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11화 (11/61)

제3장

차를 들이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무국공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관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덥수룩한 수염을 달고 있는 자가 들어섰다.

두꺼운 눈썹에 툭 눈으로 부리부리한 눈. 덥수룩한 수염까지 전반적으로 성질 꽤나 있어 보이고 힘 있는 것을 내세우기 좋아하는 자 같았다.

그래봐야 강호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인 무공이지만 말이다.

총관이 얼른 일어나 무국공의 곁에 섰다.

“초계 살귀 진가올시다.”

진건곤의 짧은 말에 무국공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진건곤의 말은 여전히 반 공대 정도로 계속되었다. 어쩔 수 없이 어울리기는 하지만 관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공희국과는 원한이 있소. 그와 싸우신다면 무국공께 보탬이 되리다. 단, 어중간한 싸움이라면 사양이오. 끝장을 보아야 할 것이오. 그동안은 견마지로를 다하겠소. 허나 싸움이 끝나고 나면 나는 이곳을 떠날 작정이오.”

무국공의 눈에 진지함이 깃들었다.

“초계 살귀라!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존중을 받을 만하지. 그러나! 초계 살귀라는 이름에 내 것을 모두 다 걸기에는 위험한 듯한데? 공희국은 그리 만만한 자가 아니니까.”

무국공은 초계 살귀라는 말에 달려 왔으면서도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위험한 모험에 쉽게 빠져들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를 원하시오?”

“공희국의 식객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다는 보장!”

“내가 보장을 해드린다 해도 믿으시질 않으실 터, 원하는 것을 말해 보시오.”

“이곳에서 조만간 커다란 무림대회가 열린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네 번을 싸우고도 패배가 없다면 그대를 믿고 공희국과의 싸움을 시작하지. 또한 너의 정확한 신상내력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뒷조사를 하도록 하겠다.”

무국공이 원한 것은 네 번의 승리였다.

통상적으로 무림대회는 오백여 명 정도가 출전을 한다.

물론 그 수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출전자의 수준을 정하는 시험으로 그 수를 조절하는 것은 이제껏 해오던 관행이다.

네 번의 싸움이란 본선에 오른 후의 싸움을 말한다. 대략 무림대회의 삼십 위가량을 원하는 것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는 각기 두세 명의 참가자가 있으니 그들의 수만 서른이 넘는다.

결국 삼십 위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은 구파일방의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을 꺾고 올라서라는 것을 의미했다.

과했다. 도에 넘쳤다.

황족도 성주도 아닌 일개 문국공의 식객 중에는 그런 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무국공이 원하는 것은 공희국을 이길 수 있는 패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인 필승의 패를 쥐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진건곤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무국공의 후원을 등에 업는 것이 가장 좋았다.

또한 진건곤은 스스로의 무위를 후기지수들과 견주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하하하하! 이를 말이겠소? 진공이 그리만 해준다면 나 역시도 내 모든 것을 걸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쳐보리다.”

무국공은 제안이 받아들여지자 대번에 말을 반공대로 고쳤다. 어린 자라하여 얕보았던 태도를 대번에 고치고 만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번 무림대회에서 네 번의 승리를 거머쥘 자에 대한 대우였던 것이다.

무림대회에서 네 번의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를 피해야 하는 운도 필요했고 그런 자를 만난다 해도 뚫고 나갈 무공 실력이 필요했다.

실로 운과 무공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는 말이 될 것이었다.

“그럼 그때에 다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합시다.”

“알겠소.”

“총관!”

총관이 앞으로 나섰다.

“총관은 직접 진공을 매실에 뫼시고 불편함이 없게 신경 쓰시오.”

진건곤은 총관을 따라 매실이라는 곳으로 모셔졌다.

“하하하! 무국공님의 관심이 지대하신가 봅니다. 매실에 드는 손님은 진공이 최촙니다. 매실에는 시비가 상주하고 있으며 개인 연무실이…….”

진건곤은 총관이 직접 하는 안내를 받으며 여러 건물을 지났다. 총관이 직접 나서도록 하는 것을 보니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러 인물들이 진건곤을 힐끗힐끗 쳐다보았지만 진건곤은 눈길을 받은 자들은 전부 주눅이 들어 눈을 돌렸다.

“초계 살귀라나 봐!”

