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29화 (29/61)

제5장

중년인의 사내는 작은 쪽방으로 만들어진 병실에서 침상에 누운 자에게 침을 꼽고 있었다.

환자는 누운 채로 무릎을 반쯤 구부리고는 온몸에 수십 개의 침을 꼽고 있었다.

환자는 그 침을 맞으면서 황송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이제 되었네. 말을 하게나.”

“하하하, 침은 맞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의원의 허락이 떨어지자 환자가 입을 열었다.

“아닐세, 언제 무진과 같은 자가 올지 모르네. 유비무환이 아니던가? 조심해야지.”

“실패입니다.”

“허어! 또 실패란 말이지?”

의원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수염을 만졌다.

그런데 무엇이 실패란 말이던가?

“그렇습니다. 용병제가 실패했습니다. 전진자는 또다시 살아남았습니다.”

진건곤이 이번에도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들은 귀제갈은 놀라고 있었다.

“오호! 용병제뿐만 아니라 태상도 나서도록 되어 있었을 텐데?”

“그렇습니다. 속하도 이번 일이 예상과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태상이 전진자와 싸웠습니다만 전진자의 무공이 더욱 강했습니다.”

“그럼 전진자의 무공은 또다시 진보했단 말이겠군.”

“그렇습니다. 용병제는 염정간옥의 도를 보였고 태상은 황금공을 사용했습니다.”

“허어! 그런데도 전진자가 이겼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귀제갈은 한동안 서서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허어! 그가 바로 신인(神人)이란 말인가?”

환자였던 사내가 의문이 섞인 표정으로 귀제갈을 바라보았다.

“역사를 살펴보면 가끔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들이 나타나네. 뭐랄까?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랄까? 당연한 귀결을 극적으로 뒤바꾸는 그런 자들이 있는데. 이런 자들이 곧 시대의 주인공이 되고는 한단 말일세.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해지는 시점이군.”

“제갈께서는 그를 이미 천자로 보시는 모양이군요.”

“그러게나 말이네.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 너무나 쉬이 어그러지네. 살수들이야 정면대결에선 약한 편이니 그렇다고 쳐도, 용병제처럼 강호를 대변하는 고수 중에 고수가 전진자와 비무에서 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게다가 염정간옥의 검을 썼다면 평소보다 더 강했었다는 뜻인데 말일세.”

“처음 용병제가 염정간옥의 검을 쓰자 밀리는 듯하였습니다만 바로 용병제를 능가하는 실력을 보여주더군요. 숨겨놓은 실력이 있었다는 것이겠죠. 태상을 꺾은 그 실력도 역시 그의 전부를 보인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용병제와 태상이 죽었다고?”

“속하가 나서서 처리하였습니다. 염정간옥의 검과 황금공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만…….”

“잘 했네. 그것은 지금 나와서는 안 될 것이지. 그리고 화령신을 불러야 한다고?”

“상 장로가 낭인들을 규합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직접 나서지는 않고? 설마 전진자가 상 장로보다 강한 건가?”

“아닙니다. 전진자가 어찌 알았는지 교묘한 말로 상 장로가 본신의 실력을 보이기 어렵게 만들었나 봅니다.”

“전진자가 상 장로의 무공을 알아보았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전진자가 상 장로의 무공을 본 적이 있단 말인가?”

“아닙니다. 제가 거듭 확인을 해보았지만 자신은 한 번도 무공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귀제갈은 또다시 자신의 수염을 손으로 쥐었다.

“허허! 이거 참 큰일이군. 큰일이야.”

“무엇이 말입니까?”

“상대의 무공을 보지도 않고 알 수 있다는 것은 곧 그 기운을 읽는다는 것일세. 아마도 전진자는 내 아래가 아닐 것이야.”

환자인 사내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하… 하지만 전진자는 겨우 약관을 지났을 뿐입니다.”

“허허허! 그런 것쯤은 무시하고 지나는 자들이 있다지 않았는가? 마치 대공녀처럼 말일세. 화령신을 내 이름으로 불러주게. 자네가 나서도 되겠지만 전진자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인물이 아니던가? 확실하게 마무리하세.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화령신을 극복하기는 힘들게야.”

“존… 명!”

“아! 그리고 말일세. 천화(天華) 말이네. 그 아이가 전진자를 노린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아직도 인가?”

“아직 입니다. 시작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두라 전하게. 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일세.”

사내는 놀라고 말았다.

천화의 일이라면 자신은 전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귀제갈은 이미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가?

분명 자신이 아닌 다른 조직도 이끌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또 내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는가?”

“전진자가 또다시 공 문국공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호오, 그놈 참. 끈질기군. 일단은 장소를 옮기라고 전해주게. 아마도 명분 따위는 생각지 않고 직접 나설지도 모르네.”

‘그게 아니라면 그곳을 향할 이유가 없지.’

사실이었다.

진건곤은 이미 남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무공을 가졌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귀제갈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귀제갈이라 할 만하였다.

“허어! 허어! 허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는 사내들이 있었다.

