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20화 (20/61)

제4장

이번에도 역시 청송은 보름이 되어서야 연무실에서 나왔다.

“사형! 개방에서 살인막의 본거지를 알아냈답니다. 만공개와 투개님이 합류하겠다고 합니다.”

“투개님이?”

개방의 무상으로 이름난 투개의 별호를 모를 리가 없었다.

“이번에 살인막을 정리하겠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미 떠날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대사형이 나오는 대로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알았다. 채비를 하고 나오마.”

“개인적인 물품만 채비하면 됩니다. 다른 건 다 채비해 두었으니까요.”

“그리하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내 일은 스스로 하는 게 좋단 말이다.”

“바쁜 길이니 서둘러야 합니다.”

청암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서두르기를 재촉하며 앞장서 나섰다.

청송은 뒤쪽에서 청암의 어깨를 잡았다.

“고맙다. 네게는 항상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지는구나.”

청송의 말에 청암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렸다.

“아닙니다. 전진자의 일로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저는 대사형의 안목을 도저히 따를 수 없나 봅니다. 하찮아 보이던 전진자가 그렇게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는……! 대사형을 따르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천천히 나오세요. 사형이 곧 나올 것이라고 알리겠습니다.”

청암은 자신의 말을 마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과연 천하제일방, 개방의 정보수집 능력은 대단했다.

추적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살인막의 거점으로 보이는 곳을 발견해냈다. 바로 귀주성의 금사라는 곳이었다.

물론 살인막이 평소처럼 조용히 있었다면 아무리 개방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많은 이동이 원인이 되었다. 증거가 없지만 살인막의 살수로 의심받던 자들이 모두 일시에 움직이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도 그만한 일을 전체적으로 동시에 관망할 만한 조직은 개방밖에 없었다.

청송의 폐관이 끝나자 일행은 또다시 살인막을 향해 이동하였다.

“연무실에 들 때마다 폐관을 하듯, 집중한다고 하니 대단하네요.”

진려경이 청명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지? 하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말이야. 사형이야 옛날부터 연무실에 한 번 들면 보름 이상 있다가 나오곤 해서 이제는 당연한가 싶어.”

“아, 원래부터 그랬어요?”

“응, 그… 그런데 말이야?”

“왜요?”

“그 말투……!”

“아! 왜요? 지아비 될 사람을 존중해야지요. 이제는 존댓말을 할까 하는데. 왜? 존댓말 하는 거 싫어해요?”

진려경이 눈을 반짝이며 이상하다는 눈으로 청명을 보았다.

“아… 아니! 존댓말이 왜 싫겠어. 다만 안 하는 짓을 하니까! 웬 여우 짓인가 해서 그러지. 아야!”

진려경의 손이 청명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호호호호, 아버님 있다고 까불면 큰코다칠 줄 알아요.]

[어라? 전음이 가능해졌어?]

[흥! 누군 뭐. 항상 놀고먹기만 한 줄 알아요? 적어도 저 마녀보다는 강해지려고 노력한다고요.]

[하하하! 제법 잘 지내기에. 좀 변했나 했더니. 여전히 신경 쓰이나 보네?]

[그럼요. 일단은 힘에서 딸리면 주눅이 드니까요.]

[하하하하! 하지만 뭐 설마 그럴 일이 생기겠어?]

[흥!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지요. 어쨌거나 강한 자가 여유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그거야 그렇지. 하여간 만만치 않은 마님이라니까. 당신도.]

[당신이라니. 으, 남세스러워요.]

[이젠 나도 너라고 부를 순 없잖아? 아무리 어릴 적 친구라고 해도 말이야. 변할 것은 변해야지.]

[그거야 그렇죠. 그런데 이 진용이라면 살인막쯤은 우습겠죠?]

[음, 아마도! 웬만한 문파라면 아주 쉬운 일이 될 테지. 하지만 살인막이니 쉬운 일이 될 리는 없겠지. 게다가 이번 일은 아버님과 투개님은 전체적인 지휘와 보호만 하실 거니까. 마두들을 상대하는 것은 우리끼리만 해야 하는 일이니 그리 쉬울 리가 없겠지.]

[피이! 당신이 하나요? 저 잘난 차기 화산 장문인 감과 우리 잘난 오라버니가 하는 거죠. 아마도 우리 오라버니가 더 강하겠지만 말이에요.]

[그러게 형님의 숨겨놓은 무공이 그 정도라니 정말 놀랍기는 했어. 완전히 속은 느낌이야.]

[좋게 생각하라고요. 마님만 잘 모시면 천하제일의 대단한 처남이 있으니 든든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잖아요?]

[하하하하! 걱정 마세요. 형님 무서워서라도 잘 모실 테니까. 그런데 벌써 형님을 천하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호호호호! 원래 꿈은 큰 게 좋잖아요?]

[하하하하하! 누가 말리겠어.]

진려경이 전음을 하게 된 후로부터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전음을 하지 못하던 때에 비하면 여행길에 오가는 이야기가 많이 자유로워졌다.

“워!”

일행이 관도를 따라 이동했으나 마을이 나오자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나아갔다.

“저곳으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청암이 나서서 객잔을 정하자 운현과 투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고 그것으로 객잔이 정해졌다.

일행은 간단한 소채요리와 소면을 시키고는 말의 여물을 잘 먹여두었다.

“허허 들어 봤나? 무당의 후기지수 진금이 마두를 처단했데요. 벌써 셋이라는데? 그중에 절정고수라고 불리던 자도 있더라는 거야. 덕분에 호북성은 마두들이 오금을 못 편다는 거야. 역시 무당이지?”

객잔 사람들이 다 들으라고 크게 떠드는 자들이 있었다.

자연히 눈길이 가는 곳에는 상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있었다. 복장으로 보아 만금당. 진금의 본가의 사람들이었다.

