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진건곤이 왔다고 공희국에게 전하게나.”
진건곤은 심기가 불편한지 입이 거칠었다.
공희국의 죄를 완전히 용서할 수는 없었지만 진범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였을 뿐이었다.
문지기들은 젊은 자가 반말로 문국공을 부르자 불쾌함을 표시했지만 덤벼들지는 못했다.
감당할 수 없이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리 오시오! 좋은 생각을 하시었기를 바라겠소.”
과연 총관이 나와 진건곤을 영접하는 것을 보고 문지기들은 태도를 공손히 하였다.
“이것이 내가 쓴 소개장이요.”
진건곤이 종이를 펼쳐 보자 그곳에는 추밀사 고거복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추밀사라고 하면 황제의 명을 받아 사건을 파악하고 보고하는 직함이었다. 과연 공희국의 말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오. 당신 때문에 고인은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우리 남매는 세상을 떠돌며 구걸을 했소. 어떻게 갚을 셈이요?”
“무엇을 원하나?”
“선친의 명예를 복권시켜 주시오. 당신의 수완이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소.”
“알았네. 또 있나?”
공희국은 선선하게 답하였다.
“나는 시간을 보아 야밤을 틈타 당신을 베려고 했소. 나 같은 원한을 가진 자가 또 있다면 그가 성공하길 빌겠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죄를 빌며 사시오.”
“발칙한!”
공희국의 곁에 있던 자들이 살기를 드러냈지만 공희국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미안하오. 하지만 나도 살아야 했소. 그것뿐이었소.”
“흥! 다른 사람도 살아야 했소. 당장 약속을 시행하시오. 지키지 않으면 야밤을 틈타 당신을 처리할 것이오.”
“어디서 감히!”
츄리릿!
검광이 번쩍이고 나자 호위를 하던 자들의 수염이 떨어져 나갔고 공희국의 목 주위의 옷깃이 깡그리 베어져 나갔다.
너무나 빠른 검격에 호위를 보던 자들은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였다.
“흥!”
진건곤은 소리를 높여 코웃음을 쳐 주고는 온 길로 되돌아 나섰다.
공희국의 장원을 천천히 당당하게 걸음을 걸어 나왔다.
총관이 급하게 따라 나오더니 진건곤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압수했던 진 교원의 재산 만큼이요. 만금당의 계산으로 이자도 넣었소.”
진건곤은 아버지의 재산이라는 말에 내치지 못하고 받아 들었다.
“약속을 지키라고 전하시오.”
“다시 보는 일이 없을 것이오.”
총관의 말은 솔직한 마음이었다.
‘허허허! 귀제갈의 손에서 벗어나기란 어렵지.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하하하! 참으로 바쁜 사람이 되었구나. 사부!”
“형님!”
심란한 마음으로 객잔으로 돌아온 진건곤은 참으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바로 광우 고국양이었다.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결국 허탕만 치고 여기까지 왔다. 사부가 유명하니 찾기는 쉽더구먼. 하오문에 물으니 척척 찾아주더군.”
광우는 진건곤을 덥석 안으며 등을 몇 번이나 두드렸다.
“하하하하! 그럴 줄 알았어. 사부라면 강호에도 적수가 드물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객쩍은 소리는 그만 하지요. 오늘은 술친구가 필요하니 술이나 마십시다.”
진건곤의 말에 광우는 놀란 표정이 되어버렸다.
“사부가 술을? 무슨 일이 있나?”
“일단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지요.”
진건곤은 술을 마시며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공희국과 단판을 지은 것까지 이야기하자 광우가 분통을 터트렸다.
“빌어먹을 놈! 저 필요할 때는 다 해 처먹고 이제와 사부가 강호의 이름이 높아지니 슬쩍 미안한 척한다는 거군. 그깟 소개장 던져버리고 나랑 같이 가지. 처갓집 힘이라도 빌어서 박살을 내줄 테니까!”
“하하하! 세상이 힘만으로는 안 되는 건가 봅니다. 진범이라니 그런 건 생각도 못해 봤습니다. 그 여우같은 것이 그런 것을 내밀고 뒤로 숨어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나랑 같이 감세. 내가 처리해 줄게! 왜 진즉에 말을 안 했나? 내가 그리도 미덥지가 않았나?”
