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6화 (6/61)

제5장

군자검은 순식간에 활선당의 백이현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화산의 현장문인이자 요조검의 아비요, 군자검의 스승인 무장진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 그를 파문시키려 했다. 그의 딸인 요조검과의 혼인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니 군자검의 행위는 사부를 배신하고 요조검을 배신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조검 운혜의 마음은 이미 군자검을 향하고 있었으니 요조검이 아비를 설득하고 또 설득하여 무장진인의 마음을 돌렸다.

요조검은 운현이 있고서야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느꼈기에 운현을 화산에 남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것을 나누어 갖는 일이 될지라도.

무장진인은 조건을 내세워 운현을 화산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실로는 요조검을, 백이현은 첩실로 들이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사건은 그리 해결되는 듯하였는데 뜻밖에도 군자검 운현이 그 제안을 거절하고 말았다. 아울러 화산 차기 장문인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하고 나섰다.

화산의 장문의 자리를 거절하자 이번엔 장문진인뿐이 아니라 화산은 분노로 들끓었다. 개중에서도 무장진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 듯하였다.

자신의 딸을 거절하기 위하여 장문의 자리마저 포기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온 세상을 쩌렁하게 울리는 명예와 전통을 지닌 화산의 장문의 자리를 운현이 스스로 박차고 나간 것은 화산 문인들의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요조검의 간청을 받아들여 운현에 대하나 미움을 사면하기로 했던 장문진인은 장문의 자리를 고사(固辭)했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운현은 백이현과 혼인을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강호를 위진시키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활선당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교의 무리들은 처음에는 빈민들을 도우며 나타나고 세력을 얻은 뒤에는 혹세무민을 일삼았다. 활선당이 바로 그런 일을 벌이는 마교의 무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백이현은 바로 그런 무리의 수장의 딸! 백이현은 활선당에 변고가 생기자 아이를 수태한 몸으로 활선당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장문, 화산수문위를 정했으니 그리 알라.”

절검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누구로 정하셨는지 알아도 되겠습니까?”

장문인은 절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관례대로 스스로 자신을 알릴 것이다. 존재만 알아두어라.”

화산의 수문위는 오직 화산이 위기에 닥쳐 멸문의 위기가 닥쳤을 때만 그 정체를 드러낸다.

수문위는 화산의 멸문을 막기 위해 싸우는 자가 아니다. 그의 임무는 오직 화산의 대를 잇는 것에 있다.

화산이 멸문하더라도 화산이 있고 도가 있고 화산의 무공이 살아 있다면 언제라도 다시 일어설 수가 있다.

개중에 화산의 무공을 보관하고 지키는 자. 오직 그 일만을 위해 존재하는 자를 화산수문위라고 불렀다.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는 장문조차도 알 수 없었다.

허나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면 그때는 화산의 대장로와 같은 배분을 지니게 된다.

대장로라면 장문인조차도 함부로 하기 힘든 높은 배분, 허나 수문위의 권위는 오직 화산의 무공을 지키고 수문위 스스로 생존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스스로의 생존과 무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장문령부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

하지만 수문위는 존재만 할 뿐 영향력은 없었다.

다른 장로들처럼 화산의 대소사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오직 화산을 이어가기 위해 존재할 뿐인 자가 바로 화산수문위였다.

수문위의 존재만을 말한 절검의 신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장문은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무진!”

“예, 장문 사형!”

장문의 목소리가 울리자 어디선가 무진이 솟아나듯이 나타났다.

“절검 사숙조의 행적을 조사해다오.”

“절검 사숙조님을요? 허나…….”

절검은 자타가 공인하는 화산최고의 무인이다. 그 뒤를 들키지 않고 밟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뒤를 쫓으라는 것이 아니다. 최근 넉 달 동안 누구를 만나셨는지, 무엇을 하셨는지, 예전과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 정도만 알아도 족하다.”

“그 정도라면 충분하지요. 알겠습니다.”

무진이 고개를 끄덕여 자신감을 표하며 물러났다.

