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장
5개의 백인대에게 명령을 내리고 뒤돌아갔던 전투의 마왕은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따라 잡았다.
정말 무서운 속도다.
강을 건너고 나자 옥항은 그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바로 적군의 본진의 뒤를 치는 것.
이미 승패는 거의 결정되어 가고 있었다.
오크족은 화포대와 쇠뇌대에게 다가가지 못해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전장 중앙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2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후방에 위치한 적의 본진을 칠 수 있다면 이번 전투는 승리이다. 그래서 그가 왜 강을 건너려 했는지는 강을 넘자마자 알 수 있었다.
강을 건너자 바로 완만한 구릉지가 연속해서 있는 그런 지형이 나왔고 그런 구릉지의 곡(谷, 골짜기)를 지나자 저 편, 저 멀리에 적의 본진이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본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도중에 저 녹안의 사내가 따라 붙었다.
그야 말로 무시무시한 속도,
순식간에 5개의 백인대를 앞지르고는 다시 속도를 줄여 그들에게 다가 왔다.
왠지 그런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강을 건너다 빠졌는지 온몸이 축축이 젖어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54백인대가 전군에 선다. 진형은 항마철삭진. 54백인대는 그동안 나에게 배운 진형으로”
그는 창을 한번 휘둘러 물기를 털어내고는 제일 선두에 서서 진형의 중심이 되었고 다른 백인대들은 그를 중심으로 진을 짜기 시작했다.
그들이 배웠던 것은 서대륙에서 쓰는 전술. 뭐더라 랜스차진가 뭐던가 하여간 명칭은 잘 알 수 없는 그것이다.
5배의 병력을 무너뜨린 그 환상의 기마전술.
그것을 지금 한다는 말이었다.
옥항은 저절로 가슴이 떨린다.
이미 그가 잠깐 동안 보여주었던 그의 전장의 통솔력과 신기에 가까운 능력에 흠뻑 취했다.
그리고 지금 이제 그 환상의 전술을 펼친다고 한다. 저절로 가슴이 뛰며 흥분된다.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이 말이다.
옥항은 쿵쾅쿵쾅 갑옷을 뚫고 나올 듯이 뛰는 그의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진을 짰다.
항마철삭진은 단순히 보면 송곳모양으로 진을 짜서 적을 돌파하는 기본적인 돌파진형이다.
이들.
뛰어난 무예를 가진 자들에게 알맞게 적당히 변형한 진.
흔히 쓰는 어린진과 비슷한 진이었다.
역시 돌파!!!
어차피 적들은 자신들의 뒤가 당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힘들 것이다.
강으로 2면이 막혀 있고 나머지 한 면은 지금 그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너희들의 뒤를 친다.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두두두두두두.
푸히히힝
콰콰콰곽
어둠을 틈타 수백의 기마대가 오크족의 본진의 후군을 후려 갈겼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공격이었기에 오크족들은 더더욱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와하하
좋다.
대단하다.
옥항은 한차례 적을 쑤시고 지나간 후 크게 원을 돌면서 다시 방향을 바꿔 적을 향해 달려가면서 창에 묻은 살덩이를 털어냈다.
와하하하!
대단하다! 엄청나다.
이런 위력일 줄이야.
이렇게 쉽게 뚫어 버릴 줄이야! 하하하
한차례 기습을 받았지만 그래도 도마후악토의 친위대였기에 장내를 수습하고 자신들의 돌격에 대비 했다.
하지만 중보병으로도 막지 못했던 돌격이다.
기마들로는 당연히 막지 못하지!
‘지금처럼 너희가 가속력을 얻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경우에는 특히!!’
두두두두
콰과과고과
부딪치는 족족 말과 함께 오크족 병사들이 쓰러지거나 뒤로 날아가 버린다.
오크족의 궁기병들도 이미 이렇게 어두워 진 때에는 그 효용을 발휘하기 어렵다. 오크족들이 주로 사용하는 반월도 역시 가속력을 얻어 서로 부딪치는 경우에는 피해가 클지 몰라도 지금처럼 가만히 서서 막는 경우에는 막기 힘들다.
“와하하하! 우리를 무엇으로 막을 소냐!!”
한차례 다시 한 번 오크족의 본진을 뚫고 나간 꿈틀대는 어둠의 덩어리들은 방향을 바꾸어서 이번에는 측면을 치고 들어갔다.
옥항은 사정없이 창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속도를 줄이면 안 된다고 들었지만 지금처럼 자신들을 막을 수 있는 병사들이 없는 경우에는 그냥 베어나가며 갈 수 있다.
청성신전에서 배운 무공?
이미 다 잊어 버렸다.
신전에서 가르치는 검은 애초에 살기가 부족하다.
살기가 있는 검들도 있지만 그는 배우지 않았다.
기마를 타며 적을 돌파하면서 무공을 펼친다? 그런 것은 필요 없다.
그냥 막고 베고 적이 안 맞으면 그냥 지나치면 되는 것이다.
다음번에 와서 다시 베어버리면 되니까.
적군은 나를 막지 못한다!
그것이 지금 옥항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은 저기 저 녹안의 마왕.
그저 저 사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오크족들은 알아서 떨어진다.
풉.
“하하하”
옥항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와 참질 못했다.
그의 모습을 보니!
그 사람과 함께 있다 보니 전장의 치열함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도저히 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단 말이다!!
그렇게 용악이 이끄는 별동대가 오크족의 본대, 후군을 기습함으로써 진령하의 실질적인 전투는 끝을 맺었다.