낭인들의 추적 전문 비룡대.

하지만 오늘을 추적이 아니라 쫓기는 사람들처럼 체력적인 여유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

목표물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탓에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낭인들은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멀리 하늘을 보았다.

하늘 높은 곳에는 선회하는 매가 보였다.

하지만 매가 있는 곳은 머리 위가 아니었다.

매는 보이나 머리와 몸체를 구분할 수 없다.

이미 두 개의 산이 떨어진 곳. 굳이 이야기 하자면 이백 리가 넘게 떨어진 곳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비…빌어먹을. 조금만 더 떨어지면 보이지 않게 되는 걸까?”

비룡대는 이런 추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하늘 위에 매가 목표를 따라 움직이면 그대로 쫓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종적을 놓치지 않고 움직이며 표식만을 남기고 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추적도 방법은 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추적대상의 무공이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공이 달랐다.

매가 가는 방향을 쫓아 달려도 절대 좁혀지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멀어졌다.

멀어지는 대상을 쫓기 위해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겨우 한 시진을 달렸을 뿐인데 매가 보이는 거리가 한계에 다다랐다.

“이런, 제기랄! 차라리 말은 남겨 주는 게 좋았을 것을……!”

시야에서 매가 사라졌다.

낭인들 중에서도 발이 날랜 자들만 모여 만든 비룡대.

그중에서도 발이 가장 빨랐던 대원이었지만 전진자의 경공을 따라잡을 능력은 없었다.

종적은 잡았지만 따를 수 없으니 모르느니만 못했다.

화아아아!

경공을 연방 펼치고 있는 진건곤의 귓가로 바람소리만 시끄럽게 지나갈 뿐이었다.

진건곤은 쉬운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낭인들을 떨치기 위해서 깊은 산속으로 들어섰고 험난한 길들을 뚫고 지나왔다.

예상대로 그들은 진건곤을 쫓을 능력이 없었고 진건곤은 곧 자유롭게 되어 버렸다.

“훗! 그런 건가?”

진건곤은 스스로 쓴웃음을 지어버렸다.

길을 나서며 살기를 뿜어내는 자들은 용서하지 않겠다던 마음을 먹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죽이지 않고 쫓겨 온 것이 아니던가?

도무지 검을 떨쳐 상대할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손을 휘젓듯이 흔들기만 해도 쓰러져 버리는 상대에게 살수를 펼칠 수는 없었다.

“이래서 고수들이 하수들과 싸우지 않는 것이었나?”

강호에 나온 지 근 일 년 반 사이에 자신의 무공은 터무니없이 강해졌다.

초계산에서만 해도 겨우 산적들에게 살수를 뿌려야 했지만 지금은 수수대로 검을 만들어 노는 아이들 같이 보이지 않았던가?

그야말로 쓸데없는 싸움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진건곤은 낭인들에게 아무런 앙금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진범이 잡히겠지. 그렇다고 그들이 진범을 잡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말이야.”

진건곤의 행로는 당연히 공희국을 향한 길이었다.

공희국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칼자루를 쥐고 흔든 자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가 아니라면 그 위로 몇 번을 올라가더라도 반드시 음모의 주인을 찾아 응징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잘 찾아온단 말이지.”

낭인들은 완전히 끊어진 추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진건곤을 잘 찾아왔다.

진건곤은 아직도 하늘 높이 나는 매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추적에 쓰이는 매도 역시 항상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미리 알고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눈치 채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보름 동안 낭인들과 몇 번의 조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경공을 펼쳐 우회하며 낭인들을 피해 온 진건곤이었다.

“진 공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구나.”

여인의 음성.

바로 소군이었다.

소군은 진건곤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진건곤이 집에서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그를 놓쳐본 적도 없었다.

둘 사이에만 있었던 일이라 생각했던 것을 숨기며 지내고 있었지만 막상 혼담이 나오니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여 진건곤의 곁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막상 집을 나섰지만 진건곤의 일이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건곤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의 원수인 공희국을 쫓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노린다고 하였다.

진건곤이 공희국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노림을 당한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했다.

“하아! 진 공자가 위험할 리가 없거늘. 이 어인 노파심이냐 말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진건곤의 무공은 놀랍기 짝이 없었다.

그날 비무대에서 태상을 꺾으며 보여준 것조차도 진건곤의 전력이 아니었다.

진건곤의 진실 된 무공은 바로 다른 곳에 있었다.

진건곤을 위험하게 만들 자는 강호상에 드물다는 것이 그녀의 평가였다.

그녀는 스스로 진건곤을 쫓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스스로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알면서도 부정하는 것이 지금의 그녀의 마음이었을 뿐이었다.

“이제라도 매를 떨어트리라고 알려야 할까? 아니면 그냥 이렇게? 하지만 진 공자를 어떻게 본단 말인가? 아미타불!”

심난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그녀였다.

진건곤은 다시 절강의 성도인 항주로 돌아왔다.

