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14화 (14/61)

제6장

“오라비는 절강성에 자리를 잡아 볼까 싶다. 그곳에 자리를 잡아 보고 싶은데, 너는 가보고 싶은 곳이 따로 있느냐?”

진려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화산에 들렀다 가고 싶은데요.”

“화산? 청명이구나.”

“네.”

진려경은 수줍어 했으나 감추려 하지 않았다.

진건곤은 진려경이 가끔씩 노리개를 꺼내어 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노리개는 청명이 화산을 떠나는 진려경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래! 가자꾸나. 나도 뵈어야 할 분이 있다.”

“그래요? 잘됐네요.”

함박웃음을 짓는 진려경이었다.

진려경은 진건곤에게 할 말이 있는 듯이 보였으나 스스로 얼굴만 붉히더니 결국 말하지 못하고 말았다.

진건곤은 마을에 들러 마차를 구입하였다. 진려경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여행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진건곤은 급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매일같이 심법의 수련을 하곤 하였다.

진려경은 조바심이 났지만 그런 진건곤을 채근하지는 않았다. 오라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자신도 조용히 수련을 할 뿐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마부석에는 진건곤과 진려경이 같이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비무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이 모두다 오라비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더라니까요. 그때까지 안 믿는 눈치가 있었는데 그날부로 모두가 오라비 이야기를 믿기 시작했지요. 호호호! 장차 천하제일이 될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와서 제가 얼마나 흐뭇했는지 아세요?”

“하하하!”

진건곤은 진려경의 수다를 들어주며 웃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진려경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십일 년 동안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다 나누려는 듯이 보였다.

‘보고 싶었다, 려경아!’

그럴 때마다 진건곤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진려경을 보아 주었다.

“그런데 오라버니는 왜 그리 호흡이 길어요?”

“무슨 소리냐?”

“가끔씩 오라버니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오라버니가 떠난 줄 알고 무서워졌단 말이에요.”

진건곤의 호흡은 어느새 한 호흡에 삼백을 헤아리게 되었다. 들숨과 유숨, 날숨이 있는데 유숨의 경우에는 공기의 흐름이 멈추고 스스로 공기와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한 번의 호흡이 워낙에 길다 보니 공기의 흐름이 멈추는 유숨의 길이가 구십을 헤아리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그때의 진건곤을 말하는가 싶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널 두고 어딜 가겠느냐?”

“그래도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하하! 겁쟁이로구나.”

아무리 토납법이 긴 호흡을 중요시 여긴다 하더라도 이것은 지난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익숙해지면 수를 더하고 또 더해 끊임없이 한계를 넓혀 가야 하는 일이다. 만족이라는 말을 몰라야만 하는 부단한 의지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담소를 나누던 진건곤은 문득 초원 위로 놓인 관도를 벗어나 길이 없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다.

“왜……?”

“그러게 말이다. 나도 모르겠구나. 왠지 탐탁지 않은 것뿐이다.”

“전에도 그러더니 또 그러시는군요. 오라비는 그동안 특이한 사람이 되었군요.”

“음……!”

진건곤은 단지 특이한 사람으로 치부당하고 말았지만 정작으로 크게 당황하는 자는 다른 이들이었다.

진건곤의 마차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관도의 땅속에서 사람들이 몸을 일으키며 솟아났다.

그들의 머리 위로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벌써 세 번째! 알고 피하는 것이 틀림없다.”

관도의 한가운데에 함정을 파고 땅속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던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은신술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흥! 바보 녀석. 목표가 우리를 피해간 것이 벌써 세 번째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전진자가 찾을 수 있는 흔적이 있는 게 틀림없다. 아쉽지만 우리의 방식으로 상대할 자가 아니다. 황호조에게 넘겨!”

“하지만 그 무식한 놈들은…….”

“그렇다면 우리가 급습하자는 말인가?”

“그…그건…….”

은자조는 무공이 떨어지는 대신 은신술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살수조였다.

은신술이 통하지 않는다면 성공률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알고 대비한다면 전진자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군소리 하지 마라. 이제는 황호조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진건곤을 다른 조에게 넘기겠다는 말을 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여량산의 산자락, 허허벌판에 홀로 외떨어진 산인데도 산세가 깊은 산이었다.

산을 오르기 전 객잔에 물어보니 통행세만 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산이라고 들었다.

진건곤은 마차를 끌고 산에 올랐다.

우거진 숲을 지나던 진건곤은 문득 마차를 멈추었다.

“숲 속에 무언가 있는 것 같구나.”

“제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요?”

진려경은 눈을 뜨고 숲을 보아도 전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오라버니는 기척이 아니라 기운을 느끼시는 겐가요? 정말 대단해요. 오라버니는 소군님처럼 강호독보가 가능하겠군요. 정말 꿈만 같은 경지예요.”

진려경은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아무리 강호의 여인들이 자유분방하다고 해고 남자와는 달랐다.

여인들에게 강호독보라는 것은 대단한 경지요. 최고의 자유를 의미했다.

‘기운을 느낀다.’라는 말은 소군만한 고수들만 가능한 일이었고 그 정도라면 강호독보가 가능한 경지였다.

스스로 자신의 기운을 느끼기에도 힘이 들거늘, 거리를 격하고 상대의 기운을 느낀다는 것은 기를 다루는 능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아니다. 절대로 아니야. 이건 그런 것과는 다른 것이다.”

사람들은 진건곤을 전진자라 부르며 그들과 비교하지만 진건곤은 스스로 내력이 부족하여 그들만 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물며 강호독보의 경지라면 참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비교되는 것조차 황송할 지경이었다.

진려경은 눈을 뜨고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진건곤이 강력하게 부인하자 실망하였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내비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진건곤의 연배에 그런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있다면 산적이겠지요?”

“그건 모르겠지만 객잔에서 들었던 자들은 아닌 듯하다. 단순히 산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느낌이니까.”

“그것참 이상하네요. 통행세를 받는 산적에게 어울리지 않는데요.”

진건곤은 정확하지 않은 그것이 알려주는 경고를 느꼈다.

“조심해라! 온다.”

진건곤과 진려경은 마차에서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쐐액! 따다다다당!

진건곤은 연달아 검을 떨쳐 날아오는 암기를 쳐내었다.

[이 정도는 상대할 수 있겠느냐?]

“가능해요.”

전음을 보냈는데 말이 나온다.

전음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잘해 보아도 이류.

진건곤은 진려경의 곁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쐐액! 쐐액! 따다다다당! 따다다다당!

