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12화 (12/61)

제4장

“형님!”

진건곤을 부르는 청명의 음성에는 기쁨이 가득해 있었다.

청명은 어제 소식을 들은 뒤부터 학수고대하며 진건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잘 지냈느냐?”

“저야, 뭐. 형님은 잘 지냈습니까?”

진건곤은 겨우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면서도 한참은 어른인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마쳤다.

“하하하! 형님은 아버님의 과묵한 성격을 그대로 배우셨습니다. 하하하!”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방 웃음뿐이었다.

청명에게서는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무림대회에 나와서 여유가 있다는 것은 그만한 자신감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진건곤은 그의 얼굴에 걸린 밝음을 보고 나서 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잊어 버렸다.

“그럼 됐다.”

“하하하! 판박이로군요. 아버님도 그리 말씀이 없으시죠. 하지만 이리 오랜만에 만났으니 조금은 더 말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려경이 소식은 알아 보셨습니까?”

진건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려경이는 형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고 하던데요?”

“직접 연통한 적은 없다. 그러다가는 수련도 그만두고 당장 달려갈 것 같아서 참았다. 내 따로 수소문해서 알아봤다.”

“하, 거참. 무정한 것까지 배우셨습니까? 아버님은 그렇다치고 어째 형님에게서 연락이 없다 했더니 그런 것까지 배우셨을 줄이야. 려경이와 제가 얼마나 소식을 기다렸는지 아십니까?”

“그리 궁금했다면 네가 연락을 하면 되지 않았느냐?”

청명이 뒷목을 살살 긁었다.

“그게… 실은 려경이와 소식을 주고받느라 여유가 없었습니다.”

청명은 려경에게 서찰을 전하고는 했다.

서찰을 보내는 데에는 돈이 들었는데 청명에게는 돈이 생길 일이 없었다.

진려경과 연통하는 데에도 부족한 마당에 그쪽까지 보낼 여유는 없었다.

“무슨 말이더냐? 너희 둘을 연락을 하고 지냈더냐?”

“하하하! 이를 말이겠습니까? 무영 사숙조님이 저를 돌봐주셨습니다. 언젠가 말이 나오고 나서부터는 연통을 하도록 해주셨지요. 그런 면에서는 아버지보다 훨씬 좋으십니다.”

“다행이구나. 그럴 여유가 있었으면 그리 괴롭힘도 많이 받은 것 같지 않구나.”

“하하하! 옛날이야기는 하지도 마세요, 형님. 그땐 차별을 받아서 그랬지요. 무영 사숙조님께서 챙겨주시니 사문의 무공도 제대로 배웠습니다. 같은 것을 배우고 익힌다면 그리 녹록해 보일 정도는 아니지요.”

말은 그리했지만 청명의 과거도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청린의 말대로 기초가 늦었으니 그것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한차례 청명이 서럽게 지냈던 기억을 되살려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쾌거였다.

“그럼 이번 대회에 기대해 보아도 되겠구나?”

“아! 형님도 참가하시는 거죠?”

“그래, 그래야 할 일이 생겼다.”

“하하하! 형님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원시천존께서 저를 살펴주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그래, 그렇구나. 너와는 만나서는 곤란하겠지.”

“흥! 그전에 나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야 할걸?”

어디선가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울리지 청명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대책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청린이었다.

그녀가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다루가 환해지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였지만 외모와는 다르게 날이 선 말만 하고 다니는 그녀였다.

“사매! 무례하구나.”

“흥!”

청린은 콧방귀만 뀌고는 싸늘하게 알은체도 하지 않고 있었다.

청린과 청명 사이의 관계는 여전했다.

다만 이제는 남의 이목을 생각하는지라 말을 하게 된다면 호칭이나 존칭을 지켰을 뿐, 보통의 사형제지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본디 대회에 나갈 마음은 없었으나 너와 싸우기 위해서 참가하기로 했지. 청명 사형보다는 나를 피해가도록 원시천존께 빌어야 할 것이야!”

진건곤은 그저 가볍게 비웃어 주는 것뿐이었다.

“딱 두들겨 맞지 않을 정도로만 까부는구나!”

“뭐얏? 어디서…….”

청린은 진건곤에게 이런저런 말을 던졌으나 진건곤은 청린을 무시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는 일어섰다.

