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장 원한
“놈...”
노엘프는 오아시스 저편에서 빛의 기둥 속에서 용악이 발광하는 모습을 보며 상인노인이 두고 간 술을 마시며 연초를 피웠다.
“고작 하위신인 태양신의 힘을 얻는데 저리 고생하니 어찌할꼬...”
노엘프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흐뭇한 모습을 지었다.
그가 말했던 데로 용악은 그저 태양신의 힘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용신의 힘으로 태양신의 힘을 억눌러 자기 몸에 가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노엘프가 그저 신의 힘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용신의 힘에 다른 신들의 힘을 포함시켜 억누르게 만든 까닭은 그래야만 용악의 몸에 가득한 망자지옥의 향을 억누르기 쉽기 때문이었다.
결계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망자지옥의 향에 이끌려 수많은 원혼들과 망자들 그리고 다른 세계의 힘에 이끌린 요괴들과 괴물들이 용악의 피와 살을 뜯어 먹기 위해 습격할 것이 불을 보듯 뻔 한 것.
그랬기에 용신의 힘을 바탕으로 다른 모든 신들의 힘을 합쳐 망자지옥의 향을 억누르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지옥문에서 있었던 변의는 심각한 것이었다.
기억과 행동, 겉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용악은 어쩌면 인간이 아닌 요괴나 마물과도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참고 버텨라. 지옥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던 너의 근성을 보여라.”
노엘프는 서서히 9마리용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져가는 빛의 기둥을 보며 연기를 뻐끔뻐끔 내 뿜었다.
*****
용악은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노엘프와 함께 연초를 뻐끔뻐끔 피웠다.
사실 곰방대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담배가 아니라 약초였고, 용악은 노엘프의 뜻에 따라 언젠가부터 약초를 피웠다.
약초는 씁쓰름한 맛과 함께 청량한 맛이 섞여 있었는데 노엘프의 지하실에 있는 많은 약초들과 그가 마법과 비술로 만든 금속들을 녹여 단으로 만든 것이었다.
“흐흐흐. 너도 이제 연초의 맛을 아는구나.”
“사실 연초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다만 연기만 있으면 연초 아니겠느냐.”
“...”
“흘흘흘... 그나저나 네 놈도 이제 단약을 만드는 데 익숙해 졌나보구나. 맛이 괜찮다.”
“예.”
탁탁.
노엘프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재를 떨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객잔으로 돌아갔다.
맨몸으로 비를 맞고 가는데도 노엘프의 주변은 뿌연 막으로 둘러싸여 빗방울을 튕겨내고 있었다.
용악은 노엘프의 비상식적인 일에 대해 많이 익숙해졌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저렇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내력이 필요한지, 온몸을 균일하게 감싸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운용이 필요한지 용악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노엘프의 모습을 보며 용악 역시 수련을 박차며 노력을 하고 있으나 결코 쉽지 않았다. 허나 노엘프가 있는 것만으로도 용악은 선지자의 발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쿠르릉...
사막 저편에서 번개가 떨어졌다.
용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오는 날만 되면 객잔지붕으로 올라가 창을 들고 번개를 기다리던 자신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근 두 달을 고생해서 태양신의 힘을 얻은 용악은 노엘프의 지도에 따라 그 힘을 다루는 것을 좀 더 가다듬고 이어서 번개신의 힘을 얻기 위해 준비했다.
준비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쉬운 것이었는데 바로 번개를 맞고서 그 번개의 힘을 내력을 이용해 용아심법에 흡수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번개가 언제 칠지 모른다는 것이었고 그 순간이 너무나 짧아 과연 그 힘을 잘 인도할 수 있는지, 마지막으로 번개를 맞고 버틸 수가 있는지...
용악은 처음에 번개를 맞으라고 했을 때 어처구니 업는 눈으로 노엘프를 바라보았으니 그는 “뭐 그런 걸로 놀라냐?” 라는 표정으로 요악을 바라보았고 용악은 아무 말 못하고 객잔 위로 올라가야했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마다 올라가길 수십차례. 그리고 번개를 맞은 것도 수차례.
용악의 내력과 노엘프의 마법주술로 인해 번개를 맞고 살아날 수는 있었지만 맞을 때마다 빈사상태가 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것도 익숙해지는지 맞으면 맞아갈수록 익숙해져갔고 용악의 몸속에 서서히 번개의 힘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번개신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태양신의 힘을 얻을 때보다 좀 더 쉬웠는데 태양신의 경우 한 번에 힘을 다 받는 바람에 힘들었지만 번개신의 힘의 경우 번개를 맞을 때마다 내성이 생기고 차곡차곡 쌓아왔기에 용악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순간에 번개의 힘은 용아심법을 따라 돌고 있었다.
