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장
이제 끝을 내려는 것인가!
옥항은 천천히 전장을 향해 달려가며 생각을 정리 했다.
위쪽에서 보았을 때 -천황기갑단이 있는 곳은 약간 구릉진 곳이다. 물론 도마후악토의 본대 역시 그런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 전선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다 유천이 그동안 열심히 가르쳐 준 덕분이다.
지금 적의 중앙이 뒤로 천천히 후퇴를 하고 있고 양 옆에 있던 오크족들 역시 서서히 뒤로 물러서면서 아군에게 복종한 오크족들을 중앙으로 몰아넣으면서 종에서 횡으로 서서히 진형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가운데에 몰아넣고 포위를 하겠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자신들은!’
옥항은 고개를 돌려 다른 천인대를 바라보았다. 뭐 다들 검은색 갑주에 투구까지 쓰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백인대의 깃발병과 천인대의 깃발병이 최선두에서 달려가고 있기에 다른 천인대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깃발병들을 찾았다.
‘역시 저들은 오크족을 포위하러 가는 것이군. 그렇다면 우리는 중앙으로 가는 것인가!’
저 앞에서 천인대장의 깃발병이 깃발을 이리 저리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우리는 중앙 돌격이군!’
4개의 천인대가 중앙의 오크족을 가로지르며 거침없이 적의 오크족을 뚫고 지나간다.
지금쯤이면 아마도 다른 천인대들이 적의 오크족들을 포위하고 있을 것이다.
‘자 와라! 너희들을 승리의 제물로 삼아 주마!’
옥항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오크족들을 베어나가며 소리쳤다.
*****
-호호호.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야 어때? 이곳에 있어야 너의 존재를 조금 느낄 수 있지 않니? 평범한 인생은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지 않아?. 주홍과의 사랑? 후후후. 유천과의 우정? 후후 전투의 마왕이라는 명예롭지 않은 명예? 그런 것들이 너의 존재를 증명 하던가? 살이 찢기고 피가 튀어야 그제야 세상 안의 너의 존재를 느낄 수 있지 않니?
‘무슨 소리냐 이 미친년아! 왜 갑자기 나타나 그 지랄을 하는 것이냐!’
용악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수많은 칼날을 창으로 모조리 막아내지 못하고 검녹빛의 비늘로 뒤덮인 손을 뻗어 적의 칼날을 막아내고는 그 기세를 몰아 그 칼날마저 부러뜨려 버리고는 적의 머리통에 부러진 칼날을 던져 주었다.
‘너 어떻게 이런 대낮에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 어떻게!? 넌 망령이 아니던가!’
-아이야. 내가 망령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후후 너 역시 알고 있지 않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 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네가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는 것 뿐 이란다.
너는 한사코 거부하며 고개를 돌리는 진실을 말이야.
너의 그 깊숙한 곳,
무저갱의 어둠보다 더욱 어두운 곳,
지옥의 불길보다 더욱 뜨거운 너의 깊숙한 마음속에 감추어진 너의 본성을 말이야. 너의 욕망을 말이야.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네가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 역시도 모르는데!
네가 대체 무엇을 안다고 나한테 이러는 것이냐!! 대체 원하는 것이 뭐냐! 왜 하필 나인가! 왜 나에게만 이러는 것인가! 왜 나를 가만 두지 않는 것인가!’
-후후후. 정말 아이같이 구는구나. 어째서 진실을 외면하고 자꾸 거짓된 겉모습으로 너의 마음을 포장하려 하는 것이냐.
나에게 물은 질문의 답은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냐? 왜 나에게 그런 것을 묻는 것이지? 진실에 다가가기 어려운가?
나의 입을 빌어서 너의 진실을 피해보고자 하는 것이냐? 후후후. 아이야. 아이야.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야. 정말로 아이 같구나. 오호호호호-
‘이 미친년. 요사스러운 마녀.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말라. 젠장. 어째서 이 녀석들의 목소리를 안들을 수가 없는 것이냐. 어째서.
지금까지 죽을 위기를 넘겨가며 망령과 싸워가며 그들을 제압했던 나인데! 갑자기 어디서 이런 녀석들이 나타난 것이란 말이냐! 젠장!!!’
용악은 그녀를 베어내듯 거칠고 사정없이 창을 휘둘렀다.
‘젠장... 또 흥분했던 것인가. 또 이성을 잃었던 것이야? 이제 그런 일은 없었는데. 그 때 이후로 이런 일은 없었는데... 젠장. 내가 그런 것이냐 백풍? 그런 것이야?’
용악은 검녹색의 빛을 반사하는 왼손으로 천천히 백풍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얀 백마였던 백룡은 이제 혈마(血馬)가 되어 있었다.
용악은 피로 뒤덮여 피 냄새를 물씬 풍겨내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주위에 성한 오크족이 없었다.
다들 무슨 포탄이라도 맞은 듯 찢겨지고 부러져 널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밖으로 원으로 둘러싸듯 오크족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거지. 어째서? 내가 이렇게 있는 것이지? 다른 천황기갑단은? 54백인대는 어디 있고? 유천은? 설마 내가 다 배어버린 것인가? 아닐 텐데. 그들이라면 내가 폭주하기 전에 피할 수 있었을 텐데...’
*****
젠장!!!
정말 힘들다.
미치겠다.
갑자기 저 전투의 마왕이 왜 저리 변해버린 것인가! 오크족들이 갑자기 어디서 이렇게 나타난 것이냐!
아군은 모두 어디가고!
