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장 재회
“휴유...끝인가.”
용악은 자신이 얼마나 잠도 못자고서 운기를 계속 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용의 기운을 따라 돌던 불의 기운이 용악의 의도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그의 몸 안에서 휘몰아쳤다.
용악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몰아일체의 경지를 느끼며 불의 기운을 운기 했고 그 운기가 끝나자 손등에서 타오르던 불꽃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비늘이 있는 곳은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았지만 오른손에는 처음 보는 문양이 마치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불의 신의 인장...”
용악은 경전의 첫 장에 그려져 있던 인장이 자신의 손에 그려져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놀란 마음을 추스린 용악은 서둘러 운기를 마무리 했다.
대장간 밖으로 나오자 싸늘한 바람이 용악의 몸에 가득한 땀방울을 날려 보냈다.
“이리 와 보거라.”
용악은 노엘프의 말에 서둘러 걸음을 옮겨 정자 위로 올라갔다.
노엘프는 용악의 손을 잡고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노엘프의 손이 닿는 곳마다 불의 기운이 치솟아 올라 용악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움찔 거렸다.
“가만히 있거라.”
“,..”
“잘 되었다. 수 십일을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용악은 노엘프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서 조용히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9대신전 중 천마산의 천마신전의 사제들이 사용하는 불의 힘을 그가 얻은 것이다.
“느낌이 어떠하냐? 네가 가지고 있던 용아심법의 기운과 비슷하지 않느냐?”
“예. 노사님의 말씀대로 용아심법의 운기법과 이 불의 기운의 운기법이 거의 흡사합니다.”
“역시나 네 녀석이 익힌 것은 용신의 기운을 키우는 방법임이 맞는 듯 하구나. 그러한 운기법에 불의 기운이 따라 움직인 것은 내가 조치한 것도 있지만 하위의 법이 상위의 법을 따라가는 것도 있으니...”
노엘프는 말을 하다가 뭔가를 생각하는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고생했다. 한 달 넘게 고생하긴 했으나 불의 기운을 느끼게 된 걸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일단은 경전에 적힌 운기법을 정확히 확인한 후에 용아심법과 합쳐볼 방법을 찾자구나 어쩌면 쉬운 일이 될지도 모르니 너는 그저 불의 힘을 다루는 것에 익숙해 지거라. 대장간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지.”
노엘프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 용악에서 나가보라고 손짓했다.
용악이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 노엘프는 자신의 손에 남아 있는 불의 기운을 가만히 느껴보았다.
‘역시나 다른 세계의 기운을 받아들여 몸이 변형 된 것이 분명하구나. 이렇게나 쉽게 신의 힘을 받아드릴 수 있다니. 이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모르겠구나.’
노엘프의 말처럼 지옥문에서 다른 세계의 힘의 통로 즉, 망자지옥의 왕이 소환됨에 따라 그 세계의 영향을 받아 용악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온몸에 변형이 일어났다.
그것은 단순히 용의 비늘을 다는 것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용악이 꿈속에서 보았던 망자지옥의 왕의 후계자, 지옥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4개의 어둠의 날개를 달고 있던 망자지옥의 왕자로서의 몸으로 변형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변형작업 중에 드래곤에 의해 의식이 방해되자 신체변형이 강제로 중단되면서 외부적인 변형까지는 되지 않고, 내부적인 변형으로 끝이 난 것이다.
즉, 다른 세계의 힘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몸으로 바뀐 것이다. 용악이 백발이 된 것은 그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여파였다.
다른 세계의 힘이라는 것은 곧 신의 힘이나 다름 없었으니 용악은 신의 힘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체질로 변화한 것이다.
허나 노엘프가 좋다고만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망자지옥의 왕들이 언제 다시 용악을 유혹해 해를 끼칠지 모르는 판국에 변형으로 인해 다른 신들의 힘은 물론이거니와 망자지옥의 힘 역시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 탓 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하루라도 빨리 다른 신들의 힘을 키울 수 있게 만들어야겠구나. 분노와 증오, 망령 같은 음차원의 힘을 억누르려면 그에 반대되는 신이 필요할 터... 불의 신의 힘을 받아들였으니 다음으론 태양의 신이 좋겠군.’
*****
용악이 이름 모를 오아시스에 머문 지도 사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불의 신의 힘을 사용하게 된 용악은 노엘프의 지도하에 태양의 신의 힘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 용악은 신의 힘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 인줄 알고 있었으나 보면 볼수록 내공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어보였다.
다만 그들의 힘은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 특히나 강한 면모를 보였는데, 그랬기에 신전의 사제들이 요괴나 귀신 마물들을 상대하는 데 특화된 것이다.
용악은 오아시스에서 조금 떨어진 모래사막에 앉아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태양은 이글이글 타올랐고 소금처럼 곱고 작은 모래들은 태양빛에 익어 아지랑이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 뜨거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은 용악은 어찌된 영문인지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서 태양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눈이 아프면 감기를 반복했다.
손등에 새겨진 불의 신의 인장이 그 열기에 맞춰서 타올랐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휴우... 역시나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야.’
용악은 한숨을 쉬고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보니 오히려 불의 신의 힘만 더욱 강해지는 듯 했고, 태양의 신이라는 것의 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부좌를 한 무릎위로 태양의 신의 경전을 펼쳐놓고 계속 보고는 있지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용악은 불의 힘을 얻은 날 밤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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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힘을 익힌 용악은 처음으로 오아시스 밖, 노엘프가 알려준 구역을 벗어나 사막으로 걸어가 보았다.
