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장 첫만남
달빛이 어스름히 나무를 뚫고 산속 사이사이로 스며든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달빛은 산맥을 타넘고 시커먼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거대한 협곡, 파곡 까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은 협곡안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며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협곡 안은 수많은 시체들로 쌓여 있었다.
후욱...
후욱...
살아남은 검은색과 갈색, 녹색이 마구 뒤섞인 이상한 색 갑옷을 입은 병사들의 호흡소리가 땅을 울렸고 하얀 김이 호흡을 할 때 마다 입에서 흘러 나왔다.
작전은 성공했다.
적의 군량미를 수송하던 적의 보급부대를 전멸 시켰고 셀 수도 없이 많은 마차 안을 탈취 했다.
성공이다.
이제 전쟁의 흐름이 바뀔 것이다!
“성공인가?!”
“의외로 쉽게 끝났는 걸.”
“어마어마하군. 이게 모두 군량이란 말이지?”
살아남은 병사들은 아직까지 살아 있는 놀족의 목을 가르고 부상당한 동료들을 부축하면서 입을 열었다. 입을 열 때 마다 하얀 김이 터져 나올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전투로 인해 뜨겁게 달구진 그들은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쿵...
“크크크... 놈들 이게 탈취당한 걸 알면 기절초풍하겠지?”
전건은 웃으며 어느 한 수송마차의 문을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그런 전건의 뒤로 주성무는 가만히 전장을 살펴보고 생각에 잠겼다.
‘너무 허술하다. 이정도 군량을 옮기는 데 겨우 이정도 병력을 투입하다니. 그 동안의 녀석들의 행동과는 너무 다르군. 뭐지... 뭘 노리는 것이냐?’
“...”
왕호는 다른 병사들을 지휘하며 소리쳤다.
‘좋아. 작전은 성공했다. 이 일이 알려 지면 놈들이 크게 당황 할 것은 분명한 사실. 후후. 이제 부터의 전쟁의 흐름은 달라 질 것이다.’
“신속히 복귀한다! 서둘러라!”
“허술해...”
“예?”
주성무의 입에서 조그맣게 흘러나온 말을 듣고 다른 병사들이 주성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허술하다고?’
“이만한 군량을 호송하는 것 치고는 방어가 너무 허술해.”
주성무는 그런 말을 하며 다시 협곡의 어두운 저쪽 편을 바라보았다.
‘불안하군... 왠지...’
“음? 뭐야. 이거? 마치 속이 비어 있는 것 같은 소리가?”
수송마차의 문을 두드리며 웃던 전건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말을 하려는 찰라.
퍼퍼억!
“끄... 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마차의 문을 살피던 전건의 머리를 뚫고 창날이 삐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전건의 온몸을 꿰뚫으며 날카로운 창날이 이빨을 드러냈다
“?!!”
“아니!”
"함정인가!!"
끼기기...
쿵....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 전건을 밀어내며 서서히 수송마차의 두터운 나무문이 내려오며 열렸다.
거친 황무지에 사는 사막들개처럼 생긴 얼굴.
육식동물처럼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주 주둥이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날카로운 이빨.
갈색과 회색이 점점이 박힌 거친 털.
바로 놀족.
흑영기병대가 노렸던 그 군량마차에는 마치 굶주린 야수처럼 눈을 번뜩이는 놀들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함정이다!”
“모두 흩어져라!”
주성무와 왕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수많은 수송마차의 문을 열리며 적군이 튀어 나왔다!
‘젠장! 완벽한 실수다. 적의 기마대가 없다고 해서 전투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다! 젠장.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쾅..
콰직..
와아아아!!
사방에서 문을 부수고 튀어나온 놀들은 날카로운 창을 들이대며 달려든다.
침묵을 고수하던 협곡에 다시금 피바람과 고함소리가 가득이 울려 퍼진다.
마차를 뚫고 나와 검은 병사들에게 달려드는 놀의 목덜미를 누군가의 날카로운 창이 꿰뚫는다. 하지만 그 검은 갑옷의 병사 역시 어느새 다가온 놀의 창날에 배를 꿰뚫려 쓰러진다.
일당백을 자부하는 흑영기병대원들이지만 이렇게 혼란스럽고 체계적이지 않은 난전에서는 크게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이런 때에는 수가 많은 것이 최고! 하지만 수송마차의 수는 어머 어마했기에 오히려 흑영기병대와 적군의 수가 비슷할 정도이다.
