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9화 (9/61)

제1장

장하균이 재산을 털어 리만리에 곡식을 나누며 진영리의 이름을 내세웠다.

또한 장계를 지어 관의 파발마와 표국을 이용하여 장계를 보냈다. 민관의 행사를 동시에 치렀으니 그리 간단하게 막음질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진건곤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진건곤은 말을 타고 공희국이 있는 항주로 향했다. 그의 몰락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희국이 십 년 동안 쌓아온 지위는 그리 낮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수하의 명예로운 죽음을 자신의 지위를 보위하는 것에 써먹을 정도로 수작에 능한 자였으니 그만큼 승진도 빨랐던 것이다.

관직을 벗기 전에는 손대기가 어려웠고 관직을 벗은 후에도 쉽게 손댈만한 자는 아니었다.

물론 진건곤이 아무도 모르게 잠입하여 손을 댈 수는 있었지만 진건곤이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장하균은 그저 명령을 받고 무고한 자의 재산을 몰수한 자라면 공희국은 그 명령을 만들어낸 자다.

그에 대한 처분이 같을 수는 없었다.

진건곤이 바라는 것은 그가 정치적으로 몰락하는 것. 그리고 다시는 관직에 나설 수 없게 몰락하는 것.

그 몰락으로 인해 절망감으로 고통 받기를 원했다. 그런 연후에 아버지의 복수임을 알리고 싶었다.

“어섭쇼!”

“여물을 충분히 먹여주게!”

진건곤은 객잔의 마부에게 구리돈을 몇 푼을 쥐어주고는 객잔에 들었다.

소면과 야채볶음을 시켜 먹고 있는데 흥미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두 달 뒤에 항주에서 무림대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는 들었는가? 정말 보고 싶은데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은 가볼 수도 없고… 아깝네. 구파일방의 신선들도 볼 수 있는데 말이네!”

“허허! 구파일방이? 세외 신선들까지 나서는 것을 보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건가?”

앞선 사내의 말에 걱정스러운 듯 입을 여는 자가 있었다.

“하하하! 이런 무식한 놈을 보았나. 무슨 일이 있을 때만 비무대회를 여는가? 신선님들도 제자가 있을 것이 아닌가? 서로들 모여서 제자들의 실력을 겨루고 비교하는 자리가 이번 비무대회일세. 자네가 말하는 것은 무림맹에서 치르는 대회로 큰 싸움 전에 고하를 가리는 대횔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신진들의 각축장은 매 이십 년마다 모여서 고하를 가리는데 이번 대회가 바로 그걸세! 다만 다른 무인들도 참가를 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구파일방의 무대일 뿐이지. 어차피 소십룡은 언제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차지하는 거 아닌가?”

‘절강성에서? 혹여 려경이와 청명도 볼 수 있을까?’

하오문의 보고에 의하면 진려경과 청명은 또래에 비해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각 문파를 대표할 수 있을지 어떤지는 모르나 참가하는 것만 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걸음이니 볼 수 있다면 만나봐야겠구나.’

아버지의 복수를 먼저 한 뒤에 동생들을 볼 요량이었는데 순서가 바뀔지도 몰랐다. 단, 동생들이 항주로 온다면 말이다.

진건곤은 또다시 절강성을 향해 말을 달렸다.

절강성을 향하여 달리는 길에는 많은 산이 있었다. 많은 산을 지나치는 동안 진건곤을 막아 세우는 자들은 없었다.

진건곤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 한 자루가 귀찮은 산 주인들을 만나지 않게 해주는 부적인지도 몰랐다.

산 어귀에 들 무렵 진건곤의 길을 막는 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산 주인이 아니었다.

한 개의 마차가 있었고 그 주위로 몇 개의 무리들이 있었다. 보퉁이를 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짐을 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행을 이룬 듯하였다.

“길을 막아 미안하오. 소협도 산을 넘을 것이라면 우리와 동행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사내는 진건곤의 의중을 묻는 듯하였으나 진건곤의 답이 나오기도 전에 또다시 입을 열었다.

“요 근래 산주인들이 통행세를 받고도 사람을 해하기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소. 만만해 보이면 어떤 변을 당할지 몰라서 동행을 구하고 있구려. 소협은 혼자서도 능히 산을 지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사람들은 어렵다오. 무릇 무공을 익혔다면 약한 자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소?”

중년의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넌지시 진건곤의 허리에 있는 검을 가리켰다.

그의 허리춤에는 도가 걸려 있었다. 그의 말대로 약한 자들을 돕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어차피 장계에 대한 처분이 내려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반나절 정도라면 상관없겠지.’

청하지 않았다면 상관없이 지나갔겠지만 도움을 청한다면 외면할 일도 아니었다. 할 일이 없었다면 챙겨서라도 해야 할 일이었다. 군자검에게 그렇게 배우지 않았던가?