그들끼리 수군대는 소리였으나 진건곤의 귀에도 들려왔다.

진건곤이 누워 있었던 보름 동안 절강성에는 초계 살귀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으니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만했다.

‘이런! 하필 살귀라니!’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얻은 이름이 살귀라는 것이 달가울 리는 없었다.

그날 저녁 진건곤은 총관 편으로 선물을 하나 받았다.

바로 검이었는데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명품은 아니었으나 중원에서 가장 이름난 염왕공방에서 만든 검 중에서도 상등품에 해당하는 검이었다.

진건곤은 무림대회가 한 달 여가 남았으니 스스로 수련에 힘쓰며 종종 공희국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한 달이 지나 무림대회가 진행될 때가 되자 대회에 참가하고자 무림대회장을 장소를 찾았다.

무림대회는 절강성 최고의 부자인 만금장에서 주관하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모두 참가하는 무림대회는 본디 구파와 오대세가가 번갈아 가며 치렀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만금장이 나서서 유치를 하고자 나섰다고 한다.

점창이 대회를 치르기로 하였다가 만금장이 주관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도 누구도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 만금장의 금력은 어느 곳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만금장은 항주의 전당강의 강자락 중에 경치가 좋은 곳에 비무대를 설치하였다. 주위의 객잔을 깡그리 빌려 숙소를 정하고는 비무에 적합하게 정비하였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만금장이 보여준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더욱 놀라운 소문이 세간에 떠돌았다.

“만금장의 현 가주의 둘째 아들인 포여락이 이번 대회의 우승자가 될 것이며 그 후에 포여락은 무당 장문의 후계자 수업을 밟을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소문이었다.

그제야 세상은 만금장이 무림대회를 개최한 이유와 공을 들인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만금장의 둘째 아들의 행로를 천하에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진건곤은 말을 타고 움직여 무림대회장에 도착하였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인산인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였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몰려 줄을 서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진건곤이 볼일이 있는 곳이었다.

바로 접수대.

한참을 기다려 접수를 하려는데, 진건곤에게 말을 걸며 슬그머니 끼어드는 인사가 있었다.

험상궂은 것은 물론 얼굴에 상처까지 길게 나 있었다.

“흐흐흐! 자네는 이런 무림대회에 처음이겠지? 청양사겸의 막내 폭검이다. 형님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진건곤은 그가 하는 짓이 어찌나 우스운지 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하하하! 자식! 웃는 것보다 ‘영광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좋다. 알겠나?”

자신을 폭검이라고 밝힌 자는 진건곤이 자신이 무서워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줄 알고 똑같이 웃었다.

허나 그가 끼어들자 주위의 사람들이 눈초리를 주었고 지켜보던 진행자가 나서서 다가왔다.

“줄을 서시오.”

“하하하! 이 자리가 맞소. 이렇게 일행이 있지 않소?”

사내는 진건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일행인 척을 하였다.

하지만 진행자도 역시 그가 다른 곳에서 나타난 것을 보았던 터라 확인을 하였다.

“일행이시오?”

사내가 진건곤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이듯이 진건곤에게 말을 걸었다.

“일행이라고 하지 않으면 알지?”

속삭임을 마치고 난 사내는 당연하다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진행자를 돌려보내려고 했다.

“전혀 모르는 자요.”

진건곤의 대답에 사내는 얼굴을 험악하게 구겼다.

“애송이! 밤길 조심해라, 알았지?”

사내가 진건곤에게 으르렁대자 진행자가 나서서 사내를 제지하고 나섰다.

“규정대로 줄을 서시오.”

진행자가 나서서 그에게 말을 하니 더 이상 군소리 하지 않고 물러섰다.

“너 나중에 보자!”

하지만 그의 옆으로 쫙 찢어진 눈은 진건곤을 찢어발길 듯했고 그의 입은 나중을 기약하고 있었다.

순서가 되어 접수대에 섰는데 별호 난에 초계 살귀라는 이름을 적었다.

“허……!”

접수계원이 이름을 보고는 진건곤을 고쳐보며 신음을 흘렸다.

‘역시 어서 별호를 바꾸어야 하겠어.’

“대협께서는 이쪽으로 오시지요.”

접수계원은 진건곤을 다른 책상으로 안내하더니 검은색 종이에 인장을 찍었다.

“대협께서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본선에 오르실 겁니다.”

“고맙소.”

