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장 각오
용악이 조비를 만나기 하루 전.
용악을 비롯해 3명의 부관과 일단의 대원들이 숲을 헤치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어둠을 틈타 조용히 이동하는 터라 눈을 밟는 말발굽소리만 부엉이 울음과 함께 퍼지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조용히 이동했을까
용악은 품에서 지도를 꺼내 지형을 확인하고는 백풍의 안장에 걸려 있던 물주머니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유천에게 던졌다.
탁.
켁켁
유천은 물주머니를 받고 용악과 마찬가지로 한입 마시다가 자기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독하디 독한 화주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천의 그런 모습에 다른 부관들과 대원들 모두 피식 웃고서 용악이 나눠준 술을 한 모금씩 마시고서 용악의 뒤를 따라갔다.
“여기가 맞나?”
“예. 대장님. 여기가 놀족이 가리트 헤리오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에.... 한제국말로 정확히 바꿀 수는 없지만 대충 지옥문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옥문이라. 마지막 전투를 하기에는 어울리는 곳이군.”
용악이 그렇게 말을 하자 부관들과 다른 대원들 모두 피식 웃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옥문이라 불린 그곳은 호리병처럼 들어오는 입구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절벽으로 꽉 막힌 분지였다. 숲으로 가득 찬 골짜기는 안 그래도 음산했는데 지옥문이라 불리는 곳을 향해 갈수록 더욱더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전투에 이골이 난 흑영대원들이라지만 이런 초자연적인 음산함에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려 들기 마련인지 몸을 이완시키며 지옥문을 향해 나아갔다.
쉬이이이이
휘이이이이
지옥문이라 불린 곳의 입구에 도착하자 마치 진짜 지옥의 입구라도 되는 양 매서운 바람소리가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옥문의 입구에는 어스름한 달빛을 배경으로 거대한 기둥들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9대신전의 신전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육각형의 거대한 기둥들이 절벽을 지탱하듯 빼곡하게 박혀 있었고 그 입구에는 음산하기 짝이 없는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놀족이 이곳을 괜히 지옥문이라 부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용악을 비롯한 다른 대원들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입구에는 인세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기묘한 요괴들의 석상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석상의 크기는 거의 4미르에 달했다.
박쥐의 날개와 뿔이 난 닭처럼 생긴 요괴.
다리가 8개 달리고 잉어머리를 하고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가 달린 요괴.
4개의 손에 거대한 칼을 든 소머리의 인간
늑대의 머리를 한 지네 등등.
인세에는 존재하지 않을 거대한 요괴들의 석상이 지옥문을 지키듯 입구에 줄지어 서 있었다.
“이거 정말 살 떨리는데.”
유천이 무섭다는 듯이 장난스럽게 움츠리며 말을 하자 다른 부장들과 부관들이 피식 웃었다.
“우리가 지옥에서 올라왔는데 저것들을 무서워하면 쓰나?”
“하긴 내가 지옥에 있을 때는 저런 것들 못 봤는데.”
유천을 비롯한 다른 대원들이 그렇게 웃으며 말을 할 때 용악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서 자신의 앞에 있는 석상을 바라보았다.
짙게 물든 녹안은 마치 석상을 녹여버릴 듯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이 곳에 왜 불귀도에 있던 석상이 있는 것이지!!’
나체의 여인을 조각한 석상.
긴 뿔을 가진 염소머리를 조각한 석상.
부리가 기이할 정도로 긴 독수리머리를 조각한 석상.
마치 해골처럼 뼈만 있는 인간을 조각한 석상.
용악이 처음 지옥 같은 생활에 발을 내딛은 그 첫날 보았던 그 석상이었다.
그때와 다른 것은 해풍에 삭은 조각상이 아닌 이름 모를 숲 이끼가 잔뜩 묻었다는 것뿐이었다.
용악은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그 4개의 석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그 석상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렸다는 듯이.
대원들은 갑자기 터져 나온 살기에 자기도 모르게 무기를 움켜쥐며 용악을 바라보았고 용악의 몸을 스멀스멀 타고 오르는 녹색기운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용악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와 살기가 유형화 되어 그의 등 뒤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대장!”
“무슨 일이!”
석상들을 감상하던 대원들이 용악에게 빠르게 달려오며 외쳤다.
“괜찮으십니까?”
주성무가 용악의 뒤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용악이 뿜어내는 기세가 너무나 가공했기에 주성무는 차마 용악의 앞으로 갈 수도 없었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냐.”