“좋소.”

진건곤은 갑자기 사부가 생각나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에서 내렸다.

그들과 함께 한 시진가량을 기다렸다.

사람의 수가 삼십 명이 넘고 도검을 든 자가 네 명이 되자 예의 남자가 앞장서 길을 열었다.

그렇게 산길을 걸어 우거진 숲을 지날 때였다.

“멈춰라!”

산적들이 숲이 울리도록 호령을 지르며 나타났다.

그 수효는 스물이 훌쩍 넘는 숫자였다. 저마다 보기에도 무식해 보이는 병기들을 들고 있었다.

양민들은 전부 두려움에 떨었지만 예의 중년인은 사람들에게서 미리 걷어 놓은 돈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산주인들을 뵙소. 여기 성의가 있으니 길을 열어주시기 바라겠소.”

이미 여러 번 이런 일을 하였는지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산적들의 시선은 그와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와 검을 든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특히나 말을 타고서 여유만만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진건곤이 눈에 띄었다.

‘무공을 익힌 젊은 놈들은 우리를 미워하기 마련인데도 저 녀석은 이상할 만큼 침착하구나.’

산적은 진건곤이 꺼려져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하였다.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산주인이 바뀌었다. 통행세는 예전의 두 배다. 새로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굴면 죽음뿐이다.”

중년인은 일행에게 돌아와 말을 하고는 다시금 통행세를 걷게 하였다.

갑자기 변한 통행세로 미처 준비한 돈이 부족한 사람이 제법 되었다. 그런데 돈이 부족하자 마차에 타고 있던 자가 자진해서 돈을 보태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은자 열 냥이면 족할 것을 금덩어리가 나오고 말았다.

게다가 손의 주인은 백옥같이 하얀 손을 지녔다. 섬섬옥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손이었다.

그 순간 산적들의 눈에 탐욕과 정욕이 서렸다.

“잠깐! 생각이 바뀌었다. 저 마차만 남기고 다 꺼져!”

일행의 우두머리격인 사내가 사람들을 둘러봤다.

일부는 고개를 저었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미 자리를 벗어나고 있는 자들이 생겼다.

제들의 부족한 돈을 메우려다가 벌어진 일인데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양 서둘러 장내를 벗어나 버리는 것이었다.

일단 움직임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저마다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갔다.

모두가 떠나고는 진건곤과 예의 중년인, 그리고 마차만이 남았다. 마차의 마부마저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멀리 떨어져서 빨리 오라는 듯이 손짓하며 중년인과 진건곤을 부르고 있었다.

“하하하! 하하하하!”

진건곤이 소리 내어 웃었다.

진건곤의 웃음에 산적들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마주 웃었다.

“크하하하하! 네놈이 범상치 않은 것은 알겠지만 달랑 둘이 남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얘들아, 저놈에게 무조건 합격이다. 알겠느냐?”

산적들은 무기를 고쳐 잡고 일행을 둘러쌓다.

“통행세를 두 배로 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중년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하지만 산적들은 그딴 소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마차를 흘깃흘깃 보는 눈이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으니 생각이 어느 쪽으로 통하는지 절로 알만했다.

진건곤은 여유 있는 눈초리로 두목을 보고 있었고 중년인은 어찌나 긴장했는지 연방 이마에 땀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마차에서 옥음이 흘러 나왔다.

“두 분 협사께서는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말과 함께 마차 문이 열리고 젊은 여인이 걸어 나왔다.

과연 섬섬옥수에 걸맞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드러나자 산적들의 정욕은 더욱 들끓었다. 진건곤도 역시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을 고쳐 뜰 정도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승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었으나 산적들에게는 오히려 그게 더 좋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크하하하하! 대두목께 가져다 바치면 한동안은 편안하겠구나.”

“승복을 입었으니 처녀임에는 틀림없을 테고. 저 정도면 아예 데리고 살림을 차릴지도 모르겠는 댑쇼?”

“그래도 대두목이 여직 열흘을 넘긴 적이 없었다. 열흘만 기다리면 저년을…….”

말은 끊어졌어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었다.

산적들은 여인의 앞에서 대놓고 더러운 입들을 놀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인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대두목이라는 자에게 나를 안내해 주시겠어요?”

침착하기는커녕, 제정신이 아닌지도 몰랐다.

그녀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을 범의 아가리로 몰아넣는 일을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진건곤과 중년인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대협들께서는 이제 그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본인은 아미파의 검각에서 나왔답니다.]

전음이 울리자 중년인은 편안한 얼굴로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하지만 진건곤은 더더욱 빠질 수가 없게 되었다.

‘아미파라면 려경이의 소식을 들을 수도 있겠구나.’

[여러 개의 손을 홀로 당하기는 어려운 법이오. 내 한손을 거들겠소.]