“그 아이라면… 절대 안 됩니다.”

홀로 남은 장문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이미 수문위가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절검은 좌정하고 앉아 심법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진건곤을 볼 수 있었다.

수련에 빠져 자신이 도착한 것도 모르고 열중하고 있는 진건곤을 보자 절검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어렸다.

‘아암 그래야지. 부절만고련(不節萬苦練)만이 너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고말고.’

절검은 그런 진건곤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잘 있었느냐?”

“어르신을 뵙습니다.”

절검의 말이 있고서야 일어서 인사를 올리는 진건곤이었다.

“내가 보여준 것에서 얻은 것은 있더냐?”

절검은 이미 절벽 위에서 지켜본 것을 모르는 양 말을 건네었다.

“아직은 얻은 것이 없습니다.”

절검은 한순간 진건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곧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허허허! 허허! 이 어린 것은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단 말이었구나.’

진건곤이 깨달은 것을 같이 기뻐해 주고 치하해 줄 요량이었는데 진건곤은 절검이 보여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절검은 잠시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곧 그 이유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허허허! 그러고 보니 이 아이 배운 것이 고작 열 살에 불과하구나. 게다가 전진의 기본공밖에 없었다고 했던가? 허허허! 돌이켜 보니 이 아이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이 없었구나.’

“네 이야기를 좀 들어 봐야겠구나!”

진건곤은 절검의 청을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운현은 절검을 대할 때 자신을 보듯이 대하라는 말을 남겼으니 진건곤은 절검이 묻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숨김없이 소상히 알렸다.

“건곤아, 이것을 보겠느냐?”

절검이 일어나 검을 들었다.

절검의 검이 동시에 육방을 아니 육합을 짚었다.

바로 육합건곤검의 시작이었다.

절검의 시연은 시작부터 대단함이 있었다.

육합을 동시에 짚었던 것인데 그것은 단순히 여섯 개의 방위를 짚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육합은 우주를 상징하는 바, 언제든 어느 곳이든 원하는 곳을 짚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진건곤은 그 한 수 만으로도 눈이 홉떠질 만큼 놀랐는데 절검의 시범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절검의 검이 움직이자 허공에는 커다란 환영이 서리는 것 같았다. 매 초식마다 알 수 없는 떨림이 전해졌다.

단순한 일획 같으면서도 웅혼한 힘이 담겨 있었고 평범한 사선 같으면서도 지나가고 난 허공에는 그 궤적이 남아 이글거렸고 허공을 찌르는 검식에는 마치 별무리들이 터져나가는 듯한 폭발적인 환영들이 가득했다.

느린 듯이 빠르고 빠른 듯이 평범한 동작이건만 그 안에는 한 동작, 동작마다 현기가 가득해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들이 가득하였다.

“아……!”

진건곤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똑같은 육합건곤검이었건만 자신의 것과 달랐고 운현의 것과도 달랐다.

운현이 보여준 검식에는 순박함과 정교함이 있어 어렵게라도 따라할 수 있었다면 절검의 검식에는 한 수, 한 수마다 신묘함과 현기,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운현의 것은 배우고 따라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절검의 것은 흉내라고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의 신묘한 세계였던 것이다.

“보았느냐?”

“네, 어르신!”

“무엇을 보았느냐?”

“…….”

진건곤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보았는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눈에는 선명하게 아른거리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를 몰랐다.

누군가가 진건곤이 본 것을 하나씩 이름을 지어준다고 해도 진건곤으로서는 대답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었다.

진건곤의 머릿속에는 이미 절검이 보여준 육합건곤검이 단단히 뭉쳐 오직 하나인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진건곤에게는 이미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을 하나씩, 하나씩 떼어낼 능력이 없었다.

절검이 보여준 육합건곤검이라는 검식의 기억은 선명하지만 하나의 초식으로 쪼개어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냥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의 검식이 하나의 현기가 되어 뭉쳐져 버렸다.

