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아이를 안고 온 군자검은 활선당의 일에 화산이 개입된 것을 알게 되었다. 군자검은 화산의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화산은 화산대로 군자검을 꺼려 외지로 나돌아야 하는 임무를 주었다.
그러나 군자검이 투입되는 임무는 언제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뿐이었다. 군자검은 그때마다 사지를 헤치고 나와 화산에 돌아왔다.
그러기를 여러 번. 군자검에게 동료를 붙여주었다. 군자검을 존경하고 따르는 사제가 둘. 구파의 인물이 둘, 오대세가의 인물이 둘이었다.
군자검은 스스로 화산을 버린 죄를 씻고 이제야 제대로 된 임무를 맡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계륵(鷄肋)이었던 것이다.
세가의 서자 중에 무공이 탁월하여 기강을 흔드는 자, 무공은 뛰어나나 욕심이 많아 일을 그르친 자들을 묶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두 사제는 오직 군자검을 따른다는 이유로 그 임무를 맡았다.
그들이 찾은 곳은 바로 원산. 환천삼보 중에 하나가 있다는 장보도가 그들을 불렀다. 군자검은 그곳에서 또다시 검은 복면을 쓴 무리들을 만났다.
이번에는 수효가 너무 많아 우여곡절 속에 한곳으로 몰리고 말았는데 그곳이 바로 장보도가 가리키는 동굴이었다. 그들이 동굴에 갇히자 검은 복면들은 동굴의 입구를 무너트리고 말았다.
무너진 동굴 속에서 그들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그들은 자신들이 버려진 패라는 것을 알았다.
흑의인들이 미끼로 던진 먹이를 확인하기 위해 버려진 패였던 것이다. 돌아와서는 안 될 곳에 던져진 먹이와도 같았다.
군자검은 처음으로 배신감을 느꼈다. 성공의 확률이 적은 임무가 아니다. 애초부터 죽기를 계획한 미끼였을 뿐이었다. 그것도 자신을 따르는 두 사제와 함께!
삼 년 후!
일 검에 여섯 개의 검영이 일어나 여섯 방위를 짚었다.
육합! 육합은 거창하게도 우주를 뜻한다. 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의 검이 너울처럼 부드럽게 물결치며 움직이자 다섯 개의 검영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또다시 검은 하늘과 땅을 찔렀다.
건을 짚어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곤을 짚어 그 토대를 확인하여 근본을 잊지 않음이다.
육합건곤검의 기수식이 끝나자 검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부드러운 화경과 강직한 패의 기운이 어울리며 진건곤의 주위에 검영과 검풍이 일었다.
열세 살의 아이가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 있고 정교하며 매끄러운 검식이었다.
진건곤의 무위는 이미 군문의 군인들을 월등하게 앞서고 있었고 강호에 비유하여도 삼류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절검이 대주천의 기맥을 뚫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육합장권과 육합건곤검을 배운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해가 세 번 바뀌었습니다.”
“좋구나. 절검 사숙조님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토록 빠르게 십 성을 이루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구나. 묻자꾸나. 아직도 백 가지보다 한 가지를 수련한 자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하느냐?”
진건곤은 즉각 답하지 못하였다.
잠시간에 틈을 두고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수련을 할 때면 이유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동안 여러 번 생각이 바뀌고 바뀌었습니다만 종국에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백 번을 연습한 것과 천 번을 연습한 것이 같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허허허! 그렇구나! 그런데 너의 수련을 보면 한 가지를 익히지는 않더구나. 왜 그런 것이더냐?”
진건곤은 눈을 들어 운현의 시선을 마주하였다.
“그건 사부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부족하여 사부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할 뿐, 사부님께서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운현은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네 뜻과는 다른데도 사부를 믿어주니 고맙구나. 너도 화산에서 보고 겪은 바가 있어 사부가 화산에서 그리 달가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되었을 것이야. 그런데도 화산이 아닌 방가락으로서 나를 믿어준다니 고맙구나.”
“제게 사부님은 사부님일 뿐, 화산이 아닙니다. 제게는 화산의 인연이 털끝만큼도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허허허! 과연 그렇겠느냐? 절검 사숙조님은 그리 간단하게 은혜를 베푸는 분이 아니란다. 또 그리해서도 안 되는 분이란다. 그렇게 된다면 온 천하에 화산의 정수가 퍼질 테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생각하기를 바란다. 생각이란 것이 너를 변하게 만들 테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노룡검을 배울 차례다. 허나 노룡검을 얻었다고 육합장권과 육합건곤권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얻을 것이 남았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명심하겠습니다.”
노룡검은 독룡살검의 초식 십이식 중에 전반부의 여섯 개의 검식만을 엮어 만든 검법이었다.
이른바 독룡살검의 입문식이자 전반 육식이었다.
독룡살검은 완전하지 않은 검식이었다.
독룡살검의 심법이 바로 미완성의 심법인 가일구층황금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독룡살검은 내력을 폭발시키듯이 사용하여 그 내식이 폭급하기 짝이 없었다.
운현같이 충후한 내력을 가진 고수도 자하기공의 공능이 없었다면 스스로 몸을 상하고 말았을 정도였으니 진건곤이 익히기에는 적당한 것이 아니었다.
독룡살검에는 시전자를 해칠 수 있는 독룡과 같은 초식들이 있었기에 전반부만을 수련하게 한 것이다.
칠 년 후!
복건성에 당도해 지난 시간이 무려 십 년이었다.
진건곤은 어느새 스무 살의 당당한 장부가 되어 있었다.
앳되어 보이던 얼굴도 이제는 성인의 것으로 변해 있었는데 그저 보통의 얼굴이었다. 다만 약간 다부져 보이고 고집이 있어 보이는 것뿐이었다.
어깨는 딱 벌어져 힘 꽤나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몸과 다리는 굵지도 얇지도 않았다.
키 또한 보통 사람들 중에 약간 큰 편에 속했을 뿐, 특별히 크거나 하지 않아 누군가를 위압할 정도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고집 있고 약간 건강해 보이는 보통사람의 전형이었다.
불이 꺼진 연무실에는 상의를 벗어젖힌 진건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운현이 긴장된 표정으로 진건곤의 등에 장심을 대고 있었다.
“현천기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려라!”
운현의 음성에 따라 현천기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온건하며 음양의 조화를 이룬 기운이 몸 안에 가득했다.
“구 할의 현천기공으로 몸을 기맥을 보호라고 일 할의 내력만으로 가일구층황금공 일단공에 따라 운기해라!”
