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둥둥둥둥!
북이 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북에 맞추어 움직였다.
흑시를 이루고 있던 수많은 용병들이 한꺼번에 움직여 동작을 맞추니 제법 위세가 느껴졌다.
“와와와와!”
짝짝짝짝!
함성과 박수소리가 우뢰와 같이 일어나 천지를 흔들었다.
용병제와 살인막의 특급살수 둘을 죽인 전진자의 싸움이라고 소문이 났으니 강호의 호사가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바로 용병들이 나서서 소문을 내었던 탓에 널리 퍼졌다. 게다가 용병들이 나서서 연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비무를 축제와 같이 만들어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에게 장사를 하는 상술을 보이고 있었다.
“하하하하!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제아무리 소군이라도 전진자를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야.”
“그렇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전진자를 낚아챘다가는 아미파의 이름도 역시 더러워질 테니까요. 사람들의 입은 끝을 모르니까요.”
“하지만 말이야.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지. 그렇게 되면 내가 청하지 않아도 소검후와 검을 맞댈 기회가 생길 테니까 말이야. 내 이름이 십대고수에 오르면 누구도 낭인들을 얕보지 못할 것이야. 하하하하하!”
용병제는 그렇게 제 주제도 모르는 웃음으로 전진자와 소군을 맞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병들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볼거리들이 펼쳐지고 구경거리에 사로잡힌 일반인들까지 모여들어 물경 만여 명에 이르는 장사진을 이루게 되었다.
신시 무렵. 주인공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가 있었다.
“전진자다!”
누군가가 진건곤의 모습을 알아보고 소리를 지르자 진건곤의 앞쪽으로는 물길이 갈라지듯 길이 열렸다.
진건곤의 표정은 담담하기 짝이 없었고 뒤로는 소군과 소영현, 백자가 따랐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는데도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천천히 길을 걷던 진건곤의 발걸음이 장신구를 파는 곳에서 멈추었다.
섬세한 세공으로 만들어진 모란이 피어 있는 가락지였다.
무슨 일에선지 주인들이 비명에 횡사하는지라 저주받은 가락지로 불리고 있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가락지였다.
역시나 진건곤의 눈에는 검은 가시가 길게 뻗어 나와 매캐한 암흑의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아! 그 가락지네요. 나 보고 만지지 말라고 했던…….”
소영현이 그것을 알아보고는 아는 척을 하였다.
“아름답긴 하지만 불길한 물건이죠. 사람 꽤나 잡았을 물건이죠.”
진건곤은 고개를 주인에게 돌려 가격을 물었다.
진건곤이 했던 말을 들었던지라 평소보다 반으로 깎아 불렀다.
“황금 한 냥입니다. 재료비만 받지요.”
모양과 세공의 값어치로만 친다면 황금 다섯 냥은 족히 될 만한 물건이었다. 길 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모을 만큼 눈에 띄는 물건이었으니까.
다만 께름칙할 정도로 칙칙한 기운이 느껴져 왠지 팔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주인이 비명횡사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물건이라 그 이유를 듣기라도 한다면 환불을 해가는 통에 제 값을 다 받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황금 반 냥. 대신 돈을 되돌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소. 그 정도면 충분하겠소. 안 그렇소?”
진건곤은 값을 치르고 그 물건을 주워들었다.
주인은 아쉬운 얼굴을 하였으나 돈을 더 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였다.
진건곤이 검결지를 만들자 손가락에 영롱한 기운이 서렸다. 검기 같은 아지랑이가 아닌 처음 보는 기운이었다.
“어머!”
소영현만이 놀랄 뿐, 소군과 백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기만 했다.
진건곤은 손가락에 맺힌 기운으로 가락지를 훑어내었다.
소영현의 눈에는 단지 손가락이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진건곤의 눈에는 암흑의 기운이 모래성처럼 부서져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쩜 이렇게 아름답게 빛날 수가 있죠? 전혀 다른 물건 같아요.”
“이게 원래의 모습이었겠지요. 원한이 쓰이기 전에는 말이에요.”
“그럼, 이제 더 이상 저주받은 물건이 아닌 게 된다는 건가요?”
“그렇지요. 이제는 원래의 아름다운 물건으로 되돌아 간 것이지요,”
진건곤의 손에서 가락지는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듯이 칙칙했던 기운을 벗어버리고 화사한 아름다움을 뽐내었다.
영롱하게 빛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내어보내는 듯한 느낌. 스스로 빛나는 보석과도 같았다.
소영현이 부끄러운 듯이 주위를 살피더니 살며시 진건곤의 곁으로 다가갔다. 진건곤의 손이 자신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성큼성큼!
하지만 진건곤은 그런 소영현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 소군에게 가락지를 내밀었다.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의 지도에 감사드립니다.
“진 공자는 이런 것보다 좀더 비무에 신경 쓰도록 하세요.”
소군은 차가운 말과는 달리 진건곤이 건네는 가락지를 소매에 담았다.
소군의 소매로 가락지가 사라지는 순간 소영현의 실망한 표정이 진건곤의 뒤통수를 찌르고 있었다.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용병제는 진건곤의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일어서서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와와와와와!”
“용병제! 용병제!”
용병제가 비무대 위로 오르는 것만으로도 함성이 가득하게 울렸다.
용병제의 명성은 이미 중경성을 지나 강호에 널리 퍼진 명성이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견식을 넓혔다고 할 수 있었다.
용병제는 손을 들어 함성을 진정시키더니 진건곤을 보았다.
“하하하하! 어서 오너라. 도망치지 않은 용기를 칭찬해 주고 싶지만 또한 어리석은 짓이니 칭찬할 수도 없구나.”
진건곤이 용병제의 말을 무시하며 답을 하지 않았다. 진건곤은 묘한 눈빛으로 용병제를 바라볼 뿐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였다.
용병제는 자신의 애병 구환도를 들어 소군을 가리키고는 입을 열었다.