진건곤의 머릿속이 혼미해질 때까지 생각하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아지랑이처럼 흩어지기만 하였는데 포기하지 않고 생각에 빠져드니 석상처럼 굳어져 말을 하지 못하였다.

“되었구나.”

절검은 진건곤이 검식에 빠져든 것을 확인하고는 여느 때처럼 사라져 버렸다.

진건곤이 긴 명상에서 깨어난 것은 무려 두 시진 후였다.

“모르겠……!”

답을 하던 진건곤은 자신의 앞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절검의 존재조차도 잊어버리고는 검식에 빠져들었던 것이었다.

“늦었나? 틀림없이 실망하셨겠지?”

진건곤은 아쉽기 짝이 없었다.

운현이 조정의 부름으로 떠나 버린 후에 아무런 가르침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알고 있던 현천기공과 육합장권, 육합건곤검만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다.

갑자기 절검이 가르침을 내리는가 싶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자신의 아둔함이 너무나 밉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진건곤은 실망을 접고 다시 수련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다시 현천기공부터 해야 되겠지?”

절검의 검식에 빠져 있었던 동안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하루의 일과가 있으니 수련의 순서가 바뀌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진건곤은 자신의 수련에 조정을 용납하지 않았다. 잠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잠을 못 자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정해 놓은 것은 반드시 지키고 말리라는 의지가 있었다.

스승이 없는 힘든 수련이었지만 그동안에도 진건곤의 현천기공도 진척이 있었다.

화산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소주천이 불가능했었지만 이제는 소주천이 가능해졌다.

비록 나려타곤과 같은 창피한 수법을 써야만 했지만 청송과 검을 섞을 수 있었던 것도 소주천의 성과였다.

이제야 내력을 운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니 무공을 익혔다고 할 만한 수준이 되었다.

현천기공을 소주천으로 갈무리한 진건곤은 육합장권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무정이 보여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육합장권을 시작하였…….

아니! 진건곤은 한 초식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이런……! 떠오르지가 않아!”

무영이 보여주었던 심득이 사라지고 말았다.

진건곤은 얼른 청송의 검을 떠올리며 수련을 하려고 했으나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게다가 절검이 전에 보여주었던 생생한 각인을 떠올려 보았으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담고 있었던 육합건곤검법마저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지고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사부님께서는 어르신을 믿으라고 하셨는데……!”

절검의 의도를 모르는 진건곤으로서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제껏 불안감과 외로움을 이겨내며 조금씩 축척해 왔던 진전이 모두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없어졌다면 다시 쌓으면 될 일. 포기할 수는 없지.”

한참 동안 실망감에 빠져 있던 진건곤이었지만 자신을 추스르고 이내 수련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진건곤의 수련은 또다시 초보자의 순박한 수련으로 돌아갔다.

처음 운현에게 육합장권과 검을 배웠던 시절의 수련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진건곤이 펼쳐내는 육합장권과 육합건곤검에는 무영이 보여준 허를 집는 현기도 청송에게서 얻은 후발선수의 묘리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절벽의 위에서 바라보던 절검은 그 모습을 보며 기껍게 웃었다.

“허허허! 운현이 네게 가르친 것이 가장 좋다. 그때에 꼭 필요한 단계를 거치지 못하면 발전이 더딘 법이니까.”

절검이 진건곤의 기억을 헝클어 놓은 것은 진건곤의 그릇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모름지기 무공이란 깨달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깨달음으로 충분하지만 그것은 고수에 이른 자들의 사정이다.

진건곤처럼 어린 나이의 수련자라면 깨달음과 그것에 어울리는 몸이 필요했다.

진건곤에게는 깨달음에 어울리는 몸과 내공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단계에 맞지 않는 깨달음은 몸을 망칠 수도 있었기에 진건곤으로서는 이해조차 하지 못할, 기억조차 하지 못할 상승의 무리로 덮어씌워 모든 것을 헝클어 버린 것이었다.

진건곤의 외로운 수련은 계속되었다.