단전에서 시작된 작은 흐름이 움직였다. 진건곤의 일 할의 내력이었다.
일단공은 자신의 내력을 따로 떼어내 구슬과 같이 단전의 안에서 굴린다는 것이었다. 작은 항아리 속에서 벽을 타고 돌며 속도를 증가시키는 구슬처럼 일 할의 공력도 빠르게 속도를 늘려갔다.
“일 할의 힘을 얹어라!”
단전의 내부를 돌던 내력은 중첩되었다.
두 겹으로 중첩된 내력이 하나의 구슬처럼 얽혀들었고 더 강해진 힘으로 회전하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둥그런 단전 안에서 단전의 벽을 타고 둥글게 말려 돌아갔다.
갑자기 강해진 힘에 단전이 흔들렸다.
하지만 일 할에서 이 할로 커진 내력일 뿐, 단전에 담아두었던 기운에 비하면 오분지 일도 안 되는 힘.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가일구층황금공에 의하면 한 층을 쌓는 데에도 구단공의 단계가 존재한다.
이제 이단공을 거쳤으니 앞으로도 일곱 번을 더해야 한다.
운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일 할의 내력을 얹어라!”
또다시 내력을 중첩시키자 놀랍게도 사 할의 내력이다.
‘어떻게? 일 할의 내력만을 얹었거늘!’
진건곤은 놀라고 말았다. 생각과 다른 내력의 증가. 예상을 벗어난 힘이 단전의 벽을 누르자 진건곤의 몸이 흔들림을 보였다.
이것이 가일구층황금공의 공능이었을까?
일 할의 힘을 얹었는데 단전 속을 도는 내력은 속도가 붙어 사 할의 힘이 단전 속을 휘도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운현의 지시로 또다시 내력을 증가시키자 팔 할이다. 그리고 연달아 십육 할, 다시 삼십이 할이다.
감당할 수 없는 내력이 단전 속을 휘저으며 돌아가고 있었다.
스스로의 내력이고 단전이건만 그 속도와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급기야는 진건곤의 몸이 흔들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진건곤의 호흡이 급격히 흔들리는가 싶더니 얼굴에 땀이 맺혔다.
예전부터 운현을 놀라게 했던 그 고요한 호흡이 깨어졌다.
또 한 번 내력을 증강하자 온몸이 출렁거려 중심을 잃을 뻔하였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에 온몸에서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졌다.
진건곤은 이를 다시금 악물었다. 조금 전까지는 이를 악다물었던 것으로 끝이 났었지만 이번엔 그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동시에 그의 주위로 아주 옅은 황금빛이 너울거렸다.
“우욱! 윽!”
신음성과 함께 진건곤의 몸이 들썩였다.
“그만! 내게 맡겨라.”
진건곤에게 가일구층황금공을 멈추게 한 운현은 즉각 자하기공을 운용하였다.
운현의 손에서 자색의 서기가 어리고 자색의 서기는 진건곤의 몸으로 옮아갔다.
바로 자하기공의 공능을 빌려 진건곤의 흐트러진 기운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다.
운현이 직접 내력을 넣어 단전의 힘을 어우르자 진건곤의 온몸에 자색의 서기가 피어올랐다.
진건곤의 얼굴에서는 빠르게 고통의 흔적이 사라졌다.
“운기하여 몸을 다스리도록!”
진건곤이 운기에 들어가자 운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허어! 겨우 이층공으로 가는 것이건만 칠단공에서 실패란 말인가? 진정 자하기공이 아니면 안 된단 말인가? 십 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구나.’
가일구층황금공은 엄청난 위력과 함께 아주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미완성의 심법이었다.
가일구층황금공은 모두 구층의 단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각층은 구단공의 방법을 통해 올라갔다.
구단공을 겪어 버텨내어야 한 개의 층을 올리면 바로 전 층에서 가지고 있던 내공이 모두 소모되며 단전의 크기를 증가시키는 내공심법이었다.
문제는 단전의 크기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내력을 증폭시켜 사용한다는 것.
그 증폭된 내력의 크기는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에 신공이라고 불리는 심법이 보조해 주지 않는다면 익히는 거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성공을 한다고 해도 시전자의 내공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단순히 운기하는 것만으로는 회복이 되지 않았다.
내공을 쌓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한 단전으로 다시 태어나기에 내공을 다시 쌓아야만 했다.
가일구층황금공은 그런 단계를 여덟 번이나 거쳐 구층의 황금공을 쌓아야 했다.
끊임없이 운기를 하며 단전을 가득 채우고 그것에 익숙해져 조금씩 단전이 커지는 것에 비하면 자신의 내공을 사용하여 단전의 크기가 직접 늘이는 가일구층황금공의 성장의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로 빠른 것이었다.
허나, 진건곤에게는 자하신공이 없었다.
현천기공이 전통과 깊이가 있는 심법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일구층황금공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가공되지 않은 정순함을 자랑하는 전진의 심법, 겨우 나이 스물에 현천기공을 육성으로 익혔다는 것은 강호에 기사 중에 기사가 될 만했다.
그런 놀라운 공부에 기대를 걸고 한 시험은 실패였다.
“허허! 미안하구나. 십 년을 두고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다니. 나를 믿고 일로정진한 네게 미안하구나.”
진건곤을 두고 연무실을 나온 운현의 혼잣말이었다.
세월을 막을 수 없었는지 이미 귀밑머리가 허옇게 변해버린 그의 어깨는 오늘따라 힘이 없어 보였다.
‘겨우 이층공으로 가는 길에서 멈추고 말다니……! 사부님은 이미 칠층공에…….’
진건곤은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동안 자신을 엄정하게 몰아붙여왔기에 스스로의 무공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가일구층황금공의 첫 단계인 이층공에 좌절을 맛보고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깨어지고 있었다.
그런 씁쓸함을 가지고 가일구층황금공으로 얻은 내상을 치료하느라 보름 동안이나 운기를 마치고 연무실을 나서는 진건곤이었다.
“사부!”
광우의 음성이 울리자 진건곤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형님! 임무는 끝났습니까?”
광우는 엄주하의 바람대로 주작단에 머물렀다. 주작단에 머물 수 있었던 이 년을 꽉 채우고야 현무단으로 옮겼다.
그동안 진건곤을 스승으로 삼아 육합장권과 육합건곤검을 익혔다.