계속해서 수도 없이 많은 암기들이 날아들었다.

암기 날에 시퍼런 빛깔이 도는 것이 독이 칠해진 것처럼 보였다.

진건곤은 진려경의 앞에 서서 암기를 쳐내었다.

무려 반각이나 지속된 암기세례 속에 진건곤은 상처 없이 버텨내었다.

숲 속에서 사내들이 나왔다.

“흥! 그냥 그거 맞고 뒈져버리는 게 나았을걸?”

“그러게 말이야. 그게 시신이나마 온전하게 남는 방법인걸.”

얼굴이며 손이며 드러난 곳에는 온통 흉터가 가득했다. 한눈에 보아도 세상을 험하게 굴러먹은 사내들.

“누구냐?”

“알거 없고 이거나 먹으셔!”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단검이라도 되는 양 집어 던졌다. 그 뒤로 날아드는 대부, 장창, 겸, 낭아추!

가릴 것 없이 중병에 해당되는 것들이 육중한 무게를 가지고 날아들었다.

‘중병을 던지다니… 이놈들은 예측불가다. 거리낌 없는 행동으로 보아 백전노장. 려경이가 위험해!’

[간단히 해결될 싸움이 아니다. 뒤로 물러서!]

진건곤의 검이 전에 보인 적이 없던 기이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량발천근의 묘리가 깃든 검이었다. 바로 청송이 보여준 여러 가지 곡선 중에 하나!

얇은 철검이 번뜩이자 중병들이 하나같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주위로 떨어져 내렸다.

“빌어먹을! 조사는 기루에 앉아서 똥구멍으로 하나? 이게 무슨 일류야? 일류라고 생각했으면 벌써 칼침 맞고 죽었겠네.”

개중에 하나가 대검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커다란 검을 휘둘러왔다.

쐐액!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내력과 합일된 대검의 무게. 무지막지한 경력이 실려 있었다.

진건곤은 진려경을 뒤로 두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검을 들어내었다.

진려경은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무공도 앞서지 못하고 경험도 없다. 강호초출 따위는 딱 맞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오히려 물러나는 게 도움이 될 터.

진건곤은 이번에는 사량발천근과 반탄의 묘리를 섞었다.

가각! 가가가각!

사내의 대도와 진건곤의 검에서는 소리가 길어지고 불통이 길게 이어지며 번쩍거렸다.

사내의 검은 진건곤이 펼쳐낸 오의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기묘하게 흔들리며 진건곤의 검이 재주를 부릴 틈을 주지 않고 튕겨내고 있었다.

‘강하구나! 형님이 봉인을 풀어주었거늘. 오의를 온전히 익히기 전에는 간단하게 상대할 자가 아니구나.’

진건곤이 알아낸 오의들은 아직 몸에 붙지 못했다.

게다가 상대도 역시 만만치 않은 검을 구사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보다 고수를 상대로 하여 버텨내는 검을 익힌 듯한 느낌이었다.

화산의 오의를 능숙하게 풀어낸다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전에는 수십 합을 겨뤄야 벨 수 있는 자였다.

“쳇!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하다. 뭣들 하냐? 나 죽기 전에 합격이다.”

진건곤의 검이 부러지지 않자 실망이라는 듯 뱉어낸 소리였다.

진건곤은 자신의 무리가 통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대도 역시 마찬가지 자신의 검이 마땅히 만들어내야 할 결과를 거부하는 진건곤의 검에 놀라고 있었다.

그들은 진건곤의 무위를 알고 왔던 것이다.

중형의 대검이 진건곤의 검에 맞닿아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뒷전에 서 있던 사내들은 옆구리에서 단도를 꺼내어 던지며 쇄도해 들어왔다.

한 치의 차이도 없었다.

대강 주워 던진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겉으로 들어나는 것과는 다르게 아주 치밀한 합격이었다.

진건곤은 급히 검을 회수하느라 손해를 보았다. 뒤로 물러나며 기세를 접었던 것이다.

역시나 기세가 붙은 대검이 따라붙으며 진건곤의 검로를 방해하고 있었다.

핑! 피비빙!

따다다당!

평소 같으면 힘들지 않았을 것을 대검을 피하며 처리하느라 힘겹게 막아내었다.

‘이자! 거치적거려.’

진건곤은 생각보다 많은 심력이 소모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대검을 휘두르던 자가 문득 신경질 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어떤 자식이 귓밥을 털었냐? 조금 있다가 죽는다.”

소리는 뒤의 동료에게 질렀다.

대검을 든 자의 귓불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바로 그것을 타박하는 것.

익숙하다.

싸움에 너무나 익숙한 자들이었다. 어쩌면 싸움이 밥보다 더 익숙할 것 같은 자들이었다.

입으로는 제 동료들을 탓하였지만 손으로는 진건곤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단검을 처리하느라 바빠진 진건곤의 손이 돌아 오기도 전에 대검이 소도처럼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모르긴 몰라도 사내의 절공이리라!

불현듯이 불길한 마음이 더욱 강하게 일었다.

진건곤은 신중하게 중검과 탄의 묘리를 섞어 사내의 대검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힘으로 눌러갔다.

[물러나라. 절대로 끼어들지 마라.]

가가각!

단검과 검이 얽히며 불똥이 튀어 올랐다. 사내의 검의 변화를 억누르는데 성공한 진건곤의 검이 사내의 목을 찌르려는 찰나.

피비비빙!

어느새 다가온 사내들은 딱 짜인 기계처럼 한순간의 빈틈도 없이 단도를 던져냈다.

한 뼘의 거리만 손을 뻗어내도 하나의 목숨을 끊어낼 수 있었는데 진건곤은 검을 거두어야만 했다.

따다다다당!

날아온 단도를 튕겨내어 지척에 다가온 사내에게 쏘아 보냈지만 그것도 역시 계산에 있었던지 사내는 두 손을 모아 주저앉으며 몸을 보호하며 빠져나갔다.

티팅!

사내의 손에 부딪힌 단검이 불꽃을 튀기며 튕겨져 나갔다. 사내의 손은 강철로 된 보호대로 감싸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얼른 들어와. 이거 정말 걸물이다. 나 혼자서는 안 돼!”

“자식! 언제는 혼자서도 된다면서.”

여섯의 사내가 반원으로 진건곤을 포위하며 섰다.

진건곤은 정말 난감했다.

여러 손을 당할 수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기회를 잡아도 끝을 내지 못한다.