가졌던 것을 빼앗겼기에 상대적으로 더 어렵게 느껴질 수련이었건만 진건곤은 무리를 잃고 나서도 현천기공과 육합장권, 육합건곤검을 끊임없이 수련하였다.

스승이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바를 모르고 방황하기 마련이건만 진건곤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을 뿐이었다.

“허허허! 아무렴! 그렇고말고! 결국에는 혼자서 가는 길인 것을……!”

절검은 절벽 위에서 진건곤을 지켜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다음 날 해가 질 무렵에 절검이 다시 나타났다.

“오늘도 검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절검의 손짓에 딸려가는 진건곤이었다.

[현천기공은 어느 정도더냐?]

“2성에…….”

[말로 하지 마라.]

절검의 전음에 진건곤의 답이 끊어지고 말았다.

[너는 전음을 하지 못하니 눈짓과 눈을 깜박거리는 것만으로 네 뜻을 전하도록 해라. 내가 올바르게 들었는지 전음으로 다시 확인을 할 것이다.]

절검의 전음이 들려오자 진건곤은 눈을 감아 표시를 했다.

[2성이라? 빠르구나. 진전이 느리기로 소문난 전진의 심법이거늘.]

진건곤의 빠른 진척에 놀라는 절검이었다.

실로 진건곤의 진척이 빨랐던 것이다.

기본이 되는 토납법을 익힌 지가 오래되었다고 해도 현천기공을 본격적으로 익힌 것은 불과 반년. 그 안에 2성의 성과를 보인 것은 결코 작지 않은 성과였다.

‘빠르다고요? 그게 육 년이 걸린 것인데요?’

진건곤은 어려서부터 해온 토납법까지 자신의 수련기간에 넣어 생각했으니 빠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진 무공의 특징을 생각한다면 절대 느린 것이 아니었다.

전진의 무공이 무림에서 버림받고 당대에 버림을 받은 이유는 바로 느리고 느린 진척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진건곤이 얻은 진전이 유독 빠른 이유라면 진건곤이 참고 견디며 호흡을 늘여 얻은 결과였다.

전진의 무공은 순수한 도가의 구도의 수단이었기에 무공과는 동떨어진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세간에 호흡을 늘이는 것이 곧 토납법의 성취와 관련이 있다고 소문난 것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완성된 심법. 올바른 현천기공이 있을 때에 국한된 이야기이긴 했지만 말이다.

절벽 위에서 진건곤을 살펴왔던 절검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점이었다.

삼십 장도 넘게 떨어진 곳에서 진건곤의 호흡의 길이까지 살피기에는 진건곤에 대한 관심이 없었으니까.

“되었다. 이것으로 검사는 통과했다. 장문에게 통지하도록 하지.”

말을 마친 절검은 평소처럼 모옥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진건곤은 얼른 침상을 정리하고 절검을 수발을 들고는 마당에 나가 평소처럼 수련을 계속하였다.

진건곤의 권장과 검은 순박하기 이를 데 없고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작은 멋도 작은 깨달음도 섞이지 않았고 많은 변화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속도를 낮추더라도 그 세세한 변화를 정확하게 펼치는 집요한 권법과 검법이었다.

‘과연. 가까이에서 보니 확실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기본에 충실한 수련이다. 허허허! 이놈, 운현. 네 제자를 어떻게 키우고 싶었기에 저리도 기본을 중시하여 가르쳤더냐?’

보통의 무인들이 본다면 진건곤의 수련은 지나치게 엄격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절검의 눈에는 운현의 욕심이 보였다.

어려운 일이지만 엄하게 가르쳐 기본을 정확하게 잡으면 상승의 경지로 갈수록 그 이득이 크다.

운현이 노린 것은 바로 상승의 경지요, 미래였던 것이다.

절검은 평소와 한 치도 다르지 않게 잠이 든 듯이 보였으나 속으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입이 아주 작게 흔들리니 전음이 일었다.