일부러 밤늦게 항주에 들어온 진건곤은 그대로 공희국의 장원을 찾았다.

상천의 힘으로 주위의 기운을 읽어내니 진건곤은 주변의 상황을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다 알 수가 있었다.

진건곤은 인기척을 피하며 공희국의 장원을 샅샅이 다 뒤져 보았다.

하지만 공희국을 찾지 못했다.

하여 공희국이 업무를 주관하는 관까지 샅샅이 뒤집어 보았지만 공희국의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공희국의 장원을 지켜보기 위해 또다시 전의 객잔을 찾았다.

모두가 잠든 밤이어서 아무도 깨어 있지 않았다.

똑똑똑!

진건곤이 탁자를 두드리고 나서야 점소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섰다.

“아이고 어서 옵셔! 또 뵙네요.”

홍로라고 했던 점소이가 반갑게 진건곤을 맞이하였다.

“반갑구나. 전의 방을 다오.”

“하! 참, 이상한 손님이십니다. 그곳은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내 마음에 들면 그만 아니겠느냐?”

“뭐, 그야 그렇겠지요. 그 방을 치우라 전하겠으니 간단히 요기라도 하고 들어가시지요.”

“그래 나날이 장사 솜씨가 좋아지는구나.”

진건곤이 말하자 홍로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흐흐흐, 저도 돈이 좀 필요해졌거든요. 요즘엔 저도 요리를 한답니다. 숙수가 잠든 시각에는 간단한 요리 정도는 제가 하지요. 이왕이면 간단한 것으로 주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점소이는 슬며시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여자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런 그의 소탈해 보이는 모습에 진건곤도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 솔직하구나. 그럼 소면과 소채볶음을 다오!”

‘흐흐흐! 요놈 그곳을 찾은들. 문국공 어르신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으냐?’

진건곤이 웃고 있을 때, 반대로 점소이는 마음속으로 진건곤을 비웃고 있었다.

진건곤이 찾은 곳은 장원을 감시하기에 좋은 곳이나 범의 아가리 속이기도 했다.

준수한 얼굴에 호방한 기질을 보이는 사내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청송. 화산에서 온 연락을 받고 진건곤을 찾기 위해 항주에 온 지 오래되었으나 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보름이라는 기간을 보내었지만 진건곤의 그림자조차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안휘성과 산동의 경계인 휘령에서 이름난 마두인 철산도부 구렴을 처단하고 있던 중에 연락을 받고 찾아온 항주였다.

항주의 문국공의 주변을 찾으면 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건만 아무리 찾아도 진건곤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개방에 진건곤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였지만 진건곤이 항주로 향했다는 말을 들었을 뿐, 정확한 위치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흥! 이만큼 찾아봐도 없었으니 그냥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사형? 정말 성의껏 찾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곁에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이 있었다.

하안 피부가 도드라져 백합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여인이었다.

바로 청린이었다.

그녀는 겨우 일 년 사이에 완연하게 다른 미모를 가지게 되었다. 봉오리에서 꽃잎이 드러난 꽃이라고 해야 할까?

전과는 비할 바 없는 독보적인 미모가 되어가고 있었다.

청린의 말은 사실이었다.

청송과 청암, 청명과 청린, 진려경은 이미 보름이 넘도록 날마다 항주바닥을 뒤집었었다.

하지만 운이 없었는지 진건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진건곤이 두문불출 방안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건곤이 지켜보고 있는 곳은 묘하게도 침상에 앉아서도 공희국의 장원 내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기에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 필요조차 없었다.

진건곤이 창밖을 내다보았다면 진즉에 만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니 만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청송의 얼굴에 망설임이 서리고 있는데 멀리서 개방의 걸인이 달려왔다.

“찾았습니다. 진 공자는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하오문에서 연락을 해오더군요. 바로 이곳에 계신답니다.”

개방도가 가리킨 객잔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점소이 홍로는 기본적으로 하오문에 정보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홍로는 화산의 무인들이 지나다님에도 불구하고 진건곤의 존재를 여태껏 숨기고 있다가 드러낸 것이었다. 물론 실수로 빼먹었다는 변명과 함께 말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도 못 찾았단 말인가?”

공희국의 장원에 거의 맞닿아 있는 객잔이 아니던가?

청송의 일행이 들어서자 개방도는 점소이를 불러 진건곤을 찾았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진건곤은 계단을 내려오며 청송을 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사손이 사조님을 뵙습니다.”

“사손이 사조님을 뵙습니다.”

그 뒤로도 똑같은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진건곤은 잠시 멈칫했으나 그 의미를 알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절검 영은의 제자가 되었으니 무 자 돌림의 배분이었던 것이다.

청 자 배분 위로 운 자, 그 위로 무 자의 배분이었으니 그들에게는 사조가 되는 것이었다.

진건곤은 이미 화산의 제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으니 이러한 배분에도 익숙해져야만 했다.

“배분이야 어쩔 수 없지만 마음만은 변함이 없으니 예전과 다름없이 편하게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이를 말이 있겠습니까?”

