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장
저 위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두 사내는 성난 짐승처럼 계속 해서 부딪쳤다.
대단하다!!!
너는!!
전혀 밀리지 않는 구나!
용악의 녹안이 점점 짙어져 간다.
녹안에서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 더욱 선명해 진다.
하지만 도르트막.
놀족의 왕!
그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용악의 창을 막아낸다.
둘은 이제 서로를 옆에 두고 달려가면서 옆으로 몸을 돌려 창을 휘둘렀다.
투항!!!
그리고!!
무지막지한 기세로 날아온 붉은 색 창을 막지 못한 도르트막은 순식간에 갑옷이 터져 나가면서 등 뒤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의 말이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자 백풍은 그 둘을 함께 짓밟아 버리듯이 날아올랐으나 용악의 손길에 이끌려 멈추었다.
찌이잉..
빠악!!
대체 언제 도르트막의 창이 용악의 투구를 강타했는지 모르나 투구의 한부분이 달아오르면서 사방으로 그 파편을 튀기면서 깨져나갔다.
그의 긴 머리가 바람을 타고 휘날려 올라갔다.
그제야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다른 대원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친다.
그 속에 타오르는 불꽃이 서로가 느껴진다.
‘너는 어떤 증오와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두 사람의 결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두 사람을 따르는 군대는 다시금 충돌을 시작했다.
“도르트막님을 보호해라!!!”
“놈들을 막아라! 대장님을 엄호해!”
와아아아!!
와아아아!!!
두 사람의 뒤로 수십. 아니 수천의 병사들이 들이 닥친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콰두두두두!!!
쿠아아아앗!!
난전!
알록달록한 갑옷을 입은 대원이 적 놀족병사의 얼굴을 향해 창을 내지른다.
그런 대원을 향해 놀족병사 4명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그의 말을 꼬치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말에서 쓰러진 그 대원을 사정없이 말발굽으로 짓밟는다.
그렇게 짓밟고 있는 놀족병사를 어느새 다가온 알록달록한 갑옷의 대원이 창을 휘둘려 목을 베어간다!
“으아아악!”
“끄윽!! 크억!!!”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러 오고 수많은 생명들이 자리에서 쓰러져 피를 흘린다.
전쟁.
아니 사투.
전쟁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야 말로 상처 입은 짐승들 간의 싸움이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이 나는.
*****
시체
시체
시체!!! 미쳐 정리도 하지 못한... 아니 방금 죽어 따스한 온기 까지 남아있는 시체 더미를 뚫고 4명의 사내는 말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 일행을 이끌고 있는 자는 다시 한 번 만나게 된 시체더미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엔 전면전! 그리고 도르트막과 용악의 사투! 그리고 약 올리듯 흑영기병대의 전원 후퇴. 쫒아가던 적들이 유인책임을 의심할만한 시점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주성무의 백호부가 퇴각하던 본대와 교대...”
말을 하다가 자신들이 걸어 온 길을 잠깐 뒤돌아 본 사내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그들이 어디쯤 있을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본 뒤에 계속 말을 이었다.
“쫒아오던 적 선진을 한바탕 휘저어놓고 다시 후퇴. 그 다음에 왕호의 흑룡부. 그리고 그 다음엔 또 다시 용악이란 자가 이끄는 본대가 교대한다.”
“...”
“과연... 이렇게 어지러운 전황이라면 아무리 기마에 능숙하고 사냥에 능숙한 놀족이라도 유인책인 줄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끌려갈 수밖에!”
“...”
다른 사내들은 모두 앞서 나가는 상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그의 뒤를 따라 말을 이끌었다.
“허나... 이런 작전은 절대해서는 안 된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시체더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적군의 시체도 아군의 시체도. 그 수가 오히려 비등할 정도로...
“...!”
‘벌써 6번빼 시체더미로군...’
뒤 따르던 사내 중 한명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정말 그 두 사람에 대해서 감탄했다.
