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7화 (7/61)

제6장

마교 활선당이 내걸은 구호는 만민평등이었다. 왕후장상에 씨앗이 어디 있느냐는 말로 시작된 이야기가 종국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노예도 천자도 없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뜻이야 어찌됐던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황제는 없었다. 인정한다면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마니 나라를 내어주고 천자의 자리에서 일개 민초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황제의 분노와 조정백관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활선당은 역천의 무리로 낙인이 찍히고 마교라는 이름을 얻어 무림공적으로 선포되었다.

활선당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 데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화가 있었다. 바로 화산의 개입이었다.

활선당은 당대에 선군(善群)으로 칭송이 자자한 무리였다. 스스로 돈을 벌어 그 재화로 빈민을 치료하고 돕는데 사용하니 활불이요, 생신(生神)이었다.

당연히 그들을 마교라고 의심하기는커녕 그들을 존귀하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무장진인으로부터 백이현의 정체를 밝혀오라는 명을 받든 무진이 활선당을 조사하던 중에 활선당이 만민평등의 기치를 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뜻은 숭고하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위험한 사상이었다. 무진은 무장진인에게 그러한 사실을 전했고 무장진인은 화산의 이름으로 황가에 그 사실을 알렸다.

아무런 해악도 끼친 적이 없던 활선당은 마교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군관정사의 공적이 되어 순식간에 멸절되었다. 그 와중에 군자검이 한 것이라고는 백이현으로부터 아이를 찾아온 것이 전부였다.

군자검은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고 도를 깨우치려는 도인이었지만 만민평등을 외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만민평등을 외치며 강호와 천하에 흐를 피를 걱정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다.

놀라운 무공을 지녔지만 그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문득 뺨으로 내려온 서늘함에 창밖을 바라보니 드문드문 눈발이 내렸다.

눈을 보니 동생과 함께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때가 생각이 났다.

겨울이면 비참함을 지나 참혹함으로 넘어가는 고생이 시작된다. 관제묘라도 만나면 다행이지만 노숙을 하게 될 때도 많았다.

혹여 불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차가운 바닥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 쳐야 한다.

진건곤은 그나마 견딜 만했지만 진려경으로서는 견뎌내기 어려운 추위였다. 추위를 이겨내야 다음 날의 해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목숨을 건 사투이기도 했다.

매일같이 밤잠을 설치며 동생의 손발을 주물러야만 했다.

그래야 동상을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었기에 때문이었다.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흐르는 옛 기억들과 함께 동생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뭐,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과 마찬가지지.”

화산에 들어 몰랐으나 아직도 기근이 다 씻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길거리에 춥고 배고픈 군상들이 가득한 것은 여전하기만 했다.

“힘내라. 그래도 백배 천배 나으니까.”

혼잣말을 뱉어낸 진건곤은 다시금 침묵 속으로 빠져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진건곤은 복건성으로 가는 표국에 묻어가고 있었다. 표국으로서는 화산의 제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대환영이었다.

여차하면 표행을 보호해 줄 방패로 사용할 수 있었다.

화산의 이름을 들먹이는데도 도검을 휘두를 녹림은 없었으니까.

진건곤은 한사코 화산의 제자가 아니라 군자검의 제자라고 했지만 군자검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표국의 사람들은 누구나 진건곤을 화산의 제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덕분에 진건곤을 대하는 것이 지극했다. 그들에게 화산은 신인들이나 사는 곳이었다.

덕분에 석 달간의 먼 여정이었지만 진건곤으로서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편안한 여행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것을 빼고 말이다.

“군자검의 제자 진건곤이 성주님을 뵙습니다.”

초대장과 배첩을 경비에게 올리고도 세 시진가량을 기다려 일과가 끝난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호위를 겹겹이 두른 채로.

“흠, 드디어 왔는가?”

복건성의 성주는 전 황제의 팔촌에 해당하는 자였다.

권력의 중심에서는 비껴나 있었으나 아직은 황제에게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정도의 친인척.

풍채가 당당하고 정광이 번뜩이는 눈을 지닌 성주가 직접 진건곤을 맞이하였다.

황족인 성주가 겨우 열 살의 아이를 직접 대면했으니 평소 운현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알 만한 대목이었다.