광우는 자신의 일인 양 흥분하며 앞장서라고 성화를 했다.
하지만 진건곤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지며 술잔을 들이켤 뿐이었다.
“추밀사를 찾아간다고 했지? 나도 같이 가주지!”
“형님은 가실 곳이 없으십니까?”
“어허! 사부라고는 이렇게 정 없는 사람이라니까. 나 광우 사부 하나를 보려고 강호에 뛰어들었네. 떼어낼 생각하지 말게!”
“형수님은 잘 달래 놓고 나오셨습니까?”
“말도 말게. 아이 하나 낳아 놓고 또 하나를 준비해 놓고 왔으니 당분간은 조용할 거야.”
“하하하하! 축하드립니다. 사부님께도 못 들었던 이야기인걸요.”
“됐네. 사부님의 사부야, 무심하시기로 유명하시지. 주하는 아이 키우는 게 심심해지면 다시 찾겠지. 그동안은 나도 자유라네.”
둘은 같이 추밀사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두 달이 족히 걸릴 곳이었으니 길동무가 있는 것이 좋았다. 북경에 가면서 황족에 끈이라도 닿아 있는 광우를 만난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붙는 일이었다.
진건곤은 북경을 향해 가는 길을 무척이나 서둘렀다.
광우는 오랜만에 만나 사부에게 자신의 무공도 뽐내고 싶었고 강호에 이름이 높아진 진건곤의 지도를 받고자 하였으나 그럴 말도 못 붙일 정도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을 달리고 있던 때였다.
관도 주위로 넓은 평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진건곤이 갑자기 말을 박차고 허공으로 치달아 올랐다.
그러더니 경공을 펼쳐 빠르게 달려가는 것이었다.
“어디를 가는 건가?”
광우가 소리쳐 물어보았지만 진건곤이 답은 없었다.
“사부라면 이유가 있겠지!”
광우는 진건곤이 남기고 간 말을 잡아매고는 그 자리에서 진건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 각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허어! 이럴 리가 없는데.”
광우는 한 시진가량을 더 기다려 보더니 말을 타고서 진건곤이 달려간 방향으로 나아갔다.
말을 달리기는 한참, 자신이 있던 자리는 보이지도 않게 되어서 말을 멈추었는데 진건곤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하아! 곤란하구나. 이대로 나아가면 돌아오는 사부를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인데……! 까짓것 또 찾으면 되지!”
광우는 그대로 계속 달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갔을 때, 눈앞에 커다란 바위산이 보였는데 그 까마득한 위로 인영이 보였다.
검은 머리가 유난히 돋보이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뻔했다.
“허어! 이런 곳까지 와서 운기를 하고 있다니 무슨 일이 있나?”
광우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말을 매어 놓고는 산 위를 향해 올라갔다.
막상 올라와 보니 광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건곤의 가부좌한 신형이 허공으로 족히 열 치 정도는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헛……!”
깜짝 놀라 탄성을 내뱉었으나 광우도 역시 무인. 지금에 소리를 내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런! 운기행공 중에 허공으로 떠오르다니! 옛 선인들이 그랬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계속 보아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
광우는 허리를 굽혀 진건곤의 다리 아래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거듭하여 확인하고 확인하였다.
‘흠! 여기가 기운이 성한 자리인가? 사부가 길을 가다 말고 멈춰 서 운기를 할 정도로? 그럼 나도 해볼까?’
광우는 어떤 일이 생길지 걱정이 되었는지 진건곤의 주위로 간단한 진을 치고는 운기행공을 시작하려고 하였다.
툭!
진건곤은 눈을 감은 채로 간단히 손가락을 튕겼는데 광우가 세운 진주가 쓰러지고 말았다.
광우는 자신이 세운 진주가 부실해 넘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금 진주를 세웠다.
툭!
또다시 진건곤이 손가락을 튕기자 진주가 쓰러지고 말았다.
진건곤이 손가락을 튕긴 모습을 본 광우는 진을 세우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진을 세우지 말라는 걸까?’