“대회가 끝나고 다시 보자. 저 천둥벌거숭이가 없는 곳에서.”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시끄러운 자리를 피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옮기죠.”

“뭐라고?”

청린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지만 진건곤도 청명도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는 그대로 무림대회가 벌어지는 지역을 벗어나 회포를 풀었다.

무국공의 장원으로 돌아와 보니 그곳에는 한 장의 서찰이 도착해 있었다.

하오문에 공희국의 사업장과 그것에 연관된 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 것이었다.

<…중략…

현재 벌이고 있는 일은 소금의 밀수와 앵속, 인신매매, 술도가, 객잔, 도박장… 등등, 이득을 볼 수 있는 일이라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있음.

…중략…

모든 일이 분산되어 있고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식객들을 활용하고 있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현재 절강성에는 이미 그의 영향력이 매우 커져 있음.

신기한 점은 그의 일에 개입된 자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점. 유난히 높은 충성도를 보이고 있어 조사조차도 기녀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들을 모인 것에 불과함.

이런 조직력과 세력이라면 대단한 상권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됨.

성주를 등에 업고 있으니 무림의 세력들조차도 부딪히기를 꺼리고 있음. 이대로 진행이 된다면 앞으로 십 년 후에는 절강성 최고의 부자가 될지도 모름.>

절강성 최고의 부자.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컸다. 항주는 이미 중원 최고의 성도 중에 하나다. 항주의 제일 부자는 바로 중원의 3대 부자 안에 드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금력은 귀신도 부린다고 했다. 부자가 되면 더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법. 그러기 위해서 그다음에는 누구를 부리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성주를 넘어서 황족이나 공신들을 끼게 된다면 손을 대기 힘들어진다.

“지금이 아니면 힘들겠군.”

진건곤은 무국공을 등에 업고 하는 복수가 실패한다면 다음에는 손대기조차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진건곤은 검을 쥐고 개인 연무실로 들어섰다.

“이것만이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을 뿐이지.”

진건곤은 현실을 알고 있었다.

더 많이 노력할수록 성공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조금 더 절실하게 노력하는 것만이 그가 아는 방법이었다.

진건곤의 검이 하늘과 땅을 가리켰다.

검은 언제나 가볍다.

말아 쥐지 않는다. 엄지와 검지로 검을 잡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그저 보조할 뿐이었다.

검이 가야 할 방향은 언제나 어깨와 팔뚝, 손목이 동시에 움직이며 만들어 내었다.

때로는 밟아가는 보법과 몸의 이동이 검의 방향을 정하는데 사용되었다. 심지어 바닥을 차는 반동조차도 검의 흐름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흐름은 어깨와 팔뚝, 그리고 손목에 기대어 흐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미세한 흐름을 정리했을 뿐이었다.

핑!

검광이 번쩍이며 파공음이 울렸다.

“좋구나!”

고심환 덕이었을까? 몸을 추스르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내력에 할애한 탓이었을까?

의원을 벗어난 후부터 아주 약간의 차이이기는 하지만 검의 움직임이 전보다 더 민활하게 느껴졌다.

일 검, 일 검에 쏟는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껏 알게 된 모든 내용이 총망라되어 검 끝에 맺혔다. 추호의 방심도 없었다.

진건곤의 검은 표홀하기 짝이 없게 움직이나 그 가벼운 움직임조차도 모든 것을 다 바쳐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움직이기 시작해 방향을 정하지 못해 넘어지는 듯 부드럽게 흐르기 시작하고 검이 원하는 곳에 닿을 때가 되면 다섯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어느새 완강하기 이를 데 없는 검로가 만들어졌다.

찌르고 베고 뛰어올라 회전하며 몸을 옮긴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동작에도 검은 한 번도 원하는 방향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진건곤의 육합건곤검이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가는 진건곤의 수련이었다.

“와와와와!”

“최고다!”

“아……!”

환호와 탄식이 오고가는 사이 의기양양 고개를 세우는 무인이 있었고 어깨를 늘어트리고 물러나는 자가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제자들은 모두 일차 본선은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본선에 와서조차도 한차례 걸러진 후에야 그들의 상대가 가려지는 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세상인심이었다.

진건곤도 역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일원이 아니니 처음부터 비무를 치러야 했다.

“초계 살귀와 영산 포룡검은 나서시오.”

모두 열 개의 비무장에서 한꺼번에 치러지는 비무였는데도 그 순간만큼은 비무장이 술렁였다.

