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독룡-2화 (2/61)

제1장

달빛과 별빛이 그득해서 사위를 구분할 수 있는 밤.

차분하게 가라앉은 풍경에 알던 곳도 색다르게 보이니 운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능히 밤길이라도 산책을 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 밤길을 가르는 사람들은 산책이 아니었다. 바쁜 걸음으로 달리고 있는 진영리의 얼굴에는 잔뜩 긴장한 표정뿐이었다.

그 뒤를 따라 움직이는 관졸들도 긴장된 얼굴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뛰어라. 늦지 않아야 한다.”

- 리만리에서 궐기가 일어났다. 진 교원은 농민을 달래고 사정을 조사하라! -

늦은 밤에 진영리의 집으로 날아든 명령이었다.

어미가 병을 앓아 죽고 난 이후 혼자서 두 남매를 키워왔던 진영리는 아이들만 두고 긴급하게 길을 나섰다.

“아들만 믿고 간다! 동생 울면 잘 달래서 재우고!”

“다녀오세요. 아버지.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시끄럽게 굴어서 려경이 깨우지 말고 얼른 다녀오세요. 그게 차라리 편해요.”

“그래라! 나 없다고 호흡하는 것 빼먹지 말고 제대로 해!”

“그것도 걱정 마시고 다녀오시라니까요!”

이제 겨우 여덟 살의 진건곤은 심드렁하게 말하며 진영리를 쫓았다.

급하다는 이유만으로 현지의 사정도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채 진영리는 소식을 가지고 온 관졸들을 이끌고 달려갔다.

관졸들의 수가 기껏 네 명에 불과하니 작은 일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안위는 그리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농민들이 걱정이었다.

‘쯧쯧! 기근이 들었다고 해도 아직은 버틸 만하거늘 이런 일이 터져 나오다니, 본보기로 처리하라고 한다면 피가 흐르겠어. 큰일이야!’

세상에 피바람이 불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달렸다.

농민들은 리만리의 제일가는 부자라는 나일승의 집 앞에 모여 있었다.

손에 쟁기와 삽, 도리깨를 들고 있는 성난 농민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광기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역시 관복을 입은 관리들을 보니 꺼리기는 하였는지 주춤거리는 것이 역력했다.

‘이런! 이렇게 큰 폭동인데 겨우 포졸 네 명을 데리고 오게 하다니……!’

하지만 이미 도착했으니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물러가라!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라! 이곳의 일은 내가 조사하고 공정하게 심사하겠다. 모두들 집에 가서 기다려라! 내 최대한의 선처를 약속하겠다.”

진영리의 말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짓말. 이미 나일승을 때려죽였으니 관에 잡혀가면 쉬 나올 수가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것, 배불리 먹고 나 죽자!”

뒤편에서 들려온 소리가 기화가 되어 농민들은 광기를 발산하며 진영리의 앞으로 몰려들었다.

“잡아! 저것들도 죽여 버려!”

“맞아! 다 죽여 버리고 도망치자고!”

채앵!

진영리가 의도적으로 거칠게 도를 뽑아 들었다.

관졸들도 때를 맞추어 창을 앞으로 내세우며 항전의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농민들의 기세가 잠시 움찔거렸다.

“나는 이곳의 사정을 조사하러 온 관리, 교원 진영리다. 나일승이 어떤 자인지는 나도 안다. 비열한 장사치지. 그런 자가 지역의 유지행세를 하였으니 그간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최대한 사정을 보아 주마. 순순히 조사를 받아라! 아울러 나일승의 곳간을 털어 먹을 것을 나누어 주겠다.”

진영리의 말이 우렁차게 울려나가자 제법 소란스러운 사이에도 그 말을 듣지 못한 자가 없었다.

“흥! 거짓말! 구휼미가 나왔는데 턱도 없이 부족했지. 관청에서 이미 다 빼돌렸기 때문일 거야. 굶어 죽어가는 사람 것도 빼앗는 놈들이 누구를 봐준다는 거야? 나일승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악적으로 몰아 처벌할 것이야. 이미 나일승의 일가를 모두 죽였으니 핑계도 좋겠지! 관리들의 농간에 놀아날 뿐이다. 우리를 도와줄 놈들이라면 굶어죽으라고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야!”

“관리들을 믿으라고? 차라리 산적이 되고 만다!”

“맞아, 믿을 놈이 따로 있지. 저놈들이야말로 진짜 도둑이오, 강도야!”

가장 앞선 사내가 선창하며 쟁기 날을 앞세우고 나서자 쇠스랑과 도리깨를 든 자들이 같이 나섰다.

“하룻강아지 같은 놈들. 이 여업!”

진영리의 기합소리와 함께 칼날이 번뜩이자 허공에 피가 튀었다.

일합에 세 명의 목이 달아나 하늘을 날았다.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과한 손속!

거칠어졌다고는 해도 근본이 농민.

굶어죽기 싫어 일어난 농민들은 진영리의 한 수에 두려움에 젖어들었다.

한 칼에 셋을 도륙한 진영리의 무위는 농민들에겐 진영리가 전쟁터의 장수처럼 보였다.

휘리릭!