청송은 호탕하게 웃으며 진건곤의 손을 잡았다.

“오라버니!”

“이젠 처남이라고 해야 할지. 사조님이라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진려경과 청명은 웃음을 활짝 지으며 진건곤에게 달려들었다.

“대단해요. 그리고 얄미워요. 영은 태사조님의 제자인 것을 어떻게 그리 감쪽같이 숨기셨지요?”

[그렇습니다. 화산수문위로 화산에 들 줄 알았는데 어떻게 태사조님의 제자가 되었습니까?]

청송의 전음에 진건곤은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마도 무진 사형이 중경으로 온 탓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진 사조님이 말입니까? 아! 역시 말씀은 낮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리 전음이라 한들 습관은 무서운 것이니까요.]

청송은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하하하! 어찌 형님께 그리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남들의 이목이 있다면 몰라도 둘이 있거나 전음이라면 공대를 하겠습니다. 무진 사형의 일은 사연이 있어 길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올라가시지요.]

“올라가자꾸나.”

화산의 동량들은 진건곤을 따라 진건곤의 방으로 들었다.

창을 둘러본 진려경이 감탄하였다.

“과연 이러니 방을 나올 필요가 없었겠군요. 그러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일 수밖에요.”

창문에서 본 경관에 공희국의 장원이 한눈에 보였다.

모두들 궁금증이 한 번에 풀렸다.

“절검 태사조님께서 무곤 사조님을 보필하라 하였습니다.”

진건곤은 용병제의 사건으로 나이가 어린 무인들 중에 가장 유명인이 되어 버렸다. 이제 와서 청송과 비교하는 것 정도는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진건곤을 보필하라는 말은 곧 미래를 함께할 사람이니 손발을 맞추라는 뜻과 같았다. 게다가 진건곤의 무위를 눈으로 확인해 두라는 말과도 같았다.

“사숙께서 용병제를 꺾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너무 멀리 가서 사조님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꿈도 못 꾸겠습니다.”

청명이었다.

이 자리에 사심 없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청명이 유일하다 할 수 있었다.

청린은 창밖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린이는 어디가 불편 하느냐?”

진건곤이 의도적으로 묻자 청린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사조님.”

아무리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두 배분의 차이는 상당히 큰 차이였다.

게다가 진건곤의 무공이 젊은 자들 중에서는 가히 비교할 자가 없지 않은가?

‘치잇! 저 녀석이 화산의 무 자 배가 될 줄이야. 세상은 요지경이구나.’

“차 한 잔 마시고 싶구나.”

“네, 사조님.”

청린은 공손히 차를 따라 진건곤에게 올렸다.

“또 한 잔!”

차를 벌컥 마셔버린 진건곤은 또다시 린에게 차를 따르게 하였다.

진건곤은 또다시 받은 차를 벌컥 마셔버리고는 찻잔을 다시 내밀었다.

“또 한 잔!”

연거푸 세 번을 따르게 하였다.

자칫 과거를 잊지 못한다면 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청린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끝까지 공손함을 잃지 않고 차를 따랐다.

“린아!”

“네, 사조님.”

진건곤은 똑바로 청린을 보았다.

청린도 역시 호명을 받았으니 진건곤을 똑바로 보았다.

“이것으로 술 석 잔을 받은 셈 치겠다. 과거의 아쉬운 감정이 있었다고 해도 잊자꾸나. 그럴 수 있겠지?”

청린의 눈길이 진건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게도 차 한 잔을 주시겠습니까?”

진건곤도 역시 차를 따라주었다.

청린도 역시 진건곤처럼 연거푸 차를 세 잔을 마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렸다고는 하나 여자에게 손찌검을 한 것은 쉽게 잊힐 것이 아니지요. 허나 이렇게 술 석 잔을 빌어 용서를 구하니 잊지 않는다면 쩨쩨하다 하실 겁니다.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진건곤이 차를 술이라 하니 청린도 역시 술이라 칭했다.

서로가 술 석 잔을 바치며 용서를 구한 격이니 누구의 자존심 하나 상할 일이 없어진 것이었다.

사조를 상대로 그런 일을 벌이니 나름대로 당찬 아가씨가 되었던 것이다.

“하하하하하! 백모란이 현명하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구나. 그래 용서해 주니 고맙구나.”

청린이 청송을 보자 청송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마워 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조님.”

이미 청린의 마음도 풀렸는지 밝게 웃으며 답을 하자 방안의 분위기가 환하게 밝아졌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모든 준비는 마쳤느냐?”

“그렇습니다. 총관님.”

“그럼 시작하라 일러라.”

청송 일행이 합류한 지 삼 일 만에 공희국의 총관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저건? 오라버니. 저게 공희국으로 마차가 아닐까요?”

진려경의 말에 어느새 진건곤이 일어서 마차를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크고 단단하게 생긴 것으로 문국공과 같은 관리가 아니라면 타고 다니기 힘들 정도의 마차였다.