각기는 자신보다 못하나 척척 맞아 들어가는 연수에 검을 들고도 기선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흐흐흐흐! 이제 끝난 거나 마찬가지네!”

사내들은 어느새 자신들이 던져낸 중병을 들고 휘둘러왔다.

진건곤 하나를 감싸고 여섯 방위에서 병기를 쳐내었다. 대검만큼 대단한 공격은 없었다. 위력도 그 속도도 제각각.

하지만 절묘하게 차이를 두고 검이 오고 가기 힘든 사각으로 병기가 치고 들어왔다.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목표를 가지고 잘 짜인 연수합격이라는 게 느껴졌다.

진건곤은 내력을 끌어올려 일 검에 끝장을 볼 듯이 강렬하게 검을 내쳤다.

까가강! 까앙! 깡!

요란하게 소리가 울리고 불꽃이 터져 나가며 사내들의 병기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사내들은 튕겨져 나가는 중병기를 잡느라 중심이 흐트러질 정도였다.

“빌어먹을! 너무 강하잖아!”

“어이! 네놈들도 붙어!”

뒤에 서서 진려경을 견제하던 놈들에게 던진 말이었다.

까가강! 깡! 까앙!

또다시 불똥이 튀어 오르고 사내들은 휘청거렸다.

“멍청한 놈들아 여기가 무너지면 여자고 뭐고 다 끝이야.”

진건곤의 검에 튀어 오른 병장기를 쥐고 애써 중심을 지키며 지를 소리였다.

두 사내는 암기를 꺼내어 진려경에게 던졌다.

그 암기에는 대단한 경력이 실려 그것을 막아가던 진려경은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토해냈다.

그렇게 뒤로 밀려난 진려경을 한참 더 뒤로 물러두고는 주위에 철가시를 두르고 독 가루를 뿌리고는 합류해 들었다.

“이거 밟기만 해도 죽을 거야! 하하하하!”

진려경의 얼굴을 보고는 으름장을 놓았다. 틀림없이 강력한 독분이었을 것이다.

진려경은 분하면서도 걱정이 된 얼굴로 울상이 되었다.

까가가강! 까앙!

두 명이 합류하자 여덟 개의 중병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내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까보다는 훨씬 견딜만한 힘이었다.

“얼씨구! 이제 됐구나.”

“월척이구나!”

“이젠 그래봤자. 소용없지.”

진건곤을 희롱하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사내들은 이런 상황에 너무나 익숙한 자들이었다.

여덟으로 변한 수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병기를 쳐낸 진검곤의 검이 돌아와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처음으로 튀어 올라간 병기의 주인은 자세를 잡고 재차 찔러오고 있었다.

진건곤은 황급히 도끼를 막아내야만 했다.

“빌어먹을!”

미칠 지경이었다.

하나하나를 보면 분명 진건곤의 무공과 내력이 한 수 위였다.

하지만 사내들은 잘 짜인 합격진을 가지고 있었고 부족한 내력을 갈음해 줄 수와 중병을 가지고 있었다.

진건곤의 검에는 강력한 내력이 실렸지만 중병을 잘라 내거나 부수기에는 내력이 부족했다.

군자검이나 소군처럼 강대한 내력을 가졌다면 중병을 가르고 합격진을 깨며 쉽게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독보강호가 가능했을 것이다.

소군을 놀라게 할 정도로 훌륭한 초식을 가졌고 청송을 만난 후로 화산의 오의 또한 한 몸에 담았다.

하지만 부족한 내력이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력이 떨어져 검이 느려지면 그대로 죽어야 할 판이었다.

까가강! 까강! 깡!

또다시 부딪히고 부딪혔다.

중병을 막아내자면 팔의 힘만 가지고는 안 되었다. 내력을 가득 실어 검을 휘둘러야 했다.

그렇게 내력을 가득 실어 휘두르기를 몇 차례.

‘이런! 이렇게나 빨리?’

진건곤은 자신의 검의 위력이 떨어져 간다는 것은 느꼈다.

상대는 진건곤의 흔들림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나 반듯이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여러 번 겪어본 듯이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서두름도 없이 차근차근 그렇게 진건곤을 함락시켜 가고 있었다.

‘지금 당장 승부를 내야 한다.’

진건곤의 소매가 부풀어 올랐다.

“조심!”

진건곤이 승부라고 생각했듯이 사내들도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일격을 가해왔다.

까갸갸걍! 까아앙! 까앙!

불꽃이 튀겼다. 어느 때보다도 더 커다란 불꽃이!

사내들의 병장기가 강하게 하늘로 튀어 올랐고 어느 때보다 더 크게 흔들렸으나 아무도 병장기를 놓치지 않았고 뒤로 물러난 자도 없었다.

사내들의 얼굴에는 승리의 기쁨이 새겨져 있었다.

“크하하하……!”

쐐액!

어디선가 날아온 검이 그들의 틈에 끼어들었다.

까앙!

“지금!”

바로 진려경의 검이었다!

그리고 잇달아 날아오는 암기들!

암기들의 수효는 적지 않았다. 진려경이 가지고 있을 만한 수효가 아니었다.

사내들은 몇 개의 암기를 쳐내었지만 그것으로 사내들의 진형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진건곤에게 모든 신경이 다 가 있는 시점에 진려경이 독을 밟고 넘어와 검을 날리고 독이 묻은 암기를 집어 던졌다.

목숨을 버리고 그리할 줄을 몰랐는데 사내들은 참으로 의표를 찔리고 만 것이었다.

진건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을 날렸다.

투두툭!

두 명의 목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사내들의 원망 서린 눈이 진려경을 향했으나 그들의 눈은 오래가지 못하고 순식간에 생기를 잃었다.

진건곤의 검이 번쩍이자 또다시 목이 달아났다.

마지막 남은 자가 도망치려 했지만 진건곤이 던진 검이 머리에 꽂혀 쓰러지고 말았다.

“려경아!”

진건곤이 뒤를 돌아보니 진려경의 두 손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암기를 주워 던진 탓이었다.

“오라버니! 다행이에요.”

하지만 암기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으니 그녀의 손은 이미 퉁퉁 부어올랐다.

“아무 말도 마라. 귀혼대법과 비슷한 것이 있다면 펼쳐라. 그것이 아니라면 무조건 명상이다. 마음을 가라앉혀!”

부욱!

진건곤은 소맷자락을 찢어 진려경의 두 팔을 어깨에서부터 동여매었다.

