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18화 (18/61)

제2장

일행의 목적지는 하남성 여남의 동쪽에 있는 천중산이었다.

말을 달려 닷새 만에 도착한 천중산은 작은 동산이 아닌 보기 드물게 큰 산으로 여러 개의 산들이 줄지어 이어져 만들어진 산이었다.

그 크기는 한눈에 산의 끝자락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천중산은 그 크기만큼이나 영험함이 깊은 산이었다.

많은 도인들이 찾아와 도를 구했지만 이곳에는 문파가 들어선 적은 없었다. 바로 하남성의 태산북두. 북숭 소림에 대한 예우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크고 깊은 산이 있었다니 과연 살인막이 숨어 있기에는 안성맞춤인 산이구나. 게다가 이런 곳에서 활을 쏘고 숨는다면 찾기가 어렵겠어. 철혈궁왕이 이곳에 있다면 상대하기가 까다롭겠어.”

누더기 옷을 입은 자가 울창한 숲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말에서 내린 다른 일행들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울창한 숲은 먼 거리에서 쏘고 도망치는 자를 추격하기에는 거추장스러운 곳이 아니던가?

“이런 곳이라면 상당히 불리하겠어요.”

“사매마저 그리 생각할 정도라면 철혈궁왕이 이곳을 벗어날 리가 없겠지. 어쩌면 이곳으로 우리를 유인한 건지도 모르지.”

거지는 철혈궁왕의 위치라고 전해 받았던 종이를 꺼내더니 지형과 비교하며 방향을 확인하였다.

“이쪽이구려! 저 위로 올라서면 철혈궁왕이 있는 곳이 보일 것이라고 되어 있소.”

얼핏 종이를 본 것뿐이었는데도 움직임에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일에는 익숙한 자였거나 상당히 뛰어난 오 성을 지닌 자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만공개. 십만방도 중에서도 후개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탁월하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할 것이었다.

“사매와 려경이는 내 뒤로 와서 선다. 나머지는 각자가 스스로를 책임지도록! 건곤, 부탁한다.”

청송은 청암과 청명을 좌익과 우익으로 놓아 여자들을 보호하는 진형을 짜고는 청송이 신중하게 검에 손을 얹고는 진건곤에게 눈을 맞추었다.

진건곤도 역시 고개를 끄덕여 답하였다.

“갑시다.”

청송의 신호에 맞추어 만공개가 앞장서서 깊은 숲 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드드득! 푸드득!

새 한 마리가 사내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

사내는 익숙한 솜씨로 발목에 매인 전서를 풀어내었다. 전서를 챙긴 사내는 바로 이비.

전서를 본 이비의 얼굴에는 미소가 서렸다.

어딘지 모르게 잔인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흐흐흐! 왔구나. 나 또한 목숨을 걸어주마! 으하하하하!”

이비는 살행의 주사(主事)가 된 이후로 실패한 적이 없었으나 진건곤에 의하여 그 기록이 연거푸 깨진 적이 있었다.

이비에게는 다른 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의미가 있는 진건곤이었다.

숲에 들어와 움직인 지 두 시진이 지났을 때였다.

‘이상하구나.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진건곤은 묘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꺼려지면서도 정작으로는 그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만공개가 처음 보는 길이지만 시원시원하게 길 안내를 하고 나섰다.

그랬기에 진건곤은 무언가 꺼림칙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서서 말할 수가 없었다.

증거도 없이 나서기가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이해가 안 가. 이 느낌은 도대체 무어란 말이냐?’

하지만 한참을 걷는데 시간이 가도 묘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진건곤은 문득 느껴지는 것이 있어 발에 걸리는 돌멩이 하나를 내력으로 눌러 부러트렸다.

똑!

작은 소리와 함께 부러진 돌이 만들어졌으나 일행의 걸음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한 일이어선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일 각이나 지났을까?

“이런! 정지! 진법입니다.”

진건곤이 소리쳤다.

일행의 시선이 한 진건곤에게 모여들었다.

“무슨 말이요? 진법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모른단 말이요? 장담하건대…….”

만공개였다.

기실 남들이 보기에는 성큼성큼 나아간 것같이 보였지만 만공개로서는 주위를 모두 살피며 지나온 길이었다.

“저것을 보시오.”

만공개의 말을 끊어내고 진건곤이 가리킨 곳, 좌로 오 장 정도가 떨어진 곳에는 부러진 돌이 있었다.

“내가 부러트린 돌이요. 한 방향을 향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같은 곳을 돌고 있었던 것이요.”

“하지만 어떻게?”

청린의 목소리였다.

청린은 이 자리에 모인 화산의 일행 중에서는 가장 진법에 밝았다. 자신이 알아보지 못한 진법을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만공개도 역시 마찬가지.

문무쌍겸이라는 평가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진법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던지라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그저 의심스러웠을 뿐이지. 그래서 돌을 부러트려 확인을 한 것이니까.”

청린과 만공개가 주위를 둘러보니 한참만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렇게 공을 들인 진법이라니. 몰라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아니 알아보는 것이 무리겠어.”

“급하게 만든 진법이 아니군요. 이렇게 오래된 진법이 있다면 어쩌면 이곳이 살인막의 본거지인지도 모르겠어요.”

만공개의 말을 받은 것은 청린이었다.

청린도 역시 이곳에 펼쳐진 진법을 알게 되었다.

“절묘한 지형에 살아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진주(진의 방위와 구궁을 비틀어 기운을 왜곡하는 힘의 원천이 있는 자리)라……!”

“게다가 팔괘의 자리에는 묘하게도 커다란 바위들이 자리 잡혀 있고요.”

청린과 만공개의 말을 듣고 보니 구궁에 속하는 자리에는 모두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뿌리에 이끼마저 끼인 것들이 쉽게 알아보지 못하도록 자연스레 위장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알고 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형은 들쑥날쑥 높낮이의 차이가 심했다.

하지만 산속에서 만난 길이라면 그 정도는 예사의 것.

그러나 문제는 높낮이가 달라지면 주위의 풍경이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하물며 같은 길을 도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때마다 옆으로 오 장여 이상 다른 곳을 걷게 되는 소용돌이 구조에 높낮이까지 다르다면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리라.

참으로 절묘하게 만들어진 곳이었다.

진법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다고 하여도 경험이 있는 대가(大家)가 아니라면 속아 넘어가도록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어져 있었다.

