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19화 (19/61)

제3장

“모든 소식이 끊겼단 말이냐? 흑암도? 삼영도?”

“그렇습니다.”

“흑암이라면 몰라도 삼영 중에 하나는 돌아올 줄 알았거늘……!”

살마군의 탄식이었다.

일비는 그 모습에서 살마군답지 않음을 느꼈다.

평소의 무서우리만큼 치밀했고 계산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그였건만, 지금의 탄식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낸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비는 그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삼영은 은신술과 경공을 주로 익혀 연락과 감시를 주로 하는 자들로 살마군이 직접 키운 고수들이었다.

특급살수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능가할 자가 없었다.

게다가 삼인이 일조가 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보고할 다른 자를 살리기 위해 미끼가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도록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런 삼영이 소식조차 전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은 삼영의 은신술을 꿰어보며 한꺼번에 그들을 처리할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일행의 면면을 보자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화산과 개방! 전면전을 준비하라! 하나라면 몰라도 둘이라면 필패! 한 번도 드러난 적이 없는 자들만 세외로 빼돌려라.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한 번이라도 드러났던 자들은 모두 막궁으로 모이도록 하라! 일전을 준비한다. 으하하하하! 살인막이라면 진저리 치게 만들어 주마. 이길 수는 없다고 해도 최대한 피해를 주리라! 다시 강호에 나왔을 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해주마!”

살마군은 광소와 함께 스스로 전의를 다졌다.

하지만 일비는 그의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다음은 없다. 그저 후사를 도모해 보는 것일 뿐. 세외로 빠져나가도 개방의 눈은 그들을 따라붙을 것이다.

살마군의 말은 허울 좋은 말일뿐, 결국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화끈하게 죽어 보자는 것뿐이다.

그러다 문득 이채를 띠고는 아직도 물러가지 않은 일비를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본 막을 어찌 그리 쉽게 포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마군이시여.”

“뭐라고?”

살마군의 음성에는 노함이 가득해 있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꾸었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너라면 그런 말할 자격이 있지. 네가 본 막의 반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듣거라. 상대는 개방이다. 개방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숨는다고 완전히 뿌리칠 수 없는 상대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나 발각되는 것은 정해진 것과 같다. 이제껏 우리가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구파일방과 원한이 쌓이지 않아서였지 그들이 우리를 무서워해서가 아니다. 방법이 없다. 조금만 더 이런 상태가 유지가 되고 막궁이 완성되었다면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것이 원통할 뿐이다.”

살마군은 원통한 듯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일비는 살마군의 원통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막궁을 만들고 있으니 막궁의 대단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막궁이 완성된 시점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거대문파 두 개 정도로는 뚫을 수가 없다는 것이 일비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마군이시여.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어라?”

“…….”

일비의 입이 작게 움직이자 살마군의 표정에서 놀라움이 번져 나갔다.

진건곤은 연무실에 들어 스스로 현천기공을 돌아보았다.

의식을 집중하니 전중혈에 자리 잡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전에는 그런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기운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일을 왜 미처 깨닫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기운의 흐름이었다.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내공심법의 중심은 단전이었다.

전중혈을 단전으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파격이었다.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그런 것을 생각했다고 해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숨을 들이쉬면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가 대지와 자연의 기운을 담아왔다.

내어 쉬면 그런 기운이 단전에 머물며 나갈 때는 자신이 머물렀던 흔적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그것이 바로 현천기공이 가지고 있는 토납법.

그리고!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기운이 있었다.

들이쉬면 아릿하게 간지러운 듯이 회음혈에서 기운이 일어나 백회혈로 빠져나갔다.

코를 통해 들어온 기운에 비하면 아주 미미해 알지 못하고 지나왔던 기운들이었다.

내어 쉬면 백회혈로 기운이 들어와 회음혈로 나아갔다. 이도 역시 아주 적은 양의 흐름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유숨(흡기와 배기 사이에 기운이 통하도록 숨을 열어두는 것. 숨을 끊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을 하는 동안 대지와 자연의 기운이 그 통로 속으로 따라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전중혈을 단전처럼 쓰다니 이런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며칠 전만 해도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 전중혈에 기운을 두고 살피자 확연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들이었다.

하지만 진건곤은 어찌 전중혈에 그 기운들이 쌓이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신비인께서는 내가 상천을 얻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살인막을 토벌하기 전에 이미 전중혈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거늘 왜 그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진건곤의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이었다.

