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16화 (16/61)

제8장

운령! 현 화산의 장문인이다.

대계를 짜는 능력은 부족하나 냉정하고 진중하여 크게 실수하지 않는다는 평이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

쨍그랑!

그는 찻잔을 놓치고 말았다.

“누구라고 하였나?”

그를 놀라게 한 자는 다름 아닌 청송이었다.

“전진자 진건곤을 말했습니다.”

운령은 상당한 시간을 입을 열지 않았다.

찻잔이 식어가는 동안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하였다.

청송은 그 침묵을 깨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렸다.

무거운 적막이 깨지고 운령의 입이 열렸다.

“그자가 얼마나 필요하더냐?”

“꼭 필요합니다. 그 누구보다 말입니다.”

운령의 눈이 다시 한 번 감겼다.

그는 진건곤에 대한 모든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아이의 성정이 보통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품을 수 있겠느냐?”

“품지 않습니다. 그저 화산의 울타리에 놓아만 두어도 도움이 될 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결국은 너의 품에 안기겠지.’

하지만 운령은 알고 있었다. 화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청송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임을!

제자인 청송에게 스스로 감복하고 있는 자신을 볼 때마다 놀라고는 했다. 진건곤도 그리될 것이라는 계산은 아까 끝났다.

“그렇게나 크게 보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진즉에 화산에 두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입니다. 제가 장문이 되어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문파를 대표하게 한다면 그를 내보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백안옥마의 일수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내공이 부족하지 않느냐?”

“그가 화산의 품에 들면 간단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흐음……! 네게 생각이 있구나. 그렇지?”

“그렇습니다. 사부님!”

“허허허! 군자검마저 용서해 버린 마당에 그의 제자를 꺼리겠느냐? 네가 원한다면 그리하도록 하마. 내자와 전대 장문인은 설득해 보마. 대신……!”

운령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청송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사매와 함께 마을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운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린은 청송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나 청송이 바쁘다는 말로 시간을 잘 못 내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허허! 참으로 비싸게 구는 제자를 얻었구나. 하루를 벌기 위해 사부가 움직여야 하다니 말이야.”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운령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청송은 운령에게 느지막이 도를 가져다주었다.

그토록 존경했으나 한순간에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대사형 운현. 그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물론 청송 혼자였다면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지옥엽의 청린이 청송에게 이미 마음을 주었으니 청송은 제자이며 자식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자라고 자라더니 이제는 운현을 용서할 힘까지 주게 된 것이다.

‘허허허! 대사형. 용서하고 보니 티끌이었소. 내자는 아직도 감정이 남아 있는 듯하지만 더 늙어 청송과 청명이 화산의 이름을 드높일 때면 같이 웃을 수도 있을 것이오.’

운령은 군자검 운현을 생각하며 웃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에. 백옥같이 하얀 피부, 홍옥같이 빨간 입술. 그녀의 얼굴을 보자면 그야말로 화용월태에 해당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자면 하얀 백지 위에 무언가 선을 그리고 싶어지는 욕망이 그득하게 된다.

빨려들어 가는 듯한 경이로운 아름다움. 그녀의 이름은 산서제일미 청린이었다.

그런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는 오늘도 동경을 보며 타박을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예쁜 얼굴에 관심이 없는 걸까?”

청송의 이야기다.

청송은 사람을 가리지 않아 그를 찾는 자가 있으면 어디라도 달려간다. 그리고는 무공을 같이 연구하고 논의하여 제자들의 성취를 늘여준다.

또한 같이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데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 사람은 누구나 진심으로 자신을 대한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물론 청송을 그리 자주 찾는 사람은 드물다.

청송에게는 화산의 중흥이라는 중업(重業)이 있기에 사형제간이라고 해도 그의 수련을 방해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천왕들은 항시 청송의 주위를 돌며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변의 청을 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만은 달랐다. 그녀가 청송을 부르면 청송은 거절하기 일쑤다.

물론 이유는 달콤했다.

‘사매는 너무 아름다워. 그런 사매를 보면 나도 사람인 이상 흔들리지. 게다가 사제들은 한 달에 고작 하루를 부르지만 사매는 매일 보아도 부족하니 그게 문제지. 화산의 문호를 책임져야 하는 이상 스스로 단련에 고삐를 늦추면 안 돼. 스스로 마음을 잡지 못하는 내 무능을 용서해 줘.’

“호호호! 하지만 이제는 기대하고 고대하던 강호행이란 말이지. 하루 이십사 시간 사형과 붙어 있을 수 있어. 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겠지?”

청린은 어제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청송과 청명, 사천왕과 너, 그리고 전진자와 그의 동생이 함께하게 될 것이다.’

“흥! 그런 나쁜 놈이 끼어드는 게 싫지만 대사형과 함께라면……!”