게다가 그 옆으로 수명의 무인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의 수준은 대략 일류와 절정의 자들. 공희국의 식객들이 나서서 호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뒤에 누군가가 짐을 건네자 마차가 열리고 짐을 받았는데 그게 바로 공희국이었다.

“틀림없다. 다녀오지.”

“조심하세요. 오라버니.”

“그러마.”

진건곤은 자신의 일에 화산의 제자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오직 진려경과 둘이서만 힘을 합하며 공희국의 장원을 지켜오고 있었다.

현직의 관리를 처리하는 일로 화산이 얽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진건곤이 마차를 쫓기 위해 앞으로 나섰는데 문득 객잔에서 움직이는 기운이 있었다.

모두 네 개의 기운. 무공이 가장 떨어지는 진려경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나선 것이었다.

진건곤은 그들이 따라나서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마차를 쫓는 것이 중요하여 그들을 막지는 않았다.

마차가 그사이 사라져 버릴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마차는 곧장 성도의 밖으로 빠져 나가 두 시진을 바쁘게 달리고 또 달렸다.

주위의 경치가 이름난 산이 아닌,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흥! 또다시 구린 일을 꾸미는 가보구나.”

진건곤이 그 마차를 따라 들어가자 마차가 들어간 곳은 들고 나는 곳이 하나인 계곡이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골짜기였으나 들어갈수록 양쪽이 수직에 가깝게 올라서더니 나중에는 양 절벽이 둘러싸고 있는 듯하였다.

“나를 유인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진건곤은 그곳의 지형을 보고는 어쩌면 공희국이 자신을 유인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용병제를 꺾은 자신을 대상으로 이렇게까지 자신 있는 함정을 판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훗! 어쩌면 골짜기가 내려앉을지도 모르겠구나.”

진건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사조님!”

역시나 한참을 기다리자 청송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위험합니다. 돌아가세요.”

“제가 위험하다고 돌아갈 것같이 보입니까?”

청송은 애초부터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건 저희 가족의 일입니다.”

“사조님은 화산의 가족입니다.”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이 일만큼은 제 손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어쩌면 육선문(관가)과 맞서게 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화산이 가족이라면 더더욱 혼자 해야 할 일입니다. 돌아가 주세요. 려경이를 잘 부탁합니다.”

진건곤은 더 이상 말을 듣지도 않고 일어나 움직였다.

청송이라고 할지라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청송 일행을 떨어트리고 경공을 써서 앞으로 달려가자 얼마 가지 않아 마차가 땅에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주위로 날카로운 예기를 보이는 고수들이 여섯 명이 늘어서 있었다.

진건곤은 마차 안에서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얼굴에 노기를 띠었다.

“공희국은 어디 있느냐?”

진건곤의 음성이 으르렁거리는 포효처럼 퍼져나갔다.

“나는 여기 있네.”

사람들이 갈라지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공희국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자네도 참으로 집요한 구석이 있네. 일개 벼슬아치에 불과한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하였다고 나를 쫓는가? 자네의 원수는 이미 따로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흥! 그리하여 나는 함정에 빠져들었지. 용병제의 손에서 죽을 수도 있었지만 살아남았지.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당신. 바로 당신을 쫓기 시작하면서 내게 위협이 다가왔다는 것을 말이야.”

“무슨 말을 그리하는 것인가? 내가 언제 자네를 위협했다는 것인가?”

공희국은 딱 잡아떼었다.

한순간 진건곤조차도 그가 무죄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지 생각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진건곤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뭐 그리 말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지. 한 가지는 확실할 것이야. 어떤 말을 하던지 오늘 당신은 내게 죽는다. 그리고 당신이 목숨 바쳐 충성하는 조직도 오늘 실체를 드러내겠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무고한 관인을 핍박하고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공희국은 자신이 결백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나섰다.

“그렇다면 왜 도망친 것이지?”

“자네 같은 고수가 나를 좋지 않은 의도로 찾는데 그 앞에 몸을 내세워야 할까? 만약을 대비하는 게 상식이 아니겠는가?”

“흥! 그 옆의 자들은?”

“나의 호위들이다.”

“오호! 처음 보는 자들인데. 나를 위해 준비한 자들이겠군.”

“그렇네. 자네의 명성이 자자하여 초빙한 분들이지. 아마도 섭섭지는 않을 것이야.”

공희국이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여섯 명의 고수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 중에 두 명은 곧바로 진건곤에게 주먹을 날리며 앞으로 치고 나왔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주먹에는 붉은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권기보다 더 진한 권기!

어기성강의 바로 직전에 멈춘 자들이 아닌가?

진건곤은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철검을 뽑아 화련직검의 쾌검식을 펼쳤다.

꽈드등!

굉음이 울리고 검과 권의 경력을 이기지 못한 땅이 움푹 파여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로 또다시 뻗어 나오는 네 개의 주먹!

전에 펼쳐내었던 주먹보다 더 붉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진건곤은 어느새 검을 허공에 그었고 뿌연 안개가 사방에 생겨나며 꽃잎을 드러내고 있었다.

