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88화 (88/107)

88장 겨울전쟁

차가운 바람이 막사 안을 휩싸며 회오리치며 올라갔다.

차가운 기운에 잠이 깬 한 마리의 검은색 털을 가진 고양이는 갸릉거리며 울고서 자신의 주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부드러운 털이 자신의 얼굴을 간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후우... 또 그 꿈인가... 왜 항상 마지막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 그 아이는 그가 누구인지 아는 듯 한데 말이야.’

용악은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주홍을 들어 침상에 올려놓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가슴속 깊숙이 들어온다.

용악이 파곡에서 새로운 부하들과 인사를 나눈 지 벌써 1달이 지났다.

벌써 해가 바뀌어 지금은 제국력 1348년...

고대인들이라 불리던 인들... 신력과 주술, 마법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이들 간의 치열한 전쟁이 시작 되면서 제 1세기는 끝났다.

지금은 제 2세기.

그리고 그 제 2세기의 시작은 바닷속에서 새롭게 나타난 동대륙에 제국을 세운 제왕 중에 제왕. 페리어드 인이라 불리던 일족과 함께 동대륙을 통일한 제왕

그 제왕이 만든 제국.

그것이 바로 한제국.

지금과 이름이 같은 그 제국이다.

비록 그렇게 강대하던 제국은 고작 500년도 버티지 않고 무너져 곤제국과 한제국 젠국등의 나라로 쪼개졌지만 그들이 남긴 수많은 문물과 문화. 그것은 거의 천여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동대륙인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허나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하는 말이니 지금 칼 끝 위에서 살아가는 용악과 용악의 부하들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

지난 한 달 동안 전세는 흑영기병대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용악이 부임해 와서 그런 것도 이유 중에 하나지만 놀족을 견제하는 다른 이종족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떤 이종족이 강대해져서 놀족을 압박하는지는 용악과 부하들도 잘 몰랐다. 그저 곤제국의 국경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것 뿐...

그들은 생사는 곤제국이 알아서 처리 할 것이다.

용악이 천천히 회의막사로 걸아가자 대원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며 자신에게 구령을 외친다.

무예를 수련하던 대원이 한 발 늦게 구령을 외치고서 깜짝 놀라며 용악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조비... 네 녀석을 죽여 버릴 이유가 하나가 더 늘었다. 뭐? 선물이라고.’

용악은 그때의 그 일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지금 그의 부하들이 정식무공으로 채용해서 사용하는 무공.

흑색창연환칠식.

그것은 바로 용아창법이었다.

그것도 불완전한 용아창법.

흑산포 구룡이라는 초식은 있지도 않은 그런 불완전한 용아창법.

서축으로 사람을 보내서 아마도 용천의 비급을 얻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버지에게 배웠던 병사들에게서 배웠던가.’

하지만 용악이 생각하기에 이제 와서 그런 것을 따질 이유는 없었다.

용아창법은 그야 말로 창술의 기본중의 기본.

다만 수련의 끝이 없는 창술이다.

적이 나의 공격을 알아도 막을 수 없는 창술.

그것이 바로 용아창법의 오의.

이들이 그것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이들의 능력.

용악이 뭐라 할 이유는 없다.

‘단지...’

“기분이 더러울 뿐이지.....”

“예?”

“아니. 가서 백호부장과 흑룡부장. 적조부장을 불러와라.”

용악은 자신의 혼잣말을 듣고 깜짝 놀라던 회의막사를 지키고 있던 대원에게 부장들을 불러오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은 단순했다. 한쪽에는 창.검,도가 몇 자루가 고이 모셔져 있었고 중앙에는 작전회의용 나무 탁자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리저리 줄이 그어져 있는 군용지도가 놓여있었다.

용악이 그 지도를 보고 작전을 세우고 있을 때 부장 3명이 같이 들어 왔다.

아마도 오는 도중에 만난 듯 싶다.

흑룡부장 왕호, 백호부장 주성무, 적조부장 유천.

‘유천... 나와 함께 온 호표기. 나를 따르는 유일한 호표기.’

그는 단숨에 이들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전건의 뒤를 이어 적조부장이 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유천은 이들과 부하들에게 완전히 신임을 얻었고 명령도 훌륭히 수행해 냈다.

적의 기반이 되는 놀족의 부족민 학살.

한 점의 피도 눈물도 없는 완벽한 학살...

이들은 용악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리고 그 명령을 훌륭히 수행하고 어제 도착했다.

이제는 이 지겨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때다.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용악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들어 탁자를 가리켰다.

부장들은 자리에 앉아서 각자의 전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흑룡부장 왕호. 중심이 되는 적의 16개 부족 중 가장 북쪽의 4개 부족의 마을을 정리했습니다.”

긴 머리의 사내 왕호는 그렇게 보고하고 자리에 앉았다.

“백호부장 주성무. 중심이 되는 적의 16개 부족 중 남쪽의 3개 부족의 마을을 정리했습니다.”

“적조부장 유천. 서쪽의 3개 부족의 마을을 정리했습니다.”

유천.

항상 유쾌하던 그는 이곳에 온 후부터 바뀌었다. 말수도 약간 적어지고 행동도 더 진지해 졌다고 할까. 그래도 항상 웃는 표정이지만.