허공에 도를 떨쳐 피를 털어낸 진 것뿐인데 뒤로 물러서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본 진영리는 의외로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거듭 말하지만 나일승의 가렴주구는 이미 알고 있던 바. 그간 너희들이 겪었을 고초를 알고 있다. 나일승이 법을 핑계로 요리조리 숨어가며 너희들을 괴롭혔기에 증거를 잡지 못해 처벌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속이 다 시원할 지경이야. 모두들 무기를 내리고 자신의 집으로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도륙이 나고 말 것이야!”

진영리의 무력에 압도당한 농민들이 모두들 뒤로 물러나 망설이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과하게 손을 쓴 진영리의 계산대로 농민들이 물러나려 했지만 진영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나일승의 집을 지키고 있던 자들도 제법 힘 꽤나 쓰는 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있고서도 나일승의 집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흥! 사람을 마소처럼 도륙하면서 하는 말을 믿으란 말이냐? 당신은 내가 상대해 주겠소! 모두들 관졸들을 맡으시오!”

젊은 사내가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진영리는 그 목소리가 뒤에서 농민들을 선동하던 목소리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네놈이 바로 선량한 농민들을 사주하고 있던 놈이냐?”

“헛소리! 굶어 죽어가는 자들의 구휼미마저 빼먹는 놈들이 할 소리는 아니지.”

사내는 나타나자마자 검을 찌르며 덤벼들었는데 진영리는 그의 검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일 검을 펼칠 때마다 여러 개의 검영이 번뜩여 변초를 가리기에도 버거웠다.

겨우겨우 진초(眞招)를 골라내어 막아도 가벼운 검에 천근의 힘이 서렸는지 뒤로 밀려나기만 하였다.

‘말도 안 돼! 내 무공이 그리 부족한 편이 아니거늘……!’

진영리는 무인은 아니지만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무관이었다.

전쟁터에서 공을 세워 관리로 나선 그였으니 실전으로 다져진 무공은 그리 얕지가 않았다.

허나 오늘의 상대는 그가 상상도 못 할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연방 뒤로 밀려나기만 하던 진영리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입을 열었다.

“네놈! 강호의 무……!”

허나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사내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고 그의 손은 그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방어라고는 해볼 엄두도 안 나는 검광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고 느끼는 순간,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건곤아! 려경아……!’

서걱! 툭!

진영리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갔다.

‘후후후! 무인이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내가 곤란하지!’

사내가 뒤를 돌아보자 이미 관졸들은 농민들의 손에 맞아 죽어 있었다.

그저 농기구를 든 농민이라고는 해도 숫자가 압도적이었기에 쉬운 일이었을 뿐이었다.

“어서 나승일의 재산을 나누어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관리를 죽였으니 군대라도 나설지도 모릅니다.”

사내의 말에 농민들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서어서 이곳을 떠납시다.”

젊은 사내는 농민들을 다그쳐 몰았고 이미 죄를 지어버린 농민들은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2년 뒤.

때는 영대제 17년 호남지역에 크게 가뭄이 들어 기근이 찾아들었다. 가뭄은 한해에 그치지 않고 세 해째 머물러 세상을 근심에 찌들게 하였다. 영대제는 전국의 식량을 끌어 모아 호남을 구하려 했으나 그 양은 호남의 식량생산량의 사분지 일도 안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근에 역병이 창궐하여 기승을 부리니 민심은 더 없이 삼엄해졌다.

마차를 타고 가던 방가락은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가난과 배고픔, 환자와 시신이 전부였다. 홀로되어 처음 나들이 하는 세상에는 두렵고 무서운 것들만 가득했던 것이다.

“차양을 가리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볼만한 것이 없는 세상이라서 말이죠.”

인근의 지리에 밝다고 하여 새로 구한 마부가 꺼낸 말이었다.

허나 방가락은 눈도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덟 살배기의 어린 아들을 들어 올려 밖을 바라보게 하고 있었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청색의 도복을 입고 있어 도관의 제자로 보였다.

“용호야, 보아라. 세상은 힘없고 돈 없는 자에게는 저리도 무서운 것이다.”

“나 원 어린 녀석에게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마부는 혀를 다 차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방가락이 매서운 눈초리로 마부를 보았는데 그 눈초리에 마부는 감히 빈정거리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네가 후일 힘과 권세를 갖게 된다면 당연히 저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하늘이 내려주는 힘과 재물은 홀로 누리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

간혹 집밖으로 나와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눈이 퀭하게 파이고 배만 볼록 튀어나와 올챙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강아지처럼 활발하게 뛰어야 할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담벼락에 기대어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른 어른이 나와 아이들을 데려가고 있었다.

기근이 오래가자 어디선가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동은 계속되고 파양호의 주위를 지날 때였다. 파양호의 주위는 다른 곳과는 달리 물줄기가 실하여 가뭄의 아픔이 덜한 곳이었다.

제현촌이라는 작은 마을을 통과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도둑 잡아라! 도둑!”

저잣거리를 지날 무렵 들려오는 고함.

방가락과 그의 아들 용호가 창문을 열고 고함이 난 곳을 바라보니 봉두난발의 어린아이가 두 손에 만두를 움켜쥐고 잽싸게 달리고 있었다.

“도둑 잡아라! 만두 도둑이야! 잡아! 잡아!”

만두가게 주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꼬마아이를 쫓고 있었지만 사내아이는 제법 날래서 쉽게 잡히지 않았다.

“허허! 그놈 참으로 재빠르구나.”