[운현이 아주 잘 가르쳐 손 볼 곳이 없구나. 이제부터는 장권과 검을 수련할 때 내력을 사용하도록 하여라. 2성의 현천기공이라면 내력의 수발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건곤이 곧장 내력을 끌어올려 수련을 시작하자 절검은 하나하나의 초식에 호흡과 내력을 두어야 할 곳을 지적하여 알려주었다.

진건곤의 수련은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끝맺음을 하였다.

겉보기에는 전과 전혀 다른 것이 없었지만 모옥에 들어 침상에 누운 진건곤에게는 절검의 수많은 전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장권과 검법에 내력이 제대로 이어지느냐?]

진건곤의 눈이 대답을 했다.

[좋구나. 내력이 이어진다면 그다음은 발경이다. 발경이란 흔히들 내공을 사용하여 강대한 파괴력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것이다. 발경이라는 것은 내력을 이용해 얻어내는 모든 힘을 의미한다. 흔히 사용하는 내력의 힘들을 제외하고도 상대의 의중을 느끼는 청경이나 상대의 힘을 맞서지 않고 흘러내는 화 등등, 이 모든 것이 바로 발경의 한 종류일 뿐이다. 화산은 그 모든 것에 이름을 부여하고 특히나 발경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화산의 성정이 엄정하고 정교하기에 어울리는 경일 뿐, 무공의 전부는 아니다. 화산이 무당에 비해 부족한 것은 자유로움이다. 화산은 엄격함 속에서 갈고 닦은 무공을 펼치지만 무당은 그야말로 무한한 자유 속에서 터득한 무공을 펼친다. 그것이 바로 화산과 무당의 차이지…….]

절검은 자신이 평생 동안 얻은 무리를 풀어 진건곤에게 전하고 있었다.

진건곤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모두 지워버리고는 이렇게 가르침을 주는 절검의 의중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운현의 말을 좇아 절검을 사부와 같이 대할 뿐이었다.

가르침에 목말라 있었던 진건곤에게는 좋은 일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진건곤에게는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운현이 지어 놓은 악연의 고리는 진건곤마저 삼키고 있었다.

“청송과 청명을 찾은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특히 청송에게는 이레 동안이나 가르침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한순간 장문의 눈에 기광이 스쳤다. 가장 유력한 후보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

“운현의 제자를 대하시는데 변화가 있나?”

“전혀 없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내력을 검사하시는 것을 빼고는 전혀 관심도 없으신 듯합니다.”

“전혀?”

무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녀석의 무공은 어떤가?”

“하루 종일 매일같이 하고는 있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스승이 없으니 오히려 퇴보한 것도 같습니다. 예전에 무정에게 얻었던 가르침조차 퇴색하여 사라지고 말았더군요. 대단한 무재라고 보고 드렸던 일은 일단은 수정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무정이 보여주었던 심득을 완급의 조절로 바꾸어냈던 것이 말하는 것이었다.

절검이 무공을 보여준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절검의 행적을 조사하였지만 그런 순간이 있었음은 아무도 알아내지 못하였다.

절검의 가르침은 장문이 절검의 말을 듣고 고민에 잠겼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장문의 명을 받고 절검의 행적을 조사한 무진으로서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생각도 하지 못할 터, 진건곤의 무공이 퇴보한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전진의 무공인 현천기공, 육합장권, 육합건곤검을 수련하고 있지만 그 정도의 기본공이라면 십 성을 깨우친다고 해도 신경 쓸 정도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끈덕진 것은 인정할 만했습니다. 얼마나 열심인지 지켜보던 저마저도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운현의 제자만 아니라면 저라도 가르쳐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더군요.”

장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불길했던 마음이 확연한 실체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런 녀석이라면 더더욱 탐을 낼 만도 하지. 헌데도 사숙께서는 손을 대지 않는단 말이지? 더욱이 따로 제자를 구하시지도 않으셨고……!’

무언가에 생각이 미친 장문이 갑자기 서랍을 열어 서찰을 꺼내었다.

“보아라!”

무진은 서신을 받아 보았다.

복건성 성주의 직인이 있었고 수신인은 화산으로 되어 있었다.