“소검후! 전날에는 변변치 않게 대접해 드려서 미안했소이다. 이 애송이를 처리하고 나면 정식으로 대접해 드리겠소. 그래도 되겠소?”
용병제가 소군을 가리켜 이를 드러내자 장내는 후끈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와와와와!”
“최고다! 용병제!”
용병제와 소군의 대결을 바라는 함성이 일어났다.
“가능하다면요.”
소군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와와와와!”
“최고다. 소검후!”
“과연 여중제일인!”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일어나 장내를 뒤흔들었다.
관중들은 이미 전진자보다는 소검후와 용병제의 대결을 원하고 있었다.
전진자의 이름값은 용병제에 비하면 격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장내에 모인 사람들 중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전진자의 승리를 점치지 않고 있었다.
“이걸 가져가세요.”
소영현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내밀었다.
검의 손잡이는 부드러운 물소 가죽으로 쌓여 있었고 길이도 또한 삼척에 가까워 여인이 지닐 검이 아니었다.
검의 손잡이에는 소박하게 음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으나 검갑에는 황제의 직인으로 보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스릉!
소영현이 검을 뽑았다.
번쩍!
눈이 부셨다.
검의 날카로운 예기에 햇살마저 날카롭게 베어지는 듯 찬란한 광채를 보였다.
소박한 문양이지만 특별한 예기를 지닌 명검이 틀림없었다.
“아주 좋은 검이랍니다. 저희 집안의 가보랍니다.”
소영현은 검을 다시 검갑에 꼽더니 진건곤에게 들이밀었다.
그 검은 소 무국공의 선조가 공을 세우고 황제에게 하사받은 명검이었다. 소 무국공은 자신의 집안의 가보로 모셔져 있던 검을 딸의 손에 들려 보냈던 것이었다.
“가져가세요. 전날에도 검이 깨졌던 일이 있었지요. 도움이 될 겁니다.”
소군도 역시 진건곤에게 그 검을 받으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여인이 사내에게 집안의 가보에 해당하는 검을 준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누님의 검도 명검입니까?”
“물론입니다. 전대의 검후님들이 사용하던 검이지요. 소군은 언제나 이 검을 사용한답니다.”
소군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때, 진건곤은 그 검을 덥석 잡아갔다.
검을 잡아가는 순간 진건곤의 손이 소군의 손 위로 겹쳐졌다.
소군은 놀라며 손을 뒤로 뽑으려 했지만 진건곤의 손이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어 손을 뽑을 수가 없었다.
“이 검. 제가 사용하지요. 아시다시피 제검은 흔하디흔한 철검이니 용병제의 구환도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니까 말입니다.”
진건곤은 소군의 손에서 검을 뽑아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파라라라락!
진건곤이 허공을 날아 비무대 위로 올랐다.
소영현은 그런 진건곤과 소군을 번갈아 보더니 그들의 관계를 눈치 챘는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와와와와와!”
진건곤의 표홀하고 가볍기 짝이 없는 경공에 관중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용병제도 역시 그 모습을 보고 놀라며 기뻐하였는데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화산의 암향표? 네놈이 군자검에게서 배운 것이 참으로 많구나. 그래봐야 좀더 단단한 함정에 빠지는 것일 뿐이다. 네놈은 나와 검도 맞대기가 힘들겠구나.’
“무림말학 화산의 진건곤이요.”
진건곤의 말투는 전날에 비해 많이 유해져 있었다.
화산의 이름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행동에도 제약을 주는 것이었다.
“와와와와!”
“애송이 잘 버티라고!”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야유가 일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놀라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전진자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진건곤이 스스로 화산파라고 밝히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이었다.
“하하하하! 네놈이 정녕 화산의 제자란 말이냐?”
“그렇소. 본인은 화산의 제자요.”
“네놈은 네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으렷다?”
“그렇소이다. 나는 내 말에 책임질 수 있소. 하지만 용병제야말로 스스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겠소? 나를 모함한 것 말이외다.”
진건곤의 눈이 용병제를 잡아먹을 듯이 이글거렸다.
‘제법 매서운 눈을 하고 있구나. 하지만 이미 넌 헤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용병제는 음흉하게 웃으며 다른 곳을 향해 외쳤다.
“하하하하! 마땅히 너는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안 그렇소? 무진진인?”
“나는 네놈이 본 파의 제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군자검에게 따로 배운 것이 있을지는 몰라도 감히 화산의 이름을 들먹일 자격이 없지 않느냐?”
진건곤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들려오는 음성을 잊을 리가 없었다. 바로 군자검을 모멸하던 무진의 음성이 아니던가?
“마침 화산의 장로님이 이곳에 와계셨으니 다행이지 않았느냐? 네놈이 그리 대범하게 화산의 이름을 사칭할 줄은 몰랐구나.”
파라라라!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무진의 모습이 보였다.
“네 이놈! 행동이 방정치 못해 화산에 들지 못하고 쫓겨났던 놈이 화산의 문도를 사칭하다니! 당장 이 자리에서 사지단맥(四肢斷脈)을 하고 무공을 폐해주마. 네놈에게 몰래 무공을 전했으니 운현도 역시 그 죄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무진은 검을 뽑아 진건곤을 가리켰다.
그의 몸에서는 한 자루 검처럼 잘 벼려진 기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기운은 곧장 살기로 변해 진건곤을 찢어발길 것처럼 사납게 굴었다.
우우우웅!
과연 화산의 장로!
뿌옇게 안개처럼 일어난 기운이 검에 맺히자 검이 스스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 작은 소리가 또렷하게 장내를 울려 듣지 못하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장내의 관중들은 그런 그가 펼칠 무공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반항을 해도 좋다. 오히려 그게 더 편할 것이야.”
무진의 검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물러서라. 무진!”
웅혼한 떨림을 가진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 목소리에 실린 힘은 무진의 행동을 막기에 충분한 경력이 실려 있었다.
