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13화 (13/61)

제5장

또다시 대회장에 나섰는데 이번의 상대는 작은 무관의 관장이었다. 스스로 서른두 살이라고 하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사십에 가까워 보였다.

무관의 명성을 위해 무리해서 나선 모양이었다.

관행상 이런 무림대회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은 참가하지 않고 있었다.

참가 상한선은 정해져 있지 않았으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경우에는 삼십 세 이상의 인물이 나서는 법이 없었다.

낭인이나 중소방파의 경우에는 가끔 이런 자들이 나서기는 했으나 그들의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았기에 쉽게 넘어가고는 했다.

역시나 진건곤과의 비무가 정해지자 스스로 기권을 하여 물러나고 말았다.

청명은 청린을 찾아 가볍게 웃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청린은 또다시 비무대에 올랐으나 이번에는 그리 가벼운 표정이 아니었다.

상대가 바로 무당의 제자 진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청린은 자신의 솜씨를 발휘하며 치열하게 싸웠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였지만 무당의 화경에 휘말려 제대로 된 공격에 성공해 본 적도 없이 패퇴하고 말았다.

청린은 이번만큼은 침울해져서 비무대를 내려와 진건곤을 알은체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청명도 역시 그녀에게 알은체하지 않았다.

무당은 언제나 화산보다 한수 위, 아니 반수 위에 존재하는 이름이었다. 화산에게 무당은 풀어야 할 족쇄와 같은 이름이었다.

그런 족쇄를 풀기 위해서는 화산은 무당에게만큼은 지지 않아야 했고 그것에는 다른 사심이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청명과 청암, 청송은 다른 구파의 제자를 만났으나 승리를 하여 다음의 비무로 나아갔다.

사천왕이라고 불리던 제자들도 다들 참가하였으나 역시나 구파의 고르고 고른 제자들끼리는 그 승부를 알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뛰어나다고 불리는 그들이었지만 사차 비무에 오르지 못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아미파의 법흥이었다.

그녀는 비무에서 지고 나서도 밝은 얼굴이었는데 너무나 밝은 탓에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를 바라보는 소군도 역시 밝은 얼굴로 화답하고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 속내를 알 수 없어 했다.

다음 날.

“절강성 초계 살귀와 무당 진석 도장은 오르시오.”

“와와와와!”

“이겨라, 살귀!”

진건곤에 대한 노골적인 응원이 줄을 이었다.

“무량수불! 잘 부탁드리오.”

진건곤은 예의를 갖춘 목례로 간단하게 답했을 뿐이었다. 겉으로는 무감정해 보였으나 속은 크게 달랐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무당의 검에 크게 기대를 품고 있었다.

진석 또한 곤륜의 태성과 같이 진건곤에 대한 긴장을 풀지 못하고는 하수를 자처하듯이 선수를 뽑았다.

“조심하시오!”

진석은 화양혜검의 일절인 무한회류의 초식을 뻗어내었다.

그의 검 끝에는 두 개의 원이 그려지며 돌아가고 있었는데 언뜻 보면 태극으로 이어지는 듯하여 보였다.

무당의 상징인 태극혜검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무리가 담긴 무학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 유명한 무당의 태극이 저기서 시작되는 것인가? 그럼 비슷한 초식을 써봐야겠군.’

진건곤은 무당의 제자를 상대로 자신의 검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진건곤의 검도 역시 크게 원을 그리며 두 비무자는 춤을 추듯이 얽혀들었다.

“와와와와!”

관중들은 그들의 격돌에 크게 흥분하여 소리를 내지를 정도였다.

허나, 기대와는 다르게 그들의 비무에는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아 의아함이 일 정도였다.

관중들의 눈에 검은 보이지 않았다. 검광이 어지럽게 번쩍이고 있어 검이 오고 가는 것은 알았을 뿐이었다.

수십 번의 검광이 번쩍이는데도 신기하게도 병장기들이 한 번도 부딪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초식들이 정묘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었다.

‘회풍무류 따위로 무한회류를 따라잡다니, 놀랍구나! 사형들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직접 부딪히니 철벽과 같구나.’

진석이 먼저 검을 뽑은 사연은 그랬다. 진석에게는 진금과 진포라는 뛰어난 사형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경고를 듣고 비무대에 올랐었다.

‘조심하라! 그의 초식은 정묘하기 짝이 없다. 육합건곤검만으로 곤륜의 검을 꺾었다. 그가 진정한 독문무공을 꺼낸다면 우리라도 당해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하하! 설마요. 사형들이 그리 말하시는 것은 제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지요? 그럼 사형들의 안목을 믿고 그냥 져 주겠습니다. 하하하!’

사형들의 경고에 자신이 했던 말이다.

농을 즐기는 사형들이 아니기에 혹시나 싶어 선수를 펼쳐 자신이 원하는 비무로 이끌어 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혹시나에 불과했었다. 이제는 달랐다.

‘좀더 진지하게 말해 주시지 그러셨소, 사형들! 도인 아니랄까 봐 목석같기는.’

진석은 두 사형들을 향해 투덜거리고 있었다.

진건곤은 진건곤 나름대로 놀라고 있었다.

회풍무류검은 육합건곤검의 초식 중의 하나다. 육합건곤검은 이미 십 년을 하루같이 익히고 또 익혔다.

십 성을 완성했고 십일 성으로 나아가 스스로 대성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아아……! 이런 회풍무류검으로도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라니, 무당의 검이 뛰어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상상 그 이상이구나.’

회풍무류검으로 무한회류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훨씬 빠른 검속을 유지해야 했다.

회풍무류는 끊임없이 원을 만들어내고 다시 시작하지만 무한회류는 절묘하게 돌아가며 하나의 원이 또 다른 원의 시작이 되고 있었다.

초식의 뛰어남으로 인해 진건곤보다 더 느린 검으로도 더 많은 원을 그려내며 진건곤의 검을 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진건곤은 연거푸 회풍무류를 펼쳐대며 무한회류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계속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내력! 내력이 떨어지면 검이 느려지고 상대의 초식에 휘말려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어서 방법을 찾아야 해!’

진건곤은 상대방의 내력이 자신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심법과 비교하자면 몇 백 년 동안 개량해 온 것을 익히고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자신보다는 강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했기에 계속해서 검을 섞어가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그런데 진건곤의 눈에 문득 선이 그어졌다.

회풍무류로 그려야 하는 두 개의 원을 이어주는 선. 마치 상대가 펼치는 무한회류로 넘어 가는 중간단계와 같지 않은가?