진건곤을 다시 보아도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몰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역시 허공에 떠 있기는 마찬가지. 감히 말을 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광우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진건곤이 직접 손가락을 튕기는 것을 보아선지, 다시 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애라! 모르겠다.’
진건곤은 몰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눈을 뜨면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몸 안을 가득 메운 기운에 황홀감을 느끼고 있었다.
코를 통해 들어온 기운이 아니었다.
회음을 통해 들어와 백회로 빠져나가는 기운이었다. 또한 백회로 들어와 회음으로 빠져나가는 기운이 있었다.
숨을 들이쉬는 건 코요. 내쉬는 것은 입이었다.
의식이 가득 찬 것은 단전이었는데 실제로 기운이 모이는 곳은 백회였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이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다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모인다는 말을 써야만 했다.
미세한 차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백회를 통해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기운이 더 많아졌으니까.
아쉽게도 진건곤은 몰아지경에서 깨어나고 나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자신의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몰아지경에서 깨어난 것은 무려 삼 일이 지난 후였다.
“일어났어, 사부?”
광우가 자신의 곁에 있지만 장소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곳이 아니었다.
“또 제가 정신없이 달려와 운기를 했습니까?”
“응?”
광우는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진건곤의 말을 듣자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다.
“정신을 잃었었구나! 이게 처음은 아닌 거고!”
“처음은 아닙니다.”
“이런. 호법도 없이 그렇게 길게 운기를 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라고? 위험하기 짝이 없구나.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걱정 마십시오, 형님.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응?”
광우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냥 그럴 것 같습니다. 설명은 못 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냥 압니다.”
진건곤은 확신에 차 있는 표정으로 말을 잘라 말했다.
“하긴! 허공을 둥둥 떠 있는 정도라면 그런 말을 해도 이상하지는 않지.”
“허공을 떠 있었습니까?”
진건곤이 놀라 물었다.
“몰랐나? 신기하더군. 분명히 열 치 정도는 허공에 떠 있었지.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면서?”
“전에는 허공에 떠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진건곤이 다시금 앉아 운기를 하였다.
‘에고고고! 또? 삼 일을 기다렸더니 일어나서는 다시 운기를 한다고?’
현청기공을 끌어올리며 전중혈에 신경을 집중하였다.
단전에서 시작된 진기가 끌어 올라왔다. 전중혈에서 또 다른 기운이 와서 합류했다. 백회에서 희미한 기운이 솟아나 그 힘에 합류했다.
단전에서 올라온 기운은 생기가 있었다.
전중에서 나온 기운은 중후하고 강한 힘이었다.
백회에서 나온 기운은 약하기 짝이 없어 희미한 정도였지만 모든 기운을 이끌고 나가는 첨병이었다.
마음을 먹자 앞장서 나서며 다른 기운이 올 길을 미리 질러가며 다른 진기가 움직일 길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 가닥의 진기가 모여 하나가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충일한 기운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르다! 전과 달라! 또다시 무언가가 변했어! 무언지는 몰라도 분명히 달라졌어!’
전과는 다르게 진기의 수발이 부드러웠다.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고 저절로 가라앉는 경지. 의기수발이 자유로운 경지에 들었다.
번쩍!
진건곤의 뜨인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진건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전중혈에 기원을 둔 내력을 끌어올려 검에 주입했다.
검신에 뿌연 검기가 가득 차올랐다.
우우웅!
검신은 살아 있는 양 검명을 토하고 손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이 손에 차지게 달라붙었다.
어쩐지 검도 역시 자신의 수족처럼 움직일 것만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들어줄 것만 같았다.
있는 힘껏 육합건곤검을 펼치자 검 끝에서 예리한 기운이 일어 검이 향하는 곳마다 흙먼지가 일어났다.
치릿치리릿!
마지막으로 중주일검에 탄의 기운을 실어내자 하얀 연기가 쏘아져 나갔다.
콰과과과!
아까와는 다르게 거친 소리가 일어나며 바위를 삼 척의 깊이로 파고들었다.
밭고랑을 매어 놓은 양 바위가 거칠게 깎여 나가 있었다.
“휘우! 보는 내가 다 무섭구나. 사부! 엄청난 무공이요.”