나이 열여덟이 되어 광우가 현무단으로 옮기던 때에 성주의 손녀딸인 엄주하와 혼인을 하였다.
복건성의 최고의 문신가문과 황족 출신의 태수의 가문이 연을 이었으니 선물을 들고 온 자들이 삼 일을 줄지어 기다렸다.
엄주하는 무당에서도 귀하게 취급되는 귀물인 소청단을 구해왔다.
그동안 광우를 주작단에 머물게 해준 감사의 표시라고 했다.
물론 소청단은 하나가 아니었다. 광우와 진건곤에게 하나씩 돌아갔고 광우에게는 또 다른 선물이 더 있었다.
청광검 태허광진기!
오십여 년 전에 점창의 속가제자 중에 가장 유명했던 무인으로 청광쾌검이 있었다.
그는 점창의 무공을 발전시켜 자신만의 독문무공을 만들었던 내로라하는 고수였다. 홀연히 사라졌으나 후일 그의 종적이 드러난 곳은 바로 황실. 황족의 호위로 노후를 지냈던 것이었다. 그런 자의 진전이 고스란히 광우에게 돌아온 것이다.
그때야, 광우가 너스레를 치며 입을 열었다.
“황족 마누라가 좋긴 좋네. 이런 것도 구해오다니!”
놀랍게도 엄주하와 광우는 이미 태중혼약을 한 사이.
엄주하가 광우의 안위를 챙겼던 것은 지극히 당연했던 것이었다.
광우의 고집을 꺾지 못했던 엄주하는 광우가 본격적인 무인이 되는 단계가 되자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무공을 구해온 것이었다.
광우는 청광검을 익히느라 이 년을 그대로 현무단에서 지내더니 스물이 넘어서야 백호단에 들어 실전에 배치되었다.
뛰어난 무공과 황족의 마누라의 위세를 빌어 백호단에서도 대번에 대주의 자리에 올라서고 말았다.
그럼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진건곤을 찾아 무공을 지도받고 있었던 것이다.
무공이 달라도 기본이라면 모두가 같다는 지론 아닌 지론을 펴면서 말이다.
“임무야, 뭐. 건성으로 해도 충분하지. 어차피 싱거운 일만 임무로 주니까. 사부와 비무를 하는 것에 비하면 맥 빠지는 일이거든.”
“그래도 형님. 형님이 다치면 슬퍼할 형수님을 생각하셔야죠. 조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하하! 거 참! 사부마저 그런 소릴 하면 내가 어딜 가서 사내취급을 받겠소? 내가 받는 임무는 새색시들도 할 수 있는 쉬운 것뿐이라오. 오죽하면 우리 대원들도 대주를 잘못 만나 도검에 녹이 슨다고 야단이겠소? 어서 시작합시다.”
광우가 검을 왼쪽 허리춤으로 내려 들었다.
청광검의 기수식이었다. 발검이 곧 쾌검식의 시작인 청광검이다. 광우의 시선이 진건곤을 향했다.
진건곤도 역시 검을 뽑아 들었다.
일 검이 육합을 점하고 다시 건곤 괘를 찍었다.
눈빛이 교차하고 얽어들더니 곧장 서로를 쇄도해 들었다.
치익!
소리와 함께 검광이 솟구쳤다.
전광석화! 청광검이라는 이름 그대로 빛과 빠름 그 자체였다. 하지만……!
쩌엉!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은 청광이 불통을 튀겨내며 막히고 말았다.
놀랍게도 진건곤의 검이 곤괘에서 솟구치며 광우의 검을 막아서며 터져 나온 소리였다. 더 빠르고 더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 검이 더 먼 거리에서 시작된 검에 막힌 것이다.
보법? 아니다!
보법을 시전했다면 피하기도 전에 검을 맞았을 것이다. 그만큼 빠른 발검이었으니까.
그 짧은 시간에 진건곤이 한 것은 뒷무릎을 살짝 접는 것이었다. 자연히 상체가 뒤로 젖혀지고 거리를 벌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건곤이 가진 기본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촌각의 검극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것. 누구라도 말로는 가능한 것. 그러나 실제로 써먹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것.
진건곤의 무공은 그야말로 노회한 고수의 그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치잇!”
청광검의 절초는 바로 발검이다. 그리고 발검에 이어 흔들린 상대를 요리하는 난파풍의 쾌도!
하지만 진건곤의 검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검이 부딪히자마자 손목을 돌려 검을 휘감아왔다.
놀랍게도 진건곤의 검은 살아 있는 뱀이라도 되는 양, 광우의 검을 휘감아 얽어매었다.
이런 때 검을 내치면 틀림없이 튕겨나가고 만다. 수도 없이 당해본 수법이라 광우도 이제는 대처할 수 있는 검이었다.
그저 감아오는 원의 중심을 찾아 그대로 꺼내는 방법.
준비했다는 듯이 빠르게 뒤로 뽑아지는 검을 보며 진건곤이 미소를 지었다.
‘훗! 많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앞쪽에 서 있던 오른발이 반보 앞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회룡토월!
살아 있는 뱀처럼 검을 감아가던 검이 다시금 변했다. 그리고 담을 넘어가듯이 그 위로 올라가는 검이 광우의 목을 노리고 찔러들어 갔다.
파라락! 채채채재쟁!
옷깃이 날리는 소리가 나고 광우는 몸을 뽑아 튀어 오르며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며 진건곤의 검을 쳐냈다. 그리고 연이어 탄력 있는 용수철처럼 다시 튕겨져 나오려는 찰라!
광우의 신형이 우뚝 서고 말았다.
그러고서야 광우의 옆에 떨어져 내리는 물건이 있었으나 광우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사부야! 대단해!”
두 손을 말아 포권하며 예를 표했다. 승패가 갈렸고 패배를 인정했던 것이다.
떨어져 내리는 물건은 바로 광우가 신고 있던 신발의 밑창이었다. 너무나 깨끗하게 오려진 밑창.
“하하하! 이래서 사부를 찾아온단 말이지. 겨우 세 초식! 그것도 세상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육합건곤검! 그런데 왜? 사부와 대련을 하는 겨우 세 초식이 어떤 검보다도 더 무서울까?”
“하하하! 또 그러십니다. 저보다 더한 고수를 만나면 더 무서워질 겁니다.”
광우가 고개를 저었다.
“독비객 처웅. 일도살 한당. 혈염수라 낙이건. 복건성에 이름이 자자한 고수들이지. 그리고 그들을 잡아넣은 것은 바로 나란 말이야.”