‘이건?’

채재재재쟁!

허공에 번쩍이는 불꽃이 튀었다.

처음으로 두 개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 허무하게도 승부가 기울었다.

진건곤이 생각에 휘말려 한순간 신경을 흐트러뜨린 결과였다.

무한회류에 휘말려 버린 진건곤의 검은 상대의 초식에 휘말려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진건곤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전력을 당해 몸을 팽이처럼 회돌이 치며 움직여 뒤로 돌아 빠졌다.

피잉!

금방까지 진건곤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진석의 검이 꽂혀들었다.

우수수!

뒤늦게 잘려진 머리카락이 떨어져 내렸다.

진건곤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아아!”

관중들의 탄식이 함께했다. 그들의 생각에는 진건곤이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진건곤은 달랐다.

‘어쩌지? 육합장권?’

육합장권은 아니었다. 육합장권이라는 무공에 대한 화후는 깊었으나 장으로 검을 튕겨낼 만한 권경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무당의 검이 자신의 몸에 닿기도 전에 승부를 낸다는 광오한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아까 본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 봐야 해.’

진건곤은 검집을 꺼내어 들었다. 한 번이라도 더 버텨보려는 차선책이었다.

“때려 쳐라!”

“물러나!”

관중들의 야유가 들끓었다.

물론 진건곤은 그런 소리를 터럭만큼도 들어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또다시 진석의 검이 태극과 비슷한 두 개의 원을 그리며 무한회류를 펼쳐내었다.

진건곤은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앞으로 치고 들어가 회풍무류를 펼쳤다. 그리고는 환영처럼 보였던 그곳으로 검집을 옮겼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집이 만들어내는 원은 무한회류의 것처럼 연환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원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원을 만들고 또다시 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무시무종(無始無終)!

정교하고 빨랐으나 깊이가 없었던 검이 무리가 담긴 무학으로 변하고 말았다.

검속이 더 빨랐던 진건곤의 검집이 만들어낸 원이 연환으로 펼쳐지자 그 수가 순식간에 번져가며 진석의 무한회류를 삼켜갔다.

떠더더덩!

또다시 두 사람이 부딪혔다. 속이 빈 검집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허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진석의 검이 허공을 날랐다.

진석은 적잖게 놀라고 있었다. 평소의 수행이 부족했다면 두 눈을 크게 부릅뜬 채로 놀라움을 보였을지도 몰랐다.

“무량수불!”

그 짧은 한마디로 자신의 심정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진건곤은 연이어 자신을 공격하는 대신 허공으로 떠오른 진석의 검을 잡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검을 쥐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진석을 공격하는 대신 자신의 검이 있는 곳까지 걸어 자신의 검을 찾았다.

“여기 있소!”

진석의 검을 다시 돌려 내밀었다.

진석은 검을 쥔 채로 진건곤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 의도를 몰라서였다.

진건곤이 다시 기수식을 취하자 그제야 진건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진석은 그대로 검을 내리더니 검갑으로 검을 거두었다.

“졌소! 진석은 그대에게 정말로 탄복하는 바요.”

진석은 자신의 진건곤이 자신의 무공과 똑같은 무공을 펼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진건곤이 펼친 초식이야말로 진정한 무한회류의 오의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환으로 이어지며 피어나는 원들이 언젠가 진금이 그 초식을 펼쳤을 때 보았던 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석은 진건곤의 내력이 자신에 비해 크게 부족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랬다면 승부의 행방은 전혀 달랐을지도 몰랐다.

“최고다! 살귀!”

“남존 무당도 멋졌다.”

야유를 보냈던 관중들은 어느새 살귀를 환호하고 있었다. 미련이 남아 승부를 질질 끌었던 것이 아니라 이길 자신이 있었기에 승부를 이어갔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진건곤의 무공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

그것은 진건곤 스스로도 아니었다.

‘갑자기 눈에 들어왔던 선.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미 자리로 돌아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진건곤이었다.

“보았나? 사제?”

진금이 진포에게 물었다.

“보았습니다. 놀라운 일이군요.”

“나 또한 너무나 놀랍구나.”

무당의 출중한 두 후기지수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무당의 인물들은 당연히 그 놀라운 일을 알아보았다.

진건곤의 손에서 진석이 펼쳤던 것보다 더 제대로 된 무당의 무공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으니 놀랄 일이었다.

대회장에서 무당의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알아본 자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바로 청송!

청송은 그런 진건곤을 보면서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사심 없는 웃음이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청린은 그 웃음을 짓는 청송의 얼굴을 보면서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비무는 계속해서 진행이 되어 하루의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 거처로 돌아가려던 진건곤에게 놀라운 손님이 찾아들었다.

바로 청송과 청명, 그리고 청린이었다.

청명은 영문을 몰라 청송의 눈치를 살폈고 있었고 청린은 여전히 노여워하는 눈초리로 진건곤을 노려볼 뿐이었다.

청면은 청송이 안내하라는 말에 앞장을 선 것이고 청린은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온 것이었다.

“건곤이 네 이놈! 예까지 와서 형님 한 번 안 찾아올 셈이었더냐?”

바로 청송이었다. 청송이 흐뭇한 웃음으로 진건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형님은 왜 이제 찾아오셨소? 어찌되었던 오셨으니 되었소. 묻고 싶은 게 있던 차에 아주 좋소. 하하하하!”

“이 녀석! 물어볼 것 때문에 반갑다는 이야기더냐? 그리고 동생이 형을 찾아야지. 형이 동생을 찾아야겠느냐? 하하하하!”

청송은 호탕하게 웃으며 진건곤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에 청명과 청린은 넋 나간 듯이 놀라고 말았다. 십 년 전에 겨우 한 번 얼굴을 본 사람들이 이리도 친한 척을 하다니 두 사람은 영문을 모를 일에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따라오너라!”

청송은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진건곤은 그 뒤를 따랐다.

[보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지만 무진 장로님이 항상 함께했기에 너를 만나기가 좀 어려웠다. 장로님이 오늘은 바쁜 일이 있어서 이제야 시간이 났구나. 그간 잘 지냈느냐?]

[형님은 잘 지냈습니까? 찾아뵙고 싶어도 형님께도 귀찮은 일이 생길까 저어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걱정 마라! 그 정도로 흔들릴 내가 아니니까. 앞으로는 편하게 찾아오도록 해. 찾아온 손님을 만났다고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게다. 나야 그럭저럭 지냈다만 너는 어떠냐?]

