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87화 (87/107)
  • 87장 꿈

    암흑.

    암흑.

    암흑...

    마치 밤하늘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은...

    아니. 조그맣게 반짝이는 그런 별 하나 없는 밤하늘 같은...

    그런 암흑으로 둘러싸인 곳에 한 아이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중심으로 암흑은 사방으로 멈추지 않고 뻗어 나간다.

    아이는 잠깐 몸을 부르르 떨며 누워 있던 자세에서 손을 짚어 몸을 일으켰다.

    사차원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아이가 손을 짚고 일어날 만한 그런, 흔히 땅이라 부르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손을 집고 일어났다.

    귀여워 보이는 아이.

    아이가 눈을 비비고 사방을 살펴본 뒤에 한 발짝을 앞으로...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아이는 자신의 시야가 향하는 곳으로 발을 들어 옮겼다.

    아이는 발을 들어

    걸었다.

    아무 것도 디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발걸음은 옮겨졌다.

    쫘자작!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소리는 아이의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소리라 생각되던 것이 느껴진 후에 아이의 발이 닿은 곳에서 옅은 혹은 짙은 회색빛의 무언가로 이루어진 길이 암흑을 뚫으며 저 멀리 까지 생겨났다.

    아이는 망설이면서도 다시금 한 발을 들어 그 회색빛의 길을 밟았다.

    두둥...

    아까와 같은 느낌이 느껴지고 그 길의 끝에서 둥그런 노란색에서 붉은 색으로 다시 검은색으로 흰색으로 계속해서 색깔이 변하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 것을 향해 길을 밟으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의 발에 무언가에 치이며 아이는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는 자신의 무릎을 만지면서 자신의 발을 걸은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았다.

    둥그런 무언가에 양쪽으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그 밑으로 조그마한 2개의 구멍일 뚫려 있었으며 그 밑으로는 가로로 찢어진 구멍이 마치 입처럼 벌어져 있었다.

    아이가 그것이 해골인 것을 깨닫자 그 회색빛의 길은 조금씩 꿈틀대며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수많은 해골들로...

    아이는 잠시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것도 잠시... 다시 저 멀리 떠있는 무언가를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그 해골로 이루어진 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발이 푹푹 빠지지만 아이는 굴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 해골로 이루어진 길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아이의 발목을 잡아챘다.

    스르륵...

    무언가 아이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누군가의 기억이.

    아니. 어쩌면 자신의 기억일 지도 모르는 그것이 아이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누군가가.

    갑옷을 입은 어떤 사내가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채 무언가가 뚝뚝 떨어지는 무언가를 먹이고 있었다.

    아이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한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것을 탐욕스럽게 먹어 치웠다.

    그런 그 아이를 그 사내는 가만히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낮선 기억에 멈칫 했던 아이는 자신의 발목을 잡은 누군지 모르는 인골의 손을 쳐내고 다시 달려 나갔다.

    그러자 회색빛이던 그 길이 갑자기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해골의 눈구덩이에서 콧구멍이 있던 그 자리에서 가로로 찢어진 입에서 갑자기 피가 터져 나오며 길을 붉게 물들였다.

    아이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이가 지나온 길이 점점 피의 길로 바뀌어 갔다.

    또 다시 뼈만 남은 누군가의 손이 아이의 발목을 잡았다.

    다시금 어떤 기억이 아이의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차가운 바닷물이 튀기는 곳에서 두 명의 아이와 한명의 사내가 서로 웃으며 뭐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는 다시 그 손을 쳐내고 달려 나갔다.

    알록달록하게 변해가며 떠있는 구체를 향해서.

    해골로 이루어진 길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손 들은 계속해서 아이의 발목을 잡아챘다.

    그때 마다 어떤 기억들이 아이의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하반신이 날아가 버린 채 누군가를 앉고 있는 누군가.

    누군가를 밀쳐내며 기다란 쇠꼬챙이를 받아내는 누군가.

    누군가를 막아서며 날카로운 칼을 받아내는 누군가.