“읽을 필요도 없다. 운현이 놈이 보낸 것이다. 조정의 이름으로 왔지만 정확하게 진건곤을 찍어 보내달라는 것이다. 보나마나 운현이 손을 쓴 것이겠지.”

무진은 서찰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찰의 내용이 바로 진건곤을 복건성으로 보내달라는 복건성주의 부탁이 적혀 있었다.

“성주에 불과하나 그자는 현 황제의 조카인 인물, 황실의 부탁을 계속해서 무시할 수는 없겠지. 운령에게 전하도록!”

“과연……! 묘책입니다.”

무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의 소리를 뱉어냈다.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지만 장문이 절검과 진건곤의 사이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황실의 핑계를 댄다면 절검 역시도 대놓고 반대를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 무진은 장문의 계책에 감탄하고 있었다.

“운현의 수작이 뻔해 보이나 이제는 보내주어야겠어. 절검 사숙이 그 아이와 얽히면 안 되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애초에 운현이 임무를 받아 화산을 떠나며 걱정을 한 것은 진건곤과 청명이었다.

청명은 화산의 제자이며 무영의 눈이 있으니 전처럼 방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영이 책임지고 돌보기로 약속을 하였으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허나, 진건곤의 경우는 달랐다.

진건곤은 절검의 처소에 있었다.

절검이 빨간 깃발을 내어 걸면 특별한 용무가 없는 경우에는 절검의 처소에 접근하는 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무영으로서도 손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운현은 조정의 힘을 빌려 진건곤을 데려오기로 했다.

화산에 정식으로 요청한 임무 이외에도 다른 일을 하는 대가로 진건곤을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

복건성의 성주이자 황제의 조카인 황족의 이름으로 진건곤을 부르는 서찰을 세 번이나 썼는데도 화산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런 것을 이제야 절검과 진건곤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받아들이는 척하는 것이었다.

장문이 마음을 먹자 진건곤을 절검에게서 떨어트리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간만이구나.”

불현듯이 들려오는 무영의 들뜬 목소리에 진건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예를 갖추었다.

“진건곤이 진인을 뵙습니다.”

“기뻐하여라! 이제야 네 사부의 곁으로 가게 되었다. 너무나 기쁜 소식이어서 내 한달음에 달려왔다.”

“복건성으로 가는 거군요.”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진건곤은 한 치의 당황함도 없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황량한 절벽으로 감싸인 곳에서 항시 외롭게 수련을 하며 원했던 것이 바로 사부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어디로 간다는 건가?”

휘익!

한줄기 바람이 불어 무영과 진건곤의 몸을 쓸고 지나갔다.

바람의 원인은 바로 절검이었다.

절벽 위 진법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절검이 급하게 경공을 펼쳐 내려오자 바람이 뒤따라온 것이었다.

“사숙을 뵙습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건곤이가 어디로 간다고?”

인사는 듣는 둥 마는 둥, 진건곤의 행로를 확인하고 들었다.

“운현이 있는 복건성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허허! 허허허!”

절검은 헛웃음을 멈추지 못하였다.

자신이 화산수문위로 점찍은 아이를 멀리로 보낸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화산수문위는 그야말로 비밀 속의 인물이어야 했다.

화산수문위로 키우기 위해서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 것을 정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자신뿐이었다. 전대 수문위라고 해서 후대를 밝힐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절검은 자신이 장문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절검은 장문과 운현 사이에 쌓인 원한이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운현과 장문 사이의 원한은 절검은 스스로 폐관하였을 때 벌어진 일이었고 그의 폐관은 무려 10년이나 계속된 일이었다.

절검이 폐관수련에서 나온 후에는 이미 수습된 후였으니 그리 대단한 일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경과야 어쨌든 떠나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자, 오늘도 검사를 해보아야겠다.”

절검이 말을 하자 진건곤의 신형이 두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겨우 삼 일 전에 한 검사를 또 한단 말인가?’