[저도 그럭저럭 입니다.]

[예끼, 이 녀석!]

[하하하하!]

십 년 만에 만난 사이건만 둘 사이에는 허물없는 대화가 오고 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이지만 청송과 진건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감복했었다.

청송의 털털하고도 호탕한 매력에 감복했었고 진건곤의 굴복하지 않는 투지에 감복했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 감정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상할 지경이었으나 이렇게 스스럼없이 굴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이게 다 청송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 어디 무공을 펼칠 만한 곳이 있겠느냐?]

[제 거처에 연무실이 있으니 그럭저럭 할 만할 겁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자!]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그런데 여쭤볼 일이 있습니다.]

[안다. 갑자기 떠오른 깨달음이겠지? 그렇게 무당의 검을 물리친 거고!]

진건곤은 놀라고 말았다.

[어찌 아셨습니까?]

[지금 연무실로 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면 이유가 되겠느냐? 그동안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절검 사조님을 대신해 내가 치하하마!]

[그게 무슨……?]

[하하하하!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마. 일단은 열심히 가기나 하자꾸나.]

이후로 둘은 전음을 사용하지 않고 이런저런 말을 나누었다.

무국공의 장원에 도착하였는데 총관이 나서서 진건곤을 맞이하였다.

“하하하! 진공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네 번째 비무에서 승리를 하였으니 진건곤은 무국공이 원했던 고수가 틀림없었다. 스스로 자신의 값어치를 증명했으니 그 대우가 더 극진해졌다.

“화산의 제자 분들이시오.”

“오늘 손모가 세외 신선들을 뵙습니다.”

총관은 더욱 고개를 조아리며 기뻐했다.

“무국공, 이런 분들이 오셨다니 어른께 알려야겠습니다.”

총관은 노회한 자가 틀림없었다. 이 틈을 타서 무국공의 인맥을 늘리려 하고 있었다.

“아니오. 이분들은 내 손님들일 뿐이오. 가 보리다.”

진건곤은 선을 분명하게 긋고는 자신의 처소로 들어갔다.

진건곤의 처소를 본 청송과 청명, 청린은 놀라고 말았다.

최고급 주단으로 만들어진 침상과 휘장 등. 그곳에 있는 것이 모두가 최상급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비가 용정차를 내어오자 그 놀람은 더했다.

“하하하! 향이 좋구려. 이런 차를 마시고 있었소? 형님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었구려.”

청명이 차를 마시며 농을 걸었다.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지.”

“흥! 아니, 다행이군. 일개 낭인에게 이런 대접이라면 과분한 일이지.”

“사매!”

청린이 가시 돋친 말을 하자 청송이 나서서 한마디 하였다.

청린은 눈을 흘기는 것으로 대신하더니 입을 닫았다. 그러더니 다시금 청송에게 눈길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그윽해진 눈길이 되어 있었다.

‘꿩 잡는 게 매라더니 형님 앞에서는 내가 알고 있던 그녀가 아니구나.’

진건곤은 여자들은 참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하였다.

“너희들은 잠시 기다리거라. 건곤이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 안내하게.”

청송이 채근하자 진건곤은 그를 연무실로 안내하였다. 말이 없는 편인 진건곤이었지만 청송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급한 일입니까?”

“하하하! 그리 급한 일은 아니지.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무영 장로님이 돌아오기 전까지 끝마치려면 시간이 촉박하지. 한 번 뿐이니 잘 보게나.”

청송은 검을 뽑아 기수식을 갖추더니 곧 검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육합구소검!

화산의 검 중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검이다. 전진의 유합건곤검을 모태로 하여 시작된 검으로 육합을 좀더 세분화하여 세세하고 정교한 검식으로 바꾸었다.

매화검!

희대의 천재 중의 한 명인 화선 임영지가 흩날리는 꽃잎을 따라 만들어낸 검으로 전진의 그림자를 벗어나 화산을 홀로 서게 한 검이었다. 특징은 날카로운 기운으로 상대를 꿰뚫듯이 찌르는 검식이다.

백매화검!

화산의 여 제자들을 위해 만든 검으로 매화검을 좀더 날렵하고 표홀한 검식으로 변형되어 있다. 매화검의 특징과 비슷하나 무겁지 않고 가벼운 검식으로 상처를 주어 제압하는 검식이다.

매향만리!

검이 날면 매화 꽃잎이 허공에 나는 듯하고 그 향기가 짙게 피어난다고 했다. 화산의 검중에 그 경지가 높고 화산의 검만이 가지고 있는 경이로움을 지닌 것으로 평생을 두고 이것만을 수련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화련직검

……

청송은 끊임없이 검식을 토해 내었다.

그런 검식을 보고 있는데 진건곤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다.

또다시 눈앞에 뜬금없는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또 하나.

그러던 것이 한 번에 여러 개의 선이 보이기도 했다.

조금 더 상위의 검식으로 옮아갈수록 더 많은 선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수많은 선들이 진건곤의 눈에 걸려 있었다.

[자! 이제는 구결이다.]

[형님……?]

[잠자코 들어두어라.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니까. 육합구소검부터 시작하자. 육합은 우주를 뜻하고 구소는 처처의 깊은 곳을 의미한다. 어느 한곳 빈곳이 없이…….]

‘도대체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진건곤은 청송의 갑작스러운 무공전수에 놀라고 말았다. 허나 이렇게 깊고 넓은 무공의 보고를 보는 일에 마다할 무인이 어디 있던가?

청송이 읊조리는 구결에 그대로 빠져들었다.

청송은 이제껏 보여주었던 검식들의 구결을 모조리 읊조렸다. 제법 시간이 걸렸으니 한 시진은 족히 들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전해주는 무공은 진건곤의 눈을 홉뜨게 만들고도 남았으니……!

[건곤이 만나는 곳에는 혼원의 기운이 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오는 곳에는 자하의 기운이 서리니 건도 곤도 아니어서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힘이 있다. 이것을 자하기공이라 칭하겠다. 만물이 기운으로 변하고…….]

자하기공!

그 긴 세월 동안 운현의 마음을 괴롭혔던 자하기공이 이런 식으로 진건곤에게 흘러 들어올 줄이야!

“형님! 이건 아니 되지 않습니까?”

“앉아라! 이건 내 의지가 아니라 했지 않느냐?”

“무슨 뜻입니까?”

[절검 사조님의 뜻이다. 너는 차기 화산수문위가 되어야 한다.]

[화산수문위요?]