“구절양장진! 이곳을 벗어나야 하오!”

만공개가 진의 이름을 떠올리며 움직이려 했다.

산등성이 너머에서 몸을 감춘 채 진건곤의 일행을 지켜보던 이비는 안타까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손에는 서역에서 건너온 기물인 천리경이 들려 있었다.

“저곳에 멈추다니. 조금만 더 갔으면 금금행진의 영역에 들었을 것인데……! 이것도 전진자의 능력이란 말인가?”

이비의 손이 이미 정해진 수신호를 보내자 진건곤 일행의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진건곤의 일행을 행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작은 기둥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쇠막대를 들고 있는 자가 있었다.

바로 철혈궁왕과 무림 십대 기병이라는 철혈섬궁이었다.

“북방 살기!”

만공개가 진의 이름을 떠올린 것과 거의 동시에 진건곤의 경고성이 울렸다.

갑작스레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느낌이 있었다.

바로 전에 느꼈던 그 살기!

슈육! 까앙!

청송의 득달같이 앞으로 치고 나가자 허공에 불똥이 튀었다.

갑작스러운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내는 청송이었다.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쓰게 할 정도의 여유 있는 처리!

참으로 놀라운 솜씨였다.

그 장면을 본 청명과 청암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진건곤이 받아내었기에 자신들도 역시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으나 철시를 직접 보자 그런 생각은 쑥 들어가고 말았다.

날아드는 화살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진건곤도 그 장면에 얼굴이 굳어졌다.

철혈궁왕의 철시가 허공에서 그대로 잘려 나갔기 때문이었다.

바로 공력의 차이.

진건곤으로서는 튕겨내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청송은 그대로 잘라내었다. 또 한 번 자신의 내력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저 정도 여유 있는 실력이라면 내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궁왕인가?”

청송이 외쳤지만 진건곤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연이어 날아드는 살기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궁왕의 것처럼 살이 찔리는 듯한 예기는 없었으나 분명히 비슷한 느낌의 것이 사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사방(四方)!”

진건곤의 목소리가 울리고 청명과 청암이 나섰고 만공개가 거들어 사방을 채웠다.

약속도 없었지만 빈자리를 찾아들어 가는 모습이 너무나 매끄러워 만공개는 역시 뛰어난 고수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궁왕이 아닙니다.”

진건곤의 답이 나오자마자 고개 너머에서 일제히 사람들이 불쑥 솟아올랐다.

진건곤의 일행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은 수십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슈슈슈슉! 슈슈슉!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있었는데도 청암과 청명, 청송과 만공개가 검과 봉을 떨치자 수많은 화살 중에도 그 막을 뚫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이 쏘아대는 활은 전문적으로 익힌 것은 아닌 듯, 철혈궁왕의 것처럼 위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형, 어찌할까요? 치고 나가서 각개로 싸울까요?”

청암이 다음의 대처를 물었으나 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불가(不可)!”

“우리는 진법에 들어와 있어요. 평소처럼 달려서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해요.”

만공개가 반대하고 청린이 그 이유를 달았다.

“제가 생문을 찾을게요. 버텨 주세요.”

청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손을 꼽으며 계산에 들어갔다.

“남방!”

진건곤의 목소리가 울리자, 청송이 또다시 남방으로 날아들고 허공에서 불똥이 튀고는 두 동강이 난 철시가 땅에 떨어졌다.

진건곤은 어느새 청송이 있었던 자리로 들어가 화살을 쳐내고 있었다.

빈틈없는 동작으로 미리 연습이라도 해둔 것처럼 딱 들어맞았다.

진건곤의 무공도 역시 후기지수들의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진의 출구를 찾았어요. 동남향으로 아홉 보를 가요.”

일행이 청린의 지시에 따라 몇 걸음 움직였을 때 또다시 궁왕의 철시가 날아들었다.

“남방!”

청송이 또다시 여유 있게 궁왕의 철시를 막아내고 일행들은 청린의 지휘대로 움직여 나갔다.

빈틈없이 활을 막아내고 궁왕의 철시를 막아가며 순조롭게 구절양장진을 빠져나갈 수 있을 듯이 보였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번번이 함정을 빠져나가는 거지?”

이비가 준비한 함정의 중요한 부분은 바로 금금행진이었다. 금금행진에 갇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당도하기도 전에 예전부터 공들여 만들어 놓은 구절양장진이 간파될 줄은 예측하지 못하고 있던 점이었다.

하지만 당황은 순간이었다.

“흥! 제법 진법에 밝은 자가 있었던 모양이군. 그렇게 되면 곤란하지.”

진건곤의 일행이 화살을 막아가며 구절양장진의 퇴로를 밟아 나가는 것을 확인한 이비였다.

또다시 이비의 손이 움직였다.

그와 함께 또 다른 작전이 시작되었다.

사위로 날아드는 활을 쳐내는 중에도 일행을 향해 다가드는 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이제껏 활을 쏘던 자들 중에 반수 정도가 굵고 긴 쇠사슬을 들고 일행을 향해 내려왔다.

그들은 일행을 빙 둘러싸고 서로에게 쇠사슬을 던져 마주 잡더니 힘 있게 당겨 일행을 압박하여 들어왔다.

깡깡깡!

불똥이 튀어 올랐다.

일행들은 활을 막아가며 다가오는 사슬을 때려보았지만 엄지만 한 굵기로 만들어진 쇠사슬은 견고하기 그지없었다.

사슬까지 견제할 수 없었던 터라, 사슬로 짜인 포위망이 완성되어 일행의 움직임을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청송이 우뚝 서 검에 진기를 모으자 청송의 검에 자색의 서기가 서렸다.

“자하신공!”

만공개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자색의 서기를 뿌리던 청송의 검이 굵은 쇠사슬이 있는 곳을 지났다.

치링!

툭! 철렁!

일행을 옥죄던 쇠사슬 하나가 잘려 나갔다.

또 다른 사슬을 잘라가는 찰라. 청송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아주 미세한 기척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송이 주위를 둘러봐도 상대는 나타나지 않고 검은 움직일 바를 몰랐다.

“아래! 조심!”

진건곤이 벼락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청송이 갑자기 검을 들어 땅을 찔렀다.

쩡! 가가각!

땅바닥에서 갑작스레 솟아오른 검이 청송의 검과 부딪히며 금속성을 내었다.