마차를 풀어내고 말을 끌어내었다. 동생을 앞에 태우고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목갑을 꺼내어 부쉈다.

그 속에는 밀납으로 봉밀한 단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이제껏 아끼고 아꼈던 자소단이었다.

행여나 언젠가는 자신의 내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다 더 결정적인 때를 위해 아끼고 아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밀납의 봉인을 아낌없이 부수고는 진려경의 입에 넣었다.

“삼켜라! 이것이 너의 목숨을 지켜 줄 것이다.”

“오빠, 이것은?”

진려경은 그 청아한 향기만으로 보기 드문 귀한 약인 것을 알았다.

진건곤이 신진십룡과 비교하면 내력이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 알고 있었다.

이런 귀물이라면 진건곤의 내력을 보충하리라. 그런데도 지니고 있다면 무언가를 위한 준비였을 것이다. 그런 보물을 자신에게 내민다는 것을 알았다.

“얼른 삼켜라. 늦으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

“오빠, 미안해!”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이제 달릴 테니 꼭 잡아! 히랴아!”

말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랴! 이랴!”

말이 달리는 데도 진건곤은 더욱 서두르며 두 발로 말의 옆구리를 차 더 빨리 달리게 하였다.

이제까지의 여정과는 전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달리고 달렸다.

진건곤은 빠르게 달리고 달려 가장 가까운 마을에 들었다.

“마을이구나. 견딜 만하냐?”

“…응! 걱정 마. 그냥 잠이 오는 것뿐이니까.”

진려경은 작은 소리만 내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그녀의 전신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오는 내내 잠이 들어 있었다.

대저 중독이라고 하면 파란 빛이 감돌아야 했다.

진려경의 안색을 살피니 파란 빛은 없었다.

조금은 안심하며 손발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아직도 파란 빛깔이 맴돌고 있어 아직도 독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진건곤은 마을을 둘러보더니 말만 세 마리를 사더니 말을 바꾸어 타고는 마을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조금 더 큰 마을을 찾는 것이 진건곤의 목표였다.

말이 지치면 다른 말로 옮겨 타고 또 옮겨 타면서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물론 진건곤이 달리는 동안 노리는 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건곤은 느낌이 이상하기만 하면 무조건 피했다.

그리고 그런 선택만으로도 신기하게도 진건곤은 살수들과의 조우를 피할 수 있었다.

지난번 싸움에서 단신으로 자신을 노리고 있는 그들과 부딪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알게 되었다.

강호를 독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신과 비교되는 고수가 여럿이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건곤은 숨어 있는 비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런 비수를 피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제법 큰 마을, 현이라고 판단된 곳에 들어선 진건곤은 곧장 하오문을 찾았다. 더 큰 문파가 있었다면 그곳을 찾았겠지만 이 마을에서는 그곳이 최선이었다.

추레한 깃발이 매달린 도박장에 들어서서는 곧장 쪽문을 찾아 나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진건곤은 아무도 없는 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진건곤은 자신의 느낌을 믿었다.

“안가가 필요하다. 환자가 나을 때까지 황금 다섯 냥! 그동안 보호해 줄 보호비 열 냥!”

진건곤은 아무것도 없는 벽을 향해 소매에서 꺼낸 전표 두 장을 내밀었다.

놀랍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곳에서 문이 열리고 사람이 튀어 나왔다.

전표를 낚아채더니 입을 열었다.

“이리로 오시오.”

그 사람을 따라 들어가자 탁상을 치웠는데 그곳에는 작은 토굴이 있었다.

토굴을 따라 들어가자 허리를 펼 만큼의 크기로 변해 있었다. 굴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는데 사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아직도 갈 길이 남았는데 사내는 이제껏 걸어왔던 곳에 주먹만 한 물체를 놓고는 부싯돌을 지폈다.

쿠왕!

폭음과 함께 눈앞에서 토굴이 무너져 내렸다.

사내는 앞으로 나서더니 왼쪽의 벽을 거세게 발로 걷어찼다. 놀랍게도 벽이 무너져 내리더니 그곳에는 빈 공간이 생겨났다.

“나갑시다.”

사내가 앞장서서 나가자 어느 곳인지 모를 곳의 객잔이었다. 그곳에서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마차를 타고는 작은 장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이오. 더 은밀한 곳이 있지만 환자가 있으니 의원이 딸린 곳으로 정했소. 이곳은 은밀하게 의원을 부를 수 있는 곳이오. 의사를 부르는 값으로 황금 다섯 냥을 더 받겠소.”

사내는 진건곤을 바라보았다.

아까 가져간 전표는 모두 황금 이십 냥의 전표였다. 남은 다섯 냥을 그냥 가져가도 되겠냐는 허락을 바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진건곤의 손이 소매로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그 손에는 또 한 장의 전표가 걸려 있었다.

“잘 벼려진 검 하나! 나머지는 실력 있는 의사를 불러주는 값이다. 환자가 회복될 때까지 필요한 모든 것에 더 이상의 추가 비용은 없다.”

“좋소!”

사내의 손이 전표를 잡아가려고 했으나 진건곤의 손이 더 빠르게 피하자 그의 손은 허공을 갈라야 했다.

사내의 눈이 진건곤의 눈을 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

“만에 하나, 환자가 잘못된다면 이곳에 관련된 자는 모조리 죽을 것이다.”

진건곤이 이제와는 다르게 살기를 뿜어대자 사내는 움찔거렸다.

하지만 곧 신색을 회복하더니 전표를 받아 챙겼다.

“잘 오셨소. 피장현 하오문의 주인인 소향주 황상표요. 귀공의 바람은 내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오. 단 의원이 손 써볼 수 없는 상처는 제외요.”

진려경은 손발이 퉁퉁 부은 채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

도망쳐 오면서 가끔씩 손발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려준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부은 게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얼굴에는 붉은빛만 돌아 중독된 기미는 없었다.

“의원은 아직 멀었는가?”

의원을 데리러 간 지 일 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진건곤은 그곳에 있는 사람에게 채근하였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아무도 모르게 빼오려면 이 각은 걸리오.”

사내의 말대로 이 각이 되자 의원이 들어왔다.

의원은 침상에 있는 진려경의 손발을 만져보더니 진맥을 하고는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어떻습니까?”

“허허! 급하시오. 조금 더 살펴보아야 말을 하겠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의원은 머리를 저어가며 진려경의 이곳저곳을 만지고 눈을 뒤집더니 진건곤을 보았다.