‘이런 작전을 시행하다니 그리고 이 작전에 맞추어 움직이다니. 도르트막과 용악. 너희 둘은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냐?!’
“이 상태라면 목적지인 지옥문에 도착한 뒤엔 병력의 4할 이상을 잃게 돼.”
‘모든 군문의 일처리는 최소의 전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목적. 그것도 적과 싸우는 전쟁일면 그러한 상식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터.
이건 전쟁이 아니다.
상처 입은 야수들의 죽고 죽이는 생사투!!
“이런 싸움을 유도한 대장군도 그렇지만 그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저 용악이란 자 역시 무서운 인물! 목표를 위해서라면 부하들의 목숨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것인가!
‘그러기에 대장군께서 그토록 경계하시는가.’
사내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실에 자신이 스스로 놀라며 감정을 억눌렀다.
앞서가던 사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뒤를 따르던 사내들 중 한명이 대신 입을 열었다.
“그 반대일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죄수로 이루어진 흑영기병대원으로선 오늘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언제 다시 면죄부를 얻어 이곳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리니 오늘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모든 힘을 뽑아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지도...”
작게 흘러나온 상관의 말에 부하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그런 자를 굳이 저희들이 손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그 곳으로 가면 해결 될 것인데!”
“그럴지도 모르지...”
‘아직도 모르고 있나? 우린 그를 죽일 수 없다. 우린 그저 그가 그 곳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게 미리 힘을 빼놓는 장기 말에 불과해.’
상관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속마음을 숨기고서 단호하게 부하들의 말을 끊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
두두두두...
흰색의 대지를 무참히 짓밟으며 한 떼의 군마다 달려온다.
사방으로 눈이 파여 흩어지고 이들의 피를 가려주던 하얀 눈들은 더 이상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어딘가로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들의 선두에 창을 비껴 들은 녹안의 사내가 무언가를 찾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
‘저기 있군!!’
그의 눈에 땅에 꽂혀 있는 자그마한 깃발을 단 막대기가 눈 속에 파묻혀 꼭대기만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이곳인가. 지금이 8번째.
이제 마지막. 이번만 끝내면 지옥문으로 모조리 몰아넣을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용악은 그 막대기가 자신이 원하던 것이 맞음으로 확인하고 소리쳤다!
“좌측 숲으로!!”
콰과가.
수천의 인마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전환하며 숲을 파고 들어갔다.
미리 준비를 해 놓았는지 수많은 사람과 말이 들어갔음에도 겉에서 보면 티가 안날 정도였다.
푸흑...
푸흑...
말과 그 말을 타고 있는 대원들에게서 거친 호흡소리가 터져 나왔다.
“힘들더라도 지금은 참아라. 긴장을 늦추지 마라.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대원들은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자신들의 대장을 바라보았다.
“신호를 보낼 때까지 대기!”
“옛!”
숲을 울리며 대원들의 대답소리가 퍼져나갔다.
잠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용악은 말고삐를 낚아채며 산 위로 올라갔다. 피에 젖은 그의 긴 머리가 바람에 휘날려 하늘로 날아오른다.
“가자,”
백풍은 용악을 태운 채 거침없이 산을 올라갔다.
눈이 와서 미끄러운 나무가 그들의 이동을 막아서지만 백풍은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으며 산위로 올라갔다.
대원들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에 올라선 용악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한 떼의 군마를 바라보았다.
‘희생이 크긴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곧 마지막이다 조금만 버텨라’
용악은 저 멀리서 보이는 대원들에게 소리 없이 외치며 창을 움켜쥐었다.
용악과 대원들이 왔던 그 길로 다시금 다른 한 떼의 군마들이 달려온다.
그들의 선두 에 서 있던 주성무와 왕호는 자신들의 앞에 보이는 흰색의 깃발이 달린 막대기를 바라보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마지막이야 알지?’
서로의 눈빛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읽어 진다.