그토록 가깝게 다가올 때까지 살기나 기척을 전혀 흘리지 않았기에 청송도 진건곤도 그자의 등장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었다.

검의 주인은 땅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일어섰다.

“놈! 방해가 되는구나. 전진자를 해치우기 전에 너부터 없애야겠어.”

순간 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적어도 절정 이상의 기세!

“이렇게 된 이상 모두가 죽어야겠지.”

괴인은 회색빛 옷을 걸쳤으나 그 빛깔이 짙어 검은색에 가까웠다.

그의 손에는 넓은 도면이 깨어져 우연히 만들어진 것처럼 얇은 도가 들려 있었다.

그렇게 특이하면서 강호에 이름이 높은 병기라면 알아보기도 쉬웠다.

“파형도? 흑암……!”

만공개의 탄성이었다.

흑암이라면 살인막의 굵직한 살수행의 주인공이라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직접 구파일방의 인물을 죽인 적은 없었으나 구파일방의 장로들과 비견되던 자들을 살해한 범인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자였다.

살인막이 자랑하는 특급살수 중의 한 명이었다.

감추었을 때는 느낄 수가 없었으나 막상 자신의 기세를 숨기지 않자 절정고수 이상의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고수였다.

은신해 있다가 행하는 암살이라면 그의 무공보다 몇 배나 더 위력을 보일 것이니 이런 상대를 막을 자가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까다로운 상대였을 것이다.

허나 진건곤의 기이한 능력에 의해 발각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공은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다.

청송은 일행 중에 자신 말고는 그의 적수가 없음을 깨닫고 검을 새로 고쳐 잡으며 흑암에게 집중했다.

“건곤아! 철혈궁왕을 맡아!”

한마디만 남기고는 스스로 선수를 펼치며 흑암에게 쇄도해 들었다.

“이런! 약속대로 전진자만 치고 빠져나오면 되거늘! 저런 자에게 매달리다니.”

멀리서 지켜보던 이비는 특급살수 흑암이 욕심을 부려 청송을 공격한 것으로 생각했다.

진건곤의 경고에 의해 암습이 저지 받았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비가 알기로는 흑암은 겨우 후기지수들을 상대로 자신의 종적을 들킬 고수가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나서야겠구나. 가자!”

이비가 몸을 일으켜 움직이자 이비의 주변에 세 명의 인물들이 솟아났다.

그들의 움직임은 흑암보다는 못했지만 다른 어떤 자들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다.

이비의 발걸음은 철혈궁왕을 향하고 있었다.

까가가강!

청송의 검과 흑암의 기형도가 부딪히며 금속성이 연방 울리고 불똥이 튀어 오르기가 거듭했으나 어디로 치우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의 수위는 동수에 가까웠다.

과연 천하는 넓었다.

후기지수 중에서는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단연 발군에 해당하는 청송이었으나 살인막의 특급살수와 만나자 동수에 불과했다.

‘이런……!’

진건곤은 갑자기 북방으로 뛰어올라 검을 쳐들었다.

까가가강!

금속성이 울리고 불똥이 튀었다. 진건곤의 검은 금세 부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며 떨어 울었다.

바로 궁왕의 철시였던 것이다.

일행의 최고수랄 수 있던 청송이 만만치 않은 상대와 조우하고 있는 상태에서 궁왕의 철시를 막으라는 지시를 내릴 수는 없어 직접 나섰던 것이다.

[쯧쯧쯧……!]

혀를 차는 소리를 들었지만 진건곤은 스스로 착각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곳에 한가롭게 혀를 차는 소리를 전음으로 보낼 자가 있을 리가 만무했고, 철혈궁왕의 철시를 막기도 바빴기 때문이었다.

“청린! 어떻게 움직여야 구절양장진이라는 것을 벗어날 수 있나?”

청린도 역시 화산의 제자였다. 어느새 진건곤의 빈자리를 채워 활을 쳐내고 있었다.

“무슨 소리에요? 대사형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요. 자리를 지켜요!”

돌아오는 대답은 해진법이 아니라 힐난이었다.

“저놈들은 나를 노린다. 내가 일행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훨씬 안전해.”

잠시간 기다려 보니 과연 일행에서 동떨어진 진건곤에게만 집중적으로 날아드는 철시였다.

“궁왕의 철시는 나만 노린다. 형님이 저자에게 묶여 있으니 내가 궁왕을 처리하지.”

“북동 아홉, 북서 아홉 동서 열다섯…….”

청린이 방법을 일러주자 진건곤은 청린이 일러준 대로 움직였다.

[생각대로 이들의 목표는 나다. 려경이를 잘 부탁한다.]

진건곤은 일행을 두고 앞으로 치고 나가며 청명에게 전음을 남겼다.

[형님! 위험해요.]

“오라버니!”

청명과 진려경이 말렸지만 진건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데 느껴지는 날카로운 살기가 있었다. 진건곤은 좌로 돌아서며 검을 쳐내었다.

까드드등!

불똥이 튀어 올랐다.

연이어 날아온 살기에 반응하여 또다시 철시를 쳐내었다. 본격적으로 전진자를 죽이겠다는 듯 연속으로 많은 철시를 날리는 철혈궁왕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이미 일행을 향하던 활은 그 수효가 많이 줄어 있었다.

그저 쇠사슬로 일행이 나서지 못하도록 활동 폭을 좁히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역시 나를 제외하고는 죽일 생각이 없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했으나 실제로 확인하자 진건곤의 발걸음은 좀더 가벼워졌다.

청린이 일러준 방법대로 한참을 움직이자 기묘한 느낌이 사라졌다. 진법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진건곤은 곧장 철혈궁왕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허! 이제는 나를 사냥한다?”

철혈궁왕은 극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몽골 최고의 사냥꾼으로 철혈궁왕의 이름을 얻었다.

몽골 최고의 사냥꾼으로 자부심을 지니고 궁술에 더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활을 고르는 짓 따위는 궁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믿고 살았다.

어느 날, 중원에서 찾아온 자가 철혈섬궁이라는 활을 내밀었다.

중원의 십대 기병이라는 철혈섬궁.

사람 키만 한 크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조차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손목 굵기만큼의 굵은 대를 가진 엄청난 활이었다.

철혈섬궁은 한눈에 몽고 최고의 사냥꾼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중원에서 사람을 상대로 철시를 쏘고 있었다.

스스로의 이름에 오명이라고 느꼈으나 철혈섬궁이 가진 악마적인 위력에 이끌려 오늘까지 오고 말았다.