실상은 간단한 이치였다.

금방 꼼꼼하게 살펴본 창고에 물건을 넣어두면 그 물건을 찾는 것은 다른 곳을 다 찾아본 뒤가 된다.

이는 이미 찾아보았다는 생각이 강해서 다시 볼 생각을 못하기 때문인데 전중혈도 역시 그런 종류의 등하불명(燈下不明)이었다.

단전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한 차라 어떻게든 단전과 연관을 시켰으니 전중혈은 보이지도 않을 수밖에.

하지만 진건곤은 그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는 곧 다른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로 다른 연무실에서 거대한 기의 흐름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전에는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살기에 불과했으나 전중혈에 중심을 두고 나서부터는 보다 더 민감하게 기운을 읽게 되었다.

살인막이 자랑하는 특급살수 흑암의 기운도 역시 가볍게 읽어내지 않았던가?

‘자하기공! 역시 자하기공의 기운은 신묘하기 짝이 없구나. 이런 엄청난 기운이라면 사부님께서 연공을 하시는 건가?’

하지만 진건곤은 다시 생각을 바꾸어야만 했다.

조금 더 집중하자 그것이 운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운현의 숙소로 추정되는 곳에 커다란 기운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운현의 것임에 틀림없었다.

운현의 기운은 바로 전에 대단한 것이라고 놀랐던 것보다 더 거대하기 짝이 없었다.

‘허! 사부님의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구나. 그럼 이 대단한 기운은 형님의 것이로구나.’

출렁!

순간적으로 증폭되는 기운이 넘쳐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농후한 기운이 느껴져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

그러나 그 기운은 일정범위 이상을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더니 조금씩, 조금씩 주인에게로 다시 흡수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역시 형님은 실력을 감추고 있었구나.”

진건곤은 새롭게 발견한 내력을 사용한다면 어느 후기지수라도 꺾을 자신이 있었는데 청송의 진면목을 느끼자 승부를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였다.

진건곤이 수련을 끝내고 연무실을 나서자 려경이 찾아와 전갈을 전했다.

“오라버니. 시간이 되시면 개방의 손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알았다. 내 찾아가도록 하마. 그런데 려경아.”

“네, 오라버니.”

“사부님께 말씀은 올렸느냐?”

진건곤의 말에 진려경의 얼굴에는 근심이 서렸다.

“으흠, 청명이 말씀드리려고 눈치만 보는데 사부님께서 항상 굳은 얼굴로 계시니 용기가 안 난다고 하네요. 그 겁쟁이 녀석이요.”

“하하하하! 너희들은 평생 혼인하기가 어렵겠구나.”

“네?”

“사부님은 말이다. 좀처럼 웃으시지 않는 분이지 않느냐? 그 겁쟁이가 말을 꺼내려거든 오래 걸릴 것이라는 말이다.”

“흐으음, 정말로 그렇지요? 저도 사부님은 무섭기만 해요, 오라버니!”

“내가 말씀을 올려도 되겠느냐?”

진려경의 얼굴이 반색이 되었다.

“사부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오라버니밖에 없어요. 오라버니가 말해 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려요.”

“알았다. 당장은 어렵겠고 살인막 그놈들을 징치하는 대로 혼례를 치르는 것으로 말씀을 드려보마.”

진려경은 밝은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오라버니?”

“왜?”

“정말 고마워요. 오라버니가 생각보다 더 강해서 놀랐지만 그날 그 모습은 정말 멋졌어요. 과연 소군께서 각별히 대하실 만해요.”

“하하하! 오라비를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구나. 하지만 아직은 누님께 비하기에는 턱도 없다.”

“하지만. 후기지수 중에는 최고라고요. 전 오라버니가 무림대회의 우승자인 화산무적검보다 더 강하다고 믿어요.”

“아니다. 그건 모르겠다.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로 다시 모를 일이 되어버렸다.”

“네에?”

“하하하하! 그럴 일이 있다. 형님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니까.”

머리를 묶은 새끼줄이 두 줄, 새끼줄에는 여덟 개의 매듭이 지어져 있었다. 개방의 장로라는 이야기.

그 사이로 중구난방으로 뻗어 나온 머리칼에 거무스름한 얼굴과 자른 지 석 달은 되어 보이는 다듬어지지 않은 수염.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대단한 싸움꾼 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거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진건곤은 그의 기운이 차돌처럼 단단하고 굳건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가 바로 말로 들은 투개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투개라면 개방이 자랑하는 최강의 싸움꾼이다.