광우도 역시 검을 뽑아 들었다.
태허광진기를 밑바탕으로 한 청광검이 펼쳐졌다.
치리링!
발검의 소리가 한결 예리해졌다.
빠른 검이 사방을 헤집는 동안 검은 보이지 않고 검광만 번뜩였다.
“후우!”
일 각이 지났을까? 광우가 긴 숨을 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부! 내 검을 받아!”
치링!
검광이 번쩍이며 진건곤의 어깨를 노리고 들어왔다.
허나 청광검은 허공을 훔칠 뿐이었다.
광우의 얼굴에 놀람이 서렸다.
진건곤이 강호에 나와 놀라운 발전이 있었다고는 해도 자신의 검은 쾌검이다.
공격이 성공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검을 들어 막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보법만으로 피할 줄이야.
더욱이 놀라운 것은 빠르게 몸을 피하지 않고 여유로운 듯이 가볍게 움직인 몸놀림이었다는 것이었다.
“무슨……!”
광우는 놀라서 탄성을 흘렸다.
“사부! 역시 대단해. 하지만 나도 역시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지.”
“전력을 다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이번엔 진짜로 간다. 조심해!”
사실 진건곤에게 십 성의 공력으로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진건곤과 헤어지고 난 뒤 자신도 역시 발전을 했기에 진건곤을 시험해 볼 겸, 겨우 팔 성의 실력으로 검을 날렸던 것.
하지만 진건곤의 반응을 보니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크게 위험할 것 같지가 않았다.
다시금 검을 날렸다.
진건곤과 헤어지고 난 뒤, 청광검의 화후가 이 성이나 올라 구 성에 다다랐다.
그 솜씨를 모두 발휘해 검을 토해냈다.
완맥에 모여 있던 진기가 터져 나갔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더 빠르게!
검도 역시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취링!
검명과 함께 검광이 번쩍였다.
“이런……!”
광우는 검을 늘어트린 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건곤은 아직 검도 꺼내지 않은 채로 보법만으로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대수로울 것 없다는 여유 있는 몸짓으로!
“말도 안 돼!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적어도 검은 뽑아 들어야지.”
광우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진건곤을 보았다.
진건곤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고플 때까지 하세요. 저도 놀라고 있는 중이니까요.”
광우는 사양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더 간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아직은 수발이 자유롭지 못하니 알아서 잘 막도록!”
광우가 그토록 자랑하는 초식은 청광검의 마지막 초식인 청광추영이었다.
청광추영은 발검과 같은 쾌검을 연달아 펼쳐내는 쾌검식이었다.
일정한 형식이 없이 진기가 터져나가는 형식 그대로 펼쳐내는 검인지라 펼치는 사람마다 그 초식이 다르게 펼쳐지는 독특함 검초였다.
광우의 손에서 번개처럼 피어나는 검광에 눈이 부셨다. 순식간에 열여섯 번의 검광이 일어나며 전면을 모두 휩쓸었다.
누구라도 그런 검광을 보법으로 피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치리리리리리릿!
긴 검명이 울리고 광우의 검이 멈추었다.
광우의 눈은 놀라움에 젖어 부릅떠져 있었다.
“사부……!”
놀랍게도 진건곤은 여전히 검을 뽑지 않은 채로 광우의 앞에 서 있었다.
청광추영의 초식을 검을 뽑지 않고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우가 눈을 부릅뜬 이유는 단지 검을 뽑지 않고 피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건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느린 걸음으로 여유 있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사부! 사부는 진정한 괴물이 되었구려!”
“보입니다.”
“응? 뭐가?”
잔뜩 흥분해 있던 광우가 진건곤의 짤막한 한마디에 멈추고 말았다.
흥분이 호기심으로 변했던 것이다.
“형님의 진기 수발이 보여요.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져서 피해야 할 부분만 미리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뭐… 뭐라고……!”
충격! 광우에게는 진실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진건곤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가히 믿겨지지 않는 발언!
상대방의 기가 보인다? 어느 곳으로 어떻게 움직이려는 것까지?
검이 나오기도 전에 상대가 하려는 공격을 알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진건곤이 청광추영의 초식을 어떻게 그리 쉽게 피했는지 알 수 있었다.