용악의 대답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기세가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온 김에 식사나 하지.”
“예! 대장.”
용악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 대원들은 지옥문에 들어가 미리 오면서 사냥한 토끼들을 구울 준비를 했다. 심상치 않았던 용악의 기세를 느꼈는지 대원들은 평소보다도 더 빠르게 식사준비를 마치고 모닥불 주위로 모여들었다.
구운 토끼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비록 주위를 경계하느냐 많이 마시진 못했지만 조금씩 술이 들어간 대원들은 조용한 목소리로 농담을 하며 웃고 있었다.
용악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닥불의 불빛 뒤로 조용히 웃고 장난치는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같은 지옥에 있지만 저들은 아직 인간의 끈을 놓지 않은 듯 보이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아쉬운 기분과 함께 기쁜 기분이 들었다.
‘모닥불과 달빛 때문인가? 나도 감상적이 되었군.’
용악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 멍하니 불빛을 바라보았다.
다른 대원들은 그런 용악을 조심스럽게 의식하면서 그들의 과거와 앞으로 이곳에서 나가면 무엇을 할지에 대해 서로 자랑을 하듯 말을 했다.
멍하니 불빛을 바라보던 용악은 갑자기 사라진 소음에 주위를 둘러보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수십 쌍의 눈동자를 느낄 수 있었다.
“대장...?”
‘아... 이곳에서 나가면 뭘 할 건지 물었었지..’
용악은 특히나 반짝이는 유천의 눈을 보고는 밤하늘을 한 번, 타오르는 불빛을 한 번, 그리고 마치 각인을 하듯 녹색안광을 뿜어내며 대원들의 눈동자를 하나씩 마주치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얼마나 변방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허나 소문은 들었겠지. 내 이름은 용악. 서축용가의 마지막 후손이다.”
용악의 말에 다들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하고 앉았다.
용악이 서축용가의 후손이라는 것을 모르던 대원들은 그 사실에 놀라서,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대원들은 그 이야기를 이곳에서 꺼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표정을 보니 대충 아는 것 같군. 그러니 말하기가 더 편하겠다. 알다시피 조비와 난 한 땅을 밟고 지낼 수 없는 사이.”
점점 기세를 타고 올라가는 용악의 말에 대원들은 침을 꿀꺽 삼키고서 그의 입만을 주시했다. 그의 말은 좀처럼 편하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허나 그는 대원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곳을 벗어나면 난 대장군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그의 가문을 몰락시키고 지옥을 맞보게 할 것이다.”
용악은 마치 맹세를 하듯 말을 하고 입을 닫았다.
그의 녹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과 그의 등 뒤에서 용트름치며 움직이는 기세에 대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너희를 처음 만났을 때 말했던 것처럼.
이곳에서 벗어나도.
너희들이 나와 함께 갔으면 좋겠다.
비록 그 곳이 또 다른 지옥이라도.”
*****
적군이 사용하던 진지.
적군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이곳 중묘곡을 점령한 흑영기병대는 이곳에서 머물며 적군의 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 부셔버린 줄 알았는데도 용케 남아 있는 망루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평야를 바라보던 대원은 저 멀리서 무언가 엄청난 수가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음! 나타났다!”
망루에 앉아서 평야를 바라보던 대원은 신음을 흘리며 저 평원에 나타난 적을 바라보았다.
“...! 아직 저 정도의 군사가 남아 있었나?”
“어쨌든 빨리 비상종을 울려라!”
땡.땡.
땡.땡.
날카로우면서도 깨지는 소리가 점령지의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대원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빠르게 자신의 군마에 올라타 전투준비를 끝마치고 진을 형성했다.
한명의 대원이 거칠게 막사의 천을 걷어 올리고는 중앙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북쪽 전방에 놈들의 본대가 도착한 것 같습니다!”
지도를 바라보고 있던 왕호가 턱을 쓰다듬으며 대원에게 물었다.
“병력은 어느 정도나 되던가?”
“대충보기에도 2만 가량은 되어 보였습니다!”
대원의 말을 듣고 왕호와 주성무. 유천 모두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다.
“2만!! 그만한 병력이 남아 있지 않을 텐데. 어떻게...”
“패잔병들에 노약자까지 죄다 긁어모은 건가?”