진건곤이 전음을 보내자 여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진건곤에게 다가왔다.

동행하겠다는 뜻이리라.

모두 돌려보내려는 것은 무공이 약한 자들이 다칠까 싶어서였는데 전음을 보낼 정도라면 그 걱정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하하핫! 좋다. 이쪽으로 따라와라.”

산적들의 안내를 받으며 걸음을 옮기자, 중년의 사내는 전음을 받은 순간부터 고민 없이 제 갈 길을 갔다. 이미 그들은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였던 것이다.

한참을 숲 속으로 들어가자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나왔는데 산적들은 거침없이 바위에 몸을 부딪쳐 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산적들의 몸이 쑤욱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진법이군요. 만만치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일단은 소군이라 불러주시지요.]

여인의 전음이었다.

[진가요.]

소군과 진건곤이 잠시 멈칫거린 것을 본 산적들은 진건곤이 겁을 먹은 것으로 보고 호기롭게 입을 열었다.

“하하핫! 놀라기는. 어서 들어가라. 왜 따라왔는지 후회하게 될 것이야. 크하하하!”

산적들은 진건곤을 밀쳤다. 아니 밀치려고 했으나 성공할 수는 없었다.

진건곤의 걸음이 딱 그 순간에 맞게 움직여 산적은 헛손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

하지만 산적은 머쓱하게 여길 뿐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였다.

빈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머쓱하게 긁었을 뿐이었다.

산적들의 본진에 도착하니 백여 명에 가까운 산적들이 소리를 지르며 난리였다. 모두들 욕정 어린 눈으로 소군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진건곤은 그저 딸려온 장식품에 불과했다.

아무도 진건곤에게 눈길을 주는 자가 없었다.

안내에 따라 한가운데 있는 모옥으로 다가갔다.

“대자님! 끝내주는 계집입니다.”

그들을 안내해 온 두목이 대자를 불렀다. 대자는 대두목의 가까이서 수발을 드는 수하들이었다.

그들 역시 어느 날 대두목과 같이 산채로 날아든 자로 산적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수들이었다.

그 말에 한 명의 사내가 나와 소군을 바라보더니 다시 모옥으로 들어갔다.

“들여보내라!”

사람은 나오지 않고 목소리만 들려왔다. 목소리만으로도 산적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복종의 뜻을 표했다. 얼마나 무서운 자였는지 알 만하였다.

산적두목이 소군에게 고갯짓을 했으나 소군은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쳤다.

“나오세요. 저승사자에게 누구에게 죽었는지 설명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로서는 당신이 모옥 안에서 그대로 죽든 말든 상관은 없지만 말입니다.”

소군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옥음과는 전혀 다른 뜻밖의 것이었다. 죽이겠다는 말!

산적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대두목의 지랄 맞은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두목이라는 자는 끌려온 여인들이 조금만 험하게 말을 해도 기분이 나쁘다며 주위의 산적들을 닥치는 대로 팼다.

여인이 산적들이 맞는 것을 보면서 기가 질려 찍소리도 못하게 겁을 먹도록 말이다.

그런데 소군의 말을 감당하려면 산적패의 몇몇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패야 할 것만 같았다. 대두목이 날뛰는 게 너무나 두려운 산적들이었다.

“네 이년 어느 안전이라고 말을 그리…….”

산적두목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퍽!

모옥의 문이 한 번에 산산조각 나며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얼굴이 하얗게 생긴 중년인이 원래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듯이 나타났다.

그의 외모는 보는 순간 송옥과 반안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만큼 참으로 수려했다.

“하하하하! 입이 좀 거칠지만 용모만은 천녀로구나. 오라비와 함께 천국의 맛을 보겠느냐?”

사내는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웃음을 짓자 더욱 멋져 보였다. 보통의 여인이라면 이 순간 애간장이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허나 소군은 보통의 여인이 아니었다.

“오호라! 초계산에 산주인이 바뀌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말에 달려왔더니 백안옥마. 네놈이 원흉이었구나. 내 평시 네놈의 악행을 들을 때마다 네놈을 만나기를 빌었다. 오늘이 네 악행의 끝이다.”

백안옥마는 강호에 이름이 드높은 색마였다. 절강성에만 활동을 하는 자였지만 그 이름은 온 천하에 알려질 만큼 유명하였다.

“오라비를 그리워했다니 그거야말로 반갑구나. 오늘 내 네 소원을 들어 천상의 맛을 보여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백안옥마는 소군의 말에는 전혀 동요됨이 없었다. 오히려 소군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올랐다.

치이!

쇠 소리가 나고 어느새 소군의 손에는 검신이 아주 얇은 검이 뽑아져 나왔다.

연검이었는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소군의 무공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쳐라!”

곁에서 추이를 지켜보던 산적두목이 기겁하며 검을 뽑아 소군을 공격해 가며 명령을 내렸다.