“이런……!”
용병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음공이 아닌 소리로 무진만한 고수의 공세를 끊어내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었다. 상대의 무공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서…설마?”
무진은 내부가 진탕되어 떨리는 손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비무대 바로 옆에 자리했던 노인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초로의 노인의 얼굴이 나오자 무진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은 사… 숙… 님!”
바로 절검 영은이었다.
이미 은거에 들어가 강호무림에 나오지 않는 기인이자 화산의 최강자.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의 후보 중의 한 명인 절검 영은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웅성웅성!
장내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아는 자는 없었지만 그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강호의 전설 중의 하나인 절검의 출현에 웅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벅저벅!
작은 체구의 노인이었건만 그가 비무대에 오르는 모습은 그리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절검이 다가가 멈춘 곳은 바로 진건곤의 옆이었다.
그의 손이 올라가 진건곤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나 절검 영은이 진건곤이 화산의 제자임을 증명하겠소. 이 아이는 바로 내가 최근의 심득을 전한 유일한 제자이요. 최근의 일이다 보니 일로 멀리 떠나 있던 무진이 그 소식을 듣지 못했나 보오. 하지만 틀림없는 일이니 그리 알아주시구려.”
절검 영은은 진건곤과 눈을 맞추더니 노인들 특유의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네가 내 검을 이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나의 제자가 맞다. 그렇지 않느냐?]
“제자가 사부를 뵙습니다.”
진건곤이 포권을 하며 절검에게 예를 취하였다.
또다시 고개를 돌려 무진을 향했다.
“사형을 뵙습니다.”
무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당황하여 절검과 진건곤을 두리번거리며 바라볼 뿐이었다.
“와와와와! 와와와와!”
관중들의 함성이 일었다.
무진의 개입으로 진건곤과 용병제의 비무가 취소될까 싶었는데 전설의 주인공인 절검 영은이 나서서 진건곤이 화산의 제자임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없어질 뻔한 비무는 예정대로 치러질 것이었다.
게다가 진건곤이 화산의 전설이라는 절검 영은의 제자라니, 용병제의 이름에 비해 전진자의 이름이 부족해 보였으나 이제는 알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절검의 제자라면 능히 그 차이를 채우고도 남았다. 오히려 용병제의 이름이 더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와와와와!”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 절검은 무진을 앞세우고 비무대를 내려왔다.
“전진자! 전진자! 전진자!”
관중들은 새롭게 전진자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강호의 새로운 영웅으로 진건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절검 영은의 젊은 제자가 용병제를 쓰러트리고 새 시대의 영웅으로 우뚝 서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자, 이제. 사문의 일은 모두 정리된 것 같소. 너절한 수작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니 도를 들고 덤비시오.”
진건곤은 무진을 이 자리에 데리고 온 용병제의 수작을 꾸짖었다.
“애송이. 네가 숨겨놓은 절검… 아니 화산의 제자라고는 진정 몰랐구나. 하지만 이미 네 실력은 알고 있지. 오늘은 곱게 몸을 빼기가 어려울 것이다.”
용병제가 도를 들어 진건곤을 가리켰다. 도에 진기가 어려 뿌옇게 흐려지려는 순간!
“잠깐!”
“왜 그러나? 애송이!”
“호오! 용병제는 구대문파의 장로를 어찌 대하는지 모르겠소. 아직도 내가 애송이로 보이시오? 예의를 갖추시오.”
배분으로만 보면 현직의 용병제보다 구대문파의 장로가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구대문파는 이미 세외의 신선으로 분류가 되고 있었기에 그들의 배분은 세속의 무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만 한 단체의 수장으로 대우해 말을 놓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니 용병제는 진건곤에게 웃어른을 모시는 대접을 해야만 했다. 바로 그것을 지적한 것이었다.
“흥! 언제부터 구대문파의 배분이 우리 같은 낭인에게도 적용이 됐느냐? 네가 장로와 같은 배분일지라도 내가 존대를 들을 일은 없다.”
용병제는 억지스럽게 주장을 이어 갔으나 이미 관중들 중에 아는 사람들은 그런 용병제를 손가락질 하며 수군거렸다.
“그렇다면 됐소. 웃어른을 몰라보는 아이에게는 매가 최고 아니겠소? 허나 나도 더 이상 그대를 대접할 이유가 없구나. 덤벼라. 주제도 모르는 비열한 늙은이!”
으드득!
용병제의 입에서는 이를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의 몸에서는 살기가 가득 풍겨져 나왔다.
진건곤이 뱉은 말에 용병제의 속이 뒤집어졌다.
허나 용병의 일을 하며 잔뼈가 굵은 용병제로서는 진동이 될 리가 없었다. 겉으로만 그리 보였고 속으로는 더욱 차갑게 식어갔다.
절검의 제자라는 말에 더욱 경각심을 품고 조심하기로 마음먹었다.
“흥! 전날의 기습은 제법이었다. 허나 이제는 통하지 않을 것이야. 목이나 잘 닦고 왔는지 모르겠구나.”
“걱정하지 마라. 너나 조심하는 게 어떨까? 그날 검 끝이 조금만 더 깊었다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진건곤과 용병제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들으니 구원이 있었다는 것이 확연하게 들어났다.
관중들은 그들의 비무는 비무라기보다는 생사결에 가깝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용병제의 성명무기인 구환도가 또다시 뿌옇게 흐려지고 도기가 맺혔다.
또한 용병제의 몸에서 일어나 기세가 진건곤을 압박해 들어갔다.
스릉!
진건곤은 그런 용병제의 기세를 느끼며 검을 뽑아 용병제를 가리켰다.
“크!”
검을 뽑아 용병제를 가리키는 것만으로 용병제가 일으킨 기세를 흩어버렸다.
오히려 거꾸로 압도할 듯이 예리한 기운이 쏘아지는 것을 용병제는 느낄 수 있었다.