초계 살귀라는 이름을 거론하자면 소림의 스님조차도 무섭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 거듭 언급되었다.

중인들은 초계 살귀가 검도 아닌 검집을 휘둘러 태산북두 소림의 스님조차도 겁에 질리게 했다는 점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곧 그 수문의 주인공이 등장할 것이라는 점에 모든 관중들이 집중하고 있었다.

진건곤이 오르고 포룡검이 올랐다.

“절강성 진가요.”

스스로 살귀라고 밝히기에는 찜찜했던 터였다.

“영산 포룡검이오. 최선을 다하겠소.”

소문 탓이었을까? 영산 포룡검은 스스로 하수를 자처하고 들었다.

번뜩!

포룡검의 검이 발도와 함께 검광을 번뜩였다.

허나 진건곤의 왼발이 뒤로 한 걸음 움직인 것만으로 포룡검의 검 끝은 허공만을 스쳐야 했다.

포룡검은 검을 재빨리 회수하였지만 그의 검에 묻어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진건곤의 장이었다.

포룡검이 깜짝 놀라 검극의 방향을 바꾸어 찔러 가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진건곤의 손이 뒤집히며 그의 검을 쥔 손을 때렸던 것이다. 허공으로 솟구친 검과 손. 그의 팔뚝 밑이 훤하게 비어 있었다.

퍽!

육중한 격타음이 울리고 포룡검은 그 자리에 무너지고 말았다.

너무나 짧은 시간. 그것도 한 번의 출수에 무너진 포룡검이었다.

“우와와와와!”

“최고다!”

관중들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의 반응은 아주 열광적인 것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영웅이 나오기를 바랐던 중소방파와 낭인들의 환호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살귀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초계산의 혈향이 어린 산적들을 베고 얻은 이름.

그들의 영웅이 되기에는 충분한 자격이었다.

허나 그들과는 다르게 진건곤의 비무에 코웃음을 치는 자들이 있었다.

일정한 수준이 넘어가는 무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이미 포룡검이 얼마나 약한 자인지를 알아챘다.

“흥! 저 정도라면 나라도 일 장에 끝내겠어. 일 검이 빗나간 후에 상대가 들어온다는 것 정도는 미리 대비했어야지. 저렇게 허둥대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

청린의 차가운 음성이 있자 주위에 있는 구파일방의 제자들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생각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중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것을 알아보기 보다는 살귀의 소문과 검을 꺼내지 않고도 장법만으로 상대를 끝장냈다는 점에 열광하고 있었다.

“흥!”

“사매는 건곤이를 깎아내리지 마라. 저 정도를 못할 자는 우리들 중에 없지만 건곤이 보다 더 매끄럽게 펼칠 자는 없다.”

오뚝하게 솟은 콧날에 눈망울이 반짝거리고 있어 어딘지 모르게 선한 느낌을 주는 인물.

누가 보아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넉넉한 얼굴도 역시 그의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바로 청송이었다.

화산의 대제자이며 천부적인 재질과 함께 부단한 노력으로 다른 어느 제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청암에게는 좌절의 벽으로 군림하는 자. 동시에 청암을 포함한 모든 화산의 제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청송이 바로 그였다.

청린은 그가 밀어를 속삭인 것도 아닌데 얼굴을 붉혔다.

유난히 하얀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자 그녀의 용모는 더욱 화사해 보였다.

“네, 사형.”

청린의 목소리는 전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옥구슬이 쟁반을 구르는 소리와 같았다. 듣는 이들이 모두가 청아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런 간단한 변화만으로도 누구라도 청린의 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오직 한 명, 청송만 빼고 말이다.

“청명.”

“네, 사형.”

“건곤은 네 형님이 아니더냐? 가서 함께 있어도 좋다. 또, 내 안부도 전해주려무나. 나도 만나보고는 싶으나 나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말도 해주고.”

청송이 안부를 전하라는 말을 하자 청명은 잠시 놀라는 듯하였다.

‘허! 대사형은 역시 사람을 편애하지 않는구나! 화산이 아니어도 건곤 형을 챙기고 있어.’

청명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대사형에 대한 감탄이 서려 있었다.

청송은 그야말로 화산의 보물. 공정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모든 제자들의 마음까지도 감복시키고 있는 자였다.

청명은 얼른 일어나 진건곤을 향해 움직였다.

