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장 어긋남
일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렸을까?
나만의 군부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그는 타오르는 복수심과 자괴감에 온 몸이 들끓었다.
조비를 암살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복수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던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아남아 조비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의 가문을 몰락시키고 용씨가문의 부활을 꿈꾸고 싶었다.
더러운 정치싸움도, 지저분한 권력싸움도 할 마음이 있었다.
대장군이 된 나를 받혀주는 충실한 부하들만 있다면... 그래서 녀석들이 필요했다.
흑영기병대가...
하지만 모두 엉망이 되어버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조비가 이런 식으로 미친 짓을 할 줄은 몰랐다.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던 걸까?
이 곳이라면 조비의 마수가 뻗치지 않을 것이라고?
대체 조비는 왜 이딴 식으로 행동한 것이지?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조리 뒤 엎고...
조비가 대장군부 병사 수천과 황도수비군 포병대를 이 변방까지 자의로 끌어 올 수 있었던가?
그렇게 그의 권력과 힘이 강했었는가?
감히 조정과 황제의 눈을 피해 이런 짓을 꾸밀 정도로?
이 일이 알려지고 난 후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조비파벌을 제외한 나머지 조정의 파벌들이 똘똘 뭉쳐 그를 견제하고 있는데 이런 무리수를 둘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너는 그 권력다툼에서 이기거나, 버틸 자신이 있는 건가?
아니면 조정과 황제는 조비를 찍어 내리기 위해 이일을 보고도 눈 감은 것인가?
나 따위는 그저 조비를 몰락시키기 위한 도구인가?
조정대신들은 용악대장군이라는 또 다른 권력자의 출현을 반대하는 건가?
나는 아직 쓸 만한 황제의 칼 아닌가? 하지만 이 번 일을 통해 조비를 찍어 내리면 칼 따위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는 건가?
미처 알지 못했다.
조정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랬기에 내버려뒀다.
이런 막무가내의 상황을 짐작하지 못했기에...
얼쩡거리는 대장군부 병사들도.
조비가 지옥문에 뭔가를 꾸밀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리 조비의 꿍꿍이가 있더라도 흑영대원들과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흑영기병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따를 충실한 부하들.
그들이 저기에 갇혀 있다.
가서 구해야 한다.
언제 꾼 꿈인지 모르지만
손을 내밀지 않고 멈췄을 때와 달리
지금은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
날뛰는 화마 속으로 한 명의 인형이 뛰어 들었다.
그를 태우고 다니던 말이라 부를 수 없는 마물도 감히 무너져 내리는 협곡의 바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지옥문 입구 밖에서 주인을 애타게 부르며 울부짖었다.
용악은 백풍의 울음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앞에 지옥이 보였다.
처참하게 뒹구는 부하들이 시신과 그 시신들을 집어 삼키며 미친 듯이 날뛰는 화마.
그리고...
다른 놀족 병사들의 시체들 속에서 오로지 머리만 튀어나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놀족의 왕 도르트막.
그가 용악의 두 눈에 틀어 박혔다.
도르트막은 시체더미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자신을 보호하려고 목숨을 바친 놀족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흐르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너무도 슬퍼 보였다.
그는 무너져 버린 돌덩이 위에 앉아 용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슬프고도 허무한 목소리로...
“전쟁은... 끝났다.”
타오르는 화마와 그 것을 배경삼아 조금씩 떨어지는 돌덩이들.
수많은 시체가 타오르며 만들어낸 연기를 뒤로 하고 두 사람은 각자의 창으로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 녀석 꼴을 보니.. 후흐흑.. 네 녀석이 배반을 한 건 아니었군.”
“...”
둘은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이 서로만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오지 않을 줄 알았건만.”
“...”
“이 전쟁에 있어서 우린 결국 장기판의 졸이었군... 역시나... 졸의 운명의 끝은 파멸. 모든 것은 놈들이 처음부터 짜놓은 각본대로지. 너는... 그들에게도 배반당한 너라면... 차라리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의 목소리가 용악의 귓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용악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랬다면 적어도 그 놈들에게 복수라도 할 수 있었을 터!”
도르트막은 용악을 바라보며 용악의 살기에 굴하지 않고 저주 가득한 말을 내 뱉고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용악는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말을 듣고 식었던 피가 다시 끓어오른다.
‘조비고, 도르트막이고, 모두 지들의 기준으로 나를 판단했을 뿐.
정작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이 전투. 아니. 지금까지의 전투로 내가 하고자 했던,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라!
그저 너희들은 너희들의 잣대로만 나를 재어 왔을 뿐!
내가 언제까지 운명의 인형이 될 줄 알았더냐!
언제까지 개처럼 운명의 뒤를 따르며 살 줄 알았더냐!
그런데 이들을... 이렇게!! 이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그동안 길고긴 시간 동안 용악의 몸속에서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났다.
그의 몸에 새겨진 씨앗.
그의 기를 먹고 자란 그것이 드디어 꽃을 피운다.
용악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눈에서 정광이 사라졌다.
단전에서 터져 나오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서서히 용악의 온몸을 뒤덮는다.