“진인께서는 내 부탁을 듣고 출타중이네. 나중에 해후를 풀도록! 진인께서 강호에 커다란 기둥이 될 재목이라는 말을 들었지. 자네는 본인이 삼고초려 하였으니 훗날 유명백세하기를 바라겠다. 이것도 인연이니 여식(女息)과도 돈독한 친분을 쌓기 바란다. 진인께서 오거든 다시 보자.”

그 짧은 말에 예를 표하고 뒤로 물러서자, 진건곤을 안내하는 시비가 있었다.

시비의 안내를 받아 와룡당의 한곳에 머물게 되었다.

“진인께서 머무르는 곳입니다.”

거처로 들어가니 검소하게 꾸며져 있으나 고급스러운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진건곤의 눈에도 좋은 것들로 보였으니 대단한 극상품의 것들이었을 것이다.

진건곤은 짐을 풀어 놓은 후에 오던 길에 보아 두었던 연무장으로 나섰다.

석 달이라는 긴 기간 동안 현천기공은 원 없이 닦았으나 제대로 몸을 풀지 못하였다. 그랬기에 거처가 정해지자마자 검을 들고 나서는 진건곤이었다.

연무장은 사방이 30여 장이 넘을 정도로 넓었다.

그곳에는 한꺼번에 많은 장정들이 들어서서 각기의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도와 검, 창과 부까지 많은 무기들이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가 한시도 쉬지 않고 있었다.

진건곤은 그런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너무나 오랫동안 홀로 머물렀기에 북적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반가웠던 것이다.

작은 아이가 연무장에 들어서니 낯설었을까?

수군거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한쪽으로 물러서는 진건곤을 바라보는 사내들이었다.

진건곤은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으나 연무장에 섰으니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 당연한 것. 육합장권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화산을 떠나 처음으로 맘껏 펼치는 무공이었다.

절검의 진기도인을 받고서 처음으로 펼치는 무공이니 진건곤 스스로도 무엇이 바뀌었을까 기대가 되는 바가 있었다.

시선은 상대의 목쯤으로 고정시키고 허리를 낮추어 중심을 가라앉히고 반쯤은 굽어진 무릎, 꼿꼿하게 세운 허리, 흡사 모래 위를 미끄러져 가는 뱀과 같이 대지를 벗어난 적이 없는 걸음은 가상의 적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바로 육합장권의 기본 중에 기본인 질사보!

질사보와 함께 허공을 휘젓는 손.

하나의 손이 작은 원을 그리면 또 하나의 손이 큰 원을 그려 작은 원을 삼켰다.

한쪽 발의 발뒤축을 중심으로 그 자리에서 맴돌 듯이 돌아가자 그때까지도 허공을 떠돌던 다른 손이 크게 원을 그리며 벼락같이 떨어져 내렸다.

육합장권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은사강룡의 초식이 깨끗하게 펼쳐지자 높은 바람소리가 일었다.

파팡!

전신의 힘을 회전에 담아 내려치는 위력적인 초식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깨끗하게 이어졌다.

그럼에도 중심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또다시 몸을 옆으로 뉘이며 회전을 하였다.

어김 채찍과도 같이 허공을 찢어가는 두 개의 손이 매서운 소리를 내었다.

파바방!

또다시 위로 올라가는 두 팔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중심의 이동. 다시금 회돌이 치며 나오는 두 손!

그러면서도 가상의 적을 중심으로 하는 원을 벗어나지 않는 이동. 그야말로 깨끗한 시연이었다.

‘좋아!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진다. 이런 식이라면 단숨에 10성까지 치고 달을 수 있겠어.’

내력이 손끝 발끝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차이를 가져왔다.

힘이 달려 포기했거나 내력이 이어지지 않아 포기했던 작은 차이까지 구현이 가능했다.

매 초식마다 예전에 비해 더 섬세하고 정교한 자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진건곤은 스스로 크게 만족하며 육합장권을 펼쳐나갔다.

육합장권을 펼칠수록 눈에 빛이 더해가는 진건곤이었지만 그런 진건곤의 육합장권을 보는 사내들의 눈에는 실망한 티가 역력했다.

“에이! 화산의 무공이 아니네.”

“그럼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사내들은 성주가 자신의 자비로 직접 키우는 사병(私兵). 자신의 무공을 익히고 인정받아 성주의 곁에서 보필하는 것이 목표인 자들.

그들에게 군자검은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이나 까마득한 존재였다.