용악은 자신의 오른손에 새겨진 신의 인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원하지도 않았음에도 인장은 자기 마음대로 용악의 손에 자리 잡고 피어났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모조리 오른손에 새겨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온몸이 문신투성이 되었을 것이다.
용악이 내력을 운기하며 힘을 주자 오른손에서 불꽃과 태양빛 그리고 번개가 으르릉 거리며 튀어나왔다.
9대신전 중 불의 힘을 다루는 천마신전과 태양의 힘을 다루는 종남신전. 그리고 동방10도의 번개의 힘을 다루는 뇌도의 힘을 용악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난 그들의 공동전인인가...?”
용악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으며 비가 내리는 사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스름한 먹구름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태양빛과 내리자마자 모래 속에 파 묻혀 사라지는 빗방울이 왠지 모르게 처량했다.
뻐끔.
뻐끔.
“음...?”
용악의 눈에 사막저편의 구릉을 넘어 천천히 움직이는 한 떼의 인마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같은 날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나?”
용악은 상인노인이 다녀간 후 거의 오 개월이 지났음에도 단 한명의 손님도 본적이 없는데 이런 굳은 날씨에 객잔을 향해 오는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히이잉.
용악의 옆에서 무릎을 접고 누워 있던 백룡이 그 일행들을 보며 울음소리를 냈다.
“설마...?”
용악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백룡을 일행에게 보냈다. 백룡이 저런 표정과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백룡은 저 말들이 누군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히이이잉
빗속을 달려 일행과 만난 백룡이 일행 주변을 돌며 연신 앞발을 치켜세우며 반가운 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오셨구나...”
용악은 한줄기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결계 근처까지 걸음을 옮겼다. 차마 결계 밖으로 나가 그들을 마중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처럼 아쉬운 적이 없었다.
서찰을 보낸 지가 언제던가
드디어 온 것이다.
서축을 지키는 폭풍기병대.
그의 숙부들이 오고 있었다.
“숙부님들!!”
“와하하하!!”
“이 놈 이런 좋은 곳에서 혼자 놀고 있었구만 그래!”
전력으로 객잔을 향해 달려오는 일행을 향해 용악이 소리치자 저 멀리서 그에 화답하는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다. 항상 그를 위해 고생하던 숙부. 하후양이다.
한차례 벅찬 감동을 나눈 일행들은 비를 피해 서둘러 객잔으로 돌아갔고 일행을 이끌고 온 상인노인과 노엘프는 따로 자리를 잡고서 연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한동안 회포를 푼 일행들은 고된 여독을 풀기 위해 잠에 들었고 용악과 우장군이던 사마군, 계속 그를 돌봐줬던 하후양만이 운치 좋은 정자에 앉아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그렇게 됬군요...”
“그래. 그렇게 됬다.”
용악은 술잔을 입에서 떼고서 연초에 불을 붙였다. 사마군은 용악이 중원에 없던 동안의 일을 하나하나 전부 설명해 주었다.
용악이 흑영기병대로 떠난 후 조비는 약속대로 용천의 명예를 다시 살려주었다. 용천은 반역자에서 다시금 서축용가의 가주로 인정받고 용씨가문의 묘에 안장되었고 폭풍기마대는 대장군부의 감시에서 벗어나 다시 서축의 손에 들어왔다.
새로이 폭풍기마대장이 되어 대장군에 오른 이는 바로 용천대장군의 좌장군이었던 양탁. 그랬기에 양탁은 이곳으로 올 수 없었다.
그리고 흑영기병대와 용악을 처리하기 위해 손수 대장군부의 친위대를 이끌고 지옥문에서 화포와 폭약으로 흑영기병대와 놀족을 학살하던 조비대장군과 그의 수족들은 알 수 없는 지옥문의 폭발로 모조리 사망하고 말았다.
구심점을 잃은 조비대장군의 가문과 그의 파벌은 대장군부를 조사하던 황제에 의해 풍비박살이 났고 그 외 조비대장군에 끈을 대고 있던 수많은 조정관리들과 다른 성의 장군들 역시 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그 결과 복수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조비대장군의 가문은 폭삭 망해 후손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 버렸고 황제는 용천에게 다시금 훈장과 어지를 내려 폭풍기마대를 격려하고 서축을 안정화 시켰다.
“....”
“그동안 고생했다.”
사마군은 새하얗게 변해버린 용악의 머리칼을 연신 쓸어내리며 눈물을 멈추질 못했다.