열 개의 비무장에서 동시에 비무를 진행하니 초전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오전 중에만 무려 칠십여 시합이 종료가 되었다. 이대로라면 이틀 만에 일차 비무가 끝이 날 것 같았다.

삼 일을 쉬고 다시 비무를 시작한다. 나름대로 일차 비무를 치르는 자에 대한 배려였다.

이차 비무부터는 모두가 공평하므로 쉬는 날이 없었다.

진건곤은 모든 비무를 지켜보며 다른 자들의 실력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네 번의 비무를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를 파악하는 것을 허술히 할 수 없었다.

물론 비무가 없는 날은 무국공의 숙소로 들어가 치열하게 자신을 갈고 닦았다.

이미 십 년 동안 똑같은 장권과 똑같은 검을 연마했음에도 진건곤의 수련은 언제나 새로웠다.

지금보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매끄럽게 언제나 새롭고 새로운 것을 찾았다.

물론 새로움에 빠져들어 옛것을 해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진건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릴 때에는 오랜 동안 비교를 하여 무엇을 가질 것인지를 폭 넓게 따져 보았다.

날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따져 보지만 정작으로 군자검이 준 것과 절검이 일러준 기본에서 변한 것은 십 년 동안 겨우 두 가지에 불과했다.

그만큼 진건곤은 전통이 스며들어 있는 가르침의 값어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새로움으로 과거의 것을 바꾸는 것은 쉬워도 전통을 세우는 것은 어렵다. 전통이 왜 전통으로서 의미가 있었는지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면 새로움을 시도할 수는 있어도 갈음할 수는 없지.”

진건곤은 또다시 오늘 본 비무에서 얻은 새로움을 시험하고 있었다.

기병이랄 수 있는 겸의 활용법에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타나는 놀라움이 있었다. 오늘은 검에 그것을 담고 싶었다.

진건곤의 검이 이제껏 보이지 않던 방향으로 움직였다.

새로운 방향에서 움직이는 검광에는 이제껏 보기 힘들었던 날카로움이 있었지만 진건곤의 검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었다.

모든 것을 확인하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역시 세상은 넓다. 어제 본 바만으로도 생각지도 못할 초식들이 있었어. 비무를 하면서 계속 보아 둔다면 도움이 될 것이야.”

진건곤은 또 다른 검식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같은 시각.

절강성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하고 남을 공희국이 놀랍게도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절강성의 성주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감춘 자.

공희국은 자신의 소매에서 두툼한 종이 두루마리를 여러 개 꺼내 놓았다.

“하오문에서 염탐을 시작했습니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 소매에서 나와 두툼한 종이 두루마리를 잡았다.

“호오! 어느 정도지요?”

“그저 기생들을 통해 염탐하는 정도라고 합니다. 아직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온 하얀 손가락이 두루마리를 풀어 보았다. 놀랍게도 중원 제일의 전장인 은하전장의 전표였다.

탁상 위에 쌓인 종이들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만큼의 부(富)였다.

허나 손가락의 주인은 엄청난 부를 앞에 두고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제는 그만 모으도록 하세요.”

하얀 손가락의 주인은 부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직은 더 많은 재화를 모을 수 있습니다.”

“안 됩니다. 꼬리가 잡혀서는 안 됩니다.”

“하오나 그들이 잡을 수 있는 꼬리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제 손으로…….”

“안 됩니다!”

단호한 거절의 목소리에 공희국의 음성은 멈추고 말았다.

“전에도 모든 것이 완전하다고 믿었지요. 그런데도 제 작은 욕심에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소문처럼 대단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또다시 그날을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형제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신비인의 음성에는 절절한 애잔함이 끓어 감히 공희국은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였다.

“조심하세요. 모든 꼬리를 자르고 항주의 호구만 두 개 남겨 놓으세요. 그 정도라면 충분히 스스로를 위한 축재(蓄財)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간 보여주신 국공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쿵! 쿵! 쿵!

“원통하옵니다.”

공희국이 탁상에 머리를 박는 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그 울림은 한껏 늘어져 원통하다는 공희국의 말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나중에 한 번은 더 들리도록 하지요.”

그 소리에 공희국의 낯빛에는 희망이 감돌았다.

“부디! 다시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라도 쓸모가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국공의 마음은 충분합니다. 부디 건재하시어 후일 도움이 되어 주십시오. 지금은 그것을 위한 이별이랍니다.”