누군가를 미워하더니 순간 청송으로 인해 그런 감정까지도 사라지고 말았다. 청린의 얼굴은 정말로 황홀한 표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또다시 혼자만의 상상의 세계로 빠져 버린 탓이다.

화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등 뒤로 하고 여섯의 선남선녀가 길을 나섰다.

청송, 청암, 청명과 청린, 그리고 진건곤, 진려경이었다.

본디 진건곤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는 사천왕이 함께할 것이었는데 진건곤의 합류로 그들의 자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일 년간 세상을 떠돌며 선행을 하여 덕을 쌓아야 한다.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만 살아가던 자들에게 세상을 배우고 덕을 쌓는 기간이었다. 주로 속가제자들이 자리를 잡은 곳을 돌며 도움을 주거나 이름난 악적을 퇴치하는 일을 할 것이었다.

산을 완전히 내려온 청송이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의견들은 있느냐?”

“보물찾기를 하면 어떨까요? 환천삼보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에요. 가는 길에 흉적이나 악적들이 있으면 그들을 처단하는 것이에요. 어때요?”

청린의 의견에 다들 웃음을 떠올렸다.

어쩌면 소녀의 상상 같기도 강호인들의 소망이기도 한 보물찾기라니!

하지만 아무도 반대하지는 않았다. 청린의 상상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하면 먼저 화음으로 가자 그곳에서 정보를 수집하기로 하지.”

그들의 첫 행보는 가까운 도시인 화음을 향했다. 화음은 화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당연히 화산의 지부가 가장 큰 곳이었다.

그곳에는 운 자 배의 인물인 운행이 책임자로 있었다.

과거에 매화검수를 거쳤던 화산의 중심인물 중에 하나였다.

“청송이 운행 사숙을 뵙습니다. 필요한 정보가 있어 도움을 받고자 왔습니다.”

“오호! 자네가 청송이로군. 과연 화산에 새 바람을 일으킬 재목이 맞구먼. 부디 몸을 보중하기 바라네.”

운행은 청송의 기도를 보며 감탄, 또 감탄하고 있었다.

청송은 잠시 멋쩍어하더니 은매패를 내밀고 정보를 요구했다.

“흠! 환천삼보라! 아직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니. 어쨌건 정보는 많이 있을 걸세. 곧 가져오도록 하지.”

환천삼보!

그중에 하나만으로도 능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보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전설이 쉬이 잊힌 데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어서였다.

환천삼보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그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어떤 물건이 있고 어떤 효능이 있는지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그저 존재만이 전설이 되었을 따름이었다.

어느 누구는 환천삼보는 삼보라고 부르는 것이 말뿐이지 수십 개는 될 것이라고 했고 누구는 정확하게 세 개라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환천삼보에 관한 전설 중에 공통적으로 이어지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능히 하늘을 바꿀 수 있을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산의 어린 제자들은 자신들의 발견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환상에 큰 기대감에 빠져들었다.

오직 진건곤만이 마음을 다른 곳에 둘뿐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돌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떠돌 틈이 없다. 공희국을 처단하여야 하는데 어쩌자고 이런 곳을 떠도는 거냐? 딱 1년만 참기로 했으니…….’

절검의 제안이 있었을 때 진건곤은 절검에게 그간의 사정이야기를 꺼냈다. 아울러 공희국의 이야기도 함께.

공희국의 사업을 모두 끊었다고 해도 지금 당장 공희국의 자금력이 씨가 마르지는 않을 터. 시간이 지나고 금력이 마르고 난 뒤에 일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로 진건곤을 설득하고 들었다.

물론 화산이 나서서 공희국의 동태를 살피게 해주겠다는 말도 함께 말이다. 특별한 사정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주기로 하고는 이 길을 따라온 것이었다.

객잔에 들어서자 방을 세 개를 잡았다.

가운데에는 청린과 진려경이 들었고 좌우로 청송과 청암, 진건곤과 청명이 들었다.

“걱정스러운데…….”

“뭐, 마녀쯤은 겁이 안 난다고 했으니 잘 요리하겠지요. 저에게 하는 것 보면 사매 정도야 우습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진건곤보다는 청명이 마음을 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너무 어리게만 보았을까?”

청명의 말에 조금은 안심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어려서 그 성격 하나도 안 변했습니다. 마녀쯤은 우스울 거예요.”

청린은 입이 댓 발 나오고 눈이 양쪽으로 찢어져 있었다.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진려경이 먼저 창가에 가까운 자리를 잡은 터라 그랬다.

안 그래도 식사를 할 때도 은연중에 자신을 내리깔아보는 듯한 진려경의 모습에 열이나 있었다.