수많은 검광 속에서 자기가 피해야 할 것을 골랐으리라!
열여덟 번의 검광이 순식간에 피어나는 사이 진건곤이 피해야 하는 것은 겨우 세 번뿐이었으리라!
진건곤의 발이 움직인 것은 딱 세 번이었으니까.
“흐흐흐흐! 사부! 나도 가르쳐줘! 역시 사부를 찾으러 나오기를 잘했어.”
광우가 넉살 좋게 웃으며 가르쳐 달라며 매달렸다.
“불가(不可)합니다.”
“불가라니? 나 광우야말로 사부의 제자가 아닌가? 나에게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가르쳐 준단 말인가?”
“불가합니다. 저도 아직 제대로 모르는 힘이니까요.”
“으잉? 사부도 사부가 하는 것을 모른다고?”
광우의 표정이 불가사의하게 구겨졌다.
“그렇습니다.”
“말이 된다는 거야, 지금? 말이 안 되는 거잖아!”
광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진건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물어보아도 변함없는 진건곤의 말은 믿을 수는 있었다.
이번 일은 이해하지는 못해도 믿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제건 못 가르쳐 줘도 형님의 청광검은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다시 봅시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
“청광검을 다시 시연하면 제가 지적해 드리겠습니다.”
광우는 쉽사리 진건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진건곤이 시키는 대로 다시 청광검을 펼쳤다.
청광검은 태허광진기를 기반으로 시작한다.
검결을 짚으니 단전에서 광진기가 끓어오르며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솟구친 진기는 순식간에 맥문에 이르더니 맥문에서 다시금 진기를 터트렸다.
치릿!
깨끗하게 이어진 쾌검식!
청광검의 쾌검식은 일반적인 진기와는 다르게 터트리는 방식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얻은 것은 쾌검이지만 스스로 몸을 망가트리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진건곤은 걱정하지 않았다.
십 년이 넘도록 쾌검식을 펼쳐온 광우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으니까.
이런 방식은 몸을 망가트릴 수 있으나 점창의 전통이 그것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리라!
“터트리세요. 태허광진기는 끓어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터트리는 힘으로 솟구쳐 나가는 겁니다. 단전에서, 허유혈에서 전중혈에서, 견정혈에서, 맥문에서 연달아 터트리며 그 속도로 검을 부리세요.”
광우는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청광검이라면 몰라도 태허광진기를 말하다니?
심법을 말한 적도 없는데 이미 태허광진기에 도통한 사람처럼 말을 한다. 구체적인 혈의 위치까지 지적하면서.
“단전에서?”
“내 단전에서요. 청광추영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요.”
“청광추영처럼 터트려라? 하지만 청광추영은 연환식인데?”
청광추영은 연달아 내력을 격발시켜 터트리듯이 부딪쳐 팽창하는 내력을 사용하는 검이었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 검을 제어하지 못하고 펼치는 사람의 내력의 성질에 따라 다른 검이 나오는 것이었다.
“형님의 청광추영은 단전을 터트리는 힘을 그대로 검식에 담았지만 잘못된 겁니다. 이 검을 만든 사람은 청광추영에 쾌검식의 진수를 담은 겁니다. 연환검을 담은 것이 아니에요.”
광우는 진건곤의 말처럼 생각을 해보니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청광추영이라는 마지막 초식은 초식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펼치는 초식이 마지막 절초라는 것도 그랬다. 그렇게 불안한 검에 목숨을 걸지는 않으리라!
연달아 쾌검식의 진수를 담았는데 그것을 초식으로 보았으니 사람마다 다르게 나올 수밖에!
목숨을 걸 마지막 구명절초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니……!
“그… 그… 런 것도 보이나?”
진건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보입니다. 광우 형님의 진기가 움직이는 것은 말입니다.”
“괴… 물! 사부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한 괴물이구나.”
“흰소리는 그만 하시고 다시 펼쳐보겠습니까?”
진건곤의 닦달에 광우는 다시금 검을 틀고 진기를 격발시켜 터트려가며 검을 펼쳤다.
칭!
전과는 다르게 터져나가는 검!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만큼 빠르게 움직여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라졌다.