‘하긴 도망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준비는 해왔겠지. 하지만 그날 보여준 솜씨로는 어림도 없다. 겨우 석 달 동안의 연무로는 한계가 있지. 오직 하나 처음에 펼쳤던 그 쾌검만 조심하면 나머지는 무시해도 되겠지.’
“와와와와!”
“용병제! 용병제!”
이미 약조된 대로 용병들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관중들도 역시 그에 따라 흥분하고 대단한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다.
“무림의 선배된 도리니 삼 초식을 양보하지.”
진건곤의 쾌검을 의식하여 그것을 경계하며 싸울 작정이었던 용병제로서는 선수로 공격을 날릴 생각이 없었다.
그것을 선배의 도리를 운운하며 생색을 내는 것이었다.
“흥!”
진건곤은 냉소를 날리며 용병제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진건곤이 사용한 신법은 화산의 절기인 암향표요, 그의 검은 화련직검이라는 화산의 쾌검이었다.
태허광진기를 기반으로 한 청광검은 점창의 속가제자가 스스로 발전시킨 무공이었다.
점창에서 시작된 검이었지만 점창의 정수를 그대로 담고 있지는 못했다. 속가의 제자가 한계를 깨기 위해 선택했던 그 방법은 스스로 몸을 해쳐가며 검속을 올리는 것. 청광검은 구대문파의 정수가 담긴 검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련직검은 달랐다.
화산의 검법 중에서도 상승의 묘리로 쾌검을 펼치는 검법이었다. 진기를 터트리지 않으면서도 연달아 청광검과 같은 쾌검을 펼쳐내는 검법이었다.
취리릿!
텅! 텅! 텅!
묵중한 굉음이 울리고 연방 검광이 번쩍였다.
엄청난 경력. 얇은 검과 도가 부딪히는 데 소리는 거대한 범종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진건곤은 빠르게 움직이며 용병제를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갔고 용병제는 연방 뒤로 움직이며 진건곤의 검을 막아가기에 정신이 없었다.
‘빌어먹을! 전엔 한 번밖에 사용치 못하던 쾌검이었는데. 언제 새로운 쾌검을 익혔단 말인가?’
용병제도 역시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고수답게 진건곤의 쾌검이 어떤 종류인지 알아보았었다.
터더더더덩!
계속해서 울리는 굉음이었지만 너무나 빨라 일반인들의 눈에는 도저히 진건곤의 검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용병제가 들고 있는 도가 살짝 살짝 움직이며 용병제의 몸을 감싸며 움직이는 것과 불똥이 튀는 것을 보며 진건곤이 공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선수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후회를 해도 이미 늦었다.
진건곤의 쾌검은 조금씩 아래를 노리며 용병제의 도를 조금씩 몰아갔다.
그 결과 용병제의 도는 머리에서 멀리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진건곤의 검이 그곳을 노린다면 그대로 용병제의 목이 떨어지고 말 것이었다.
스스로 방어에 치중하며 그것을 깨닫자마자 진건곤의 검이 다른 궤도로 쳐오고 있었다. 바로 용병제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안 돼……!’
용병제가 마음속으로 절규하는 그 순간!
피잉!
진건곤의 검이 이제껏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빈틈을 찔러 갔다. 용병제는 자신의 눈앞에 검이 거대하게 보이는 것을 깨닫고 그 순간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다.
정적!
물경 만 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나 그 순간만큼은 정적이 흘렀다.
용병제의 목이 떨어질 것을 생각하며 주위의 아이들의 눈을 가리는 무인들도 있었다.
용병제는 뺨에 화끈한 감촉을 느끼고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눈을 떴다.
이미 진건곤은 뒤로 물러선 지 오래였는지 검을 발 아래로 내리고 서 있었다.
“나이가 어려 삼 초식을 받았으니 고수로서 삼 초식을 돌려주겠소이다.”
진건곤의 말뜻을 모르는 무인은 없었다.
바로 능력도 부족한 주제에 삼 초식을 운운했으니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풋! 하하하하!”
“호호호호!”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허허허!”
관중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자식! 이 기회를 놓친 것을 무덤 속에서 후회하게 해주마. 저승에 가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대중들의 속에서 창피를 산 용병제는 대추처럼 붉게 물든 얼굴로 고함과도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와 함께 뺨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용병제의 성명무기인 구환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전에는 도에 뿌연 도기가 서린 것뿐이었으나 지금은 전과 다르게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력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용병제만한 무인이 내력을 조절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명했다.
바로 모든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
사소하게 퍼져나가는 내력을 조절할 여유가 없다는 것.
바야흐로 모든 것을 꺼내어 싸우는 생사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쐐애애액!
구환도에 달린 아홉 개의 고리가 거칠게 몸을 흔들어대며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생겨난 다섯 개의 요동치는 도영이 진건곤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그 모양이 용의 모양과 닮아 있었다.
바로 용병제의 절초인 오룡참이었다.
진건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장 자신 있는 초식인 매화분분의 초식을 떠올리며 손을 떨쳤다.
진건곤의 주위로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떠올라 다섯 개의 도영을 향해 쏘아졌다.
아지랑이들은 날아가며 그 모양을 갖추었는데 완벽한 매화꽃의 형상이 되었다.
“오룡참!”
“매화분분!”
수많은 관중 중에 누군가가 그 초식들을 알아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오룡참은 용병제의 절기 중에 절기로 손꼽히고 있었고 매화분분은 화산의 신화를 보증하는 전설과도 같은 초식이었다.
두 사람은 절초라 부를 수 있는 초식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고 있는 것이 자명했다.
콰드드드등!
병기가 부딪힌 부분에서 시작된 경력에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오고 비무대의 바닥이 잘게 부서져 자갈과 자잘한 돌조각이 튀어 올랐다.