진건곤은 쓴웃음을 지었다.

진건곤의 마음에는 들지 않은 별호이지만 덕분에 귀찮게도 참가자격을 가리는 시험은 벗어나게 되었다.

이름이 없는 자들에게는 참가할 자격을 얻어야 하는 시험을 보아야 한다는 표시로 흰색의 종이에 인장을 찍어 주었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자에게는 검은색 종이에 인장을 찍어 주었던 것이다.

“화산파는 어느 곳에 여장을 풀었는지 알 수 있겠소?”

“조양관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다른 손님들을 받지 않으니 그들을 보시기는 힘들 겁니다.”

“고맙소. 수고하시오.”

진건곤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 혀를 내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히유, 살귀라더니 사람만 멀쩡하구먼.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지 않나?”

진건곤을 상대했던 자는 다른 자에게 물었다.

“흥! 저렇게 굴다가 갑자기 죽여 버리는 거겠지. 괜히 사람 좋아 보인다고 휘말려 들어가면 그냥 골로 가는 거야. 조심해! 아마 지금도 화산파 누군가를 노리고 있기에 묻는 것이 아닐까?”

그 말에 화산파의 행방을 말했던 자는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흠……! 그럼 화산파 분들께 초계 살귀가 노리고 있다고 말을 해야 하나?”

“냅둬! 저런 놈들이 화산파를 어찌할 수 있을까? 그냥…….”

진건곤은 뒤로 들려오는 소리에 두 눈을 감았다.

‘도대체 어떤 놈이 별호를 지은 거야?’

진건곤은 조양관을 찾았다.

조양관은 전당강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요지에 있었는데 지금은 구파일방의 숙소로 쓰는 곳이었다.

조양관을 둘러싸고 멀찍이서 타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이곳은 구파의 숙소요.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니 용무가 없으면 돌아가시오.”

“화산파에 용무가 있어서 왔소.”

“구파의 인물들이 아니고선 이곳에 들어갈 수 없소이다. 대협께선 누굴 찾는지 말하시고 저곳에서 기다려 주신다면 제가 답을 받아 오겠소. 말씀해 주시지요.”

조양관의 곁에 작은 찻집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어울리고 있었다.

“화산의 일행에 청명이 속해 있는지 모르겠소.”

“청명 도장이라면 틀림없이 같이 오셨지요.”

청명이 일행에 껴 있다는 말에 진건곤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하하! 공연이 헛걸음 할까 싶었는데 다행이구료. 화산의 청명에게 형이 찾는다고 전해주시오.”

청명은 무영이 운현에게 한 약속대로 화산의 무공을 공평하게 배울 수 있었다. 무영이 직접 가르쳤으니 말이다.

무영이 이번 무림대회에 나온 것도 청명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었다.

청송이라는 걸출한 대제자 청송과 어려서부터 사천왕으로 불리며 탁월한 실력을 보여 온 이들이 있었다.

청명도 역시 이들과 견줘도 될 만한 실력이 되었다. 허나 청명이 이들을 제치고 대표로 나서기에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견줄 만하였지 그들을 압도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여 무영이 직접 나서서 이들을 인솔하면서 청명도 같이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인솔하는 자가 자신의 제자를 데리고 나오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었기 때문이었다.

화산의 일행은 생각 밖으로 많았다.

장문인보다 선대의 원로로 제이장로에 해당하는 진일진인과 새롭게 장로에 올랐으나 대장로의 제자인 덕에 장로원의 실세가 된 무영과 장문인의 강력한 천거로 장로가 된 무진, 3인의 장로와 이대제자가 모두 일곱이나 내려왔다.

청명의 형이 청명을 찾는다는 전갈이 들어가자 성격이 가장 급한 청린이 가장 먼저 나섰다.

“포박하세요. 청명 사형은 독자예요. 누군가 지금 청명 사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런가 본데. 감히 화산의 이름을 팔아먹으려 하는 작자의 낯이라도 봐야겠어요.”

말 그대로 청명은 독자였다.

당사자인 청명이 잠시 출타 중이고 누구의 기억 속에도 청명의 형은 없었기에 청린을 말리는 자가 없었다.

청명은 화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인지라 바깥과 인연이 없는 아이였다. 또한 십 년이란 세월 동안 그들의 기억 속에서는 진건곤의 존재가 지워진 지 오래였다.