“저런 식으로 명성을 퍼트린단 말인가요? 정말이지 상인들은 낯 뜨거운 사람들이군요.”

“저 정도는 좀 심하네요. 우리 개방도 필요하면 소문을 내기는 하지만 저 정도는 아니지요.”

“저렇게 하면 효과는 좀 있나요?”

“큽니다. 사람들은 소문에 민감한 편이라서요. 가끔은 소문이 더 부풀려져서 삼두육비의 괴물을 만들기도 하죠.”

청린의 물음에 만공개의 답이었다.

상인은 열심히 무당의 대단함을 말했지만 한쪽이 말을 하면 언제나 그 반대를 말하는 사람도 있는 법.

“어허! 이 사람 보게. 자기네 공자가 최고인 줄 아는구먼.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그렇게 자랑만 하다가는 큰코다칠걸?”

“흥! 세상에 무당의 검을 꺾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무당의 차기 장문인이라면 이미 다음 천하를 이끌어갈 사람인 것을. 앞으로는 우리 만금당이 힘 좀 쓸 걸세.”

만금당의 상인으로 보이는 자는 참으로 강한 자부심을 가진 듯했다.

기실, 그것이 사실이기는 했다.

소림이야 언제나 진중한 듯이 조심스러웠다. 무당 또한 선인들처럼 따로 노는 듯했지만 그들의 속가는 그렇지 않았다.

소림과 무당의 속가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본산의 위세를 입어 흥망성쇠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화산무적검이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화산의 기세도 만만치 않아. 무림대회에서 무당을 물리쳤지 않은가?”

“어림없는 소리! 물리치다니? 공동 우승일세. 공동 우승. 그리고 말이야 아무리 공동 우승을 했다고 한들 대번에 같은 위상이 되겠는가? 대대로 내려온 전통이 있지 그래서! 역시 무당일세!”

“허허, 이 사람 참! 이번에는 화산일세! 화산의 후기지수들이 살인막을 친다지 않나? 이미 철혈궁왕과 흑암이라는 무시무시한 살수도 해치웠다는 말도 있잖아. 고작해야 그 지방의 악도들이나 잡는 무당의 후기지수하고는 격이 다르다고. 살인막에 쫓겨본 적이 있는 전진자도 역시 그들에게 합류해서 살마들을 도륙했다는 소문도 있고 말이야.”

면전에 있는데도 몰라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소문은 들었는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허어 모르는 소리. 전통이 있는 무당이래두!”

“이번엔 다르다니까. 화산이야!”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길 바랐는지 옆의 상인들에게까지 물어 보고 있었는데 의견이 쉽게 기울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맞섰다.

가만히 듣고 있던 만공개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섬서 지방이 아니고는 화산의 이름을 나란히 놓지도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굳이 섬서 지방이 아니더라도 화산과 무당의 이름이 같이 놓이니 이게 바로 화산의 위상이 높아진 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다 화산무적검이 무림대회를 석권한 덕이지요. 상인들은 한 치 앞도 중요하지만 세 치 앞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만공개의 말에 밝은 얼굴이 된 청린이었다.

“대사형이라면 능히 화산의 이름을 무당의 앞에 둘 것이에요. 그렇지요, 대사형?”

만공개와 대화를 나누던 청린이 갑자기 화살을 청송에게 넘겼다.

“글쎄다. 꼭 이름을 높이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하면 자연히 알려지는 법이지 않을까?”

“에에? 사형은 또 그러신다. 살인막을 정리하고 나면 천하에 대사형만큼 명성이 높은 후기지수는 없을 것이라고요.”

“아니다. 하나 더 있을 것이야. 나조차도 자신할 수 없는 후기지수가 있다. 이미 명성도 높아졌고 말이야.”

청송의 말에 만공개의 눈이 진건곤에게로 향했다.

만공개뿐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은 자연스럽게 진건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흥! 무공이 강한 것은 알겠지만 대사형과 비교할 순 없어요. 그렇죠?”

“글쎄다.”

청송은 또다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으…음! 또 그러시네.”

청린은 또다시 고개를 흔들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들이 들르는 객잔마다 강호의 이야기로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무당과 화산의 두 문파 중에 어느 문파가 영도자의 역할을 하게 될지가 주요 이야깃거리였다.

“하하하하! 화산무적검의 출현을 이토록 반기는 것을 보면 세인들도 무당의 독주체제는 싫었나 보네. 자네가 일만 없었다면 진즉에 화산의 이름이 드높았을 것이야.”

“무량수불! 전부다 제가 불민한 탓이지요. 화산무적검과 같이 뛰어난 제자가 나와 차기 장문을 맡는다니 화산의 미래가 밝아지겠지요.”

투개가 슬쩍 이야기를 꺼내어 봤지만 운현은 이미 지난이야기라는 듯이 흘리며 청송을 집었다.

“하하하하! 제자는 자랑을 해도 된다. 팔불출이라고 흉볼 사람은 없으니까. 그만한 제자라면 나 같으면 업고 다니면서 자랑할 것이야.”

투개는 진건곤을 지목하며 화산의 미래가 든든하다고 했다. 그에 운현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감정표현이 극히 적은 운현이었지만 진건곤의 이야기가 나오면 가끔은 웃음을 짓기도 하는 편이었다.

“허어! 부럽네. 만공개를 키우면서 개방이 천하에 패권을 잡는 꿈을 꾸었지. 그런데 그만한 인재가 화산에는 둘이나 있다니. 하나가 둘을 당해낼 수가 없으니 이런 세상에 같이 태어난 만공개가 불쌍해 보이기도 하네. 하나라면 어찌 해볼 만할 텐데. 둘이라니……!”

“굳이 경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좋은 인재가 많다는 것은 세상에 득이 되는 일이겠지요. 저들이 바쁘게 움직여 준다면 마인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시천존!”