“익숙해질 때까지 하세요. 제가 본 청광검에는 그만한 것이 없어요. 다른 초식을 익히지 마시고 쾌검식의 정수를 체득하세요.”
추밀사를 찾아가는 일은 생각 밖으로 길게 늘어졌다.
그 일이 있은 이후에도 또 여러 번 진건곤이 넋을 잃고 몰아지경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매번 경치가 좋은 곳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광우는 경치가 좋은 길을 피해야 한다는 말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몰아지경이 끝날 때마다 진건곤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듯이 광우의 무공을 가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다섯 번의 몰아지경을 겪었으며 광우 또한 무공이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광우와는 달리 진건곤은 처음으로 느꼈던 몰아지경처럼 크게 진전을 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북경!
과연 황제가 사는 곳.
진건곤은 신천지를 보는 듯했다.
비단 황궁만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도시 자체가 달랐다. 건물의 높고 수가 많은 도시야 이미 항주에서도 많이 보았지만 건물의 격이 달랐다.
항주의 건물이 아름답고 곱게 치장한 미인이라면 북경의 건물들은 사내다.
그것도 웃통을 벗고 순수하게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있는 사내다.
크기에서 오는 웅장함과 힘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듯한 구조에서도 놀랐다. 마치 작은 성이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어어! 이거 주눅 드는데. 그래도 성도에서 살았는데 여기에 비하면 시골이구먼.”
진건곤은 광우의 말에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광우도 역시 자신도 같은 생각이었다.
북경은 황제가 사는 곳이어선지 관군의 복장을 하고 순라를 도는 자들도 많았다.
일행은 그들에게 길을 물어 추밀원을 찾았다.
“복건 엄왕야의 사위가 고거복 추밀사님을 찾아 왔다고 전하게!”
문지기들이 광우의 행색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왕야의 사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행색이었기 때문이었다.
“추밀사님은 바쁜 분입니다.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있겠습니까?”
“네놈들에게 보여 준다고 알 게 아니다. 객청에 자리라도 주고 영객원이라도 데려오려무나.”
광우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니 막지 못하고 객청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영객원이라는 자가 나와 광우의 곁에 섰다.
광우는 품속에서 패를 꺼내자 옥으로 된 패였는데 영객원은 감히 패를 잡지 못하고 허리를 구부려 확인하고 물러갔다.
옥패는 황족의 인물을 상징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나 광우에게 찾아가 입을 열었다.
“고 감원께서는 어떤 일로 추밀사님을 찾으셨는지요?”
광우의 직위가 감원이었다.
감원이라면 성주 직속의 직위로 감찰사가 하는 일을 맡은 자를 말한다.
다만 성주의 직속이므로 성주의 관할 구역인 복건성에 한해서 권한을 가지는 자였다.
“민란의 주범을 찾고 있소. 과거에 고거복 추밀사께서 그 일을 하셨기에 도움을 청하러 왔소이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어서 오시오. 고 감원. 잠시만 기다립시다. 모아 두었던 자료를 다 가져 오라 일렀소이다.”
추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광우와 진건곤을 맞이하였다.
강퍅해 보이는 얼굴. 성정은 대꼬챙이처럼 창창하게 생겼지만 광우 앞에서는 그리하지 않았다.
옥패의 효과였다. 황족이라면 어느 누구에게 입김을 넣어 어떤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뭐 그때에도 그랬지만 특별한 흔적이나 특징 따위는 없었지요. 실제로 가뭄이 들었고 가렴주구가 있었기에 민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였으니까요. 게다가 계속 싸우자는 말을 했으면 모를까. 모두들 흩어져서 도망치라는 말을 했다니 그 대상에서는 제외되기도 했었습니다. 딱히 기억에도 남는 게 없는 것을 보면 그다지 두드러진 특징을 가진 자는 아니었나 봅니다. 하여튼 그때의 자료를 찾아보면 확실해지겠지요, 천천히 살펴보시지요.”
“이렇게 직접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추밀사는 자신보다 직급이 낮고 어린 광우에게도 반존대를 하며 그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광우 역시 상대가 예우를 해주는 상황에서 딱히 신경을 거스를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추밀사가 모아놓은 자료를 진건곤과 함께 읽어보고 나오는 것으로 볼일을 모두 보고 추밀원을 나섰다.