“이제 다 왔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저곳에 있는 건가. 대장?’
주성무는 옆으로 누우며 그 깃발이 달린 막대기를 집어 들고 저쪽 산위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 쪽에 자신들의 대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나무들 틈사이로 그의 녹안이 보인다.
그를 보고 있다.
언제나처럼. 언제나처럼.
주성무는 그가 있는 곳을 보며 미소를 짓고는 협곡을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르트막...
어서오라...
이곳이 너의 종착점이다!!
주성무와 왕호가 지나가고 나서 한 떼의 군마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흠. 빠른 속도군. 아직도 저럴 여력이 있나? 허나 이제 마지막이다.
너나.
나나.
용악은 갑자기 아파오는 자신의 눈을 한번 쓰다듬고는 창을 높이 들었다.
아마도 대원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을 것이다.
전의를 불태워라.
적이 너희 앞에 있다.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절대 적이!!!
“대장님으로부터 신호다!”
용악의 모습을 보고 있던 유천이 용악의 창이 높게 올라오는 것을 보고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이제 마지막이다.
더 이상의 유인책은 없다.
이제... 마지막 승부다!
기세를 담아라!
반드시 승리 한다는 신념을 불태워라!
유천은 대원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이 전염되는 것을 느꼈다.
“공격 준비! 후미가 보이는 즉시 단숨에 지옥문 안으로 몰아넣는다!”
유천은 말을 마치고 남궁소명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살며시 웃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대체 왜 네가 유명한 너의 가문을 떠나 이런 전장에서 떠도는지 그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이곳으로 온 것은 너의 실수였다.’
하지만 유천의 그 생각과는 달리 소명의 눈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요... 이곳으로 온 것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가문을 나올 때부터 각오 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대장을. 적어도 그를 안 것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를 보지 못했다면 난 영원히 우물 안 개구리로 남았을 겁니다.’
‘어쨌든... 이 전투. 승리 이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념이며 우리의 의무이며 권리이다. 대장이 우리에게 허락한!!’
용악은 준비를 하고 있는 대원들을 보고 백풍에게 명령을 내렸다.
‘백풍. 이제 마지막이다. 조금만 힘을 내라.’
백룡은 파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푸르릉 거린다.
‘훗. 그래. 이 전투가 끝나면 그 때.’
용악이 말을 돌려 밑으로 내려가려는 찰라.
적의 선두를 이끄는
적들이 도르트막이라 부르는 이가 눈에 보였다.
놀족의 일반적인 체구를 뛰어넘어 거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자.
대단한자.
나의 창에 맞설 수 있는 자.
하지만.
이제 끝이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고 으음?’
용악은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 다시금 그 자를 바라보았다.
놀족의 왕 도르트막은 정확하게 용악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나를 보았다? 그럴 리가. 그렇다면 어째서?’
용악은 의구심 가득한 눈초리로 멀어져 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함정인 것을 알고 들어가는 것이냐!’
“가자!”
“와아아아아!!!!!”
놀족 기마대의 후미가 그들의 앞을 지나가자 숲 속에 숨어 있던 유천의 적조부와 자신이 이끄는 본대가 적의 후방을 후려치며 몰아 붙였다.
“으악...!!”
“적들이 뒤에!!”
놀족은 자신들의 등으로 날아오는 창날을 막지도 못한 채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려 하며 검은 유령들에게 목숨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 본대는 굳건했다.
‘역시 대단하다 하지만. 이미 저곳으로 들어가는 이상 끝이다!’
“계속 몰아 붙여라!! 완전히 몰아넣어야 한다!!”
유천은 최선두에 서서 적군을 쓸어 넘어 뜨려 밟고 지나가면서 창으로 적 병사를 꽂아 높이 들고서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모두 투지를 불태워라!!!
유천은 자신의 창에 꽂혀있던 적 시체를 저 멀리 앞으로 던져 버리고는 다시금 뛰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