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104화 (104/107)

104장

용악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백풍은 지옥문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 주변에 있던 관계로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허나 용씨가문의 비전으로 만든 단약을 먹어 영물이나 다름없이 변한 백풍은 그 여파로 용악과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의 힘에 익숙했고 또 그에 대한 여파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용악이 흰머리가 되어버린 것처럼 백마였던 백풍이 지금은 회색빛을 띠는 털로 바뀐 것이다.

지옥문에서 용악이 사라지자 백풍은 주둔지로 돌아가 검은 고양이. 주홍을 데리고 용악을 찾아 초원을 헤매고 다니다가 용악의 기운이 폭발했던 때 그 기운을 읽고 오아시스까지 달려온 것이다.

“허허.이 말의 주인이 당신이었소? 어쩐지 모래사막에서 범상치 않은 말이 뛰어다니는 것이 이상했는데 다 주인을 만나기 위해서 였구만 그래...”

용악은 낙타 떼를 이끌고 온 노인의 말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연신 백풍, 주홍에게 말을 걸었다. 신기하게도 백풍은 물론이거니와 주홍까지도 용악의 말을 알아듣는지 울음소리로 반응을 하며 용악을 울리고 웃겼다.

“뭐가 이렇게 시끄럽나 했더니 네 놈이 왔구나.”

“오오! 노야.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헌데 못 보던 분이 계십니다. 그려.”

어느새 다가 온 노엘프가 조용히 하라고 용악의 머리를 때리자 낙타 떼를 이끌고 온 늙은 상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했다.

“시끄럽고! 술이나 좀 내놔라.”

“하하. 걱정하지 마시죠. 제가 중앙대륙에서 유명한 술들을 가져왔으니 노야께서 한동안 드시기에 충분할 겁니다.”

“그래야지. 암. 이놈아! 넌 가서 낙타들 좀 챙기고 이 늙은 놈 짐들을 챙겨서 가져오너라.”

“예.”

노엘프와 노인은 연신 이야기를 하며 걸음을 옮겼고 용악은 술통을 먼저 객잔에 가져다 놓은 후에 낙타 떼를 몰아 객잔으로 데려갔다.

노엘프는 그 동안 마시지 못한 술을 이번에 다 먹어버리겠다는 듯이 연신 술을 들이켰고 용악은 그 옆에서 상인노인이 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상인노인은 초원과 사막을 관통해 한제국과 중앙대륙사이의 중계무역을 하는 상인이었는데 동료들도 없이 혼자 다니는 터라 그리 크게 장사를 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허나 노인은 돈을 버는 것보다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역마살이 낀 인물이라 교역로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 까지 노엘프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래그래. 오크놈들이나 까만 놈들이나 이제는 안 싸운단 말이지?”

“예. 도마후악토 이후 걸출한 인재가 나오지 않아 초원동쪽의 오크들은 이제 다시 부족생활로 돌아갔고 서쪽의 오크국은 이제 완전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지요. 그러니 저도 이렇게 혼자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 놈이 언제부터 혼자 안 다녔다고 쯧쯧.. 그래도 늙은 인간 놈이 이젠 조금 겸손해 졌구만. 그래.”

“하하. 노야도 참..”

용악은 딱히 할 말이 없어 조용히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백풍과 주홍에게 가 있었다. 그런 용악의 마음을 또 다시 읽었는지 노엘프는 용악에게 나가보라고 손짓했고 용악은 그날 밤을 새도록 백풍,주홍과 함께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상인노인은 낙타 등에 실린 수십 개의 짐을 노엘프에게 주고서 꽤나 홀가분한 표정으로 오아시스에서 한동안 머물며 여독을 풀었다.

노엘프는 상인노인과 꽤나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왔는지 용악이 수련하는 것을 돌봐주지도 않고서 몇날며칠을 이야기를 하며 정을 나눴다. 용악도 가끔씩 그들 사이에 껴서 대화를 나눠서 노인이 이제 한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알았다.

“한제국으로 가신 다 들었습니다.”

“허허. 그럴 생각이네. 노야가 항상 주문하시던 물건을 가져다 드렸으니 이제 내 장사를 해야겠지.”

“그럼 혹시 서축으로 가십니까?”

“그럴 생각이내만?”

노인은 자신의 여정에 대해 묻자 의아한 표정으로  용악을 바라보았다.

용악은 쓴웃음을 짓고서 혹시나 서축으로 간다면 몇 개의 서찰을 전해 줄 수 있냐고 물었고 노인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나저나 서축군에게 보내는 서찰이라. 그쪽과 연이 있나 보오?”

“예. 별건 아니고 숙부님들이 서축군에 계십니다. 안부나 좀 전해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뭐... 그러게나. 어차피 가는 길이니.”

“죄송합니다. 제가 드릴만 한 것이 없어...”

“허허. 내가 노야에가 받은 것이 얼만데 이정도 부탁이야 아무것도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용악은 노인에게 서찰을 전해주는 대가로 줄만한 것이 없어 죄송스러운 마음에 고개만 숙이자 노인은 용악의 어깨를 치며 걱정 말라고 다독였다.

“예.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말게나. 이크! 노야께서 또 부르시네. 가봐야겠네.”

“예.”

용악은 노인에게 서찰을 건네주고는 다시 사막으로 가 수련을 시작했다.

*****

상인노인이 다녀간 후에도 용악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객잔을 정리하고 해가 떠 있는 동안 사막에서 신의 힘을 깨우는 일을 하고 밤에는 백풍과 주홍과 함께 노닥거렸다.