광우는 구멍 난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발을 놀려 진건곤의 지척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사부와 마주설 때 느껴지는 벽을 느껴본 적은 없단 말이야. 그 말인즉슨! 사부가 그들보다 더한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뜻이지!”
“하하하! 아니라니까 그렇습니다. 형님!”
진건곤의 무공은 자연스러웠다.
진건곤의 검이 번뜩이면 그 상황에 가장 걸맞은 초식이 나와 광우를 옭아맸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압박감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요동을 쳐봐도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청광검을 얻고 난 후부터 아무리 빠르게 검을 쳐내도, 아무리 사납게 몰아붙여도 진건곤의 3초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제자는 배울 준비가 되어 있네. 하교하여 주시게!”
“오늘은 물러섬에 있어 자신이 과했습니다. 뒤로 물러서며 허공에 몸을 띄움은 옳지 않습니다. 특별한 경신법이 있어 허공에서도 움직일 수 있다면 모르지만, 스스로 몸을 묶는 격이 되고 맙니다. 피치 못해 몸을 띄웠다면 오로지 몸을 빼는 것에만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똑바로 보며 대비하여야 합니다. 고수를 상대하면서 잠시간이라도 눈을 떼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하하하! 봐라 스스로 고수라 하지 않나? 사부는 복건성제일의 공처가를 내리 보는 고수가 틀림없지 않은가!”
진건곤은 입을 굳게 닫았다.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것이 편했다.
광우는 혼자서 여러 가지 너스레를 떨더니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진건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사부! 강호출도를 한다고?”
진건곤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천천히 하면 안 되겠나?”
“오 년 전에 시작하려던 일입니다. 적어도 약관을 넘기라는 사부님의 명에 따라 기다렸던 일입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광우는 한숨을 쉬며 땅을 바라보았다.
진건곤의 결정을 번복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운현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미 운현과의 약속이 찬 이상 막을 방법이 없었다.
“사부의 실력이라면 걱정은 없겠네만 강호에는 귀계가 판을 치니 조심하게!”
광우가 옆에 두었던 보퉁이를 진건곤에게 내밀었다.
“청룡단의 상비품들이라네. 성주님께서 특별히 아끼는 사병들에게 지급하는 것이라서 쓸 만할 것이야. 잘 놀고 있게나.”
‘나도 준비가 되는 대로 쫓아가겠네!’
광우가 하고 싶은 말이었으나 입 밖으로 내어 놓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엄주하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십 년 만이구나……!”
뒤돌아보니 멀리 복건성이 보였다. 이미 까마득하게 멀어 손바닥만 해졌지만 세세한 곳까지 눈에 선해 보였다.
성주의 손님으로 와룡숙에 십 년을 머물렀다.
십 년 동안 한곳에 살았다면 그곳에서 알게 된 지인도 많으리라.
하지만 진건곤에게 지인은 거의 없었다.
와룡숙에 거처하며 어린 진건곤을 귀여워 해주었던 몇몇의 기인들이 있었고 광우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연무장에서 안면을 트고 지냈던 몇몇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만큼 진건곤은 무공에 심취해 십 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지냈던 것이었다.
“아버지의 명예를 찾아드리는 게 순서겠지.”
진건곤의 걸음은 아버지가 오욕과 죽음을 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호남성 창사현.
외곽에 치우친 곳으로 사람도 그리 많이 살지는 않았다. 겨우 오천 호가 사는 곳이다.
겨우 현이라고 불릴만한 크기를 가진 곳, 어스름한 저녁에 불이 켜진 곳을 보니 그 수효가 많지 않았다.
“역시 성도에 비하면 작은가?”
진건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곳에 왔지만 그리 크게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아비를 모욕했던 사람들이 전부였다.
어둑어둑 저녁으로 변해가는 시간. 고향에 도착한 진건곤은 객잔을 찾았다.
“야채볶음. 소면.”
점소이는 심드렁한 얼굴로 주문을 받아갔다.
그나마 얼굴을 찌푸리지 않은 것은 야채볶음 한 접시를 더 시켰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주위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지만 아무도 십 년이나 지난 리만리 사건이나 진 교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두 시진 동안 끈덕지게 자리에 앉아 주위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지만 여전히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자도 없었다.
진건곤을 바라보는 점소이의 심드렁한 얼굴이 짜증으로 변해갈 때쯤 진건곤은 일어서 자리를 나섰다.
“방은 있나?”
“그러문입쇼. 객잔에 방이 없을라구요? 어떤 방을 원하시는데요?”
점소이가 살살 웃음 지으며 물어왔다.
“조용한 방부터 욕간도 할 수 있는 넓은 방까지 원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내원도 있습니다. 아시죠?”
점소이는 소리 낮춰 입을 열더니 약지를 살짝 펴서 흔들었다.
“그럼 됐네. 다시 오면 잡도록 하지. 그런데 이곳에 도박장은 어딘가?”
“오른쪽으로 나가서 우리 객잔의 뒷길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쭉 한 식경을 가면 홍등이 꺼지는 곳이 나옵니다. 그곳에 가서 다시 물어보면 됩니다. 앞길로 가면 기녀들이 잡아서 지나가기가 힘드실 겁니다. 꼭 뒷길로 가셔야 합니다.”
“알았네.”
진건곤이 떠나자 점소이는 눈을 부라렸다.
“다시 잡기는 쥐뿔! 처음 보는 얼굴이던데. 타지에 와서 도박장부터 찾는 놈이 돌아오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에이 퉤!”
오지게 침을 뱉어내는 점소이였다.
점소이가 욕을 하거나 말거나 진건곤은 점소이가 알려준 대로 길을 걸었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진건곤을 바라보는 눈들이 있었으나 진건곤의 허리춤에 걸린 검에 눈이 가고는 관심을 끊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군!”
여러 군데의 도박장이 있었는데 진건곤은 몇 개의 도박장을 그냥 지나치더니 한곳으로 들어섰다.
지나쳤던 곳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운수를 봐준다는 낡은 휘장이 하나 더 걸려 있었던 것이었다.
꾀죄하게 낡은 깃발도 정도가 심해 운수를 보아주는 자가 아직도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정확히 구리돈 열일곱 냥을 다섯 번 걸고 나자 진건곤에게 눈짓을 하는 자가 생겨났다.
그것은 사전에 알고 보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만큼 짧게 스쳐가는 눈빛이었다.