“문제될 것이 없소. 어떤 약을 먹였는지는 몰라도 대단히 좋은 약을 먹였소. 독성이 퍼지지 못하고 있소이다. 아니, 이미 대부분의 독성이 해소되었소.”

의원은 손과 발을 가리켰다.

“이곳은 상처와 함께 독성이 얽히고설켜 있으니 깨끗하게 손봐야 할 것 같소이다. 내가 할 일은 이 정도가 다인가 싶소.”

의원은 작은 칼을 꺼내어 진려경의 손과 발의 상처 난 곳에 칼을 대었다.

진건곤이 했던 것과는 다르게 깊이 있게 상처 입은 곳을 찢고 썩은 살이 있는 부위를 얇게 베어냈다.

한참을 그렇게 정성을 들이더니 일어난 의원이었다.

“그냥 푹 쉬면 될 게요. 상처는 오히려 더 빨리 치료될 것 같소. 아직도 약성이 남아 있으니 정신 차리는 대로 운기를 하면 내력에도 도움이 될 거요. 약을 과하게 쓴 경향이 있소이다. 허흠!”

자소단은 그렇게 진려경의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말았다.

침상에 있는 진려경을 보면서 진건곤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미에서 나온 후부터 불안감이 끊이지 않았었다.

불길한 마음에 가끔씩 가는 길을 바꾸어 가곤 했다.

가는 길을 바꾸면 불길함은 사라졌으나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불길함을 느끼곤 했었다.

숲길에 들어서서도 마찬가지. 불길함을 느꼈었다.

외길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려 했던 것이었다.

딱 한 번의 불길함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 자신의 목숨과 동생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였다.

그 후로 중독된 동생을 이끌고 움직이면서 철저하게 직감에 의존하여 움직였다.

처음 만난 마을에서 하오문을 찾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하오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없었을지도 몰랐다.

피장현에 들어서는 하오문을 찾을 생각을 하자 놀랍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오문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왠지 그쪽이라면 그곳이라면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전부였다.

스스로 이해가 안 가는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생의 목숨이 위태로웠기에 스스럼없이 벽을 보고 말을 꺼내었다. 전표를 들이밀기까지 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곳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지금 이곳에 동생과 함께 머무르고 있는 것이었다.

진건곤은 마음속에서 울려나는 길흉에 귀 기울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펄럭!

긴 옷자락이 펄럭였다.

깡마른 체구를 하고 있는 자가 태사의에 앉자 그제야 옷자락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양쪽 어름에는 휘장이 겹겹이 길게 내려져 있어 얼굴을 가릴 어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대전에 들어 직접 보더라도 그의 얼굴만은 볼 수가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오른손에 해골 모양의 반지를 끼고 있었다.

전 중원에 이런 자에 관한 소문은 딱 한가지밖에 없다.

강호일살 살마군.

살마군은 살인막이라는 곳을 이끌고 있다. 살인막의 수좌가 되고 나서도 직접 살행에도 나선다고 알려져 있었다.

세간에는 그가 살인을 좋아하여 그 짓을 끊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본좌가 폐관을 하고 있는 동안 사고가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은자조 셋에. 황호조와 흑사조가 나섰습니다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살마군이 듣기에는 말도 안 돼는 기형적인 조직이었다. 기본적으로 은자조 하나에 황호조나 흑사조 하나가 붙는 게 전부였다.

이만저만 이상한 구성이 아닌가?

“흠! 누가 계획을 했는가?”

살마군의 음성이 높아졌다.

“이비(二秘)가 했습니다.”

“이비가 그런 구성을? 경과는?”

이비라는 말에 살마군의 태도가 누그러들었다.

“은자조의 은신술을 간파 이동하던 중 황호조가 급습하였습니다만 황호조 전멸, 겨우 몇 달 사이에 목표물의 무공이 증가했거나 실력을 숨겼다고 판단됨. 그렇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전력을 구성했다고 이비가 자부함. 동행하던 여인은 중독. 목표물은 아무런 손상도 없이 도주. 은자조 3개조와 함께 흑사조가 움직였으나 모조리 간파하고 도주. 사천성 피장현에 들어가 종적이 끊어짐. 하오문에 들어간 것까지 확인하였으나 그 뒤로 추적불가!”

“무엇이라? 하오문에 들어? 안가로구나.”

살마군이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이미 종적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중독된 여인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더냐? 의원을 감시하였느냐?”

“어느 의원도 불려나간 적이 없다고 합니다.”

“허허! 하오문의 안가에 의원도 둔단 말이냐? 하오문이 그리 대단했단 말인가? 우리가 알고 있던 하오문이 아니로구나! 조사는 해보았나?”

“피장현의 소향주는 황상표라고 합니다. 제법 수완이 있는 작자로 하오문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자라고 합니다. 목표물이 찾아들어간 둥지가 제법 튼튼합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하오문과 싸울 수는 없지. 난관이로군.”

또다시 일비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소군이옵니다. 항간에 들리기로는 소군과 전진자의 사이가 보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소군은 하북에 있었는데 전진자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개방으로부터 전해들은 후에 아주 빠른 속도로 사천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군까지? 허허! 그런 고수를 방수로 두고 있단 말이냐?”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초계산에서 한 번 어울린 적이 있었다고 하니 그렇게 대단한 인연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소군의 목적이 전진자에게 있다면 철수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러는 것이 옳겠지. 현재 그곳에는 누가 가 있느냐?”

“이비가 직접 흑사조와 은자조를 이끌고 있습니다.”

살마군은 잠시간 손가락으로 타사의를 두드렸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았으나 종국에는 결정이 내려졌다.

“비록 이제껏 쌓아온 명성이 아깝다고는 하지만 소군에 비할 수는 없다. 청부는 포기한다. 위약금을 돌려주고 청부를 포기하도록!”

“하오나 돌려줄 곳이 없는 게……!”

“무슨 소리냐? 돌려줄 곳이 없다는 것이? 누가 의뢰하였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단 말이냐?”

“확인은 하였으나 확인한 후에 사라져 버린지라…….”

살마군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이… 이런! 신비세력이란 말인가?”

살마군의 손이 더욱 바쁘게 태사의를 두드렸다.

살마군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이윽고 손가락이 더 이상 움직임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위약금은 세 배다. 일단 한 번의 살행에 실패했으니 앞으로 두 번! 목표물의 위치를 파악하는 대로 두 번의 살행을 한다. 실패가 됐든 성공이 됐든 그것으로 끝이다. 다만 소군의 위치가 하루내로 다가서거든 모든 것을 그만두고 물러서라고 해라.”