태양의 신의 힘을 일깨우는 것은 불의 신의 힘보다 더욱 어려웠다. 어쩌면 노엘프가 도와주지 않아 그런 것일 테다.

노엘프는 불의 신의 사제들의 운기법은 물론이거니와 알려진 대부분의 신의 사제들의 운기법을 알고 있었는데 용악은 노엘프에게 운기법을 배웠음에도 정작 노엘프가 도와주지 않으면 힘을 일깨울 수가 없었다.

“쯧쯧... 이번엔 더 오래 걸리는 구나.”

용악은 어느새 자신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노엘프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니라. 너도 알다시피 네 놈은 네 스스로 신의 힘을 깨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 곳 밖에서도 살아갈 것 아니냐? 설마 네놈은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고 싶은 건 아니겠지?”

“...”

“어렵고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신의 힘을 깨우는 일이 쉽다면 수많은 사제들이 그리 고행을 하며 기도를 하고 수련을 하겠느냐? 그러나 잊지마라. 네놈은 이미 용신의 힘을 사용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들은 용신을 비롯한 고위신에 비하면 하위에 불과한 존재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가 가지고 있는 힘은 훨씬 더 크고 강하며 하위신들의 힘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확신을 가져라.”

“예...”

용악은 어느새 또 다시 바람처럼 사라진 노엘프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고서 다시금 운기에 집중했다.

용아심법을 깨워 내력을 운기 했다.

도도.

탕평.

내력은 혈도를 따라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꿈틀거렸다. 일반적인 내공운기법과 다르게 용아심법은 임맥과 독맥 이외에도 용아창법의 최종오의인 흑산포 구룡처럼 9개의 맥을 더 거쳐야 대주천이 끝난다.

그렇게 9개의 맥을 거치면서 형성된 내력은 서서히 용의 힘을 일깨우고 노엘프가 등에 그려넣은 마법주술문신은 그 힘을 증폭시켜 문신 한 가운데에 있는 9마리의 용에게 먹인다. 그러면 그 9마리의 용은 내력이 유형화 되어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듯 튀어나와 주변의 기를 뽑아가 다시 용악의 몸이 집어넣는다.

“태양은 만물의 근원이자 생명의 시발점이니 경배하고 또 경배하라. 사악한 어둠을 밀어내며 모든 악의 구원자이자 하늘 위에 오롯한 이를 숭배하라.”

마치 주문과도 같은 기도문과 함께 경전에 적혀 있는 운기법을 따라 태양의 신의 힘을 깨우는 운기를 시작했다.

불의 신의 힘을 일깨웠던 것처럼 용악은 용아심법을 운기 하는 동시에 태양신의 힘을 깨웠다.

무림인들의 내공심법이라면 두 개의 심법을 동시에 운기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만 용악이 익힌 것은 내공운기법이 아닌 신의 힘을 일깨우는 방법이다. 그랬기에 별다른 문제없이 계속해서 내력은 용악의 몸을 휘돌았다.

이미 수십 번도 더 해본 일이기에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불의 신의 힘처럼 태양신의 힘은 얌전히 용아심법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움직여라. 따라 움직여.’

용악은 노엘프가 했던 말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했다.

용신에 비하면 태양신은 하위 신.

고위신격의 힘은 하위신격의 힘을 짓누른다.

불의 신이나 태양의 신이나 인간과 이종족들이 믿는 수많은 신들, 오크들이 믿는 푸른늑대 신이나 하얀 눈의 신들 모두 용신에 비견될 수도 없는 신들.

그러니

따라라!!

용악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의념이 퍼져나가자 처음으로 천지가 흔들렸다. 그러자 용악이 보고 있는 하늘이 찌그러지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우드드드드드

마치 하늘이 쪼개지는 듯 대기 중에 떠도는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덜덜 떨리는 것이 용악의 눈에 보일 정도였다.

“사악한 어둠을 밀어내는 힘이여.”

두드드드.

용악의 주문과 기도에 따라 태양 빛이 더욱 밝아지는 것 같았다.

“생명의 근원이자 모든 악의 구원하는 힘이여.”

찌이이잉...

태양빛은 더욱 강해져 오롯이 용악을 향해 내리쬐기 시작했다.

천상의 사제나 천사가 태양에서 내려온 것처럼 태양에서 뻗어 나온 빛의 기둥은 용악을 향해 내리꽂혔다.

밝은 낮이어서 다행이지 밤이었다면 온 세상천지가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기이하고 성스러운 빛의 기둥이었다.

“으아아아아!!!”

불의 신의 힘과는 다르게 태양신의 힘은 순순히 용아심법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용악의 온몸을 뒤흔들며 혈도를 타고 흘렀다.

이 정도에 굴복할 정도면 그 지옥에서 기어 나오지도 못했다.

이 정도 고통에 포기할 거라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도 없었다

“겨우 이 정도에 내가 포기 할 것 같으냐! 더 해봐라! 더 해!”

용악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쉬지 않고 운기를 했다. 그러자 용악의 의지에 맞춰 등에 있던 문신이 또 다시 꿈틀거리며 9마리의 용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먹어치워라.

감히 나를 괴롭히는 것들은 모조리 먹어치워라.

용씨의 피를 가진 선조들이여!

아버지여!

용의 힘이여!

감히 용의 힘에 대항하는 모든 것을 먹어치워라!

크와와와!!!!

용악의 의지에 따라 9마리의 용은 태양에서 내리 쬐는 거대한 빛의 기둥을 찢고, 밟고, 물어뜯고, 휘갈겼다.

“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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