말이 극히 적은 방가락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수레며 걸상 등을 타넘고 가는 솜씨가 연습을 여러 번 한 것처럼 매끄러웠다.

날래기가 다람쥐 같아 절로 눈길이 쏠렸다. 그 나이 또래에서는 저만큼 날랜 아이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열 살 즈음으로 보이는 아이가 어른을 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 즈음 주인의 손이 아이의 옷자락을 잡을 것만 같았다.

조그만 아이이고 겨우 먹을 것을 들고 도망치는 아이가 아닌가?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가 잡힐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방가락도 방용호도 모두가 안타까운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이는 돌연 의자를 밟고 튀어 올라 허공에서 재주를 부리며 탁상을 넘어갔다.

그것으로 주인의 손이 허공만 휘저었을 뿐이었다.

우당탕!

끝까지 아이의 발을 낚아채려던 만두장사는 그대로 탁상에 쓰러지며 난리를 피웠다.

“이놈! 오늘을 꼭 잡고야 말겠다. 파 형! 하 형! 같이 나섭시다.”

만두장사의 외침에 근처에 있던 가게에서 두 명의 사내가 같이 나섰다.

세 명의 사내가 동시에 몰아가니 아이는 물고기처럼 한곳으로 몰리고 말았다.

또다시 주인의 손이 아이의 몸을 움켜잡을 찰라, 사내아이는 바로 곁에 있는 아주머니의 가랑이 밑으로 들어가 가판대 밑으로 나왔다.

주인은 차마 그런 아이를 쫓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쥐새끼 같은 노옴! 오늘 네놈을 놓치면 성을 갈고 말겠다.”

아이가 의자를 밟고 탁자를 밟아 넘어가자 똑같이 따라했다. 사람들의 틈으로 파고들자 똑같이 파고들었다.

체면 때문에 어른으로서는 하기 힘든 짓을 하자 아이가 주인을 따돌리기는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여자들은 이미 그 소란 통에 모두 물러서고 마니 여인을 이용하는 방법도 없었다.

아이는 만두장사의 추적을 따돌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쫓겨 물러나더니 결국에는 정씨 부인의 마차에까지 물러나고 말았다.

어른 셋은 이제 다 몰았다는 생각으로 포위망을 더욱 좁혀 들었다. 바로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은 위치.

하지만 그 긴박한 순간에도 아이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얼굴에 미소가 감도는 순간, 순간적으로 아이가 마차의 밑으로 파고들었다. 이제껏 보여주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빠른 몸짓이었다.

어른들은 당황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제껏 결정적인 순간에는 평소보다 더 빠른 몸짓으로,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동작으로 빠져나갔었다.

오늘도 그렇게 놓치는가 싶어 세 사내의 얼굴에 허탈감이 떠올랐다.

‘내공……!’

방가락은 지척에서 순간적으로 빨라진 아이의 몸짓이 바로 내공의 힘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어딜!”

방가락의 음성이 울렸다.

아이는 보이지 않는 것에 방해라도 받은 모양인지 뒤로 퉁겨지듯 물러섰다.

방가락의 손이 아주 빠르게 움직여 아이의 이마를 퉁겨주었기에 물러선 것인데 너무나 빨라 알아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짜악!

갑자기 아이의 몸이 크게 요동치며 나뒹굴어 마차에 부딪혔다.

순간적인 멈칫거림에도 주인이 놓치지 않고 아이의 따귀를 쳐 올린 탓이었다.

“잡았다, 요놈!”

퍽퍽퍽! 버퍽!

사납게 달려들어 아이를 두들기고 발로 짓밟았다. 그동안 쌓인 원한이 적지 않은 듯하였다.

“아버지!”

방용호의 음성이 높게 울렸지만 방가락의 고개는 가로저어 거부했다.

“도둑질을 한 아이다. 그대로 가게 둘 순 없지 않느냐?”

“하지만 아버지! 저 아이 그대로 두면 죽을지도 몰라요! 말려주세요.”

아닌 게 아니라 세 명의 사내들은 원수를 대하듯이 발길질을 하였는데 잠시도 늦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러서라!”

세 명의 사내들은 잔뜩 흥분하여 듣지 못한 듯 아이를 계속해서 짓밟았다.

이미 아이의 곳곳에 상처가 나고 옷에는 피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창!

금속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시퍼런 검 날이 사내들을 향했다.

“나… 나리!”

가게 주인은 갑작스레 날아든 검의 서늘한 느낌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만 하라고 했다.”

방가락이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자 더 이상 때리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저놈은……”

“그만 하면 충분하다. 죽이기라도 할 것이야?”

가게 주인의 얼굴에 흉흉함이 가시지 않은 터라 방가락의 시선을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만했다.

“얼마지?”

사내들이 당황하여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가 훔친 만두 값 말이다.”

“다섯 푼입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전에도 훔쳐 먹은 것이 있으니 두 냥은 받아야 합니다.”

가게 주인은 방가락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돈을 올렸다.

“다섯 푼! 그것으로 끝이다.”

방가락이 차가운 음색으로 손을 움직이자 작은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놀랍게도 방가락이 던진 동전은 가게 주인의 발치에 꼽혔는데 모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땅속 깊이 꼽히고 말았다.

가게 주인은 겁에 질려 다섯 푼도 찾지 못하고 돌아가 버렸다.