“부디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국공께서는 부디 몸을 건사하는데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국공께서는 두고두고 도움이 되실 분, 이깟 재화에 쓸려 변을 당하시면 대계에 큰 지장이 있습니다. 사소한 욕심은 버려 주십시오.”

파라라락! 덜컹!

파공음과 함께 창문이 열려 바람이 들었다.

휘이잉!

한차례 바람이 불고나자 어둠 속의 인물이 사라지고 말았다.

공희국은 그 빈자리를 우러러 보았는데 그의 눈에는 강대한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열망은 은은하게 빛이 나는 게, 숭고함마저 느낄 수 있었으니 부처의 설법이라도 들어 해탈을 고지로 하는 고승에 비유할 수 있었다.

성주의 그림자에 숨어 권력을 바탕으로 온갖 이권을 탐하던 자의 눈에 숭고한 빛이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데에에엥!

커다란 징소리가 울리고 폭죽이 터졌다.

“제이차 비무대회를 시작하겠소.”

“와와와와와!”

“소림, 소림, 소림!”

“난 무당이 보고 싶어!”

개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저마다 보고 싶은 문파를 연호하는 사람들. 그야말로 중원천하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대축제를 방불케 하였다.

하지만 그들을 불러 모은 당사자인 비무의 참가자들은 긴장의 빛을 늦추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문의 영광을 걸고 스스로 얻고 싶은 것들을 위해 전력으로 부딪혀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신비외문으로 외경 받아오던 구파일방이 드디어 참가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첫 시합이 시작되었으나 사람들의 시선은 오로지 한 경기에 집중되었다.

바로 무당이 자랑하는 후기지수이며 만금장의 둘째인 진금 포여락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포여락의 상대는 창을 쓰는 자로 비무대회 등록을 가장 먼저 했던 사내였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것인데, 지금의 표정에는 긴장감만이 돌뿐 자신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상대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자신의 솜씨를 모두 발휘하기로 작정하였는지 일차 비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실력을 모두 발휘하였다.

비무가 시작되자 날카로운 창영이 일어나 진금을 감싸듯이 날아들었다.

창영 하나가 살아 있는 듯이 예측하기 힘든 변화를 지어내며 진금을 때렸으나 진금은 검을 들어 시종일관 수비식만을 펼쳤다.

진금의 검이 가는 곳에는 길이 열리고 창영은 신기하게도 그곳을 피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검과 창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누구나 신기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관중석에서 탄성이 담긴 말이 터져 나왔다.

“태극검의 진수로구나!”

무당의 기본 검공인 태극검이었다.

입문공이자 무당의 마지막 검법이라는 태극검은 검의는 끝이 없으나 그 심오한 오의를 깨닫기가 어려워 기본공으로서만 사용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태극검이 진금의 손에서 희대의 절학으로 변해 있었다.

과연 진금이 비무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무당의 장문으로 나선다는 것이 허언은 아닌 듯하였다.

“승부를 확인하였소. 절학을 보여주신 점 깊이 감사하오.”

상대는 흡족한 표정으로 비무대를 내려갔다.

오로지 수비식만으로 상대를 감복하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진금은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었다.

속속들이 이어서 나타나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제자들이 보여주는 무공은 참으로 놀라웠다.

왜 구파일방 세외선인인지, 왜 오대세가가 오대세가인지를 절로 알게 해주는 무공들이 잇달아 선을 보였다.

진건곤은 그들의 비무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허! 참으로 놀랍구나.”

“하하하! 당연하지요. 구파에서도 고르고 골라온 제자들의 실력이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뭐… 그래도 앞으로 펼쳐질 비무에 비하면 지금 것은 우스운 거지요.”

진건곤이 청명을 돌아다보았다.

“앞으로는 구파일방의 비무가 시작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구나!”

진건곤은 처음으로 보는 구파의 수준이었으나 청명은 항시 보아오던 것이니 놀라움이 다를 수밖에.

허나 진건곤은 그들의 무공이 높아서 놀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군자검 같은 사부를 모시고 있으니 그런 면에서 놀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나이 또래에 자신과 비슷한 경지의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하지만 형님만 하겠습니까? 초계 살귀님? 하하하하!”

청명은 살귀라는 별호로 진건곤을 놀리는 것에 재미가 붙은 모양이었다. 기회가 되는 대로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허나 진건곤은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로 비무대를 보고 있었다.