꽈과과과광!

폭음이 울리고 또다시 땅에서 일어난 흙먼지가 솟아올랐다.

일견 자욱한 흙먼지에 사위가 보이지 않았지만 진건곤은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여섯 개의 강맹한 기운이 생겨나고 있었다는 것을!

진건곤은 방심하지 않고 공력을 끌어올려 검에 백색으로 일렁이는 빛깔을 만들어 휘저어갔다.

드디어 상천의 힘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과연 먼지를 뚫고 나온 여섯 개의 주먹은 아까보다 더 강한 붉은빛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강렬한 열기마저 머금어 부딪히기 전부터 열기를 느낄 지경이었다.

백색으로 일렁이는 검이 그린 원은 그들의 주먹을 감싸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번에는 전과 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붉은빛과 백색의 빛이 한데 어우러져 번쩍거리더니 서로가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진건곤은 뒤로 물러서며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량만회로 승기를 잡을 수 없다니.’

절검 영은이 마지막으로 얻은 검은 상천의 힘을 사용하는 진건곤으로서도 쉽게 펼칠 수가 없는 절초였다.

그저 그 모양과 품은 오의를 흉내 내 만든 초식의 이름이 바로 무량만회였던 것이다.

지금의 진건곤으로서는 최고의 무공이었는데 그것이 통하지 않는 적수를 만난 것이었다.

놀란 것은 진건곤만이 아니었다.

여섯 고수들조차도 놀라고 말았는지 서로가 입을 열어 말을 하고 있었다.

허나 진건곤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말은 서장어였다.

다시금 바라보니 그들의 눈은 중원인에 비해 더 크고 피부는 더욱 검었다.

그제야 세외에서 초빙된 고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랍다. 허나 우리는 여섯! 당신은 하나!”

개중에 하나가 떠듬거리며 말을 하였다.

여섯 고수들은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몸에서 놀라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는데 그 기세로 보아 한 명, 한 명이 용병제에 뒤지지 않는 고수였다.

“놀라운 고수들이거늘 기껏 돈에 팔려왔느냐?”

진건곤이 그들을 비웃으며 한마디를 하자 그들의 검은 얼굴이 검붉게 변했다.

“말조심! 우리 명예를 안다. 돈 아니다.”

그들은 노기를 띠며 움직였는데 진건곤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진형을 짜며 권을 내질렀다.

‘일 검에 뒤로 물린다.’

진건곤은 내력을 끌어올려 검에 담았다.

진건곤의 검이 백색으로 일렁이며 울었다.

내력이 가득 담긴 화련직검의 검으로 그들을 동시에 쳐내 뒤로 물려내고는 한 명씩 처리하려 하였던 것이었다.

한 번의 충돌에서 여섯 고수 개개인의 공력이 자신보다 낮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각기 한 명의 고수가 동시에 예닐곱 개의 권영을 내지르니 전면은 붉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벽과도 같았다.

꽝!

‘이런! 진법?’

검광과 함께 굉음이 울리고 진건곤의 신형이 뒤로 쏘아져 나왔다.

화련직검의 쾌검식이 급히 회수되어지고 말았다.

처음 한 명의 권영과 부딪히고 나서야 진건곤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진형은 그저 사각을 집어내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처럼 움직이며 공력마저도 하나의 강벽처럼 느껴졌다.

진건곤은 자신의 내력이 전혀 이득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움직여 몸을 빼내었던 것이다.

매화분분!

진건곤은 급하게 매화분분의 포식을 펼쳐 수많은 매화 꽃잎을 쏘아 보내었다.

하지만 급하게 펼친 초식이어선지 그들이 만들어낸 벽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여섯 고수들은 여전히 두 손을 바쁘게 놀리며 진형을 바꾸었는데 붉은 벽이 반으로 접히며 진건곤을 눌러 가고 있었다.

마치 전설로만 들리는 검벽을 여러 명이 합심하여 만들어내는 것만 같았다.

권으로 펼쳐지는 권벽이었다.

취리리릭!

진건곤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급하게 암향표를 펼치며 물러서는데 그들도 역시 보법을 펼치며 따라붙었다.

몇 번이고 방향을 바꾸었는데 여섯 고수들도 비슷한 실력으로 따라붙은지라 진건곤은 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번쩍! 꽝!

난데없이 세 개의 검이 날아들어 여섯 고수들의 배후를 노렸다.

세 명의 고수들이 뒤를 맡아간 사이 진건곤은 어느새 백색으로 일렁이는 검을 휘두르며 나머지 세 명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매화분분을 펼친 것 같았으나 허공에 나타난 매화 송이는 오직 한 송이였다. 대신 그 한 송이의 크기가 전에 비하면 상대도 안 될 정도로 컸다.

꽈드드드등!

굉음이 울리고 땅이 파였고 그들을 중심으로 태풍 같은 바람이 솟구쳐 나갔다.

이제껏 보였던 충돌 중에 가장 커다란 충격을 만들어낸 격돌이었다.

