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80화 (80/107)

80장

진명헌은 관명 천인장과 함께 다른 백인대원들과 깃발을 찾아다니면서 포위망을 뚫기 위해 오크군을 뚫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음? 이건... 대체... 뭐지? 누가 저쪽에 있기에?’

진명헌은 저쪽, 자신의 반대편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의 파동에 움찔했다.

‘내가? 놀라? 아니... 잠깐...’

아까도 분명 엄청난 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살을 저미는 살기.

그가 있는 곳과 저곳.

‘아마도 중앙부분 일 텐데,’

그 곳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를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자화자찬 하는 것 같지만 그가 수준 높은 고수여서 느낀 것이었다. 어쨌거나 엄청난 살기였다. 그런데 아까와는 다른 또 다른 살기가 느껴진다.

아니 이번에는 더 거대하다.

‘아까가 살기였다면 지금은...’

“왠지 오싹하지 않아요?”

마화가 무언가를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관명 천인장에게 말을 건넸다.

‘너도 느낀 것인가? 이것은. 대체...’

진명헌도 궁금해 하며 그 것의 정체를 찾고 있을 때 관명 천인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기(戰氣)다. 흔히 군기(軍氣)라고도 하지. 하지만... 이건 좀 정도가 심하군. 게다가...”

“게다가 뭐요?”

관명가 말을 끊자 마화가 관명를 재촉하며 물었다. 비록 묻기는 마화가 물었지만 다른 이들 모두 궁금했다. 무슨 말이 나올지.

그런데 그 대답은 관명가 아닌 진명헌에게서 흘러 나왔다.

“살기가 너무 짙다. 오히려 광기(狂氣)에 가깝군.”

‘군기도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웬 광기... 이러나, 저러나. 그럼 우리 편이 선전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뭐. 잘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더 좋은 것이죠?”

마화의 질문에 다른 백인대의 대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들이 군기를 느낄 일이 뭐 얼마나 있겠는가. 천황기갑단 자체가 워낙에 무림적인 성격이 강한 집단인이다. 하지만 관명. 이곳에 오기 전부터 장군으로 활동했던 그는 알고 있었다.

저 정도의 잘 정련된 군기는 지금은 죽은 용천 대장군이 이끄는 서축의 폭풍기마대와 모용천 대장군이 이끄는 강북의 맹룡기마대에서만 느꼈던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까지

저 가공할 기세, 저 전투의 광기가 넘실거리며 흘러와 뛰어난 내공을 가진 대원들에게 가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관명 자신에게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있듯이 말이다.

‘이 정도의 기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가 있던가? 그것도 천황기갑단에??...’

관명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장수와 대원들을 모조리 떠올렸고 드디어 생각해 냈다.

“전투의 마왕이 움직이나 보군...”

“에?? 갑자기 웬? 갑자기 그 사람은 왜요? 난 그 사람 무서워서 싫던데.”

마화는 정말로 싫었는지 고개를 절래 흔들면서 이제는 손까지 흔들면서 싫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관명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지만 지금 이제 해는 거의 땅에 달라붙어 검붉은 빛을 자신들에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사라지는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지금 이곳은 너무나 추악하다.

‘뭐 지금 그런 생각을 하다가는 죽기 십상이지.’

관명는 고개를 한 바퀴 빙 돌려 다른 오크족들과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소강상태이다.

아니 억지로 멈추어 졌다.

바로 저 군기에 의해서.

전투의 광기에 의해서.

‘하지만. 뭐 어쨌든 살아날 수 있다면 좋은 것이지. 그나저나 본대는 잘 버티고 있나보군. 의외로... 중앙은 아마 전투의 마왕이 알아서 정리를 할 것 같고. 그리고 오른쪽으로 빠지겠지? 이쪽에는 진명헌이 있고 아마도 전투의 마왕정도라면 진명헌이 아까 뿜어낸 기세를 느꼈을 테니 말이야. 그럼 우리는 바로 본대로 가야겠군.’