친형이나 다름없던 용천의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고 지금은 이렇게 폭삭 삭아버린 아이를 보니 차라리 군을 이끌고 아이를 되찾아야 했었나 하는 자책감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이놈아!”
하후양 역시 용악의 이야기와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서 덩치에 맞지 않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용악의 등을 소리 내어 팡팡 때렸다.
“...”
“...”
“끙...”
한동안 그렇게 울던 그들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피식 웃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떠나가도록 크게 웃었다.
‘결국 이렇게 되었는가! 이런 복수의 끝은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는가!’
용악은 결국은 그가 원하던 조비대장군가문의 몰락을 듣고 나니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지 못해 섭섭한 마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 등... 온갖 마음이 뒤섞여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나오는 건.
허탈한 웃음과
쓰린 눈물 뿐이다.
*****
사마군 일행은 꽤나 오랜 시간 오아시스에 머물렀다. 그들은 용악과 같이 식사를 하고 수련을 하고 객잔 일을 도우며 목가적인 생활을 이어나갔다. 허나 이런 행복한 순간도 잠시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죽은 걸로 알려진 용악이 다시 서축으로 나타난다.
황도와 모든 조정의 관심, 군부의 관심이 다시 서축으로 그리고 용악에게 쏠릴 것이다.
수많은 명성으로 그를 직접보지 못한 모든 군부의 병사들과 장군들은 알게 모르게 용악을 숭상하고 있다.
거기에 복권을 받은 서축의 지배자이자 서축용가의 유일한 후손인 용악의 귀환.
그 것은 또 다른 정,군계의 폭풍이 되어 황도와 한제국을 휩쓸 것이다.
뿐 만이랴?
용악이 행한 수많은 작전들에 의해 쓴 맛을 본 동한국과 서한국은 이빨을 들이대며 한제국을 씹어 댈 것이다.
이러한 판국에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던 조비대장군 파벌의 몰락으로 제국의 안녕과 민심을 안정시킨 황제와 제국관리들이 과연 용악의 복권을 받아 드릴까?
전혀.
절대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흑영기병대와 놀족간의 마지막 전투가 있던 지옥문 전투에서 그들의 뒤통수를 쳤던 조비대장군과 포병대, 대장군부 병사들.
그들의 움직임을 알면서도 묵인 한 것이 조정의 대관리들과 황제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의 당사자이자 피해자가 살아 돌아온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을 것이 분명했다.
고작 대장군에 의해 그런 죽을 고생을 한 용악인데 황제와 제국관리들이 하나로 뭉쳐 그를 견제하기 시작한다면 그 동안의 고생은 고생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용악을 비롯해 다른 서축군의 장군들 모두 용악을 만나 반가움을 표하면서도 그의 거취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정은 지어야겠지.”
“쯧쯧쯧. 세상은 넓은 데 무슨 걱정이 이리 많을꼬.”
뻐끔뻐끔
노엘프는 불을 붙인 곰방대를 용악에게 건네줬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말하지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미리 말을 해주마.”
“..?”
“전에 말했다시피 네놈의 몸은 보통 몸이 아니다. 신의 힘을 받아 신력으로 가득 찬 네 놈의 몸이 이(異)세계의 힘을 몰아내는 대륙차원의 강대한 마법주술진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느냐? 넌 그 압박과 압력을 절대로 이겨내지 못할 거다.”
“..!”
“초대황제와 페리어드인들이 만들어 놓은 마법주술진은 너무나도 강력하고 광대해 감히 나로써도 대항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너로써는 안타깝겠지만 동대륙에서 살긴 힘들 것이다. 물론 9대신전이 위치한 곳에서는 살 수 있을 터나 평생을 산속에 숨어 수도(修道)하며 살고 싶진 않을 것 아니냐?”
용악은 노엘프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도 대략적으로 그럴 것이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 동안에 노엘프에게 전수받은 지식과 비사들이 얼마인가.
그랬기에 그도 자신의 몸이 내력을 쌓은 일반 무인들이나 사제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어떤 사제와 무인이 여러 종류의 내력과 여러 신의 힘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내력을 짐작할 수도 없는 노엘프와 같은 천외천의 고수들과 마법사, 주술사, 도사를 제외하고는 불가능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모두 속세와 인연을 끊고 비의를 익히며 이(異)세계의 힘과 그 힘에 의해 변형된 요괴와 괴물들과 싸우고 있다.
‘나는 과연 그런 삶을 원하는가?’
용악은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그런 삶을 원하느냐?’
‘...’
‘...’
‘아닙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얼 그리 고민하느냐?’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