[그렇다. 화산수문위는 오직 화산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화산이 멸문에 가까운 손실로 무공을 잃는다면 그 무공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또한 화산이 멸문하게 되면 화산수문위는 화산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책임을 지어야 한다. 그런 직책이기에 화산수문위는 화산의 무공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직책이 절검 사숙조님의 의지로 너에게 이어졌다. 이만하면 설명이 되었느냐?]

[그런 일이……!]

너무나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토록 자하기공이 절실한 시점에서 이런 기연이 찾아들다니.

[단, 화산수문위는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함은 기본이다. 목숨이 위태롭거나 이미 그 직책을 타인에게 옮기고 난 뒤에만 발설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장로의 신분을 얻을 수 있다.]

[장로란 말입니까?]

진건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지 마라. 이것은 네 스스로 얻어낸 지위나 다름이 없으니까.]

[무슨 말입니까?]

[절검 사조님께서는 네 몸에 금제를 걸어 놓으셨다고 하셨다. 네가 그 금제를 깨게 된다면 필시 올바르게 수련을 하신 것이라고 하셨다. 기본에 충실한 수련만이 그 금제를 깰 수 있다고 하셨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채로 상승의 검도에 도전하였다면 아주 먼 훗날에나 금제를 깰 것이라고 하셨다. 금제가 깨어짐을 보고 나서야 네게 화산수문위로서의 직책을 전하라고 하셨다. 또 네가 마흔에 이르고도 금제를 깨지 못하였다면 화산수문위는 다른 자에게 넘기라 하셨다. 오늘 네가 무당의 문인과의 비무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화산수문위로서의 자격은 충분한 것이다. 절검 사조님은 너라면 서른이 되기 전에 금제를 깰 것이라고 여기셨는데 너는 그보다 더 빨랐구나. 얼마나 깊게 수련을 하였는지 눈에 보듯 뻔하다. 네가 보았다는 선이란 것은 바로 절검 사조님께서 네게 심어 두었던 금제이자 상승의 무리다.]

“아! 그럼 그때의 그것이 금제였단 말인가?”

절검이 언젠가 보여주었던 무공, 백광의 무리를 보고는 자신이 알고 있었던 무리마저 잊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걸었던 금제였을 줄이야. 그리고 그 후로 자신에게 가르쳐 주었던 소소한 기본들이 그것을 풀어갈 열쇠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일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상승의 검도를 배우겠다고 나섰다면 훨씬 늦게야 그 금제를 끝냈을지도 몰랐다.

절검이 원하는 것은 무공을 받아들일 그릇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무공을 습득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돌아갈 것이다. 아우는 이곳에서 심득을 정리해라! 한 가지 말하자면 화산의 무공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네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실력이 되기 전에 네 신분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흔적을 보여서는 안 되니까. 그리고……! 미안하지만 자하신공은 익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럼 배웅치 않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나가려던 청송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넌 누가 뭐래도 화산의 문인이다. 알겠느냐?”

“…….”

진건곤은 답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녀석! 화산에 서운함이 깊었던 모양이로구나! 비록 운현 사숙이 화산에 배신감을 심어주었다고 한들 그 미움이 청명과 너, 그리고 네 동생에게까지 가 버린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화산이 잘못한 일이다.”

청송은 진건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섰다. 진건곤에게 가까이 다가가 눈과 말에 힘을 주었다.

“그래서 말이다. 나는 그것을 고치려고 한다. 너를 화산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말이다. 그것마저 싫다고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꿈꾸는 화산에는 너도 있으니 말이다.”

“…….”

여전히 묵묵부답의 진건곤이었다.

하지만 청송의 얼굴은 대답이라도 들은 것처럼 가벼웠다.

“수고하여라!”

“형님! 화산수문위는 화산의 문인이 아니어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네가 필요하다. 도와주거라!”

청송은 진건곤의 답을 듣지 않고는 곧장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무당의 진금 도장과 절강 초계 살귀는 오르시오.”

둘을 부르는 소리가 나자 장내는 뜨겁게 불타올랐다.

“와와와와와!”

진금이 먼저 비무대에 올랐다.

뒤를 이어 오를 진건곤을 찾는 눈길이 있었는데 그 눈길들은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

진건곤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청명조차도 영문을 모르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청송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어릴 뿐이었다.

“일 각을 기다리겠소.”

진행자의 기다린다는 말이 나왔으나 일 각이 다 가도록 진건곤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진금의 승리를 선언하겠소.”

진금은 그저 무심하게 비무대를 내려갈 뿐이었다.

애초부터 진금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낭인들과 중소방파의 소원이 담긴 진건곤의 승리를 원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흘 뒤, 무림대회는 막을 내렸다.

낭인들과 군소방파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진건곤은 오차 비무에 나서지 않았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녹림의 보복에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원하는 것을 얻어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것은 오차 비무에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비무를 포기하고 돌아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무림 대회가 끝나고 난 뒤, 크게 이름을 떨친 자들이 있었다. 바로 신진십룡과 전진자!

개중에 가장 이름이 난 자는 둘이었다.

바로 금룡과 노룡.

금룡은 무당의 진금을 일컫는 말이었고 만금장의 부력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노룡은 바로 청송을 일컫는 말이었고 그의 검이 성난 용처럼 사납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근자에 들어 화산의 검을 제일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이 있었다.

그 둘은 마지막 시합에서 만났는데 초수가 삼백 초를 넘기는 동안에 승부를 내지 못하였는데 결국 협의에 의해 둘은 공동우승자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무당과 화산이 나란히 이름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들 말고도 소림, 곤륜, 점창, 개방이 신진십룡을 배출했고 오대세가의 남궁세가, 사천당문, 모용세가, 산동악가가 그 이름을 올렸다.

특히나 산동악가는 근자에 들어 신진십룡에 들지 못하다가 배출한 것이어서 그 기쁨이 배에 달했다.

신진십룡에는 들지 못했으나 후기지수로서 강호의 관심을 받는 자가 또 있었다.

바로 전진자였다.

전진자라는 별호의 주인공은 바로 진건곤이었다.

살귀라고 불렸으나 그가 한 것이라고는 산적을 토벌한 것. 살귀라는 별호가 어울리지 않았다.

사용하는 무공이 오직 전진의 무공뿐이라는 점 때문에 그의 별호는 전진자가 되었다.

전진자가 오차 비무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중에 하나로 남았다.