“커허! 도사라선지 나 같은 속물과는 다르구먼.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섭섭하네. 저런 괴물 같은 녀석들이 왜 화산으로 갔는지 모르겠어. 분명히 방도의 수는 개방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말이야. 응? 저들은……? 이려!”

투개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는 말을 달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미타불! 아미의 소군입니다.”

“하하하! 아직도 소군이라고 하면 자네보다 못한 내가 형편없어 보이잖나? 이제는 검후라고 하고 다니지?”

개방의 무상이라는 투개가 스스로 하수를 자처했다.

“아직은 스스로 검후라는 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투개의 말에 소군이 겸양의 모습을 보였다.

“화산의 운현입니다.”

“아! 전진자의 사부시군요. 어떤 분인지 뵙고 싶었습니다.”

새롭게 합류한 자들은 바로 아미파의 소군과 그의 제자 연흥과 연법이었다.

“아미는 전진자가 나선다기에 한손 거들까 해서 나왔습니다. 나중을 위해서 선업을 쌓아 보려고요.”

소군은 전진자의 이름을 들먹였다.

운현의 제자라고는 하나 아직은 홀로 선 낭인과도 같은데 그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고 하니 진건곤은 고마운 마음이 굴뚝같았다.

소군은 운현과 투개와 함께 움직였고 연흥과 연법은 진려경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연흥이 진건곤을 보며 인사를 올리자 모두들 놀라 전진자를 보았다.

“사부요?”

만공개가 기겁하며 물어보자 연흥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전진자님 덕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여 마음속으로 사부님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그제야 다른 일행들의 얼굴에는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 어렸다.

‘흥! 저 고집스러운 얼굴로 어떻게 비구니들에게는 호감을 샀담?’

청린은 아미의 여승들이 진건곤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자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아무리 보아도 독해 보이는 인상뿐인걸. 그에 비하면 대사형은 인물도 좋고 능력도 좋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눈이 몽롱하게 풀어진 청린이었다. 그러다 문득 소군을 보고는 눈이 갑자기 옆으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흥! 나이를 먹으면 늙어야지. 어쩜 저리 젊은 얼굴로 다닐까? 하지만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청린은 문득 머리를 뒤흔들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말도 안 되는 괴물! 세월마저 멈추게 만들어버린 괴물이야! 대사형은 절대로 저런 늙은이를 좋아할 리가 없어.’

청린은 소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서 은근히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며칠 후 진건곤의 일행은 또 다른 무리들을 만났다.

“하하하! 이곳을 지나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천류엽 모용상 장로. 일위강 당수기 장로! 허허! 오랜만이요.”

또다시 투개는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투개가 언급한 두 사람의 뒤로는 각기 두 명씩의 청년들이 서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로급 이상의 인물들이 다섯 명에 후기지수들이 열한 명.

결코 적지 않은 인원들이 모였다. 특히나 장로급의 인물들 중에는 소군이 들어 있었다.

소군은 장로급을 넘어 전대 기인 수중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으니 명성으로만 치면 최고의 고수였다.

달리 세월을 막아낸 괴물이 된 것이 아니었다.

소군이라면 홀로 나서도 중견문파의 전력을 감당하고도 남았다.

“허허! 소군께서 와 있을 줄은 몰랐구려. 오랜만이요.”

“허허허! 소군께서 와 있으시다면야 든든하기 짝이 없구려.”

오대세가의 장로들은 나이 차이가 삼십 년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소군에게 정중하기 짝이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진자 아우가 좋은 일을 한다기에 제자들과 함께 한손 거들러 왔습니다.”

소군은 노골적으로 전진자를 들먹였다.

‘저 괴물이 은연중에 전진자를 운운하며 띄우는데, 말 좀 똑바로 하지? 우리 일행의 주인공은 바로 청송 사형이란 말이다.’

청린은 눈에 불을 켜고 소군의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속으로 트집을 잡고 있었다.

“허허! 그렇소이까? 우리는 화산의 소식을 듣고 왔소이다. 가깝기로 치면 모용세가와 당문이 있지 않겠습니까? 멀리는 못 가도 이곳이라면 당연히 나서야지요.”

“애들아!”

“네, 장로님.”

“너희들도 인사를 드려라.”

모용자기와 모용자표. 당관용과 당관호는 소군에게 인사를 올리고는 후기지수들의 쪽으로 자리를 옮겨 통성명을 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어울려 움직이니 그들의 목표인 금사에 당도하게 되었다.

일행은 객잔에 들자 후원의 조용한 곳을 청해 자리를 잡았다. 다가올 결전에 대비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각파의 어른들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런 상황, 저런 상황에 대해서 말을 하며 살인막과의 전투에 대해 확인을 하였다.

그 일이 끝나자 모두들 차분하게 자신을 가다듬는 데 시간을 썼다. 이때만큼은 청린도 자신을 차분하게 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사방에 불을 놓아 밤인데도 낮처럼 환했다.

많은 사람들이 쇠스랑과 도리깨. 낫과 호미를 들고 있었다. 옷차림이나 생긴 것을 보아서는 어디서나 보이는 평범한 농민들이었다.

그들의 맨 앞에는 도를 들고 관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묘하게 그의 얼굴을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그 인물이 도를 빼 들고 소리를 지르자 모두들 기뻐하며 대궐 같은 집으로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대문을 부수고 담을 허물어 대궐 같은 집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각기 들고 있던 농기구들에 피를 묻히고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죽음을 맞이했다.

피에 젖은 농기구를 들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탐욕에 젖어 눈을 번들거렸다.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더니 금붙이와 전표를 들고 나왔다.

모든 재물과 보화들은 도를 들고 그들을 지휘하던 사내의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갑자기 어둠이 걷히고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버지?”

진건곤은 스스로 내지른 단말마에 놀라 눈을 떴다.