“자자. 좋은 기회다. 중앙에 있는 다른 천인대들이 잘 해 주고 있으니 우리가 꿇릴 수는 없겠지! 다들 본대를 향해 간다!”

*****

하하하하! 즐겁다.

적을 베어 나가는 이 기분이.

적이 나를 막지 못한다는 이 기분이.

설마 나도 심마에 빠지는 것일까?

스승님 제가 그러고 있는 중 일까요? 아니에요.

저는 제 얼굴에 튀는 피가 싫습니다.

이 비릿한 피 냄새가 싫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와 함께 달려 나가는 것은 기분이 좋군요.

다만. 다만. 그의 앞길에 이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만요.

옥항은 다시 한 번 크게 웃고는 오크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우... 이거,이거 곤란한데... 역시 무림인들에게 군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문제가 크군 그래... 어린 주인아. 너는 어쩌자고 저런 아이에게 전투의 광기를 느끼게 해준 것이냐.’

유천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서 오만하게 전장을 바라보고 있는 녹색 눈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모든 것을 굽어보고 있었다.

이곳은 그의 땅이며.

살아남은 천황기갑단은 그의 백성이고.

오크족들은 그의 먹이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열심히 먹이를 사냥해 그에게 바치고 있다.

‘어린 주인아. 대체 너의 증오와 분노의 깊이가 얼마나 되기에 다른 이들까지 이렇게 만드는 것이냐!’

유천의 그런 눈과 용악의 눈이 마주쳤다. 수많은 창과 수많은 피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 둘은 공간을 초월해 지금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그래. 너의 길의 종착점이 어디든지. 너를 따라가 주마. 그것이 너와나 모두의 파멸을 부를지 라도.

유천은 그의 눈빛을 피해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많은 검은 갑옷의 병사들이 검녹색 비늘이 달린 그의 손에 들린 4개의 깃발. 4개의 백인장의 깃발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적군을 몰아치고 있었다.

“적군 본진을 친다. 바로 저곳.”

용악은 다른 병사들 사이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가 그 깃발로 저기. 그들이 원래 돌파를 하려 했던 그 곳을 가리키고는 깃발을 유천에게 던지고는 앞으로 튀어 나갔다.

수 십의 병사들을 단 한 번에 뛰어 넘어 오크군 사이로 떨어졌다.

역시 백풍.

대단하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말이라 부를 수 없는 마물이여.’

화와와아~

두두두

푸부부북

그의 창이 회전을 따라 병사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모여든다.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모여들고 그를 중심으로 병사들의 살기와 증오와 적개심이 모여든다.

그리고 그것을 먹고 태어난 그 것.

검붉은 기(氣)

그것은 그를 둘러싸고 있던 오크족들을 모조리 쓸어 담아 탐욕스럽게 그들을 빨아먹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용아창법(龍牙槍法) 흑산포(黑散爆) 구룡(九龍)!!!

그가 서있던 그곳을 중심으로 9마리의 용이 마치 굶주린 체 우리에 갇혀 있다가 이제야 주인이 문을 열어 준 것처럼 순식간에 밖으로 뛰쳐나가며 먹이를 낚아챈다.

끼아아아악.

용악의 창이 부들부들 자기 스스로 떨면서 울음소리를 뿜어낸다. 수천의 병사들을 이끌고 용악은 적을 뚫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창이 지나갈 때마나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오크족들의 피를 탐하고 그의 창이 나아갈 때 마다 오크족들의 살점을 뜯어 먹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광기에 불타는 검은 악마들이 오크족을 덮치기 시작했다.

“악마다!”

“악마다. 악마를 불러냈다!”

“오. 푸른 늑대신(The wolf)이여. 하얀 눈 신(The snow)이여! 우리를 살려주소서.”

오크족들은 일단의 혼란에 빠져 신을 외치기 시작했다.

도마후악토가 악마를 불러냈다.

