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4화 (4/61)

제3장

화산의 미래라 불리는 삼명(三明)이 움직였다. 그들은 환천삼보를 찾으라는 임무를 지니고 강호를 종횡했다.

환천삼보에 관한 장보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첩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기실, 진실한 목표가 환천삼보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강호를 떠도는 것은 화산의 중책에 오르기 전에 경험을 쌓고 무명을 떨치며 세상을 배워오라는 것이었다.

환천삼보는 오래된 강호의 전설 중에 하나. 그 전설은 이백 년 전부터 강호를 떠돌았으나 그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린 전설이었다.

화산 삼명이 강호를 돌며 소문을 수집하고 그것을 확인하기를 수차례. 하북의 청안 기륭산의 작은 동굴을 확인하려던 차에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을 맞닥트렸다.

이미 포진되어 있던 자들과 부닥친 화산 삼명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저마다 눈부신 무위를 자랑하며 그들의 포위를 뚫고 나왔다.

개중에 운현의 무위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운현의 눈부신 분투로 포위를 뚫고 생문을 열었을 때, 운현은 절벽 위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흑의인을 볼 수 있었다.

운현은 절벽 위의 먼 거리에서도 눈빛만으로도 일부러 자신들을 놓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차가 멈춰 설 때마다 진건곤은 현천기공과 육합장권과 육합건곤검을 수련하였다. 그것을 수련하고 나서야 잠을 청하였다.

그것은 방용호도 진려경도 마찬가지였다.

화산으로 향하는 길은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가자 진건곤의 무공에도 발전이 있었다.

겨우 동작을 맞추어 각각의 초식을 펼치던 것이 엊그제 같았으나 어느새 연결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 고수들의 눈에 그것이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너는 대관절 무슨 마음으로 수련에 임하느냐?”

대뜸 무영이 진건곤에게 던진 물음이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빠르게 발전하는 진건곤의 무공에 무영이 참지 못하고 물음을 던졌던 것이었다.

“딱히 한 가지로 품은 마음가짐은 없습니다, 진인.”

진건곤은 운현이 무영에게 지극히 대하는 것을 보았던지라 자신도 역시 예를 갖추어 공경하게 답하였다.

“허허허! 네가 수련을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무서울 정도로 정진하더구나. 그런데도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 없단 말이냐?”

“정해진 한 가지가 없다는 말이지요. 생각하는 바는 있습니다. 예전에 백 가지를 익힌 자보다 한 가지를 익힌 자를 무섭게 여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여 한 가지만을 익히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부가 말하기를 너는 한 가지 초식을 익힐 자격이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미 석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구나 싶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답이 솟아오르고 또 바뀌니, 어느 것이 옳은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때마다 품고 있는 바가 다르니 어찌 딱히 한 가지라고 하겠습니까?”

“허허허! 어리석기는! 너는 이미 한 가지 마음으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더냐? 바로 네 사부가 내렸다는 그 질문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너를 이끌어가는 마음이구나. 허허허! 네 사부는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구나. 이렇게 어린데도 화두를 심었단 말이냐? 허허허! 참으로 잘난 사부를 만났으니 네 고생길이 훤하구나. 허허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운현이 욕심이 많나 봅니다.”

무영은 웃고 있었고 무정조차도 거들어 운현을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운현아! 이 녀석이 그리 맘에 들었단 말이냐? 벌써부터 화두를 심어두다니. 앞으로 무엇을 만들 셈이더냐?]

[제가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겠습니까? 다만 너무 빠르게 한 가지만 바라보는 것이 안쓰럽기에 스스로 생각을 하라고 해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어린 나이에 석 달이 넘도록 화두를 물고 늘어지는 아이를 본 적은 없구나. 허허허! 네가 제자 복이 있는 게야!]

[스스로 구하고자 하는 만큼 얻겠지요. 그것으로 족합니다. 사숙!]

“이것을 보아라.”

진건곤의 육합건곤권이 계속되었는데 돌연 무정이 나서서 방해를 하고 들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휘저었다.

무정의 손은 허공을 쥐었다가 다시 놓고는 또다시 쥐어갔다.

그 동작은 조금 전에 진건곤이 했던 회회무망이라는 초식으로 무정이 펼치자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알겠느냐?”

진건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결정을 내렸는지 또렷하게 답하였다.

“모르겠습니다, 진인.”

진건곤의 답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영도 마찬가지였다. 무영은 진건곤의 답이 나오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허허허, 사제는 제자가 없어서 그런지 너무 급하구나! 아직도 어린 아이거늘, 너무 많은 것을 주려 하면 오히려 망가질 수도 있다네!”