한순간에 주위의 산적들이 모두 한꺼번에 소군을 덮쳐 갔다. 사방에서 도검이 밀려드니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도검 등은 소군을 건드리지 못했다. 바로 백안옥마의 명령 때문이었다.

“멈춰라! 여인은 내가 직접 상대할 테니 네놈들은 그 옆의 것이나 치워라!”

백안옥마의 명령이 내려지자 산적들의 표적이 소군에서 진건곤으로 바뀌었다.

산적들의 도검이 진건곤을 골백번을 난도질할 만한 기세로 쏘아졌다. 수 없이 많은 도검이 일시에 한 명을 향하니 능히 일류고수라는 말을 듣는 자라도 기가 질릴 만한 장면이었다.

순간 소군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떠더더덩!

묵직한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어느새 진건곤의 옆에 선 소군이 만들어낸 소리였다.

소군의 얇은 연검이 도와 부, 검 등의 중병에 부딪혔는데 오히려 중병을 든 산적들은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튕겨지며 넘어지는 자들도 생겼다.

소군은 진건곤을 잡고는 땅을 박차 산적들의 머리를 넘어갔다.

소군의 무위에 놀란 산적들은 감히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포위가 없는 곳으로 날아가서야 진건곤을 내려주었는데 겨우 몇 걸음으로 해낸 일이었다.

그 장면을 본 백안옥마의 눈에도 놀라움이 서릴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흐릿하게 사라지더니 날아가듯이 빠르게 움직이는 소군이 보였다.

그 방향은 백안옥마가 있는 곳이었다.

[잠시만 버텨주세요. 얼른 처리하고 돕지요.]

어찌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소군의 행동보다 진건곤의 귀로 뒤늦게 날아든 전음이었다.

하늘을 날아가는 검을 든 미인의 자태는 자못 아름답기까지 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머리와 너울거리는 소맷자락과 옷자락이 어울려 진정 천녀와 같은 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진건곤은 그런 모습의 여운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놈! 죽어랏!”

진건곤을 향해 날아드는 비수와 검, 도 등의 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건곤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기껏 포위를 뚫어 내려놓았는데 다시 산적들을 향해가다니 소군이 보았으면 눈을 찌푸릴 장면이었다.

하지만 진건곤의 신형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산적들의 선봉에 선 도가 진건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진건곤의 손은 도배를 때려 튕겨나가게 하였는데 그것이 기막히게도 진건곤에게 날아드는 비수를 튕겨냈다.

이어지는 다른 손이 검배를 때리자 검이 고무라도 되는 듯이 휘어지더니 깨어지고 말았다.

쩡!

소리와 함께 부러진 날이 날아가 다른 산적들의 목을 꿰뚫었다.

또다시 도끼를 때리자 도끼목이 부러지며 도끼날이 날았는데 연달아 세 명의 몸을 뚫고서야 멈추었다.

진건곤의 발을 노리고 찔러오는 창이 있었는데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살며시 비껴내듯이 밀어낸 창대에 걸린 산적들이 그 위력을 막지 못하고 뒤로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밀려드는 파도와 같은 인파를 겨우 발길질 한 번으로 밀어내 버린 것이었다. 가벼운 발길질만으로 엄청난 거력을 튕겨나간 창에 담은 것이다.

또한 창의 끝에는 어김없이 세 명의 산적이 꼬치 꿰이듯이 꽂혀 있었다.

겨우 네 번의 손발 짓이 여덟의 목숨을 거두었다. 무기가 부러지고 피가 튀었다. 한 번에 여럿을 죽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공방의 일절과 상대의 무기를 이용한 임기응변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산적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기세가 꺾이고 모두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려 사력을 다했다.

전면에 선 산적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앞으로만 달려드는 뒤쪽의 산적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사…사…살귀(殺鬼)! 살귀다!”

“멈춰어! 제바알!”

“밀지 말라고 이 자식들아! 죽고 싶지 않단 말이다.”

비명 같은 고함이 울리고 산적들은 겨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백여 명에 가까운 산적들이 겨우 한 명을 당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작은 산에서 통행세나 받아먹고 살던 산적들이 천하를 울리던 군자검의 제자인 진건곤의 무위를 감당할 리가 없었다.

진건곤의 단호한 손속과 무공의 현격한 차이를 알아버린 산적들은 공포를 떠올리고 말았다.

겨우 한 번 손속을 부딪친 것만으로 공포가 되어버린 살귀!

진건곤의 걸음에는 전혀 멈춤이 없었다.

진건곤이 산책이라도 하듯이 태연하게 산적무리들의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산적들은 썰물이라도 되는 듯이 뒤로 쭉 밀려났다.

“쓸데없는 놈들!”

“이런 떨거지들 같으니라고!”

물러서는 놈들을 자들이 있었다.