그리고 지금!
악진 천인장과 다른 천인장들 모두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이냐!
천황기갑단이 그들이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
무섭더라도! 설령 자신이 죽을지라도! 저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 녹안의 용인(龍人)에게 다가가야 한다.
저 사람만이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옥항을 포함한 40개의 백인대는 거침없이 중앙의 오크족을 옆으로 밀어내며 적군을 향해 달려갔다.
얼마나 그렇게 달려갔을까.
테쿠아후진의 정예병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고 천인대들은 거침없이 그들을 몰아 부치며 그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 있던 오크족들이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카타쿠악토 와 테쿠아후진이 이끌고 와서 항복한 오크들뿐만 아니라 이미 한제국군에게 협력해서 그동안 수 없이 도마후악토와 전투를 했던 모든 오크들이!
‘어떻게! 어떻게 그들이 우리를 배신한 것인가! 신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데리고 있는 인질이 어떻게 될 줄 알면서 어쩌자고 이렇게 행동한 다는 말이냐! 도마후악토이 너희에게 무엇을 약속했기에!!’
그래서 지금 옥항을 비롯한 4천의 천황기갑단은 수만의 오크족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되었다.
한제국에 거짓항복 했던 모든 오크족들에게
완벽하게 그들은 사지로 스스로 들어 온 것이었다.
애초에 만들어져 있던 그 포위망의 뒤를 아군이었던 오크족들이 적군으로 변해 막아섰다.
완벽하게 갇혔다. 그 후로는 이렇게 난전이다. 이렇게 되면 본대역시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아마도 중앙으로 돌격한 천인대를 빼내기 위해 무리하게 포화를 감행 할 것이 분명하다. 아군이 다치더라도 말이다.
‘그럼 포위망을 포위하던 다른 천인대들은 어떻게 된 것이지! 그들 역시 역으로 포위당했나! 그렇겠지 아마도.’
옥항은 상황을 파악하면서 자신을 향해 커다란 만도를 휘두르는 오크에게 창을 휘둘렀다.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아군에 있던 오크족은 아직도 2만. 도마후악토의 오크족은 6만. 합해서 8만의 병력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젠장 최악의 상황이군 그래... 아마도 뒤를 치던 천황기갑단 역시 포위당했을 것이 분명. 적의 본대에 있던 병력들이 그들의 뒤를 치겠지.
그럼 4천의 천황기갑단이 가장 중앙에 있고 그것을 수만의 오크족이 둘러싸고 있고 그런 오크족을 다시 6천의 천황기갑단이 양면으로 둘러싸고 있다는 건가?
하지만 나머지 양면이 뚫리는군 그래. 그리고 다시 그 6천의 병력을 수만의 오크족이 다시 포위를 하고 있고... 그리고 남은 병력으로는 우리의 본대를 치겠지 아마도.
젠장!!!!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그래서 지금 옥항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저 마왕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 마왕이었다.
갑자기 저 사내가 왜 그렇게 변해 버렸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가더니 사방으로 엄청난 살기를 뿜어냈다.
엄청난 살기였다.
아니 어쩌면 살기를 뛰어넘은 마기 일지도 모른다.
인세에 마왕이 강림한 것처럼 그자의 주위로 살기가 원형으로 퍼져나갔다.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뛰어난 무예를 자랑하는 천황기갑단은 물론 이거니와 오크족들 역시 움직이지 못했다.
살을 저미는 그 살기가 자신의 목젖을 압박했다.
무형의 기운이 자신들을 옭아맸다.
그리고는 그의 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바람을 일으키며.
그러더니 지금은 살기를 다시 자신의 온몸으로 거두어드린 채 가만히 말위에 앉아 있었다.
‘대체 당신은 뭐란 말이냐! 어찌됐건 당신의 능력을 보았으니 더욱이 당신이 필요하다. 전투의 마왕이여!’
사방은 적이다.
막는 자는 무조건 죽이면 된다.
“으크. 조심하라고. 항 동생. 앞은 보고 휘둘러야 하지 않겠나?”
자신의 창을 가뿐하게 막아낸 검은 갑옷의 병사가 말을 자신에게 건넸다.
옥항에게 이렇게 말할 사람은 유천 밖에 없다.
‘다행이군요.살아 있어서.’
“후훗. 너 역시 대장에게 가려는 거냐? 같이 가자. 젠장. 지금까지 겪어본 상황 중에서 최악의 상황이다. 진짜... 본대는 무사할지 모르겠군.”
“글쎄요. 아마도... 하지만 좌측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왜?”
“그곳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고수가 있으니까...”
옥항은 유천의 물음에 대답을 흐렸다.
‘그래 진명헌 아저씨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살 수 있을 것이야.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도 감당하지 못하는 고수니까.
저 전투의 마왕과 비슷할지도.
아니면 더 뛰어날 지도 모르는 고수...
하지만.
난 전투의 마왕에게 가겠다.
전쟁은 무인이 아닌 군인이 하는 것.
나는 전투의 마왕을 따르겠다!’
“일단! 저곳까지만 가자. 그런 다음은...”
유천은 그렇게 말하고 싱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전혀 이런 전쟁터와 어울리지 않은 천진난만한 웃음이었다.
‘그 다음은?’
유천과 옥항은 크게 웃으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훈련한대로만 하면 된다.”
“훈련한대로만 하면 된다.”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말이다. 전투의 마왕이 하던 말을 말이다.
“하하하하”
“와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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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흑영기병대 - 257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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