“그렇습니까? 허허허! 조심해야겠군요.”

“그럼세! 어차피 운현이 우리보다 고수가 아니겠는가? 운현에게 배우는 아이이니 우리는 뒤로 물러나 좋은 눈요기나 하세나!”

“허허! 벌써 뒷방늙은이 신세란 말입니까? 아직은 인정하기 싫은데 말입니다.”

“어쩌겠는가? 장강도 뒷물결에 밀려나거늘. 우리라고 별수 없는 게지. 이제 슬슬 화산에도 새 물결이 일어날 때도 되었지 않나?”

무영과 무정이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진건곤이 또다시 육합장권을 펼치는데 무정이 보여주었던 바로 그 부분에서 동작을 멈추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구나. 무영 사조님의 동작을 한 번 본 것뿐인데 이리도 답답하다니.’

다시 한 번 손을 놀려 초식을 펼쳤다.

방가락에게 배운 대로 정확하게 초식을 펼쳤지만 여전히 답답하기만 했다.

‘왜 이런 건지 도무지 모르겠구나! 답답하기 짝이 없구나.’

스스로 맘에 들지 않았는지 여러 번 반복해서 회회무망의 초식을 펼치는 진건곤이었다.

그런 진건곤을 보고 있는 무영과 무정의 얼굴에는 웃음이 서렸다.

[허허허! 그놈 참! 못 보았다더니 느끼는 바는 있었던 모양이구나.]

[참으로 대단한 녀석입니다. 본 산의 제자 중에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아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허허허! 모르긴 몰라도 한 손을 넘지는 않을 것이야. 운현이 녀석 제자 복이 있다니까.]

[운현에게 복이 있다면 그럼, 저 녀석은 제 제자로 삼고 다시 얻어 보라고 할까요?]

[에끼, 이 사람아!]

[허허허허! 농이지요.]

두 도인인 전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진건곤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반복해서 회회무망의 초식을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 답답하구나. 진인의 손을 본 뒤로 내손이 막대처럼만 느껴지니 정말 답답하구나.’

예전이었다면 육합건곤권의 수련이 끝이 났을 시간인데도 여전히 회회무망의 초식에 매달리는 진건곤이었다.

“형! 뭐 해? 검법은 수련 안 할 것이야?”

“오빠?”

“먼저 해. 난 이거부터 해결하고.”

알 수 없다는 두 동생들은 정해진 순서대로 수련을 하였다.

진건곤의 회회무망은 끝이 없었다.

동생들이 모두 수련을 끝낸 뒤에도 혼자서 회회무망을 펼치더니 급기야 어두운 밤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건곤아, 자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알겠습니다, 사부님.”

‘아! 조금만 더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도무지 진전이 없구나. 조금만 더 해보고 잠을 청해야겠어.’

말로는 그리 답하면서도 몸으로는 마차로부터 더 멀어지는 진건곤이었다.

동생들도 몇 번을 더 청했지만 그때마다 더 멀어지는 진건곤이니 더 이상 묻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혼자서 해결되지 않은 회회무망에 매달리니 홀로 달과 함께하게 되었다.

무정 도인은 자신이 보여준 회회무망이 그 이유라는 것을 알았기에 미안스러워졌다.

스스로 진건곤의 곁에서 호법을 섰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르고 햇살이 진건곤의 눈을 찔렀다. 너무나 눈이 부셔 펼치던 회회무망을 멈추고 말았다.

“이런, 벌써 아침이구나!”

그제야 진건곤은 아침이 온 것을 깨닫고는 마차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일행은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치고 있었다.

[허허허! 사제도 역시 밤을 새웠겠군.]

[독한 녀석이더군요. 한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생각이라도 해보며 잠시 쉬어 볼 일인데 멈춘 적이 없습니다.]

[허허! 운현이 괜히 화두를 주었겠나? 감당할 녀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

이후로도 진건곤은 몇날 며칠을 회회무망에 매달렸다.

상황이 이리 되자 진건곤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보다 못한 방가락이 나섰다.

“너는 무정 사숙이 어떤 고수라고 생각하느냐?”

진건곤은 강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기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고수지요. 적어도 오백대 고수에는 충분히 드실 테니까요.”

방용호의 답이었다.

“에게……!”

곧바로 진려경의 실망스러운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그것은 강호를 모르는 자들의 이야기였다.