주성무와 왕호가 놀라서 한마디씩 하자 용악은 그들이 말을 끊으며 삭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 이것으로 피차 사활을 건 최후 결전이 되겠군.”
3명의 부장들을 바라보며 말을 하던 용악은 막사 안으로 들어온 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곧 간다. 모두 출정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후 대기하도록!”
병사가 군례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 용악은 지도가 놓여 있는 탁자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끝으로... 이번 작전에 대해 궁금한 점은?”
용악의 시선이 천천히 주성무. 왕호. 유천에게 머물렀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대답했다.
“없습니다!”
“좋아. 그럼 각자 맡은 임무에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놈들을 모두 목적지로 몰아넣은 다음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한다! 전투를 끝날 때 까지 긴장을 풀지 마라. 너희들은 모두 나의 것이니까!”
용악은 지도의 어느 한 부분은 주먹으로 내리치며 말을 했다.
유천, 주성무, 왕호, 모두 그것을 한차례 바라보고는 용악을 바라보았다.
“가자!”
용악이 주먹으로 가리킨 곳.
그곳이 바로 이 전투의 최후의 장소가 될 것이다!!
마지막 전투다.
마지막.
이 전투가 끝나고 나면!
우리 모두 지옥에서 해방될 것이다.
*****
후우웅....
차가운 바람이 절벽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오른다. 그 바람을 맞아가면서 일단의 병사들이 무언가를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보였다.
“지옥문이라... 들어오는 입구 한쪽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꽉 막힌, 마치 감옥과도 같은 지형!”
‘이곳을 최후 격전지로 삼는다는 건... 독안의 쥐처럼 놈들을 몰아넣고 모조리 섬멸하겠다는 뜻인가. 과연 그렇게 후환의 싹을 통째로 도려내 버린다면 대장군님을 견제하려는 자들로서도 말문이 막혀버리겠군.’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며 일단의 병사들의 지휘관인 사내는 말위 앉아 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사활이 달려 있는 놀족이 과연 전략대로 순순히 움직여줄지...”
그 사내의 뒤에 있던 병사가 그의 말을 받아 이었다. 아마도 그의 부관인 듯 했다.
차림새도.
그가 하는 행동도 말이다.
----
“...”
“지옥문?”
조비는 처음 들어보는 지명에 약간 의아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용악의 설명의 들은 조비는 의구심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쉽지 않을 텐데...”
조비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용악을 바라보자 용악의 녹안이 더욱 짙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조비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의미는 아니다. 단지 쥐도 궁지로 몰아넣게 되면 고양이를 무는데 하물며 사납기로는 오크족보다 사나운 놀족이니...”
“한 달이라는 기간의 의미는 그 만한 희생을 감수하라는 뜻이 아니었나?”
조비대장군의 말을 끊으며 용악의 더욱 날카로운 대답이 조비대장군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
-----
“한다고 하면 할 것이다.”
부관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자신들의 상관의 말에 놀랐다.
‘갑자기 웬... 한다고 하면 할 것이다라고?’
부관의 상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금 조비대장군의 말이 이어졌다.
“그는 그런 놈이니까...”
‘흠.. 그가 분명 이제는 한제국에서 제일가는 장수 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번일은 그렇게 쉽게 볼일이 아닐 텐데...’
하지만 그런 부관들의 생각을 눈치 챈 듯. 조비대장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우리가 할 일만 하면 그만이다. 일의 진척은 어느 정도나 돼가고 있는가?”
부관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상관의 질문에 잠깐 멈칫 했다가 아래를 바라보고는 서둘러 대답했다.
“예... 이제 곧....”
조비대장군은 부관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날이 선 목소리로 다시금 물었다.
“아래에서 보이지 않도록 포병대를 잘 숨기도록 해라. 특히나 소음에 조심하고! 놀족을 이곳으로 몰기만 하면 손쉽게 끝낼 수 있다.”
“예. 대장군님.”
“그리고 놀족이나 흑영기병대원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대장군부의 병사들을 매복시켜라. 적지 않은 수이니 결코 방심하지마라.”
“예. 대장군님.”
조비대장군은 지옥문의 절벽 위쪽에 여기저기에 포대를 만들고 있는 포병들을 바라보며 부관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고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저갱처럼 생긴 지옥문을 바라보았다.
‘용악. 끈질긴 놈. 그 동안의 악연은 이걸로 끝이다. 이 곳이라면 감히 황제폐하의 눈도 미치지 못할 것. 내 손에서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것도 이걸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