대회가 끝나고 난 뒤 강호명숙 중에 하나가 나서서 우승자인 진금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자가 누구였냐는 질문을 하였다.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저와 승부를 가리지 못한 화산의 청송이요, 또 하나는 비무를 치르지 못한 전진자입니다. 그의 정묘한 초식에 어찌 상대할까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진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강호명숙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도 역시 진건곤의 초식의 점묘함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 다른 자가 청송에게 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자가 누구였냐고.

“무당의 진금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강자요. 허나 예상치 못했던 강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진자요. 그와 먼저 겨루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청송의 답에 많은 자들이 놀라고 말았다.

대회의 우승자인 청송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청송하나만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진금까지 그를 꼽았을 정도라면 이미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송. 그 아이는 역시 대단하군요.”

화산의 현장문인인 운령은 서찰을 넘겼다. 그 서찰은 받은 자는 운령의 부인이자 청린의 어미인 요조검이었다.

요조검은 이미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이르렀으나 그 미모가 쇠하지 않아 누가 보아도 중년의 미부라고 인정할 만하였다.

“무당과 공동우승이라? 우리의 기대가 헛된 것은 아니었네요.”

“그렇구려. 하지만 아쉽소이다. 공동우승이라니.”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무당을 삼백 초 안에 꺾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진금이라면 만금당과 무당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후기지수가 아니겠습니까? 청송, 그 아이는 특별한 대접을 멀리하고도 스스로 그 자리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칭찬을 해야 할 일이지요.”

“그건 나도 동감이오. 청송이었기에 욕심이 더했는지도 모르겠구려.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절로 기대하는 바가 커져서 말이오. 허허허! 이번에야말로 화산의 한을 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이다. 비무대회에서 무당과 공동우승이라면 그 기틀을 잡았다고 해도 좋겠소. 이제 남은 것은 세상을 돌며 명성을 떨치는 것이 아니겠소?”

“어떤 일을 시키고 싶으신가요?”

“모르겠소. 청송 그 아이의 의중을 물어보고 싶은데 어떻소?”

“호호호호! 그렇게 까지나요? 장문인께서 그렇게 그 아이를 의지하시는지 몰랐습니다.”

“허허허! 그 아이를 보자면 자꾸 그렇게 되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되지 않을지 모르겠소. 그럼 당신은 그렇지 않을 자신이 있단 말이오?”

요조검 역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없다는 뜻.

“그 아이는 참으로 특별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특별하다고 믿었던 그보다 더 특별하지요. 그 아이로 하여금 또다시 화산의 이름이 무당보다 더 앞설 것입니다. 당대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후련해지네요.”

“그렇소. 나 역시 생각해 둔 것은 있으나 그 아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따라주고 싶을 정도요.”

“호호호!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다만 세상에 나가기 전에 혼인이라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청송과 청린에 관한 이야기였다.

“힘드오. 일단 얘기는 꺼내보았지만 반응이 부정적이오.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지금도 그렇소.”

화산은 기본적으로 도장이다.

혼인을 할 수 곳이라도 어린 나이에 성혼을 하고 함께 세상을 종횡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성혼이란 도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에 해야 한다는 것이 화산의 기본 입장이었다.

성혼을 하기에는 청송과 청린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는 것이 장로원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운령과 요조검은 화산의 전통을 흔들어가는 그런 자들은 아니었다.

사실, 군자검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다른 동도들의 원성을 들은 적도 있지만 그것을 제외한 일에는 공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존경받으며 화산을 이끌어 가는 현명한 영수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지요. 그런데 또 다른 문제라도 있는가요?”

“또 한 가지가 문제가 더 있소. 바로 청암의 무공 말이오. 생각보다 못하다는 평이오. 청송을 보필하기에는 부족할지도 모르오.”

요조검의 안색도 무거워졌다. 역시 같은 서찰을 보았기에 지적한 점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청명이 더 뛰어나다고 하오. 청송을 따라나갈 아이들 중에 청명을 넣어야 할 듯하오. 괜찮겠소?”

요조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청송, 그 아이를 위해서입니까?”

“그렇소.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청린을 위한 것이기도 하오. 청송은 청린의 짝이 될 아이지 않겠소?”

“하지만……!”

요조검과 군자검은 맺어질 것이 확실한 사이였다. 허나 그들이 맺어지지 못하자 더 큰 미움만 생겼지 않았던가?

“걱정 마시오. 나는 청송을 믿소. 청송이라면 예전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오. 이미 이야기를 나눈 바도 있으니 믿읍시다. 그리고 말이오. 청린도 함께 보낼 생각이오. 청린이 함께라면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도 극히 적어지지 않겠소?”

“그렇군요. 절대로 청송에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겠습니다.”

과거 군자검은 요조검과 떨어져 있었던 사이에 백이현과 정분이 났었다.

아마도 요조검이 과거에 군자검과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허나! 그것은 대사형의 복권과 연결하여 생각할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두신 일이 있습니까?”

“아니오.”

운령의 말에 요조검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것을 당신과 상의하려 하오. 머리를 쓰는 것이라면 당신이 나보다 뛰어나지 않겠소? 어찌했으면 좋겠소?”

운련의 말은 들은 요조검의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이곳입니다.”

사내는 절강성의 북부에 있는 호몽산 자락에 자리 잡은 신기장의 장주였으나 극히 조심스럽게 진건곤을 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건곤은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무국공의 소개로 온 고수로 그들이 그토록 골머리를 썩여 왔던 조직을 일망타진 하러 온 자였다.

찌르르! 찌르르!

산새 소리가 울었다.

“장주님 왔습니다.”

전혀 특이할 것이 없는 산 새소리였는데 그게 신호였는가 보았다.

“가시지요.”

사내가 앞장서자 진건곤은 그 뒤를 따랐다.

한참을 나아가자 산등성이 너머로 절벽 밑에 휑하니 뚫린 구멍이 있었다. 광산이었다.

국법에 의하면 광산은 허가를 맡아야만 운영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관인에 없는 것이었다.

바로 공희국의 개인조직이 운영하는 광산으로 조사된 것이었다.

“지금 막 들어갔으니 빠져나갈 곳이 없을 겁니다. 덮칠까요?”

장주에게 묻는 것이었는데 방주는 진건곤을 보았다.

진건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 가자! 오늘 이놈들을 끝장을 낸다.”

신기장의 사람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꼬나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삐익!

산등성이를 넘어서자마자 호각이 울렸다.

하지만 신기장의 장주는 걱정이 없었다. 어차피 광산으로 들어갔던 흑철장은 깊숙이 들어갔을 터, 입구를 가로막을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챙챙챙!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입구를 지키던 흑철장의 무리들은 모두 제압당해 포박을 하였다.