철혈궁왕의 철시는 내공을 실지 않아도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인들에게도 통하는 궁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사냥감에 불과한 것들이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자신의 철시를 막아내는 것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의 마지막 비법을 사용하고 싶었는데 그것은 봉인이 되어야만 했다.

전진자를 죽이되 다른 자들은 건들지 말라는 말 때문이었다. 너무나 강력했기에 주위에 있는 자들까지 함께 휩쓸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진건곤이 홀로 나서서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것을 보자 자존심이 상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일행을 벗어난 전진자에게는 이제껏 숨겨온 비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놈! 네놈이 감히 나의 철시를 무시하고 덤벼든단 말이지? 좀더 가까이 오라! 반드시 실망시켜 주지 않으마.’

거리가 가까워지자 철혈궁왕의 철시도 역시 좀더 강한 힘으로 진건곤을 향해 맹렬하게 쏘아지고 있었다.

까드드등! 까드드등!

불똥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진건곤의 검은 날이 모두 상해버렸다. 아니 날뿐만 아니라 검주까지 모두 상해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해 보였다.

하지만 진건곤은 철혈궁왕을 향한 걸음을 주저하지 않았다.

철혈궁왕이 오십 보 정도 남았다고 느꼈는데 갑자기 진건곤은 자신의 검을 들어 바닥에 찔러 넣었다.

검을 뽑았을 때는 검 끝에 혈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궁왕의 철시를 쳐내는 간간이 땅속에 검을 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철혈궁왕의 뒤에서 진건곤을 보고 있던 이비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바로 저거야! 어떻게 땅속에 은신해 있는 살수들의 위치를 알 수가 있는 거지? 은신이 확실하게 되어 있었던 것을 확인하였는데.’

또다시 땅에 검을 박아 넣는 진건곤을 보며 머리를 빠르게 굴리는 이비였다.

‘설마……?’

멀리서 지켜보던 이비가 심각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궁왕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궁왕! 그자는 무위를 속이고 있소이다. 삼령과 함께 합공하지 않으면 당해 낼 수 없소.”

철혈궁왕은 굳은 얼굴로 이비를 바라다보았다. 자존심이 상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 솜씨를 판 적이 있으나 자존심을 팔은 적은 없다.”

몽골 사냥꾼의 자부심이 가득 담긴 말투였다.

철혈궁왕은 곧장 철시를 꺼내더니 입에 물더니 철시에 달린 깃털을 한쪽만 물어뜯어 내었다.

이전보다 더 강하게 활시위를 당기는가 싶었다.

퉁! 우우웅웅!

활시위가 튕겨진 소리와 함께 맹렬한 소리가 울렸다.

쐐애애액! 쐐액!

철시는 이제껏 과는 다르게 맹렬하게 회전을 하며 진건곤에게 날아갔다.

그 위력은 전과는 판이 하게 달라서 철시 뒤로 작은 회오리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필시 검으로 막아도 검을 뚫고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경력의 충돌이었다.

진건곤은 땅에 박았던 검을 뽑아 철시를 막으려다 말고 급하게 옆으로 움직여 피했다.

철혈궁왕의 철시에 예전과는 다른 예기와 살기, 힘이 담겨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피이잉!

과연 화살이 지나가고 난 뒤 뒷바람이 울음을 터트렸다.

진건곤은 그것을 보고는 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흥! 피한다고 피할 수 있다면 철혈궁왕의 이름을 얻을 수 없었지.”

철혈궁왕은 작게 코웃음을 치더니 또다시 철시 네 개를 꺼내어 들었다.

세 개를 구부리고 또 한 개는 깃털을 물어뜯어 내었다.

“무인들을 상대하고자 깃이 떨어진 활을 쏘기로 했지. 깃털이 떨어진 활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내 최고의 기술이니 넌 피해선 안 될 것이야.”

철혈궁왕은 진건곤과 대화를 나누기라도 하듯이 말을 하고는 곧장 활을 쏘았다.

일시위에 걸린 네 개의 화살이 그대로 날아갔다.

놀랍게도 세 개의 화살은 타원을 그리며 진건곤의 퇴로를 끊어 진건곤이 피하지 못하도록 하더니 마지막 화살이 또다시 회오리를 이끌며 진건곤의 목을 향해 그대로 날아들었다.

진건곤은 퇴로가 차단된 것을 알고는 곧장 앞으로 뛰어들어 세 개의 화살을 피하였다.

허나 바로 그것이야말로 유일한 탈출구이자 철혈궁왕이 미리 의도해 둔 탈출구에 불과했다.

생로를 열어 들어간 진건곤의 눈앞에는 회오리를 끌고 들어오는 활 하나가 눈 안에 가득 들어왔다.

진건곤은 급하게 검을 들어 중주일검을 펼쳐내었다.

힘으로는 당할 수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황미(荒迷)의 묘리를 담았다.

황미는 거칠음이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힘은 스스로 떨어 울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 격 같지만 스스로 떨어 울며 수차례 부딪히기를 반복한다.

작은 힘이라도 옆에서 여러 번 때리면 상대를 비껴낼 수 있다.

진건곤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 진건곤의 검은 자신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이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까아앙! 퍼버벅!

금속성이 장내를 가득 메우고 하얀 흑백의 물체가 반대 방향으로 튕겨지듯이 날아가 처박혔다.

“우욱! 쿨룩! 쿨룩!”

진건곤의 신형은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고 내상을 입어 토혈을 하였다.

진건곤의 검도 반으로 잘려 있었다.

격돌에 튕겨져 날아간 것 중에 하얀 것이 진건곤의 검이었고 검은 것이 철혈궁왕의 철시였다.

진건곤의 검에는 황미의 묘리는 완전했지만 기본적으로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사량발천근의 묘리라도 최소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할 내력은 있어야 하는데 황미는 거칠게 밀어내는 힘이다.

적어도 상대의 반은 힘이 있어야 하는 무리였으나 사량발천근과 같은 묘리를 펼치기에는 철시의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쯧쯧쯧! 미숙하구나. 상천(上天)의 힘을 열고도 사용을 못 하다니!]

진건곤은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전음이 아니라 머릿속에 울려오는 소리라니!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자신에게 그런 말을 걸 사람을 찾지 못하였다.

[명심해라! 전중, 승박, 하박, 맥문!]

음머어!

소 울음이 울렸다.