“하하하! 려경이가 영웅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게로구나. 그렇다면 말이다. 작은 동산에 뿌려놓은 깨알 중에서 가장 튼실한 놈 오백 개를 고르라면 기분이 어떻겠느냐?”

“그런 일이라면… 하나씩 살펴본다면 가려내는 데에만 평생이 걸리겠습니다.”

진려경은 여전히 방가락을 어려워하고 있었으니 절로 공경 어린 말로 답하였다.

“그렇다. 강호에 오백대 고수라면 군소방파를 이끌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말로는 쉬워도 직접 만나보기에는 힘든 사람들이지. 웬만한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도 얼굴을 볼일조차 없는 고수란다. 운중룡처럼 숨어 지내는 기인들까지도 있으니 직접 가르침을 받기란 더욱 어려운 이야기지.”

방가락의 눈이 진건곤을 향했다.

“넌 그런 분의 평생의 정화를 보았던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사부님.”

진건곤은 방가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껏 품고 있던 답답함이 다 날아간 듯한 표정이었다.

“뭐야? 오빠만 알고 넘어가게? 말해 줘!”

“형! 나도 알려줘! 도대체가 형과 아버지의 대화는 알아듣기가 힘들단 말이야.”

아이들은 만만한 진건곤에게만 졸라대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면 어떻게 되느냐?”

설명을 하라는데 진건곤이 물음을 던졌다.

“찢어지지!”

“가랑이가 찢어져!”

“사부님의 말씀은 나는 뱁새고 무정진인은 황새다. 그러니까 천천히 따라하라는 말씀이신 게다.”

방용호가 방가락을 보았다.

방가락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방용호의 돌아갔던 고개가 돌아오는데 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하하하하! 그러니까 형이 뱁새라는 거네? 하하하하! 뱁새 형!”

“호호호호, 뱁새. 황새도 아니고 뱁새!”

아직 어린 동생들은 진건곤이 뱁새라는 것이 재밌기만 했다.

“흥! 까불지들 마셔. 너희들은 뱁새도 못 쫓아오는 알이다. 알!”

“그래도 알은 깨봐야 황샌지 뱁샌지 알지! 형은 그냥 뱁새고 우리는 알이라고! 하하하하!”

“이런 엉터리들! 내가 뱁새면 너희들은 틀림없이 참새다, 이놈들아!”

“하하하하! 뱁새! 뱁새!”

아이들은 계속해서 진건곤을 놀려먹었다. 그러나 진건곤은 또다시 토납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뱁새는 가랑이 찢는 법을 할 테니 알들은 조용히 해라!”

그렇게 방가락이 나서고 나서야 진건곤의 회회무망의 수련은 끝이 났다.

야영할 곳을 정하고 나자 진건곤은 수련을 시작하였다. 먼저 육합건곤권을 시작하였는데 어딘지 모를 차이를 느꼈다.

‘어라? 이게 뭐지?’

진건곤은 자신의 육합건곤권이 어딘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전과 다른 것을 찾으라면 딱히 잡을 곳이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헤매다가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자신이 펼치고 있는 육합건곤권이 편안하다는 느낌이었다.

‘초식의 연결이 원래부터 이렇게 편안했던가?’

그랬다. 진건곤의 육합건곤권은 어딘지 모르게 여유로운 기색이 있었다. 각각의 초식은 변한 것이 없었는데 전체적으로는 한결 여유로워진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무엇 때문에 그리되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구나.’

진건곤 스스로 느끼는 차이를 무영과 무정 같은 고수가 몰라볼 리가 없었다.

[사제, 보았는가?]

[네, 보고 있습니다.]

[저 아이, 사제의 회회무망을 보고 얻은 것이 있었나 보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말입니다.]

[허허허! 아주 조금이라고 했느냐?]

[그렇지요. 저는 허를 짚어 실을 얻는 묘리를 보였는데 저 녀석은 그저 완급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전하려는 것은 금덩어리였는데 저 녀석이 얻은 것은 돌덩어리 아닙니까?]

[허허허! 사제는 제자를 아직 키우지 않았으니 그리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허나, 앞으로는 명심해 두게. 작은 그릇에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도 물만 넘쳐 땅으로 흘러갈 뿐 더 담아지는 것이 아니라네!]

[저 녀석이 작은 그릇이라는 겁니까?]

[아니지, 아니야. 자기 나이 또래에 비하면 아주 큰 그릇이네. 하지만 자네가 부은 물에 비하면 작다는 이야길세. 저 녀석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어리지 않은가? 자네의 필생의 심혈을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지. 제자들을 키울 때는 그것에 맞은 단계가 있으니 그것을 명심하라는 말일세!]