산적들 중에서도 강골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산적들이 아니라 백안옥마의 수하들이었다.

산적들과는 다르게 따로 이끌고 다니는 수하들이었는데 바로 그들이 나선 것이었다.

“네놈이 제법이다만 이제는 그만 가주어야겠다.”

바로 백안옥마의 오랜 수하들로 제법 무공이 높은 자들이었다. 각기 권, 선, 수리검을 꺼내어 들고 내력을 끌어올려 팽팽하게 필살의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말로는 진건곤이 두렵지 않은 듯했지만 실상은 그들도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전력을 다한 3인의 합격으로 말이다.

진건곤이 산적들에게 펼친 첫 수는 그만큼 살벌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진건곤은 변함없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갈 뿐이었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권을 말아 쥔 자가 쇄도하며 외쳤다.

“삼첩(參疊)!”

“이엽!”

두 번의 호흡이 필요 없다는 듯, 오직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걸고 기합성까지 내지르며 진건곤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쐐액!

열두 자루의 비수가 거리를 좁히며 진건곤을 포위하듯이 쏘아졌다. 그 뒤로 8개의 부채 그림자가 어지럽게 날아들었고 마지막으로 무시무시한 경력의 발길질이 터져 나왔다.

보나마나 일격에 뼈를 깎아 버릴 정도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각법이 틀림없었다. 거기다 몸을 허공에 띄운 것을 보아 일격 필살의 수법이었을 것이었다.

주르륵!

하지만 어이없게도 진건곤이 슬쩍 다리를 내짚는 것만으로도 비수들을 등 뒤로 흘려 내었다.

바로 질사보!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이 부드러운 보법은 생각 밖으로 많은 거리를 움직여 비수를 떨쳐내었다.

“흥!”

선법을 펼치는 자의 코웃음 소리가 나고 선영이 휘어져 들어왔다.

이미 손을 떠난 비수와는 달리 손으로 만들어낸 부채그림자는 여전히 시전자의 지배에 놓여 있었다.

진건곤은 피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는 두 손을 바쁘게 놀렸다.

두 손이 각기 하늘과 땅을 짚었다.

바로 육합장권의 기수식이다.

다시 손이 흐릿하게 움직이며 거꾸로 자리를 바꾸자 회오리치듯이 와류가 만들어졌다.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와류는 눈에 보일만큼 강렬한 것이 되어 진건곤의 전면에 머물렀다.

퍼엉!

쇄도하던 여덟 개의 선영은 진건곤이 만들어낸 와류을 뚫지 못하고 바람에 휘말려 비껴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 뒤로 바로 이어지는 묵중한 각법은 와류를 흩어내며 통과해 진건곤의 어깨를 때려가고 있었다.

각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가 서려 있어 그 발에 담긴 경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었다.

앞선 두 개가 가볍게 움직여 시선을 뺏고 상처를 주어 몸을 둔하게 하는 것이라면 마지막의 각법은 그야말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결정타.

진건곤은 사정이 여의치는 않았다.

이미 와류를 불러일으키며 내력이 분산된 마당에 권경에 적중된다면 필시 대단한 타격을 입을 것이 틀림없었다.

왼쪽 어깨에 거의 맞닿아 적중되려는 순간, 진건곤의 몸이 오히려 앞으로 다가가며 발과 부딪혀 갔다.

펑! 파라라라락!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진건곤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것도 아주 멀리!

회전을 멈추며 정지한 진건곤은 어깨에는 옷자락이 찢겨져 있었고 왼손은 축 늘어져 손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뼈가 부러졌는지 충격으로 인해 잠시간 손을 못 쓰는 것인지는 몰랐다.

어쨌건 충격을 흩어내며 온몸이 흐트러지고 묶어 놓은 머리칼마저 흩어져 낭패를 면치 못한 것처럼 보였다.

“와아아아!”

산적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비록 3인이 모두 나서서 진건곤을 상대하고 있지만 우위를 점했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살귀가 살귀로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산적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3인은 그리 표정이 밝지 못했다.

‘빨라. 비수가 소용이 없어.’

‘빌어먹을 진체도 아니고 겨우 와류 따위를 뚫지 못한단 말인가?’

‘빨라! 칠환연환격인데 연환이 펼쳐지기 전에 빠져나갔어! 반탄력도 만만치 않다. 합격이 아니었다면 옷자락 하나 만지기 힘든 고수다!’

3인은 급히 호흡을 다듬고 굳어진 표정으로 진건곤을 바라보았다.

진건곤은 움직이지 않는 왼손임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다시 성큼성큼 걸어 다시 다가갔다.

권사로서 손 하나를 잃고서도 당당하다는 것이 3인을 더욱 절망적이게 했다. 더욱 강한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3인은 잔뜩 긴장하여 침을 삼켰다.

“혼(混)!”