방가락은 아이를 마차에 실었다. 밖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시장어귀를 돌면 내려라!”

방용호는 방가락이 누구에게 이야기하나 싶어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방가락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아이를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맞고도 정신이 있다니 어떻게 된 녀석이지?’

아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매서운 눈으로 방가락을 바라보았다. 눈길이 어찌나 매서웠는지 많은 절정의 고수들을 상대한 방가락도 아이의 눈을 새삼스럽게 볼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자신이 넘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이글거리는 눈과는 다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차에서 내렸다.

“가라! 다음부터는 도둑질은 하지 말고! 천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두 손이 잘리게 될 것이야.”

기근으로 나라가 흉흉해지자 국법은 아주 삼엄했다. 도둑놈들은 한 손을 자르는 것이었다.

두 손을 언급한 것은 계속하게 되면 언젠가는 두 손이 모두 잘릴 것이라는 말이었다.

“아저씨 같은 사람 아니면 아무도 나를 못 잡죠.”

아이는 또다시 방가락을 향해 적개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였다.

겨우 열 살 즈음으로 보이는 아이는 상처가 그득한 채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에는 군데군데 피로 얼룩지고 찢어져 험난한 세상의 일부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이의 손에는 아직도 만두가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방가락 일행은 약간의 준비를 마치고 다시 마차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동네어귀를 나선 후에 방가락의 눈에는 이채가 서렸다. 마을에서 만두를 훔쳤던 아이가 멀리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숲으로 들어서자 또 다른 아이가 보였다. 여자아이였다.

여아는 도둑꼬마에게 다가서서 상처를 어루만졌다.

“오… 오빠! 나 때문에… 흑흑흑!”

“왜 이래? 처음도 아니잖아!”

“그래도……! 아프지? 흑흑흑!”

“안 아파! 이 정도쯤이야, 뭐!”

“흑흑흑! 오빠라면… 흑흑흑! 안 맞을 수도… 흑흑흑! 있잖아!”

“가끔은 맞아줘야 한다니까 그러네? 그리고 맞아도 안 아프니까 맞아주는 거야. 걱정하지 마. 정말로 아프면 내가 맞아주겠냐? 다른 동네로 가고 말지.”

“흑흑흑! 정말……?”

“그러엄! 봐라. 만두도 이렇게 가져왔잖아? 정말 아프면 이런 거 못 챙겨온다. 맞다가 떨어뜨리고 말지. 안 아프니까 아픈 척하면서 이렇게 챙겨오는 거야. 자, 먹어!”

“응……!”

여아는 겨우 울음을 멈추더니 만두를 먹었는데 그야말로 게눈 감추듯이 빨랐다.

“우와아! 배불러!”

여아는 짐짓 과장되게 배부른 척하였다.

“맛있어 오빠도 먹어!”

꼬르륵! 꼬륵!

한순간 둘 사이에 어색함이 흘렀다. 바로 배부르다는 동생의 배에서 나온 소리여서 그랬다.

“자! 이것도 먹어!”

“아니야, 괜찮아. 오빠, 오빠도 먹어야지.”

“흥! 나는 이미 먹고 왔어. 오늘은 만두 다섯 개를 훔쳤거든. 난 벌써 세 개나 먹고 왔으니까. 이건 모두 네 것이야.”

“정말?”

동생은 순진하게 속아 넘어갔는지 금세 정말이냐고 물어왔다.

“응! 먹어!”

동생은 그제야 오라비의 손에서 만두를 건네받았다.

멀리서 마차를 멈춘 채로 방가락과 방용호가 그 장면을 보고 말았다.

“하아! 동생이 있었네요.”

방용호가 어느새 고개를 창문 밖으로 빼고 아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저 아이 충분히 강하다.”

“강하다니요. 그래봤자 저 같은 꼬마라고요. 시장에서처럼 맞아 죽을 수도 있어요, 아버지.”

“저 만두가 증거다. 그 틈에도 만두를 지켜낼 것이라고는 나도 생각 못했다. 저 아인 정신을 잃었어도 원하는 것을 이룬 아이다.”

“아… 만두! 대단하네요!”

멀리로 보이는 사내아이는 여아가 만두를 빨리 먹어버리고 자신을 바라보자 먹던 만두마저도 건네주고 말았던 것이다.

“훗! 멋진 녀석이구나.”

이제껏 내색을 하지 않던 방가락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였다.

방가락이 마차를 세우고 성큼성큼 도둑꼬마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생이냐?”

아이는 방가락을 또 한 번 매섭게 바라보더니 말도 없이 동생의 손을 끌고 방가락을 지나쳐 갔다.

방가락은 가볍게 허공을 날아 아이의 앞을 막아섰다.

아이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상관하지 마시죠!”

내키지는 않았지만 방가락에게 존대를 하였다. 방가락이 강자라는 것을 알기에 하는 말이었다.

끌려가는 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가락과 아이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도둑아이가 동생의 손을 끌고 또다시 방가락의 옆을 지날 때였다.

“목적지가 있다면 데려다주마! 먼 친척이라도 없느냐?”

하지만 아이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한마디를 뱉었다.

“그렇게 우리를 팔아넘기려다 죽은 놈도 있죠. 잠이 들었을 때 목덜미를 땄죠.”

뚜렷한 협박이다. 눈길에 흉흉함이 배어나오는 게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알고도 남았다.