그들의 싸움을 보니 대부분이 어디서 주워듣거나 훔쳐 배운 수준의 무공을 펼치는 삼류의 무인들이었다.

제대로 된 무공을 펼치는 자들이 드물었다. 개중에 책임자로 보이는 자가 그래도 나았는데 그도 역시 이류에 껴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제야 부랴부랴 나오는 인물들이 있었다. 개중에 수염이 긴 자가 소리쳤다.

“웬 놈이냐?”

“신기장이다. 네놈들이 국법을 어기고 사업을 하다니 겁이 없구나. 무국공께 네놈들을 호송하라는 명을 받고 왔으니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흥! 네놈들이야말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더냐? 덤벼라!”

흑철장은 앞뒤를 재지도 않고 싸움을 벌였다.

동굴에 들어갔다 나온 자들은 나름대로 솜씨가 있었는지 신기장이 밀리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흑철장의 장주로 보이는 자는 제법 매서운 솜씨가 있어 당금 무림의 이류 고수 정도는 충분히 인정받을 듯하였다.

“진공!”

신기장의 장주의 목소리가 도움을 청하자 진건곤이 앞으로 나섰다.

검을 뽑지도 않고 맨손으로 흑철장의 인물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진건곤에게 제압당한 자들은 모두가 상처 하나 없이 실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삼류조차 드문 곳에서 진건곤은 필요 없는 살상을 삼갔기 때문이었다.

진건곤이 움직이는 대로 흑철장의 인물들이 모두 제압되며 포박을 당하자 흑철장의 장주는 진건곤을 상대하려 덤벼들었다.

“이놈! 나와 싸워 보자!”

쐐액!

소성을 일으키며 철추가 날아들었지만 진건곤은 어깨를 비트는 것만으로 철추를 피했다. 그대로 쇄도해 들어가며 장을 뽑아 그대로 찔러 넣었다.

퍼엉!

흑철장의 장주는 급히 철추의 손잡이로 막아내었지만 진건곤의 장법에 서린 경력을 해소하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그대로 실신해버려 포박을 당했다.

“섬잔무영은 어디 있소?”

진건곤은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신이 맡기로 했던 자가 없자 신기장의 장주에게 물었다.

“얼른 찾아보겠습니다. 얘들아! 섬잔무영을 찾아라!”

“넵!”

신기장의 인원들이 섬잔무영을 찾으려 하였지만 아무도 그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였다.

신기장의 장주는 포박당한 자에게 달려가 거칠게 두드려 패더니 반쯤 정신이 나가자 물었다.

“섬잔무영은 어딜 갔느냐?”

“퉤에! 없다. 이놈들아, 대두목이 금분세수하신 틈을 타 습격을 한 놈들이 대두목을 찾다니, 웃기는구나. 대두목만 있었어도 상대도 안 될 놈들이.”

다른 자들을 문초해 보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답뿐이었다. 섬잔무영은 금분세수를 하고 사라졌다는 말뿐이었다.

“그만두시오. 집히는 바가 있소.”

진건곤의 말에 신기장주는 문초하기를 그만두었다.

“광산 속에 있는 사람들은 증인으로 삼는다. 이들과 함께 모두 관아로 끌고 가라!”

“신기장주는 나를 그들의 본거지로 안내하시오.”

신기장주는 뒤처리를 맡기고는 진건곤을 안내하였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신기장주의 안내로 흑절장을 찾았지만 그들을 막아설 만한 고수는 없었다.

진건곤이 예상했던 대로 공희국의 끄나풀들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곳의 토박이들만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역시……!”

“하하하! 다녀온 일은 잘되셨소?”

무국공의 입은 함지박 만하게 벌어져 있었다.

진건곤의 활약으로 속속들이 문국공의 사업장이 자신이 뒷배를 봐주는 무리들에게 넘어가고 있으니 진건곤만 보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마찬가지입니다. 호몽산에도 이미 공희국의 주구들은 사라지고 없더군요. 이미 모든 것을 철수한 듯하니 더 이상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어르신!”

“허허, 아쉬운 일이구려. 내 이놈들을 조사하라고 일러 놓았지만 이놈들이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전혀 흔적이 없구려. 하, 이를 어쩐다?”

무국공과는 달리 진건곤이 따로 하오문에 의뢰를 하였으나 그들의 정체나 위치를 찾았다는 연락이 온 적이 없었다.

무국공이 못 찾는 것은 성의가 없는 것인지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는 몰라도 찾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었다.

공희국을 얽어 넣으려고 하고 있으나 공희국과 관련된 인물들은 모두가 사라지고 없었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행했던 범인들도 모두 사라진 판국이니 공희국을 잡아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직 두 군데가 더 남아 있으니 마저 끝을 보아야겠습니다. 그곳에는 흔적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가시는 게 어떻겠소?”

진건곤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무국공은 진건곤에게 쉴 것을 권했다.

진건곤이 나서 준다면 나머지 두 군데의 사업장도 자신이 뒷배를 보아주는 곳으로 넘어갈 것이었다.

진건곤은 무국공에게는 재신이나 다름없었다. 그를 아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당장 가보겠습니다.”

“진공! 몸을 살피며 하시구려! 좋은 약을 구해 놓았으니……!”

진건곤의 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허허, 참! 저런 자가 나의 심복이라면 상전 대접이라도 마다하지 않겠구나!”

바쁘게 걸음을 옮겨 다른 두 곳에도 가보았으나 진건곤에게는 별반 무소득이었다.

영역 싸움에 끼어들었지만 그곳에서도 공희국과 상대했던 자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무국공의 배만 살찌워주는 결과가 나왔을 뿐이었다.

허나 진건곤으로서는 무국공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공희국의 약점을 잡게 된다면 무국공이 자신의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뿌드득!

진건곤의 이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공희국! 그렇게 빨리 꼬리를 감출 줄이야. 평생 네놈이 방심하기만을 노릴 것이다. 언젠가는 분명 내손에 잡힐 것이야.”

진건곤은 복수의 시간을 미루어야만 했다.

“전진자가 진영리의 자식 놈이란 말인가? 세월이 벌써 그리되었어. 복수란 말이지?”

귀밑머리가 희끗해 보이는 노인은 자신의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노인의 앞에 부복해 있던 야행복의 사내의 답이었다.

“꼬투리가 잡힌 것은 없나?”

“이미 모두 철수한 후에 벌어진 일이기에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진자라고 해도 형제들을 동원한다면 언제라도 없앨 수 있습니다만…….”