측간으로 가는 낡은 문을 열고 나가자 그를 안내하는 자가 있었다. 안내를 받고 옆방으로 들어서고서야 탁상에 앉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사내는 슬쩍 진건곤의 검에 눈길을 주었다. 진건곤의 신분을 추리할 만한 특징을 살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허리춤에 걸쳐 맨 검 한 자루와 다부져 보이는 인상을 빼고는 눈여겨볼 만한 구석이 없는 진건곤이었다.
‘이름도 없는 뜨내기? 이곳을 어찌 찾았는지는 몰라도 봉이군.’
“소문에 대한 확인은 은 한 냥. 조사와 청부는 금 두 냥에서 시작하오.”
사내는 진건곤을 봉이라고 생각했기에 평소보다 두 배의 가격을 불렀다.
“십이 년 전 리만리 농민의 난을 조사해 주시오. 원인과 경과, 그 일에 관련이 있는 자들, 관가의 처분에 관한 것까지. 그때 관직에 있던 자들이 현재 어느 곳에 있는 지까지!”
진건곤이 건네는 돈을 받은 사내는 인상이 찌푸려졌다. 겨우 금 한 냥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 정가(定價)를 알고 있나? 하지만 아쉬운 놈이 우물 파는 법.’
“관에 관한 것이라면 가격은 두 배요. 우리도 좀 투자하는 게 있어야 정확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으니…….”
사내는 말끝을 늘였다.
하지만 진건곤의 음성은 담담했다.
“개방을 찾아도 되오!”
진건곤은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관가와 관련된 정보를 원한다면 개방보다는 하오문이 더 깊은 내막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관가의 일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면 개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개방의 정보비는 하오문에 비하면 반 가격에 불과했다.
“아… 아니요. 이 가격에 해드리리다. 대신 다음엔 정가를 다 쳐…….”
“언제 오면 되오?”
진건곤은 사내의 말을 끊어냈다.
사내는 어차피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한 번 더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보름. 하지만! 황금 두 냥이면 열흘로 줄일 수 있소.”
사내가 말을 마칠 때는 진건곤은 이미 몸을 일으켜 나가고 없었다. 홀로 남은 사내가 읊조렸다.
“젠장! 얼간이가 아니었어.”
진건곤은 객잔에 방을 하나 잡고는 현천기공의 수련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틈틈이 객잔에 나가 귀를 열어두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하균이 현령이라고? 많이 컸군.”
장하균은 바로 장 교원의 이름이었다. 진 교원의 친우를 자처했으나 진 교원이 죽고 난 뒤, 재산을 몰수하는 데 앞장섰던 자.
십 년이 지난 작금에 현령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건곤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걸쳐졌다.
“아버님의 누명에 관련이 되어 있다면 내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다. 장하균!”
끼이익!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새벽 아침, 진건곤은 현천기공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걸쇠를 걸어 논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한 사내가 들어왔으나 그의 얼굴에는 검은 복면이 씌어져 있었다.
“흐흐흐! 멍청한 놈. 타지에 와서 호법도 없이 운기조식을 한단 말이냐? 강호초출이 틀림없으렷다!”
진건곤은 사내가 들어왔음을 알았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사내는 진건곤이 운기 도중 움직여도 되는 현천기공을 익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내는 천천히 진건곤의 앞으로 다가왔다.
“흐흐흐! 네놈이 운기조식을 하는 시간을 알아내느라 형님이 밤잠을 좀 설쳤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주화입마로 죽었다면 아주 잘 가는 거지. 아주 멀쩡한 시신이지 않느냐? 잘 가라!”
사내의 장심이 진건곤의 심장을 때렸다.
그 순간 진건곤의 눈이 번쩍 뜨여 두 손이 사내의 손을 잡아 비틀었다.
으드득!
“크아아악!”
사내의 오른 손목은 부러져 덜렁거렸다. 단호한 손속이었다.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사내의 발이 진건곤 발에 걸렸다. 살짝 건드린 것 같았는데 사내의 발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허리춤의 높이에 둥실 떠올랐다.
진건곤의 발은 그대로 하늘로 솟는가 싶더니 벼락같이 떨어져 내리며 사내의 배를 찍어 눌렀다.
콰앙!
“쿨럭! 쿨럭!”
사내는 피를 토하며 기침을 했으나 도망가려는 움직임 따위는 전혀 보이지 못했다.
어찌나 강하게 때렸는지 사내의 몸이 바닥을 뚫고 들어가 나무로 된 바닥 속에 끼워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냐?”
진건곤의 저음이 울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지체 없이 진건곤의 발이 또다시 솟구쳤다가 내리꽂혔다.
퍼억! 우지끈!
좀더 선명한 피를 토해낸 사내는 더욱 깊숙이 바닥에 박혀들어 사지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누구냐?”
“도… 도둑.”
이번에는 빠른 대답이 있었지만 또다시 발이 솟구쳤다.
우지끈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무로 된 바닥이 뚫리고 사내는 아래층으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한참을 고통에 겨워하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왜……?”
“거짓말이 뻔하니까!”
그쯤에야 호롱불을 들고 나오는 점소이와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손님?”
점소이가 물어오고 덜 깬 눈으로 진건곤을 보는 손님들도 서넛이 있었다.
“별거 아니다. 관아에 신고해서 도둑을 잡아가라 일러라!”
진건곤은 복면인이 관아라는 말에 안도하는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진건곤은 곧장 일어나 검을 챙기더니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십니까?”
점소이가 불렀지만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콰앙!
문짝이 거칠게 떨어져 나가자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곳에 상쾌한 새벽공기에 섞여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반가워하는 자는 없었다. 으레 그렇듯이 도박꾼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짝이 부서지는 소리에 눈이 벌게져 밤을 샌 도박꾼들의 침침한 눈길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리고 도박장을 지키는 각다귀들도 마찬가지.
“웬 놈이냐?”
“개평 받으려면 개구멍으로 와야지 정문으로 오면 쓰나? 검 하나 달랑 차고 오면 잃은 돈이라도 찾아갈 성싶었냐?”
“하하하하! 미련한 자식. 너 같은 놈들이 한둘인 줄 아냐? 꺼져!”
각다귀들은 진건곤을 본전 찾으러 온 도박꾼으로 보았다.
애초부터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 같은 휘두르기에도 어려워 보이는 큼지막한 도와 몽둥이를 든 각다귀들이 인상을 구기며 모여들었다.
하지만 진건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어찌나 당당했던지 사내들은 길을 비켜줘야 할 정도였다.