하지만 방가락은 오히려 미소를 짓고 말을 이었다.

“나를 믿어보면 일단 배를 굶지는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너는 괜찮은지 몰라도 동생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방가락이 동생을 걸고넘어지자 아이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괜찮아. 난 괜찮아, 오빠!”

동생은 아이에게 꼭 붙으며 괜찮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꼬르르륵! 꼬르륵!

동생의 배에서 울리는 소리는 극명한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

“거짓이라면 내가 잠든 사이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고 말이다.”

꼬르르륵! 꼬르륵!

“……!”

아이들의 이름은 진건곤과 진려경.

진건곤은 덩치는 방용호와 비슷했지만 나이는 두 살이나 더 위였다.

진건곤의 보살핌을 받았던 아이는 동생으로 나이가 여덟 살로 용호와 같았다.

“…어머님이 병환으로 가시고 3년 만에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사정을 이야기하는 진건곤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진려경도 역시 따라 눈물을 흘렸다.

방가락과 방용호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진건곤의 아비는 성도에서 교원이라는 관리였는데 무관출신이라고 했다.

기근이 들고 세상이 흉흉해지자 직접 나서서 성난 민심을 달래는 일을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몇 날이 지나고 나서 전해온 소식에는 농민들을 달래려 나간 관리가 농민들의 위세에 눌려 그들과 합세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허나 진건곤은 그 사실을 전혀 믿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진건곤은 괴발개발의 글씨로 성주에게 진영리의 무고를 밝혀 달라고 여러 번 청을 넣었지만 어린 아이의 청을 제대로 들어주는 이조차 없었다.

그러다 세 번째 청을 넣었을 때 들려온 답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과 같이 왔다.

“너희들은 진 교원을 유인하기 위해 놓아둔 미끼다. 계속해서 쓸데없는 청을 넣거나 유언비어를 퍼트리면 진 교원의 죄를 너희들에게 씌워 모조리 처벌할 것이야. 조용히 기다리며 살아라!”

평소 진 교원과 친하게 지내던 장 교원이었지만 진건곤을 찾아와 도리어 으름장만 놓고 갔던 것이다.

“다 먹고살 만하여 그런 짓을 하는 게지? 죄인 진영리의 재산은 오늘부로 모두 압수한다.”

장 교원이 끌고 온 포졸들이 들어와 집안에 모든 물건과 재산을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진건곤은 그 일로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분기탱천하여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이런 곳에는 나도 못 산다. 반드시 성공해서 아버지의 무고함을 밝히고 말겠어!”

그렇게 그날로 집을 나선 두 남매였다.

허나 세상사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기근이 나라를 휩쓸어 흉흉한 민심이 가득했기에 어린 그들은 타지에서 고생만 했다. 결국은 난민이 되어 움직이다 이곳까지 떠밀려 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네 나이 열 살이다. 일을 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더냐? 심부름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동생을 데리고 살기에도 그게 나았을 텐데?”

방가락이 물었다.

“아무도 써주질 않죠.”

사실이었다. 제현촌이 가뭄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고는 하지만 전혀 영향이 없을 리가 없었다.

이미 고향을 등지고 먹고살 거리를 찾아온 자들이 가득하여 열 살인 진건곤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없었다.

“나뭇가지라도 주워다 팔면 될 것 아니냐?”

진건곤이 고개를 저었다.

“해봤지만 뜨내기 놈이 나선다고 죽도록 얻어맞았죠. 훔치는 게 좋아서 하는 놈은 아닙니다.”

진건곤의 강한 어조에 자존심을 느낀 방가락은 더 말하기를 멈추었다.

‘어차피 두고 보면 알겠지.’

“먹어라!”

방가락이 먹을거리를 꺼내 내밀었다.

허나 아이들은 음식을 보고도 절대 먼저 나서는 법이 없었다. 결국에는 방가락이 거듭 먹으라고 해야만 음식을 먹을 정도였다.

“먹어라. 네 고향에 데려다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동안은 내가 살펴줄 것이다.”

방가락은 이미 진건곤의 날랜 동작에 반한 후였다.

제자로 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인성을 파악하지 못했으니 고향에 데려다주며 살피려 하는 것이었다.

움직여야 하나 딱히 갈 곳이 없는 방가락으로서는 이것도 좋은 일이었다.

여행은 계속되고 보름가량이 지난 후였다. 산을 넘어야 하는데 인적이 매우 드문 길이었다.

“나리! 이곳은 산적이 나올 수도 있겠는데요?”

방가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과연 산세가 우거진 것이 산적이 있기에는 딱이었다.

“잠시 둘러보고 오마. 마부는 천천히 따라오게.”

방가락이 훌쩍 몸을 날려 숲 속으로 사라졌다.

“우와!”

“우리 아버지는 신선이다. 하늘도 날아다닌다.”

방가락은 화산의 문도였다. 그러나 그것을 숨겨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방용호는 다르게 표현한 것이었다.

“에이! 어떻게 사람이 하늘을 날라?”

“방금도 날아…….”

그런 것도 모르고 진려경이 시비를 걸자 어느새 친해진 진려경과 방용호의 말다툼이 오고 갔다.

방가락은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한식경이나 되는 시간이 지나도 돌아올 줄을 몰랐다. 마부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놈들 게 서라!”