“아니! 내가 나가서 보아야겠군요. 같이 가요.”

아예 검을 들고 나서는 청린이었다.

청린은 십 년의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이 변해 있었다. 이제 겨우 십칠 세에 해당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향기를 흘리고 있었다.

특히나 하얀 얼굴에 유난히 붉은 입술이 대비되어 꾸미지 않아도 분을 칠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석년의 요조검보다 더 아름답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사매! 나가지 않아도 될 일이야.”

청린을 말리는 자가 있었는데 청린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화산의 이름을 들먹여 누군가에게 사기나 치려는 녀석이겠지요. 이런 녀석을 방치해서는 화산에도 누가 되고 누군가에게 위험이 닥친다고요.”

청린은 말을 마치자마자 고개를 살짝 기울여 걱정 말라는 표시를 하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하아! 저러다 일이라도 나면 걱정인데.”

청암이 말하자 다른 사형제들이 모두 한입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걸요? 오히려 사매에게 사기꾼으로 몰릴 그 누군가를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흠! 그래도 내가 나가 보지.”

청린을 찾아 청암이 그 뒤를 따랐다.

청린은 안내인과 함께 간 자리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진건곤을 발견했다.

본다고 기억이 날 리가 없는 평범한 얼굴. 별다른 점이 있다면 약간 고집스러워 보이는 것이 전부인 얼굴이었다.

청린은 다짜고짜 소리를 높였다.

“흥! 청명 사형에게 형제는 없다. 사형이 없는 틈을 타 수작을 부리는 네놈은 누구냐?”

진건곤은 그녀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마도 남자라고 해도 대번에 알아보았을 것이다.

화산의 이름을 달고 이토록 방자한 자가 또 누가 있을까?

“오호! 청명을 사형이라고 해? 자라면서 철은 들은 건가, 계집? 허나 지랄 맞은 성격은 버리지 못한 모양이지?”

진건곤의 말이 끝나자 청린의 하얀 얼굴은 화선지에 붉은색 물감을 부은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네놈이 감히!”

차앙!

청린이 검을 뽑아 진건곤을 향해 들이밀었다.

“그따위 언사를 한 것을 후회하도록 해주마!”

청린이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또 다른 목소리가 청린을 말렸다.

“검을 거둬라, 사매! 그는 청명의 형이 틀림없다.”

“무슨 말이에요? 청명 사형은 독자가…….”

검을 거두지도 않고 반문을 하였지만 청암의 답이 더 빨랐다.

“얼굴을 보니 생각이 나는구나. 그가 바로 운현 사숙의 제자다. 그렇지 않나?”

“운현 사숙이 아니라 군자검 방가락님의 제자이지.”

진건곤의 답이 흘러나오자 청린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겨우 일곱 살에 있었던 치욕.

하지만 가물가물한 일곱 살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기억으로는 이미 다 자라 얼굴이 변해버린 진건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

허나 청암은 달랐다.

당시에 청암의 나이는 열둘. 청린에 비하면 이미 다자란 나이였다.

청송을 제외하고는 제일 강했다는 자부심에 상처를 주었던 진건곤의 얼굴이 청암의 머릿속에는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청암은 청린이 검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청린의 검은 그 순간 민활하게 움직여 이 진건곤의 목 어름으로 그어졌다.

탱!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소란 통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청린의 출수에 다들 놀라고 말았다.

허나 진건곤은 침착하게 검을 뽑지도 않은 채, 검집으로만 청린의 검을 막아내었던 것이다.

“사매! 무슨 짓인가?”

청암이 얼른 나서서 청린의 손을 잡으니 청린은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고 원독한 눈으로 진건곤을 노려보았다.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수군대고 있었다.

화산의 문인인 청린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고 말이다. 결코 화산 같은 명문대파의 제자가 할 짓이 아니었다.

청암조차도 그녀를 질책하는 눈으로 보고 있었는데 뜻밖에 말이 진건곤의 입에서 나왔다.

“아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나의 옷깃만을 벨 생각이었으니까…….”

옷깃을 베어 경고를 내릴 셈이었다는 것.

그것도 당사자인 진건곤이 그리 말하니 그들을 지켜보던 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그럴 능력은 절대로 없어 보이는군!”

중인들의 수군거림이 더 심해졌다.