청송의 앞이라서 참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둘만 남았으니 기선을 제압해야 할 때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봐…….”

청린의 입에서 한소리가 나오려고 하고 있었는데 진려경의 말이 그것을 자르고 들었다.

“청송 도장 말이야.”

청송에 관한 말이 나오자 청린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생긴 것도 의젓하고 멋지던데. 대단한 무공을 지녔다며?”

청송에 관한 칭찬이 나오자 청린은 코에 힘을 주어 세웠다. 화를 내는 것보다는 잘난 척하기를 선택했다.

“아, 뭐…….”

이번에도 역시 말을 하기도 전에 진려경이 자르고 들어왔다.

“정말 보기 좋더라. 산서제일미와 화산제일의 후기지수, 아니지! 강호제일의 후기지수가 같이 있으니 참으로 보기 좋던데?”

청린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 눈가에 희미하게 주름이 잡혀 있는 게 확실히 노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쉬운 게 있던데? 너무나 아쉬웠어.”

진려경이 말과 함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어 침상 위에 쭉 깔아 놓았다.

진건곤과 함께 움직이며 사놓았던 분가루와 장신구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진건곤이 십일 년 만에 만나는 동생을 위해 아끼지 않고 사주었던 물건들이었으니 한눈에 보아도 예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뭐가… 요?”

청린은 그 물건들에 혹하고 말았다. 그래서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는 경어가 은연중에 나가고 말았다.

‘흥! 어때 어차피 나이는 내가 한 살 어리니까. 청명 사형의 안사람이 될 사람이라는데 막말하면 보기에도 그러니까. 흠… 흠… 흠! 절대로 저기 있는 저 비녀가 나랑 어울려 보여서 이러는 게 아니라…….’

청린은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기 시작했다.

“동생! 이리로 와봐. 화산은 도가의 본산이니 아무래도 꾸미기가 눈치가 보이지? 하지만 동생 같은 가인(佳人)은 조금만 더 꾸미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녀 같은 느낌이 들지. 내가 꾸며줘 볼까?”

“아… 그래도 전 명색이 화산의 제자인데요…….”

입은 그렇게 떠들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침상에 앉아서 동경을 돌려보고 있는 청린이었다.

‘흥! 네가 그럴 줄 알았지. 계속 지켜보니 청송이 한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네 고민인 것 같더군. 누군가를 사로잡고 싶은 여인이라면 이런 것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지. 게다가 규율이 엄격한 화산의 제자라면 꾸며볼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청린은 진려경에게 녹아들고 말았다.

“언니가 보니까, 동생은 이런 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진려경은 청린이 어떤 것을 맘에 들어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다른 것을 골라주며 애를 태웠다.

청린이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초승달 모양의 장신구를 머리에 끼워 주었다.

청린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진려경이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달 모양의 장신구를 꽂으니, 말로만 듣던 월궁항아를 내 눈으로 보는 것 같네. 너무 잘 어울린다.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걸? 하지만 이건 오라버니께서 십일 년 만에 만난 기념으로 사주신 것이라 아주 비싼 거란 말이지. 이건 특별히 아끼는 거니까 안 되… 고…….”

청린의 얼굴에 아쉬움이 서렸다.

진려경의 손이 다른 장신구로 옮겨가자 실망의 빛마저도 서렸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청린의 얼굴을 바짝 마주했다.

“하지만 우리가 남도 아닌데 어때? 처음으로 합방하는 기념이니 선물로 주지!”

“고마워요. 언니!”

“자자! 이리로 와봐, 서역에서 온 분인데 이것도 발라봐. 뺨이 도화처럼 불그스레해지면 너무 예쁠 것 같은데…….”

화산의 천방지축 청린은 그렇게 진려경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언니라고 부르기는 싫었지만 다음 날 청송이 보여줄 반응을 생각하면서 둘 사이는 언니와 동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진건곤의 일행은 먼저 하북으로 달렸다.

하북의 남서쪽으로 육백 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평리를 찾기로 하고는 움직였다.

이미 화산의 많은 선배들이 환천삼보를 찾아 헤맸던 바, 좀더 손길이 타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진주언가가 있어 조심스러워 하던 곳이었다.

팔 일이나 걸려 도착한 평리.

역시나 평리는 진주언가의 세력권이었다.

화산의 도복을 입고 지나기에는 따가운 눈초리가 너무나 많았다.

“흥! 정말이지 따가운 눈초리군요. 감히 대화산을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불쾌해요.”

가장 먼저 투덜댄 것은 역시나 청린이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곳에서 환천삼보라도 찾게 되면 정말 일이 날 수도 있겠습니다. 대사형.”

청암이 말을 받았다.

“그럼 눈치 보이기 전에 얼른 물건만 찾아서 사라지면 되겠지. 어서들 움직이자고.”