짧게 내뱉은 말에 비수가 날고 바로 뒤로 3인이 뒤따랐다.

두 개의 비수를 들고 있는 자, 선법을 포기하고 부채를 접어 곤법을 구사하려는 듯 보였다. 권사는 한바탕 어울릴 것을 각오한 듯이 몸을 웅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스릉!

진건곤의 오른손이 검을 뽑았다. 순식간에 검이 뿌옇게 흐려지고!

따다다다당!

불꽃이 튀기며 비수들이 허공에서 튕겨져 날았다.

진건곤의 두 눈은 비수들을 쫓지 않고 있었다. 이미 비수가 날아올 곳을 미리 알기라도 하는 듯이 보지도 않고 휘두른 검이었을 뿐이었다.

비수를 던졌지만 진건곤은 아까와는 달리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를 유지하며 3인을 맞닥트렸다.

3인은 자신들이 질 것을 알고 있었다.

원래부터 혼(混)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울려 놀아 보자. 운이 좋으면 하나는 살아남지 않겠나? 누가 살아남을지는 몰라도 어지럽게 어울려 길을 모색해 보자는 신호였다.

하지만 진건곤이 검을 들자 그것도 힘들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건곤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기세가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꼈다.

단지 다친 손을 대신하기 위해 검을 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팟! 터덩텅!

비수를 쳐냈던 검이 갑자기 검광을 반짝였다.

검에 서린 경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3인은 동시에 뒤로 튕겨져 나갔다.

진건곤은 그대로 물러서는 자를 따라붙어 검을 그었다.

세상의 빛이 명멸했다.

순간적으로 어둠에 잠겼다가 다시 깨어났다.

적어도 비수를 들었던 자에게는!

진건곤의 검과 부딪힌 여력을 해소하기도 전에 따라붙어 득달같이 목을 베어 버린 진건곤이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목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이노옴!”

개중에 가장 내공이 튀어난 자는 역시 권각술을 펼치던 자였다.

가장 먼저 충격을 수습하고는 진건곤에게 연환격을 거푸 펼쳤다. 아까는 와류를 만들어낸 직후를 노리고 들어왔으니 허점을 찔렸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챙!

진건곤의 검이 사내의 발을 때리자 때 아닌 불꽃이 튀었다. 아마도 금속으로 만들어진 신발이었을 것이다.

사내의 발이 연환격을 펼치며 어지러운 각영을 만들어가려 했다.

채채채채챙!

검과 부딪히는 소리가 연방 울려나고 퍼져나가던 그림자가 그대로 오그라들어 버렸다.

진건곤의 검 끝이 연환각의 그림자를 모두 두드려 오그라들게 하였던 것이다.

그사이 어느새 뒤로 돌아간 자가 진건곤의 머리를 노리고 철선의 그림자를 만들어내었다.

진건곤의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하더니 그대로 튕겨나며 몸을 빼내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깨끗한 검광!

스각!

철선을 쥔 손과 함께 현란한 각법을 펼치던 발이 잘린 채로 허공을 날았다.

두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진건곤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대로 또 한 번의 검광이 번뜩이자 두 개의 머리가 땅바닥 위를 굴렀다.

멈춰선 검 끝에는 오직 한 방울의 피만이 혈조를 타고 흘러내렸다.

산적들은 그 장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건곤이 검을 뽑자 겨우 네 수만에 결판이 나버린 것이었다. 겨우 네 번의 휘두름으로 자신들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고수 3인의 생명을 끊어버린 것이다.

“역시! 사…살귀야!”

“아니! 사…사신(死神)이야. 사신!”

“도망가야 해!”

소리가 퍼지기도 전에 산적들은 이미 도망가고 있었다.

싸움이 시작된 지 겨우 오십을 헤아릴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스무 명이 넘게 죽었다.

그들이 보기에 진건곤은 일 각만 주어도 산채를 모조리 쓸어버리고도 남을 살귀였다.

“멈춰!”

작은 목소리지만 내력이 실려 뚜렷한 목소리가 울렸다.

도망치던 산적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미 산적들은 백안마군의 혹독한 대접에 길이 들어진 상태였다. 고수라고 불리는 무림인의 손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 있었다.

백안마군의 더러운 짓을 참지 못하고 도망갔던 자들이 겨우 3인의 대자에 의해 모조리 잡혀온 것을 보고 또 보았던 것이다.

진건곤의 눈이 그들을 훑었다.

진건곤의 눈이 스칠 때마다 죽을상과 안도의 한 숨이 교차했다.

“너 이리 나와!”

진건곤은 자신을 안내해 왔던 자를 불렀다.

산적은 도살장으로 끌러가는 돼지처럼 싫은 얼굴을 하면서도 재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왔다.

“대령했습니다.”

진건곤으로서도 이런 반응은 어이가 없었다.