그것들은 연달아 이어지는 검과 도의 충돌에서 생겨난 충격에 실려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무인이 아닌 자들은 그 장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기파가 가라앉고 나타난 장면은 가히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도와 검은 그대로 중간에 머물러 있었는데 한 치도 치우치지 않고 있었다.
백중세! 놀랍게도 둘 사이의 무공은 백중세를 보이고 있었다.
“와와와와와! 최고다!”
“용병제! 전진자! 최고다.”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관중들은 백중세의 두 무인의 비무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용병제의 얼굴은 더욱더 붉어져 홍시처럼 되고 말았다.
‘이 한 수에 모든 것을 걸었건만. 이 자식은 괴물이란 말인가? 겨우 석 달 만에 이런 무공이라니. 더군다나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것 같으니……!’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무리해서 십 성을 넘는 힘을 썼지만 자신 나이의 반밖에 되지 않는 후배와 동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힘을 아끼고 있는 진건곤의 승리가 자명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하아!”
기합성과 함께 거칠게 진건곤을 밀어내더니 또다시 오룡참을 펼쳐내었다.
꽈드드드등!
꽈드드드등!
연거푸 오룡참을 펼쳐내었으나 그때마다 진건곤도 역시 매화분분의 초식을 펼쳐내어 막고 있었다.
‘호오, 상천의 힘을 깨우쳐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졌건만 팔 성의 매화분분으로도 승기를 잡지 못하다니. 네놈도 그간 놀고만 있지는 않았구나. 용병제.’
하지만 이미 승기는 결정된 상황이었다.
진건곤은 섣불리 십 성으로 공력을 올리지는 않았다.
소군의 평가대로 팔 성만으로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건곤은 거듭 신중하게 매화분분을 펼치며 오룡참의 광폭한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이런! 괜히 선수를 내주었나 봐요, 언니.”
소영현이 손에 땀을 쥐고 흘려낸 한마디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진 공자가 곤란한 일은 없을 것이야.”
하지만 소영현은 소군이 두 손을 꼭 쥐고 긴장을 풀지 않는 것을 놓치지 않았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소군이 두 손을 꼭 쥔 이유는 소영현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소군은 진건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다만 손을 포개 쥐고서 진건곤의 손길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콰드드등!
콰드드등!
굉음이 울리고 오룡이 거칠게 울었다.
그때마다 진건곤의 검에서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매화송이들이 날았다.
용병제의 머리는 충돌에서 오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풀어헤쳐져 있었다.
몸을 보호할 기세도 피워내지 못할 만큼 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뜻!
군데군데 손발의 주변에 붉은 피가 배어져 나와 있었다.
봉두난발. 온몸에 가득한 자상!
누가 보아도 진건곤의 승리가 확실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거듭 일곱 번이나 오룡참의 흉맹함이 돋보였으나 그때마다 용병제가 얻은 것은 매화분분의 기세를 모두 막지 못하고 상처만 늘어나고 있었다.
‘이 어린놈이 지닌 공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 같으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빌어먹을!’
용병제는 병기를 맞대는 사이 진건곤이 펼치는 무공이 위력은 자신과 같지만 자신처럼 몸 안 깊숙이에서 내력을 끌어올리는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진건곤이 매우 부드럽게 매화분분의 검초를 펼치는 것을 보며 자신의 공력이 먼저 소진될 것을 두려워했다.
진건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오연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전에는 하룻강아지가 저러려니 싶었는데 지금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여겨졌다.
또한 주위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과는 다르게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이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필패. 남에게 보이지 말라고 했지만 이 어린 녀석에게 패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압!”
또다시 기합성을 지르며 진건곤을 멀찍이 떼어 놓아야 했다. 바로 마지막의 절초를 펼치기 위해서!
“어림도 없는 짓!”
진건곤은 아까와는 달리 구환도의 궤적을 살짝 비켜났다가 다시 앞으로 나오며 다시 화련직검의 쾌검을 쳐냈다.
피윳!
화련직검의 쾌검이 어른거리자 허공에 혈화가 피었다.
“크으!”
용병제는 이를 악물고 구환도를 더욱 굳게 잡아가며 진건곤의 쾌검을 막아가야 했다.
‘믿을 수 없어. 어떻게 겨우 석 달 만에……!’
용병제는 오룡참을 펼쳐 힘의 대결을 하던 것을 바꾸려 했던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용병제의 왼쪽 허벅지가 붉게 물들었다.
터더더더덩!
진건곤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검을 놀리자 순식간에 둘 사이에는 회오리 같은 바람이 생겨나 용병제를 감싸기 시작했다.
간혹 검광이 반짝이는 것을 보아 그 회오리의 정체는 진건곤의 검이 틀림없었다.
간간이 병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빠졌다 싶었을 때에는 영락없이 용병제의 몸에 붉게 물든 곳이 생겨났다.
누가 보아도 승기를 잡은 진건곤이었다.
한동안 진건곤의 검을 막기 급급하던 용병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네놈은 내 진정한 무공을 받을 용기가 있느냐?”
진건곤은 여유 있게 검을 휘두르며 입을 열었다.
“흥! 이미 한 번 양보를 했는데, 또다시 한 수 양보해 달라고 부탁한단 말이더냐?”
말을 하면서도 진건곤의 검은 그대로 용병제의 요혈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 이……!”
용병제는 치욕을 참지 못하고 제 스스로 분에 겨워 이를 갈았지만 진건곤의 쾌검을 막는 게 고작이었다.
“허나, 기회를 주지. 내가 네 도를 꺾는다면 누가 나를 모함하라고 시켰는지 말해라. 아울러 십 년 전의 행각에 대해서도 들어야겠다. 받아들이겠는가?”
“흥! 조건을 받아들이지!”
진건곤이 내세운 조건을 용병제가 수락하자마자 둘 사이에 뿌옇게 흐리던 회오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진건곤이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선 탓이었다.
“지금 이 자리의 강호동도가 들은 말이니 발뺌을 하려 하면 안 될 것이다.”