일행들은 간단한 물건만을 사서 스쳐 지나듯이 마을을 벗어나 지도상에 표시된 것 같은 위치를 찾았다.

산등성이를 몇 개 지나고 산허리를 지나 숲 속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바위 두 개가 서로를 의지해 서 있는 곳이 있었다.

사냥꾼이 아니라면 이런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하루 종일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인지 음습하기 짝이 없었다.

“아! 이곳에서 보물이 나오는 건가요?”

“하하하! 사매. 그렇게 간단하게 나올 리는 없겠지. 명색이 환천삼보인데 첫걸음에 찾아질까?”

청암이었다.

“피이! 어찌 알아요? 처음에 나올 수도 있겠지요. 저는 원래 운이 아주 좋답니다.”

하는 짓으로 보면 청린은 그야말로 부잣집 귀한 외동딸이었다. 도가에서 자란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바라보니 이미 사람들의 손을 탄 흔적이 역력했다. 이곳은 이미 옛사람들이 훑고 지나간 곳이었다.

“에에? 이미 다 찾아본 곳 같네요.”

청린은 실망을 담은 말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건곤은 그런 말은 들은 것 같지 않았다. 무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말도 없이 앞장서서 굴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런! 성미하고는……! 자자! 그런 건 이미 각오하고 왔잖아? 사람들 손을 탔다고는 해도 찾았다는 기록은 없으니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는 거라고 찾아보기나 해보자고!”

청송이 어두운 굴속으로 앞장서서 들어갔다. 청암과 청명은 급히 화섭자를 꺼내 불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청송은 횃불을 들지 않았다.

받았던 그 횃불을 진려경에게 주었다.

“대사형! 저 친구에게도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글쎄다. 그런 줄 알았는데. 하하하하! 내 생각이 틀렸나 보다. 정말 대단하지 않느냐? 하하하하!”

이미 진건곤은 어둠을 뚫고 들어가 보이지 않는 곳에 가 있었다.

청송의 웃음에 청명과 청암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놀라고 말았다. 둘의 생각이 같은 것이었다면 생각이 맞는다고 느꼈다.

‘불이 필요 없다? 말도 안 돼! 대사형이라면 분명히 필요 없을 것이다. 허나 형님은 백안옥마의 일격에 무너질 만큼 내력이 부족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불과 일 년 만에 그렇게 변할 리가 없잖아?’

청송이 쫓아가자 진건곤은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왜 그러나?”

“음……! 아…안… 안 보입니다.”

“푸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진건곤의 답에 청송은 그 자리에서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진건곤이 영문을 몰라 하며 눈을 멀뚱거리고 있는데 청송이 밖을 보며 소리쳤다.

“사제! 횃불을 가져오게! 하하하하! 필요하다고 하는군! 그냥 달려 들어온 것뿐인가 보네.”

청명과 청암은 그 소리를 듣고는 또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고 말았다.

“하나 더 만들죠.”

“그래야겠구나.”

그들의 눈에는 안심인지 서운함인지 모를 빛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진건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이 없어도 동굴을 훤하게 볼 수 있었다. 아니, 동굴을 느낄 수 있었다. 구석구석 세세한 부분까지!

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불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자 다시금 보이지 않게 된 것뿐이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도 느끼지 못한 것을 알아챌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진주언가의 심장부까지 들어와 해본 그들의 첫 시도는 허사가 되고 말았다.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단서나 물건이라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들의 시도는 평리에서 가까운 산인 조인산으로 옮아갔다. 그리고 또다시 가까운 향지로 옮아갔다. 그리고 또 다른 후보지인 지익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몇 번의 이동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이미 손을 탄 흔적뿐이었고 또다시 허탕만 치고 말았다.

가는 곳마다 허탕을 치자 일행의 열정은 식어 버렸다.

역시나 가장 먼저 열정이 식은 것은 청린이었다.

청린은 어느새 목표를 잃어 버렸고 보물은 저리 가고 청송을 보는 재미와 다른 공상을 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청린이 새로운 말을 꺼냈다.

“마두들을 처단해야 해요.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말면 우리가 나온 의미가 없어요. 청송 사형에게는 세상을 쩌렁하게 울릴 명성이 필요하다고요.”

도가답지 않게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잘못된 생각은 아니었다.

이미 다른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도 강호에 나와 혁혁한 협명을 얻고 있었다.

특히나 청송의 맞수로 여겨지는 무당의 진금은 이미 안휘성의 외곽을 넘나드는 절정에 이른 마두를 둘이나 처단하는 성과를 보였다.

무당의 고수를 보면 언제나 쏜살같이 도망쳐 목숨을 부지하던 자들이었는데 용케도 잡아내어 안휘성 일대에서 그 이름이 높아졌다.