그를 표현하는 말은 강하다느니 패도를 추구한다느니 이런 말이 아니었다. 그저 싸우기를 좋아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그야말로 한없이 강하고 한없이 강한 패도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투개님을 뵙습니다. 군자검의 제자 진건곤입니다.”

“하하하하하하! 자네가 전진자로군. 만나서 영광일세!”

“당치도 않으신 말씀입니다.”

투개가 씩 웃으며 꺼낸 말에 진건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개방의 인물이라고 해도 명성이 하늘을 찌르는 투개가 후기지수에 불과한 손아래의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격의가 없을 줄이야.

“하하하! 겸양하지 않아도 되네. 이미 자네에 관한 것은 만공개에게 들었지. 한 번 붙게 해주기 바라네.”

“네?”

“하하하하! 놀라기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지 않나? 자네 이야기를 듣고는 좀이 쑤셔 기다릴 수가 없어 여기까지 찾아왔다네. 괜찮다면 지금 당장 붙어 보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진건곤은 넋이 나가고 말았다.

‘세상에 개방의 장로께서 나와 싸우기를 원하신다니……!’

“하하하하! 저를 놀리십니까? 제가 어찌 상대가 되겠습니까?”

진건곤이 정색을 하자 곁에 있던 만공개가 나섰다.

“장로님, 그리 말씀하시면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겨룰 것인지를 말씀하셔야죠.”

“하하하하하! 이런,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물론 공력은 자네의 수위에 맞추도록 함세. 자네의 무공이 드물게 정순하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네.”

“그런 것이라면 왜 사부님께 부탁하지 않으십니까?”

진건곤은 공력을 맞추어준다고 해도 아직도 사양하고 싶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돌과 같은 기운이라면 공력을 맞춘다고 해도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익숙하지 못한 공력이라서 이런 사람을 상대로 완급을 조절할 자신이 없었다.

투개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하하하하! 그것 보십시오, 장로님. 사정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좋다. 네가 설명하려무나.”

만공개의 설명은 이랬다.

이미 군자검과 비무를 청했었는데 군자검이 쉬이 승낙을 해주었단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투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비지땀만 흘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비지땀만 흘리더니 투개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쏘아져 군자검에게 쇄도해들었다고 했다.

군자검의 검과 투개의 맨손이 몇 차례 부딪히자 장내는 매화향이 가득했고 어느새 투개의 어깨 부근에 군자검의 검이 지나간 자국이 남았다고 했다.

투개는 그 자리에서 군자검의 검로가 정순함을 칭찬했는데 군자검이 말하기를 진건곤의 검로가 자신 못지않게 정순하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진건곤에 대한 관심이 커져 진건곤이 연무실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장로님은 자네의 무공을 보고 싶어 하신다네. 어떤가? 전진자, 나와 한 번 놀아보겠는가?”

“공개야,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저 녀석은 나랑 싸워야 한다.”

“하하하! 장로님. 전진자의 태도를 보지 않았습니까? 장로님이 나서신다면 아마도 그의 무공을 보기가 어려우실 겁니다. 대신 제가 싸울 테니 구경이라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놈이!”

‘허허! 이분들이 하시는 양을 보니 비무를 피하긴 힘들겠구나. 이왕이면 새로 얻은 공력에 익숙해지는 것도 좋겠지.’

만공개와 투개가 서로가 싸우겠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진건곤이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누구랑?”

투개와 만공개가 동시에 뱉어낸 물음이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가르침을 청했다는 것은 투개와 비무하겠다는 것이었다.

만공개는 조금 전까지 못하겠다고 나섰던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가 되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하! 그것 봐라. 아무리 봐도 너 같은 풋내기보다는 나 같은 고수가 좋겠지 않겠냐?”

“단, 팔 성의 공력을 써주십시오.”

“흐흐흐! 팔 성이라 그것 가지고 되겠냐? 칠 성으로 낮추어줄까?”

“아닙니다. 저도 팔 성으로 할 것입니다.”

진건곤의 말은 결국은 생사결이 아닐 뿐, 각자 똑같은 조건으로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투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져 갔다.

“그래도 되겠느냐? 아직은 뒷물결에 밀릴 만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제 검은 좀 사부님보다 더 사나운 편입니다.”

사실이었다.