“편주 불러와!”
천하에 모든 하오문을 관장하는 하오문주를 필두로 하나의 성을 담당하는 향주가 있다. 그 밑으로 만 호 이상의 도시를 담당하는 소향주가 있고 오천 호를 고작 넘는 곳을 관리하는 자는 편주라고 불린다.
진건곤이 부른 것은 편주다. 이곳 창사현의 우두머리를 불렀던 것이다.
그때야 정신이 든 사내들은 우물거리며 물었다. 편주를 부른다면 무림인이다.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편주나 불러…….”
진건곤의 말을 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쳐랏!”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바로 자신의 의뢰를 받았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던 것이다.
진건곤을 둘러쌌던 각다귀들이 도와 몽둥이를 휘둘렀다.
바로 앞까지 무기들이 쇄도하자 그때야 진건곤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인이 아니었다. 아니, 내공이 없는 자들이어서 진건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고 있었다.
진건곤의 손이 움직이자 무기들이 주인들의 손을 배신하고 허공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
뿌득! 딱! 콰직!
“아아악!”
비명이 요란하게 울리고 사내들이 부러진 손을 잡고 바닥을 굴렀다.
그들이 쓰러진 뒤로 또 다른 자들이 진건곤을 포위하고 섰다.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기형병기를 들고 있었다.
기형병기는 커다란 쇠구슬처럼 생겼는데 그 앞으로 뾰족하게 칼날이 나와 있어 쇠구슬을 쥐고 휘두를 수도 있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각다귀들은 바로 이들이 자리를 잡는 시간을 벌어주는 미끼에 불과했다.
“하하하! 애송이! 왜 왔나?”
예의 의뢰를 받았던 자였다.
“네가 편주인가?”
“하하하! 그럴 리가? 그렇게 봐준다니 기분은 좋군. 하지만 편주님은 네깟 애송이를 상대할 틈이 없으시다.”
“사지 멀쩡하게 살고 싶다면 불러 놔! 네 대신 죄를 물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진건곤이 앞으로 뛰쳐나가며 정면에 있는 자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대비하고 있었는지 사내는 무기를 내세우며 진건곤을 견제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건곤의 손이 도중에 미끄러지듯이 기묘하게 움직이더니 그대로 무기를 튕겨내며 사내의 손을 잡았다.
으드득!
거북한 소리와 함께 무기를 쥐었던 손이 뒤로 부러졌다.
진건곤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러자 진건곤이 서 있던 자리를 기형병기가 뚫고 지나갔다.
사내들은 이미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옆으로 돌았다. 떨어지는 진건곤을 쇠사슬로 옭아매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건곤은 허공에서 쇠사슬을 발로 차듯이 밟으며 또다시 도약하여 멀리 떨어져 내렸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완전히 포위망을 벗어나고 말았다. 사내들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듯 뚜렷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진건곤은 떨어지자마자 가까이 있는 사내의 오른 손목을 부러트렸다.
다섯 중에 둘의 손목이 부러져 쇠사슬을 쥘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포위로서의 의미가 없어졌다.
사내들은 기형병기를 검처럼 휘두르고 단검처럼 던지며 공격했다.
하지만 진건곤은 크게 움직이지도 않고 슬쩍슬쩍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격을 피하더니 한 번에 한 명씩 그들의 손목을 차례로 꺾어 놓았다.
손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손목이 부러져 사내들이 바닥을 기었다.
처음에 당했던 사내가 고통을 수습했는지 각법을 펼치며 또다시 덤벼들었다. 하지만!
파앙! 꽈과광!
덤벼들 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가 벽에 박혀 버렸다.
흙 담으로 지어진 벽에 박혀버린 사내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입가에는 선혈이 튀어나왔다. 각법의 엄청난 위력에 내장이 상했던 것이다.
거기까지가 겨우 서너 번 숨을 쉴 시간밖에 안 걸렸으니 가히 질풍 같은 움직임이었다.
누구도 평범해 보이는 그가 이런 놀라운 무공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엄청난 장면을 만들어 버린 천천히 고개를 들자 도박장에는 오직 정적만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진건곤의 기색만을 살폈다. 오직 지금의 순간을 만들어낸 진건곤만이 담담하게 입을 열수 있었다.
진건곤의 시선이 의뢰를 받았던 자에게 향하고.
“각오는 됐나?”
저벅! 저벅!
진건곤의 여유 있는 발걸음이 그에게는 사신의 걸음이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감히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너무나 다른 무력에 압도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진건곤의 눈은 그를 용서하지는 않고 뜨겁게 응시하고 있었다. 누구나 진건곤이 그를 짓밟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건곤의 발이 움직이려는 순간.
“잠깐! 나를 찾았다고 들었소.”
그의 음성이 들리는 순간, 하오문의 사람들은 모두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들에게는 편주라는 자가 충분히 진건곤을 감당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당신인가? 의뢰자를 팔아먹는 어설픈 수하를 둔 것이?]
짧은 전음임에도 담길 것은 모두 담겨 있었다.
편주의 얼굴에 난감함이 서렸다. 신중한 표정으로 진건곤을 바라보았다.
“모두 내가 책임지겠소. 허니, 자리를 옮겨도 되겠소?”
더러운 일에 손을 벌리는 하오문이라고는 하지만 의뢰자를 팔아먹었다는 것은 엄청난 중죄였다.
직업의 특성상 무조건 지켜야 할 일이 바로 의뢰자의 비밀엄수였다.
굳이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비밀엄수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의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오문은 그 특성상 남들이 알지 못하게 의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었다.
편주는 이 일이 지닌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상대도 그 일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듯했다.
전음으로 사정을 말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상대는 그것을 빌미로 협상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편주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한 것은 바로 그것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갑시다. 하지만 먼저!”
진건곤의 발이 빠르게 움직였다.
뿌득! 뿌득!
“으윽!”
신음성이 울렸다.
의뢰를 받았던 자의 두발을 모두 부러트린 진건곤은 머리칼을 쥐여 잡고 끌었다.
“이런 중요한 증거를 그냥 놓고 갈 수는 없지 않소?”
편주는 자신의 면전에서 태연하게 수하의 다리를 부러트리는 것을 보며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편주의 눈초리는 진건곤이 아닌 수하에게 꽂혀 있었다.
‘저 어리석은 놈이 상대를 못 가리고 수작을 걸었구나. 네놈 때문에 기둥뿌리를 뽑힐 수도 있겠구나.’