    아이는 자신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그 기억에 깜짝 깜짝 놀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사차원으로 이루어진 이 공간에서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라는 개념을 따지기는 힘들었지만 아이는 경사가 높아진 그 길을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구체에 거의 다가갔을 때 쯤.

    붉게 변한 해골의 길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해골 속에서 일어선 무언가는 해골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가슴.

    잘록한 허리.

    풍만한 엉덩이.

    분명.

    그 엄청나게 긴 해골의 길에서 일어선 그 무언가는 여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여인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무언가.

    아이 보다 수십 배는 큰 그 무언가는 몸을 돌려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무언가는 거대한 뼈의 날개를 펴서 자신의 앞을 마치 옷으로 둘러싸듯 감쌌다.

    그리고 그 여인은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한번 스치고는 아이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아이는 갑자기 나타난 바람에 휩싸여 그 구체를 향해 가까이 굴러갔다.

    그리고 그 여인이 나타난 것처럼 어떤 다른 3명의 존재 역시 뼈의 길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몸을 일으키는 한 아이를 둘러싸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떤 자는 웃는 모습으로,

    어떤 자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어떤 자는 유혹하는 욕정 가득한 모습으로.

    아이는 그 존재들을 보고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고 그 구체에 빠져 하염없이 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뼈의 길은 이미 끝났다.

    아이는 지금 뼈의 길의 마지막 부분에 서 있었다. 이제 한 발짝. 단 한 발짝만 발을 내딛는 다면 그 구체를 만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눈은 황홀한 그 구체에 빠져들고 있었지만 마지막 한 발짝을 내밀어 그 구체를 만지지 않고 있었다.

    아이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아이를 둘러싼 4명의 존재는 노여워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4명은 동시에 똑같은 음정과 음색으로 말을 했다.

    “왜 그러고 있는 것이냐.

    이제 한 발짝 밖에 남지 않았다.”

    소리...

    그 목소리라 불리는 그것은 아이의 심혼을 흔들었다.

    아이는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휘청휘청 흔들리면서 쓰러졌다.

    “갑자기 왜 멈춰선 것이냐! 이미 이곳 까지 왔지 않느냐!!!”

    “너를 붙잡는 수많은 것들을 뚫고 왔지 않느냐!!”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며 아이의 몸을 강타했다.

    아이는 휘청휘청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끝내 발을 내밀어 그 구체를 향해 손을 뻗지는 않았다.

    다만 황홀한 표정으로 그 구체를 계속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4명의 존재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가 짜증났는지 신경질을 부리며 어둠을 괴롭혔다.

    그들의 힘에 따라 아이가 있던 어둠이 흔들리며 마치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흔들리는 어둠을 따라 그 구체도 흔들렸다.

    그리고...

    그 구체가 반으로 쪼개지면서 검은 색의, 암흑 속에서도 눈에 띄는 검은 색의 피가 터져 나오며 어떤 형태를 어떤 남자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이윽고 구체안에 있던 모든 피가 뿜어져 나와 그 남자의 모습을 완전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넘어진 채 고개를 들어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얽매이고 있는 것이냐.”

    그 남자는 입가에 비웃음을 흘리며 손을 십자로 겹치며 가슴으로 모았다.

    그러자 그의 등에서 검은색의 피가 튀어 올랐다.

    뿜어져 나온 그 피는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뭉쳐지면서 날카로우면서도 거대한 4장의 날개를 만들어 냈다.

    사내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날개를 펼쳐 펄럭였다.

    그 펄럭임을 따라 진한 혈향이 풍겨져 나와 아이의 코를 마비 시켰다.

    사내는 허공에 서서히 떠서 아이에게 다가와 4장의 날개를 겹쳐 아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아이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아이는 그제야 그 사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 사내는!!

    이 자는!!

    이 상처는!!

    아이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 그 사람은 검은 입술을 벌려 말을 흘렸다.

    “훗... 아직도 인간이고 싶다는 것이냐?

    너의 그 증오가.

    너의 그 분노가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마. 후후후”

    #

    #   88 - 흑영기병대 - 258812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