심산유곡에 은거하여 자신의 도를 닦으며 세상을 희롱하는 듯한 구파일방. 그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삼대문파 중의 하나인 화산.

한때나마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천지를 진동시켰던 군자검.

그런 자의 제자가 수련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어찌 새롭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진건곤이 화산의 무공도 아닌 전진의 육합장권을 펼치니 실망하고 말았다.

그들은 진건곤이 화산의 절기를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건곤은 육합장권을 연거푸 이십여 회를 반복하고 나서야 검을 뽑아 들었다.

또다시 장내의 시선이 진건곤의 검에 집중되었다.

진건곤은 그런 분위기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수련을 시작하였다.

검이 흔들. 스르륵. 제자리에서 뒤로 빠지며 검광을 남기고 움직였다. 그리고는 휘몰아가듯이 그리는 호선.

두 개의 초식이 이어지는 곳인데도 마치 한 동작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검식이 아이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매끄러웠다.

열 살의 아이로는 다루기 힘들만큼 커다란 검인데도 기세를 소화하고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는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보기 드문 시연이었다.

하지만 진건곤을 바라보던 사내들의 분위기는 또다시 심드렁해지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이런 곳에서 절공을 수련을 할까?”

“젠장! 시간 낭비만 했네. 화산의 무공을 볼 수 있을까 했더니…….”

사내들은 제각각 한마디씩을 뱉어내고는 자신의 수련으로 돌아갔다.

진건곤의 검이 전진의 육합건곤검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진의 무공은 이미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아닌가? 멸문된 지 오백 년이 넘어가는 문파의 기본공을 펼치는 진건곤은 그들에게 더 이상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내들이 자신의 일과로 돌아갔으나 진건곤의 검식을 골똘하게 바라보는 자들도 일부 있었다.

진건곤의 검식을 통해 화산의 무리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들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었다.

수련시간이 한 시진을 얼추 넘기자 백을 넘는 사람들 중에 겨우 두 명만이 진건곤을 주시할 뿐이었다.

“깨끗해!”

“응!”

짧은 대답! 진건곤의 무공을 보기에도 바쁘다는 투!

“지나치게! 그렇지?”

“강한 것은 아닌데 묘하네!”

“강하겠지 저런 검을 휘두르는데 약할 리가 있겠냐? 그건 그렇고 단순한 검인데도 묘하게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 든다.”

“너보다 강하니까 그렇지. 역시 구파일방의 제자는 어려도 한몫을 한다더니 사실인가 보네. 아무리 구파일방이라지만 겨우 열 살과 비등하다니 실망이 크다. 너 아무래도 헛산 것 같다.”

“헛소리 하지 마라! 내가 아니라 구파일방의 비전의 비법이 대단한 거다. 너라고 별수 있겠냐?”

“아니! 나보다는 약하다. 그리고 초식은 세상에 알려진 육합건곤검과 한 치도 다름이 없다. 그건 보고 있는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결국에는 심법이 다르거나 고르고 골라 뽑은 기재라는 거겠지. 사부를 잘 만났거나 잘났거나!”

결론을 내린 사내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어디 가?”

“나보다 약하다는 것을 증명해 줄게!”

“이런 쌈닭 같은 놈아! 싸우겠다고? 야! 기껏해야 어린아이 아냐? 싸우지 마라?”

“네 입에서 강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어린애라고 봐주라고?”

사내는 연무장을 가로질러 걸어가자 묘하게도 길이 생겨나며 사내의 걸음을 비껴나고 있었다.

사내는 싸움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수련을 멈추어 가면서라도 피해야 할만한 사내였다.

발이라도 부딪히면 영락없이 싸워야 하니까. 또 싸웠다 하면 자신이 이길 때까지 매일같이 싸움을 걸어오는 독종이니까.

하지만 덕분에 겨우 열여섯의 나이로 평무사 중에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자가 되기도 했다.

“소협! 주작단의 광우요. 산타를 하고 싶소만?”

상대는 나이는 어리지만 명성이 자자한 화산의 제자다. 감히 함부로 하지 못했다.

“진건곤이라고 합니다.”

진건곤은 사양하지 않고 검을 앞으로 내밀어 승낙의 뜻을 보였다.

광우는 도를 뽑아내며 희죽 웃었다.

“조심하시오. 소협!”

말과는 다르게 그대로 도 가름을 해왔다.

진건곤은 검집 채로 도를 튕겨내고는 급히 검을 뽑았다.