이런 소식들은 화산의 연락망을 통해 얻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역시 가까운 곳의 마두부터 잡아 볼까?”

청명이었다.

청암도 역시 동의하고 나섰다.

누구나 그 일에 찬성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대사형이 고작 그런 것들을 잡을 수는 없지요. 적어도 삼대마군에서 상대를 골라야 하지 않겠어요?”

청린의 말에 누구나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던 자는 오직 진건곤과 청린뿐이었다.

삼대마군이라면 고루마군, 독마군, 살마군이었다.

올바르고 협의의 도를 추구하는 자들을 정파라고 한다면 욕망을 따르고 이득을 따르는 자들을 흑도라 한다.

흑도의 무리들은 그 수단이 곱지 못하고 배신을 우습게 여긴다. 힘을 숭상하고 힘의 논리로 살아가는 자들을 흑도라고 불렀다.

개중에 사람의 도를 넘어선 자들을 마도(魔道)라고 불렀다. 어지간해서는 마도라고 칭해지지 않았다. 천륜을 어기고 인두겁을 쓰고 차마 하지 못할 일을 하는 자들을 마도라고 불렀다.

마도라는 이름을 얻은 자들은 무림의 공적이 되어 그 말로가 비참하게 끝이 나고 말았기에 스스로를 숨기고 어둠 속에 숨어들었다.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름이 높아질수록 위험이 커졌다.

하지만 삼대마군만은 예외였다.

고루마군과 독마군, 살마군은 스스로의 이름으로 공포가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피해 가게 한 자들이었다.

고루마군은 스스로의 무공은 그리 강할 것이 없으나 강시를 제조하여 자신의 세력을 만들었다.

최초로 강호에 등장할 때 지니고 있었던 강시의 수는 오십 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늘어나더니 당금에는 그 수효가 오백에 이르렀다.

강시를 제조하는 데 사용된 것은 명약자관하게도 사람. 고루마군의 행실은 사를 넘어 마에 이르렀다.

구파일방의 일대제자들이 주축이 되어 그를 척살하려고 했지만 그를 둘러싼 강시들의 장막을 뚫을 수 없었다.

고루마군 또한 구파일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척살하지는 않았으나 강시들의 몸이 철을 능가하는 강도와 역발산의 힘을 가지고 있어 금석을 가르는 보도가 없다면 무림의 고수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고루마군이 구파일방의 척마대를 막아내었다는 소문이 돌자, 스스로 죄악이 넘쳐 사를 넘어 마의 영역에 들어간 자들은 모두가 고루마군의 수하를 자처하며 모여들었다.

고루마군은 스스로 마의 하늘이 되어 마군이라 칭하며 그들의 보호자가 되었다.

독마군은 세외의 변방인 운남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운남은 본디 장독과 독극물이 우글거리는 곳.

독마군이 그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바로 독공을 연성하기 위함이었다.

독마군은 운남의 독을 이용해 중원에 해독법이 알려지지 않은 독을 만들어내었다.

독마군은 독을 만들고 그 독을 시험하기 위해 언제나 중원을 침범하였다.

그가 풀어 놓은 독이 냇가를 물들이고 우물을 물들였다. 그의 독을 시험하기 위해 죽은 자들이 기백을 넘고 천을 넘어 수천에 이르렀다.

사천당문을 필두로 한 오대세가가 나섰으나 독마군의 본거지인 운남에 들어서자 당문의 해독법은 소용이 없었다.

독마군의 본거지에는 접근도 하지 못한 채로 뒤돌아서야만 했다. 퇴각하는 오대세가를 쫓아 또다시 하독을 하자 죽어가는 무인들이 하루에 두 명씩 정확히 백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무도 독마군을 치러 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독마군의 하독은 너무나 은밀했고 치명적이어서 당문조차도 그 수법을 알아채지 못하였기에 싸움은 있으나 마나였다.

살마군은 타고난 살귀로부터 시작되었다.

본디 하오문에서 키우는 어린제자에 불과한 자였으나 세력다툼에 나서 살인을 하게 되었다.

싸우고 싸우며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잦아지더니 자신의 본성이 살인을 즐기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스스로 살업을 세우고 살문을 만들어 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그의 살수행은 날로 은밀해지고 교묘해지더니 어느 날 중원 최고의 살수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갑자기 살마군은 강호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지 십 년 후, 그는 홀연히 나타나 살인막이라는 이름을 걸고 살수행을 시작하였다.

그의 살인막은 일을 맡으면 그 일이 끝나기 전에는 그만두는 법이 없었다.

한 번의 의뢰에 반드시 죽고마니 살인막은 단번에 중원 최고의 살수집단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최근에 들어서 전진자를 죽이지 못하고 살수행을 그만두어 그들의 명성에 흠결이 생겼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살수행에 실패했다는 소문조차 돌지 않았다.

