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102화 (102/107)

102장 회복

메에에...

꼬끼오!!

용악은 그 동안 항상 들어 왔던 양과 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 자리에서 일어났다.

“헉!!”

어제 노엘프에게 문신 의식을 받을 때만해도 그가 그동안 겪었던 그 어떤 고통보다도 심한 고통을 느끼고 기절했는데 단 하루 만에 그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용악은 노엘프가 자신의 몸에 행한 의식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다가 깜짝 놀라 옷을 떨어뜨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진녹색 빛을 뿜어내던 비늘이 지금은 녹빛이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그는 노엘프가 발라준 말도 안 되는 약의 효능에 놀라고서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어제와 똑같고

바람도 어제와 똑같다.

다만 변한 것은 오로지 용악 그 뿐이다.

용악은 노엘프가 항상 있던 정자로 향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노엘프의 곰방대 뿐 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고수 중의 고수라 불린 용악인데 그 곰방대만은 피할 수가 없었다. 한차례 곰방대에 얻어맞은 용악은 노엘프가 시킨 데로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시작했다.

객잔 일은 손에 익어 정리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노엘프를 찾아간 용악이지만 노엘프는 어쩐 일인지 항상 있던 정자에 있지 않고 오아시스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수면 위에 앉아 있었다.

‘물위에 떠 있다니!!’

“어떻게!?”

용악은 그 모습에 깜짝 놀라 양떼를 치기 위해 들고 있던 막대기를 떨어뜨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노엘프는 용악을 바라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는 천천히 수면 위를 걸어와 용악의 머리를 때렸다.

“오랜만에 명상을 좀 해보려고 했더니.. 호들갑은..”

“...!!”

“쯧쯧.”

노엘프는 놀란 모습을 숨기지 않는 용악을 보며 혀를 차고서 말을 이었다.

“물어도 대답 안할 테니 묻지 마라. 그나저나...”

노엘프는 약을 바른 용악의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구나. 이 상태면 한 달 정도만 더 바르면 괜찮겠다.”

“비늘이 안보이게 되는 겁니까?”

노엘프는 용악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고서 답했다.

“비늘의 색을 빼고 네 놈 피부에 더 밀착시키는 약이라 비늘의 문양은 남아 있을 게다. 문신이라 생각해라. 이미 등판에 큼지막한 문신이 있는 놈이... ”

노엘프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 정자로 돌아가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용악은 노엘프의 그런 일방적인 태도에 뭐라 하려다가 그래봐야 돌아올 것은 곰방대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저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때가 되면 알려주겠지...’

‘허허...’

그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지금 자신이 또 다시 인형이 된 것 같아 헛웃음만 흘렸다.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이 지금은 누군가가 자신을 이용하기 위함이 아닌, 말 그래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이러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곳에 온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매일 정자에서 약품을 바른 용악의 팔은 더 이상 녹빛을 띄지 않고 있었다. 다만 노엘프가 말했던 대로 비늘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마치 비늘문신처럼 보였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는 여전했고, 용악은 자신의 나이에 맞지 않는 머리칼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놀라곤 했다.

녹색 눈동자는 변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흘러나오는 푸른불꽃은 아직도 여전했다.

오아시스에 앉아 달빛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면 마치 귀신이나 요괴마냥 푸른불꽃이 눈에서 조금씩 흘러나오곤 했다.

적어도 낮에는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두 달째 되자 노엘프는 여기저기서 가져온 수십의 서책들을 용악에게 건넸다.

서책들은 동대륙어로 된 서책들도 있었고, 서대륙, 중앙대륙의 언어로 된 서책도 있었다. 공통점은 서책들 모두 신의 말을 적은 경전이라는 것이었다.

“읽어라. 때가 되면 내가 다 말해 줄 테니, 우선 읽고 자다가도 외울 만큼 확실하게 외워 두거라.”

노엘프의 말에 용악은 다른대륙언어를 배워야 했다.