그것이 백안옥마에게 시달리며 적응한 결과였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이들 중에 지위가 가장 높은가?”

“아닙니다! 저는 겨우 서열 네 번째입니다. 출행을 나가면 무리에서는 두목이지만 산채에는 첫째와 둘째, 셋째 두목이 더 있습니다.”

사내의 말에 얼굴이 시퍼렇게 죽어가는 자들이 있었다.

“모두 튀어나와!”

뒤쪽에 서 있던 세 명의 산적들이 부리나케 달려 나와 나란히 섰다.

“대령했습니다.”

주가 보면 기강이 삼엄한 군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복명복창을 잘하는 놈들이었다.

“지금부터 한 놈도 도망가지 못한다. 한 놈이라도 빠져나가면 너희들은 다 죽는다. 알겠나?”

“존명!”

목이 터져라 울리는 복명의 소리!

백안옥마에게 길들여진 산적들은 강아지처럼 말을 잘 들었다. 다만 강자에게만 길들여진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진건곤은 서둘러 소군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과연 백안옥마는 악명일지라도 그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소군의 무공은 진건곤이 보기에도 고수라고 할 만한 것이었는데 백안옥마는 아직도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일개 성을 넘어 강호에 이름을 떨친 자다웠다.

진건곤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백안옥마는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릴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셋이 아니라 하나가 온다면 아마도 계집을 따라왔던 놈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날로 먹어도 비릴 것 같지 않은 계집년이 이렇게 무공이 높을 줄이야. 나를 사로잡을 생각이 아니었다면 지금쯤은 목이 떨어졌을 것이야. 여기에 방수(防守)까지 더해진다면……! 하지만 수가 없는 것도 아니지! 이 여자는 모질지 못하니 저놈을 인질로 잡는다면 빠져나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야.’

그랬다. 소군의 무공은 보기 드물게 높은 것이었으나 백안옥마를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바로 그 점에 기대어 백안옥마가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손발로 향하는 검은 막아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머리나 목 등의 치명적인 부위는 노리지 않는 것이었다.

백안옥마의 무공도 절묘하게 그 정도는 되었다. 특정한 부위만 조심하는 것이라면 위태하긴 해도 버틸 만했던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소군의 마음대로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둘 사이의 무공은 그만큼의 차이는 있었다. 소군이 죽일 마음만 먹었다면 벌써 싸움이 끝나 있었을 것이었다.

생각이 정리된 백안옥마는 어지럽게 철선을 놀려 이십여 개의 부채그림자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소군의 얼굴에는 일말의 당황함도 없이 정확하게 검을 놀려 그림자를 모두 베어 내었다.

‘빌어먹을 년! 무공만큼은 대단하구나. 하지만…….’

소군의 검에 감탄을 하면서도 암암리에 진건곤의 위치를 따지고 있었다.

“받아랏!”

공방을 거듭하던 백안옥마의 철선의 갑자기 회전을 하며 튀어나갔다.

선암탄이라는 초식으로 철선을 들고 싸우던 도중 갑자기 암기처럼 쏘아내는 수법이었다.

싸우던 도중에 쓴다면 손에 들고 휘두르는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라 미리 알고 있지 않다면 고수들도 속기 십상.

대단한 무공을 보이던 소군도 이번만큼을 놀라며 수습하기 바빠 백안옥마의 퇴로를 차단하지 못하였다.

‘치잇! 다른 놈들은 그 수에 골로 가던데, 이년은 정말 대단하구나.’

의도대로 틈을 얻어낸 백안옥마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 진건곤을 향했다.

소군과 백안옥마의 싸움을 주시하며 다가가던 진건곤은 백안옥마가 돌연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 검을 뽑아 들었다.

백안옥마의 신형은 순식간에 쇄도하며 그 기세까지 담아 무시무시한 경력으로 진건곤을 때려갔다.

‘이런! 그냥 기다렸어야 했나?’

진건곤은 돌연 쇄도해 오는 백안옥마의 신형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백안옥마는 악명이라고는 하나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자. 진건곤은 일견에도 백안옥마의 무공이 자신보다 확실히 앞선다는 것을 알았다.

진건곤은 그 힘을 무시하지 못하고 육합건곤검중에 가장 까다로운 초식을 펼쳐나갔다.

중주일검!

상대를 향해 그대로 곧게 찔러나가는 단순한 찌르기인데 그 안에 무엇을 담아내는가에 따라 패검도, 쾌검도 그리고 환검도 가능한 초식이었다.

어려서부터 기초에 올곧이 매달려 수련해 온 진건곤이야말로 중주일검의 오의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무인이었다.

진건곤은 ‘시작은 가볍고 표홀하게 중간은 예측할 수 없게 그리고 끝은 정확하고 확실하게.’라는 기본에 충실한 자도 드물었다.

