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90화 (90/107)

90장

한 사내.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존재는 허공에 떠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 속의 어둠...

그는 그야 말로 어둠 속의 어둠이었다.

그리고 검은 빛으로 반짝이는 그의 4장의 검은 날개를 펼쳐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검은 손톱을 들어 자신의 혀를 가르고는 피를 뱉어냈다.

뱉어진 피는 흩어지지 않고 점점 어떤 형상을 띄면서 자신에게 날아왔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뭐... 뭐라고 하는 거지...?’

자신에게 날아온 피의 덩어리는 스며들 듯 자신의 이마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나?”

*****

사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물컹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따스한 온기와 함께 그 물컹한 무언가는 호흡을 하며 들썩인다.

‘뭐였지. 방금. 얼핏 낮선 얼굴들이 보였던 것 같은데..’

녹안의 사내는 침상에 누워 어두운 막사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후웁”

숨을 크게 들이 쉬자 차가운 공기가 허파 가득히 들어온다.

살짝 벌려진 막사의 틈사이라 햇살이 들어왔다.

펄럭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내는 번득이는 비늘을 들어 천막의 한 귀퉁이를 잡아 당겨 햇살을 좀 더 들어오게 만들었다. 그러자 그 햇살을 받은 고양이가 발버둥치며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매일 잠만 자는 것이냐...’

밖으로 나오자 겨울 햇살이 따갑게 그를 내리 쬐었다.

다각.

다각.

다각.

‘누구지...?!’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지겹게 들어온 친숙한 말발굽소리.

아침의 안개를 뚫고 그 것은 모습을 살며시 드러냈다.

“백풍....?!”

“주무시기에 깨우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안개를 뚫고 백풍을 데리고 온 주성무가 입을 열었다.

“말에 오르시지요. 대원들이 점령지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성무는 자신의 대장이 아무 말 하지 않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용악을 바라보았다.

용악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주성무를 바라보며 조그만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성무...?”

“예... 말씀 하십시오”

자신에게 더듬거리며 말을 한 자신의 대장을 주성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이러시지.. 한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주성무의 걱정스러운 말을 듣고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주성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 되돌아 왔군...’

주성무는 사내의 녹안에서 다시 불꽃이 튀기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이것을 좋아 해야 할지. 아님 나빠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 아니다 아무것도. 기분 나쁜 꿈을 꾼 것 같아서...”

‘...?’

그는 백풍의 고삐를 잡고 가볍게 올라탔다.

단 한 번의 발길질 만으로 체고가 꽤 높은 백풍의 안장에 올라탔다.

그의 묶은 긴 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휘이이잉.....

차가운 겨울바람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발을 한쪽으로 쓸며 몰아간다.

그 눈보라 사이로 얼핏얼핏 단단하게 만들어진 목책과 망루가 보인다.

놀족의 왕이 있는 땅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지막 관문.

중묘곡.

이곳마저 뚫린 다면 이제 그들의 땅이 바로 지척이다. 그래서 이곳은 다른 곳보다 가장 튼튼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진 목책과 망루가 만들어 져 있었고 다른 곳보다 이곳을 지키는 놀족병사들의 수도 많았다.

놀족병사들은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망루에 서서 평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튀어나온 놀족병사들의 주둥이에서는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진형에서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발생했다.

일단의 놀족병사들이 3명의 인간포로들을 포승줄에 묶어 커다란 막사 앞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데려 왔던 병사들 중 한명이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가?”

놀족장군에게 군례를 취한 병사는 그의 질문에 바로 답을 했다.

“근처를 서성거리는 인간들이 있기에 잡아왔습니다.”

‘음? 인간들...?’

부관들과 함께 작전지도를 펼쳐 전황을 살피며 작전을 세우던 장군은 부관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인간이라... 누구지? 이런 변방의 전쟁터까지 유령말고 인간들이 올 이유가 있나?’

“인간들이라...?”