창문 너머로 진건곤과 광우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 추밀사가 입을 열었다.
“허어! 황족과 함께라니 더욱더 건드리기 어려운 인물이 돼 버리는 것은 아닌가? 어서 귀제갈에게 알려야 해! 이건 중요한 차이야.”
추밀사의 입에서 공희국의 총관이 말했던 귀제갈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나저나 시키는 대로 용모파기를 고쳐 적기는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원하는 목표를 찾도록 할 수 있으려나? 하긴! 귀제갈이 하는 일 중에 이해가 가는 일이 있었던가? 나야 시키는 대로 했으니 틀림없겠지.”
추밀사 고거복은 자신의 판단보다 귀제갈이라는 자의 판단을 더 믿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키가 컸고 도를 썼으며 장갑을 꼈다고? 이거야 원!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도 아니고……!”
추밀원에서 읽고 온 서류는 많았으나 얻은 단서라고는 많지 않았다.
무림인들 중에 그만한 조건에 드는 자는 너무나 많았다. 특별히 사슴가죽 장갑을 말한다면 독이나 암기를 다루는 자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장갑이라면 낭인들 사이에서는 흔하디흔한 모습이었다.
가뭄이 심해 민란이 자연히 발생할 수 있어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사람을 동원하기로는 세상에 제일가는 관이었다. 특별히 눈에 뜨이는 특징이었다면 안 찾았을 리가 없었다.
“지금은 삼십대 후반의 나이. 십 년 전 무공을 절정 이상으로 치고 그 후로 무공이 갑자기 늘어난 자를 찾으면 됩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강해진 사람으로요. 환천삼보의 무공이라면 그 정도는 기본이겠지요. 무기는 바뀌었을 수도 있고요.”
진건곤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답을 하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사부?”
“기록에 따르면 아버님의 사인은 단칼에 베어진 도상이라고 했습니다. 단칼에 베어버렸다면 일초지적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아버님은 군관출신 교원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강한 편이었습니다. 무인으로 치자면 이류 무인 중에서는 강한 편이셨을 겁니다. 그런 아버님을 단칼에 베었다면 적어도 절정의 고수라고 생각합니다.”
“무공으로는 그렇지. 장갑을 끼는 자들은 거의 다 낭인이니까. 낭인일 확률도 크지.”
“독이나 암기를 쓰는 자들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무림인들이 아니라서 구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녹피를 감추기 위해서 장갑을 덧꼈을 수도 있으니까요.”
“뭐 맞는 말 같구먼. 그런데 사부, 어딜 가나? 같이 가자고!”
광우는 앞장선 진건곤을 따라 바쁘게 따라갔다.
진건곤이 찾은 곳은 개방이었다.
이미 전진자의 명성은 개방에 퍼진 지 오래였고 개방의 최고 빈객으로 맞으라는 명령이 하달되어 있었다.
진건곤은 개방에 사람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근처의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기다리는 동안 틈틈이 광우의 무공을 보아주면서 자신의 무공을 점검하였다.
갑자기 쑥쑥 늘어나는 무공이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무공인 탓에 스스로를 확인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만 했다.
하지만 신비인이 알려준 대로 전중혈을 단전으로 사용하면 세 가지 내력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알아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열흘의 시간이 지났을 때 개방에서 전갈이 왔다.
“어느 분이 전진자시오?”
“접니다.”
개방에서 나온 걸개는 전진자가 가진 비표를 확인하고 나서야 전갈을 전해 주었다.
<조건에 맞는 고수로 찾아진 자는 겨우 일곱에 불과함.
모산파 청진자.
용병제 진가기.
녹림왕 패환도 봉하량.
흑수당 구절패 상관오.
살인막 살마군.
독곡 독마군.
철마강격 고루마군.
이 중에 리만리 사건시기에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자는 모산파 청진자와 용병제 진가기. 철마강격 고루마군임.
절정고수에서 그 무공이 급격히 높아진 자는 겨우 일곱. 일류에서 절정으로 오른 자들은 모두 사십육 명.