불자들이 말하는 득도의 순간이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소 울음이 울렸는데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하였다.

오직 진건곤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진건곤은 소 울음에서 전신이 터져나가는 깨달음을 얻었다.

‘왜 그걸 몰랐을까? 전중, 승박, 하박, 맥문!’

진건곤은 벌떡 일어섰지만 무언가에 넋이 나간 듯이 보였다.

진건곤의 눈의 초점이 철혈궁을 향하지 않고 허공을 보는 듯하였기 때문이었다.

철혈궁왕과 이비의 눈에는 진건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을 각오한 것으로 보였다.

꿀꺽!

철혈궁왕이 놀란 얼굴로 침을 삼켰다.

“어떤 무인도 정면에서 그것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만큼이라도 너의 나이에는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아들 벌밖에 안 되는 너를 상대한 것은 치욕이 아니었다. 허나 이젠 끝을 내야지. 이게 나의 최고의 일발이다.”

어느새 철시를 궁에 걸어 맨 철혈궁왕이 어느 때보다 더 크게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피융!

처음부터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를 내며 긴 꼬리로 회오리를 만들며 날아간 활이었다.

말은 길었지만 순간에 불과한 찰나.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멍한 얼굴로 진건곤이 검을 휘둘렀다.

터엉!

한결 수월하게 철시를 튕겨내 근처의 땅에 처박았다.

깜짝 놀란 철혈궁왕이었다.

‘이런!’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또다시 활을 걸었지만 진건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또다시 철시를 재, 일발의 활을 쏘아 보냈다.

터엉!

철시는 전번과 상대도 되지 않게 쉽게 튕겨져 나갔다.

“과연……!”

진건곤의 중얼거림을 들을 수 없는 철혈궁왕은 무엇이 진행되는지 모르는 듯하였다.

알아도 행동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자신의 평생의 화살이 점점 더 가볍게 취급당하는 것을 보고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활을 당겨 진건곤을 향해 철시를 날렸다.

철시는 허공에 회오리 같은 꼬리를 크고 길게 그리며 진건곤에게 꽂혀 들었다.

터엉! 버버버벙!

검은색의 물체가 순간적으로 튕겨져 나갔다.

커다란 범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나무들이 터져나갔다.

산산이 부서진 나무 속살들이 눈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나무들을 터트리며 나아간 곳의 끝에는 철시가 박혀 있었다.

치이익!

철시의 끝까지 벌겋게 달아 나무를 태우며 하얀 연기를 뿜어내었다.

어찌나 놀라운 장면이었던지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가 놀라서 철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격렬함의 시작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곳에는 봉두난발이 된 채로 반검을 들고 있는 진건곤이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기쁨과 환희로 충만해 있었다.

“이런 것이었다니!”

진건곤은 아직도 허공을 바라보듯 초점이 잡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진건곤의 놀라운 무위에 철혈궁왕은 놀라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

허공을 바라보던 진건곤이 문득 고개를 돌려 철혈궁왕을 보았다.

진건곤의 눈에서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가공할 안광이 번뜩였다. 종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철혈궁왕은 진건곤의 눈을 보자 언젠가 몽고에서 보았던 초원의 지배자인 늑대의 눈빛이 떠올랐다.

안광이 강하기로는 호랑이가 더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늑대가 떠올랐는지는 몰랐다.

다만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할 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진건곤이 오른발을 내디뎠다.

겨우 한 걸음을 내디딜 뿐이었는데 삼 장이 넘는 거리를 움직였다.

오십 보의 거리를 겨우 다섯 걸음 만에 질러 건너 철혈궁왕의 곁에 섰다.

철혈궁왕은 스스로 눈을 감았다.

왜였는지는 몰랐다.

다만 철이 들어서 평생 해왔던 사냥꾼으로서의 감이 시키는 대로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피잉! 툭! 퍼벅! 퍽!

철혈궁왕의 목과 함께 철혈궁왕이 자랑하던 철혈섬궁이 난데없이 스스로 움직였다.

주인의 목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을 뿐인데 철혈섬궁이라고 불리던 희대의 궁은 더 이상 무기로 사용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듯, 시위의 탄력 이상으로 요동치며 땅바닥을 전전했다.

이미 진건곤의 반검이 철혈궁왕과 그의 자랑인 철혈섬궁을 베어 생을 끊고 용도를 끝장내었던 것이다.

“비… 비… 겁한……! 무공을 숨기고 있었다니!”

이비가 진건곤에게 던진 말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진건곤의 반검이 움직였다.

너무나 빨라 그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저 흐릿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반검에서 하얀빛과 같은 것이 쏘아져 이비의 주변의 땅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거…검기!”

땅속에서 선홍빛의 피가 배어져 나왔다.

그 수효는 세 개. 이비의 곁을 지키는 세 명의 호위가 그리 쉽게 사라져 버렸다.

“사…삼… 령의 은신을 이렇게 간단히? 네놈을 도대체 누구냐?”

하지만 진건곤은 이비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이놈! 상천을 열고도 피를 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다니 상서로움이 없는 놈이구나. 쯧쯧쯧! 악선(惡仙)인 게야. 악선! 내가 괜한 짓을 한 게지! 네놈의 악명이 높아지면 내 스스로 나아가 네놈을 거둘지니, 선업을 쌓아 나를 볼일이 없도록 하라.]

진건곤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목소리가 노한 목소리로 변해 진건곤에게 엄중한 경고를 남겼다.

“어느 고인이십니까?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진건곤은 포권을 하며 하늘을 보고는 커다란 소리로 외쳤으나 진건곤이 찾는 자는 나타나지 않고 머릿속에 소리만 또 울렸다.

[명심하여라. 악업을 쌓는다면 내가 너를 찾을 것이다. 상천의 힘은 그리 쓰는 것이 아니니라.]

진건곤은 그 목소리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사방의 하늘에 포권을 취하는 것으로 예를 마쳤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일을 하는 동안에도 이비는 겁에 질려 진건곤에게 감히 암습을 취하거나 하지 못하였다.

철혈궁왕과 함께 철혈섬궁을 단칼에 베어 버린 진건곤의 무공에 압도되어 있었다.

“흥! 암중에 방수가 그리도 많소? 그렇게 높은 무공으로 약자들을 희롱하니 기분이 좋소?”

이비가 진건곤을 만난 이후 한 번도 그 무위를 제대로 측정해 본 적이 없는 것이 분했다.