기습이었는데도 능숙하게 받아내는 진건곤을 보면서 광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어리기에 시험을 해본 것인데 훌륭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오라! 그 정도에 무너지면 섭섭하지!’

그사이 도를 휘둘러 상단에서 그대로 내려찍는 광우. 흔하디흔한 일도양단의 초식이었는데 묘하게 힘이 있었다. 바로 기세!

진건곤의 검이 도배를 횡으로 때려내며 한 바퀴를 휘감아 올렸다. 검 끝은 그대로 올라가 광우의 목을 노렸다.

광우는 나이는 적어도 이미 백전노장. 돌아오는 검을 눈치 채고 뒤로 물러섰다.

‘이런! 힘에서 밀려?’

자신의 일도양단은 모두가 쩔쩔매는 기세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 고작 열 살의 꼬마가 도배를 때려 튕겨내고 있다.

‘빌어먹을 명문의 심법이라는 건가? 그럼 이건?’

멈칫!

공격을 펼치려는 광우가 움찔거리며 멈칫거렸다.

‘뭐……! 뭐지?’

공격을 시작하려는데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진건곤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너무나 단단해 보여 공격할 곳을 찾지 못했기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진건곤이 움직이며 검을 찔러왔다.

직출단입(直出端入) 중단을 그대로 찔러가는 초식, 이름이 있어 초식일 뿐 중단 찌르기에 불과했다.

광우가 쩔쩔매며 뒤로 물러섰다.

또다시 직출단입이 펼쳐지고 광우는 쩔쩔매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의아함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한 찌르기에 불과한데도 물러설 줄 모르는 싸움꾼인 광우가 뒤로 물러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건곤은 광우라는 자가 첫인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조심스러운 자라고 생각했기에 수비를 굳히고 나올 반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허나, 광우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겨우 네 수를 교환했을 뿐인데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빌어먹을! 뭐 이런 게 다 있어? 겨우 열 살밖에 안 된 것이 이렇게 강해도 되는 거야? 신검합일? 말도 안 된다고!’

터무니없었다.

허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광우의 검은 어디를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공격은 또 어떤가? 단순하게 찔러오는 검인데 뾰족한 검봉이 진건곤의 전신을 가렸다.

말로만 듣던 신검합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상대는 겨우 열 살의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 신검합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

진건곤의 검이 단지 기본에 충실한 것뿐이었다.

직출단입의 초식은 상대의 눈을 찌른다.

상대방의 시선과 검, 그리고 시전자의 몸이 하나가 되게 올곧이 찌른다.

빠르게 상대의 눈을 노리고 찔러 가면 검에 가려 시전자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진건곤이 한 것은 광우의 눈을 노리고 찔러간 것과 끊임없이 작게 움직여 광우와 자신을 일직선이 되도록 유지했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말할 만큼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미 고수의 반열에 든 자를 제외하고는 실전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는 없었다.

진건곤의 머릿속에서만 가능했던 것이 내력의 수발로 훨씬 수월해진 움직임으로 가능하게 된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절검이 대주천의 기맥을 뚫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 단순한 기본을 충실히 지켰을 뿐인데 광우에게는 검이 찔러 들어갈수록 검봉이 진건곤의 몸을 완전하게 숨기는 것으로 보이게 된 것뿐이었다.

“빌어먹을!”

초식의 정순함으로는 상대가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한 광우는 싸움닭답게 될 대로 대라는 심정으로 도를 치고 나갔다.

“아아아악!”

몇 번을 뒤로 물러서던 광우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도를 휘둘렀다.

깡!

검과 도가 부딪히고 진건곤의 검이 흔들리자 그 뒤로 진건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순식간에 신형을 자세를 바로하고 재차 찔러오는 진건곤의 검이었다.

또다시 검에 가려 신형을 놓치고 말았다.

한 번 통했으니 두 번도 통하리라!

“아아아악!”

광우는 고함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도를 휘둘렀다.

“아아악!”

깡!

광우는 사력을 다해 고함을 지르며 도를 휘둘렀지만 앞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진건곤이 재차 출수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겨우 검 끝을 벗어나기 위해 소리까지 고래고래 지르며 발악을 했건만 진건곤의 검 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쌈닭. 오늘은 더 심한데?”

“구파일방이라도 어린 앤데 좀 천천히 하지, 쯧쯧쯧!”

