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89화 (89/107)

89장

“적의 정찰병입니다..”

주성무는 하얀 초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녹안의 사내를 향해 말을 했다.

그 사내는 대원이 끌고 오고 있는 한 명의 놀족의 병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족 병사를 끌고 온 대원은 그를 사정없이 말에서 떨어뜨려 쓰러뜨린 후에 다른 대원을 데려왔다.

아마도 이들의 말을 할 줄 아는 대원을 데려오는 것일 것이다. 대원이 다른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가고 나서 어떤 대원이 빠르게 말을 타고 달려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녹안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떻게 하지요? 라고 물어보는 듯 했다.

녹안의 사내는 그 대원의 시선을 읽고 자신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붉은 도를 꺼내 가볍게 휘둘러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놀족병사의 다리를 갈랐다.

“말해라. 아는 것을.”

끌려온 병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의 녹안을 보고 겁에 질려 뭐라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녹안의 사내는 자신을 바라보던 병사를 바라보았다.

“그냥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악마. 마왕...”

쓱.

“말해라.”

하얀 도화지 위에 붉은 물감이 다시 한 번 뿌려진다. 피로 그림을 그린 사내는 다시금 그 놀족병사를 바라보았다. 놀족병사는 다시 한 번 잘린 자신의 다리를 만지며 뭐라 소리쳤다.

“놀족병사들은 모두 제1방어선인 화검산에서 수성 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력 수는 2천정도... 원군이 올 것이라고 하는 군요... 병사 수는 약 3천...”

끌려온 놀족병사가 용악의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었지만 용케도 그 놀족병사는 자신이 아는 것을 털어 놓았고 대원은 더듬더듬 그 놀족병사의 말을 해석해 용악에게 알려주었다.

“저들의 대장은 어디 있지?”

대원이 그의 말을 번역해 놀족병사에게 묻자 그 놀족병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말을 해야 할지 하지 않아야 할지.

‘대단하군. 도르트막 이라는 자. 이런 상황에서도 말단병사의 신임을 얻는다는 것인가... 상관없겠지. 그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 뿐.’

용악의 붉은 도가 다시금 움직였고 어김없이 병사의 고통에 찬 목소리가 눈발을 헤치며 평야 저편으로 퍼져 나갔다.

“도르트막은 이미 그레이엘프족을 공격하러 떠났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도 모른다는 군요.”

말을 하다가 잠시 멈춘 그 대원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용악은 칼을 휘둘러 병사의 목을 베어버리고는 도를 집어넣고 앞으로 나아갔다.

‘왜 말을 하다 멈춘 것이지?? 나에게 무슨 저주라도 퍼부었나? 큭큭..’

“전군. 진군. 오늘 밤이 오기 전에 화검산을 점령한다.”

*****

수많은 무언가로 이루어진 검은 덩어리들이 하얀 눈발을 가르며 산을 타고 올라간다.

그렇게 경사가 높지도 않고 나무들이 빽빽이 박혀 있는 그런 산이 아닌 어찌 보면 오히려 그냥 구릉이라고 보아도 될 만 한 그런 산이었다.

흔히 사람들이 화검산이라 부르는 산. 하지만 그 산의 양쪽으로는 경사가 급격하게 높아져서 만약 이 평원에서 저쪽 편으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넘어가야만 했다.

그랬으니 적이 이곳을 진지로 삼은 것이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목책을 향해 검은색의 인마는 눈발을 헤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적군의 중심부.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국가라면 황도, 혹은 수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수도라는 개념이 없으니 그냥 왕이 있는 마을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 마을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첫 번째 장애물.

그리고 그것을 포함한 7개의 장애물만 넘어선다면

그때는 이 전쟁은 끝이 난다!

“단숨에 목책을 타 넘어라. 눈에 젖어 있는 이 정도의 목책도 못 넘는다면 너희들을 어찌 유령이라 부릴 수 있겠는가!”

녹안의 사내의 입에서 거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오오오오!!!

대원들의 기세가 점점 타올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발을 밀어낸다!

그리고 그 기세를 타고 그 검은 덩어리들의 선두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튀어 나왔다.

하얀 백마!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대원들은 자신들의 대장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하려고!!’