‘이렇게 많은 수의 놀들이 숨어 있었는데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다니!! 승리의 기쁨에 너무 일찍 취했던 것인가!!’
주성무와 왕호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몰아치며 흑창연환칠식을 펼쳐 냈다.
사방에서 달려들던 적들의 창을 십자로 갈라 버리고 엄청난 빠르기로 적들의 머리를 순식간에 7개나 꿰뚫었다.
‘젠장. 병력 수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흐름까지 놓쳐버렸다. 하지만 포기 할 수는 없지!’
“우선 이 협곡에서 빠져 나간다!”
주성무는 그렇게 말하고 파곡의 반대편으로 부하들을 이끌고 달려 나갔다.
“비켜라! 나를 막지 마라!”
주성무와 왕호, 그리고 살아남은 남은 부하들은 악귀처럼 달려들어 자신의 길을 막고 있던 적군을 베어냈다. 피 향기와 전장의 긴장감이 다시금 이들을 원래의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좋군. 다행이야.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는 않은 것인가!’
주성무와 왕호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이곳을 빠져 나간다! 저쪽에는 부하들이 지키고 있을 테니까...’
“억?!”
‘젠장! 어떻게!벌써 가로막은 것인가!! 이렇게 빨리! 그럼...저쪽을 지키던 부하들 모두 죽은 것인가!’
주성무와 왕호, 그리고 살아남은 수천의 병사들 모두 한순간에 침묵에 빠졌다.
“....”
‘뒤에서도 오고 있군. 완전히 포위됐어. 젠장!! 제대로 걸렸어. 본대에서 원군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진퇴양난인가!! 이렇게 된 바에는 결사전을 펼친다! 한 놈이라도 더 많이 저승길 동행으로 만들도록!!”
주성무를 그렇게 소리치며 자신들의 뒤를 쫒아 오고 있는 적군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결국 뼈를 묻게 되는 것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부장님...”
‘응? 갑자기 왜... 왜 그런 이상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것이냐..?’
주성무는 자신을 부른 병사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합니다.”
“뭐...?”
주성무는 자신의 어깨를 치며 뒤를 가리키는 병사들 바라보았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
그의 눈길을 받은 병사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병사의 손을 따라 협곡의 끝에서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적군을 가리켰다.
‘뭐가.. 이상하다는...? 이상하군. 적들이 진형을 전혀 못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냥 달려오고 있군.’
무언가에 쫓겨서
두려움에 차서 말이다.
그리고 보았다.
주성무와 왕호.
살아남은 모든 대원들은 보았다.
녹색의 안광과
붉게 빛나는 그의 창을.
푸르게 타오르는 말의 눈동자를!
흐흐흐흡!!
마치 폭풍처럼 적군을 사납게 몰아 부친다.
높이 뛰어 올라 적군 사이로 떨어진 그는 단 한차례 창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적군을 쓸어버린다.
높이 든 창을 땅으로 떨어뜨릴 때마다 눈발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적군을 쓸어 담는다.
보인다.
그의 눈이
창을 높이 든 그의 모습이 그들의 망막에 빨려들 듯 달라붙는다.
창을 높이든 그의 모습이
그의 얼굴이
그의 상처가
그의 진녹색의 눈이
그의 녹색 눈에서 타오르는 푸르른 불꽃이 그의 심령을 스멀스멀 점령한다!!
콰과광!!!
휘이기기기!!
그의 붉게 물든 그의 창이 스쳐 지나갈 때 마다 놀들은 마치 포탄이라도 맞은 듯 말 그대로 온몸이 찢어져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뭐야 저건?”
주성무 앞에 서있던 한 대원이 신음을 흘리듯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말이 모든 이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주성무와 왕호까지도....
분명 적군을 몰아치고 있으니 아군임에 분명하다!
누구인지는 나중에 알아도 될 터!
지금은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뒤쪽의 적군 역시 아직 건재하다!!
주성무와 왕호는 서로의 눈을 맞추고는 동시에 소리쳤다.
“본대로부터 원군이 도착했다!!!”
“....!!”
“...!!”
대원들의 동요가 단번에 느껴진다. 저 만한 실력의 가진 자가 자신들의 원군이라면 분명 지금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와아아아!!!!”
주성무와 왕호를 선두로 한 살아남은 흑영기병대의 대원들은 반대편에서 오던 적군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했다.
“으아아!!”
“크악! 끄으으으..”
누군가의 창이 누군가의 머리를 가르고 누군가의 창이 누군가의 가슴을 찌른다.