“저런 식으로 이기면 이기고도 지는 거지. 적당히 좀 하지. 다 큰 놈이! 쯧쯧쯧!”

너무나 필사적인 광우의 태도에 여기저기서 그를 비난하는 말들이 나왔다.

그들은 진건곤과 광우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고수가 아니었다.

또다시 광우는 진건곤의 검이 무서워 미친 듯이 도를 휘둘렀다.

취릭! 파라라락!

무서운 속도로 둘 사이로 뛰어드는 흐릿한 인형이 나타나고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울렸다.

진건곤과 광우의 사이에 한 인물이 섰다.

그 인물의 두 손에는 검을 쥔 손과 도를 쥔 손이 잡혀 있어 소란스러운 싸움이 끝이 났다.

“제자 건곤이 사부님을 뵙습니다.”

진건곤은 검을 놓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대례를 펼쳤다.

흐릿한 인형의 주인공은 바로 운현이었던 것이다.

“그래 드디어 만났구나.”

운현도 역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만연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그만 해도 되겠는가? 간만에 만난 제자이니 어서 회포를 풀고 싶다네.”

운현의 말에 광우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의 이마와 얼굴에는 이미 땀이 비 오듯 하여 더 이상 비무가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요. 그럼요. 진인께서 오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광우는 그 말만 남기고서 그대로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그 짧은 시간에 신검합일을 연상케 하는 상대로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탈진하고 말았던 것이다.

광우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내가 다가와 광우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무섭다. 정말 무서워.”

“내 말이 맞지? 정말 강하다. 초식의 정교함이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냉우. 너는 아까부터 그것을 알아 봤다는 말이냐?”

“내가 너와 같으냐? 넌 가문의 똘것이지만 난 무가의 당당한 자손이다. 너와 나는 보고 들은 것이 다르다.”

“그래, 너 잘났다. 그런데 넌 가문의 비전을 배운 녀석이 왜 이렇게 약하냐? 나한테도 쩔쩔매면서 무신의 자손이라는 말은 하지 마라.”

“하하하! 짜식! 네가 기죽을까 봐 적당히 해주는 것을 몰랐냐? 저 꼬마라면 겁나도 너 녀석쯤이야 우습다.”

“흥! 웃기는 소리. 어쨌든 기본을 지킨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 줄을 몰랐다.”

“기본이 달리 기본이겠냐? 꼭 지켜야 하니까 기본이겠지. 그걸 다 지키면 고수지!”

“그래서 너보다 강하다고 한 거냐?”

사내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나도 기본부터 다시 수련할까? 아니! 다시 해야겠어. 신검합일! 기초로 만드는 신검합일! 신검합일에 도전하겠어!”

그날부터 광우의 도는 변하고 말았다.

기본기에 아주 충실한 도법으로. 도를 잡는 파지법부터 도를 들어 올리는 높이까지 사소한 기본기에 목숨을 걸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또 다른 소리도 들렸다.

운현의 제자와 비무를 한 후에 실성했다는 소리였다.

오직 기본기만으로 신검합일의 경지에 오르겠다나 뭐래나. 입만 열면 코를 치고 웃을 헛소리를 하고 다녔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냉정하고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기로 소문난 냉우가 광우의 투레질을 따라한다는 것이었다.

광우가 파지법부터 다시 시작할 때 냉우도 역시 곁에서 파지법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왜 개인 연무실을 두고 그곳에서 연무를 하였느냐.”

“……?”

“허허허허! 몰랐나 보구나. 와룡숙에는 개인 연무실이 따로 마련이 되어 있다. 초빙한 무인들을 위한 배려지. 개인 연무실을 사용해도 된다. 그건 그렇고 많이 늘었더구나.”

운현도 역시 무인. 화산의 일과 안부보다도 먼저 진건곤의 무공을 이야기했다.

진건곤은 자신이 겪었던 절검과의 일을 이야기했다.

절검의 검식을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던 것과 절검의 막대한 내공이 자신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던 일.

아울러 무영과 청명의 이야기했다.

묻진 않았지만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운현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작은 미소를 지을 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운현은 그제야 운현이 원래부터 내색이 적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절검 사숙이 막대한 기운을 불어넣으셨다고?”

운현은 진건곤의 맥문을 짚어 진기를 넣어 진건곤의 기맥을 살펴보았다.