구름처럼 떠도는 이야기들이 모여 살문의 하늘이 되었지만 그것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허나 감히 그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살문은 소문으로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깃들었지만 청린은 그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연하지요. 청송 오라버니는 다른 문파의 후기지수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지요. 삼마군 중에 하나를 노려야 합니다.”

“살마군! 살인막이라면 나 또한 원한이 있지요.”

진건곤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지금까지 환천삼보의 보물을 찾는데 가장 열성적이었던 진건곤이었으나 그의 입에서 살마군에 대한 말이 나왔다.

진려경과 단둘이라면 진려경을 보호하느라 싸울 수 없었지만 이런 일행이 있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진건곤의 마음속에 잠시 접어두었던 원한이 살아났다.

“려경이를 생사지경에 빠트린 책임을 언제고 물어야 할 자들입니다. 대환영입니다.”

진건곤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청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청린을 바라보았다.

청린도 역시 진건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껏 긴 시간 동안 서로가 관심 없는 물건인 양 눈길을 피해오던 두 사람의 눈이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더니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살마군으로 합시다.”

“살마군으로 해요!”

청린과 진건곤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 의기투합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청송을 바라보았다.

“그런…….”

청명의 입은 려경이 옆구리를 꼬집어대는 손길에 막혔다.

“흥! 내가 다쳤었는데 그냥 피해가려고요?”

진려경이 청명의 귀에 대고 속삭이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겨우 다섯의 인원으로 살인막을 친다는 것은 어리석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또 다른 반대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전진자! 살인막은 그런 이유로 칠 수 있는 곳이 아니오. 살마군이라면 더욱더 그렇소! 구대문파 중 하나가 나선다고 해도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곳이오. 우리만으로 감당할 곳은 아니오.”

청암이 반대하는 의견을 꺼내었지만 일행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청송은 진건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우! 난 아우를 화산으로 들일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 그게 삼대마군이라고 해도 말일세. 우리가 살인막을 친다면 아우는 스스로 화산의 제자임을 인정하겠는가? 절검 사조님의 제자인 화산수문위 말일세.]

[좋습니다. 하지만 살마군을 잡아야 합니다. 려경이를 생사의 경계를 오가게 해놓고도 두 다리를 쭉 뻗는 놈이 있다는 것은 성이 차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버지의 복수를 마무리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을 끝내면 그리하겠습니다.]

진건곤의 답이 즉답으로 나왔다.

청송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허락의 답이라!

“좋아! 살인막을 목표로 하지. 이번 기회에 화산의 이름으로 삼대마군 중의 하나를 없앤다.”

“하지만……!”

“사형! 이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청명과 청암이었다. 그들이 소문으로만 알고 있는 살인막은 겨우 이 정도의 인원으로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걱정들은 그만 하자.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운현 사숙께 도움을 청하도록 할 것이다. 사숙이라면 충분할 테니까!”

군자검의 이름이 나오자 청명은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화산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던 아버지가 드디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었다.

청송이 군자검까지 동원하다고 하자 청암도 역시 청린의 치기 어린 말이 현실이 되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꼈다.

[사형! 이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사숙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건 겨우 세 번에 불과합니다. 이런 일로 사숙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청암! 나를 믿어다오. 너는 나를 믿고 무림대회에서 실력을 감추지 않았느냐? 청명을 끌어들이고 운현 사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네가 커다란 희생을 해주지 않았더냐? 너의 희생을 헛되이 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운현 사숙이 다시 강호에 나서게 만들고 싶다. 그렇게 되어야만 화산의 이름이 강호를 지배할 수 있다.]

놀라운 일이다!

청암이 무림대회에서 스스로 무공을 숨겼다니? 그럼 청명만이 청송을 보좌할 수 있는 수준의 무인이라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단 말인가?

그랬다. 모든 것은 청송과 청암이 만들어낸 한 판의 경극과도 같은 것이었다.

청암은 진신의 무공을 감추고 다른 구파의 제자들에 미치지 못하는 척하였다.

화산이 강호를 호령하기 위해서는 무당과 견주어 콧대를 세울 인재들이 필요했다. 청암의 패배로 그런 인재가 청명을 제외하고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청명만이 청송을 보좌할 수 인재인 듯이 보이게 하여 화산이 청명을 필요한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청송은 진금을 꺾고 홀로 우승할 수 있는 무림대회였으나 최후의 심득을 숨겨 무당의 진금과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공동우승을 함으로서 자신을 받혀줄 인재가 필요함을 더 도드라지게 보이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무당의 대제자인 진금으로 하여금 전진자의 이름을 세상에 내세우도록 했던 것이다.