“후우! 후우! 후우! 그럴 리가 없잖아. 이미 확인도 다 한일인걸.”

진건곤은 머리맡에 자리끼를 들어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넘어가자 조금은 정신이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간질간질한 느낌이 있었다. 자신을 향한 불길한 기운이 온몸을 간질이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미약하고 불길한 기운이 확신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어떤 놈이 살기를 뿌려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다니!”

진건곤은 일어나 검을 들고 문을 열고 나섰다.

축시(丑時)!

별도 구름에 가려 빛이 어둑한 밤.

진건곤은 손에 검을 들고 어두운 밤을 헤치고 다녔다.

길을 밝힐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듯이 성큼성큼 걸어 다니고 있었다.

“저기군.”

살기가 좀더 명확해지자 진건곤은 기운을 탐지하지 않고 경공을 펼쳐 움직였다.

진건곤을 꾀어낸 살기의 주인공이 문득 한곳에 서서 진건곤을 기다리듯 하였다.

“내 이름은 포사. 살인막의 살수다. 같은 특급살수라고 해서 흑암 같은 나부랭이와 동급으로 치면 곤란하다.”

포사!

흑암과 함께 살인막의 특급살수로 알려져 있었다.

어떤 병기도 자유자재로 다루며 암습 따윈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흑암보다 더 엄청난 재앙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물이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멸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원의 멸절. 군소문파의 멸절 뒤에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웃기는군! 겨우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살수 나부랭이가 무공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단 말인가?”

“흐흐흐! 까다롭기는……!”

포사의 답에 진건곤은 어이가 없어졌다.

전에 만났던 살수들의 당돌함과 뻔뻔함은 이자에게 배웠으리라!

“너 말 잘하는구나. 좋다. 난 너같이 똑똑한 놈을 좋아하지. 때려죽이는 맛이 각별하거든. 하하하하! 너를 위해 특별히 봉사를 하도록 하지. 내가 이기면 공짜로 네 동생을 죽여준다. 고맙지?”

화악!

포사의 신형 주위로 거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그의 몸 안에 있는 광기가 터지기라도 한 듯이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세가 오른 것은 포사만이 아니었다.

‘이놈이 바로 려경이를 다치게 했던 자들을 길러낸 자다.’

뿌드득!

진건곤의 손에서 뼈마디가 벌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 와!”

진건곤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며 기세를 개방시켰다.

파앙!

진건곤의 주위를 원으로 공기가 터져나가듯이 출렁거렸다.

그 여파로 주변의 나무들이 사시나무라도 되는 양 마구 흔들렸다.

그 모습에 포사는 놀란 듯이 주위를 살폈다.

“오호! 좀 분위기 잡는데? 어린놈이 제법이야. 흐흐흐! 찾아오길 잘했군. 하마터면 이 짜릿한 손맛을 놓칠 뻔했어.”

포사는 등에서 막대 세 개를 꺼내더니 한 개만을 손에 쥐고 그것을 놓았다.

챠릉!

두 개의 막대가 허공에 멈추었다. 그것을 지탱하는 것은 손에 든 막대였다.

무기는 삼절곤.

“우리 애들을 박살냈다고?”

포사는 이야기를 꺼내며 대범하게 삼절곤을 어깨에 걸쳐 멨다.

“그럼 이제 빚을 갚아야겠네?”

후웅!

포사의 목에서 하얀빛이 회오리처럼 말려 나와 진건곤을 향해 덮쳤다. 삼절곤이 포사의 목을 감고 나온 것이 회오리처럼 보였던 것이다.

삼절곤의 독니가 진건곤의 목을 물어뜯으려 하는 그 순간.

진건곤의 몸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회오리를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가게 하더니 그대로 검을 찔러나갔다.

검은 하나였는데 검영이 모두 열두 개가 생겨 일시에 포사를 포위하듯이 찔러가니 장관이었다.

후웅!

어느새 돌아온 삼절곤은 회오리처럼 포사의 몸을 감싸고 휘돌며 열두 개의 검영을 모조리 부러트려 흩어버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와 진건곤의 무릎을 노리고 바닥을 휩쓸었다.

쩍! 파바바박! 쾅!

진건곤의 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삼절곤의 끝은 예리한 각도로 갈라져 잘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삼절곤은 포사의 손을 떠나 진건곤에게 쏘아졌다. 말 그대로 무기를 던져버리는 포사!

던져진 삼절곤을 검으로 쳐내자, 어느새 포사의 손에는 두 개의 손도끼가 들려 있었다.

“흐흐흐! 대단하구나. 내 정파 놈과 이렇게 짜릿한 싸움을 할지는 몰랐다. 살기가 가득한 수법이라니 네놈의 검은 절대로 정파의 검이 아니야. 마치 사파의 고수를 보는 것 같구나. 하하하하!”

진건곤의 검은 극도로 정교하지만 또 실용적이기도 했다. 부족한 내력으로 극히 짧은 순간에 승부를 내기 위해서 다듬어진 탓이었다.

“설마 무서워진 것은 아니겠지?”

진건곤은 검을 들어 포사를 가리키더니 짙은 살기를 보였다.

“그렇더라도 꾹 참아. 도망가도 소용없으니까. 덕분에 아주 더러운 꿈을 꿨거든.”

“크하하하하! 애송이.”

진건곤의 말에 포사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웃음을 터트렸다.

“내게 그리 무례한 말을 한 사람은 한 번도 살려둔 적이 없었다. 그 나이에 그만한 무공이라면 세상 높은지 모르는 게 정상이지. 하지만 혼자 나온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손도끼는 때리는 맛이 제 맛이거든!”

포사의 두 손에 들린 손도끼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내력이 몰려든 것이었다.

아마도 검기나 도기처럼 내력을 발산하는 무공을 사용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부기가 될 것이었다.