화산의 문인을 내리깔아 보는 진건곤에게 눈길이 집중되었다.

“사매의 잘못을 사과하지. 하지만 그게 나였다면 너에게 피할 능력이 있었을까?”

자신의 무공이 화산의 제자들 중에 능히 두 번째라고 자부하던 청암이었다.

아울러 청송이 있는 화산만 아니었다면 어느 곳에서도 충분히 최강자의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자부하는 청암이었으니 그 자신감이야 말로 할 수 없었다.

“훗!”

진건곤이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스스로의 무공을 믿고 있나 보군?”

“당연하지! 난 대 화산 제자니까!”

“그때도 그랬겠지?”

진건곤과 청암은 이미 구연이 있지 않았던가?

진건곤에게는 내내 질질 끌려 다녀 스스로의 무공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 사건이었고 청암에게는 불의의 일격에 무너져 버린 사건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던 차였으니 두 사람의 눈길이 얽혀들었다.

어느 누구 하나 물러섬이 없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마주 보는 눈길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만만하지 않음을 느꼈다.

진건곤이 검갑을 끌어내렸다.

“그럼 장소를 옮길까?”

진건곤과 청암이 자리를 옮기려는 데, 청린의 음성이 그 둘을 갈라놓았다.

“흥! 그깟 낭인 따위를 상대하실 것은 아니겠죠? 사형에게는 비무대회에서 화산의 이름을 빛낼 의무가 있어요. 저런 낭인 따위와 싸운다면 당연히 승리를 하겠지만 저자는 지독하기 짝이 없는 자예요. 아시잖아요? 얼마나 독한 자인지. 혈육을 떠나보내고도 웃음을 짓던 자라고요. 승패를 떠나 동귀어진도 마다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혹여 사형께서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더 중요한 일을 그르칠 수도 있어요. 그런 이유로 저런 낭인 따위는 내가 상대하죠.”

청린의 어이없는 말은 진건곤은 청린을 철없는 철딱서니로 생각하였다.

허나 동생의 일을 다시 떠올리게 하니 노여움이 일었다.

“계집, 말조심해라!”

진건곤이 노기를 띠우며 청린을 노려보았으나 예전과는 달리 진건곤의 눈을 맞받아 보고 있었다.

조금은 성장한 듯한 청린이었다.

한편, 청암에게는 끓어오르는 호승심이 있었으나 청린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건곤과 청린의 눈싸움을 갈라놓는 청암의 음성이었다.

“무림대회가 끝나고 하기로 하면 안 되겠나?”

“많이 변했군.”

진건곤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나이가 들었으니까.”

청암은 이미 비무를 포기하고 있는 듯하였다.

청린은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진건곤과 청암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사형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자에게 쓴맛을 보여주도록 할게요.”

“사매는 경솔하게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저자가 이곳에 온 이유도 역시 무림대회일 터. 그전에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그에게도 커다란 부담이다. 정히 싸우고 싶다면 무림대회에 참가하여 정식으로 싸우거나 대회가 끝난 뒤 날짜를 정해 따로 만나면 될 일이야.”

제법 일처리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청암에게는 화산이라는 명문대파의 기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청린은 원독한 눈으로 진건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산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당장 일을 치르고도 남아 보였다.

짝! 짝! 짝!

갑자기 뒤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가 있었다.

진건곤이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소군이 서 있었다.

“동생이 맞지요?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만…….”

소군은 진건곤에게 웃음을 지어 아는 척을 해왔다.

소군의 미모 또한 눈이 부실 정도여서 등장만으로도 장내의 분위기는 화사하게 변하고 말았다.

청린과 소군의 미모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미 만개하였으나 대단한 무공으로 그 미모를 잡아둔 성숙함의 소군과 이제 막 피어나는 봉긋한 미모가 있었으니 다루 안의 사람들은 눈 호강을 하고 있었다.

소군은 고개를 돌려 청암과 청린을 보았다.

“강호의 후기지수 중에 초계 살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네요. 화산이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대들 개인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놀라고 말았다.

초계 살귀라는 이름은 항주에서 조금 알려진 정도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 비하면 견줄 수조차 없어 보이는 초라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소군이 화산파의 제자들보다 일개 낭인이라고 불리는 자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아미가 자랑하는 검후의 후보자가 허튼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아까부터 소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던 중인들은 그녀가 내린 후한 평을 얻은 진건곤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청린이 그런 것을 용인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화산의 문인이 아니던가?