“남아일언중천금!”
곁으로는 호쾌한 척하였지만 용병제의 속셈은 달랐다.
‘빌어먹을 자식! 네놈의 무공으로는 이 광혈마도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네놈의 요구 따윈 들어줄 일이 없다는 뜻이다. 네놈이 후회할 순간도 없도록 네놈의 아둔한 머리를 터트려주마.’
용병제는 자신의 도를 들어 오른쪽 어깨 위로 올렸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진건곤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그리고 비무를 지켜보던 자들 중에서도 눈을 부릅뜬 자들이 있었다.
바로 소군과 비무대 가까이에 앉은 초로의 노인이었다.
초로의 노인은 전대의 용병제로 낭인들의 사이에는 태상장로와 같은 신분을 지니고 있는 자였다.
“설마……?”
“설마……?”
용병제의 두 눈은 순식간에 붉게 변해버리고 광기로 번들거렸다.
뻗어오는 검에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무공이 약한 자였다면 그 살기 자체만으로도 반항하기를 포기할 정도.
독룡살검! 아니, 도를 썼으니 독룡살도!
용병제가 광혈마도라고 생각하는 도는 분명히 진건곤이 썼던 노룡살검의 초식과 똑같았다.
진건곤은 변함없이 팔 성의 진력으로 화련직검으로 구환도를 때렸다.
텅!
강해졌다.
확실히 전과는 달랐다.
진건곤은 같은 힘을 쓰고도 구환도를 막아내지 못했다.
구환도는 무시무시한 경력의 여세를 타고 그대로 진건곤의 가슴 한복판을 찔러 들어갔다.
용병제의 눈이 더욱 붉게 반짝였다.
그 순간 영롱한 빛이 솟아나 섬광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 빛이 멈춘 곳에 진건곤이 서 있었다.
하지만 멈춰 선 진건곤의 어깨는 이미 붉은 선혈로 물들어 있었다.
“크… 크… 크… 맛있구나.”
용병제는 구환도의 도신에 묻어 있는 피를 날름 핥았다.
“언니 어떻게 해요? 진 공자가…….”
소영현이 호들갑을 떨었다.
“걱정 마라. 지금의 진 공자라면 질 리가 없으니까.”
“언니……!”
소영현은 자신의 손을 잡은 소군의 손에 전혀 떨림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소군의 말이 진심인 것을 깨닫고는 비로소 안심하고 비무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진건곤의 검에는 뿌옇게 흐린 검기 말고도 영롱한 빛깔이 맺혀 있었다.
바로 저주 받은 가락지를 정화시켰던 바로 그 빛깔이었다.
“흠흠! 걱정 말고 보세요. 저것이 바로 모산파만의 영… 아니, 비법이지요. 이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백자도 옆에서 한 수 거들었다.
“네… 놈… 크… 크… 갈… 기…갈… 기… 찢… 어… 주… 마.”
용병제의 두 눈에는 붉은 광망이 솟구쳤다.
진건곤이 흘린 피를 보더니 한층 더 붉어진 듯해 보였다.
하지만 진건곤은 오연하게 서서 오른손으로 검을 들어 용병제를 가리켰다.
“어떻게 마검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용해서는 안 될 무공이다. 무공을 폐해 주마.”
“크… 하… 하… 핫! 네… 놈… 이… 야… 말… 로!”
용병제의 눈에는 오직 파괴의 욕망이 번들거렸다.
구환도에 서렸던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진해지는가 싶더니 붉은색이 어렸다.
“오!”
“와와와와와!”
“과연 용병제구나!”
그 모습을 보던 관중들의 일부가 탄성과 함성을 질렀다.
관중들은 용병제의 상태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이 알아본 것은 오직 붉은색의 도기뿐, 마도에 취해 이지(理智)를 상실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용병제의 도기는 무형의 기운에서 색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무형이 유형으로 바뀌었으니 이는 곳 강기로 가는 길목이었다.
아직은 강기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분명히 전설상의 경지인 강기공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용병제의 무공이었다.
관중들은 오로지 용병제가 보이는 무공에만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라!”
진건곤이 오연하게 외치자 용병제의 도가 휘돌기 시작했다.
붉은색 운무가 피어나듯이 용병제의 몸을 가리더니 귀청이 찢어질 듯이 날카로운 호곡성이 쏟아져 나왔다.
끼이이이익!
붉은색의 운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오싹해지는 신기함을 지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진건곤의 검도 영롱한 빛이 진해졌다.
스스로 살아 있는 듯이 일렁이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종내에는 은은한 빛이 되었으나 스스로 빛을 토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번쩍! 꽈드드등!
붉은빛과 백색의 빛이 어울렸다.
붉은빛은 기둥처럼 솟아나며 엄청난 힘으로 쏘아졌지만 흰색의 빛은 넓게 원을 그렸다.
붉은빛과 희색의 빛이 빛의 잔영을 남기고 움직이니 마치 나무를 구렁이가 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초수가 진행될수록 두 개의 빛이 섞이더니 결국 서로가 물고 물리며 하나가 되었다.
붉은 기둥이 격렬하게 솟구치기를 몇 번.
하지만 흰색의 빛을 떨치지 못하고 결국에는 흰색의 빛이 돌돌 말려 꼬인 형상이 되더니 한차례 흰색의 빛이 폭발이라도 하듯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붉은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탱그랑!
용병제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할 구환도는 비무대 위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용병제는 정신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관중들은 입이 벌어진 채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다면 그들의 검이 요란하게 어울리더니 백색의 빛이 아주 빠르게 용병제의 단전을 스치듯이 지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천망대진으로 비무대를 포위하고 흑백이로와 오(五) 장로는 합공으로 전진자를 막아. 삼 신위는 용병제를 모셔라!”
광혈마도가 나타났을 때 눈을 부릅떴던 노인이 벌떡 일어나며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도 역시 용병제의 단전이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고수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관중 속에 섞여 있던 용병들이 일어나 비무대를 겹겹이 감쌌는데 그 수효가 대강 보아도 기백이 넘었다.