“절검 사숙조님께서 너를 어여삐 보아주셨구나. 대주천의 기맥이 모두 뚫려 있다. 이제는 내력의 수급이 원활하여 몸 놀리는 것이 평안할 것이다. 그나저나 무리를 보여줌으로서 무리를 잊게 하시는 경지라는 사숙조님의 끝을 알 수가 없구나. 혹여 다른 가르침은 없었느냐? 앞으로 어찌하라는 말씀 말이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좋아 손볼 곳이 없다 하셨습니다. 다만 내력의 수발이 가능해지면 발경에 대해서 신경을 쓰라고 하셨으며, 게다가 엄정함보다 세상의 자유를 보라는 말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는 육합건곤검에 대한 작은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절검이 화산과 무당을 직접 비교해서 한 말이었으나 진건곤은 엄정함과 자유를 말했다.

운현이 화산을 미워하지만 그것은 장문인의 처사일 뿐, 화산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적지 않다는 것을 진건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이 화산을 아끼지 않는다면 다시 돌아가시지 않았을 테니까요.’

진건곤이 물끄러미 운현을 보았다.

“작은 말씀이 무엇이었느냐?”

진건곤이 답을 하는데 그 내용은 입신중정, 허령정경. 정기신의 합일 등의 몸을 추스르는 자세와 상대와 대적을 할 때 상대의 눈을 보며 어스름하게 전신을 살펴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상대를 쫓을 때는 중심을 낮추고 작은 걸음으로 쫓아야 흔들리지 않고 쫓을 수 있다는 것 등이었다.

실로 작고 사소하며 누구나 알고 있고 강조하는 상투적인 말들인데 그것을 가르친 절검이나 그것을 충실하게 외우고 있는 진건곤이나 참으로 대단했다.

그 말을 전해 듣는 운현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도 사숙조님은 큰 토대를 이루기 위해 기본을 굳게 다지라는 말씀 같구나. 절검 사숙조님처럼 세상을 굽어볼 고수조차도 기본을 강조하신다. 나 또한 기본을 중시하는 사람이니 앞으로도 기본을 제대로 갖추기 위한 수련을 해야 할 것이다. 기껏 이곳까지 왔는데 변한 것이 없다고 실망하지는 마라. 기본이야말로 고수로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여라!”

‘알고 있습니다. 많이 강해졌다는 것은 아까의 비무만으로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신뢰가 담긴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는 진건곤이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손봐주마! 또한 육합장권과 육합건곤검이 10성에 이르면 노룡검을. 현천기공이 6성에 이른다면 가일구층황금공을 가르쳐주겠다. 열심히 수련하여 노룡검과 가일구층황금공을 배우도록!”

“제자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진건곤이 공경히 답을 하였다.

“그리고! 강호의 인연으로 아미의 사정을 알아보니 려경은 덕망 있는 사부를 만났다고 한다. 걱정을 덜어도 될 게다.”

“고맙습니다. 사부님!”

진건곤은 말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려경이의 소식까지 알아보았다는 말에 고마워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툭툭!

운현의 커다란 손이 진건곤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잘 왔다. 제자야!”

운현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주와 함께 식사를 하였다.

성주는 운현을 진인이라 부르며 극진히 대접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기 전에 자신의 손녀딸을 불러 인사를 시켰는데 성주의 손녀딸은 진건곤보다 여섯 살이 많은 방년의 나이였다.

“어머! 귀여워! 이렇게 작은 네가 광우를 바보로 만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믿어도 되는 거야? 정말 대단하네.”

무공에는 관심이 없는 그녀에게는 진건곤에 대한 경외감은 없었으니 스스럼없이 귀여운 동생을 대하는 듯했다.

황족으로 자란 그녀에게는 자연스러운 하대였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이 중간에 멈추게 하셨으니 승패가 나지 않고 끝난 비무였을 뿐입니다.”

“어머머, 이 녀석 겸손하기도 하네.”

“허허허! 광우라면 고정관의 아들일 게야. 고강한 무공을 지닌 아이지? 곧 현무단으로 승급할 아이라도 들었는데 대단하구나. 이 어린 손으로 어찌 그런 장정을 감당할꼬? 정말 좋은 후인을 두셨소, 진인!”

성주는 놀랐다는 말을 연거푸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열 살의 아이를 만나는데도 호위를 주렁주렁 달았고 운현이 돌아와 신원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렇게 사적으로 만나는 치밀함을 가지고 있었다.