“놈들이 지니고 있던 물건입니다.”

그 놀족병사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장군에게 건넸다. 비단 주머니로 쌓여진 그 무언가는 길쭉했고 딱딱했다.

장군은 그 비단 주머니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금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멋들어진 용이 주위에 양각으로 새겨있었고 그 가운데는 음각으로 진하게 글자가 파여 있었다.

大將軍部!!

“대장군부의 군령패!!”

!!!

부관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장군에게 바로 물었다.

‘대장군부 군령패라고!..’

“대장군부라면... 유령놈들의 직속상관이 아닙니까?”

“...”

‘흠... 일단은 그들은 만나 봐야겠군...’

“당신이 이곳 책임자인가!!”

천막 밖으로 나온 장군은 포승줄에 묶인 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한명의 포로를 바라보았다. 군에 몸담고 있는 자들이 보아도 딱하니 알 수 있을 정도로 검을 휘두르는 무관이 아니라는 것이 보였다.

‘흠.. 이자들이 왜..’

“그렇다.”

“나는 그대들과 대적하고 있는 흑영기병대의 상관이다! 아무리 적이지만 직급에 맞는 대우를 하라!”

그는 포승줄에 묶인 채로 자신을 막고 있는 창날을 몸으로 밀어내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놀족장군의 부관뿐만 아니라 그 말을 한 자와 함께 끌려온 다른 인간포로들도 약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아.. 아랫것들이 좀 거칠게 대한 모양이군.”

그는 손을 내저으며 그렇게 말하다가 얼굴을 굳히고는 말을 이었다.

“허나 이곳이 전쟁터임을 잊었느냐! 적군으로 가는 사신이 살기를 바라는가!!”

움푹 들어간 놀족 장군의 눈에 인간포로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뭐 이런 애송이가...’

장군은 부관을 병사들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저들이 쉴 수 있도록 막사 하나를 비워주도록!”

“포승도 풀어줍니까?”

“기껏해야 문관 세 명이다. 감시병 두 명만 세워둬!”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놀족병사는 거칠게 포승을 잡아당기며 포로들을 끌고 갔다.

“치워! 내 발로 걸어간다!”

‘정말.. 저런 놈이..’

“저런 권위의식만 팽배한 앞뒤 못 가리는 애송이 관리 나부랭이가 그놈의 상관이라고?”

부관도 장군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래도 한마디 했다.

‘저런 놈이 상관이라는 것은 절대로 믿겨지지 않지만.’

“그러나 이 군령패는 진짜입니다. 아마도 놈에게 군령을 전하러 가다가 길을 잃은 게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인질로서 가치가 있겠군요!!”

다른 부관이 좋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인질이라. 보통을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그 자는.’

장군은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마주했다.

‘푸르군...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게 말이야..’

하늘을 잠시 바라보던 장군의 입에서 조그마하게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과연 그럴까?”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던 놀족 장군의 앞은 갑자기 부산스러워 지는 진영을 보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부관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말에 매달려 허겁지겁 달려온 놀족 정찰병사가 조금 열린 목책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의복은 온통 찢어지고 상처를 입었는지 온통 피로 범벅이 된 병사하나가 쓰러지듯 무릎을 꿇으면서 호흡을 가다듬고는 장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3.5관문이 이틀 만에 연파당하고 마지막 방어선인 7관문만 남은 상태 입니다! 현재 모든 병력이 제 7관문에 집결, 배수진을 치고 있습니다만 놈들의 압도적인 전력 앞에 그 역시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

병사는 잠시 호흡을 고르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마도 그가 마지막에 봤던 모습을 떠올려서 그랬을 것이다.

싸우고 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버리고 자신만 이곳에 왔다는 자책감도 함께.

“만약 이 곳에서 지원병을 보내주지 않는다면 벽파곡 일대는 수일 내로 놈들의 발아래 짓밟히고 말 것입니다!”