누군가의 검이 누군가의 심장을 쑤시며 누군가의 검이 누군가의 다리를 자른다!!
난전!
난전!
난전!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난전이 펼쳐진다.
주성무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수많은 창날을 단숨에 한쪽으로 몰아버리고는 그 창을 타고 올라가 적군의 한 가운데로 떨어졌다.
흑창연환칠식(黑槍連環七式)!!칠절참혼(七絶斬魂)!!!
사방으로 적군의 머리를 터치며 내며 길을 뚫고 나아가자 부하들이 그 틈을 파고들어 적군을 향해 달려든다.
주성무가 분전하는 동안 왕호 역시 분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과 다르게 그의 머리는 온통 자신의 뒤편에서 오고 있는 저 사람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누구냐 대체. 한 번도 저런 자 본적이 없는데..?”
그 녹안의 괴물은 사방으로 적군을 몰아내며 양 협곡의 벽으로 적을 튕겨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전장에 한복판에 우뚝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오만하고도 거만하면서 신성한 모습을 왕호는 감히 바라보기도 힘들었다.
그의 녹안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 불꽃은 온 협곡을 불태우려는 듯이 사정없이 뿜어져 나왔다.
“저 괴물은 대체..!!”
‘다행이다!! 후방은 저 괴물이 처리할 것이고! 전방 역시! 아군이다! 원군이 협곡을 포위하면서 온 것인가!’
주성무는 처음 보는 2명의 사내에 대해 의아해 했으나 그것은 나중에 생각할 일 일단은 우리가 다시 포위를 한 적군을 모조리 몰살 할 때다!!
참혹한 모습에 눈을 돌렸던 달빛이 다시 협곡을 비추었을 때 쯤. 전장은 정리가 되고 있었다. 협곡 안은 수많은 시체들로 그야말로 가득가득 채워졌고 살아남은 대원들은 창을 기대고 주저 않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적군은 전멸.
하지만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다각.
다각.
다각
저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녹안의 사내가 천천히 다가온다.
온 시선이 그에게 쏠리는 것이 느껴진다.
모든 대원들이 그의 행보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몰아 다가왔다.
달빛을 등지고서 다가오고 있기에 그의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녹색의 눈은 똑똑히 보인다.
“설마. 이런 곳에서 내 부하들과 첫 만남을 할 줄은 몰랐군.”
“...!!”
그 괴물의 입에서 약간의 살기를 담은 고저 없는 삭막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언뜻 듣기에 약간 기뻐하는 목소리 인 듯도 했다.
‘기뻐... 한다고??’
왕호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 몸을 떨며 그의 입에 주목했다.
“너희들은 오늘 두 번 죽었다.”
그는 창을 휘둘러 창에 붙어 있던 살점과 피를 던져 버리고 피에 잔뜩 젖은 그의 머리카락을 짜서 한대 묶었다.
“모든 작전을 중지하고 대기하라는 명령을 어긴 죄로 참수형에 처해질 것이 그 첫 번째.”
오만한 표정으로 말위에 앉아 대원들을 내려다본다.
두근...
두근...
“두 번째는 승리의 꿈에 취해 이런 간단한 매복 정도도 예상하지 못하고 몰살을 자초한 것.”
두근...
두근....
그의 목소리를 따라 심장이 고동친다.
“내 이름은 용악.
이제부터 너희들은 나의 것이다.
세상을 집어 삼킬 그림자들의 주인이 왔다.”
쿵쾅.
쿵쾅.
쿵쾅.
점점 심장의 고동이 빨라진다.
온몸으로 기가 퍼져나가고 온몸으로 피가 퍼져나가는 느낌이 느껴진다.
가슴속에 무언가가 가득 차고 그것이 서서히 목구멍을 넘어 터져 나오려 한다.
“앞으로 너희들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혈마로 변한 그의 백마의 푸르른 눈이 그들을 오만하게 바라본다.
그의 녹색 눈이 그들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쿵쿵
쿵쿵쿵!!
심장의 고동소리에 온몸이 떨려온다.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자들은 먼저 지옥에 가 있도록. 내가 이미 준비를 다 끝내 놨으니까.”
탁!!
“하지만 이 지옥에서 벗어난 다면 너희들은 나와 함께 세상을 집어 삼키게 될 것이다.”
냉혹하며 음정 없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의 심장이 멈추었다.
그들의 눈은 그의 녹색 눈을 바라보며 멈추었다.
시간이 멈추고 자신들이 있는 이곳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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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흑영기병대 - 25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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