[다음에 제자를 들이면 명심하지요.]

[허허허! 허허허허! 자네의 표정을 보니 전혀 안 그렇게 보이는군. 자네는 틀림없이 천하의 기재를 얻어야 할 걸세. 안 그러면 못난 제자라고 구박을 할 테니 말이야.]

[그런 기재가 있다면 제 차례까지 오겠습니까? 아무 놈이나 잡아서 구박이라도 해봐야겠습니다. 저 녀석만큼만 열심인 녀석이라면 아무리 둔해도 예뻐 보이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그렇긴 하겠네. 저리 열심이라면 어떤 사부라도 기꺼워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아암, 그럼!]

[그럼 그런 의미에서 저 초식도 가르쳐 줄까요? 천이도출이라는 초식도 가르치고 싶은데 말입니다. 비록 전진의 무공이라고는 하지만 후발선수를 담아 보여주기에는 딱 아니겠습니까?]

[아서게! 이제 사제는 그만 해야 할 것이야. 저 아이의 그릇은 운현이 만들 것이네. 운현은 우리보다 무공만 앞선 게 아니라 제자를 키우는 데에도 나은 것 같네. 그릇을 지키며 키우기 위해 화두를 던진 게 아니겠는가? 사제처럼 했다가는 그릇이 망가진다네.]

[그… 그런가요? 어휴!]

그만두기는 했지만 무정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 후로도 무영과 무정은 마차가 멈출 때마다 진건곤의 수련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무정은 그때마다 무언가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무영이 번번이 말리니 그럴 수가 없었다.

두 고수가 진건곤의 수련 모습에 흠뻑 빠져 있는 사이에 어느새 화산에 도착하고 말았다.

화산은 천하를 아우르는 구파일방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대한 세력이었다.

화산은 북숭 소림과 남존 무당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신의 앞에 이름을 두지 않았다.

전체적인 이름으로는 무당에 미치지 못하나 화산 또한 적지 않게 천하제일검을 배출하여 무림에 우뚝 섰다. 화산의 자존심만큼은 무당에 뒤지지 않고 있었다.

화산이 아닌 곳에서 무당을 앞서는 검사를 배출하였다면 세상이 놀랄 일이 되었으나 화산이 그런 검사를 배출하였다면 역시라고 반추하는 그런 곳이었다.

세상은 화산이 언제고 천하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고 있었다.

“어때? 정말 대단하지?”

“정말 대단하구나!”

“이런 것을 못 보면 평생 후회할 거야. 오빤 내덕에 이런 멋진 것을 보는 거라고!”

“그래! 고맙다.”

진려경의 공치사였지만 진건곤이 동의하고 나섰다.

여간해서는 토납법을 풀지 않는 진건곤이었으나 어찌나 진려경이 호들갑을 떠는지 눈을 떠 화산을 보았던 것이다.

화산의 산은 그 산세가 험하다. 검을 거꾸로 꼽아 만들었다는 전설도 있을 지경이었으니 얼마다 대단한지 알 만하였다.

하나하나의 봉우리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처럼 뾰족하였고 그런 봉우리들이 모여 거대한 군집을 이루니 보기만 해도 신비로운 지경이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저런 곳에는 신선들이 살 것만 같아.”

진려경의 표정을 보아서는 이미 아련한 환상 속에 빠져든 것 같았다.

“하하하! 내가 바로 신선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곳에 내가 살았으니까.”

“에잇. 바보! 네가 살았다고 하니까, 그림이 안 그려지잖아! 네가 살면 그곳이 무릉도원이겠냐? 돼지우리지!”

“뭐라고? 돼지우리? 이게 정말!”

“그럼, 그게 돼지우리지 무릉도원이겠니? 네가 얼마나 많이 먹는지도 몰라? 그리고…….”

또다시 그들만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진건곤은 동생들의 싸움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이곳에 살게 된단 말인가? 바로 이 화산에서……!”

진건곤은 세상을 떠돌며 구파일방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구파일방은 운중룡들이 사는 곳이라 쉬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나오게 되면 악인을 벌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하였다. 바로 신선이 사는 곳이요, 신화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방가락과 방용호가 화산의 인물이며 자신의 사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본산에 와 직접 보니 그 감회가 새로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 앞으로 네가 살 곳이구나!”

방가락의 손이 진건곤의 한쪽 어깨 위로 올라왔다. 진건곤은 그의 손에서 자신을 격려하는 힘을 느꼈다.