‘벌써 벽파곡까지... 이렇게 빠를 수 있는 건가..’

장군이 생각에 빠져 있자 부관들이 장군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벽파곡이 무너지면 곧바로 이곳이 아닙니까?!”

“즉시 출정준비를 시키겠습니다!”

하지만 부관들의 기대와는 달리 장군의 입에서는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말이 흘러 나왔다.

“불가(不可)....!”

"?! 어째서! 어째서 입니까. 장군! 다른 병사들을 그냥 버리자는 말씀이십니까!!"

“부.. 불가라니요....!?”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냥 두고 보실 생각이 십니까?!”

부관들의 거친 항의에도 불구하고 장군의 음성은 단호했다.

“이곳만 지키기에도 부족한 병력이다. 형제들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병력을 둘로 나눌 수 없다.”

장군의 엄숙한 선언.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군의 말이 그 소식을 전해왔던 병사에게 두 명의 부관들의 가슴에 깊숙이 새겨 졌다.

‘그래도... 그래도 어찌 그냥 내버려 둔단 말입니까!!’

“하... 하지만 그 곳이 무너지면 놈들의 목표는 곧장 여기로 집중될 것입니다! 이곳의 사수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서둘러 지원군을 파견하셔야 합니다!”

부관의 피 끓는 외침을 외면하고 장군은 뒷짐을 지며 부관의 눈빛을 피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다른 약간 허무한 감정이... 서러운 감정이 섞인 목소리였다.

“아직 놈들과의 전쟁에 희망이 남아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전쟁은 이미 끝이 났다.”

‘끝이라니! 어째서! 도르트막님께서 살아계시고! 장군도 우리도 모두 남아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부관을 비롯한 다른 놀족 병사들은 으르렁 거리는 살기를 억누르며 놀족 장군의 말을 경청했다.

“이제 곧 도르트막님께서 오실 것이다. 놈들과의 최후의 일전이 벌어지겠지만 이 전쟁의 목적이 저 악마놈들을 물리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안다.”

장군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허공으로 높게 퍼져나갔다.

물론 두명의 부관들의 마음속으로도...

“전쟁이란 같은 자격을 지닌 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 한제국이나 곤제국 놈들에게 있어 우리의 존재는 단지...”

잠시 호흡을 고른 장군은 말을 이었다.

“그들의 땅을 침범하는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전쟁이 아니라 사냥이라 불렀어야 할 싸움이다”

“인정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죽어간 수많은 형제들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놀족 장군의 말에 부관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무릎을 털썩 꿇고서 장군의 손에 매달리며 말을 했다.

“어... 어찌 그런 말씀을... 전쟁이란 완전히 끝날 때까진 누구도 그 승패를 짐작 할 수 없는 것 입니다!”

“장군께서 스스로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말씀을 하시다니..!!”

두 명의 부관은 침을 튀겨가며 장군에게 소리쳤다.

‘어찌... 어찌 그러실 수 있단 말입니까!!!’

‘휴... 아직도 모르겠는가..’

부관과 장군의 상념은 서로 엇갈려 나갔다.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한제국에서 우리들을 끝내려면 진작이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곤제국에서 우리들을 끝내려면 진작이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가!”

놀족 장군의 단호한 말에 두 놀족부관은 눈물을 글썽였다.

“그럼 대체 우리 놀족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정녕 장군님 말씀대로 우리는 언제든 사냥할 수 있는 사냥감에 불과하다는 겁니까?”

“어쨌든 내 임무는 도르트막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곳을 사수 하는 것이다! 지원군은 보낼 수 없다!”

장군은 눈물이 흘러나올 거 같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서 힘없이 뒤로 돌아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비상을 걸어라! 전군 3교대로 경계근무체제에 돌입!! 놈들의 출현에 대비하라!”

장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망루에서 맑은 종소리가 잠들어 있던 진영을 깨웠다.

‘뭐지! 왜!’

“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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