있어서는 안 될 악마를 불러냈다.

예언에 나오던 그 악마를 불러낸 것이다.

저 무시무시한 불을 뿜어내는 무기를 가진 검은 악마들을 상대한 것이 애초에 잘못이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악마가 강림하여 도마후악토을 징벌하러 오고 있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을수록 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애초에 유목민족인 오크족 역시 그렇게 뛰어난 문명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고 그랬기에 주술적인, 미신적인 경향이 강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나타나고 있다.

적의 본대를 기습했던 도마후악토의 친위대는 정작 본대를 건들지도 못하고 퇴각하고 말았다.

그들의 불을 뿜어내는 악마의 무기는 정말 너무나도 강력해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악마의 무기는 아군의 본대를 물리친 것으로 모자라 지금 적의 악마의 무기는 검은 악마를 포위하고 있던 우리의 형제들에게 죽음을 선사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저 검은 악마들 사이에서 진정한 마왕이 강림했다.

그리고 지금 저 악마가 다른 악마의 졸개들을 이끌고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치지 마라! 우리는 오크의 위대한 전사들이다!”

“족장님,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이미 중앙의 포위진이 4진까지 무너졌습니다. 적의 본대는 우리의 좌측을 공격하고 있으며 그 포화의 도움을 받아 좌측에 포위되어 있던 놈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오직 우측에 포위된 적군만이 여전히 포위되어 있지만 이곳이 무너지면 다 끝장입니다. 대족장님!”

“이렇게 끝이 날 수 있는가! 이렇게! 지금 저들을 몰살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통일은 영원히 불가능 하다는 것을 모르는가! 언제 또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냐!”

“대족장님...”

본대의 구릉지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도마후악토는 분노를 풀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허공을 향해 날카로운 반월도를 휘둘렀다.

‘언제까지 우리가 저들에게 굴복해야 한다는 말이냐! 언제까지! 지금 이대로 무너진다면 언제 다시 이들을 모은단 말이냐...

대체 언제...

오늘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죽은 수많은 형제들을 무슨 수로 본단 말이냐! 푸른늑대신여! 하얀눈신이여! 나는 정령!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입니까!’

“대족장님. 벌써 중앙에 갇혀 있던 적군이 6번째 포위진을 뚫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2개 밖에 없습니다! 대족장님!”

화를 참지 못해 부르르 떨고 있는 도마후악토에게로 한명의 오크족 병사가 오더니 큰소리로 소리쳤다.

매우 급박하고 떠는 목소리로 보아 꽤 심각했나 보다.

‘하지만! 이렇게 끝날 수는 없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금 이곳에서 저들을 반드시 몰살 시켜야 한다! 저들도 인간이다! 검은 악마가 아니란 말이다! 와쿠라오타! 친위대를 전부 데리고 저들을 막아라!”

도마후악토은 몸을 획 돌리고는 파오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활을 꺼내 어깨에 걸치고 자신의 말에 올라타며 자신의 친위대장을 불렀다.

‘나의 친우여. 언제까지나 나를 지켜주었던 나의 친우여. 이제 우리의 마지막이 시간이 다가왔나 보구나.’

“대족장님! 친위대는 대족장님을 위한 형제들입니다!”

“너희들은 지금 죽어가는 우리의 형제들은 보이지도 않는 것이냐! 우리 민족을 위해서 내가 죽겠다. 저들을 모조리 사지에 몰아넣고 나도 함께 죽겠다!”

“대족장이시여!”

“대족장이시여!”

도마후악토 주위에 있던 수많은 친위대원들과 다른 부족의 족장들이 말에서 떨어지듯 바닥에 엎드리며 울부짖었다.

“일어나라 위대한 초원의 전사여 우리는 지지 않는다. 우리의 죽음은 신의 곁으로 좀 더 가까이 가는 것뿐! 우리의 영혼은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물 것이다! 가자! 나의 형제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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