그리고 유천과 함께 했던 그 남궁소명 이라는 자... 용악의 밑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외치던 그는 유천의 모습을 보고 일단 유천의 밑에서 배운 후에 자신에게 배운다고 하고는 스스로 유천의 부하가 되어 적조부로 들어갔다.

“적은 어디에 있지. 지금?”

용악의 말을 들은 주성무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빠르게 지도를 집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적은 지금 갑작스러운 저희들의 반격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으니깐 말이지요.”

주성무는 잠시 말하고 용악을 바라보았다.

‘왜.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멍청한 것이다. 이제 그것을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자신을 바라보던 주성무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시선을 돌려 계속 설명을 이어 갔다.

“게다가 곤제국 국경지역에 있던 다른 이종족이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제국 입장에서는 모두 이종족이라고는 하지만 두 부족은 종족도 다르고 뿌리도 다르니 싸우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그들이 도르트막이라 부르는 이가 정예병 약 1만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그들을 정벌 하러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주성무는 말을 끊고 막사 안에 있는 모든 인물의 표정을 살폈다.

‘저... 녹안의 마왕.

자신들의 신임대장은 이미 계획을 다 세워 놨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하다. 저 자와 함께 온 새로이 적조부장이 된 유천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이 사실. 이 전쟁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주성무가 자신의 생각에 빠져 말을 하지 않자 왕호가 대신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적을 공격할 시기입니다. 적의 방어선은 정확히 8개. 단번에 몰아친다면. 놀들이 도르트막이라 부르는 이가 오기 전에 방어선을 돌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음. 분명 지금은 좋은 시기.

놀들의 왕이라는 도르트막라는 자가 대단한 것은 사실.

신경 쓰지도 않았던 작은 부족들을 단기간에 뭉쳐서 제국에 압박을 할 정도로 크게 키운 자.

그를 역시 만만히 볼 수는 없겠지.

그런 그가 없는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다.

전쟁의 기세 역시 우리가 타고 있고. 그리고? 뭐 더 할 말이 있나?’

용악의 녹색의 눈이 왕호에게 향하자 왕호는 잠시 멈칫 하더니 대답을 했다.

“대장군부에서 새로운 전령이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에 어쩌면 대장군님이 직접 올 수도.. 그래서...”

“그래서 일단 전과를 세워야 한다. 이건가?”

“예.”

자신의 말을 끊으며 말을 한 용악의 말에 주성무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것인가... 이번 전쟁.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해온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왕호는 방금 전 주성무가 했던 생각을 똑같이 하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래. 분명 지금이 좋은 기회.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다.

겨울에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지만.

우리들은 소수.

대원들 다 합쳐야 1만이 겨우 되는 숫자.

하지만 적은 그렇지 않지.

우리도 힘들지만 적은 더욱 힘들다.

그리고 후방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확실히 끝장을 내야겠지. 그래서 마을을 약탈하라고 시킨 것이니까.’

용악이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기자 다른 부장들 역시 생각에 잠겼다.

“대원들을 모아라. 지금 공격한다.”

‘지금?'

'벌써?’

부장들은 모두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용악을 바라보았다.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지 어제다.

‘그런데 겨우 하루 쉬고 바로 오늘부터 전투를 시작한다고?

분명... 적군이 예측하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지금쯤에야 자신들의 마을이 공격 받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학살 했으니까. 흐음... 뭔가 생각이 있겠지.’

주성무와 왕호는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유천은 이제 용악의 전술에 익숙해 졌기에 아니. 용악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 할 수 없는 예상치 못하는 전술을 세운다는 것을 알았기에 약간 어리둥절해 하는 두 사람의 모습만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얀 초원.

끝없이 펼쳐진 하얀 초원이 하늘과 맞닿아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별도 하지 못하는 곳.

그곳에 여러 가지 색이 뒤섞인 갑옷을 입고 두터운 피풍의를 걸친 채 눈을 맞고 있는 한 떼의 대원들이 보였다.

말들과 대원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추위를 느끼지 못한 듯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녹안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하얀 눈발 위에 오만하게 서서 모든 군마들을 지배하는 푸른 눈의 백마.

그리고 그 백마 위에 앉아 모든 대원들을 지배하는 녹색 눈의 신임대장.

몰살당할 뻔 한 그들을 구해난 장군.

그런 그가 지금 그들의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들을 때 마다 가슴을 움츠리게 만드는 그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이 전쟁. 겨울이 가기 전에 끝낼 것이다. 너희들은”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창을 휘둘러 눈발을 쳐내고는 그 앞에서 있는 대원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의 녹색의 눈이 대원들의 가슴속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의 녹색의 눈에서 타오르는 푸르른 불꽃이 자신들의 가슴속의 무언가를 자극해 타오르게 만든다.

그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 피가 달아오른다.

적에 대한 적개심이 타오른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것. 내 허락 없이 죽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인두로 가슴을 지지듯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

그가 허락하지 않으니까.

전장은 그의 땅.

그는 전투의 마왕.

우리는 마왕의 부하.

그의 땅에서 우리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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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흑영기병대 - 258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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