성주의 딸은 엄주하. 보통의 열여섯의 아이들처럼 즐거운 것이 많고 호기심이 많은 소녀였다.

“암튼, 광우 그 녀석 혼자 잘난 체는 다하고 다니더니 자기보다 어린 너에게 졌다고 코가 반쯤은 빠져 있더라. 아주 잘했어. 이 예쁜 것!”

광우의 이름은 고국양. 성주가 아끼는 문관의 아들이었다. 어려서 엄주하와 같은 스승을 모셨고 또래로서 같이 지내었기에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했다.

광우는 복건성에 내로라하는 문신 가문의 아이였는데 어느 날 문득 무공을 익히겠다고 선언하고는 성주의 사병에 지원했던 것이다.

비록 사병조직 중에 직급이 가장 낮은 주작단이었지만 입단한 지 4년 만에 그곳에서 자신을 꺾을 자가 없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물론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고 가까운 사이인 엄주하에게도 그 자랑을 하였던 것이다.

엄주하로서는 기세등등한 광우의 콧대를 꺾었다는 것 때문에 진건곤을 더 반갑게 여겼던 것이었다.

“이리로 와! 내가 이곳을 안내해 줄게! 우리 집은 멋진 곳이 많단다. 혼자 다니면 길도 호위들이 길을 막을 테니 내가 안내해 주지. 그래도 되죠, 할아버님? 진인?”

성주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운현도 역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엄주하의 안내를 받아 나선 진건곤은 놀라고 말았다.

정원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그 지류들이 어지럽게 얽히고설켜 정원을 촘촘하게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를 지나는 월교가 수십 개가 있었다.

“와!”

진건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뱉어냈다.

안개가 가득하여 월교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초승달처럼 보였던 것이다. 화폭에서 그대로 꺼내다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호호호! 멋지지?”

진건곤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네가 운이 좋구나. 이렇게 안개가 끼는 날이 많지는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엄주하가 잠시 뜸을 들였다.

“네가 강한 거지?”

뜬금없는 말에 진건곤은 답을 할 수 없었다.

잠시 머뭇거린 사이 엄주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은 광우가 무공을 하게 된 게 내 탓이거든. 내가 정승보다 장군이 더 좋다고 했기 때문에 광우가 무공을 시작했어. 주작단은 사병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대야. 주작단을 벗어나야 현무단으로 가지. 그다음이 백호단, 그리고 청룡단이거든. 대대로 문신(文臣)으로 이름을 떨친 가문이었는데 내가 광우의 앞길을…….”

“강합니다. 무림인이 아니라면 상대하기 힘들 정도죠. 불과 넉 달 전의 저였다면 상대하지 못했을 만큼 강합니다.”

“그렇지? 다행이야.”

엄주하는 광우를 칭찬하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반색을 하였다.

진건곤은 그제야 엄주하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고작 주작단에서 이름 좀 날렸다고 요사이 콧대가 너무 높은 것도 걱정이었어. 내년에 당장 현무단으로 옮기겠다는 거야. 현무단은 실전을 치르는 곳이라 다칠 수도 있는데 말이야. 건곤아. 앞으로도 많이 이겨줘. 당분간은 현무단으로 가겠다는 소리는 쑥 들어가게 말이야.”

주작단은 열여덟 이하의 아이들을 수련시키는 곳이었고 현무단은 스무 살이 넘지 않은 장정들이 수련하는 곳이었다.

현무단은 기본적으로는 실전에 가까운 수련을 하는 곳이었으나 가끔 일손이 부족하면 실전에 투입되기도 했다.

엄주하가 부탁을 했지만 진건곤으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공수련을 마친 진건곤은 또다시 연무장으로 나섰다. 와룡숙의 개인 연무장은 아주 좋았으나 혼자서 수련하는 것에 지친 진건곤은 사람냄새 나는 주작단의 연무장이 더 좋았던 것이다.

육합장권을 수련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허어, 좋구나! 그런데 나랑 어디가 다를까? 냉우야, 알겠냐?”

광우의 목소리였다.

진건곤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무공을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으음! 이렇게? 이렇게?”

“오! 이 부분이 특이하네? 책하고는 많이 다른걸?”

“오호라! 과연 이런 부분까지는 책으로 전할 수는 없지.”

