령신의 칭송에 화답을 하였다.
“소검후의 무위는 듣던 바와 한 치도 다르지 않소이다. 묻건대 소검후께서는 검을 완성하셨습니까?”
“본인이 불민한 관계로 아직은 부족한가 봅니다.”
화령신의 얼굴에 아쉬움이 서렸다.
“허허! 이런 본도는 근자에 운이 좋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보건대, 소검후께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새로운 깨달음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제가 이로울 듯하군요.”
화령신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이겨서 즐겁다기보다는 소검후의 완성된 검과 겨루지 못한 것을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아쉽다고 하셔도 그게 본녀의 일인걸 어쩌시겠습니까? 본녀는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령신께서도 그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군의 말은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그녀의 말에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도 있었지만 화령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나중에 패했다고 하여 변명을 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했다.
“허허허허! 그렇구려. 지금도 역시 소검후께서 나를 봐주시는 것도 몰라볼 뻔했소. 기다려 주어서 고맙소. 이제 다시는 싸우는 도중에 멈추자 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럼, 시작합시다.”
화악!
화령신의 주위에 공기가 터져나가듯이 팽창했다.
매캐한 연기가 나는 것이 바로 불에 무언가가 탔다는 느낌이었다.
얼굴과 손. 눈에 보이는 곳은 전부가 선홍빛으로 불타오르더니 그 빛이 점점 하나로 모였다.
그 장면을 보던 진건곤과 소군, 청송 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강기! 전설에서나 들었던 강기가 펼쳐진 것이다.
화령신의 두 주먹에 나란히 붉은 기운이 맺혀 있었는데 그것에서는 엄청난 패도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술 수 있는 패도적인 힘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기였다.
“가…강기공?”
“그렇소. 운이 좋아 이것을 터득했다오. 늘그막이 이것을 얻고 나서는 강호의 기인들이 만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소, 마침 전진자를 찾으면 소검후를 뵐 수 있다기에 나섰다오. 평가해 주시기 바라오.”
또다시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라지며 소군의 지척에 다가서며 주먹을 쳐낸 화령신이었다.
소군은 변함없이 검을 쳐내어 화령신의 강기를 맞받아쳐나갔다.
화령신의 두 눈에는 감히 라는 듯한 눈빛이 서렸다
강기에 그대로 부딪히는 소군의 검을 의식한 것이었다.
스슷! 까앙!
놀랍게도 소군의 검은 부러지거나 깨어지지 않았다.
소군의 검은 대대로 소검후들이 사용해 온 명검이기도 했지만 소군의 검이 화령신의 주먹을 교묘하게 비껴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소군의 검에 서린 우윳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화령신은 이제와는 달리 크게 놀란 듯한 눈을 하고는 연달아 권을 쳐내었다.
스스! 까앙!
스슷! 까앙!
화령신의 강기공이 소군의 검이 유도하는 대로 허공을 가로지르자 붉은 기운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며 허공을 가득 메웠다.
또한 그 바람이 멀리 떨어진 진건곤과 청풍 등에게까지 불어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경지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화령신의 주먹이 만들어내는 궤적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이는 화령신이 소군의 검이 살짝살짝 비껴내던 자신의 주먹을 정교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까앙! 까앙! 까앙!
전보다 더 크고 묵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군이 비껴내는 검식을 파악한 화령신이 점점 더 효율적인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소군을 보면서 진건곤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움이 나타나고 소군이 위태로울 때마다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청송이 옆에서 그 얼굴을 보더니 무언가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조님! 소검후님을 좋아하십니까?]
진건곤은 고개를 돌려 청송을 바라보았다.
[그…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진건곤은 다른 문제에는 담담하였지만 소군과의 감정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지은 죄가 있고 소군의 희생이 있었으니 잘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남보다 더 간절했다.
그런데 또다시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나선 일에 손해를 넘어 생사가 갈릴지도 모를 지경이 아닌가?
그 미안함과 간절함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 이상치 않았다.
[사조님의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
진건곤은 청송의 말을 듣고도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소군 누이가 밀리기 시작합니다. 도와야 합니다.]
소군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소군 같은 고수가 땀을 흘린다는 것은 심력을 극심하게 소모하거나 내력이 달린다는 뜻, 좋은 일은 절대 아니었다.
[화령신을 상대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형님?]
[아까 하려던 것이 바로 신검합일의 검기성형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무공입니다.]
역시나 강기를 만들어내는 무공이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상천의 힘을 깨달아 강호의 고수들을 연달아 꺾은 기린아라고 해도 뚝딱 강기공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청송은 그것으로는 강기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얼굴을 무겁게 하며 물었다.