그러자 용악의 온몸이 붉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 붉은 빛 속에서 용악의 녹색의 눈에서 안광이 흘러나와 용악의 얼굴을 감싼다.
마치 얼굴만 녹색이고 몸은 붉은 색인 괴물로 변해 버린 모습으로 용악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녹안의 얼굴에서 푸른 불꽃이 눈을 대신해서 피어오른다.
파지지직.....
불꽃이 실체화 되어 눈 밖으로 튀어나오며 공기와 접촉해 스스로 타오른다.
휘이이잉......
그를 중심을 병사들의 혼이 모여든다.
인간도, 놀족도 상관없이 이곳에서 죽은 병사들의 모든 원혼들이 용악에게 원을 그리며 모여 든다.
용악의 온몸에서 살기가 터져 나온다.
살기는 실체화되어 바위를 가르고
시신을 가르며
땅을 가른다.
“우워워워!!!!!”
녹색으로 변해 버린 얼굴이라 불리는 그곳의 어느 부분이 가로로 찢어지면서 세상을 무너뜨릴만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 고함소리를 듣고 지옥문이라 불리던 폐허 속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그 목소리에 굴복해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 고함소리를 듣고 용악의 허리에 매어져 있던 두 자루의 도가 스스로 뽑아져 나와 붉은 검신을 드러낸다.
끼야야약!!
끼요요욧!!
귀곡성을 내 뿜으며 두 자루의 도는 용악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도를 중심으로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저절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붉은 실을 도에 묶어 놓고 풀어 놓았다가 다시 둘둘 말자 끌려오는 것처럼 바닥에 뿌려져 있던 피는 검붉은 핏줄기로 바뀌어 도로 빨려 들었다.
도는 용악의 주위를 맴돌면서 그를 중심으로 기묘한 모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마치... 피로 뭔가를 그리는 것 같다.
악마의 문양을 수십 개 겹쳐 놓은 모양이 다 만들어지자
그 도는 마치 이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원의 양 끝에 틀어 박혔다.
그리고!!!!
그 원형의 진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반구(半球)의 모습을 형성하며 지옥문을 가득 채웠고 얼마 전 용악이 봤던 그 꿈속에서의 그 모습처럼 시체들 속에서 서서히 무언가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끼리리릭...
쿠르르르르느........
보통 성인 여자정도의 크기로 시체에서 일어난 그 여성체의 모양을 하고 있는 존재는 전과 같이 6장의 뼈의 날개를 겹쳐 자신의 나신을 가렸다.
그리고...
그 다른 존재들 역시 시체들 속에서 스멀스멀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4개의 뿔을 가진 염소의 머리를 한 남자의 모습을 한 존재.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뼈만으로 이루어진 암흑을 마치 옷처럼 두르고 있는 존재.
온통 암흑으로 이루어 진 듯 검은 모습을 한 독수리의 머리를 한 존재.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존재의 온몸은 투명하여 몸의 반대편이 다 보였고 그녀의 머리카락대신 살아 움직이는 수많은 뱀이 그녀의 머리에 박혀 있었다.
그들은 서서히 다가와 붉은 색과 녹색이 섞여 오묘한 구체로 변해버린 용악을 바라보았다.
기대감과 황홀감이 가득이 그들의 눈에 가득 찼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6장의 날개를 가진 여인은 다른 존재에게 허락을 얻고 용악에게 다가와 용악의 입이었던 그곳에 깊숙하게 자신의 혀를 집어넣었다.
그녀의 혀는 마치 용악의 머릿속까지 핥는 듯 용악의 머릿속을 해 집고 나서야 빠져나왔고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하며 입을 땠다.
*****
그리고...
그 시각...
용악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전해 들어가 자신의 몸속에 있던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온통 어둠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고 자신의 앞에는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어둠의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자는 서서히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그의 검은 입술은 보였지만...
그 자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네 장의 날개를 펼쳐 허공에 휘날렸다.
그 움직임을 따라 어둠이 흔들거린다.
그리고는 그의 목소리가 용악의 머릿속으로 직접 들려왔다.
“이제야. 결심한 건가?”
“...”
“여기까지 와서 대답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인가?”
“그래....”
용악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을 했다.
아니.
대답이 됐다.
저절로.
자신의 입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뜻에 따라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좋아. 좋아.”
그 존재는 용악이 대답을 했다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님 자신의 질문에 옳은 대답을 했다는 것이 좋은 것인지 어떤 의미로 말 한지는 모르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날개를 펄럭여 용악에게 날아왔다.
그리고 보았다.
그의 얼굴을.
십자의 모양의 흉터가 그 자의 오른쪽 뺨에 나 있었고 그자의 녹색의 눈에서 푸르른 불꽃이 터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너는!!!!!!!
“왜 그렇게 놀라지?”
“...”
용악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용악에게 다가와 검은 비늘로 쌓인 그의 왼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직도.”
“모르겠나?”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어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지?’
용악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멍하니 그 어둠 속에 홀로 서있었고...
이윽고 정신을 잃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살기를 온몸으로 뿜어내며 가슴 찢어지도록 절규하는 그 검은 존재의 타오르는 두 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