조용히 진건곤의 동작을 관찰하는 냉우와는 다르게 광우는 진건곤의 동작을 보면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하며 따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신이 보는 것보다 세 번에서 열두 번의 변화가 더 숨어 있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오.’

대놓고 보면서도 그것을 찾지 못하자 진건곤은 속으로 자신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한 번의 연무가 끝나고 나자 진건곤은 자리를 옮기려 했다.

“어이, 사부! 어딜 가시오?”

광우가 진건곤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저 말입니까?”

“그렇소.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배움에는 부끄러움이 없다고 했소. 어제 소협과 산타한 후에 감명을 받았소. 소협을 사부로 모시고 수련하기로 했소이다. 방해하지 않고 스스로 배워갈 테니 그저 수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만 해주시오. 육합장권이지 않소?”

화산의 무공도 아니니 별 상관없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이미 만천하에 공개된 무공이고 공개된 연무장에서 수련을 거듭하는 무공이니 눈동냥으로 배우겠다는 말이다.

광우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들만의 착각.

육합장권과 육합건곤권의 근간은 전진의 무공이되 운현의 재해석으로 변모한 바가 있는 무공이었다.

진건곤 역시도 모르고 있었지만 구석구석에 상승무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엄격한 기초를 심어놓았던 것이다.

“불가합니다. 이 무공은 사부님께 받은 것. 아직은 사부님께 여쭤보아야 합니다.”

“나 참! 배우는 것도 아니고 보고 따라하는 것도 못한단 말이오?”

난감한 소리! 광우가 쓰는 억지에 진건곤이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그런 광우를 말리는 것은 진건곤이 아니라 냉우였다.

“광우! 억지 쓰지 마라! 관가의 무공과 강호의 무공은 다르다. 진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나도 처음엔 소협의 기초가 깔끔하기에 보고 배우려 했지만 소협의 육합장권은 책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필시 비전의 것이야. 지금 허락을 받지 않는다면 나중에 네 무공을 회수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어쩜 더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정말?”

냉우의 말에 광우가 인상을 구기며 되물었다.

냉우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진심이라는 소리다.

광우는 더 이상 억지를 부리지 못하고 물러섰다.

“그럼 소협께서 꼭 여쭤봐 주시오. 믿고 기다리겠소!”

진건곤은 냉우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와룡숙의 개인 연무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좋다. 눈으로 보고 배우는 정도야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네가 초식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또한 초식을 펼치는데 필요한 내식의 흐름은 가르쳐줄 수 없다. 내식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은 그들을 한 식구로 받아들일 때뿐이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운현은 진건곤의 인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운현은 진건곤이 와룡숙의 개인 연무실을 두고도 연무장에 나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이 그리웠을 것이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 되겠지 허나, 기본이라고 한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힘이다. 너의 수하로 거두거나 사승을 잇기 전에는 절대 퍼트려서는 안 된다.’

또다시 주작단의 연무장으로 나서서 육합장권과 육합건곤검을 수련하는데 슬며시 다가오는 광우와 냉우였다.

진건곤이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사부! 이제는 소협이라 부르지 않고 사부라 부르겠소이다.”

“당치 않습니다. 형님!”

형님이라는 소리에 광우와 냉우가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듣기 좋은 소리요. 허나 사부임에는 변함이 없소이다. 사부라고 칭하겠소. 안 그러냐?”

광우가 당연한 듯 물었으나 냉우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르다. 광우!”

냉우는 시선을 진건곤에게 돌렸다.

“광우와는 달리 본가의 무공을 잇고 있으니 사부를 모시는 것도 쉽게 할 수 없소. 그저 소협에게 배움을 얻을 뿐이니 차후에 이 고마움을 갚도록 하겠소.”

냉우는 공경히 진건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장면이 지극하여 광우조차도 시비를 걸지 못할 정도였다.

“그저 보고 스스로 배워가는 것이니 어찌 그 덕을 갚으라 하겠습니까? 많이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진건곤의 수련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의 곁을 지키며 배우는 광우와 냉우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수련을 해나가는 것뿐이었다.

광우는 도를 버리고 검을 들었다.

당연히 주작단의 무공을 버리고 육합장권과 육합건곤검을 수련하였다.

냉우는 자신의 가문의 무공을 익혔던 바, 무공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저 진건곤의 무공을 보고 또 보며 조금씩 자신의 무공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데 이용했을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