진건곤을 상대했던 세 명의 고수들은 삼 장을 튕겨나 버렸고 그들의 의복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있었다.

명백하게 우세해 보였으나 진건곤은 그런 중에도 하나도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세 개의 검 중에 겨우 하나만이 스스로 버텨내고 있을 뿐, 나머지 두 개는 생사의 간격을 오고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중에 무공이 가장 떨어지는 청명은 겨우 세 번의 부딪힘으로 이미 절체절명의 위기에 닥쳐 있었다.

피윳!

진건곤의 신형은 암향표 특유의 조용함으로 접근하며 화련직검의 쾌검식으로 찔러 들어갔다.

텅!

굵직한 쇠기둥이 울리는 소리가 나며 뒤로 튕겨져 가는 서장의 고수였다.

청명은 그 틈을 타 청암을 상대하고 있는 고수에게 합격해 들어가자 겨우 팽팽한 싸움이 되었다.

허나 세 고수는 일시에 물러나 자리를 잡자 진건곤과의 일 대 삼으로 부딪혔던 다른 세 고수들은 어느새 돌아와 그들과 합쳐지고 있었다.

여섯 명이 삼각형의 모양으로 모이니 또다시 그들의 몸에서 강맹한 위세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진건곤에겐 청송의 무리들을 챙기는 것이 먼저였다.

“형님! 오시지 말라 하지 않았습니까?”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조님?”

진건곤은 형님이라 하고 청송은 사조라고 하고 있었다.

청암과 청명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진건곤을 바라보았다.

청송의 일행은 진건곤에게서 멀리 떨어진 채로 뒤따르다가 진건곤이 위기에 봉착한 것을 보고는 검을 들고 합류하였던 것이다.

“위험합니다.”

“사조님을 두고 어찌 안전한 일만 찾겠습니까?”

“사조님, 어쨌거나 우리가 오지 않았다면 위험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청명이 나서서 진건곤을 말리려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이어질 수 없었다.

“싸운다.”

여섯의 고수는 간단한 경고를 날려 진건곤의 주위를 살리더니 진형을 갖추고는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맨 앞에 선 자가 또다시 예의 권벽을 펼치며 앞장서 왔는데 선홍빛으로 진해져 있었다.

그들의 도열은 뒤에 서 있는 자들의 진기를 전달해 받는 진법이었던 것이다.

“권강?”

“맙소사!”

청암과 청명의 입에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강기에 가깝긴 하겠지만 강기라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청송이 부정하며 진건곤의 옆으로 나란히 섰다. 진건곤에게 허락을 받듯이 물었다.

“내게도 한 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요?”

청송의 말이었다. 자신을 믿고 함께하자는 말.

진건곤 혼자서 감당하려 하지 말라는 말과도 같았다.

진건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요. 매화분분이 좋겠습니다.”

진건곤의 검에는 백색의 빛이 일렁였다.

청송의 검에는 황금빛이 서렸다. 그리고는 다시 그 빛이 진한 자하 빛으로 물들어 갔다.

“자하신공?”

청암과 청명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진건곤과 청송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지고 백색의 매화와 자하 빛의 매화가 피어나 쏘아졌다.

꽈드드드등!

진건곤과 청송, 서장의 여섯 고수들 사이에는 땅이 뒤집어지고 돌이 튀었다.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일어나 일대의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하였다.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양 벽에서 돌멩이들이 굴러 떨어져 내렸다.

그 충격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그 엄청난 힘을 토해낸 원인들인 진건곤과 청송, 여섯 고수들도 삼 장이나 뒤로 튕겨져 나가며 신형을 세우기에 급급했다.

짝! 짝! 짝! 짝!

박수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박수소리가 나자 여섯 명의 고수들이 박수를 친 초로의 노인에게 무어라 말을 하였다.

몇 마디의 말이 오가고 나서 초로의 노인이 앞으로 나서자 여섯 고수는 몸을 뒤로 빼고는 공희국의 양쪽 옆에 나란히 도립했다.

“좋다. 너희들은 본좌와 손을 섞을 자격이 있다.”

서장인으로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공희국의 옆에 남아 있었던 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걸음, 걸음마다 점점 더 위세가 가해지더니 종국에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만있을 때는 그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하더니 앞으로 나서자 엄청난 존재감을 풍겼다.

뒤로 물러서 있던 청암과 청명이 안간힘을 써 버텨야 할 정도였다. 이미 절정의 고수인 그들이 따로 심력을 소모해야만 견뎌낼 수 있는 압박감이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본좌는 화령신이라 한다. 너희들의 말로는 세외삼신이라고 하더군.”

세외삼신 화령신!

절대자의 한 이름이었다.

강호가 십대고수를 운운하며 천하제일인의 후보만을 뽑고 있었다면 세외는 그리 평화로운 정세는 아니었다.

혹독한 환경에 자리한 서장과 북해는 호전적인 성향에 따라 절대적인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평화가 유지될 수가 없었다.