그렇게 분한 목소리로 진건곤을 힐난했다.

진건곤의 주의가 이비에 이르더니 무서운 눈으로 이비를 노려보았다.

“놈! 나를 노린 이유가 무엇이냐?”

진건곤의 한마디에 이비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네놈들이 먼저 나를 건드리지 않았느냐?’ 라는 질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후후후! 우문(愚問)이었구려. 살수가 그런 말을 하다니 말이오. 나는 살수니 의뢰밖에 더 있겠소?”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이비는 진건곤의 물음에 스스로 살수임을 깨달았다.

“누가 의뢰를 했더냐?”

“모르오.”

이비는 태연하게 말을 하고는 진건곤을 노려보았다.

‘의뢰자를 밝히지 않는 것이 살수의 기본인데 그것도 모르느냐?’ 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진건곤은 더 이상 묻기를 포기했다.

“그럼, 죽어라.”

진건곤의 반검이 이비에게 죽음을 선사하려는 그 순간.

“아우, 멈추게! 살인막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청송과 만공개 등의 일행이었다.

진건곤의 신위가 폭발하듯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철혈궁왕과 삼영이라는 호위를 죽이고 이비의 신병을 확보했다.

흑암이라는 특급살수는 이비의 신형이 확보된 순간 스스로 뒤로 물러나 도주하고 말았다.

청송은 그를 잡지 못했다. 오히려 그렇게 쉽게 도망가는 작태에 놀란 청송이었다.

쫓아가 승부를 내고 싶었지만 자유로워진 손으로 빠르게 장내를 수습하였다. 졸개들을 제압하고는 곧장 진건곤이 있는 곳으로 온 것이었다.

“개방이 이자를 문초하겠소. 그래도 되겠지요?”

만공개가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나서서 이비의 혈을 짚었다.

울컥! 가르르르! 커… 커… 컥컥!

하지만 만공개의 처방은 이미 늦었다.

이미 이비의 입가로 선혈이 거품처럼 차오르고 입 밖으로 새어 나오더니 그 후로는 이따금 기침소리 비슷한 것을 낼 뿐이었다.

그 장면에 일행들은 모두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놈들. 자신의 몸에 화골산을 쓰다니……!”

만공개는 이비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는지 진저리를 쳐가며 소리를 질렀다.

온몸에서 스멀스멀 연기가 올라오고 그렇게 일 각도 안 되어 스스로 녹아내리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행은 모두가 진저리 치며 사태가 일단락된 것으로 알았으나 진건곤만은 달랐다.

“저놈도 잡아야겠죠?”

뜬금없는 한 소리.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청송은 알아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잡아 주려무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진건곤의 신형이 앞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하였다.

일 보마다 쭉쭉 뻗어나가는 신형에 일행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백여 보를 날아가니 맞은편 동산에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숲 속으로 달아나는 것이 나무 사이로 비쳤다.

복장으로 보아 흑암이 분명했다.

그는 완전히 도주한 것이 아니었다. 일견, 도주한 듯하였지만 살인막에서 삼대 특급살수로 꼽히는 자신의 무공과 은신술을 믿었다.

이곳에서의 상황을 살펴 되돌아갈 셈이었다.

기실, 그에게는 능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무공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건곤이 상천에 개안하기 전의 일이었다. 진건곤의 경공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어서 멀리서 보는 그의 모습마저도 신형이 그대로 늘어나 날아가고 나서야 잔영이 뒤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흑암은 전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았어. 완전히 속았어. 빌어먹을! 숨겨놓은 무공이 저리 막강할 줄이야. 함정을 파고 노리고 있었던 것은 본막만이 아니었어. 청송이라는 애송이도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고 지금 저 녀석은 터무니없이 강하다. 본막에 알려야 해!’

흑암은 살인막의 삼대 특급살수였다.

그는 살인막을 통틀어 가장 튀어난 은신술을 지녔는데 애초부터 진건곤을 상대로 은신술을 펼치지 않았다.

본래부터 은신술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거니와 눈앞에서 삼영이 그대로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삼영은 자신과 비교하여도 그리 뒤처지지 않는 은신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진건곤은 눈으로 보듯이 간단하게 그들의 은신술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앞에서 은신술을 쓰는 건 스스로 몸을 묶는 것과 같다. 오직 피하는 것만이 방법이다. 강물에 뛰어든다면 방법이 생길지도 몰라!’

흑암은 경공에 자신의 모든 공력을 쓸어 담았다. 전력을 다한 경공, 그것만이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하지만!

파앙!

주욱 늘어났던 신형이 하나로 합쳐지며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의 면전에 나타난 건. 우뚝 선 진건곤의 신형이었다.

흑암은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도주였다.

“으아아아!”

흑암은 경공을 멈추지 않고 그 기세를 몰아 담아 자신의 검에 모든 공력을 담았다.

일단 쓰면 생명을 깎아 먹는다는 선천의 기운까지 모조리 담았다.

흑암의 기형도의 주위에는 뿌옇게 안개가 서리는 듯하였다.

“암흑수라멸!”

무시무시한 힘이 기형도로 통해 사나운 터져 나왔다.

도가 아닌 도기로 펼치는 무공.

한 번의 도가름에 세 개의 방위로 도기가 치솟아 오르고 각각의 기운은 스스로 생명을 지닌 듯이 사납게 요분질 치며 공간을 갈랐다.

절정의 고수라는 흑암의 평생공력은 한순간에 공간을 점하고 모든 것을 갈라버릴 듯한 사나운 기운으로 변해 진건곤을 덮쳤다.

흑암은 자신의 평생공력을 딱 하나의 초식에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경공과 무공이 펼쳐지는 그 순간이 너무나 절묘하게 어울려 엄청난 상승의 위력을 보이고 있었기에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순간, 진건곤의 손이 흐릿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었는데 한순간 사방을 점한 하얀 아지랑이들이 사방에 흩어지고 있었다.

치리리리리!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울었고 흑암의 맹렬한 도세와 함께 아지랑이들이 사라졌다.

그때까지도 흑암은 경공을 멈추지 않고 달려가고 있었는데 마지막 남은 아지랑이 하나는 그 빠른 움직임 속에서도 유유히 움직여 흑암의 이마에 만났다.

마치 흑암이 빠르게 날아와 아지랑이와 부딪힌 것 같은 순간이었다.

퍼억!