“존명!”

강호에 소문이 퍼졌다.

살인막의 살수행이 실패했다는 소문.

살인막이라면 수많은 살수조직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 살행에 실수가 없다고 알려진 단체였다.

더구나 암지에서 벗어나 양지바른 강호에 나서도 그 적수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알려진 강호일살 살마군이 이끄는 단체였다.

살인막은 그 정체 자체가 확인불명이었고 그 본거지나 인물도 역시 확인 불명이었다. 어떤 자들이 만들었는지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알려진 것은 오직 강호일살 살마군뿐.

살인막의 살수행은 곧 사망통지와 같았다. 그런데 전진자가 그 전설적인 행보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그것으로 오히려 전진자의 이름은 높아졌다.

누가 전진자를 사주했는지는 당연히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리 하오문이라고 해도 그것을 밝혀내지는 않았다.

강호는 이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흐흐흐! 역시 심심한 강호야 이런 일은 소문 한 번 잘난단 말이야. 이 정도면 돈 값은 한 것이지. 그다음은 알아서 잘 해보라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바로 피장현의 소향주 황상표였다.

황상표는 자신의 근거지를 쑤시고 다니는 자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게 살인막이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살수들의 움직임은 지독하게 은밀하여 자신의 본거지인 피장현이 아닌 곳이었다면 절대로 그들의 존재를 알아챌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여 쫓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모르는 얼굴이 마을에 들어온 것을 탐지한 정도였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정도로 가벼운 일상이었다. 그러나 진건곤의 의뢰를 받고 주변을 엄밀하게 탐지하고 있어 알아낸 사실이었을 뿐이다.

황상표는 진건곤을 쫓는 무리들을 탐지했다. 그리고 그게 누구인지를 알아내고 말았다. 그것을 소문으로 퍼트린 것이었다.

서두르면 두 달이면 족할 거리였지만 무려 여섯 달이 걸려서야 화산이 있는 섬서성에 당도하였다.

그동안 진려경은 신기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피장현의 안가에서 빠져나온 진건곤은 빠르게 말을 달리며 전진하였다. 그런데 말을 달리던 도중에도 진건곤은 걸핏하면 산속으로 절벽 위로 올라가곤 했다.

처음으로 그 일이 있을 때에는 진건곤이 이유가 있어 그리하는 줄 알고 따랐다.

나중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면 말을 걸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달려가는 진건곤이었다.

절벽 위로 올라간 진건곤이 가부좌를 하고 앉자, 진려경은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진건곤의 옆에서 호법을 섰다.

진건곤은 무려 삼 일 동안을 움직이지 않고 운기에 빠져들었다.

진건곤이 운기를 마치고 일어섰다.

“축하드려요. 오라버니!”

진건곤은 진려경의 말에 전혀 고마워하는 표정이 없었다.

“내가 또 절벽에 올랐구나.”

진건곤의 말에 진려경이 오히려 놀랐다.

“그럼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요?”

“가끔씩 있었다. 그래도 네가 있으니 이제는 든든한 호위도 있구나.”

“호호호! 마음 놓아도 돼요. 저만한 호위도 없을 걸요? 저는 살수로부터 오라버니를 지켜낸 동생이라고요.”

진건곤은 그런 동생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그래, 고맙다. 이제 또 갈 길을 가볼까?”

그 이후로도 진건곤의 기행은 계속되었다. 깊은 산에 들거나 하면 산정을 향하거나 절벽 위를 향하곤 했다.

신기한 것은 무언가에 홀린 채로 그 흔한 맹수 하나 만나지를 않았고 모르는 산인데도 잘도 사람이 다닐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운기를 하다가도 매나 수리가 진건곤을 노리고 날아오면 스스로 눈을 뜨고 움직여 피하는 것도 보았다.

아미파를 찾아갈 때 그랬던 것처럼 진건곤은 호위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런 식으로 강녕에 닿는 데까지는 무려 한 달이나 걸렸다. 본디 서둘렀다면 십 일이면 닿았을 거리였다.

강녕은 서쪽에서 섬서로 드나드는 입구와 같은 곳이어서 객잔이 크게 발달하여 있었다.

“우와! 대단해요. 정말 볼거리가 많은데요?”

진려경은 쭉 늘어져 있는 시전을 보면서 소리쳤다. 제법 큰소리여서 주위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군거릴 정도였다.

“아가씨, 서역에서 건너온 분가루가 있어요. 값은 좀 비싸도 최고의 물건이라니까요. 이리로 와서 보세요.”

“중원 최고의 예공방에서 만든 나비문양 옥비녀도 있어요. 중원 최고의 인기예요. 황사에서만 유행하는 최고의 물건들을 다 구비하고 있으니 구경만 하세요. 구경하는 데는 돈이 안 들어요.”

장사치들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진려경에게 저마다 물건을 팔려고 호객행위를 하고 들었다.

진려경이 진건곤을 보았다.

진건곤이 고개를 끄덕이자 쏜살같이 달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걱정 말고 고르려무나 그 정도 능력은 있다.”

진려경은 기뻐하면 옷이며 분이며 노리개 등을 여러 개 들고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좋은 물건들이 몇 가지 있었다.

“이것, 저것, 또 요것!”

하지만 너무 비싼 물건인지라 눈길만 주고 포기하려는 것들이 있었는데 진건곤은 어찌 알았는지 주인에게 싸달라고 하였다.

물론 진건곤은 느낌이 시키는 것을 고른 것뿐이었다.

“호호호! 남자 분이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시네! 언니 좋겠네. 능력 있는 분이셔.”

주인은 진건곤과 진려경에게 거듭하여 아부를 했다.

진려경은 제법 외모에 신경 쓰는 눈치였는데 그날은 아주 흡족해했다.

“왜? 녀석에게 잘 보이고 싶으냐?”

진려경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오라버니는……!”

하지만 끝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둘은 제법 연통을 해가며 소식을 주고받았다고 들었다.

진려경은 제법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명은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단 말이다. 거 참, 걱정이구나.’

간만에 들어온 큰 도시에 진려경과 진건곤은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 저녁을 해결했고 객잔에 들어 간만에 여독을 조금이나마 풀려고 하였다.

진건곤은 문득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벌써? 빠르구나. 한곳에 머무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구나.’

진건곤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를 노리는 거라면 내가 려경이에게서 떨어지면 된다. 려경이는 아미를 벗어난 일이 없다. 있다면 오직 나겠지. 나밖에 노릴 자가 없으니 내가 움직이면 될 일이야.’