“곤륜의 태성 도장과 절강의 초계 살귀는 오르시오.”

“와와와와!”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자고로 관중들은 영웅의 편이다. 낭인으로 시작하여 구파일방이 참가한 비무대회에서 우승한다면 영웅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초계 살귀를 그 영웅으로 점찍은 듯하였다.

“하하하! 인기 좋습니다. 형님!”

진건곤이 일어서 비무대에 올라서자 태성 도장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듯이 나타났다.

역시 운룡대구식으로 유명한 곤륜은 명불허전이었다. 이토록 가벼운 경신법을 구사할 줄이야.

“와와와와!”

태성 도장은 입장만을 관중들을 자신의 편으로 되돌려 놓았다.

“쯧쯧쯧! 이렇게나 보는 눈들이 없다니……!”

청명 홀로 혀를 차고 있었다. 마침 눈길을 돌려보니 청송이 그를 보고 있었는데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틀림없다. 건곤이는 그 정도에 꺾일 자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흐음! 둘은 또 언제 이렇게나 사귀어 놓은 거지? 마치 연인 같은데?”

청명은 청송이 진건곤에게 보내는 관심이 보통의 것이 아닌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다감하기는 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진건곤을 끊임없이 지켜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오늘도 진건곤을 먼저 발견하고는 청명에게 가보라고 말했던 것이 그가 아니던가?

“참 재밌는 게 세상인가? 사매는 대사형에 목을 매고 대사형은 형님을 좋아하고. 하하하! 어쩌면 사매가 형님을 인정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어! 하하하하!”

홀로 생각만 해도 재미나는 장면이었다.

비무가 시작되자 태성은 진건곤을 가볍게 보았는지 손을 털어내듯이 가볍게 검을 휘둘러왔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곤륜이 자랑하는 추계유엽이라는 검법으로 팔랑거리며 언제든 방향을 틀 수 있는 것을 장기로 하는 검법이었다.

표홀한 보법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검법이었기에 태성의 본 실력을 더욱 높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진건곤도 역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채재재쟁!

번뜩이는 검광과 함께 불꽃이 연거푸 수차례 튀었다.

“와와와와!”

함성이 일었다.

낭인들과 중소방파의 기대주인 살귀의 검이 구파일방에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지른 함성들이었다.

‘역시 강한 자!’

비무에 서기 전에 태웅 대사형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상대가 좋지 않구나. 구파일방의 제자 못지않은 자가 모두 열둘이다. 그 중에서도 주의해야 할 자로 분류했다. 최선을 다하고 후회를 남기지 마라.’

자신의 패배를 예단하는 듯한 말이었다.

‘말도 안 돼! 일차 비무에서 보여준 겨우 한 초식으로 이자가 나보다 강하다는 것을 어찌 안단 말인가?’

연거푸 추계유엽검을 시전하자 팔랑거리는 낙엽이 진건곤을 뒤덮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태성의 추계유엽검은 그야말로 십 성의 경지, 완벽한 추계유엽검의 현신이었다.

‘특이한 검이구나. 그럼 잠시 보아두도록 할까?’

진건곤은 그의 검이 뻗어나가는 것을 놓아두었다.

검이 낙엽처럼 팔랑거리며 떨어져 꺾이는 각도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특징인 검이었다.

팔랑거리듯이 흔들리는 여러 개의 검영이 진건곤에게 쏘아졌다.

채채재재재재쟁!

진건곤의 신형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검광이 번쩍이고 불꽃이 튀었다.

바로 격검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진건곤은 태성의 검을 쫓지 않았다. 그저 곁에 다가온 검영들을 일일이 때려낸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둥그런 공간은 점점 커져 태성의 곁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태성의 검속보다 진건곤의 검속이 더 빨라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치잇!”

얼굴이 벌게진 태성은 진기를 끌어올려 발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태성의 신형은 비무대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진 듯했다.

한순간 꺼진 듯 사라졌던 그는 다른 곳에 원래부터 서 있었다는 듯이 나타났다.

그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이곳저곳에서 나타나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듯하여 그 모습이 신비해 보일 지경이었다.

또다시 예의 추계유엽검이 펼쳐졌다.

가볍게 검을 던지듯 하는 태성의 검이 진건곤의 신형을 향했다.