진건곤은 놀라고 말았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것을 겨우 이틀이 지난 오늘에 또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절검의 손이 진건곤의 등을 통해 명문혈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급하다. 위험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명심해라. 비명을 지르거나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절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폭포수 같은 내력이 절검의 장심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진건곤의 몸이 갑작스러운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을바람에 사시나무 떨리듯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이마와 얼굴에 땀이 방울져 흐르니 얼마나 대단한 충격인지 알 만했다.

[현천기공! 네가 익힌 심법을 운용하여라!]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절검의 말인지라 얼른 현천기공을 운용하였다.

진건곤은 항상 하던 것처럼 호흡을 길게 늘이며 현천기공을 운용하였다.

극심한 고통 속에 호흡을 놓치기가 여러 번. 실패가 있었지만 진건곤은 비명을 흘리거나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가 이어진 후에야…….

‘하나, 둘, 셋… 백! 하나, 둘, 셋… 일흔 다섯! 하나, 둘, 셋… 백!’

진건곤은 자신의 호흡을 만들어 가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절검의 전음이 이어졌다.

[이제 진기를 인도하여 대주천을 시작한다. 명심해라! 비명을 지르거나 입을 벌려서는 안 된다.]

절검의 인도로 시작된 진기의 흐름은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대주천이라면 진기가 흐르는 통로가 전신에 이른다.

대주천을 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전신에 내력을 보내 다룰 수 있다는 것. 비로소 일반인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무인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허허! 이런,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절검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대주천이 끝나고 말았다.

조금 전 무영은 진건곤이 사지를 떨자 절검의 곁에 서서 호법을 섰다.

진건곤의 무재에 반한 절검이 진건곤에게 진기도인을 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진건곤은 화산에게 큰 은혜를 입는 것이고 절검의 울타리라면 장문의 견제에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른을 세기도 전에 절검이 손을 털고 일어서자 실망의 눈초리로 돌아갔다.

‘하아, 단지 자하기공을 검사하기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반각의 시간에 진기도인을 펼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진건곤 스스로 대주천을 돌린다 하여도 그보다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 틀림없었다.

무영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모옥의 입구에서 화산의 도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절검이 서둘렀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을 지켜보는 자가 생겨나기 전에 진기도인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진기도인은 시작할 때가 가장 도드라진 특징을 가진다. 과도한 진기가 일시에 몰려들어 감당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진기를 투입하여 몸을 조사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에 구분할 방법이 없었다.

운령과 청린, 청송과 청명이었고 청명의 손에는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사숙조님을 뵙습니다.”

운령의 인사와 함께 아이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무엇이냐?”

“운현의 제자를 황족께서 청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운현이 부르는 것이겠지요. 장문께서도 더 이상 신공을 염려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이제 자하기공에 대한 의심도 풀렸으니 대사형께 보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운령의 말에 절검은 고개를 돌려 진건곤을 보았다.

진건곤의 얼굴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땀이 있었다.

“지저분한 녀석! 이런 고약한 냄새가 나다니.”

청린이 얼굴을 찡그리며 진건곤을 타박하였다.

하지만 진건곤은 청린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다만 청송과 청명에게 눈인사를 보낼 뿐이었다.

“흥! 고약한 냄새구나.”

무시당한 청린은 또 한 번 가시를 돋웠다. 그런데도 진건곤은 청린을 무시하였다.

진건곤을 자극하여 무식한 모습을 어른들께 보이고 싶었으나 진건곤이 상대를 하지 않자 청린도 역시 손을 쓰지 못했다.

어른들 앞에서 더 이상의 자극은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뚫어져라 노려볼 뿐이었다.

“운현의 제자는 이 길로 따라나서라! 청이 있은 지 오래되었다. 황족을 기다리게 해서는 좋지 않다.”

“지금 당장 말인가?”

무영이 나서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숙. 이미 세 번째로 보낸 서찰이라 합니다. 장문께서도 신공이 걸려 있는데도 더 이상 버티시지 못하고 보내라고 하시더이다.”

무영의 눈이 반짝였다.