생각은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잠시 나갔다 오마. 혹시 내가 늦거든 먼저 화산으로 가서 기다려라.”

“오라버니?”

진건곤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들려온 음성이었다. 진건곤은 그 음성을 물리치지 못했다.

혹시나 나쁜 일이 벌어진다면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쁜 일이죠? 같이 가요. 지난번에도 도움이 되었잖아요.”

진려경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걱정 마라! 지금은 한 가지 시험을 해보려고 하는 것뿐이니까. 저 녀석들이 나를 쫓는 거라면 내가 움직이면 나를 따라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 혼자라면 그게 어떤 것이라도 다 피해갈 수 있으니까.”

진건곤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진려경도 그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신비한 능력을 겪었으니까. 하지만 마음이 그 이해를 거부했다.

“오라버니, 우리 십일 년 만에 만났어요. 이런 식으로 쫓길 때마다 헤어진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왜 만난 거죠? 행여나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다면 생사도 모르고 평생을 찾아야 하나요?”

진려경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진건곤은 동생의 눈물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렇게 헤어질 거면 항상 따로 움직여야 한다.

혹여나 싸움에서 진다면 그때는 참으로 암담하다.

그렇게 살 거면 왜 만났을까? 앞으로도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면 변한 것이 무엇일까?

함께 부딪혀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었다.

“그래! 잘못했다. 같이 가자! 네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요! 같이 해요. 오라버니!”

“하지만 내가 시키는 것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알겠지?”

그게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지만 진려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킬 생각은 없었다. 조금만 위험해도 도망치라는 것일 테니까.

‘오라버니! 내가 오라버니 목숨을 살렸잖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또 살려드릴게요.’

진려경은 진건곤이 내력을 증가시키는데 쓰려고 아끼고 아끼던 영단을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을 버려서라도 진건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우리가 움직인다면 피해가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멈추면 우리의 싸움터를 만들고 기다린다. 앞으로는 그렇게 싸울 것이야.”

진건곤은 준비했던 철가시를 꺼내어 침상의 주위에 널어 두었다.

손가락을 들어 반대쪽을 가리켰다.

습격이 있으면 철가시를 피해 멀리 뛰어내리라는 이야기였다. 진려경도 역시 그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벽에는 비수를 여러 개 박아 넣었다. 언제든지 뽑아 던질 수 있게 깊지 않게.

음양패 몇 개를 꺼내어 바닥에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하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은 사라지고 물건만 보였다.

“내가 신호를 하면 이곳으로 피해라! 물론 나도 이곳으로 움직인다.”

이건 간단한 진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에 불과했다.

진법에 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바닥에 놓인 음양패를 알아볼 것이었다.

그것을 조금만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숨겨진 모습이 드러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순간은 머뭇거릴 테니까. 그 시간이면 전세의 주도권을 잡는 것은 충분했다.

준비를 마친 남매는 잠자리에 들었다.

인시(寅時) 무렵! 취객들마저 모두가 잠들고 조용해진 시간이었다.

진건곤의 눈이 떠졌다. 예의 불길함을 다시금 느꼈기 때문이었다.

[왔다. 움직여!]

진려경의 몸이 침상에서 날아 벽 쪽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진건곤은 움직이지 않았다.

진려경은 진건곤이 움직이지 않자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을 때 전음이 들려왔다.

[걱정 말고 기다려. 내 쪽으로 유인하고 움직인다.]

진건곤은 몸을 움직이며 입맛을 다지는 소리를 내어 기척을 흘려내었다.

야행복을 입은 인형들의 목표가 한곳으로 확인되었다.

쐐액!

강렬한 한줄기 파공음이 허공을 갈랐다.

파라라락! 푸부푹!

그와 동시에 울리는 옷자락 소리와 침상에 비수가 꼽히는 소리!

진건곤이 허공을 날아 진려경의 옆에 떨어져 내렸다.

콰지직! 콰광!

양쪽의 창문이 일제히 부서지며 야행복을 입은 자들이 들어섰다. 겨우 네 명.

부서진 창문으로 그들과 함께 들어온 달빛이 빈 침상을 비췄다.

흠칫거리던 몸짓은 아주 짧았다. 침상이 비었음을 확인하자마자 곧 바로 비수를 내던지려는 흑의인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진건곤과 진려경도 준비를 하고 있던 순간.

푸부풋! 푸붓!

벽에 꼽아 놓았던 비수 여덟 개가 흑의인들에게 쏘아졌다.

챙! 채쟁!

흑의인들은 그 짧은 순간에도 날아온 비수를 잘도 막아내며 진건곤에게 쇄도했다.

바로 그 순간, 바닥에서 들려오는 기음!

푹! 푸북!

두 명의 흑의인들이 철가시에 찔렸다.

“함정!”

하지만 들려온 것은 비명이 아니라 침착한 경고음이었다.

챙!

두 개의 검이 부딪히며 번쩍이고 불똥이 튀었다.

아주 짧은 순간의 불똥이었는데 흑의인들은 그 위치를 이미 파악하였는지 거침없이 쇄도해 들었다.

하지만 진건곤이라고 해서 그 자리에 서 있으라는 법은 없었다.

동시에 앞으로 나아간 진건곤이었다.

진건곤의 검이 흔들리자 네 개의 검광이 번쩍였다.

흑의인들은 진건곤의 검을 맞받아치려 했으나 진건곤의 검에서 나오던 검광이 순식간에 하나로 모아졌다.

그리고 검광이 달빛에 비춰 번쩍거리는 순간.

서걱!

기음과 함께 피가 하늘로 솟았다.

그리고 떨어져 내리는 흑의인의 머리!

털썩!

육중한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린 몸뚱이가 바닥이 울리도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이어져 가는 진건곤의 검이 이번에는 동그라미를 그려내며 또 다른 흑의인을 노려갔다.

남아 있던 3인의 흑의인은 모두가 합심하여 진건곤의 검을 막아갔다.

하지만 불현듯이 진건곤의 검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연환으로 피어나는 원들이 세 명을 모두 향해 뻗어져 나갔다.

챙! 챙! 챙! 푹! 털썩!

또 한 명의 흑의인이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흑의인들은 자신들이 틀림없이 막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진건곤의 검을 막아가기 바쁜 그들에게 이미 진건곤과 말을 맞추었던 진려경이 던져내 비수가 흑의인의 심장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에… 허어어……!”