포사가 다가오자 진건곤도 역시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차갑게 식은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이 범상치 않았다. 끓어오르는 투기들이 부딪히고 있었다.

“타앗!”

포사의 기함성이 울리고 손이 움직이자, 흐릿한 연기 같은 것이 일어나 진건곤에게 쏘아져 들어갔다.

부에서 쏘아진 것은 부기(斧氣)였다. 만병에 도통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했다.

모두 열 개의 것이었는데 그것들은 모두가 속도가 달랐다. 정교하게 조절이 된 것이라서 한 번에 피하거나 한 번에 쳐낼 수가 없도록 짜인 초식이었다.

앞으로 내밀어져 있던 진건곤의 검이 흔들렸다.

또다시 매화향이 장내에 그윽하게 가득 차고 흐릿하게 꽃모양을 갖춘 것들이 쏘아져 나갔다.

치리리링! 치리링! 치리링!

허공에서 흐릿한 연기와 같은 것들이 부딪히자 날카로운 소성이 일었다.

모조리 상쇄되고 없어졌는데 진건곤의 검은 검극에 마지막 꽃모양을 맺은 채로 포사의 이마로 쏘아졌다.

“흥!”

포사의 도끼에는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기운이 맺히고 그대로 진건곤의 검을 때려갔다.

꽈드등!

두 개의 병장기는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천둥소리를 만들어내며 튕겨져 나갔다.

병기의 주인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진건곤은 한 걸음 포사가 모두 다섯 걸음이었다.

하지만 이미 포사의 도끼는 진흙으로 빚어 만든 도자기처럼 반쯤은 깨어져 있었다.

“흥! 어린놈이 괴물이구나.”

포사는 어느새 손도끼를 버리고 등 뒤에서 주먹만 한 철구를 꺼내어 던졌다.

쐐액!

놀라운 속도로 날아간 철구는 듣기에도 무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까앙!

진건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철구를 쳐내었는데 철구는 허공을 빙 돌아 포사의 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철구에 줄이 매달린 유성추였다.

붕붕붕!

철구는 어지럽게 포사의 주변을 돌며 호시탐탐 진건곤을 노리고 있었다. 포사는 진건곤이 더 공력이 높다는 것을 깨닫고는 섣불리 공격을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또다시 등 뒤에서 커다란 대부를 꺼내어 왼손에 들더니 갑작스레 대부를 던졌다. 대부 같은 중병을 던지다니 그것은 상식을 거부하는 짓.

또 하나의 파격이 뒤를 이었다.

포사는 유성추를 들어 대부를 향해 내던졌다.

전력을 다했는지 포사의 얼굴에는 핏줄이 우둘투둘하게 일어났다.

일렁이는 기운을 담은 유성추가 날아 대부를 후려치자 대부는 그대로 깨어지며 파편이 진건곤을 향해 날았다.

대부의 뒤에서 일어난 일이니 난데없이 터져 나오는 파편에 그대로 당할 판이었으나 진건곤은 달랐다.

대부의 뒤에서 벌어진 일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또다시 매화분분을 펼쳐 꽃잎을 만들어 방벽을 만들어 대부의 조각들을 쳐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쇄액!

그 사이로 쳐들어오는 유성추는 아직도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따다다다당!

잔물결처럼 여러 번 같은 소리가 중첩되고 유성추가 허공에서 튕겨져 나갔다.

황미! 거칠게 몸을 떨어 튕겨내는 그 묘리가 검 끝에서 발휘되며 유성추를 튕겨낸 것이다.

그리고는 그대로 미끄러져 들어가듯이 펼쳐진 질사보!

연이어 펼쳐진 중주일검, 포사가 주춤거리는 사이 미끄러지듯이 갑자기 빨라진 검.

중주일검의 끝에 쾌의 묘리를 실자 검광 한줄기가 포사의 몸을 통과하고 지나갔다.

“하하하하! 통쾌한 한판이었다. 애송이! 먼저 가서 기다리마. 하하하하! 너같이 무모한 놈은 분명히 요절을 당할 것이야. 하하하하! 하하하하!”

포사는 광포한 웃음을 끝으로 허리춤이 두 동강으로 갈라져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진건곤의 곁으로 내려서는 인형이 있었다.

“역시나 살기가 가득한 것은 바뀌지 않았군요.”

“이자는 죽어 마땅한 자였습니다.”

진건곤은 놀라지 않고 차분히 답을 하였다.

소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어 마땅한 자는 있지만 자비는 상대를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군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포사라면 살수로 천하에 악명이 자자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진의 신비를 풀은 듯이 보이는군요.”

“모르겠습니다. 신비인의 도움으로 내력은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이 힘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발전 속도라면 앞으로는 저조차도 쉽게 보지 못할 고수가 되겠군요.”

“…….”

진건곤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힘에 대한 근거를 알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살인막의 일이 끝나고 공희국의 일을 마무리 지으면 신비인을 찾아서 심산유곡을 떠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갑시다. 아마도 군자검께선 잠을 못 이루고 계실 겁니다.”

소군의 말은 적어도 운현만큼은 진건곤이 빈자리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누님께서는 어찌 아셨습니까?”

“잠귀가 밝은 편입니다.”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소군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진건곤에게 물었다.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는 표정이어서 편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제가 화산의 무공을 사용한 것은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호호호호! 알았어요. 함구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소군이 잠시 뜸을 들이자 진건곤은 소군을 다시 들여다보아야만 했다.

어두운 밤에 보는 소군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은 인연을 이어서 그랬는지 소군에 대한 감정은 호감뿐이었다.

‘나이를 먹고도 이렇게 아름답다니……!’

“전에는 어쨌는지 몰라도 지금은 매화송이가 확연히 드러났어요. 상처부터 고쳐야 하지 않겠어요?”

“아……!”

진건곤은 검을 들어 포사의 시신에 다시 손을 대어야 했다.