편주는 이미 약점이 잡혀 있는 이상 크게 손해 볼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물론 진건곤이 비밀을 엄수한다는 조건하에 말이다.
자리를 옮긴 후에 편주는 입을 열었다.
“대협께서는 이놈이 그리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심증은 있으나 직접적인 증거는 없소.”
뜻밖의 대답이 나오자 편주는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선선한 답이 나올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자를 문초해서 자백을 받아낼 자신은 있소만.”
진건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트려 놓은 자를 가리켰다. 바로 의뢰를 받았던 자였다.
편주로서는 상당한 굴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죄를 지었다고는 하나 자신의 수하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끌고 다니는 꼴을 보기에는 좋지 않았다.
특별히 아끼는 수하는 아니었지만 그 광경에 울컥하는 마음도 있었다. 편주까지 올라오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경험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참지 못하고 출수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건곤의 다부진 얼굴에서 자신을 도발하는 자신감이 쏟아져 나왔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보라는 듯. 사정없이 편주의 자존심을 긁어대고 있었다.
이 작은 구석의 하오문의 지부 정도는 충분히 혼자서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편주는 자신의 눈으로 본 진건곤의 무공을 떠올렸다.
자신보다 고수이긴 하지만 모든 전력을 기울여 합공을 한다면 큰 손해 없이 물리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진건곤의 다부진 얼굴에 아무래도 좋다는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아까 보여주었던 게 진건곤의 진신무공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편주의 머릿속에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하아! 이자. 나까지도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었나? 참으로 무서운 놈이로고!’
편주는 진건곤을 피해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고 나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하하하! 용케도 참는군. 그래도 하오문이라는 말이겠지. 좋소. 내 요구조건을 말하지. 첫째로 리만리 사건의 조사를 더 깊이 있게 파주시오. 자객의 태도로 보아하니 관가와 관련이 있어 보이오. 관가를 좀더 깊게 캐주시오. 내 맘에 들지 않으면 하오문이 의뢰자의 신분을 팔아먹는다는 소문이 돌 것이오. 둘째로 아미파의 젊은 속가제자에 대해 알아봐 주시오.”
“저희 하오문의 눈은 속세에 널려 있지요. 구파일방에 관한 것이라면…….”
“아아! 그저 잘 있는지 주위 사람과는 잘 어울리고 있는지 평판 정도를 아는 것이오. 그 정도라면 가능하지 안 되겠소?”
진건곤은 이미 가능한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편주는 핑계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정도라면 가능하지요.”
두 번째로 요구한 것은 이미 정리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단순히 확인하는 것으로 은자 한 냥에 해당하는 간단한 일거리였을 뿐이다.
“셋째로 화산의 제자에 관한 일이오. 이자 역시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소. 소식이 궁금한 것뿐이니 똑같이 처리해 주시오.”
“그것이 다요?”
“그렇소.”
편주는 잔뜩 긴장했다가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진건곤의 요구는 별것 아닌 것이 아닌가?
“귀하는 정말 이것으로 만족하시오?”
“내가 직접 왔다 갔으니 이제는 제대로 된 조사를 할 것이 아니요? 그리고 이제 자객이 오면 당신이 책임질 것이 아니겠소?”
진건곤이 웃음을 남겼다.
편주는 그때야 느꼈다. 하오문이 진건곤의 숙소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자객이 온다면 이 정도로는 안 끝나겠지요? 그리고 편주의 책임이라는 것도 말이오. 아! 그리고 소식은 원래 받기로 했던 날에 받겠소. 닷새 후에 오겠소.”
진건곤의 웃음과 함께 다부진 인상이 편주의 마음속에 깊게 박혔다.
진건곤이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편주의 시선이 바닥을 구르고 있는 자에게 닿았다.
“미련한 놈! 사람을 볼 줄 모르면 수작을 부리지를 말든지. 쯧쯧쯧! 그래 조사는 시켜 놨겠지?”
“으… 그… 것이……!”
바닥에 널브러진 사내는 입을 열지 못하고 편주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어허! 조사도 시켜놓지 않았단 말이냐?”
사내가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승석이 있느냐?”
편주의 부름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초지급으로 조사를 시작해! 또 저것을 데려다 치료해 주어라.”
편주는 턱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자를 가리켰다.
“치료가 끝난 다음에는 황산으로 보낼 것이다. 능력이 있다면 돌아오겠지.”
“편… 주… 제… 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일관하던 자가 엉금엉금 편주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편주는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고 싸늘하게 대했다.
편주가 언급한 황산은 바로 투기장을 일컫는 것이었다. 사내를 투기장의 싸움개로 팔아버리라는 것.
황산의 투기장은 생명을 건 싸움이 펼쳐지는 곳이다. 대신 열 번의 싸움을 이기면 자유와 함께 막대한 부가 주어진다.
하지만 사내의 무공으로는 버틸 수가 없는 곳이 확실했다. 온전한 몸은 고사하고 생명을 건지기도 어려워 보였다.
“어리석은 녀석! 조사를 시키지도 않은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네 몸값으로도 초지급의 조사비용은 나오지 않는다. 닷새 만에 정보를 모으려면 엄청난 돈이 든단 말이야.”
닷새 뒤!
진건곤은 하오문에서 보내온 전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전서를 읽던 진건곤의 손이 짧게 흔들리고 눈에서는 붉은 광망이 서렸다.
<…중략…
리만리의 나일승에게 환천삼보와 관련된 한 장의 장보도가 흘러들어 갔음.
농민의 난 당시 마을을 지나며 하룻밤을 머물렀던 과객들이 농민들을 선동했다고 함.
그들은 장보도를 훔치기 위해 농민들의 난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임.
그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음.
하지만 그들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탈취할 수 있었던 것을 왜 농민들을 이용해 난을 일으켰는지 이해가 가지 않음.
관에서는 농민의 난을 야기시킨 일에는 개입된 자가 없음.
다만 당시 초기 진압에 실패한 진 교원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농민들과 합세한 적이 없고 진 교원은 당시 선동을 하던 자의 칼에 죽었다고 함.
그러나 진 교원을 희생양으로 삼아 당시의 현령이 책임을 회피했음.
후일, 그의 아들이 성주에게 탄원서를 올리자 재산을 몰수하고 쫓아버렸음.
진 교원을 희생양으로 몰아간 주재자이며 당시의 현령이었던 공희국은 현재 절강성의 문국공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으며 진 교원의 재산을 몰수하는데 앞장섰던 장하균은 현재의 현령이 되었음.