진건곤은 언제나 내력의 부족을 느껴왔다.

가진바 내공을 똘똘 뭉쳐 싸워야 했기에 항상 빠른 승부를 보려고 노력했다.

그게 진건곤의 검이 사나운 이유였다.

하지만 투개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기실 팔 성의 공력만 쓰기로 하여 여유를 두고 스스로의 내공에 익숙해지고자 했지만 그것을 알아줄 리가 없다.

말도 안 했는데 알아 줄 것이면 돗자리를 펴야 한다.

일단은 내력을 똑같이 팔 성으로 하자니 정상적인 대련을 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거기에 운현 더 사납다는 말을 했으니 오해하는 것을 피하긴 어려웠다.

투개가 자존심을 상한 듯, 차가운 말투를 사용하자 진건곤도 역시 지지 않고 불을 붙였다.

“따라 나오너라!”

투개는 어느새 질풍같이 날아가 버렸다.

“자네, 어쩌자고 장로님의 자존심을 건드렸나? 장로님의 다혈질은 좀처럼 식지 않는 편이란 말일세.”

“이 정도는 되어야 저도 긴장을 하지 않겠습니까? 나가지요.”

만공개가 나서서 길을 안내했다.

탐조각 안에는 비무를 벌일 만한 공간은 없었으니 멀리로 나가야 했다.

한참을 따라가니 투개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았다.

“놈! 그리 자신 있다면 최소한 땀은 흘리게 만들어라. 안 그러면 혼 구멍을 내줄 테다.”

만공개가 뒤로 물러서자 진건곤은 포권을 하며 인사를 올리려 했다.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

투개는 인사를 받지도 않고 불쑥 진건곤의 품안으로 들어오더니 대뜸 장을 뻗어왔다.

이미 품안에 들어와 시전한 장법이니 급작스럽기 짝이 없었다.

진건곤은 서둘러 육합장권의 초식 중에 승척반란장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을 뒤집듯이 때리는 수법으로 가장 짧은 동선을 가지 수법이었다.

파앙!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오고 진건곤은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는데 투개는 겨우 한 걸음 뒤로 물러났을 뿐이었다.

“오호! 요놈 보게! 큰소리칠 만하구나!”

투개는 신난 듯이 소리치며 또다시 진건곤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그런 듯했던 투개의 신형이 잠시 흔들리듯 하더니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피잉!

검광이 번뜩거리고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진건곤이 그 짧은 순간에도 검을 뽑아 대각으로 갈라버릴 듯이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좋구나!”

투개의 소리는 삼 장쯤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말은 그리하였지만 진건곤의 날카로움에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보법을 펼쳐버린 것이다.

반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몸을 밀어 넣었는데 진건곤의 검은 그 짧은 틈에도 이를 날카롭게 세워 자신의 몸을 가를 듯이 찔러 들어왔던 것이다.

너무나 날카로워 장법으로 막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고만 투개였다.

‘과연 군자검이 자랑할 만하구나. 하지만 정교한 초식이 전부가 아니지. 내가 명색이 투개다. 너 같은 녀석을 깨부수는 건 바로 나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지.’

“애송아! 제대로 가보자!”

투개의 몸에서 바람이 일어나 주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쿵!

투개가 디딘 일보에 땅이 울리는 소리가 일었다.

쿵쿵쿵쿵쿵!

연방 땅이 울리는 묵직한 소리가 일어나고 투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진건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건곤은 투개의 몸을 감싸고 있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그 힘이 배로 늘어나더니 결국에는 엄청난 기운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크!”

투개가 뿜어낸 암경에 몸이 짓눌리자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간 신음이었다.

과연 개방이 자랑하는 무상. 건곤은 그대로 있다가는 아무런 손도 못써본다는 생각에 검을 앞으로 내세워 예리한 기운으로 암경을 갈라내었다.

“흥!”

투개가 뿜어낸 외마디.

상대의 어떤 수작을 부리던 그런 짓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패(覇)의 표상이었다.

그와 함께 뻗어 나오는 투개의 장에는 뿌연 연기가 서려 있었다. 내력을 둘러 적수공권으로 병기를 상대하는 경지에 이른 투개였던 것이다.

오직 하나의 장법이었는데 그 안에는 패의 힘이 들어 있었다. 오롯이 힘만을 숭상하는 패의 기운이 검을 무시하며 그대로 진건곤을 부수려 하였다.