다행히 불귀도 혼자 익힌 것만으로 곤제국어와 젠국어를 떠듬떠듬 말할 정도로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빨랐고 지금은 떠오르지 않지만 과거 저승의 강을 통해 누군지 모를 다른대륙인들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언어를 익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재밌지 않느냐?”

“어떤 것이 말입니까?”

용악의 물음에 노엘프는 웃으며 용악이 들고 있는 서책을 가리켰다.

손에 들린 것은 소림신전의 경전이었다.

“이 놈들 아주 사기꾼들이니라. 네 놈들은 소림신전의 사제들을 승려라 부른다지? 그 놈들 다 땡중이야.”

“...?”

용악의 표정을 읽은 노엘프는 곰방대로 용악의 머리통을 때렸다.

“생각을 해라 생각을. 말하지 않았느냐. 다른 세계의 힘의 통로에 신전을 세웠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경전을 봐라 무엇이 적혀 있느냐?”

“...”

용악은 소림신전의 경전을 빤히 바라보았다.

“신을 믿는 사제라는 놈들이 인간이 수련을 통해 신이 되는 방법을 적어 놓지 않았느냐? 그러니 신 입장에서는 배신자들 아니겠느냐? 그래 놓고는 신의 힘은 꼬박꼬박 받아 먹고 말이야. 클클클.”

“허...”

용악은 경전을 그렇게도 비꼬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 자기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마음 수련하는데 소림신전만큼 괜찮은 경전이 없다.”

노엘프의 진지한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경전을 왜 던져줬는지 궁금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엘프는 천천히 오아시스를 돌며 말을 이었다. 노엘프를 따라 서둘러 일어난 용악은 노엘프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발을 맞췄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만 네놈 몸은 아직도 위험하다.”

노엘프의 말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금 발을 떼었다.

“네가 원했건 원치 않았건, 네가 행한 살육과 망자들의 유혹은 너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망자지옥의 왕들은 너를 유혹하고 타락시켜 망자지옥으로 끌고 가려했지. 그것도 지금 네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용악은 노엘프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그가 떠올랐다.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그의 마음을 뒤흔들고

그의 결심과 신념을 망치려던 존재

바로 또 다른 나.

거대한 암흑을 두른 체 검은 날개를 휘날리던 존재

“큭.”

용악은 분노하는 것도 잠시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 잡고 신음을 흘렸다.

“고얀 놈이 늙은이를 앞에 두고 살기를 흘려? 허허. 아직도 사람 되려면 한참 멀었구나.”

노엘프는 용악이 또다시 정신이 팔려 분노해 폭주하려 하자 사정없이 그의 머리를 때려 분노에 잠식되는 것을 막았다.

“그런 고로...”

“...”

“네 놈은 끊임없이 신의 힘을 키워야 하는 법이다. 네 놈이 용신의 사제가 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 될 일인데... 망자지옥의 왕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위신인 용신의 사제가 되는 법은 나도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작해야 네 놈이 익힌 힘으로 지옥의 향이 퍼지지 않는 것을 막는 걸로도 힘이 붙이니 원...”

용악은 노엘프의 말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따로 묻지도 못했다. 어차피 대답을 해주지 않을 것을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아는 까닭이다.

“경전을 읽어보니 좀 알겠느냐?”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쯧쯧. 저잣거리에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 비의사제들이 읽는 비전이 담긴 경전인데도 알지 못하니 아둔함을 어찌할꼬...”

“...”

용악은 할 말이 없어 고개만 숙일 뿐이다.

“내일 부터는 좀 더 다른 수련을 해야겠구나. 스스로 알지 못하니 노구(老軀)를 움직일 수 밖에.”

노엘프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 잊지 말고 오늘도 경전을 읽으라고 말을 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푸쉭...

푸쉭...

“계속 불을 지펴라.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을”

“후욱...”

용악은 대장간의 화로에 앉아 노엘프의 말에 따라 풀무를 계속 움직이며 화로에 바람을 넣었다.

“뜨거움이 느껴지느냐?”

“예,”

“불의 기운이 느껴지느냐?”

“...?”

딱.