산문을 들어서자마자 운현과 무 자 배 고수들은 어디론가 가 버렸다.

아이들은 지객당에 남아 그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어온 여아가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청명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새로 들어올 아이라더니 사형과 같이 온 것이었어? 이것들은 뭐지? 흥! 사형과 어울리는 것을 보니 보나마나겠지만 말이야.”

눈매가 사나운 것이 흠이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예쁜 얼굴을 가진 여아였다.

화산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그 말본새가 도무지 도인 같지 않았다.

화산에 이런 버르장머리를 가진 아이는 유일했다.

바로 화산의 장문, 무장 진인의 손녀딸인 청린이었다.

“말조심해라. 사매!”

방용호는 아니, 화산에 왔으니 청명이라고 불리는 게 맞았다.

청명이 노여움을 탄 눈으로 청린을 쏘아보았다.

“흥! 많이 컸네. 속계의 바람을 쏘이면 간이 붓나 봐? 그렇게 노려보면 어쩌려고? 무공도 약한 주제에!”

청명은 속이 타올랐으나 어쩌지 못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보아도 청린의 발끝 하나를 건드리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건방진 아이의 이름은?”

진건곤의 말에 청명은 실소를 터트렸다.

“아니야, 형! 이런 하찮은 이름은 기억할 필요가 없어. 내 힘으로도 사매 정도는 해결할 수 있어. 내가 약했던 건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야. 이제 아버지가 오셨으니 문제없어.”

진건곤이 답도 하지 않고 심드렁히 눈을 감고는 다시 토납법에 들어 가버리니 청린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야! 넌 뭐야. 눈 떠!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버지가 바로…….”

청린은 분해서 소리쳤지만 진건곤의 눈을 뜨게 하지는 못하였다.

“돼지야, 네가 처리해!”

오히려 옆에 있던 진려경조차도 눈을 감아 버리니 청린을 상대하는 건 오직 청명 하나뿐이었다.

“흥! 앞으로는 사매가 내 눈치를 보아야 할걸? 똑같은 것을 배운다면 사매에게 질 내가 아니니까!”

청명이 전과는 다르게 나오자 청린은 얼굴이 벌게져서 씩씩거렸다.

“흥! 그렇게 쉽게 바뀔 것 같아? 이미 늦어버렸어. 기초가 다르니 사형은 평생 따라올 수 없어! 저런 무례한 것들을 데려온 사형이 대신 혼나야 해!”

얼토당토않은 말을 던지며 청린은 청명에게 순식간에 달라붙어 뺨을 때렸다.

짜악!

청명의 얼굴이 획 돌아갔다. 그리고!

짜악!

거의 동시에 또 한 번의 소리가 들렸다.

“어… 어떻게……! 감히 나를……!”

청명이 연달은 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고개를 세우자 청린의 바로 옆에 진건곤이 서 있었다.

“막돼먹은 계집! 꺼져! 여자아이인 것을 고맙게 여겨라!”

진건곤이 눈을 부라리며 무섭게 소리치자, 청린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여자인 것을 고맙게 여겼다.

바로 진건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기백에 압도된 것이었다.

청린의 나이는 기껏 일곱인지라 무공으로 키운 정심이 그리 대단할 것이 없었다.

더 후의 일이라면 몰랐으나 지금은 세파에 시달리며 날이 선 진건곤의 기백이 한 수 위였다.

청린은 압도되어 감히 아무런 말을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호호호! 오빠 앞에서 까불면 안 되지!”

진려경의 비웃음까지 듣게 되자 청린은 이 상황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빨간 사과처럼 되었다. 그리고 그 위로 선명하게 그려진 다섯 손가락이 낙인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 이런 무식한 것들. 상대할 값어치조차 없는 것들이……!”

청린은 자신의 두려움을 상대방에게 돌렸다.

일단 한 번 그렇게 생각하자 진건곤이 너무나 무례한 것으로 보여 상대하기도 싫어졌다.

하지만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진건곤의 따귀를 핑계로 사숙이나 사형들을 당장 불러들여 치도곤을 치르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진건곤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이었다는 것을 회피하고 있었다.

“너희들! 가만 안 둘 거야. 아버지께 말해서 절대 화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거야! 두고 봐! 절대로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흥! 두고 보라는 사람 무서운 것 없더라! 호호호호!”

“하하하하! 이젠 사매는 무섭지 않다고!”

진려경은 도망가는 청린을 재차 살며시 눌러 밟아주었다.