또한 전에 보았던 십방살의 무인들도 역시 천망대진에 섞여 있었다.
비무대 위로 신속하게 떨어져 내린 흑백이로와 오 장로는 어느새 검과 도, 편을 쳐내며 진건곤을 공격해 가고 있었다.
진건곤에게 일곱 명이 일시에 공격해 들어왔다.
“흥!”
진건곤의 검이 또다시 번쩍이고 일곱 개의 매화가 날았다.
따다당! 따당!
진건곤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일 검을 펼치자 칠 인은 견디지 못하고 다섯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병기를 놓친 자가 둘이요.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토하는 자도 있었다.
“어찌 이런 일이……?”
이미 진건곤을 상대해 보았던 흑백이로의 두 눈은 찢어질 듯이 부릅떠져 있었다.
이미 용병제를 꺾어 달라졌을 무위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진건곤의 무위는 자신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실력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우우!”
“비겁하다. 비겁해!”
사태가 돌아가는 꼴을 본 관중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약속된 비무의 끝을 다수의 힘으로 막아가는 낭인들을 향한 야유였다.
“비켜! 용병제와 나와의 약속을 모두가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나를 방해한다면 용서치 않겠어.”
진건곤은 검을 들어 놀라고 있는 흑백이로와 오 장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슨 소리! 용병제님의 신변을 넘겨준다는 소리는 없었지. 정신을 차리시면 너를 부를 것이다. 물러나라!”
흑백이로가 답했다.
“웃기는 소리! 네놈들은 이미 나를 모함했던 자들이다. 어찌 네놈들을 믿겠느냐? 답을 들은 뒤에 받아가도록!”
“흥! 네놈이 홀로 이곳에 모인 모든 낭인들을 떨쳐내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안 될 것도 없지.”
화산의 무공을 사용하는 진건곤은 전날의 진건곤이 아니었다. 다수의 힘이라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진건곤이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 순간.
“멈추세요.”
파라라락!
그때 마침, 소군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진건곤의 옆에 나란히 섰다.
“나무아미타불! 힘으로 하실 것이라면 저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소군의 등장에 낭인들의 눈에는 패배의 눈빛이 가득했다.
소군의 무위를 생각한다면 진건곤의 행사를 막을 길이 없어 보였다.
“허허허! 피를 볼일은 없겠지. 무량수불!”
절검 영은이 천천히 비무대 위로 걸어 올라가자 모든 것은 끝이 나고 말았다.
소군과 절검 영은, 이 둘이라면 수천의 낭인들이라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둘은 곧 화산과 아미라는 두 문파를 상징했다. 그리고 구파일방의 두 문파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들의 뜻이 곧 현실이었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태상제, 그가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절검 어른을 뵙습니다.”
태상제는 전대의 인물이라고는 하나 그 명성이 절검에게 미치지는 못했고 무공으로는 더 더욱이 그랬다.
게다가 오늘은 아쉬운 소리를 하려고 하니 스스로 몸을 낮추지 않을 수 없었다.
“허허허! 그대는 싸움 없이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절검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다행히 공평한 제안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러지. 들어 봄세.”
태상제는 절검에게 포권하여 감사를 표하고는 소검후를 향해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전날에는 소검후께서 전진자를 구해가셨다 들었소.”
“그랬지요.”
소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오늘 그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도 되겠지요? 그게 순리 같소만…….”
네가 용병제를 물리치고 전진자를 구해갔으니 나도 역시 그렇게 하겠다. 그게 순리가 아니겠느냐?
소군은 잠시간 망설이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비무대를 감싸고 있던 낭인들은 크게 안도하는 눈빛이 되었다.
태상제가 걸음을 옮겨 용병제에게 가는데 날카로운 음성이 있었다.
“잠깐!”
세인들의 시선이 모인 곳은 바로 진건곤이었다.
“공평하지 않소. 나는 그날 모함을 당해 용병제와 싸우게 되었던 것이오. 그런 나를 구해주신 것을 약속을 하고 벌인 비무에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소. 게다가 허락을 받아야 할 곳은 소검후님이 아니라 바로 나요. 그날 소검후께서도 용병제에게 의중을 물었듯이 말이오.”
태상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눈에서 ‘네놈이 감히?’ 라는 것을 읽지 못할 자가 없었다.
“흥! 네놈이 용병제의 단전을 상하게 한 것을 알고 있다. 네놈이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야.”
태상제의 살기가 진건곤에게 쏘아졌다.
“하하하하!”
진건곤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돌연한 웃음에 사람들은 의아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보았소? 그렇다면 잘못 본 것이니 다시 보시구려.”
태상제가 고갯짓을 하자 수신위들이 나서서 용병제의 상태를 보았다.
“단전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태상제님.”
“그럴 리가? 내 눈으로 똑바로 보았거늘.”
태상제는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던가?
태상제가 주위를 보며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 의혹이 어린 것을 보아 주변의 모두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지 않는 자는 오직 소검후뿐이었다.
물론 백자도 역시 놀라지 않고 있었지만 백자는 비무대 위에 오르지 못하였으니 그의 시선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진건곤이 검을 들어 태상제를 향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가 약속을 지킨다면 온전한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요.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 될 것이외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용병제의 단전을 깨겠다는 말이었다. 그건 무인에게는 죽이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능력이 있다면 내게 허락을 받아 가십시오. 그날 소검후께서 그러하셨듯이 말입니다.”
진건곤의 몸에서 기세가 쏟아져 나왔다.
싸움이 있을 것이니 모두 물러서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태상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낭인들의 인물들이 모두 내려갔다. 소검후와 절검도 역시 내려가고 말았다.
용병제의 몸이 저절로 두둥실 떠올라 움직였는데 그 위치가 절묘하게도 낭인들과 절검 측의 가운데였다.