“네에?”

“간밤에 포사를 베었다고 했어요. 역시 사부는 대단합니다.”

“포사라면 살인막의 개백정이라고 불리는 그 포사 말입니까?”

모용자표가 놀라서 다시 물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이미 흑암도 베셨는걸요.”

연흥은 자신의 일인 양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모용가의 후기지수와 당가의 후기지수들은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흑암이라면 귀신같은 은신술로 유명했다. 기습에 당하지만 않는다면 어찌 상대해 볼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포사는 다르다.

포사라면 강한 무공과 잔인한 손속으로 멸절의 상징과도 같은 자가 아니었던가? 구파일방의 장로급, 아니 그 이상의 인물이었다.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청린의 목소리가 울렸다.

“흥! 그래봤자. 대사형의 상대는 아니에요.”

화산의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청린을 바라보았다.

청린은 그 눈길이 부담스러웠던지 꼬리를 말았다.

“왜나면 대사형이 살마군을 벨 테니까요.”

그 말에 또다시 모두의 눈길이 청송을 향했다. 그럴 수 있느냐는 뜻이다.

청송은 못 말리겠다는 듯이 청린을 바라보았다.

“원시천존! 어찌 그리 명리에 매달리는가, 사매? 우리는 도를 가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사형. 전 사실대로 말씀드린 것뿐이라고요. 우리의 목표는 살마군을 척살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잖아요, 그렇죠?”

“맞지. 대사형은 꼭 그러실 게다. 그러니 안달하지 말고 기다려라!”

청명이 나서서 말을 꺼냈다. 그러자 청암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주었다.

모용가와 당가의 후기지수들은 완전히 질리고 말았는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들로서는 살마군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높은 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진건곤의 일행은 채비를 점검하고는 곧장 소룡산을 향해 올라갔다.

금산의 북쪽에 있는 산이었는데 금산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 그 못지않은 큰 산이었다.

일행의 앞에 누군가가 질풍처럼 달려 왔다. 실로 대단한 경공을 자랑하는 자가 아닐 수 없었다.

“오셨습니까, 무상 장로님!”

“소선풍이로구나. 수고가 많다. 가자.”

소선풍이라면 그토록 빠른 경공이 이해가 간다. 소선풍의 사부는 질풍개. 강호에서 가장 빠른 인물이었다.

질풍개를 따라 모두 경공을 펼치며 달렸다.

울창한 숲 속으로 한참을 들어가자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다.

“허허! 이런 곳을 도대체 어떻게 찾은 건지……!”

“살수들이 지내려면 이런 곳이 아니면 안 되겠지요.”

한마디로 음습한 놈들이니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어서 오시오.”

질풍개였다.

질풍개는 직함에서는 무상인 투개에게 밀렸지만 같은 기본적으로는 같은 항렬의 장로였다.

질풍개의 뒤로 무림대회에서 보았던 노룡이 서 있었다.

“선풍아! 이 근처에 강이 있겠지?”

“이 뒤로 강이 흐르지요.”

“그쪽도 살펴야 할 것인데.”

“물론, 놈들이 강물로 뛰어들어도 다 감시할 수 있지요.”

“잘했다.”

“하하하! 뭐, 내가 했을까요? 장로님이 조처한 일이지요.”

“일단 필요한 물건은 다 구비해 왔으니 들어가 봅시다.”

투개가 앞장서서 들어서려는데 운현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함께 들어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소검후께서는 뒤를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지요.”

뒤에 남아 일행의 퇴로를 확보해야 하는 일을 시켰는데도 불만이 없는 소군이었다.

“건곤이 앞장설 것이요. 만공개는 진법을 살펴주고 당 공자는 기관을 살펴주게! 그 뒤로 청송이 서서 그들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해라. 풍개는 가장 뒤에서 소검후께 넣을 연락을 맡게.”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이라도 있었던 듯 거침없이 짜는 진용이었다.

하지만 그 진용에 견실함이 있어 아무도 그 내용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거의 입을 여는 법이 없는 운현이었지만 입을 여니 모두가 그 말을 따랐다.

오늘 일의 주재자는 화산이었고 그중에 가장 연장자가 바로 운현이었기 때문이었다.

일행들은 어두운 동굴을 살피며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발밑을 조심하도록! 대개 처음엔 투사형의 기관이 설치된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퓨부부붑!

갑자기 쏟아지는 화살과 암기 세례.

족히 천여 개가 넘어 보이는 쇠붙이들이 간격과 시간의 간극을 이용해 진을 짜고 쏘아져 왔다.

이미 뛰어난 무공을 지닌 후기지수들이었지만 짜인 함정에 빠진 격이니 매우 위태롭게 몸을 간수할 뿐이었다.

만공개와 당관용은 여유가 없어 보였는데 당관용의 방비가 뚫리고 암기가 적중되는가 싶었다.

쩌엉!

벼락같이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암기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당관용이 위태롭게 되자 당가의 장로가 암기를 날려 당관용을 엄호했기 때문이었다.

“허허허! 만천화우를 본 딴 파천진이라면 위험하기는 하지요.”

세가의 장로들은 각기 검과 무기를 뽑아 후견인의 역할을 하였고 운현과 투개는 검풍과 장풍등을 날려 날아드는 암기의 숫자를 줄여 주었다.

폭풍같이 쏟아진 암기들이었으나 한 번의 기관이 멈추고 나자, 뒤에 방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기지수들은 한결 여유가 생긴 모습이 되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긴장을 풀지 말고 모두 발밑과 전발을 번갈아 주시하도록! 뒤에 있는 우리들을 믿지 마라! 너희들의 힘으로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현의 말에 후기지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한 자세로 앞으로 나아갔다.

후기지수들 또다시 몇 걸음을 걸었을까?

“허……!”