강하게 땅을 박차고 높이 뛴 백마는 단숨에 3미르가 넘는 목책을 뛰어 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피보라가 몰아치며 적군의 피와 살점이 그들이 있는 목책의 바깥까지 튀어 나왔다.

“와아아아!!”

“단숨에 문을 뚫어라!”

“목책을 타 넘어라!!”

3개의 덩어리로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오던 3명의 부장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약간 긴장한 모습의 주성무.

여유롭게 웃음을 흘리는 유천,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띤 왕호,

서로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겨웠던 이 전쟁.

겨울이 가기 전에 끝낸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이 떠올랐고 세 명의 부장들은 각자의 창을 꼬나들고 엉성하게 만들어진 목책의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과과각!!!!

몇 번에 걸친 3명의 합격에 문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사방으로 부서져 나갔고 그 틈을 파고들면서 검은 물결이 스며든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쓸어버려라!”

왕호의 그 말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이미 대원들은 악귀처럼 적군을 휘몰아 쳤다.

‘대장은 어디! 어디 있지! 그 3미르의 높이를 단숨에 뛰어 넘는 능력을 가진 말라 부를 수 없는 마물은 어느 쪽에?!’

주성무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창을 피하면서 자신이 타고 있는 말로 적을 밟아 버리고는 자신들의 대장을 찾았다.

그리고 보았다.

저기 저쪽.

화검산, 적군의 제 1방어선을 담당하는 대장인 듯 보이는 자를 창에 꽂아 땅에 박아버리고는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녹안의 마왕을...

그는 가만히 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성무가 있는 곳에서부터 대장이 있는 곳 까지는 혈로... 그야 말로 피의 길을 이루고 있었고 그 종점에 그가 서 있었다.

가만히...

그는 단지 가만히 서 있었지만.

적군의 그 어떤 누구도,

그의 부하들 그 어떤 누구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단지 가만히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없이 그렇게 굳어버린 모습을 보이던 그는 창을 들어 적의 대장을 적군이 몰려 있는 한 복판으로 던져버리고는 대원들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족병사들은 그에게 덤벼들지 않고 오히려 그를 피하며 다른 부하들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그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오자

그의 목소리가 자신의 귀에 꽂혔다.

“늦었군. 다들...”

마치 실망한 목소리였다.

‘늦은 것인가. 이게. 이 정도의 진격속도가 늦은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보란 듯이... 자신들이 보고 좀 배우라는 듯이 다른 부하들에게 빠르게 명령을 내리며 전장을 정리 해 갔다.

‘확실히. 우리와는 다르군.’

왕호와 주성무는 새삼스럽게 자신들과 그의 차이가 몸으로 느껴졌다.

대원들의 움직임이 다르다.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단지 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기며 자신의 앞에 있는 적을 베어 나갈 뿐이지만 대원들은 알아서 적을 휘몰아친다. 그리고 목책을 타고 넘어와 3갈래로 갈라져 적을 공격하던 대원들은 천천히 포위해 적군을 한대 몰아 놓고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니.

사냥이다.

학살이다.

그리고 주성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이것이 바로 전투의 마왕인가. 그의 능력이 바로 이것인가.’

“포로는 필요 없다. 최대한 빨리 정리하도록.”

녹안의 사내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주성무의 투구를 창으로 한번 쳐 정신을 일깨우고는 천천히 전장을 벗어나 눈발을 해치며 나아갔다.

주성무는 고개를 돌려 그가 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대체... 당신의 길을 어디로 향하는 것입니까?’

*****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어둠을 뚫고 하늘로 천천히 올라간다.

화검산.

적군의 제 1방어선은 다행이도 어둠이 오기 전에 정리됐다. 그리고 적군들은 모두 싸늘한, 아니. 지금은 불에 타고 있으니 뜨거운 시체가 되어 모두 한곳에 모야  태워지고 있었다.

주성무는 산 저편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마 아까 그 병사가 말한 원군이 진짜로 온다면 아마도 이 연기를 보고 있을 것이다. 온갖 추측을 다 하면서 말이야. 하긴 적군이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오지 않는다면 제 2방어선을 뚫어 버리면 되니까.‘

주성무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매복을 하고 있는 부하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전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부하들 모두 살짝 긴장한 상태로 살기를 억누르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이 산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곳에 숨어서 적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군의 진지 양쪽으로 급격하게 경사가 높아지는 산줄기에 간신히 걸쳐있다.

