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77화 (77/107)

77장

약간 뜨거운 모래바람이 광활한 대지를 휩쓸며 지나갔다.

이제 슬슬 머리를 내밀고 있는 태양이 대지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지금 두 무리로 이루어진 어리석은 인간들이 다시금 살육의 장을 펼치려 하고 있다.

옥항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투구를 고쳐 쓰고 자신의 앞에서 오만하면서도, 무표정한 표정으로 적군을 바라보고 있는 녹안의 사내를 잠깐 바라보고 전장으로 시야를 돌렸다.

옥항은 그때 자신이 잠깐 미쳤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에게 덤빌 생각을 하다니. 뭐 그래도, 후회되지는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그때 분명 저 사람이 잘 못한거야. 아무리 군인이 명령에 따라야 한다지만 그렇게 불합리하고 도의에 완전히 어긋나는 일 까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래서 나는 천상 무림인인가. 응당 군인이라면 저 녹안의 사내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말이야. 비록 전투기계로서 인성을 잠시 잊어버리고...’

그 사건 이후,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는 자신의 막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옥항은 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을 하며 몇날 며칠을 밤 세워 고민했다.

‘사과를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계속 밀어 붙여? 아니면 그냥 무시? 없던 일로 할까?’

하지만 그의 고민은 유천에 의해서 말끔히 해소되었다. 단 한마디의 말에 의해서 말이다.

허무하게도.

-응? 그때 그일? 아직도 신경 쓰고 있냐? 대장은 별일 아닌 걸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넌 대장이 그런 것에 신경 쓸 것 같아? 으구...이제는 좀 알 때도 되지 않았냐?-

그랬다.

그는 옥항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괜히 그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했던 것이다.

용악은 옥항이 아니라 다른 이가 했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어디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을 잊지 않는, 항상 같은 사람이니까.

한 달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도마후악토에 반기를 드는 오크족 5만이 한제국군의 휘하로 들어 왔고 그래서 그 병력과 함께 텐령평원에서 거하게 한번 붙었다. 그때는 웬일인지 저 녹안의 마왕의 힘을 발휘 하지 않았기에 꽤 힘든 전투가 진행되었다.

힘든 전투야 오크족과 오크족이 한 것이고 한제국군은 그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꽤 많은 수의 오크족들이 다시 도마후악토에게로 또 한제국군에게로 붙으면서 병력은 그대로 계속 유지 되었다.

결국 한제국군이 계속 마을을 약탈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 도마후악토는 한제국군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들이 한번 승리 했던 이곳 텐령평원에서.

도마후악토의 오른팔이라고 부를 만 한 인물이 한제국에게 투항하고 도마후악토을 배신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 기회에 한제국군도 역시 이번이 끝장낼 작정을 하고 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

한제국군의 앞에 도마후악토을 따르는 오크족들과 그에 반하는 오크족들이 나누어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약간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오크족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다른 민족에게 붙어 같은 민족끼리 싸운다는 것이. 뭐 항상 지들 부족끼리 치고 패고 싸우기는 하지만.

하지만 한제국군 입장에서야 좋다.

둘 다 재기를 못하도록 많은 피해를 당할수록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옥영 단주도 두 군세가 계속 싸우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차례 그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 쓴맛을 보았으니 말이다.

이곳은 강도, 바위도, 특별히 신경 쓸 만한 구릉지도 없다.

오로지 넓게 펼쳐진 초원뿐!

그야말로 기마와 기마가 순수하게 힘만으로 부딪힐 것이다.

적군의 진형은 3개로 나누어져서 초원에 넓게 퍼져 있었다. 그리고 적군의 진형에 맞게 한제국군 역시 3개로 나누었다.

좌,우에 각각 1만의 오크족이 위치하고 중앙에 2만의 오크족이 위치했다.

그 배신을 하기로 한 그 오크족은 한제국군의 좌,우 양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작전에 따르면 그런 후에 상황을 봐서 도마후악토을 포위한다고 했다.

그리고 천황기갑단과 북경수비군은 그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천황기갑단은 필요한 곳에 투입될 준비를 했고 북경수비군은 옥영 단주 아니 그들에게는 대장군을 보호할 것이다.

이런 탁 트인 곳에서 화포대의 화력을 기대하기도 힘들기 때문이었다. 옥항은 전장을 바라보던 눈길을 돌려 저 앞에서 유천 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백마에 올라탄 사내를 바라보았다.

천황기갑단에도 얼마 없는 백마라 눈에 확 들어온다.

저 사람은 이번에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옥항은 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마음에 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 사람의 친구로써는 그렇게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니까.

하지만.

그는 전장에서 만큼은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야 말로 전장을 지배하는 자.

전투의 마왕.

그런 의미에서 기대된다.

이번에는 또 어떤 것을 보여줄지 말이다.

두두두

두두두

“끼요욧!”

“히리 아리 아리리요!!”

오크족들은 서로 괴음을 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한다.

수만의 발굽에 신음했던 이 대지는 다시금 고통을 받으며 신음한다.