사실 그는 노엘프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긴 했지만 사제도 아닌 그가 갑자기 신의 힘이라는 것에 전혀 감조차도 잡지 못했다.
노엘프는 그런 용악을 보고서 밖으로 한 번 나가보라고 했고 용악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노엘프가 알려준 지역을 벋어나 사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은한 달빛에 비치자 사막의 구릉들은 마치 파도처럼 어둠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엄습해왔다.
아니 그들이 아니고 그것들이다.
용악을 그토록 괴롭혀 왔던 망령들이 갑자기 떼로 몰려와 용악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히히히히
-우리들의 왕자
-하지만 버림받았지. 저주 받은 놈 으히히히
용악은 자기도 모르게 망령들을 잠재울 두 자루의 마도를 찾았으나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휘이이잉
파르르릇.
망령들은 용악에게 접근해 환청을 일으키는 것을 넘어서 실체화 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용악의 몸을 감싸며 할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망령들이 서로 뭉쳐 모래를 일으켜 팔다리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기괴한 모습의 모래괴물을 만들어 냈다.
-피다
-저주 받은 피
-우리들의 양식!
망령들은 모래바람에 휩쓸려 찢어진 용악의 발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게걸스럽게 받아먹고서 먹잇감을 노리듯 용악을 노려보았다. 마치 요괴의 눈 마냥 수천개의 불빛이 번뜩거리며 용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악은 눈을 감고서 자기도 모르게 가부좌를 하고 앉아 내력을 운기했다.
일주천.
이주천.
계속해서 온 몸을 도는 용아심법의 기운을 느끼면서 용악은 자신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먹잇감을 노리듯 운기를 멈추기만을 기다리는 망령들을 느낄 수 있었다.
화르르르...
용아심법의 운기법을 따라 불의 신의 힘이 따라붙었다.
우우우웅..
위윙....
용아심법의 내력. 용신의 힘이 혈도를 타고 가는 길을 불의 힘이 함께 이동했다.
화르르륵!
대주천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용악의 몸에서 금빛용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옛날.
기억조차 희미한 어렸을 때의 기억.
용악의 아버지인 용천이 내력을 뿜어내 천명이라는 글자를 하늘에 썼던 것처럼, 용악의 등에서 튀어나온 내력이 금빛용으로 유형화되어 튀어나온 것이다.
크와와아!!!
그리고 그 금빛용은 마치 불에 달궈지기라도 하듯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하더니 눈에 보일정도로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냈다.
쿠하하하!!!
불의 신의 힘이 용악에게서 거침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끄아아아..
-불이다!
-정화의 불!! 저주 받은 놈이 감히 정화의 불을!
불길에 휩쓸린 망령들이 재로 변해 바람에 날리며 소리쳤다.
모래괴물은 불길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고 주변을 맴돌던 망령들 모두 타오르는 업화에 날아가 버렸다.
“정화... 정화의 불이라는 게 이런 것이었나?”
용악은 자신의 주변의 모래를 온통 해쳐 놓은 9마리의 용. 그리고 그 용이 뿜어낸 화염으로 인해 잔뜩 그을린 검은 모래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역시... 노엘프의 말은 모두 진실이었던가.’
용악은 노엘프가 말한 망자지옥의 향이라는 것과 신의 힘이라는 것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며 전율하고는 최대한 빨리 오아시스로 기어가 정자에 몸을 내던지며 쓰러졌다.
죽어버린 망령들 말고 또 다른 망령들이 달려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그 자리에 있다가는 망령들에게 덮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물론 좋지 않은 쪽으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용악이 보기에 오아이스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정자였기에 그는 내력 한 줌 없는 지친 몸으로 정자로 간 후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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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린 용악은 경전을 읽기를 반복했다.
망령들의 습격을 받은 이후로 해가 떠있는 동안 계속 사막에 주저앉아 노력을 하고 있건만 전혀 차도가 보이질 않았다.
다가닥다가닥.
샤락샤락.
어디선가 모래를 밟으며 뭔가가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올 이가 있던가?’
용악은 저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구릉을 넘어 달리는 한 마리의 흑마와 그 뒤를 따라 움직이는 낙타 떼를 발견했다.
“히이이잉!”
저 멀리서 말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특이하군. 이런 곳에서 말이라니... 설마?”
용악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행해 달려가려다 노엘프가 알려준 결계를 생각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 낮에도 망령들이 몰려드니 감히 결계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용악은 혹시나 싶어 간절한 마음으로 말을 바라보았고 서서히 말머리가 보이는 순간 확신했다.
“백풍!!!!”
그의 애마이자 전우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말.
아버지의 말인 백룡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말
말 중의 말. 마왕(馬王).
백마였던 백풍이 회색빛 털을 가진 말로 변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히이잉!
순식간에 달려온 백풍은 용악의 주변을 맴돌며 그에게 연신 반가움을 표했다.
용악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연신 백풍의 여기저기를 살피며 다친 곳을 살폈다. 그리고 발견했다. 백풍의 허리에 앉아 나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한 마리의 검은 고양이를.
“주홍... 너까지...”
히이이잉.
야옹.
“다행이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