게다가 자신에게 없는 성숙한 미모를 자랑하는 소군이 그리 탐탁지 않았다.

청린의 질투는 소군에게도 도발적인 태도가 되게 하였다.

“흥! 화산은 저런 낭인을 두려워하지 않지요. 그런 자를 비교하다니 보는 눈이 없으시군요.”

소군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소군은 그런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녀의 말은 아무려나 신경도 쓰지 않았고 진건곤에게 전음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려경이는 이곳에 없습니다. 알고 보니 이번 대회에는 속가제자는 내보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기실 려경이 또래에서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또래의 이야기일 뿐, 같은 배분에서 나이가 더 많은 진산제자들을 제치고 앞에 나설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소군이 애초에 진건곤에게 이런 점을 예상하여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은 소군이 받은 대접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소군은 무공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

속가제자로 들어왔지만 배운 바 무공에 놀라운 성취를 보여 진산제자와 속가의 신분조차도 무시하게 된 경우였다.

기재들이 가득한 구파일방에서도 압도적으로 뛰어난 무공을 지닌 제자였기에 아미는 그녀를 진산제자와 동일하게 취급하기로 했던 것이다.

하여 일찍이 진산제자들보다 어떤 면에서 더 중한 대접을 받으며 자랐고 유래 없이 속가제자로서 아미의 최고고수라는 검후의 후계자 자리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려경은 그럴만한 재목은 아니었다. 려경으로서는 대회에 참가할 자격조차 없었다.

“이제 동생은 내가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소군이 나서서 진건곤의 손을 잡아끌었다.

“저런……!”

막 청린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려는 찰라, 청암의 전음이 쩌렁쩌렁 하게 울리며 그녀를 막았다.

[실수하지 마라! 그녀는 소군이다. 속가제자로 아미의 검후의 후계자 자리를 얻은 여인 말이다. 또한 지금 아미에서 나온 장로가 있으나 소군께서 아미를 대표하신다. 배분조차도 건너뛰는 대단한 분이시다. 버릇없이 굴지 마라. 사부님조차도 그녀를 어려워하신다.]

청린은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실제 나이야 어쨌든 외관상으로는 겨우 이십대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 한 문파를 대표하는 자격을 지니고 있다니……! 게다가…….

“아버지조차도?”

청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처럼……!

소군과 함께 어울리게 된 진건곤은 아미파의 제자들에게 소개가 되어졌다.

그들은 진건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살갑게 대했다. 이미 려경의 입을 통하여 오라비 자랑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떻습니까? 이곳에서 우리와 담소라도 나누며 화산의 동생을 기다리는 것이?”

“그래야겠습니다.”

하지만 진건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청명이 의외로 늦자 비록 비구니와 누님이었지만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곳에 오래 있기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내일 다시 와야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요. 어디서든 내 이름을 팔아도 좋아요. 사마외도의 무리라면 몰라도 정파에서는 제법 통하는 이름이니까요.”

소군도 역시 진건곤을 잡지 않았다.

진건곤이 떠나자 아미의 후기지수 중에 한 명인 연법이 입을 열었다.

“사매께서 그 사람을 참으로 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요?”

“글쎄? 제법 의지가 강하고 의기도 있는 편이고 하지만 여의주가 없는 용이랄까?”

여의주가 없는 용이라면 참으로 괴이한 존재다.

여의주를 얻는다면 신격으로 상승하지만 여의주가 없다면 여의주를 얻기 전까지는 속세의 뛰어난 영물에 불과하다.

인간의 손으로도 잡히는 영물, 바로 이무기다.

“아하! 대단한 자인가 보군요.”

연법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또 다른 아미승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투덜거렸다.

“대사매께서는 사람 보는 눈이 너무 후하십니다. 무당의 진금 도장도 운중룡이라고 했고 화산의 청송 도장도 당대 제일의 인재라 했지요. 또 곤륜의…….”

그 말을 듣고 보니 소군은 보는 이들마다 대단한 인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연법이 실망스러운 눈초리로 소군을 바라보았다.

“호호호호! 연흥의 말을 들어보니 그렇긴 하구나. 허나 어쩌겠느냐? 세상은 넓고 기재도 많다. 만나는 자마다 그 재질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럼 그가 가장 빠진다는 말씀이십니까?”