거의 언제나 절대자의 지배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고 지금 서장의 절대자가 바로 눈앞에 선 초로의 노인이었던 것이다.

“제가 가지요.”

진건곤이 앞으로 나섰다.

청송은 그런 진건곤을 말리지 않았다.

조금 전의 한 수로 이제는 진건곤이 명백하게 자신을 뛰어넘은 고수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해야 합니다. 반로환동에 든 고수군요.”

청송이 진건곤에게 경고를 해주었다.

청송은 초로의 노인의 귀밑머리가 검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같이 와라! 너희 둘이 육합벽을 감당했으니 같이 오는 것이 합당하다.”

서장의 관습이었다.

절대자에게 도전하는 자 육합벽에 맞서 동등한 힘을 보인 자에게만 그 기회를 부여했었다.

“본디 홀로 감당하여야 했으나 젊은 고수를 없애는 일은 좀 켕기는 구석이 있구나. 네게 좀더 기회를 주고자 하는 일이니 고맙게 받아들여라.”

진건곤과 청송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세외의 절대자라고 불리는 화령신은 스스로 진건곤과 같은 젊은 고수가 피어나지도 못하고 자신의 손에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여 청송과 함께 자신에게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청송이 얼른 진건곤의 곁으로 다가섰다.

진건곤은 그런 청송을 밀어내려 했으나 화령신의 음성이 그것을 멈추게 하였다.

“십 초를 넘긴다면 그 재능을 아깝게 여겨 죽이지는 않겠다. 최선을 다해 생명을 지켜내도록. 또한 저 아이의 걱정은 하지 마라! 죽이지도 사지를 끊어내지도 않을 터이니까.”

화령신은 진건곤을 보았던 시선을 청송에게 돌렸다.

“부디 너는 최선을 다해 나로 하여금 저 아이를 죽이지 않도록 해다오. 대의를 위해 나섰지만 이건 창피한 일이로구나.”

파격적인 말이었다.

진건곤이라면 이미 강호에 강자로 떠오른 자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도외시하는 것이다.

화령신이 틀림없다면 그건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진건곤과 청송의 낯빛은 더욱 무거워졌다.

“선수를 양보하지. 삼 초식이면 되겠느냐?”

“고맙습니다.”

진건곤은 화령신에게서 구도자와 같은 냄새를 맡았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보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진건곤을 죽이기 위해 나선 자신을 창피하게 여긴다는 말이 사실처럼 들렸다.

진건곤은 삼초를 헛되이 소모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진건곤의 검에 백색의 빛이 모여들었다.

일렁이는 빛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하게 보여 검기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색의 빛이 갑자기 크게 일어나더니 그 모습이 크게 변해 버렸다. 검속에 진건곤이 들었는지 진건곤을 보고자 하여도 검으로 보일 뿐이었다.

“허어! 신검합일이라. 정녕 놀라운 일이로구나. 하지만 강기를 만들지도 못하면서 펼친 것이라면 편법에 불과할지도……!”

진건곤의 신검합일에 놀라고 있던 청송은 그 말을 듣고 얼른 정신을 차려 물었다.

“그 삼초에는 저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까?”

청송이 화령신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하하하하! 너도 역시 같이 싸울 것이 아니었느냐? 걱정 말고 한손 거들어라!”

“무곤 사조님, 절대 제가 일어설 때까지 삼초를 써서는 안 됩니다. 꼭 두 초식만을 사용하고 나를 기다리기 바랍니다.”

청송이 이를 악물 듯이 이를 꽉 쥐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두 손에는 황금빛이 물들었다. 그리고는 점점 더 진해지더니 그의 몸에는 황금빛이 둘러졌다.

마치 진건곤의 검이 어기성형을 만들어 몸을 둘러싼 검신일체의 경지를 열었듯이 청송도 역시 황금으로 만들어진 형체를 만들어내었다.

쩌저저적! 쩌저저적!

기음이 울리며 조금씩 황금의 조각상이 깨어지고 있었다.

그런 기현상을 보면서 진건곤은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형님의 말대로 두 초식을 사용하겠습니다.’

진건곤의 의지가 굳어지자 진건곤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신이 더욱 밝은 빛을 내며 일렁였다.

화령신은 진건곤의 변화를 눈치 채고는 손바닥을 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애초에 그랬던 것처럼 광채가 나는 붉은 손바닥이 되어 있었다.

치이이익! 치이익! 치익!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닿아 있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소리를 내며 연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마치 달궈진 쇳덩어리처럼!

그의 손바닥에서 나온 열기가 진건곤을 향하자 진건곤의 주위에 있던 물건들이 순식간에 따버려 불길이 일었다.

조금의 시간만 지속된다면 주위의 자갈 정도는 녹아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가공한 만한 열기가 어기성형의 검형을 뚫고 들어오는구나. 어쩌면 형님의 진실한 실력을 보는 것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어.’

지저의 용암에 비견할 만한 가공할 만한 열기였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진건곤은 알고 있었다.

실로 살아서 해를 보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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