노엘프는 곰방대로 휘인의 머리를 치고는 말을 이었다.

“읽으라는 경전을 대체 읽은 것이냐? 만 것이냐?”

“불은 생명의 근원이자. 만물을 정화하는 신의 도구이니 경배하고 또 경배하라. 그리하면 불의 따스함과 불의 진실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알면서 그러는구나.”

노엘프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용악의 등에 손을 가져다댔다.

“운기하면서 불을 지피 거라.”

“예.”

용악은 근 몇 달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용아심법을 단전에서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 동안의 내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 몸속을 휘돌았다.

윙... 윙....

혈도를 따라 거대한 기운이 휘몰아치더니 용악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주저앉았다. 그리고 노엘프의 인도에 따라 등에 새겨진 문신이 용악의 내력을 집어삼키자 그의 등에 새져져 있던 9마리의 용이 황금빛을 내며 튀어나왔다.

“오호라... 역시 성공이구나.”

노엘프는 대장간을 가득 채운 것으로도 모자라 객잔 밖으로 뻗어나가는 9마리의 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해서 운기하면서 불을 지펴라.”

숨을 들이마신다.

후욱.

뜨거운 공기가 폐 속을 가득 채운다.

화아아아

내 뱉는 날숨이 내력과 화기로 가득 찼다.

후욱.

숨을 마시고

화아아아

숨을 내뱉는다.

“불을 느껴라.”

화르르륵...

뜨거운 기운이 온 몸 가득히 퍼진다.

용악은 마치 주문에 빠진 사람처럼 노엘프의 말에 복종했다.

“불의 따스함이 느껴지느냐”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기운 속에서 증오와 분노를 불사르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후욱.

화아아아

화르르륵...

“불의 진실함이 느껴지느냐.”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꽃.

그 속에서 타오르는 증오와 분노가 느껴진다.

“그 따스함과 진실함을 가슴에 담아라. 그것이 첫 걸음이다.”

웅웅웅웅

계속되는 용악의 운기의 박자에 맞춰 화로의 불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멈추지 마라. 계속해!”

잠시 흐름이 끊기자 노엘프의 음성이 귓속에 꽂힌다.

용악이 그렇게 계속해서 운기를 하면서 노엘프가 인도해 주는 불의 기운을 몸 속에 담았다. 불의 기운은 마치 용아심법으로 키워진 내력마냥 그의 온 몸의 혈도를 휘돌았다.

“크윽...”

용악은 자기도 모르게 피를 흘리며 신음을 흘렸다.

마치 온 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단순히 피부가 타는 것이 아닌 뼛속에서 시작된 통증이 운기 하는 기운을 따라 온 몸을 뒤흔들었다.

단전에서

손끝과

발끝까지...

노엘프의 인도에 따라 불의 기운이 용악의 온 몸을 돌자 9마리의 금빛용이 타오르는 불꽃을 토했다.

우르르릉..

불꽃을 토해낸 용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금빛용으로 변해 입을 다물었다.

“으으으으...”

“고통스럽겠지만 참아라. 증오와 분노를 먹고 자란 지옥의 힘이 타오르는 중이니...”

후흡...

하아아아...

금빛용이 지나간 길을 붉은 불꽃이 뒤 쫒았다.

용아심법의 내력을 따라 불의 기운이 돌았다.

화르륵!

풀무를 쥐고 있는 두 손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용악은 깜짝 놀라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붉은 불꽃이 손등에서 타오르는 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프지 않았다.

딱!

“집중해라.”

잠시 용악의 시운이 흔들리자 노엘프는 또다시 머리를 때렸다.

“좋다. 지금 그 상태로 계속 돌려라. 기운의 흐름은 알겠느냐?”

“크윽... 예.”

“그럼 계속해서 기운을 돌려라. 네 놈 손에 피어난 불꽃이 사그라질 때까지."

"..."

"에구구. 오랜만에 힘썼더니 허리가 다 아프구만.”

노엘프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 조심스럽게 용악의 등에서 손을 떼고는 뜨거운 기운이 가득한 대장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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