번쩍번쩍. 온 사방에 검광이 번뜩였다.

난파유엽이라는 검식으로 장기인 보법과 추계유엽검을 발전시킨 독문검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태성이 만들어내고 자신만이 사용하는 비장의 절초였다.

‘치졸한 수작! 몸이 움직이면 그만큼 검이 더 가벼워지지. 자신보다 상수를 상대한다고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이런 허점을 지닌 초식이 만들어지지! 틀림없이 스스로 만들어낸 초식이야. 전통이 서린 초식의 의미를 아직 모르는 자다. 더 이상 볼 것은 없겠어.’

채재재재쟁!

진건곤은 문득 크게 검을 휘두르기를 여러 번 하였다.

검들이 부딪히며 불꽃이 둥그렇게 튀어나더니 태성의 몸이 뒤로 물려졌다.

아까보다는 더욱 수월하게 뒤로 물려나는 것이 아닌가? 태성의 표정을 보니 놀라움이 역력했다.

‘가볍기 때문인 거다.’

여 격검의 장소를 밀어내더니 거리가 생겨나자 검을 곧게 찔러갔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일검이 태성의 명문혈을 노리고 들어갔다.

바로 중주일검!

천하에 악명을 날리던 백안옥마마저도 감당하지 못하던 검식이 아니던가?

태성은 진건곤의 검 끝을 예측하지 못하자 난파유엽검에 모든 것을 걸었다. 십 성의 공력을 끌어올려 더욱 빠르게 검을 펼칠 뿐이었다.

하지만 한순간 진건곤의 신형이 꺼지듯이 사라지고.

푹!

선혈이 하늘로 튀었다.

동시에 꺼지듯이 사라지는 난파유엽검의 검광들!

태성의 오른 어깻죽지에는 진건곤의 검이 찔러져 있었다.

놀랍게도 진건곤은 여러 곳에서 번쩍거리며 나타나던 태성의 진체를 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졌소!”

“와와와와와!”

“최고다!”

허공으로 온갖 물건이 날아올랐다.

영웅의 탄생이었다.

낭인과 중소문파들의 희망이 실현된 것이다.

구파가 고르고 골라온 후기지수 중에 한 명이 낭인이나 중소문파의 손에 패배를 당했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전례에 비춰 보면 오백여 명의 참가자 중에는 구파일방의 고르고 골라온 후기지수와 싸워 승리를 거머쥘 자는 겨우 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이차, 삼차 비무에는 존재했지만 사차 비무로 가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만의 잔치로 변하기 일쑤였다. 그때쯤이면 이미 옥석가리기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진건곤의 목표는 사차 비무에서의 승리. 구파일방이 내세우는 자랑거리를 꺾어야만 했다.

“하하!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형님이라니까요. 사매가 눈이 어두워도 한참 어두워서는…….”

하지만 그 말을 모두 다 할 수는 없었다.

순서가 되어 비무대로 향해가는 청린이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흥!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청린이 그들을 지나가며 흘린 말이었다.

“하여간 실력은 안 되면서 귀는 밝아요.”

청명은 이미 청린의 실력을 뛰어넘은 지 오래인 것처럼 청린을 은근히 무시하고 있었다.

진건곤은 청명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열심히 수련했구나.”

“그럼요. 내가 누구 동생인데요. 이제 형님이 기억해야 될 이름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는 제가 좀 기억을 해드릴까요?”

“훗! 많이 컸구나. 아까는 겸양한 척하더니 지금이 진심인 게냐?”

진건곤이 기분 좋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래도 명색이 화산의 이인자인데 자신감은 가지고 있어야지요.”

“예전에는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지 않았지 않느냐?”

“하하하! 지금은 무영 사숙조님이 있잖아요. 무영 사숙조님은 제게 사부요,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그분이 있는 곳을 미워할 수는 없지요. 게다가 존경할 수 있는 대사형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 대사형이 장문이 되면 아무도 차별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뭐! 저 마녀가 무섭지 않게 된 것도 이유라면 이유죠.”

진건곤은 어깨를 꽉 잡아당겨 힘 있게 안아주었다. 그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섬서제일미다!”

“와와와와! 백모란!”

“명불허전! 섬서제일미 백모란!”

섬서제일미 백모란이란 청린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로 대비되는 그녀의 용모는 단연 돋보였다. 같은 미모라고 하더라도 더욱더 눈에 들어온달까?