숲의 길가에서 두 명의 산적이 나타났다.

둘 다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얼굴에 커다란 멍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도 붉은 것이 이제 막, 어디서 얻어터지고 온 것처럼 보였다.

“산을 지나려면 통행세를 내어야 할 것이 아니냐?”

통행세라는 말에 마부의 얼굴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다행이구나. 사람을 죽이거나 재물을 모조리 빼앗는 산적은 아니야.’

마부가 서둘러 구리돈 열 냥을 산적들에게 건넸다.

쩔그렁!

산적은 마부의 손을 거칠게 후려치자 돈은 소리를 내며 바닥에 흩어졌다.

“치워라! 평소 같으면 돈으로 받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마차 속의 아이 중에 한 명으로 받아야겠어. 시중들던 녀석이 너무 게을러서 죽여 버렸거든!”

산적은 성큼성큼 다가와 마차 속을 들여다보더니 방용호를 가리켰다.

“호! 네놈이 겁이 많아 보이는구나. 겁이 많은 만큼 말도 잘 듣겠지? 가자.”

겁이 많아 보인다는 용호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 오히려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흥! 덤벼라. 잡아다 관아에 넘겨 줄 것이야.”

평소 화산의 제자로 자존심이 높았던 용호는 자신을 종으로 삼겠다는 말에 발끈해 당돌하게 소리치며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하하하하! 흥! 어린 꼬맹이. 무관이라도 다녔느냐? 녹림영웅들을 화나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는 것은 못 배웠느냐?”

산적은 크게 웃어주더니 굵직한 손을 뻗어 방용호를 잡으려 했다.

추리릭!

방용호의 검이 소성을 내며 산적의 팔을 찔러 갔다.

나이에 비해 제법 날카로운 검이었다. 어려서부터 정심으로 수련한 흔적이 보였다.

상대가 양민이었다면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칼 밥으로 먹고사는, 아니 도끼 밥으로 먹고사는 산적이었다.

산적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날래게 도끼를 들어 검을 막아내었다.

“하하하! 꼬마야 그런 재롱으로는 어림도 없다. 보아하니 어느 도관에서 재롱삼아 가르친 모양인데 내공도 아직 여물지 못한 솜씨로는 어림도 없으니 순순히 잡혀라!”

산적은 아예 도끼날을 뽑아내고 자루만 움켜쥐고 휘두르며 방용호를 압박했다.

수차례의 교합이 오고 가고 몽둥이에 맞은 검은 그때마다 크게 울리며 방용호의 손을 저리게 하였다.

방용호는 그 힘을 당하지 못해 무기를 부딪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검을 공으로 들고만 다닌 것은 아닌지 이리저리 날렵하게 움직이며 검을 휘두르더니 산적의 팔뚝에 상처를 내었다.

“네놈! 이제는 죽여 버리겠다.”

손에 검을 맞은 산적이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방용호는 겁을 먹지 않았다.

“흥! 아버지만 오신다면 네깟 놈들은 그냥……!”

“호, 아버지라고? 그렇다면 더더욱 얼른 잡아가야겠구나.”

그때까지 구경만 하던 또 한 명의 산적이 도끼자루를 뽑아 들고 나섰다.

“네놈들은 꺼져라. 이놈만 볼일이 있다.”

손을 다친 산적이 방용호만 물고 늘어지겠다며 다른 일행은 자리를 떠나라고 했다.

“그…그럼……!”

마부는 슬그머니 말을 몰아가려고 했다.

“잠깐만요. 아저씨!”

진건곤이 진려경만 남겨두고 마차에서 내려섰다.

“려경아 먼저 가 있어! 방 아저씨가 곧 오실 것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녀석아, 넌 도움도 안 돼. 괜히 객사하지 말고 녹림영웅들이 기회를 줄 때 도망가야지.”

마부는 진건곤을 걱정하며 같이 가자고 하였지만 진건곤은 말을 듣지 않았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해보아야 알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먼저 가요. 이 길을 따라 나오는 첫 마을에서 기다려요. 방 아저씨가 꼭 찾아올 겁니다. 려경을 버리거나 도망간다면 후회할 일이 생길 겁니다. 하늘을 나는 고수는 이런 곳에서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진건곤은 방가락을 상기시켜 마부가 동생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못 박았다.

“오빠! 가지 마!”

진려경이 소리쳤지만 진건곤은 그대로 마차에서 뛰어내렸고 마부는 얼른 사납게 말을 몰아 진려경이 따라 내리지 못하게 하였다.

“오빠!”

잠시간의 대화였지만 그동안 사태는 아주 안 좋아져 있었다.

“헉헉! 빌어먹을. 그놈들이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놈들은 우스웠을 텐데.”

방용호는 산적을 앞에 두고도 다른 생각을 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흥! 웃기는 놈이구나. 우릴 앞에 두고 다른 놈을 탓하다니. 게다가 제대로 익혔다면 우리 따윈 우습게보인다니? 네놈이 구파일방의 제자라도 된다는 것이냐?”

“…….”

방용호의 입이 열릴 듯했으나 막히고 말았다.

본디 화산의 제자이나 사정이 있어 그것을 숨겨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우리도 놀기 지쳤으니 그만 끝내자! 우리도 이게 시키는 짓 끝내고 우리 일도 해야지.”