쉽게 잊히고 무시되기 쉬운 기본기가 진건곤에게 확실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펼쳐내는 모든 초식마다 누구나 옳다고는 생각하지만 지키지는 않은 기본이 담겨 있었다.

보통의 경우 연검(수련)을 지나 만검(십 성)에 이르고 완검(초식을 되돌아보는 경지)에 이른 자들이나 되찾아 중시 여기는 기본기였다.

백안옥마는 진건곤의 가볍게 찌르는 듯한 일검을 보았다.

‘빌어먹을! 고수구나!’

진건곤이 가볍게 내민 일 검이 어디를 향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백안옥마는 스스로 무공이 낮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천하에 악명을 드리고도 삼십 년을 살아남았으니 그의 무공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마차가지였다.

허나, 오늘 약관 정도에 불과해 보이는 자가 펼치는 검식을 전혀 예측하지 목하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백안옥마는 진건곤의 가벼운 일 검을 감히 무시하지 못하였다.

‘늑대를 피해 범의 아가리로 들어온 것인가?’

백안옥마는 긴장하며 진건곤을 향해 펼쳐가는 장권에 더욱더 많은 공력을 밀어 넣었다.

백안옥마의 주먹에 우윳빛 서기가 일었다.

자신보다 더한 고수임이 명백한 소군과 상대할 때도 일으켜 본 적이 없는 필생의 공력을 모두 발휘했다.

진기뿐만 아니라 선천진기까지 모두 끌어올린 필생의 일격이 진건곤에게 쏘아졌다.

백안옥마는 부채를 버렸으나 그 위력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본디 부채야말로 장법에 가장 유사한 형태가 아니던가?

검과 장법이 부딪힐 때쯤에 가서야 진건곤의 검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하나가 둘로, 둘이 넷으로, 넷이 여덟으로 바뀌며 검광이 꽃처럼 만개하며 백안옥마의 주먹을 감쌌다.

‘빌어먹을 역시 고수……!’

백안옥마는 자신의 팔이 잘려나갈 것을 예감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까앙!

퍼엉!

청명한 소리가 울리고 북이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검광을 번쩍이던 검이 부러져 하늘로 튀었다. 그리고는 진건곤의 신형이 놀랍도록 빠르게 튕겨져 나갔다.

붉은색 선혈이 하늘에 튀어 올랐다.

검을 쥐었던 손아귀가 찢겨지며 나온 핏방울과 진건곤의 입에서 토해진 선혈이었다.

어이없게도 팔을 잘려질 것을 각오했던 백안옥마의 장권이 검을 부러트리고 들어가 진건곤의 복부를 때렸던 것이었다.

바로 진기의 차이였다.

정작 강대한 내력을 품은 백안옥마의 장과 검이 만나자 진건곤의 검은 장법을 막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 것이었다.

진건곤의 몸은 거대한 철퇴에 맞은 허수아비처럼 뒤로 날아가 삼(三) 장을 격한 곳에 구르고 말았다.

뜻밖의 결과에 백안옥마가 과도하게 공력을 운용했던 탓으로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고 말았다.

삐긋!

백안옥마의 강대한 힘을 막아 세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진건곤의 검은 백안옥마의 필생의 공력에 비하면 바위 철퇴 앞에 작은 조약돌에 불과했다.

전력을 다해 허깨비를 때린 것처럼 아무런 반탄력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고 말았던 것이다.

타다탓!

뿌연 안개처럼 그 자리에 솟아난 소군의 손이 가볍게 움직이며 백안옥마의 마혈을 찍었다.

“으……!”

백안옥마의 두 눈이 날아가 쓰러져 버린 진건곤을 향해 분노의 눈초리를 빛내고 있었다.

바로 ‘빌어먹을 사기꾼!’이라고 외치는 듯하였다.

막상 부딪혀 보니 한참이나 하수인 자에게 과도한 공력을 쓰고는 균형을 잃어 소군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백안옥마라는 별호로 천하를 주름잡던 색마가 허무하게 스스로 무너져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소군도 역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백안옥마의 팔을 잘라버릴 것만 같았던 현란한 검광이 너무나 깨끗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절대로! 이런 결말이 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백안옥마가 중심을 잃지 않고 그대로 도망쳤다면 그를 쫓아야만 했으리라.

“하……! 나조차도 예측할 수 없었던 그 놀라운 초식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멀리 땅바닥에 실신해 쓰러져 버린 진건곤의 신형을 보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장면에 소군의 이마에는 주름살만 생겨날 뿐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똑같이 멍청한 표정을 짓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진건곤에게 제압당했던 산적들!

한순간에 일백의 산적들로 하여금 옴짝달싹도 못 할 공포를 심어주었던 살귀, 아니 사신이 겨우 백안옥마의 한 방에 맥없이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상상했던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역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눈만 깜빡이는 산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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