“여의주를 얻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그리되겠지. 하지만 그라면 그런 것쯤은 극복하고도 남을 게다. 스스로를 단련하는 마음은 내가 본 어떤 자보다도 더 단단했으니까!”

소군의 말에 연법이 진지한 얼굴로 반문하였다.

그녀의 낯빛으로 보아 무공이 높은 소군과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운 듯하였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하지 않을까요?”

“아니다. 흔히들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노력이라고 할 수가 없다.”

소군은 고개를 돌려 연흥을 바라보았다.

“단지 최고로 열심히 한다고 해서 최고의 노력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판단하고 더 나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도전까지 노력의 범주에 놓아야 한다. 도전하지 않고 정해진 것만 쉴 틈 없이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와 지금에 만족하고 현재에만 안주하는 자를 구분하지 못하지 않느냐? 초심을 잊지 말라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초심을 잊지 않고 앞을 향해 달리는 것이 진정한 재능 같구나.”

소군의 눈길이 연흥을 향하고 있었다.

연흥도 역시 아미의 기재 중에 한 명. 또한 스스로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자였다.

소군의 눈길이 자신을 향하는 연유를 알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제게 해주시고 싶으신 말씀인가요, 대사저?”

소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 허나 연흥, 너의 무공은 내가 아미를 벗어나기 전에 비하면 변한 것이 없구나. 세월이 흘렀으니 물론 똑같은 무공을 더 수월하게 펼칠 수 있게 되었겠지. 허나! 조금 더 수월하게 펼칠 수 있다고 해서 발전했다고 보기에는 어렵구나.”

소군의 말을 들으며 연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의 생각과 존경하는 소군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나름대로 충격이었던 듯하였다.

그녀의 생각은 끊어지지 않고 긴 시간을 이어졌는데 주위에서조차 그녀가 생각을 깊이 하고 있음을 알 지경이었다.

이대로 있다면 연흥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올 것은 자명한 것처럼 느껴졌다.

쨍그랑!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찻잔을 떨어트려 연흥의 명상이 깨어지고 말았다.

연법은 연흥의 각성이 깨어짐에 매우 실망하는 표정으로 탄식을 흘려내었으나 소군의 표정은 실망함이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런 종류의 깨달음은 각성을 한다고 크게 차이 나는 게 아니란다. 앞으로 꾸준히 자신의 벽을 깨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그래서 어려운 법이란다.”

연법이 연흥을 보니 연흥도 역시 실망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요, 대사저. 연흥은 이제 막 중요한 점을 알았을 뿐이에요. 앞으로 실천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겠지요.”

연흥의 얼굴에도 역시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소군의 눈에는 미소가 깃들었다.

“허허, 려경의 오라비가 네게 큰 선연을 내렸구나.”

연흥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진건곤이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청명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진건곤과는 다르게 학수고대하던 기다림에 결실을 맺는 자가 있었다.

“흐흐흐! 애송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스로 청양사검 중 폭검이라고 칭하던 자였다. 그의 뒤로 세 명의 사내가 더 있었다.

“네놈이냐? 감히 청양사검에게 수치를 준 것이?”

청양사검이라고 했지만 안휘성의 청양현에서 청양사견으로 더욱 유명한 자들이었다.

허나 그들의 위명은 고작 현과 그 주위를 넘지 못하였다. 겨우 이류나 될까 하는 무공으로 용케도 임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바로 옆에는 무림대회를 주최하는 곳의 영역을 알리는 금줄이 걸려 있었다.

청양사견은 금줄의 밖에서 진건곤을 기다렸으니 의도는 분명한 것이었다. 무력행사!

어쨌건 주위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기에 그들의 대화에 싸움을 기대하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진건곤은 겨우 새치기나 하고 그것을 트집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기가 찼다.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그냥 검집을 들어 폭견에게 내세웠을 뿐이었다.

“오라, 네놈이 그리 나오니 반가워 죽을 지경이구나.”

폭견이 앞으로 나왔으나 진건곤은 고개를 저었다.

“응?”

폭견이 어리둥절한 사이 진건곤의 검집이 그 뒤에 서 있던 나머지 세 명의 사내를 모두 겨눴다.