[사조께서는 자신보다 소검후를 아끼십니까?]
진건곤은 청송의 질문이 가지는 의미를 알았다.
소검후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리라.
[화령신의 무공이 소검후를 넘어선 듯 보입니다. 합공을 펼치지 않으면 어려울 듯싶습니다.]
청송은 말을 흐리고 말았다.
자신이 하는 말이 비겁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화령신이 소군에게 지고 나면 이곳에 있는 자들 모두가 멸절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이 모조리 멸절하고 난다면 화산의 장래는 불을 보듯이 뻔했다.
청송이나 진건곤 중 한 사람은 살아남아야만 했다.
가뜩이나 높아진 화산에 대한 기대치를 감당하기에는 청암과 청명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사조님께서는 후일을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됩니다. 형님. 형님은 화산을 이으셔야 합니다.]
치링!
진건곤의 손에 검이 뽑혔다.
동시에 흰 백색의 일렁이는 검형이 만들어지고 확대되어지더니 진건곤의 몸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커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폭사하는 신검합일의 검형이었다.
“감히! 신성한 싸움을 모독하려 하다니!”
서릿발 같은 일갈이 울리며 화령신의 수하인 여섯 고수들도 쇄도해 들었다.
쩌정!
굉음이 울렸다.
하지만 진건곤과는 상관이 없는 소리였다.
바로 청송의 검이 여섯 고수들의 진로를 방해한 것이었다.
“흥! 어림없다.”
화령신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화령신의 두 주먹은 권벽을 만들어내며 소군을 향했다.
진건곤의 기습과 소군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초식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절대적인 위력의 강기벽이 소군에게 날아들었다.
그동안 강기를 비껴내며 버티느라 내력과 심력을 소진했던 그녀였지만 아직은 비껴낼 능력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이 강기벽을 그대로 피한다고 해도 이미 신검합일의 기세로 쏘아진 진건곤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우우웅!
우윳빛의 검기가 더욱 강해지고 속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기운을 만들어내었다.
검강이라고까지 부를 만한 검기의 모습.
검강은 아니지만 바로 그 직전까지 다가선 경지였다.
하지만 그녀의 놀라운 경지도 화령신의 권강을 버텨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겨우 비껴내는 것이 한계였다.
뜻밖에도 화령신의 권강을 비껴내며 피해가던 이제와는 달리 오히려 모든 힘을 모아 일 검을 찔러가는 것이 아니던가?
그와 동시에 전광석화같이 꽂혀 든 진건곤이었다.
화령신의 권벽과 진건곤의 신검합일로 만들어진 검형, 소군의 검기가 잔뜩 실린 검이 부딪혔다.
꽈드드드드등!
폭발이 일어나고 주위는 쑥대밭으로 망가져 버렸다.
계곡의 양쪽 벽은 무너져 자갈과 바위들이 흘러내렸고 땅마저도 뒤집혀 바로 전의 모양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갈! 버릇없는 노옴! 상처사의 말대로 너를 죽여야겠구나!”
화령신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먼지가 가라앉자 나타난 모습은 참혹했다.
강호를 울리는 고수인 소군의 모습도,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로 꼽히며 명성을 드높이는 진건곤의 모습도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소군의 검은 밑동이 끊어져 검 자루만 남아 있었고 진건곤은 검을 잡았던 손은 손목부터 부러졌는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혈흔만 가득했다.
더욱이 진건곤의 몸은 사지가 제대로 된 곳이 없었다.
신검합일이 깨어지며 온몸에 제대로 타격을 입혔던 것이다.
마치 잘못을 빌기라도 하듯이 겨우 무릎으로 버텨 앉아 있었다.
“진 공자!”
“사조님!”
여섯 고수의 검을 맞았던 청송은 어느새 일 권을 맞았는지 입가로 선혈을 흘리며 진건곤을 불렀다.
청암과 청명도 역시 놀라서 진건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과과광!
화령신의 손이 아무렇게나 휘둘려지자 붉은 기운이 진건곤의 주위를 감싸고 쏘아져 나갔다. 땅은 반장의 깊이로 파여 있었다.
청명과 청암은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멈춰 지켜볼 뿐이었다.
스릉!
검후는 자신의 검을 버리고는 진건곤의 등에 꼽혀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바로 소 무국공이 소군을 데려가라는 예물로 진건곤에게 주었던 검이었다.
“흥! 이제 소검후는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을게요. 아니 그렇소?”
‘빌어먹을!’
진건곤은 이미 지대한 타격을 입고 정신이 반쯤은 나간 상태에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화령신이 그녀를 희롱하는 말은 너무나 잘 들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스스로 자책하는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입으로는 아주 작은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소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을 들어 진건곤의 앞에 섰다.