그리고 저 쪽... 어둠의 어느 저편에는 그들의 대장이 이끄는 대원들이 그 도르트막이라는 놀족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성무는 자신들이 부셔버린 목책 뒤편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을 대장을 생각하며 한차례 뒤를 돌아보았다.

‘적은 오고 있는 것인가?’

주성무는 말에서 내려 땅에 손을 데어보았다.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가죽장갑을 파고들며 손을 시리게 했다.

‘흠... 전혀 미동도 없는 군. 언제까지 이곳에서 대기해야 하지?

“대장에게 물어봐야하나...”

“예?”

주성무의 혼잣말의 들은 대원이 주성무의 말에 대꾸를 했다.

아마도 자신에게 무슨 명령이라도 내렸나 하고 물었을 것이다.

“아니. 별거 아니다.”

“네,”

“백호부장님!”

저쪽 밑에서 꽤 경사가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마와 함께 한명의 대원이 산을 타고 올라온다.

바위와 바위를 타넘으면서 자신에게 다가온다.

‘호오. 대단한데!! 말을 타고 저렇게 까지 하다니. 저곳을 저렇게 쉽게 올라오다니. 저 녀석 전직이 뭐야? 그런데 갑자기 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뭐라고?”

커다란 바위 위에서 위태위태하게 말을 타고 서서 자신을 부른 대원이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자신에게 소리쳤다.

“적군이 온다. 본대가 공격을 시작하고 나서 본대가 뒤로 빠지면 적의 후방을 노려라. 적의 후방을 한차례 휘저은 후에 바로 빠져라. 이상입니다!”

“훗.”

자기 딴에는 대장의 명령을 그대로 흉내 낸다고 노력했나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주성무 뿐만 아니라 그의 뒤편에 있던 다른 대원들도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저 녀석 은근히 웃기는 녀석이군. 흠. 적이 온다고.. 어떻게 알았지? 훨씬 높은 곳에 있는 우리들도 적군이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하긴 그것은 상관없고 조금 허술한 명령이지만. 대장이 알아서 하겠지. 한차례 휘저으라고... 후퇴는 적이 왔던 방향으로 말이지. 좋아.’

“알았다!”

“예! 백호부장님!”

그 대원은 자신에게 구령을 붙이고는 아까 왔던 대로 그야말로 묘기를 부리듯이 눈에 젖어 미끌미끌한 바위를 타넘으며 어둠의 저편으로 달려갔다.

“허참. 저 자식 정말 대단하네.”

“예. 끝나고 물어 봐야겠어요.”

‘...? 끝나고? 네가 이 전투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우리가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냐? 하긴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군. 일단은 전투 준비 부터!’

“모두 준비!!”

“예!”

동일한 명령이 왕호가 이끄는 흑룡부에도 떨어졌고 이윽고 적군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히히힝

투레질 하는 말의 울음소리.

사르락 다그닥

눈을 밟는 말발굽소리,

뭐라뭐라 외치는 놀의 목소리.

‘아까 적 병사가 3천 정도라고 했지. 내가 이끄는 백호부가 거의 3천, 왕호가 이끄는 흑룡부가 3천, 유천이 이끄는 적조부가 3천, 그리고 대장이 이끄는 병사가 1천, 정확히 만 명의 대원. 적은 3천.

무난히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손실을 줄이는 것.

놀들의 왕 도르트막이 오기 전에 최대한으로 많이 적에게 타격을 주고 우리는 최소한의 피해를 입어야 한다. 그래야 건곤일척의 승부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어둠속에서 스멀스멀 무언가가 화검산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인다.

역시 시체 타는 연기에 놀란 것 같아 보이는 움직임이다.

시체가 타오르면서 만들어낸 붉은 빛으로 인해 적군의 모습이 보인다.

적의 얼굴이 보인다.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 놀족병사들을 향해 어둠 속에서 녹안이 마치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콰과과과가

“아악!!!”

적군의 비명소리와 함께 적 대장이 뭐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어떻게 살아 온 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그의 녹색의 눈 역시 보통의 범인이라면 상상도 못할 눈이다.