아무도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허공섭물이구나!”
“와와와와!”
“이야야야야야!”
관중들은 또다시 함성을 질렀다. 전설로나 전해지는 일이 벌어졌으니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절검이나 소검후 둘 중의 하나가 만들어낸 기사였을 것이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모두의 관심은 비무대 위로 옮겨졌다.
진건곤은 이미 멸문하고 사라진 전진의 무공을 쓰며 강호에 나타나 살인막의 신화에 제동을 걸고 결국에는 살인막의 삼대고수 중의 두 고수를 꺾었다.
기호지세로 용병제까지 넘보았으나 패퇴하여 석 달의 유예를 두었던 전진자.
오늘 그가 능히 백대고수 안에 드는 고수인 낭인들의 제왕 용병제를 꺾었고 밝혀지는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화산의 전설로만 남은 지 오래인 절검 영은의 제자.
이제 그의 놀라운 승리가 다른 곳으로 전해지기도 전에 이어지는 또 다른 비무!
전대고수라 부를 수 있는 태상제와의 비무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었다.
모두가 내려가고 비무대 위에는 진건곤과 태상제만 남았다.
“세상은 내가 물러난 것으로 알고 있지. 하지만 아니라네. 난 더 깊은 무공의 경지를 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맡겼던 것뿐이라네. 다행히 십 년간의 적공(積功)에 의미가 없지는 않았지. 자네를 이기면 다시 용병제의 자리에 앉을 것이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요.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진건곤은 관심도 없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을 뿐이었다.
“아니지. 내가 이기면 자네는 또다시 저 아이와 싸워야 할 것이야. 석 달일세. 석 달 후에 오늘 걸었던 조건을 걸고 또다시 용병제와 비무를 하게 해주겠네. 자네는 궁금한 게 있더라도 석 달 후까지 참아야 할 것이야. 무사히 오늘을 넘긴다면 말일세.”
태상제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의미 있는 웃음을 남겼다.
진건곤이 오늘을 무사히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화악! 파라라라락!
태상제의 몸 주위로 바람이 일어나 그의 의복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 주위로 둥근 구와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 중심에 자리한 태상제는 저절로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게 되었다.
진건곤은 놀라서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태상제의 몸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가일구층황금공?”
“허! 자네가 이 무공의 이름을 알다니 정말 놀랄 일이군. 자네가 그랬듯이 손속에 사정은 두어주지!”
구의 중심에 위치해 허공에 떠올랐던 태상제가 진건곤을 내려다보며 오연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진건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가일구층황금공. 태상제의 그 막대한 내력 앞에서 여유가 있다니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니던가?
“흥! 소군 누이가 전날 왜 웃음을 지었는지 알겠소. 어서 오시오.”
소군이 전날 군자검 운현의 무위에 웃음을 지었던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구룡참을 받아보게!”
태상제의 도가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아홉 개의 황금용 형상이 일어나더니 세상을 찢어발길 것처럼 난폭하게 진건곤을 향해 들어갔다.
진건곤의 검이 일렁이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또다시 진건곤의 일렁이는 빛의 기둥이 동심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진건곤의 검은 어느새 아홉 마리의 용을 감기 시작하였다.
마치 아홉 마리 용이 그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모습이었다.
흰색으로 일렁이는 빛 안에 빨려 들어간 용들은 아우성을 치며 자신들이 가던 길을 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일렁이는 빛의 기둥이 그들의 머리를 누르며 그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빛의 기둥에 말아 갔다.
겨우 다섯을 셀 정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아홉 마리의 용은 그 몸을 모두 잃고 머리만 남아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이여엽!”
태상제의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본디 고수들의 대결에서 고함을 지르는 것은 금기와 같았다. 면면부절의 호흡이 흐트러져 다음 수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고함을 지르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십 성의 힘을 넘어 십이 성의 힘을 뽑아낼 때였는데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이런 힘은 오직 한순간에만 사용할 수 있고 유지될 수가 없으니 절체절명의 위기에나 쓰는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고함과 함께 그의 몸에 서려 있던 황금빛은 더욱 진하게 변했고 아홉 마리의 용도 역시 더욱 진한 황금색으로 우뚝 서며 다시 일어섰다.
“허어!”
순간, 진건곤도 역시 고함을 지르며 검을 뽑았다가 다시 찔러 들어갔다.
둥글게 돌아가던 빛의 기둥이 사라지고 돌연 고슴도치의 가시 같은 것이 순식간에 돋아났다.
그 수효가 정확히 아홉이었고 그 끝에는 용들의 아가리를 뚫고 들어가 머리를 박살내고 있었다.
“커헉!”
터더덕! 터덕!
태상제가 각혈을 하자 그의 몸에 둘러져 있던 황금공은 사라지고 비무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태상제는 자신의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두 걸음이나 움직인 뒤에 비무대에 주저앉고 말았다.
진건곤의 빛의 기둥이 아홉 개의 황금용을 박살낸 순간 태상제는 깊은 내상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낭인들은 모두가 경악하고 말았다.
그들이 생각했던 최고의 고수였던 용병제가 꺾였고 또 그 뒤로 나선 태상제마저 꺾였다.
그런 상대가 절검 영은의 제자라고는 하나 겨우 약관을 벗어난 젊은 자가 아니던가? 낭인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와와와와!”
“최고다. 전진자!”
“역시 화산이야!”
“차기 천하제일이로구나!”
관중들은 젊은 무인의 상승세가 꺾이지 않은 것을 안도했고 또 그의 승리를 축하했다.
젊은 영웅의 출현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미 전진자가 절검 영은의 한을 풀어주며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진건곤도 역시 전대의 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고수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태상제와의 비무에서 그렇게 쉽게 승리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진건곤은 이제 소검후와 같은 선에 오를 고수로 평가받기 시작하였다. 바로 장래의 천하제일을 바라볼 신진 고수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