청명도 같이 통쾌한 마음에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청명의 얼굴이 급격하게 얼굴이 굳어져 갔다.

“려경아, 어떡하지?”

“왜?”

“쟤가 바로 운령 사숙의 딸이란 말이야.”

“운령 사숙이 누군데?”

진려경이 아무것도 겁이 안 난다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물었다.

“차기 장문인! 게다가 지금은 새로운 제자들을 심사하는 일을 하고 있어.”

“애애애? 진작 말하지! 너 바보냐?”

“말할 틈이 없었지! 그리고 물어보기는 했느냐……!”

청명과 진려경은 서로 눈을 바라보며 곤란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언제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랬던 것처럼 진건곤을 바라보았다.

“형, 어떡하지?”

“오빠?”

진건곤에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진건곤은 담담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앉았다.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토납법이나 하자!”

바로 호흡에 들어가 버리는 진건곤이었다.

“에효……!”

“에효……!”

청명과 진려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사고는 자기가 쳐놓고……!’

‘에효, 때린 것은 형이었다고.’

두 동생들은 눈을 감은 진건곤의 앞에서 불퉁거릴 수밖에 없었다.

“불가!”

화산의 구중심처인 자소궁에 내력이 깃든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럼 무진 사형의 일을 제자들에게 알려도 된단 말입니까, 장문 사형?”

“그 또한 불가!”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된다고만 하십니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하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으실 테니 말입니다. 제가 반드시 그리할 것입니다. 장문 사형!”

무진은 무장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무진이 사형제까지 해쳐가며 운현을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가 돌면 그 근원은 장문이라는 소문이 돌 것이 불을 보듯이 뻔했다.

“내가 직접 운현이 돌아왔음을 정식으로 알리고 그의 제자들도 화산이 받아들이게 할 것입니다. 나를 막고 싶거든 막아 보십시오. 장문 사형!”

탕!

무영이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갔다. 장문에 대한 불만을 표한 것이리라!

무영이 나가자마자 격앙된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진 장문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허허허! 고맙구나, 무영. 그렇게만 해다오. 네가 그렇게 나와 주어야만 운현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될 것이 아니더냐?”

무영은 장문이 특별히 선발하여 무진과 함께 보낸 자였다. 이미 무영이 하는 행동이 모두가 장문의 계산속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배덕한 놈을 용서할 수 없다. 허나 그놈이 화산의 명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화산에 놓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 그놈이 마지막으로 임무를 수행한 곳은 원산이 아닌가? 어쩌면 환천삼보 중에 하나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곳이었지. 무엇을 얻었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내칠 수는 없지. 허나! 운현, 그때까지만 화산의 이름을 쓰는 것을 허락하마! 그동안 그리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뿌드득!

자소궁의 넓은 공간에 이 가는 소리가 뚜렷하게 울렸다. 둘 사이에는 드높은 도를 지녀야 할 장문의 청정을 해칠 만큼이나 깊은 원한이 있는 듯하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자소궁을 향한 경박한 발걸음이 느껴졌다. 장문의 처소를 찾는 자의 발걸음이 아니었다.

자소궁의 문을 거릴 것 없이 열고 들어온 그 발걸음의 주인은 여인이었다.

그 흔치 않은 미모를 지닌 여인. 그 얼굴이 청린과 매우 닮아 있었다. 바로 현 장문의 딸인 운혜였다.

“아버지! 대사형이 돌아왔다면서요?”

“그렇구나. 역시 청명을 데리고 간 것은 운현이었다. 이제는 오히려 무영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더구나.”

“말도 안 돼요. 아버지. 대사형은… 대사형은 이미 화산을 떠났어요. 저를 버렸어요. 그것도 두 번이나. 또한 장문의 자리를 버리고 그 여자를 택했을 때 이미 화산을 버렸지요. 이제 와서 뻔뻔하게 화산으로 돌아오다니 그럴 수는 없어요. 차라리 떠나라고 하세요.”

여인은 원독한 눈으로 운현에게 저주를 퍼부었고 장문은 그런 그녀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허나 무영이 모든 것을 알아버렸으니 이제는 안 된다.”

장문이 스스로 뱉어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장문은 자신의 자식에게조차도 숨기고 일을 진행하고 있었던가?

“절대로 안 돼요. 절대로! 차라리 죽어 버리지 왜 돌아온 거야!”

소리를 지르는 운혜의 눈에는 도가의 절정에 있는 화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원독한 원한이 심어져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모든 것을 얻은 후에는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주마!’