검을 들어 화령신을 가리키자 또다시 우윳빛의 검기가 일어났으나 전에 비하면 맑기 짝이 없었다.
청명이나 청암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검기로 보일 뿐이었다.
“그래 가지고는 한 초식이라도 제대로 버틸 수나 있는지 의문이구려!”
파앙!
또다시 화령신의 몸 주위로 공기가 터져나가고 열기가 솟구쳤다.
그렇게 화령신이 자신의 내력을 모아 강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는데도 소군은 그를 공격해 들어가지 못했다.
화령신의 말대로 기력이 다해버려 이제는 비껴내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진건곤의 앞에 버티고 서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화령신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가섰다.
패액!
소군의 검이 화령신을 향해 움직였지만 화령신은 여유 있게 검을 피해내었다.
소군의 검은 화령신보를 시전한 화령신을 잡아내지 못하고 허공만을 저었을 뿐이었다.
이제는 허공에 미세하게 뿌려낼 가닥 가닥을 만들어낼 내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흥! 애처롭구려. 저 버릇없는 놈을 그래도 지켜낼 작정이오? 그대가 이렇게 된 것이 누구 때문이요? 바로 저놈 때문이지 않소?”
“더 이상 말을 하지 마세요.”
소군의 검이 화령신을 베어갔다.
화령신의 몸은 한순간 사라지며 또 다른 곳에 나타났다.
“흥! 아직도 그 녀석을 감싸는 것이오? 그대의 승부를 망친 저 녀석을?”
화령신은 고개를 돌려 진건곤을 쳐다보았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그녀가 그리 불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기를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강기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진건곤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소군은 그 말이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만 하세요.”
“나라고 해서 강기를 무한정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더냐? 그대로 시간을 끌어가 초식의 대결로 이어졌다면 내가 패했을지도 모르지. 나를 공격하던 너를 보호하기 위해 소검후는 지는 것이 뻔한 정면 승부를 해왔던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너의 어설픈 검기로도 강기에 부딪히고 살아 있는 이유고 말이다. 알겠느냐?”
패액!
더 이상 화령신의 말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소군의 검이 화령신을 베어 갔지만 화령신은 화령신보를 펼쳐가며 그녀의 검을 여유 있게 피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승부를 포기하며 정면 승부를 보았던 이유를 모두 다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진건곤의 귀에는 그런 이유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소군이 무기력하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소군 누이!’
진건곤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자신이 아닌 소군이 욕보이는 순간이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이렇게 전신이 망가져 버린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럴 순 없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누이가……!’
진건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심법을 운기해 보았다.
조그만 그 무엇이라고 붙잡고 매달려 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맥은 물론 혈맥마저 망가진 몸은 아무것도 제대로 시현할 수가 없었다.
‘독룡살검!’
불현듯 독룡살검을 떠올리자 진건곤의 몸에 욕망이 들끓어 올랐다.
독룡살검은 내력이 아니라 욕망으로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내력이 부족하여도 정신만 살아 있다면 몸을 불사를 때까지 힘을 쏟아낼 수 있는 그런 검이었다.
진건곤의 몸에는 서서히 살기가 맺히고 그런 살기들이 점점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끝냅시다. 소검후께는 다시 한 번 기회를 드리겠소. 검을 완성하여 오시오. 나 또한 강기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하겠소. 오늘은 저 버릇없는 녀석만 처리하고 가겠소.”
“아니 됩니다. 절대로 그리할 수는 없습니다.”
화령신이 진건곤에게 다가가자 소군은 여전히 검을 휘두르며 그를 베어갔다.
하지만 화령신보의 신묘함을 꿰뚫어보지 못하게 된 그녀의 검은 허공을 벨뿐이었다.
화령신의 걸음이 멈추지 않자, 소군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자신의 목숨 때문이 아니었다.
진건곤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소군은 작정한 듯이 진건곤의 앞에 서서 검을 휘둘렀다.
그런 그녀의 왼쪽 눈에서는 한 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참고 싶었던 눈물이 그녀도 모르게 새어 나간 것이었다.
그 눈물이 뺨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우연히도 그 눈물방울은 무너져 앉아 있는 진건곤의 왼손 등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으아아아아아아아!”
진건곤의 고함이 날카롭게 울렸다.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족쇄가 풀렸다.
진건곤의 마음을 물들인 살기가 그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욕망과 살의가 그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또다시 진건곤의 몸이 붉게 물들어 갔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진건곤의 몸이 눈에 띄게 회복되고, 아니 복원되고 있었다.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진건곤의 몸은 순식간에 원래의 몸을 회복하였다.