흑오당 일권추 기철신.
장백장 백권 장원삼
…….>
“오호라! 절정에서 그 위로 오른 자들은 거의 없네? 하지만 하나같이 거물들인데? 이자들을 어떻게 하지, 사부?”
“찾아 봐야죠. 일단은 모산파 청진자부터!”
진건곤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모산파의 청진자부터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진건곤과 광우는 또다시 말을 타고 강소성으로 달렸다.
진건곤이 또다시 몰아지경에 빠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 일정에는 영향이 없었지만 강소성에 다와 갈수록 광우의 표전이 무거워지는 시간이 늘어났다.
진건곤은 광우의 얼굴이 무거워진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진건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닌 지가 삼 개월. 만나서 같이 다닌 시간이 삼 개월이다. 이미 육 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둘째가 나올 때가 다 된 것이다.
진건곤을 찾아 헤맨 시간이 너무 길었던 통에 막상 만나서 도움을 주려 해도 그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북경. 한 달 동안 파발마를 빌어 타고 죽어라 달려가야 겨우 복건성에 당도할까 싶은 거리였다.
광우가 서둘러 달리고 달려야 둘째가 나오기 전에 돌아갈 수 있었다.
“형님. 됐습니다.”
“무슨 말인가?”
“이젠 가보셔야죠.”
“어허! 무슨 소리를 하려고, 사부?”
“둘째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저랑 이대로 움직이다가 싸움에 휘말리면 아버지 구실도 못하게 되는 겁니다.”
“시작하고 끝을 안 볼 수는 없지. 같이 가세나. 사부가 위험할 수도 있는데 빠져나갈 수는 없네.”
“하하하하!”
진건곤이 소리 내어 웃었다.
“왜 웃는 건가?”
“형님은 관리가 아닙니까? 관리가 그리 말을 하니 강호인 같아서 그럽니다.”
진건곤은 광우와 자신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그게 바로 관리와 강호무인의 차이였다.
광우도 역시 그 말을 알아듣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찾아갈 자들과 싸우게 되면 형님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
광우도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찾아가야 할 자들은 모두가 강호의 절정 고수 중에서도 그 궤를 달리하는 자들이다.
광우라면 그야말로 일초지적!
자신이 무공으로 도울 일은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말이네. 나도 꽤 쓸모가 있지. 관이 귀찮게 하는 것을 막는다든지. 자잘한 상대들을 상대할 손이 되어준다든지 이런 것 말일세.”
“그런 것이라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형님! 이미 그런 수준은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광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검을 들고 전력을 다해 봐야 진건곤은 검도 뽑지 않는 수준이지 않았던가?
“사부가 나를 생각해서 이러는 것 아네. 정말 괜찮대도!”
“제가 미안해서 안 됩니다. 형님께 미안한 것은 괜찮은데, 형수님과 태어날 아기에게 미안해서 안 되겠습니다. 상서로운 일을 두고 형님 손에 피를 묻히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진건곤이 직접 태어날 아이를 언급하자 그제야 포기한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네. 필요할 때 빠져나가게 됐군.”
광우는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남겼지만 진건곤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별말씀을 다 합니다. 안 가면 평생 형수가 괴롭힐 겁니다. 저도 조카를 보러 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 일이 끝나고 들르도록 하죠.”
“알았네. 꼭 오도록 해. 안 그럼 내가 찾아올 것이야, 사부!”
“하지만 이건 놓고 가도록 하지. 이것을 받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네.”
광우가 내세운 것은 황족을 상징하는 옥패였다.
“형님은요?”
“나야 호패가 없어도 이 감원패 하나면 된다네.”
광우는 다른 호패 하나를 들어 보여 주었다.
그것은 관원들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직위패였는데 그것으로 충분히 호패의 역할을 하고도 남았다.
“관과 얽히는 일이 생기면 이것을 내세우게. 웬만한 문제는 전부 해결될 것이야. 일이 생긴다면 내가 책임질 테니 이것만은 꼭 받아 주게.”
진건곤은 광우가 내세우는 옥패를 받아 들었다.
“고맙습니다.”
사용이야 하든 않든 간에 광우의 마음은 받아들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