운현의 등장은 태풍의 핵이 되어 고요하던 화산을 뜨겁게 달구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무영을 지지하는 장로회의 일파와 장문을 따르는 일대 이하 제자들 사이에는 이견이 생겨나 있었다.

임무 중에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처해 돌아오는 것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과 아들인 청명만을 데리고 떠났던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무영도 무정도, 하물며 무진조차도 운현이 청명을 데리고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으니 사그라지고 말았다.

물론 장문인이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할 수 있는 사건이었으나 장문인은 그런 신속함을 보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무영마저 운현이 장문의 딸과의 혼약을 깨트리고 다른 여인을 찾아간 것은 운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장문을 더 이상 핍박하지는 않았다.

또한 어차피 무진의 사건을 감추는 쪽으로 결론을 지을 것이라는 생각도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되었다.

말은 많아도 생각처럼 될 것이라는 것이 무영의 계산이었는데 엄한 곳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바로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을 받고 있으며 신입 문도를 총괄하는 청린의 아비였다.

“불가합니다. 사숙!”

화산에 제자를 들이는 일을 결정하는 운령의 답이었다.

“무슨 말이더냐? 이미 장문과 이야기가 다 된 일이거늘!”

무영이 거칠게 탁상을 내려쳤다.

“신입 문도를 받는 일은 제가 합니다. 그 아이는 화산에 들어서도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청린을 때린 아이라는 겁니다. 화산을 가벼이 여기는 그런 아이를 문도로 들일 수는 없습니다.”

“허허! 허허허……! 네놈이 나를 우롱하는 것이냐? 청린이 먼저 청명을 때렸다고 하지 않았느냐?”

무영은 몸을 떨 정도로 노기가 차올랐다.

하지만 운령은 여전히 당당하기만 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바로 그 아이들이 그랬습니까? 사숙이 그 아이들을 믿듯이 전 제 딸을 믿습니다. 화산을 얕잡아 보는 아이를 문도로 들였다가는 대사형의 꼴이 나지 않겠습니까?”

“이… 이런! 작정을 했구나! 네놈이 작정을 했어!”

무영은 끓어오르는 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서야만 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 장문을 찾은 무영이었으나 얻은 것은 없었다. 대신 장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진건곤과 진려경을 다른 구파일방의 제자로 들이도록 추천하겠다는 말뿐이었다.

“허허허! 작정을 했더구나. 작정을 했어. 건곤은 보기 드문 인재거늘. 다른 문파로 보내겠다니, 사심이 정심을 넘어선 지 오래더구나.”

“그나마 사숙께서 나서주었으니 그만 했을 겁니다. 감사드립니다.”

“허허! 허허허! 네 앞에서 이런 소리를 하다니. 미안하구나. 내가 직접 겪어보니 네 심정을 알 수 있겠더구나. 무진 사형의 일이 있고서도 그 정도이니 그전에는 얼마나 했을지… 쯧쯧쯧!”

혀를 차던 무영이 갑자기 운현의 손을 잡았다.

“그간 맘고생이 심했겠더구나. 장문이 사심에 눈이 가려 큰 것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하다니. 무량수불!”

운현도 분한 마음이 없지 않으나 자신의 일인 양 분해하는 무영을 앞에 두고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내 꼭 건곤은 건사해 보마. 두고 보아라. 내 꼭 그리할 게야!”

화산의 장내에서 날아가듯이 경공을 펼치는 자가 있었다. 바로 무진이었다.

“장문 사형! 장문 사형!”

“무엇이냐? 무진!”

무진이 급하게 장문인을 불렀으나 장문은 흔들림 없이 무진을 맞이하였다.

“무영 사제가 무 자 배 사형제들을 모두 불러들였습니다. 제게 운현의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일을 퍼트리겠다고 했습니다.”

장문인의 두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알았네! 내가 처리할 것이니 걱정 말게!”

“지금 당장 모여 있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허허! 그리 서둘지 않아도 될 것이야. 자네에게 그리 말했다는 것은 분명 나에게 알리라고 한 것일 것이네. 위협일 것이야. 허나 무영이라면 그야말로 충직한 화산의 문도일세. 화산에 커다란 분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야. 분명 다시 찾아올 것이네. 나가 보게!”

장문의 축객령에 무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간의 행적이 들통이 났으니 더 이상 운현을 핍박하지는 못하겠지. 허나! 화산에 그 후예들이 자라나는 꼴은 볼 수가 없지. 기껏 청명을 망쳐 놓았는데 또 다른 녀석들을 들일 수는 없지. 암!”