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선 것은 그야말로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직 하나 눈이 붉게 물들어 광기를 흘러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검……!”
진건곤의 음성을 들은 소군은 그제야 자신의 뒤에 진건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소군은 진건곤이 회복된 모습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는데 진건곤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었다.
오직 분노와 증오의 대상인 화령신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울리는 소리!
“검……!”
진건곤의 붉게 충혈된 눈이 소군이 들고 있는 검을 보았다.
그 순간, 검은 소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우우우웅!
스스로 생명을 가진 물건처럼 두둥실 떠올라 몸을 떨었다.
“진 공자?”
소군은 검이 울리는 것이 진건곤이 한 짓이라 생각했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화령신조차도 이 기현상이 무엇인지 몰라 당황하여 진건곤을 바라보았다.
“설마? 허공섭물?”
“크흐흐……! 죽… 엇……!”
풋!
허공에 피가 튀었다.
빛살같이 빠르게 움직인 검이 화령신의 어깨를 꿰뚫은 것이었다.
진건곤의 음성에 따라 움직인 검이 화령신의 목을 노리고 폭사된 것도 정상이 아니었으나 화령신도 역시 정상적인 범위를 넘는 고수였다.
순간적으로 몸을 틀며 어깨에 검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
“죽엇! 죽엇! 죽엇!”
진건곤의 음성이 들릴 때마다 허공을 돈 검은 빛살처럼 빠르게 화령신에게 쏘아졌다.
텅! 텅! 텅!
어느새 권벽을 만들어낸 화령신이었다.
굉음이 울리고 충격파가 울리며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계곡의 절벽이 허물어져 내렸다.
사위에 바위와 자갈이 허물어져 내리고 땅거죽이 뒤집혔다.
얼마나 강렬한 충격인지 알 수 있었다
화령신의 두 눈은 찢어질 듯이 부릅떠져 있었다.
강기로 만들어진 강기벽과 부딪히고도 멀쩡한 검이라니!
그것은 검도 역시 강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하지만 허공을 떠도는 검에는 강기가 서려 있지 않았다.
그건 바로 강기가 검의 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곁을 감싸는 강기보다 속을 가득 채운 강기가 밀집된 정도에서 더욱 앞섰다.
연거푸 부딪히다가는 화령신의 강기벽이 뚫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하하하! 괴물이구나!”
하지만 화령신은 더욱 기쁜 듯이 웃음을 지었다.
서장인들은 가끔씩 이해하기 힘든 감정을 보였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더욱 강한 상대를 만났다고 기뻐하다니!
진건곤과 화령신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을 때, 소군은 진건곤의 눈이 붉게 충혈된 것을 보며 청송에게 전음을 보냈다.
[다른 제자들을 모두 데리고 도망치세요. 지금 당장! 인근에 남아서 기다려서도 안 돼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사조님은 어찌합니까?]
[진 공자는 제게 맡기세요.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진공자의 손에 모두 다 죽어요. 당장 움직이세요. 만일 살아남거든 객잔으로 가라 전할게요. 어서 가서 기다리세요.]
청송은 소군의 전음을 받고는 진건곤을 보았다.
진건곤의 눈에서는 유난히 붉은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선홍빛의 투명한 핏빛과도 같았다.
청송은 소군이 그리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명과 청암의 사제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진건곤의 눈이 돌아갔으나 검을 날릴 수는 없었다.
“이놈!”
화령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화령신보를 펼치며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한 진건곤의 입에서는 짐승의 것과 비슷한 소리가 들리고 또 진건곤의 시야가 화령신을 향하자마자 허공에 홀로 떠 있던 검이 다시 빛살처럼 뻗어나갔다.
그 검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강기로 펼친 권벽보다 무섭다는 것을 느낀 화령신은 정면 승부를 피했다.
화령신은 화령신보를 연거푸 펼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 수차례 자리를 움직였지만 진건곤이 날리는 검은 그때마다 번쩍거리며 화령신을 꿰뚫듯이 쏘아져 갔다.
화령신보의 신묘함은 극에 달해 있지만 진건곤의 검도 역시 극에 달해 있었다.
화령신의 신형이 나타났다가 사라질 때마다 번개가 치듯이 그 자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화령신의 이마에 땀이 솟아올랐다.
아까와는 정반대가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네놈의 내력이 얼마나 정심한지 몰라도 나보다는 먼저 지칠 터! 이대로 너의 내력이 떨어질 때까지 버텨주마!’