노인의 눈에는 갈등의 빛이 잠시 머물렀다.

“일단은 내버려두어 보지. 피치 못할 일이라면 어쩔 수 없으나 너무 많은 피를 뿌리면 꼬리가 붙지 않겠느냐?”

“존명!”

야행복의 사내는 눈은 번쩍이고 있었다.

‘국공 어르신은 마음이 너무 여리시지. 예전에 흔적을 지웠어야 했는데 말이다. 국공 어르신의 눈을 벗어난다면 내가 처리하리라!’

문국공 공희국이 내린 명령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야행복의 사내였다.

“호구나 좀더 단단하게 조여 두게. 공녀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니까.”

“다시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허허허! 그대가 그리 말한 다면 틀림없겠지. 수고해 주게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지 모른 체 넘어가는 공희국이었다.

상쾌한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문득 시선을 하늘로 옮기자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그를 맞이했다. 눈이 자연스럽게 감기려 했으나 의지로 그것을 막았다.

하늘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웅장한 산들이 우거진 녹음을 내세우며 자신이 있음을 말하는 듯하였다.

공희국을 잠시 버려두고 동생을 찾으러 가는 진건곤이었다. 생각보다 긴 싸움이 될지도 몰랐기에 동생에게 터를 잡아주려고 하였다.

아미를 찾아 가는 길은 꽤나 긴 여정이었지만 동생을 만날 생각을 하니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떠난 여정은 생각 외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렇게 불현듯이 절벽 위나 산정에 오르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또다시 홀리고 말았는가?”

무엇에 홀렸다는 말일까?

“아무리 산천이 좋다한들 이런 식이라면 곤란한데…….”

그랬다. 진건곤은 가끔씩 자연경관에 홀려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정신을 차려보니 관도를 벗어난 지 오래.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 위에 홀로 앉아 가부좌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현천기공 때문인가? 호흡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일까?”

진건곤의 한 호흡의 길이는 이미 이백 오십을 헤아리고 있었다. 일반인들에 비하면 너무나 긴 숨. 무인들이라고 해도 터무니없는 숨이다.

연무실과 같은 곳에서는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나 이렇게 산천이 좋고 기운이 밝은 곳에서는 가끔씩 산천에 홀려 어디론가 자리 잡고 눌러 앉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가끔씩 호흡에 몰입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건곤으로서는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부족한 내력을 생각하자면 좋은 일이오. 넋이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나쁜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몸에 이상이 느껴지지는 않았기에 특별히 호흡을 막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내력의 부족을 느끼는 진건곤으로서는 현천기공의 발전은 언제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이 아니던가?

진건곤은 품에 들어 있는 나무 목갑을 만져 보았다.

밀납에 밀봉된 자소단이 들어 있는 목갑이었다.

무당의 보물로 취급받는 태청단은 인세에 보기 드문 것이라 그 존재 자체가 전설로 취급되어 왔다. 태청단에는 비교할 수 없으나 현세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영단 중에 하나인 자소단이다.

“생각 밖으로 빠르게 이것을 사용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구나.”

자소단이 있었음에도 진건곤은 사용하지 않았다.

언젠가 가일구층황금공을 다시 시행할 때 도움이 될까 아끼고 아껴온 것이었다.

“지금의 현천기공은 팔 성. 십 성이 되면 사부님은 다시 찾아오라고 하셨지. 그날 이것을 사용할 것이야.”

진건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 사용해 가일구층황금공에 도전할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내력을 기를 것이다.

“또다시 호흡이 늘었는지 확인해 볼까?”

진건곤은 스스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숫자를 헤아려가며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이백 팔십! 역시나 호흡이 늘었어. 이대로 가다간 삼백을 넘기는 것은 시간문제겠구나.’

진건곤의 예상은 옳았다.

아미로 가는 여정에서 진건곤은 또 한 번 산천의 기운에 취해 자신을 잃고 산정을 헤맸다. 또다시 호흡이 늘었다.

진건곤은 스스로 현천기공이 구 성에 이르렀다고 생각은 했으나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전진은 이미 멸문한지 오래요. 전진의 무공으로 대성한 선배도 없었으니 미지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산과 산 사이의 골을 벗어난 사내는 고개를 들어 눈앞의 산을 보았다.

퍽!

머리 위로 수북하게 쌓였던 눈이 떨어져 내려 설원에 보태졌다.

휘이이익! 휘이익!

찬바람이 말과 사내의 전신을 휘감았다 떨어져 나왔다.

푸르르! 푸르르! 푸르르륵!

말의 코에서는 하얀 김이 쏟아져 나왔다.

말은 몸을 털어가며 추위를 털어보려고 애쓰는 듯하였다.

“저곳인가? 려경이가 있는 곳이?”

굉장히 커다란 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눈마저 내려온 산이 하얗게 변해 있으니 그 모습은 한결 더 신비해 보였다.

천하의 명산이라는 아미산.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진건곤에게는 왠지 부드럽고 평온해 보였다.

진려경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고 소군이 나온 곳이기도 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원단을 넘겼으니 잔소리 좀 하려나?”

아미파를 찾기로 마음먹은 후에 연통을 먼저 날렸다.

그런데 가끔씩 넋이 나가 절벽 위나 산정에 홀로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여정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확인했지만 중구난방. 거꾸로 되돌아가 있던 적도 있었으니 생각했던 대로 여정을 꾸릴 수가 없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나서야 이제야 당도한 것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이 이제는 산천의 기운에 홀려 사라지는 일이 사라졌다는 것 정도이다.

비교적 눈이 적다고 알려진 사천 땅에 이렇게 큰 눈이 내릴 줄은 몰랐다.

사천은 눈이 적었다. 다만 아미산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지형이었기에 눈이 내린 것뿐이었다.

아미파로 알려진 사원의 입구에 다다르자 진건곤은 말에서 내려 걸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량수불!”

문 앞을 쓸던 비구니가 합장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곳은 향배객을 받는 곳이 아니랍니다. 시주께서는 아미를 찾아오신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제게 말씀하시면 전해드리지요.”

“속가제자 진려경의 오라비 되는 사람입니다.”

“아……! 전진자이시군요. 이쪽으로 드시지요. 접객당에 계시면 됩니다. 데려오겠습니다.”

‘전진자라? 새로 붙은 별호인가? 살귀보다는 낫구나.’

진건곤은 공희국의 사업장을 돌고 다녔다.