이렇게 짐까지 싸가지고 와서 급하게 보내려는 운령과 조금 전의 절검의 행위를 보았기에 진건곤의 선연을 방해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찌 그런 일이……!”

“장문께서 내린 명입니다. 청명이 이미 짐을 싸두었습니다. 산 아래까지 청송과 청명이 마중을 나갔다 올 것입니다.”

운령은 장문의 명을 핑계로 진건곤을 다그치다시피 하여 등을 떠밀어 보냈다.

빈객당의 가장 높은 곳에서는 화산의 문을 나서는 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딱히 화산을 찾은 손님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화산의 장문과 그의 딸 요조검 운혜는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진건곤이 화산을 떠나가는 것을 보기 위함이었다.

“저 아이에게 대사형이 자하신공을 가르칠 것이라는 건가요?”

장문인은 대답 대신 왼손을 들어 하얀 수염을 가다듬었다. 확신에 가까운 발언을 할 때면 나타나는 습관이었다.

‘무진이 사숙의 자취를 쫓은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그 아이를 지켜본 것은 겨우 몇 시진에 불과하지. 그 짧은 시간에 무진마저도 감복시킬 정도로 열심인 아이라면 사부로서 무언들 아까울까? 분명히 운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무공을 전할 것이야. 대가가 목숨일지라도!’

생각을 정리한 장문의 입에서 확고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영이 운현을 보호하고 있다. 여타의 화산의 문도들도 운현의 파렴치한 짓에 우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운현을 쫓아내거나 단죄할 생각은 없다. 이제 무진의 일로 무영의 비호를 받고 있는 이상 나의 권한으로도 단죄할 수가 없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참을 수가 없구나. 운현이 네게 한 짓을 생각하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선다.”

떠나가는 진건곤을 바라보는 장문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저 아이가 자하신공을 배우는 순간, 운현이 파멸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자하기공이라면 장로원이라도 움직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절검은 화산을 드나드는 입구가 훤히 보이는 절초봉의 꼭대기에 섰다.

거센 산바람에 옷자락이 찢어지도록 휘날리는데도 그의 눈은 감기지 않았다. 그의 눈은 이제 막 산문을 넘어가는 진건곤을 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작은 점 하나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리였지만 절검에게는 사람 하나 구분할 정도의 거리는 되었다.

“허허, 거참! 현천기공에 그런 묘용이 있다니……! 전진의 무공이 달리 도가의 시작이 아니었던 것이야.”

절검은 멀어져 가는 진건곤을 보면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절검은 대주천을 감당하는 혈맥을 뚫어줄 요량으로 막대한 진력을 불어 넣었으나 허무한 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진력이 흐르고 첫 번째 관문인 지영혈을 뚫으려는데 허무하게 뚫리는 기맥이라니……!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기맥은 막혀 있었는데 단단하게 굳어 있어야 할 혈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문은 있었으나 단단한 관문이 아니라 종잇장에 얇은 나무를 덧대어 만든 장지문과 마찬가지였다.

겨우 장지문으로 막아두었는데 온몸으로 부딪힌 결과였다.

마치 운현이 미리 뚫어 놓은 길을 다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허나, 직접 기맥을 뚫어낸 절검은 운현이 미리 손쓴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간의 생각 끝에 현천기공의 묘를 떠올렸다.

전진의 도인들은 무공을 익힌 적이 없었으나 도를 깨우친 후에 무공과 같은 신묘한 힘을 발휘했었다.

도력은 깨달음으로 얻은 선천의 힘을 사용한다. 선천의 힘도 움직이는 통로는 내력과 같이 기맥!

현천기공이 적어도 기맥은 뚫어 놓았었다는 이야기다.

진건곤에게 벌어진 일도 바로 현천기공이 이룩한 일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보기에는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그렇게 대단한 심법이라면 현천기공을 가지 전진의 무공이 왜 무시당하고 있느냐는 것.

절검의 생각은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기초를 익히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너를 다시 볼 날을 기다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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