흑암의 머리 뒤로 선혈이 튀었다.

“매화분분?”

어처구니없게도 흑암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화산의 유명한 무공의 초식명이었다.

그것이 왜였는지는 흑암만이 알리라.

아니,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랐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동시에 코끝에 스치는 매화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아지랑이가 사라지며 그 향기는 아지랑이와 함께 바람에 흩어지고 말았다.

치리리리리! 퍼억!

진건곤이 숲 속으로 쫓아 들어가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는 동시에 둔탁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남겨진 일행들은 모두가 놀라고 말았다.

한 수!

금속성이 울리지 않았으니 병기를 섞은 것이 아니었다. 청송이 잡지 못하고 놓친 자를 진건곤이 겨우 한 수만에 잡은 것이었다.

“마…말… 말도 안 돼! 대사형. 저 흑암이라는 자. 대사형이 봐준 거죠?”

청린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며 물었다.

청송은 눈부시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글쎄?”

드러난 상황으로만 치면 진건곤이 더 고수이나 청송이 너무나 밝게 웃어대는 통에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 미심쩍기도 할 정도였다.

청린은 그 미소의 뜻을 알 수가 없었지만 두 번 물을 수는 없었는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때까지 희희낙락 들떠 있는 눈으로 있던 진려경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오라버니가 기운을 느낀다는 말을 믿는 거죠?”

“본인 입으로 살기만 느낀다고 했을 텐데?”

청암이 나서서 선을 그었다.

“설마 숨어서 동정을 살피는 자가 살기를 뿜었을까요? 호호호호!”

기분이 좋았는지 진려경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대며 웃는 표정을 지었다.

“봐라! 허언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했지? 하하하하! 하하하하!”

“큼큼!”

민망한 소리와 함께 청송만이 그 웃음에 맞장구쳐 웃어주고 있었다.

만공개는 그들의 웃음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몰랐기에 버름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만공개가 연기를 피우자 개방의 고수들이 도착하였다.

그들이 숲을 뒤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얼마 뒤에 살인막의 근거지랄 수 있는 동굴을 찾았는데 그 규모가 작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남아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다른 곳을 찾을 수 있는 단서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동굴을 따라 깊게 들어가자 동굴이 끝이 나는 곳에 작은 강이 있었고 오르내리는 시설들이 있었다.

그것이 일행이 살인막을 찾아 움직인 마지막이었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움직일 수는 없었다. 때마침 하남의 탐조각에 운현이 도착하였다는 전갈이 있어 돌아가기로 했다.

일행이 하남 탐조각으로 돌아오니 그곳에는 이미 운현이 도착해 있었다.

진건곤과 진려경, 청명이 매우 기뻐했고 청송과 청암, 청린은 운현을 보고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이제와 보니 어린 시절 자신들이 생각했던 운현과 지금의 모습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려서 보았던 운현은 자신의 정욕에 못 이겨 화산을 버린 반도였었다.

지금 그들은 눈에 보이는 운현은 아주 잘 벼려진 한 자루 검과도 같았다.

그에게는 화산의 상징인 예리함에 있었다. 평소 꿈꿔오던 무인의 표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청송이 사숙을 뵙습니다.”

청송은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예를 올렸다.

“청암이 사숙을…….”

“청린이 사숙을…….”

운현의 눈이 청송을 훑었다.

“사문이 네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들었다. 그럴 만하구나.”

“사숙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운현을 보는 청송의 어깨는 자그맣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흡사 꿈꿔오던 영웅을 보며 벅찬 감동에 휩싸인 아이와 같았다.

하지만 운현은 그런 청송을 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운현이 방으로 다시 돌아들어가자 진건곤과 청명, 진려경은 그 뒤를 따랐다.

“흥! 고고한 척하는군요. 제자도 역시 무공을 숨기고 음흉하기 짝이 없더니, 그 제자에 그 사부예요.”

“사매! 말을 삼가라!”

청송은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 높여 청린을 나무랐다.

청린은 평소와는 다른 청송의 태도에 청송이 진정 화가 난 것을 알고는 금세 울먹일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사형! 자기를 사면시켜 준 사형에게 그리 오만하게…….”

“그럴 자격이 있는 분이다.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을 해준다고 해도 저것이 전부일 것이다. 원래가 그런 분일 터. 나는 괘념치 않는다.”

청송의 음성은 여전히 격양되어 있었다.

“어찌 사형은 그런 말을 하시나요? 그는 화산을 버린…….”

“너도 보지 않았느냐? 사숙의 신위를! 사정이 있었을 것이야. 사숙은 결코 개인의 욕망을 쫓을 분이 아니다. 어려서는 사숙을 보아도 몰랐지만 지금에 보니 확실하게 느껴지는구나. 그렇지 않나?”

청암에게 물었는데 청암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청암의 안색도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어 나름대로 크게 마음이 동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저 또한 검신일체의 무인이 개인의 욕망을 쫓는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무인이었구나 싶을 뿐입니다.”

청송과 청암은 운현이 풍기는 무인의 향기에 흠뻑 젖어들어 빠져나올 줄을 몰랐다.

“난 사숙의 앞에 무인으로서 당당하게 서고 싶구나.”

“틀림없이 그리되실 겁니다.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형!”

청린은 청송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것이 계속되는 그들의 경외심 어린 태도에 노여움으로 옮아갔다. 얼굴이 벌겋게 물들어 돌연 소리를 질렀다.

“흥! 그가 옳았다는 건가요? 그는……! 그는 죄를 지었던 자라고요. 화산을 버렸던 배덕자라고요.”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자신의 어머니를 버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나 차마 그 말을 나오지 않아 운현이 버렸던 화산을 집어 말을 꺼낸 것이었다.

청송은 청린의 소리를 듣고서야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청린으로서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옳지는 않았겠지. 사정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해도 사문의 선택이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야. 그러니 말을 하지 못하셨던 것이겠지. 다만 그 사정이라는 것이 있었으니 사숙의 입장으로 딱하다는 말일 뿐이다. 허나 그것은 사숙의 사정일 뿐이다. 어떤 사정이었어도 호산의 입장에서 사부님과 전대 장문인께서 실수하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청송은 청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제야 청린은 마음이 풀렸는지 눈초리가 내려왔다.

“맞아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틀리실 리가 없어요.”

진건곤과 진려경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었으나 운현은 역시나 목석같은 사내. 짤막한 대답뿐 말이 길지 않았다.