산적들은 둘이 동시에 도끼자루를 휘두르며 지친 방용호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방용호가 사력을 다해 피하기는 했지만 힘이 빠진 터라 금방이라도 맞아 쓰러질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쐐액! 퍽!

매서운 소리와 함께 날아온 돌에 허공으로 빗방울이 튀더니 산적 하나가 머리를 쥐어 싸매며 쓰러졌다.

“어떤 빌어먹을 놈이… 허억!”

또 다른 산적이 고개를 돌리다가 기겁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쐐액!

주저앉은 산적의 머리 위로 어린아이 주먹만 한 돌멩이 하나가 지나갔다.

“운 좋았네. 그걸 피하다니!”

꼬마 놈 하나가 주먹만 한 돌멩이를 들고 서 있었다.

“이놈, 죽여주마!”

산적은 분기탱천해서 흉신악살 같은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진건곤은 냉랭하기 짝이 없게 입을 열었다.

“흥! 잡을 수 있으면, 해봐! 용호야! 그 녀석 칼로 찔러!”

하지만 방용호는 찌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산적의 머리통이 터져 싸매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려 온통 피에 젖어 있으니 그 모습이 자못 흉측하였다.

방용호는 이제야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져 버렸다.

“어서 찌르래도!”

진건곤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어쩔 줄 모르는 방용호였다.

“다리라도 찔러! 그래야 도망치지! 허벅지라도 찌르란 말이야. 제대로 깊게 찔러야 한다.”

‘아차……!’

첫 싸움의 긴장됨에 오로지 죽이고 사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방용호였다.

하지만 허벅지를 찌른다는 생각을 하자 거짓말처럼 굳었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푹!

“크아아악!”

허벅지에 검을 찔러 넣자 머리를 싸매고 있던 산적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쓰러졌다.

“이 자식 잡히면 산산조각 내버릴 테다!”

그 광경에 진건곤을 쫓던 산적이 더욱 흥분해서 반응은 여전히 냉랭했다.

“흥! 잡을 수 있을까?”

“빌어먹을 자식! 이젠 고수고 나발이고 필요 없어. 그냥 죽여 버리고 죽을 테다. 네놈 목을 뽑아 버리고 사지를 찢어 죽여주마!”

진건곤의 도발에 자극을 받은 산적이 발광하다시피 했지만 진건곤을 잡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방가락도 감탄했던 재빠름이었다.

몸을 가릴 나무가 가득한 숲에서 진건곤의 움직임은 가히 날다람쥐 같았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움직이면서도 나무를 타고 날 듯이 빙 돌아 방향을 바꾸었는데 산적은 그때마다 진건곤을 놓치고 말았다.

시장에서 만두를 훔칠 때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어서 보는 방용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잉? 저렇게 빠르지는 않았는데?’

쐐액!

“이런 빌어먹을!”

진건곤이 던진 돌은 보통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열 살의 꼬마가 던진 것이었는데 날아오는 속도는 분명 어른이 던진 것보다 더했다.

‘아까 저놈이 내공 운운하던데. 빌어먹을 이렇게 작은 얘들도 무공을 배운 놈들이란 말인가?’

산적은 진건곤의 돌멩이를 피할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흥! 쫓아오지도 못하면서 나를 잡겠다고? 피하지나 말라고.”

진건곤이 돌멩이를 양손에 들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묘하게도 진건곤에게서 두려움을 느낀 산적은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이쪽도 있지!”

산적이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뒤쪽에는 검을 든 방용호가 있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 정말 죽고 싶으냐?”

소리 지르며 분해하는 산적이었지만 능력이 되지 못했다.

“어쨌거나 놀기도 지쳤으니 그만 끝내자!”

진건곤이 산적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갚아주며 돌멩이를 던졌다.

쐐액! 퍽!

“아아악!”

이미 지쳐버린 산적은 진건곤의 돌멩이를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 쥐고 쓰러졌다.

“용호야!”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용호는 모든 것을 알아들었다. 뒷말이 나오기도 전에 어느새 허벅지에 깊게 검을 찔러 넣었다.

“으아아악! 빌어먹을 자식들! 으아아아!”

또 다른 고함이 울리고 그들의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다.

산적들은 이미 제대로 싸울 형편이 아니었다. 도망가기도 힘들어졌으니 오히려 아이들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고마워, 형!”

“별말을 다 한다.”

“역시나 빨라. 완전히 날다람쥐 같아. 완전히 놀랐어.”

“방 아저씨만 아니면 시장에서 잡힐 일도 없었다.”

방용호가 그제야 자신의 머리를 쳤다.

“호오! 이제 보니 형도 무공을 익혔구나? 그런데 시장에서는 맞고 있었어?”

“흥! 맞지도 안고 훔쳐 가면 관아에 고발이 들어간다. 다 자기들이 잡을 만하고 때려줄 만하니까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거지.”

진건곤의 말에 방용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였다.

“하하하! 형 잔머리 끝내주는데!”

“그나저나 아저씨는 언제 오실까?”

“언젠가 오시겠지!”

용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걱정도 안 되냐?”

“아버지 걱정은 안 해도 돼! 이런 궁벽한 곳에 아버지의 적수가 있다고는 생각도 안 하니까.”

‘방 아저씨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구나. 그렇다면 오히려 잘됐군.’