그 안에 타오르는 불꽃 역시 보통의 증오를 가진 이가 아니면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고 가장 엽기적이고 악마적인 것은 바로 거의 왼손. 그것은 대체....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는 이 곳을 빠져나가게 해줄 유일한 존재이다!’

그의 창에서 은은하게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의 창의 궤적을 따라 붉은 빛이 따라 어둠 속에서 선을 만들어 낸다.

그의 주위를 온통 붉은 색 선이 그를 뒤덮는다.

마치 붉은 색의 보호막처럼.

그리고 그가 나아가는 길마다 적군이 붉은 색 선에 맞아 날아간다.

한차례 그렇게 적의 전군을 후려친 본대는 왔던 길로 빠르게 빠져 나갔다.

‘그럼 이제 우리 차례인가!’

“백호부. 전진!”

주성무는 명령을 내리고 대원들을 이끌고 산을 타 내려갔다.

나무와 바위들이 그들의 진로를 가로 막지만 주성무와 백호부대원들은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 내려간다.

“후웁...”

주성무는 깊게 숨을 들이 쉬고는 창을 휘둘렀다.

단숨에 돌파한다.

그리고 바로 적을 뚫고 후방으로 나간다!

주성무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밝게 빛나고 있는 화검산의 중심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르르릉

콰과과가

혼란스러워하는 적군의 모습이 주성무의 눈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방어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적의 창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의 창은 적의 눈을 파고들었고 그의 말은 주성무를 노리던 또 다른 자의 말을 들이받았다.

그 반동을 이용해 주성무는 몸을 뒤로 젖히며 적의 창을 피하고는 득달 같이 달려들어 다른 한손으로 허리에 매어 있던 검을 뽑아 적에게 던졌다.

푸학!

적의 얼굴 한복판에 검이 박혔다.

주성무는 다시 창을 휘둘러 자신에게 덤벼들던 적을 밀쳐내고는 말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도 못하고 있는 병사의 얼굴에서 검을 뽑아냈다.

긴 창과 검을 함께 사용하면서 주성무는 양떼속의 늑대마냥 놀족병사들을 몰아쳐 갔다.

‘흠... 이제 빠져도 되겠지?’

주성무는 자신을 따라오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됐다.

‘이제 아마도 흑룡부가 공격하겠지.’

주성무가 빠져나가자 아니나 다를까.

왕호가 이끄는 흑룡부가 적의 측면을 다시 한 번 후려갈기며 후방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본대와 적조부가 다시 전군을 후려 갈겼고 흑룡부와 백호부는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녹안의 사내를 따라 적의 후방을 쳤다.

그리고

적은 전멸했다.

주성무와 왕호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이 사방을 뒤덮고 있었지만 서로의 눈은 보였다.

너도? 너도? 하는 표정을 서로 지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응?”

‘어떻게.. 우리를 부른 것이지? 그것도 동시에...?’

사실 두 사람이 이끄는 백호부와 흑룡부 모두 어둠에 흡수 되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단 한 번의 충돌도 없이 동시에 적의 후방을 양 측면에서 공격해 들어갔다.

서로 계획을 짜고 행동하지도 아니 계획을 짜고 행동했어도 이렇게 정확하게 공격을 동시에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대장이 부르는 것을 느꼈나?”

“어. 너도?”

“아. 나도 마찬가지.”

갑자기 그들 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둘의 심장은 그 목소리를 따라 호흡했다.

그 목소리는 절대 거절 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그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훗. 너도 그랬나?’

“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글쎄...”

왕호는 말을 흐리고는 대원들을 이끌며 전장을 정리하는 녹안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탐욕스럽게 시체를 받아먹던 불꽃은 또다시 먹이가 들어오자 득달 같이 달려들어 남김없이 집어 삼켰다.

수천의 시체가 한 곳에 모여 타오르자 메케한 냄새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냄새와 연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녹안의 사내는 불을 뒤로 하고 서서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인영 뒤로 붉은 불꽃이 피어 나온다.

불꽃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로 인해 사내의 모습은 어둠으로 둘러 싸여 있고 오로지 그의 두 눈만 녹색으로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에서는 얼핏얼핏 푸른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그는 마치 사교의 제사장처럼 그렇게 서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리고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종교를 전파하는 사도의 모습과도 같았다.

“이대로 적의 제2 방어선을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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