진건곤은 새롭게 얻은 전중혈에서 시작되는 내력을 검에 담았다. 정확히 팔 성!

검 끝이 거칠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황미의 묘리다.

투개의 장공을 거칠게 두드려 방향을 바꾸려 하였다.

떵!

굉음이 울리고 손과 검이 미끄러지듯이 빗겨나가며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다.

황미의 묘리가 투개의 패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 또한 투개의 패가 진건곤의 잔재주를 완전히 파훼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경험에서는 투개가 더 앞선 듯, 한 번의 격돌 이후에 연이어지는 공격은 투개가 더 빠른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돌리며 찍어가는 팔꿈치가 진건곤의 아랫배에 꼽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진건곤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 틈에 검을 디밀어 넣어 벼락같이 검을 찔렀다.

푸스스!

투개의 신형이 공기 중에 흩어져 나갔다.

“큭!”

진건곤의 신음이었다.

무거움 뒤에 바로 가벼움의 극치인 이형환위라니!

궤를 달리하는 무공까지도 막힘없이 사용하는 투개의 무위에 놀라고 말았다.

투개가 보여준 신법은 바로 취선보라는 보법이었다.

십 성에 이르면 몸을 지키지 못하는 바가 없고 극성에 이르면 이형환위를 부른다는 보법.

개방이 천하에 자랑하는 자랑거리였다.

가짜 형상이 모두 흩어지기도 전에 전혀 다른 반대쪽에 나타난 투개의 장(掌)이 진건곤의 복부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진건곤의 검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최단의 직선을 그리며 투개의 장을 맞이하였다.

마치 어느 쪽으로 투개가 움직이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는 듯한 검로!

‘이형환위조차 안 통한단 말인가?’

투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형환위라면 최고의 극성의 보법을 실현했을 때만 나오는 환상의 무공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 검을 내밀어 오는 진건곤은 놀라움 덩어리였다.

기운을 읽을 줄 아는 진건곤에게는 이형환위는 그리 위력적인 것이 못되었다.

검과 장이 맞부딪혔다.

황미의 묘리로 밀어내려 해도 투개가 보인 패의 무공이라면 그 굳건함으로 진건곤의 신형을 때려나갈 뻔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투개의 몸이 갑자기 더 빨라져 쭉 늘어나듯이 진건곤을 통과하고 지나갔다.

실제로 통과할 리는 없으니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것이리라!

펑펑벙벙!

속도가 너무 빨라 극한의 보법을 보여주었던 투개마저 자신의 몸을 추스르는 데 힘을 써야 할 정도였다.

“사량발천근?”

투개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그렇습니다.”

진건곤의 대답에 투개는 스스로 두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전신에 휘몰아쳐 돌던 내력마저 곱게 잠재웠다.

“졌다. 십 성의 신법으로도 재미를 보지 못했으니 내가 졌다. 그나저나 그 순간에 사량발천근이라니? 어떻게 이런 무공을 익힌 거냐? 석년의 군자검으로서는 꿈도 못 꾸었을 것이야. 가공스럽구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하하하하하! 무인들은 지고도 가르치는 것이 있는지 몰라도 난 싸움꾼일세. 나는 그딴 것은 모르네. 오늘 투개가 전진자에게 패했음을 알 뿐이네.”

투개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런 세상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구먼.”

둘의 비무를 보았던 만공개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다가와 입을 열었다.

“투개님이 보법만 그랬다고는 하지만 십 성의 공력을 쓰고도 이기지 못하다니, 자네 사람이 맞나?”

진건곤은 그저 미소만 지었을 뿐이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진건곤은 탐조각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만공개는 자신의 길로 가지 않고 진건곤을 따라잡았다.

“자네야말로 후기지수 중에 단연 발군일세. 화산무적검이나 무당금검은 모두가 허명이야.”

“그렇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화산무적검이라면 절대로 허명이 아니지요.”

“무엇이?”

만공개는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가 얼른 진건곤을 따라잡으며 다시 물었다.

“화산무적검이 허명이 아니라면 그가 더 고수란 말인가?”

“글쎄요.”

작은 미소를 남기며 웃는 그 모습은 언젠가 청송이 보여주었던 미소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하하하하! 형님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었을까?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야. 형님은……!’

“어허, 이보게 말은 해주고 가야지!”

만공개의 음성이 울렸지만 진건곤은 그냥 제 갈 길을 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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