잠시 뒤에 진건곤이 신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진건곤의 발밑이 넓게 꺼지며 시커먼 입을 벌렸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넓어 반 장정도 떨어진 진건곤의 옆에 있던 당관용이 함께 함정에 빠져들었다.

떨어지는 중에도 진건곤은 어느새 검을 빼어 들고 함정에 대비하고 있었으나 당관용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용이 없었다. 함정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기 때문이었다.

휘익!

어느 틈에 날아간 운현과 당가의 장로가 두 사람의 뒷덜미를 잡자 급하게 뒤로 튕겨져 둘을 건져 돌아왔다.

“함정에 빠지고 나서 대비하지 마라. 무기로 막을 수 없는 함정도 존재한다. 피하는 것이 더 좋다. 준비한 밧줄은 언제 써먹을 것이냐? 나누어 쥐고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것도 좋다.”

뒤돌아보니 이미 장로들은 밧줄을 꺼내어 한 손씩 잡고 있었다. 여차하면 서로를 구해줄 수 있는 구명줄이 되는 것이었다.

운현과 당가 장로의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는 신속한 움직임은 밧줄에 기댄 일이었다.

만공개가 얼른 짐을 풀어 밧줄을 꺼냈고 그 줄을 길게 풀어 나누어 쥐었다.

과연 몇 번을 그렇게 바닥이 꺼지는 함정을 만났지만 밧줄을 이용하니 쉽게 함정을 피할 수 있었다.

바닥이 꺼지는 함정과 송곳이 솟구치고 암기가 날아오는 함정을 여러 번 통과하고 나자 당관용이 기관의 구조를 꿰뚫어보기 시작했다.

“파천진, 승벽진, 벽이 꺼지는 구조라니. 잘 만들었지만 단조롭구나.”

당관용이 손을 털자 작은 암기가 날아가 바닥의 작은 돌멩이를 때렸다.

덜컹!

바닥이 벌어지며 검은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그 속에서는 메스꺼운 악취가 올라왔는데 당가의 장로가 입을 열었다.

“기린흡혈고요. 이곳에 빠지면 순식간에 피를 빨리고 죽었을 것이요. 운남에서만 사는 것인데. 잘도 길렀군.”

또다시 앞으로 나아갔는데 다시 당관용이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추게 하였다.

“저쪽에 보이는 작은 돌을 베어 주시겠소? 아마도 쇠로 된 것일 것이오.”

당관용의 요구에 청송이 검을 뽑았다.

청송의 검에서 자색의 서기가 어리고 연기 같은 것이 쏘아져 나갔다.

돌멩이는 베어져 나뒹굴게 되었는데 그 속은 비어 있었다.

당관용이 나아가 그 관속에 손을 넣어 용철을 몇 개와 밧줄과 같은 선을 몇 개 끄집어내었다.

“당분간 편안할 겁니다.”

과연 기관이 작동을 하지 않게 되자 편한 발걸음이 되었다. 그렇게 편안하게 수십 걸음을 진행하더니 갑자기 만공개가 걸음을 멈추었다

“독! 멈춰!”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발밑에서 이미 하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독에 대비하기 위해 특별히 두툼한 것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이미 다 녹아 들어가고 있었다.

쏴아아!

곁에 있던 당관용이 얼른 여러 가지 분말을 뿌렸다.

다행히 그중에 하나가 먹혀들었는지 더 이상 진행을 하지 않았다.

손에 잡고 있던 밧줄을 뒤에서 잡아당기자 선두의 후기지수들은 가볍게 딸려와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당가의 장로들과 죄다가 나서서 서둘러 분말을 뿌리고는 신발을 그대로 잡아 뜯었다. 만공개의 발은 이미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당관용과 당관호는 만공개의 발을 치료하였고 당가의 장로가 바닥에 여러 가지의 분말을 뿌리자 그중 하나가 반응하였다. 색이 변하고 한동안 역한 냄새가 일어나더니 모든 반응이 멈추었다.

“청린사의 독입니다. 다른 말로는 칠보단장이라고도 하죠. 일곱 보를 걷는 동안 장을 녹인다는 독인데 다행히 해독제가 있습니다. 이것을 드시죠.”

당관용은 일행에게 노란색 단환을 먹게 하더니 색이 변한 곳을 건너게 하였다.

그런 장면을 당가의 장로는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독이 뿌려진 곳을 통과하여 다음에는 잠시 서 있을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일행이 모여들었다.

으드드득! 으드드드! 드드득!

동굴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일었다.

무언가가 갈리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동굴 벽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일행 중의 누군가가 단말마를 터트렸다.

피할 곳도 없이 막혀버린 동굴에서 무너져 내리는 동굴 벽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공포였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천망진이라니……!”

천망진은 건물을 무너트리는 수법으로 건물에 들어온 자들을 죽이는 수법이었는데 동굴에 응용을 하자 더욱더 무서운 함정이 되고 만 것이다.

하나, 하나의 크기들이 집채만 해서 가만히 있다가는 그대로 압사당할 판이었다.

“이쪽으로!”

운현이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운현의 두 손이 금광을 퍼트리며 어둠 속을 밝혔다. 그대로 허공으로 뛰어올라 천장에서 무너져 내린 벽을 때렸다.

쩌저저적! 쩌저적!

운현의 주먹에서 시작된 균열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맺히더니 자갈 정도의 크기로 산산조각 나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운현이 하는 것을 본 투개도 역시 운현의 곁에 서서 바위를 때렸다.

쩌저저적!

허나, 바위는 그대로 두 동강이 났을 뿐,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건 그대로였다.

하지만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투개가 두드린 바위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또다시 운현은 재빠르게 움직여 주먹을 쳐냈다.

쩌저저적! 쩌적!

집채만 한 바위 두 개가 없어지자 일행이 빠져나갈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곳으로 각기 몸을 뽑아 살아남았다.