용호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말에 걱정 없이 자신이 하고 싶던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일단은 려경을 찾으러 가자. 아저씨가 우리를 찾아오시겠지.”

그 순간, 갑자기 숲 속에서 큰 소리가 울려 나왔다.

“여기 있었구나.”

파라라락!

무섭게 옷자락이 휘날리는 소리가 나더니 방가락이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산적들은 방가락의 출현에 아픈 발을 질질 끌며 도망치려 했는데 방가락의 신형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퍼벅!

희끗한 무언가가 장내를 어지럽히자 산적들은 무언가 강력한 힘에 부딪힌 것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떨어졌다.

신기하게도 애초에 멍이 들어 있던 그곳에 똑같이 맞고 말았으니 더 이상 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방용호와 진건곤은 그것을 알아볼 시력이 되지 못했다.

“꺼져라!”

방가락이 외치자 산적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숲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방가락이 물어 보았지만 진건곤은 마음이 급하기만 했다.

“아저씨. 마차를 찾아야 합니다. 려경과 마차는 산 아래 마을로 먼저 보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마차는 저곳에서 이미 만나보았다. 나만 먼저 서둘러 온 것이다. 곧 이쪽으로 올 것이야.”

진건곤과 방용호를 안전을 확인하고 방용호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더니 방가락이 진건곤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렸다.

진건곤은 방가락의 손에서 전에 없는 따스함을 느꼈다.

“고맙구나. 내 아들이 위급한 때에도 도망치지 않고 잘해주었다.”

“웬걸요.”

사실은 듣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었다. 모든 일의 진행시킨 것은 바로 방가락이었다.

산속을 돌며 산적들을 찾아내어 지금의 일을 시킨 것도, 지켜보고 있다가 떠나가는 마차 앞에 잠시 모습을 나타내어 돌아오게 한 것도 모두가 진건곤이 어떤 아이인지를 알고 싶어 꾸민 일이었다.

‘빠르고 정확한 돌팔매질. 열 살의 것은 아니지. 내공도 있고 제법 의리도 있어. 싸움이 벌어져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용호가 길러온 화초라면 이 아이는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는 잡초 같구나.’

방가락은 진건곤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믿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날 밤.

잠을 청하기 위해 객잔에 든 방가락이 잠들기 전에 짤막하게 용호에게 말을 하였다.

“건곤이가 네 사형이 된다면 어떻겠느냐?”

“야호!”

단순한 물음이었는데 용호는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산적과의 싸움에서 이미 진건곤에 대한 믿음과 호의가 생겨 버린 용호였기에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고 나섰다.

“하하하! 제가 말하고 올까요?”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아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말해 보자꾸나.”

“그래도 제가 말을 할래요. 그래도 되죠, 아버지?”

방가락은 기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로 들어서는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겨우 백여 호가 있을까? 조용하고 고즈넉한 마을이었다. 진건곤의 어머니의 고향에 도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마을의 분위기는 이상할 정도로 고즈넉했다.

“허허! 허허!”

방가락이 혀를 차고 아쉬워했다.

진건곤이 그 의미를 깨닫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가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뜯어진 문짝이 바람에 들썩일 뿐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였던 것이었다.

“이럴 수가……!”

온갖 고생을 다하며 횟수로 삼 년 동안 헤맨 결과가 바로 텅 빈 마을이었다.

진건곤은 또다시 끈 떨어진 신세가 되고만 것이었다.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서 힘을 차리지 못했다.

“가자! 일단 근처의 마을로 가보자. 이곳의 소식도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

방가락은 그런 진건곤과 진려경을 데리고 가까운 마을을 찾아 움직였다.

수소문을 해본 결과 유난히 기근이 심한 곳이어서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전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진건곤과 진려경은 아주 허탈한 마음이 되고 말았다.

“본디 어른들의 허락을 맡아 너를 제자로 삼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네게 물어야겠구나. 딱히 갈 곳이 없다면 너희 남매는 내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 정기적으로 이곳의 소식은 알아봐 주겠다.”

“제자 사부님을 뵙습니다.”

말이 나오자 몸과 의복을 경건하게 정리하고 그 자리에서 기쁘게 구배를 올리며 인사를 올리는 진건곤이었다.

그 모습에 방가락은 어쩌면 진작부터 무공을 배우고 싶어 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사부의 수련은 허술하지 않다. 각오를 하고 다시 답하도록 하여라.”

“제자는 어떤 수련이라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려경아, 너도 얼른 말씀드리고 구배를 올려라.”

“사부님을 따르겠습니다.”

너무나 쉽게 대답했던지라 방가락이 엄정하게 다시 물었으나 진건곤의 답은 거침이 없었다.

진건곤은 이미 아비의 죽음이 석연치 않음을 알고 있는 터, 그것을 풀기 위한 힘이 필요했다.

아울러 동생을 온전하게 키울 능력이 아직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도 알고 있었다.

‘려경이 문제만이 아니라도 힘이 필요합니다.’

방가락은 진건곤의 굳은 표정을 보며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단은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도록 하자꾸나.”

일행은 진건곤의 외가의 소식을 얻을 요량으로 철산의 가장 가까운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방가락으로서는 이렇게 다른 이유로 자리를 잡는다면 화산이라도 자신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마을에서 십리 길을 걸어야 나오는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았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이었으니 아이들을 생각해 방가락이 집 주위에 간단한 진법을 펼쳐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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