흑의인들의 침묵이 깨어지는 순간 진건곤의 검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폐가 찔렸는지 발음이 늘어지며 순식간에 기침을 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네 명이 급습을 하였으나 누구에게도 손도 못 대어보고 이미 3인이 목숨을 잃었다.

“청부자를 밝히면 살려주마!”

진건곤의 싸늘한 음성과 함께 검이 흑의인의 목 앞에 멈춰 섰다.

하지만 흑의인의 선택은 진건곤이었다.

동귀어진을 바란 듯, 그대로 검에 목을 찔러가며 진건곤을 향해 검을 펼쳤다.

하지만 진건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검을 비틀어내려 검파로 흑의인의 검을 쳐냈다.

흑의인은 공격이 실패하자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몇 번의 기침을 하더니 그대로 조용해져 버린 흑의인.

네 구의 시신이 생겨나는 데에는 실로 짧은 순간이었다. 전광석화 같은 싸움이 있고 네 구의 시신만이 뒹굴고 있었다.

진건곤은 검을 날려 그들의 죽음을 확인하더니 서둘러서 짐을 쌌다.

걸음 소리가 울려오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에 진려경은 놀란 듯이 진건곤에게 다가왔다.

진려경의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고 있었다.

전과는 다르게 바닥을 구르고 있는 시신을 보니 사람을 베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던 모양이었다.

“손님! 무슨 일입니까?”

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진건곤은 그따위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진려경을 안아 주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저 꼴이 되었을 것이다. 무서워하지 마라! 우리는 살기 위해 버둥거린 것뿐이었다. 이해하겠지?”

진려경은 진건곤의 말에도 불구하고 몸을 떨 뿐이었다.

“저것이 오라비의 시신이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진건곤이 눈을 맞추고 다시 물으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진려경이었다. 겨우 정신을 찾은 듯하였다.

“손님! 손님!”

진려경이 그 소리에 신경을 쓰며 입을 열었다.

“어떡해요?”

진건곤이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쓸 것 없다. 우리는 그냥 떠날 뿐이다.”

진건곤은 작은 은 덩어리를 꺼내어 침상에 올려놓고는 진려경과 함께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저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진건곤과 진련경이 창문으로 빠져나가자 멀리서 그들의 움직임을 보는 눈이 있었다.

“하! 이럴 수가. 그런 암습을 당하고도 겨우 일 각 만에 싸움을 끝내고 도주한다? 반년 만에 놀랍도록 발전했군.”

진건곤의 무공이 늘었다고 평가했던 자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수는 없지. 반년 전에는 황호조에게 당하기 직전까지 갔는데 그 짧은 시간에 흑사조를 요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지. 숨겨 논 실력이 있단 소리였군. 과연 상대의 진실한 실력을 몰랐으니 나 이비의 실패는 당연했을지도…….”

어두운 밤에 이슬을 맞아가며 진건곤의 능력을 평가하는 자는 모르는 게 있었다.

진건곤은 암습을 당한 게 아니라 이미 암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전세를 주도한 자는 암습을 한 자들이 아니라 진건곤과 진려경이었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한 번 남았으니 마지막 기회는 좀더 어울리게 짜도록 하지.”

하지만 스스로를 이비라고 불렀던 자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진건곤은 진려경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면서 이미 준비하고 있던 함정을 간파하고는 살수들을 모두 죽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땅속에 묻힌 채로 귀식대법도 풀지 못하고 죽은 이가 넷이요. 대법을 풀고 흙구덩이를 뚫고 나오다가 죽은 이가 둘이었다.

반면 진건곤과 진려경은 작은 찰과상도 입지 않았다.

진건곤이 느낌이 닿는 대로 비수를 던졌는데 그것에 반이 넘는 수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귀식대법 하나로 먹고살아야 하는 은자조가 귀식대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던 것이다.

“빌어먹을! 이제야 본 실력을 간파했는데, 손을 떼야 한다니……!”

이제 것처럼 진건곤이 피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뒤늦게 온 이비가 찾은 것은 은자조의 시신뿐이었다.

치이익!

그의 손에서 나온 산화독이 시신을 녹이는 소리였다.

이비라고 불렸던 사내는 감히 살마군의 지시를 어길 생각은 없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두 번의 기회를 날렸으니 이제는 포기해야만 했다.

삐삑!

이비가 휘파람을 불자 어두운 하늘 높은 곳 어디선가 날갯짓이 들려왔다.

“그간 수고했다. 이젠 더 이상 쫓을 필요가 없구나.”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는 은자조의 함정조차도 아예 멀찌감치 피해가는 진건곤을 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백 리 안에서는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있다는 향응매 덕이었다.

“언젠가는 또 볼 날이 있기를 빌어 보자. 그때는 숨겨놓은 실력까지 감안해 주도록 하지!”

진건곤의 소식을 쫓는 자들은 살인막 말고도 또 있었다.

살인막을 움직이게 한 원흉들!

“허! 살인막의 비수를 피하다니 운이 좋군.”

“또다시 의뢰를 넣을까요?”

지나가던 객점을 찾은 노인과 말에 대답하는 점소이.

너무나 평범한 만남이었는데 그들의 대화는 평범하지 않았다.

“아니다. 되었다. 본디 살인막에서는 살행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전진자만은 그만두었구나. 왜겠느냐?”

“모르겠습니다. 하교하여 주십시오.”

점소이는 입으로는 다른 말을 하면서 연방 탁상을 닦아댔다. 남들이 본다면 참으로 부지런하고 충실한 점소이로 보았을 것이다.

점소이는 대답도 듣지 않고는 제자리로 주방에 주문을 넣고는 돌아가 하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미 정해진 시간을 지나면 하던 말이 끊어져도 멈추는 것 같았다.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한 일을 하고 있었다.

주방에서 소면이 나오자 그것을 들고 나선 점소이였다.

“이미 우리를 확인했기 때문이지. 의뢰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꼬리를 잡힐 뻔했군요. 주의하겠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지 않는다면 음식을 가져다 준 점소이에게 물이라도 달라는 듯한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점소이는 얼른 움직여 미안한 표정으로 물을 가져다 바쳤다.

“그만두고 기다리자. 꼭 필요할 때만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

“그러지요.”

말과 다른 행동이 계속되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노인은 공희국의 집에서 잡일을 하는 신분이었다. 그의 유일한 재미라면 월봉이 나오는 날에 객잔에 들러 식사를 한다는 것 정도?

그런 노인에게 싹싹하게 굴며 단골로 잡은 점소이라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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