[너의 희생이 있어 사부와 전대 장문인으로 하여금 청명과 운현 사숙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 값진 희생으로 만들어낸 보석들이 강호에 이름을 떨칠 차례다. 운현 사숙이 함께한다고 해도 겨우 여섯 명의 인원으로 살인막을 정리하게 된다면 화산의 이름이 세상을 진동하게 될 것이다. 나를 믿어다오, 청암!]

청송의 끈끈한 눈빛이 청암을 향하고 있었다.

청암은 그의 눈에 의견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알았습니다. 하지만 운현 사숙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은 겨우 세 번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부디 그 기회를 대사형 스스로를 위해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청암의 눈은 끈적끈적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그것은 화산을 위해, 청송을 위해 평생을 바치기로 한 청암의 충정이었다.

[걱정 마라. 앞으로는 그리하도록 할 테니까.]

청암의 고개가 작게 끄떡이자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다. 청린의 치기 어린 한마디로 화산의 후기지수들은 삼대마군에 꼽히는 살마군을 목표로 움직이게 되었다.

“또 전진자를 청부해 왔다고?”

“그렇습니다.”

일비의 손에 들린 종이를 받아든 살마군의 눈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청부금이 특급이라……? 검후의 위치는?”

일비는 살마군의 말에 놀라고 말았다.

살마군은 일전에 전진자를 포기했던 이유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인들은 모르겠지만 이런 꼼꼼함이야말로 살마군의 무서운 점이었다.

“사천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검후의 발걸음은 멈춘 적이 없었으니 곧 다시 나올 것입니다.”

“이비!”

“존명!”

살마군의 목소리에 이비가 앞으로 한 걸음 나오며 명을 받았다.

“네 의견은 어떠냐? 전진자가 특급에 이른 자 같더냐?”

“청부를 맡아 처음에는 이급이었습니다만 헤어질 때는 일급이었습니다.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런 성장을 보일 수는 없습니다.”

이비의 말에 살마존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입이 열렸다.

“아직도 감추어둔 실력이 있을 가능성은?”

“글쎄요.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 처음의 살행에서 전진자는 동행을 보호하지 못하였었습니다. 또한 하오문에 숨어들어서도 그가 쓴 돈은 적지 않은 돈. 스스로 동행을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실력을 감추었다기보다는 설렁대던 자가 본격적으로 나섰을 때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보를 분석하고 상대를 가늠하는 능력으로 이비의 자리까지 오른 자가 아니었던가? 살마군은 머리를 끄덕이고 말았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특급의 대금으로 청부를 해왔으니 특급에 어울리는 대접으로 전진자를 맞이해라. 유비무환이라 했으니 감춰진 실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추진하도록! 전과 마찬가지로 검후가 열흘 안의 거리로 들어오거든 모든 것을 멈추고 물러선다. 알겠느냐?”

“존명!”

이비는 접은 양손을 높이 들며 명을 받들었다. 손 그림자에 가려진 그의 얼굴에는 진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흐흐흐! 또다시 보게 되었구나. 반드시 지옥을 보여주마!’

우연인지 필연인지 진건곤과 살인막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들이대고 있었다.

진건곤의 일행은 가까운 탐조각을 찾았다.

살인막에 관한 정보를 정확히 알기 위함이었다.

정확한 근거지는 아무도 알지 못함. 일설에는 북방의 몽고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남쪽의 섬이라는 설도 있음. 하지만 그저 근거 없는 소리로 일축됨.

청부를 받는 장소가 모두 세 곳에 있음. 북경, 남경, 사천의 복자에게 점을 보고 특정한 액수의 복채를 주면 살인막의 중개인이 청부자를 찾아간다고 함.

그 외에 알려진 사실은 전무.

탐조각의 정보조차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실망이네요. 대 화산의 탐조각이 겨우 이 정도였다니 말이에요.”

청린이었다. 청린의 가벼운 언행임에 틀림없었지만 다른 일행들의 얼굴에는 똑같은 말이라도 뱉어내고 싶어 하는 얼굴들이었다.

“음……! 살인막에 우리 스스로를 청부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살인막을 치는 일과 스스로 살수의 대상이 되는 일은 다르다. 실패한다면 평생 동안 발 뻗고 자는 것을 포기해야 하겠지.”

청린의 말에 청송의 답이었다.

“하지만 살인막을 없애면 아무 문제없잖아요.”

“그건 그렇겠지. 하지만 살인막을 제거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

“제가 그 대상이 되겠습니다.”

진건곤이었다.

“아우!”

“형님!”

“오라버니!”

청송과 청명, 진려경의 음성이 들끓었다.

“실패한다면 화산의 자락에 암자 하나만 내어 주십시오. 감히 그곳에 찾아들지는 못할 테니까요.”