…중략…>
와그작!
손 안에 전서가 거칠게 구겨졌다.
“환천삼보라! 사부님이 보았다던 바로 그놈들이란 말인가? 그자들이건 아니건 네놈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잘못 걸렸다는 것을 보여주마. 반드시 네놈들을 처단할 것이야.”
진건곤은 자신의 진실한 원수는 농민들을 선동하고 아버지를 벴다는 자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희국과 장하균을 그냥 둘 수도 없지. 네놈들 때문에 순직한 아버지의 명예가 더럽혀지고 나와 려경은 굶어죽을 뻔했단 말이다.”
진건곤은 밤이 깊기를 기다려 현령의 집으로 내달았다.
경공도 역시 전진의 것이었다. 이미 오래된 것으로 특출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없는 것에 비하면 아주 빨랐다.
미리 알아두었던 현령의 거처는 관아의 후원에 있었다.
가장 큰 방의 문을 열자 사내와 여인이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건곤은 대번에 그가 장하균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여인을 기절시켰다.
칼을 뽑아 장하균의 뺨에 대자 서늘한 느낌에 장하균이 눈을 떴으나 침착하게 진건곤을 노려보았다.
“누구냐?”
장하균은 현령답게 제법 의젓하게 굴려고 했지만 진건곤은 그 꼴을 보아줄 수가 없었다. 장하균의 입을 이불로 틀어막고는 검을 움직였다.
번쩍!
검광이 번쩍이자 장하균의 오른손 약지가 떨어져 나갔다.
장하균은 고통스러웠지만 비명을 지를 수가 없었다.
이불로 막힌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다짜고짜 피를 본 장하균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래! 이제야 네게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구나.’
진건곤은 조금은 분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네가 자객을 보냈느냐?”
입을 막았으니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아마도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는 듯.
“아직 멀었군.”
또 한 번 검이 흔들리자 이번엔 오른쪽 귀가 떨어져 나갔다.
장하균은 온몸을 비틀며 고통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몸을 떨었다.
“이제 솔직해질 준비는 되었나?”
장하균은 고통에 온몸을 떨면서도 용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준비가 됐다니 묻겠다. 네가 자객을 보냈나?”
장하균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럼, 내 목숨을 노렸으니 죽어도 할 말은 없겠지?”
장하균의 얼굴은 겁에 질려 파랗게 되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진건곤의 발에 매달렸다.
단 두 번의 칼질에 이미 말을 잘 듣는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이딴 비루먹을 개 같은 자가 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나와 려경을 그 긴 세월 떨어져 살게 한 자란 말인가?’
어린 시절에 당한 일이었으니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 보니 너무나 한심한 자에게 당한 것이 아닌가?
스스로 화가 났지만 한 번의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듬었다.
“아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말만 잘 들으면 목숨은 살려줄 테니까. 물론 그 알량한 무공이라는 것은 모두 회수한다. 모든 것을 빼앗긴 네놈이 알량한 힘이라고 휘두르고 다니는 꼴도 못 보겠으니 말이다.”
진건곤은 이불을 뽑아내더니 환약 하나를 장하균의 입에 털어 넣고는 복부를 때려 삼키게 하였다. 물론 복부를 때리며 단전을 파괴했다.
다시 입을 벌려 환약을 삼켰는지 확인하고는 놓아 주었다. 그때까지도 장하균은 단전이 깨진 아픔을 아우르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리 와!”
진건곤의 부름에 장하균은 겁에 질려 얼른 네 발로 기어 진건곤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알량한 무공이긴 했지만 단전이 깨어졌으니 장하균은 스스로 아무런 힘도 없는 약자가 된 기분에 더 말 잘 듣는 강아지가 된 듯했다.
“살려주십시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네가 먹은 것은 단장환(斷腸丸)이라는 거다. 10일 안으로 해독하지 못하면 죽고 마는 독이지.”
“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독이라는 말에 장하균은 진건곤의 발목을 부여잡았다.
“리만리가 아직도 있나?”
리만리라는 말에 장하균은 흠칫거렸으나 이내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너의 전 재산을 털어서 리만리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라. 농민의 난 때 리만리를 담당했던 교원 진영리의 이름으로 말이다. 또한 리만리 사건을 다시 밝혀 진영리의 명예를 수복하라!”
“그… 그… 건……!”
“그럼 죽든가! 아니지. 어차피 열흘 후면 죽을 것이다. 네가 죽고 나면 모든 것을 파헤쳐 너의 추악한 모습을 밝힐 것이다.”
장하균은 망설였다.
전 재산을 풀고 장계를 올려 진영리의 명예를 수복한다면 공희국과 자신이 한 짓을 밝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공희국이 자신이 한 짓을 숨기기 위해 장하균을 없애려 할지도 몰랐다. 장계는 스스로 목을 조르는 짓과 같았다.
장하균의 머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진건곤의 귀에 울리는 듯하였다.
진건곤은 그런 장하균에게 쐐기를 박아 넣었다.
“후후후! 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진건곤의 말에 장하균은 고개를 들어 진건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놀라는 눈치가 되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럴 수가! 건… 곤……!”
“네가 하지 않아도 그리될 것이다. 다만 네게 살아남을 방법을 일러준 것뿐이다. 십 일 후에도 내가 원하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할 것이다. 물론 해독약이란 없다.”
장하균은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 같은 것을 노리는 자가 아니었다. 오직 자신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계를 올리겠습니다. 목숨만은……! 제발 살려 주십시오.”
피해갈 길이 없다는 것을 느끼자 모든 것을 포기한 장하균이었다. 지금 당장 그저 목숨만을 건지고자 하는 그 모습을 보며 진건곤은 넌더리가 났다.
‘겨우 저런 인간에게 휘둘린 나의 운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배고픔 때문에 구걸과 도둑질을 하며 동상에 걸려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날들이 떠올랐다.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분기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들어 기둥을 때렸다.
꽈직!
어른의 양팔을 써야 겨우 안을 수 있는 두꺼운 나무 기둥이 수숫대라도 되는 양 맥없이 부러져 버렸다.
“허억!”
장하균은 그 모습에 짧은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고수가 자신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건곤은 겨우 오천 호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고수가
아니었다.
“공희국에게 내가 나타났다는 전갈이라도 보냈다가는 네 목숨을 거둘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장하균은 고개를 무릎에 처박고 들지를 못하고 있었다.
“공희국! 기다려라!”
진건곤의 눈에는 복수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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