“실로 놀라운 공력이요.”

투개였다.

이미 운현의 무공을 보았던 투개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운현의 무공에 너무 놀라 입을 열지 못할 정도였다.

입을 벌리고 반쯤은 얼이 나간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과연 군자검이오.”

“역시 명불허전이구려. 강호 제일의 인재라던 말에 통감하는 바요.”

정신을 차린 장로들은 기억 속에 빛이 바랠 만큼 오래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한때 강호의 미래 질서가 될 것으로 평가받았던 한 사내를 말이다.

그의 이름은 바로 군자검 운현이었다.

특히나 그중에 가장 놀란 것은 청린이었다. 그동안 운현을 가장 우습게보아왔던 만큼 운현이 보여준 모습에 가장 큰 충격을 먹은 듯해 보였다.

‘세상에 이런 괴물들이 세상에 존재하는구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이 괴물에게는 못 미쳐……!’

청린은 그 괴물 덕에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도 잊고 무시무시함을 느끼고 있었다.

청린이 놀라고 있을 때 또 다른 생각에 잠긴 자도 있었다.

‘과연 사부님.’

진건곤은 군자검에 대한 자부심을 새삼 깨달았다.

청송의 느낌은 또한 남달랐다.

‘과연. 절검 사조님의 말씀과 다르지 않구나.’

청송은 절검이 해주었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화산제일검이라는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뿐이다. 운현이 조금만 더 검의 묘리를 깨닫는다면 나와 겨룰 수 있을 것이야. 무식하기 짝이 없는 그 내력이 오히려 깨달음을 얻는 데 방해가 되고 있지.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그 제자가 낫다. 공력이 부족하니 오히려 더 깊게 검을 보거든. 게다가 성격도 제법 충후하고 말이다.’

절검의 군자검과 진건곤에 대한 평이었다. 절검의 안목을 믿고 진건곤을 그토록 중시했던 것이었다.

청송이 들은 바 그대로였다.

운현의 무공에 오히려 해가 되고 있다는 그 무시무시한 공력의 실체를 오늘 비로소 보게 된 것이었다.

청송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사부는 화산의 장문이었지만 실제로는 절검에게 지도를 받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위를 지닌 청송이었다.

운현의 어마어마한 공력을 보자 평생 맞설 수 있는 실력을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만큼 운현의 공력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기름 냄새!”

누군가의 소리에 상황을 깨달았다.

과연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미 동굴의 이곳저곳에서 기름 냄새가 나오고 있었다.

“이곳은 화염에 휩싸일 것이요. 빠져나갑시다.”

운현은 예의 황금빛으로 다시 둘러싸이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길을 뚫겠소.”

운현은 들어왔던 방향도 앞으로 진행할 방향도 아닌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운현의 검이 동굴의 벽을 찌르자 벽은 두부처럼 쉽게 베어졌다.

황금빛의 검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자, 사람 하나가 들어갈 길이 생겼다.

운현이 자신이 판 동굴로 들어가자 뒤따라 들어가는 장로들이 제각기 무기를 들고 동굴의 벽을 깎아 넓혀갔다.

일행은 일제히 그곳으로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화아악!

일행이 구멍 속으로 사라지자마자 화광이 충천해 동굴 속을 열화지옥으로 만들었다.

기름 속에 무엇을 섞었는지 빨간 불을 넘어 파란불이 되어 열화지옥을 만들었다. 동굴을 이루고 있는 바위까지 녹아내리고 있었다.

발밑으로 열화의 기운이 올라왔다.

커다란 바위를 잘라내어 아래를 막았으나 시간이 지나면 소용이 없어질 것에 불과했다.

“건곤! 시간이 없다. 공기가 부족해! 숨이 막히기 전에 뚫고 나가야 한다. 방향을 잡아라!”

일행은 운현의 뜬금없는 소리에 놀라고 말았다.

과연 진건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단 말인가? 일행들의 목숨을 놓고 운현이 실없는 주문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진건곤이 무언가에 집중하듯이 잠시간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이쪽입니다.”

“그쪽은 더 깊이 들어가는 곳이요. 빠져나가려면 이쪽이요.”

모용가의 장로가 소리쳤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진건곤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약간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땅속을 말이다.

“가까운 곳에 빈 공간이 있습니다.”

진건곤은 확신에 찬 듯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더 숨을 쉬려거든, 말을 아끼시오.”

운현은 그 한마디만 남기고는 뒤돌아섰다. 자신의 제자를 믿었는지 진건곤이 잡은 방향으로 검을 놀렸다.

모용가의 장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십여 장이나 벽을 파고 나아갔을까?

공기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숨을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공이 약한 진려경과 청린의 얼굴에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듯이 졸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운현은 알고 있었다.

저런 표정은 호흡할 수 있는 공기가 다 떨어져 갈 때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숨이 막혀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또 겪을 줄이야……!’

그때였다.

진건곤이 운현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그 앞을 가리켰다.

‘이런 감정에 치우치다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거늘.’

운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금광이 너울거리는가 싶더니 운현의 검이 더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굴 속에서 연기와 함께 치솟는 불길이 있었다.

연흥과 연법이 그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다.

“위험해. 멈춰!”

“대사저! 이를 어쩌지요?”

연흥이 애타는 얼굴로 소군에게 물었다.

“후웁!”

소군은 크게 숨을 쉬고는 동굴 속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고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불길이 아니다. 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구나.”

동굴에서 갑자기 치솟은 불길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불꽃의 색이 파랗게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화력을 더 강하게 만들어낸 불꽃! 함정이 틀림없었다.

“아미타불! 시대를 바꾸어갈 재량들이 들어간 동굴이다. 부처님도 이들을 외면치는 않을 것이야. 믿어 보는 수밖에. 아미타불!”

소군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올렸다.

연흥과 연법도 역시 손을 모아 염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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