“건곤! 안 된다. 암중의 인은 언제나 날카로운 법. 그런 식으로 강호를 살다간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일. 허락할 수 없다. 누구도 더 이상 이런 말을 꺼내지 마라.”

청송이 단호하게 거부하고 나섰다.

일행은 숙의를 거듭했지만 딱히 좋은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일행은 하오문과 개방에 살인막에 관한 정보 수집을 청해놓고는 살인막의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탐조각의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열사흘이 되던 날 밤.

연무실의 문을 열고 나가려던 진건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바로 문밖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느낌 때문이었다.

“이건?”

바로 살수들과 부딪히며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네놈들이 먼저 찾아오다니 고마울 정도구나.’

스릉!

진건곤은 검을 뽑아 들고 경계하며 연무실의 문을 열었다.

쐐액!

날카롭게 울리는 소성과 함께 진건곤의 눈앞에 불현듯이 나타난 것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진건곤의 미간으로 쏘아져 들어왔다.

‘헉!’

진건곤은 단말마를 외치며 옆으로 몸을 구르고 말았다. 그것의 속도는 너무나 빨라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반사적으로 몸을 눕히며 피한 것이 고작이었다.

퍼억!

길고 가느다란 물건이 진건곤의 얼굴을 스치며 진건곤의 뒤쪽 바닥에 꽂혀 들었다.

쐐액!

또다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또 하나의 물건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그 방향을 확인하고는 검으로 막아갔다.

가가가각!

쇠가 부딪히며 갈리는 소리가 나고 불똥이 길게 치솟아 허공에 번쩍였다.

쐐액! 쐐액! 가가가각! 가가가각!

날카로운 소성은 연거푸 울리고 진건곤의 검이 날아드는 것을 막아가니 또다시 긴 불똥을 피어올라 마당을 밝혔다.

밖에서 번쩍이는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본 청암, 청명이 검을 들고 밖으로 튀어 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하지만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듯이 아무런 공격도 이어지지 않았다.

“북동!”

진건곤의 입에서 방위가 흘러나왔다.

청명과 청암은 북동쪽을 바라보며 그들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미 늦은 지 오래였다.

북동쪽에는 아주 먼 곳에 커다란 건물이 있었을 뿐이었다. 설혹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공격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먼 곳에 불과했다.

시선이 닿는 곳에는 이미 아무것도 의심할 것이 없어, 진건곤을 공격했던 자는 이미 어두운 밤을 틈타 사라진 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위경계를 모두 살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한 청명과 청암이었다.

“괜찮습니까, 형님?”

청명이 검을 거두고는 진건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진건곤은 낭패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청명의 눈에 진건곤의 손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이 맺혔다.

“철시라니!”

진건곤의 말에 시선을 옮기니 커다란 화살이 돌로 만들어 놓은 바닥에 깊숙이 꽂혀 있었다.

그것의 모양은 화살이었으나 재질은 달랐다. 바로 철시. 철로 만들어 달려오던 말이라도 한 방에 멈추게 하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철시였다.

전쟁이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구경조차 하기 힘든 물건이 그들의 눈앞에 등장한 것이었다.

“이런……!”

그 경이로운 위력은 단 세 대의 화살만으로 진건곤의 손아귀를 찢고 말았던 것이다.

“살인막.”

난데없이 날아든 철시와 살인막이라니? 청명과 청암은 진건곤의 말에 놀라고 말았다.

“틀림없이 살인막이야.”

진건곤의 입에서는 확신에 찬 음성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전진자 그자가 철혈궁왕의 활을 막을 수 있단 말이오?”

이비(二秘)가 놀란 표정으로 신음성처럼 흘려낸 말이었다.

“나 역시도 믿을 수 없었다. 미리 알지 못한다면 절정의 고수라도 그렇게 먼 거리에서 쏘아진 철시를 막을 수는 없다. 철시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 속력은 멀수록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화살을 막아내다니 두 눈으로 본 나조차도 믿을 수 없는 짓이었다. 그의 무공은 알려진 바와 너무 다르다.”

음성의 주인공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철궁을 든 사내였다. 복장으로 보아 삼백 보 바깥에서도 목표물을 바라보고 그것을 쏘아 맞춘다는 몽골의 사수였다.

지금 이비의 앞에 서 있는 자는 바로 그 몽골에서 최고의 신궁으로 군림하던 자, 철혈궁왕!

철혈궁왕이 바로 그의 이름이었다.

“철혈궁왕의 활을 막다니……! 과연 숨겨놓은 실력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도록 하지! 이번에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함정으로 너를 안내하도록 하지!”

뚜둑뚜욱!

이비의 꼭 쥔 손아귀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3권에서 계속>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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