“사부님이 어떻게 변하셨을지 많이 생각했었는데 사부님은 여전히 변하신 것이 없네요. 오라버니가 사부님을 닮았나 봐요. 말이 없어 제가 심심할 지경이에요.”

“려경아!”

운현은 그저 작게 눈으로 웃을 뿐이었고 진건곤이 려경을 말리려 했을 뿐이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갔는데 청명은 심각한 표정을 할 뿐, 말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청명의 태도가 도드라져 시선을 받더니 나중에는 방안의 공기가 무거워지고 려경은 청명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진려경이 손을 돌려 청명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제야 먼 곳을 향하고 있던 청명의 시선이 현실로 돌아왔다.

청명은 비장한 표정으로 운현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저도 가르쳐 주세요.”

뜬금없는 한마디였으나 청명의 비장함은 그것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게 하였다.

“무엇을 말이냐?”

“형님에게 전해준 그 무공 말입니다. 화산의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꼭 배우고 싶습니다.”

“네가 모르는 무공이라면 가일구층황금공뿐인데. 그것은 아직은 미완성에 불과하다.”

운현은 고개를 돌려 진건곤을 보았다.

“너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일구층황금공을 성취했느냐?”

“아닙니다.”

진건곤도 말이 짧기는 마찬가지.

답답하다는 듯이 청명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그럼 형님이 사용하는 무공은 무엇입니까? 어제 철혈궁왕과 흑암을 단칼에 베어버렸던 그 무공 말입니다. 심법이었습니까? 무공이었습니까? 후기지수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강력함. 마치 구파의 장문인이라도 되는 듯한 강력함. 바로 그 무공이 배우고 싶단 말입니다.”

“너도 알고 있는 무공이다.”

진건곤이 답하자 청명은 답답하다는 듯이 즉각 물었다.

“제가 알고 있는 무공에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틀림없다. 그건 현천기공이니까.”

경악. 방안의 모든 자들이 놀라고 말았다.

현천기공이라면 전진의 현기가 배어 있는 심법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폭발적인 힘이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았던가?

청명과 진려경뿐만 아니라, 운현마저 놀라 감탄성을 흘리고 말았다.

“허! 십 성에 이르렀더냐?”

십 성은 완전함을 뜻한다. 현천기공을 완전히 터득했냐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제가 얻은 것은 구 성에 불과한 듯합니다. 현천기공에 십 성이라는 것은 얻기가 지난하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흐흠, 그렇구나. 과연 전진 도문다운 심법이로구나. 그들의 목표는 우화등선이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 철혈궁왕과 싸우던 중에 이름 모를 신비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진건곤은 자신이 겪은 일을 고스란히 털어 놓았다. 머릿속을 울리던 특이한 소리와 그 소리가 전해준 혈 자리를 말이다.

“전중, 승박, 하박, 맥문이라!”

그 소리만 남긴 채로 운현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도무지……! 상궤에 맞지 않는 흐름이구나. 머리에 단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흐름인데, 네게는 그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냐?”

“제자도 역시 전중을 단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내력을 이끌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력이 움직였습니다. 전중의 의지가 명문과 단전에 동시에 영향을 주어 세 군데서 일시에 내력이 일어나 하나로 모여 움직였습니다. 그 흐름이 어찌나 빠른지 폭발적인 흐름이라는 생각도 할 정도였습니다. 제자도 역시 이 일이 어찌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상은 없느냐?”

“별다른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네가 그렇다니 더는 말하지 않으마. 이유를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힘은 불안한 법이다. 이유를 찾아 이해하고 사용하기를 빈다. 부디 조심해서 사용하여라.”

“네, 사부님. 그런데 신비인께서는 상천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혹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없구나. 나 역시 알아보마.”

청명은 둘의 대화가 일단락 지어지자 좀더 직접적인 물음을 던졌다.

“저도 현천기공을 수련하면 형님처럼 강해질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기이한 질문이었다.

허나 이것은 분명히 청명이 현천기공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청명 스스로도 익혀본 적이 있었기에 현천기공에는 폭발적인 힘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현천기공의 내력이라면 자신의 몸에도 조금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청명이 전중을 시작으로 기운을 불러보았지만 전혀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건곤이 발휘하는 무공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진건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현천기공은 내공을 쌓는다기보다 그저 갈구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조차도 무공으로서 적절한 심법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 기실, 현천기공을 수련한 나로서도 무엇이 이런 힘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모르겠으니 네가 현천기공을 수련한다고 해도 이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답할 수가 없구나.”

모두가 생각을 하며 그 기이함을 추리하느라 잠시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그사이 진려경이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는 저와 함께 여행을 하던 당시 스스로를 잃고 무언가에 홀린 듯한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진려경은 진건곤이 넋을 잃고 절벽이나 산 정상을 찾아 올라가고 또 그곳에 자리 잡으면 며칠 동안이나 깨어나지 않았던 것을 말하였다.

“선재(仙才)로구나! 그 나이에 몰아지경(沒我之境)이라니!”

운현은 감탄하듯이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청명을 보았다.

“허나 명아! 전진의 무공이 화산의 무공의 한 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천기공을 보고 다른 무공을 창안하신 조사님들은 이미 천하에 적수가 없는 종사셨다. 그분들이 현천기공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화산에 들르게 되는 대로 절검 사숙조님과 다시 한 번 현천기공을 연구해 보마. 또한, 화산의 심법들은 그 깊이가 현천기공에 못지않다. 어느 것이든지 정진일로하여 대성을 하게 된다면 그 또한 네가 생각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화산 제일의 고수이신 절검 사숙조님께서도 화산의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운현의 말에 기이하게 들떠 있었던 청명의 눈이 가라앉았다.

“소자도 그리 생각합니다, 아버님. 형님이었기에 가능한 현천기공이었겠지요.”

잠시간 들떠 있던 생각이 가라앉은 것은 진건곤의 내공심법이 현천기공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천기공은 이미 알고 있기도 했거니와 자신이 주도면밀하게 비교하여 취사선택에서 걸러진 무공이 아니던가?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진건곤의 정진일로가 맺어낸 결실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속이 더 편했다.

오직 진건곤만이 가질 수 있는 무공이라면 자신이 이제껏 길러온 화산의 무공과 견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형님. 형님과 같이 될 방법을 찾는다면 언제든지 일러주시는 겁니다.”

“약속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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