가끔씩 어미와 아비를 따라 나들이를 하였는데 어느새 섬서제일미로 알려져 버린 청린이었다.

장내는 후끈 달아올랐다.

이때만큼은 다른 비무대에 구파의 제자도 없어서 관중들의 눈이 청린을 향했다.

섬서제일미로 불리는 청린의 무공이 초미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상대는 강소성의 중소방파에서 나온 자였는데 그만 기권을 하고 말았다.

스스로 싸워봐야 필패라고 생각했던 데다가 화산의 제자라고는 하나 여인과의 비무에서 몇 수만에 패배를 당한다면 그 수치가 오래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산서제일미는 비무대에서 주위를 아주 오연하게 내려다보더니 진건곤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관중들이 그 시선의 끝에 진건곤이 있다는 것을 알아 챌 때까지 노려보다가 내려왔다.

“흥! 너도 나를 만나게 된다면 줄행랑을 치는 것이 더 좋을 걸?”

청린은 진건곤을 스쳐 지나며 그런 말을 남겼다.

“아이고 두야! 정말 하룻강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구나?”

청명이 자신의 이마를 치며 웃을 뿐이었다.

청린은 그런 청명에게도 눈총을 주고 지나갔다.

시간이 흐르고 비무가 계속되자 지루해질 때도 있었으나 그럴 때쯤이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이 나와 신비의 무공을 펼쳐 관중들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대회를 주도하는 만금장은 과연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줄 아는 상인들이었다. 그들이 짜놓은 비무 순서는 정말 절묘한 면이 있었다.

단연 돋보이는 자들은 무당의 진금, 화산의 청송, 곤륜의 태허, 소림의 법정이었다.

그들은 그저 비무대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진건곤으로 하여금 긴장을 느끼게 했었다.

군자검과의 비무를 겪으며 제법 마음의 진탕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들을 보자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저들이라면 백안옥마의 일장에 패퇴하지는 않겠지? 저들이라면 막강한 내공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들을 바라보며 진건곤은 또 한 번 씁쓸함을 느꼈다.

자신도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노력을 하였지만 그들도 역시 그러할 터. 멸문해 버린 전진의 심법을 가지고 그들을 상대하기란 힘이 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누님이 알려준 실마리를 푸는데 전념해야겠구나.’

그들의 대전을 지켜보며 느꼈던 점은 바로 그들에 버금가는 내공을 얻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수고했소. 진공!”

“고맙소이다.”

진건곤이 이차 비무에서 곤륜의 검을 꺾었다는 소식을 접한 무국공의 대접은 파격적으로 좋아졌다.

“오늘의 비무만으로도 진공의 무공을 믿을 수 있겠소. 공희국을 박살내는 일은 추진하겠소이다. 하하하하!”

무국공은 그 장대한 체구와 무섭게 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들떠 있었다.

생각만으로는 벌써 문국공의 세력을 밀어내고 자신의 심복들이 절강성을 주름잡는 것이 보였나 보았다.

“며칠만 말미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국공은 예상치 못했다는 눈으로 진건곤을 보았다. 진건곤이 더 서둘러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잠시 후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피가 끓었구려? 진공 정도라면 구파일방을 보면서 피가 끓겠지요. 좋소! 대회가 끝나는 다음 날로 준비를 해놓겠소. 몸을 보중하시오.”

“감사합니다. 어르신!”

무국공이 진건곤을 믿어주었듯이 진건곤도 무국공을 상전으로 대접했다. 그래봐야 공희국이 파탄이 나는 날에 그 관계가 끝이 나겠지만 말이다.

거처로 돌아온 진건곤은 하루 동안 보았던 무공을 다시 떠올렸다.

“참으로 다양한 무공이 많았어. 세상은 넓다.”

진건곤은 자신의 경험이 일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강호초출이라는 점을 잊고 있었는데 그들의 무공이 그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소림과 무당을 위시한 문파들의 무공을 겪으면 새로운 것이 보이는데 왜 화산의 무공에는 새로움이 없을까?”

육합구소검, 백매검, 매화삽십이식, 심지어는 그 검을 펼치는 보법까지 새로운 것이 없었다.

“사부님 때문일까?”

군자검에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자검이야말로 문파의 모든 무공이 있는 보고가 아니었겠는가?

진건곤은 정해진 대로 수련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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