그곳에는 제대로 알려진 별호를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당연히 진건곤의 별호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전진자라는 별호를 이곳에서 처음 들었던 것이다.

일다경 이상을 기다리자 아미승 둘과 머리를 기르고 있는 속가제자가 같이 들어왔다.

“무량수불! 현정이오. 려경을 가르쳤다오.”

스스로 자신을 밝혔다.

“려경의 사부님을 뵙습니다. 절강의 진건곤입니다.”

“호호호! 이미 다 알고 있다오. 어찌나 오라비 자랑을 해대는지 말이오.”

진건곤은 난처함을 느꼈다.

현정이 진려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 걱정했어요.”

진려경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진건곤의 품에 안겼다.

“미안하다. 일이 많았다. 하여간 이리 보니 정말 반갑구나!”

이미 다 자라 버린 진려경은 빼어난 미모를 가지지는 않았다. 그럭저럭 봐줄 만한 얼굴이었지만 약간은 고집스러워 보이는 인상이 그녀의 미모를 가리고 있었다.

진려경은 많이 변해 알고 보니 어릴 적 얼굴이 남아 있어 동생이려니 하지 길에서 보면 몰라볼 뻔하였다.

“녀석! 몰라보게 변했구나.”

“흥! 하나뿐인 동생을 몰라본단 말이에요?”

진려경이 입을 실죽이며 서운한 눈치를 보였다.

“몰라보게 예뻐졌다는 말이다.”

“정말? 정말이지?”

진려경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무량수불! 또 뵙습니다. 전진자님!”

같이 들어온 아미승은 바로 연흥이었다.

진건곤도 역시 예를 갖추었다.

“무량수불!”

“소군께서는 이곳에 안 계시기에 제가 나왔습니다.”

“호호호! 오라버니. 연흥 사저는 오라버니를 존경하고 있답니다.”

“어어, 괜한 소리를 하는구나!”

진건곤은 진려경을 나무라려 하고 있었으나 연흥이 나섰다.

“사실입니다. 소군께서 전진자님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제게는 전진자님 최고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십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진건곤은 영문을 몰라 하고 있었다.

소군이 말한 내용을 알 수도 없고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스승이라니?

“소군께서는 전진자님과 아미가 선연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도움을 주고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숙제를 주시더군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법흥이 꺼낸 것은 바로 전진과 관련된 무공들이었다.

“이것들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소군께서는 전진자님께 보여주라고 하셨습니다. 이곳에서만 보게 하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만…….”

“감사합니다. 이것만이라도 제게는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진건곤은 소군이 보여준 정성에 크게 감탄하고 말았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전진의 무공서에 순식간에 빠져든 진건곤이었다.

“아……!”

“저는 들어가서 짐을 챙겨 올게요. 그동안 이곳에 계셔요.”

진려경이 물러나자 현정도 연흥도 같이 물러났다.

연흥은 무공서를 지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접객당에서 물러나 진건곤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진건곤을 향한 신뢰였다.

진건곤은 접객당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이틀이 지나고 진건곤이 접객당에서 나오자 그곳에는 진려경과 연흥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라버니!”

연흥은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여 왔다.

“고맙습니다. 법사님. 소군님께는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건곤은 고개를 들어 연흥을 보았다.

“법사님의 배려에도 크게 감사를 드립니다.”

연흥은 그 한마디에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승님을 모시는 일이었습니다.”

“네……? 괜한 말씀을 하십니다.”

진건곤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짐을 챙긴 진려경이 진건곤의 옆에 섰다.

“무량수불! 가시는 길에 다복하길 빌겠습니다.”

연흥이 합장을 하며 불경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혹여 누군가가 묻거든 아미와 저는 선연이었다고 전해주셔도 됩니다.”

“아……!”

진건곤의 말에 연흥의 불경이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연흥은 소군의 말을 떠올렸다.

‘네가 스승으로 생각하는 그 사람은 세상에 보기 드물게 날마다 새롭게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람의 앞길이야 어떻게 변할는지 몰라도 그가 아미의 친구가 된다면 내가 없더라도 든든할 것이다.’

연흥의 불경이 잔잔히 울리고 진건곤과 진려경은 아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진려경을 말 등에 태운 채 진건곤은 고삐를 끌고 있었다.

“오라버니?”

“왜?”

“서신에 보니 아버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시다고 했었지요? 그 일을 끝을 보셨나요?”

“아니다. 시간을 들여야 할 것 같구나.”

진려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말해 주시지 않을 건가요?”

“왜 그리 생각하느냐?”

“지금 말씀하지 않으시니까요.”

“그렇다. 오라비를 믿지?”

“…네!”

“넌 그냥 잊으면 된다. 오라비가 책임지고 일을 끝내마!”

진건곤은 공희국을 노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자객이 되어서라도 원한을 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려경에게 알리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오라버니?”

“믿지 못하겠느냐?”

“아니오. 믿어요. 다른 것을 묻고 싶은데요.”

“하하하! 무엇이냐?”

“전진의 무공서에는 그리 신묘한 구석이 많은가요?”

진건곤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물었다.

“그걸 왜 묻느냐?”

“오라버니의 무공은 단번에 전진자라고 별호를 얻으며 신진십룡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단 두 권의 무공서를 읽는데 이틀이나 걸렸으니 전진의 무공이 어찌 신묘하지 않았겠어요? 저도 봐두는 것이 좋을까 싶어서 말이에요.”

“필요 없다. 네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 있는 무공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아! 그럼 왜?”

그렇게나 오래 보았냐는 뜻이다.

“아는 것이라도 사부님께 말로만 전해들은 것이 아니더냐? 혹시나 무엇이라도 빠진 게 없는가 싶어서지. 내가 열심히 보아야 준비해 준 사람들도 기뻐하지 않겠느냐? 이미 전해들은 것이라고 해서 쉽게 넘어갔다면 누군가 서운해 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연흥 사매는 크게 기뻐했어요. 오라버니께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얼굴에 번져 나왔으니까요.”

“그게 사람이 사는 게 아니겠느냐? 배려를 해준 사람의 정성을 무시해서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호호! 오라버니?”

“왜 자꾸 부르느냐?”

“오라버니는 제 오라버니가 맞는데 하는 말은 다 늙은 스님 같아서 말입니다. 호호호!”

“하하하하!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동생을 보니 나도 좋구나!”

남매의 웃음은 허허벌판 하얀 설원 위에 퍼져나갔다.

십 년 만에 만난 자매는 잠시 헤어졌던 것처럼 자연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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