화령신은 진건곤의 내력이 떨어지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신묘함의 극치인 화령신보를 펼쳤다.
하지만 한 가지 잘못 계산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진건곤의 힘의 원천이 내력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진건곤의 힘의 원천은 증오와 욕정이었다.
화령신이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한 그 힘은 식지 않을 것이었다.
애초에 진건곤의 힘을 압도하지 못한다면 패배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붉은 빛깔과 검이 번쩍거리며 나타나기를 수십 번을 지나 수백에 이르렀다.
푸욱!
허공에 선혈이 튀었다.
진한 선혈이 튀는 것으로 보아 화령신은 심장에 가까운 곳에 상처를 입을 것이 틀림없었다.
화령신의 위기를 보자 화령신의 수하인 여섯 고수가 또다시 권벽을 펼치며 진건곤을 압박해 들어갔다.
화령신의 얼굴에는 치욕이라는 표정이 서렸지만 여섯 고수는 그렇지 않았다.
절대자의 안위를 위해 나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였다.
푸푸푸푹!
진건곤의 검이 꼬치를 꿰듯이 한 번에 여섯 고수를 꿰뚫고 지나갔다.
모두가 심장에 구멍이 난 채로 서너 걸음 더 앞으로 나와 쓰러졌다.
그들이 서너 걸음이나마 앞으로 나온 것은 그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또 다른 형태의 단말마!
그저 생명이 꺼져가는 과정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푸부부북!
푸부부북!
푸부부북!
하지만 진건곤의 검은 그것마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들이 쓰러지는 것을 방해하며 순식간에 그들의 신체를 산산조각 내었다.
“괴물 같은 놈!”
화령신은 그런 수하들의 죽음을 보면서 분노를 일으켰다.
평소에는 강자에게 죽어가는 하수의 죽음이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보는 그 모습은 자신이 생각하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있었다.
화령신도 역시 분노에 싸여 진건곤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그의 두 손에는 남은 모든 공력이 맺혀 있었다.
두 손에 맺힌 강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선명한 붉은빛을 띠었다.
지저에 흐르는 용암이 있다면 바로 그 색과 같았을까?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불러일으키는 그런 선명한 붉은 빛깔이었다.
푹!
하지만 화령신이 펼쳐낸 권벽은 진건곤의 검을 막지 못했다.
진건곤이 몸을 움직이며 피하는 사이 검이 홀로 날아와 화령신의 뒤통수에 꼽혀들었기 때문이었다.
화령신이 진건곤의 검의 빛살 같은 검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수비에 전념하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진건곤이 처음으로 펼친 이기어검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수차례 화령신보로 몸을 피하는 화령신을 쫓는 사이 진건곤의 이기어검도 정교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소군과의 싸움에서 화령신이 이득을 보았던 모든 것이 진건곤에게 다시 펼쳐진 것과 같았다.
화령신의 머리를 꿰뚫은 검은 허공에 우뚝 서 멈춰 있었다.
진건곤의 시야가 닿는 곳을 향해 검첨이 이쪽저쪽으로 움직였다.
마치 진건곤의 심령이 닿아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다.
진건곤의 시야가 소군을 보자 검은 천천히 소군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크르르르!”
진건곤이 짐승의 소리를 토해내자 검이 움직였다.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소군의 옷가지가 잘려나갔다.
툭!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리가 났다.
뒤돌아 도망치려던 공희국이 밟은 돌 조각이 튀는 소리였다.
공희국은 진건곤의 시야가 자신을 가리키자 전력을 다해 달리고 말았다.
그래야만 한다는 공포가 그를 지배했는데, 그건 의미가 없는 일에 불과했다.
진건곤의 시야가 공희국을 향하자 검은 한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무려 삼십여 장이나 뒤에 물러서 있던 공희국이었지만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날아가 검이 그를 꿰뚫고 나왔던 것이다.
“크르르르!”
어느새 삼십여 장을 날아 돌아와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듯이 멈춰 선 검이 또다시 소군의 옷가지를 잘라갔다.
소군은 모든 것을 포기한 심정이 되어 진건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크르르르!”
진건곤이 뱉어내는 소리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광포하게 웃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소군은 진건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나아가며 주머니에서 몇 가지 패를 꺼내 주위에 뿌렸다.
자신의 종적을 숨겨주는 진법을 펼친 것이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배려를 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옷고름을 잡아 갔다.
소군이 또다시 염정간옥의 마검에 빠진 진건곤을 향해 옷고름을 펼치려는 순간.
“크르르르!”
찌이이익! 찌익!
짐승의 소리와 함께 진건곤의 손이 소군의 옷가지를 찢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마검의 먹이가 되어야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