수만의 병사가 달려오고 달려 나가는 모습은 정말로 소름끼친다.

옥항이 있는 곳의 땅까지 다 흔들리게 달려 나가는 모습과 전장을 가득 메운 이 괴성과 소음이 그의 피를 뜨겁게 달군다.

해가 뜰 때 시작된 전투이지만 지금은 해가 중천에 다를지 오래 이제 슬슬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변했음에도 전장은 전혀 변화가 없다.

아니 있기는 있다.

적군이나 아군이나 셀 수도 없을 만큼 사상자가 났다는 것.

하지만 전선의 변화는 없다.

아직도 3군데의 전선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 아니다. 자세히 보면 양쪽의 군세는 약간 소극적으로 싸우고 있었고 중앙군만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역시 배신을 한 것이 맞기는 맞는 것인가?’

옥항은 몇 시진동안 이렇게 땡볕 아래에서 말을 타고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뿐 만이 아니다.

모든 천황기갑단의 대원들이 그랬다.

힘들다. 하지만 죽는 것 보다는 낫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옥항은 각오를 다시금 가다듬었다.

이러다가 팽팽했던 전세가 그것이 적군이든 아군이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면 그러면 그때 천황기갑단이 달려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전투는 끝이 날 것이다.

이렇게 지평선이 다 보이는 초원에서는 별다른 전략도 필요 없다.

뒤를 노린다?

뒤를 보아도 지평선이 보인다.

병과의 조합도 없다.

적군과 한제국군 모두 오로지 기마뿐. 북경수비군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저 보조일 뿐이다. 적군에 궁기병이 있지만 천황기갑단은 그런 화살을 피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한제국에게 투항한 오크족들 역시 궁기병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남은 것은 오로지

돌파! 포위!

또 다시

돌파와 포위뿐이다!

“단주님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는 군요.”

“음... 이제 대원들을 투입해도 될 것 같군.”

“예”

그나마 이 초원에서 약간 구릉진 곳에 위치해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옥영 단주와 마길수 부단주는 적선의 흐름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마후악토 휘하의 뛰어난 젊은 장수들 중 둘이 그들에게 투항해 왔다. 그들의 부모와 자식들을 돌려준다면 도마후악토을 배신하겠다고 말이다.

카타쿠악토와 테쿠아후진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넌지시 언제 공격을 감행 할 것인지 알려주었다.

아마도 함정일 것이다.

‘이제 와서야 갑자기 도마후악토을 배신하겠다고? 우스운 소리. 거짓배신인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면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중요. 후후 저 녀석들은 아마도 그것도 모른 채, 아니 알지도 모르겠군. 우리가 자기들의 속셈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그러면 다시 역 공작을 펼치겠지. 뭐. 이러나, 저러나 좋다.

너희들이 가짜 배신을 하든 진짜 배신을 하든 우리로서는 상관없다. 어차피 주력은 천황기갑단. 너희 오크족들은 열심히 싸워 서로 죽이기만 하면 된다.’

역시 투항 한 오크들은 연기를 잘하고 있었다.

양측에 있는 군세는 양군 모두 소극적으로 싸우고 있다. 오로지 중앙군만 돌파를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적군이 서로 더 죽기를 바라지만 더 이상 끌다가는 저번처럼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할 수 있다.

이제 승부수를 띄워야 할 차례.

그리고...

‘호... 중앙군이 돌파를 성공했군.’

적군의 본대가 조금씩 뒤로 후퇴하는 것이 보였다.

‘후후후 어리석은 것들. 그래서 이제 양 측면에 있던 군세와 합쳐서 3면으로 포위를 하겠다는 것이냐? 뭐 일단은 너희들의 장단에 맞추어 주지.’

옥영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천인장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했다.

“10천인대장 노영! 1천인대장 양곽! 3천인대장 순욱민! 5천인대장 악진! 너희들 모두 중앙으로 가서 오크족을 도와라”

“예. 단주님.”

불음을 받은 4명의 천인장들은 자신에게 한차례 고개를 숙였다.

옥영은 그 모습을 보고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다.

“4천인대장 관명! 2천인대장 용호평! 8천인대장 장각! 너희들은 좌측으로 간다. 적군이 포위망을 형성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포위망의 뒤를 다시 포위한다. 중앙에 갇혀 포위된 오크족들은 신경 쓰지 말고 말이다.”

“예. 단주님.”

“6천인대장 관혁! 7천인대장 육청! 9천인대장 환효명! 너희들은 우측으로! 작전은 동일.”

“예. 단주님.”

“나머지 돌발 상황은 각자가 알아서 헤쳐 나가도록!”

옥영은 말을 끝내고 다시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릉의 밑으로 내려가 각자의 천인대에 도착한 천인장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길수 부단주는 옥영 단주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역시나 여유가 있었다. 엄청난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천황기갑단이 질 가능성은 없다.

‘이번 전투 역시 승리로 이끌어 다시는 회복하지 않게 만들어주마!’

옥영은 마길수 부단주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길수 부단주의 입에서 전 천황기갑단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전군(全軍)!! 진군(進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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