“흐흐흐, 애송이 안 그래도 형님들이 모두 나서서 몰매를 놓아줄 것이었다. 스스로 자진납세를 할 줄 알다니 기특하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그냥 적당이 팔다리만 부러트리고 끝내야겠습니다.”

“흐흐흐! 우리 형제들이 하나씩 팔다리를 부러트리면 숫자도 딱 맞겠습니다. 흐흐흐흐!”

제법 합격이 익숙한 모양이었는지 사방으로 퍼져 진건곤을 감쌌다.

그들의 손에도 역시 겁집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자비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무림대회가 벌어지는 곳에는 어떤 기인이 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무 곳에서나 함부로 검을 뽑았다가는 자신들 또한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사지를 모두 부러트리겠다? 아주 적당하군.”

진건곤은 혼잣말을 하듯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청양사견이 아니었다.

“쳐라!”

신호와 함께 청양사견들도 역시 검집을 들고 사방에서 찔러갔다.

검집이 흔들리자 검집의 그림자가 허공에 생겨나 네 가지 방향으로 뻗어나가 그들의 검집을 후려쳤다.

따다다닥!

사견들의 검집은 손에 들린 채로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또다시 진건곤의 검집이 흔들리자 또다시 허공에 그림자가 생겨났다.

육합건곤검이 집는 방위는 여섯 곳. 청양사견을 동시에 상대하고도 남았다.

뻐버버벅!

네 개의 격타음이 울리고 이마가 터져 피가 흐르는 사견이 땅바닥을 굴렀다. 움직이는 자가 없었으니 일격에 실신한 듯하였다.

“쯧쯧쯧!”

진건곤은 혀를 찼다.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었는데 단 한 번의 검격도 만들어내지 못한 자들이었다.

“빈약한 재주로도 용케도 임자를 만나지 못했던 모양이로구나!”

“한 놈!”

따악!

“으아아악!”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그대로 울려나왔다.

“두 놈! 세 놈! 네 놈!”

따악! 따악! 따악!

“으아아아아아악!”

진건곤의 음성이 흘러나올 때마다 사견의 다리 중에 하나씩 부러져 나갔고 어김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제… 제발!”

“사…살려 주시오.”

기절했던 사견들이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에 정신을 차리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허나 진건곤은 그들의 애원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또다시 한 놈씩 호명해 가며 다리를 부러트렸다.

“제발!”

“제발!”

다리가 부러지는 순서는 처음과 같으니 순서가 진행될수록 남겨진 자의 두려움은 커져 갔다.

그에 따라 애원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커져가고 종국에는 울부짖음으로 변해 있었다.

허나 진건곤의 눈은 하나도 깜짝하지 않고 또다시 순서대로 팔을 부러트리려 했다.

사견들은 손으로 땅바닥을 긁으며 움직이고 있었으니 불쌍해 보일만도 한데 진건곤은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그자들도 반성했을 것이요, 아미타불!”

진건곤이 고개를 돌려보니 불제자가 서 있었다.

“그렇지 않느냐, 이놈들아?”

불제자는 얼른 잘못했다고 빌라는 양 그들을 다그쳤다. 사견들의 애원에 가까운 반성이 새어 나왔다.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겠습니다, 대협!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진건곤은 이런 자들의 품성이 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불제자를 보니 소군이 생각나 그만두기로 하였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진건곤은 검을 주워 그 자리를 벗어났다.

불제자는 사견들의 다리를 만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일자로 깨끗하게 부러져 있었다.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솜씨. 치료하기에도 딱 좋은 것이었다.

검집으로 이런 상처를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솜씨였다.

“아미타불! 무서운… 솜… 씨… 구… 나……!”

허나 뒤로 갈수록 작아드는 소리에 주위의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는 더욱 진건곤을 경원하게 되었다.

무림대회장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지를 꺾어 버리는 자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또한 소림의 스님조차도 무섭다고 하였다는 후문이 더해졌다.

그리 돌던 소문이 또다시 초계 살귀라는 이름과 합쳐졌다.

종국에는 초계 살귀가 무림대회장에서조차 사람을 때려죽이려는데 소림의 스님이 막아섰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소림의 스님조차도 그가 지나가고 난 후에 두려웠다는 말을 하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초계 살귀에 대한 소문의 근원지는 산적들을 가둬 놓았던 옥졸들이 입이었는데 그 일이 점점 커져 대살성의 이야기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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