과연 장문의 추측대로 무진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무영이 장문을 찾아들었다.

그리고 진건곤의 남매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커다란 사건이 생겨났다.

장문과 무영의 협상의 결과로 진려경은 아미파의 속가제자로 떠나게 되었다. 또한 진건곤조차도 화산의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되었다.

운현이 화산의 것이 아닌 것을 진건곤에게 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환천삼보 중의 하나를 전하지 않을까라는 장문의 노림수였다.

그 대가로 무영이 얻은 것은 더 이상 운현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렇게나 한쪽으로 치우친 결정이 내려진 것은 장문은 운현에게 지워진 족쇄인 자하기공을 패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자하기공을 지키기 위해서 운현을 남은 평생 동안 폐관수련에 들게 할 수 있으나 그러지 않겠다고 했으며 그 대신 운현이 데리고 온 아이들은 화산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던 것이었다.

진건곤은 화산의 제자가 아닌 운현의 개인 제자의 자격으로 무공을 전수하고 진건곤의 거처 또한 제한을 두기로 하였다.

또한 자하기공을 배웠는지를 검사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기로 하였다.

비굴하기까지 한 조건이었으나 자하기공이라는 무공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리 야박한 것은 아니었다.

무영 역시도 화산의 무공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진건곤은 화산의 불청객이 되어 화산도 아니고 화산이 아닌 것도 아닌 곳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흐흑흑! 오빠, 어떻게 해?”

“울지 마라. 아미파라면 이곳보다는 편할 것이야.”

진건곤은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과 떠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보고 있었다.

동생과 헤어지는 것은 슬펐지만 아미파라면 자신보다는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맞아. 마녀도 없는 곳이니까. 이곳이라면 마녀에게 시달려야 하거든.”

청명이 마녀를 운운하고 들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청린이 마녀라고 불리고 있었다.

“흥! 바보. 너나 되니까 시달리지. 내가 그깟 마녀에게 시달리겠니?”

“이게! 나보다 약한 주제에……!”

“네가 어수룩한 게지.”

“흥! 마녀에게 시달린 게 아니래도! 마녀가 동원한 어른들이 무서웠던 거지. 이제 아버지가 있으니 괜찮아. 피하지 않을 거야. 걱정 말고 너나 잘해. 아미파도 무섭기로는 둘째가라 하니까.”

동생이 청명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진건곤은 말없이 동생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따스한 느낌에 청명과의 싸움도 그만두고 진건곤을 바라보았다.

“오빠……!”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넌 내 동생이니까.”

“알았어……!”

진건곤의 말에 진려경은 풀이 죽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야 진짜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찾아갈 때까지만 견뎌.”

진건곤의 짧은 말에 진려경은 다시 힘을 찾았다.

“꼭 와야 해! 돼지 너도 꼭 와!”

진려경이 청명을 지목했다.

“응. 걱정 마아앙! 꼭 갈겡……!”

청명이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지 이별이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절로 나는 모양이었다.

진려경은 또다시 샐쭉한 표정이 되어 입을 내밀었다.

“돼지! 울지 마! 걱정되잖아! 넌 언제쯤 오빠처럼 믿음직해질래?”

“이거라도 가져가. 필요하면 팔아서 써도 원망하지는 않을게!”

청명이 자신의 품속에서 작은 노리개를 꺼냈다.

“이건……?”

진건곤과 진려경은 이미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것은 청명이 애지중지하던 어머니의 유물이었다.

“돼지! 이런 걸 함부로 꺼내 주면 어떡하니?”

그러면서도 날름 받아 챙기는 진려경이었다.

“일단 누나가 챙겨 놓을 테니까. 꼭 찾으러 와야 한다, 알았지?”

“으응! 꼭 갈게. 형하고 꼭 같이 갈게.”

화산에서 외톨이로 남아 외롭게 지내던 청명이었기에 진려경과의 이별이 더욱 아쉬웠는지도 몰랐다. 도무지 눈물을 그치지를 않았다.

자못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무량수불!”

무영은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이 못할 짓을 하였다는 생각이 들어 연방 도호만을 외우고 있었고 운현도 역시 안쓰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그렇지 않은 눈길도 있었다.

바로 운령이었다. 신입제자를 관장하는 그가 바로 진려경을 아미로 보낸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날이 올 것 같으냐? 네가 찾아가는 것보다 저 아이가 찾아오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넌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운령의 눈이 진건곤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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