오크족들은 부상당한 도마후악토을 보호하기 위해 무리하게 퇴각을 감행했고 그 와중에 대부분의 오크족이 사망을 하고 말았다.
*****
진령하 에서의 전투가 끝난 후 오크족은 오크족 특유의 기습작전을 실행하였으나 워낙에 수가 적고 정예군인 천황기갑단과 북경수비군은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내며 천천히 오크족들을 압박해 갔다.
한차례의 대패로 인해 신임을 많이 잃은 도마후악토이었기에 수많은 오크부족들이 옥영이 이끄는 천황기갑단에 몸을 의탁해 왔다.
천황기갑단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부족이나 도마후악토에게 붙은 부족과 마을을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하였기에 도마후악토으로서는 다시 한 번 패배를 뒤집을 큰 전투를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천황기갑단의 약탈을 막기 위해 보냈던 자신의 최측근인 오르악타이와 타우노호카가 사망함에 따라 도마후악토로서는 더욱이 어쩔 수 없는 회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백인장님,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합니까! 어차피 이기고 있는 전쟁이잖습니까! 그냥 노예로 팔아도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까지 찾아내서 죽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옥항은 무서움도 잊은 채 분노와 죄책감이 가득한 붉어진 두 눈으로 용악의 검붉은 도를 막아내며 용악의 도의 먹이가 될 뻔 한 어린오크를 잡아당겨 자신의 뒤로 숨겼다.
“왜! 왜 갑자기 이러시는 겁니까! 이렇게 안 죽여도 되는 것 아닙니까! 꼭 어린오크들 까지 다 죽이지는 않아도 되는 것 아닙니까.”
옥항은 울어서 눈이 팅팅 부은 어린오크가 자신의 손을 꽉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을 보고 더욱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글썽이며 용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녹색의 안광이 연기처럼 흐느적거리며 흘러내린다.
그 속에서 간간히 푸른 불꽃이 터져 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 모습만으로도 무섭지만 수십 번 겪어봤지만 그 눈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더 무섭다.
청성에 있을 때는 설마 이런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전쟁터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 심마에 걸린다고 항상 자신에게 조심, 또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심마에 걸린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심마에 걸린 사람의 눈이 저런 눈이 아닐 것이다.
‘그럼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이냐! 나도 오크족들을 탄압하는 것은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도가 지나치지 않느냐! 아무리 전쟁을 쉽게 한다고 하지만. 그래 그것도 이해 할 수 있다.
전쟁이니까.
그런데 대체 당신은 왜 이리도 사람을 무심하게 죽이는 것이냐!
당신 눈에는 나도,
이 사람들도,
밤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들도,
가끔씩 울어대는 새들도,
당신이 키우는 고양이도 모두 같은 존재로 보이는 것인가?
그런 거야?
그래서 그렇게 아무런 가책도, 자책도 없이 그냥 죽이는 것인가!
그래 그것이 화가 난다! 당신의 그런 모습이! 지금 나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점 흐트러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이!’
유천과 다른 54백인대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옥항과 용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옥항과는 달리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이런 일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넘어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래.
그렇다 옥항의 마음과 같은 심정이다.
그들도 인간이다. 불쌍한 것은 불쌍한 것이다. 그래서 성인 오크와 나이든 오크들 말고 어린오크들은 그냥 모른척하고 내버려 두기도 했다.
위에서도 그런 것은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이끌고 있는 저 전투의 마왕을 그렇지 않았다.
그저 눈에 띄면 죽였다. 아무런 감정도, 망설임도 없이.
그러다 옥항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다.
저 둘 사이로 끼어들어 말려야 하지만 다른 백인대원들 모두 망설였다.
못하겠다.
무섭다.
저 사람이.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무서운 존재가 바로 저 사람이다.
옥항이나 유천처럼 목숨을 여벌로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저 사람에게 덤벼들고 싶지는 않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유천이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유천 성격으로 보아 끼어 들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전에 검붉은 칼이 옥항에게 날아가지 않고 칼집으로 들어갔다.
‘정말 들어간 거 맞아?’
백인대원들은 백인대원들을 서로서로 바라보았다. 들어간 것 맞댄다.
“지금
너의 행동.
너의 마음.
그것이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겠다.
죽음 앞에서도 너의 마음이 이러한지 두고 보겠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고통 앞에서도 너의 마음이 이러한지 두고 보겠다.
타오르는 분노 앞에서도 너의 마음이 이러한지 두고 보겠다.”
그의 음성은 전과 전혀 다른바 없이 고저 없는 목소리였지만 다른 백인대원들의 가슴속에 깊숙이 파고드는 냉혹한 얼음 같았다.
심지어 유천에게 까지도.
“다음전투가 있을 때까지 쉬겠다. 그때 부르도록.”
-후후후 멋졌어. 아직은 귀여운 어린 마물아
-그래, 분노 앞에서 그 마음이 유지될지 나도 궁금한 걸? 너처럼 말이야. 후후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전에 너 자신부터 돌아보는 것이 어떨까?
-뭐. 너는 어차피 지옥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자. 그 유약한, 세상을 모르는 어린 인간의 말에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안 그래?
-후후후. 너는 더 큰일을 해야 하는 자. 세상을 피의 구덩이로 만들자 이니 말이야
‘닥쳐라. 이 빌어먹을 놈들아. 니들이 떠들지 않아도 알고 있다. 미친놈들. 너희는 대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세상을 피의 구덩이로 만들 놈?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 하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나를 이렇게 많든 빌어먹을 하늘이며 나를 이렇게 몰아넣은 빌어먹을 신뿐이다!’
-후후후. 또 분노하는군. 대체 너의 분노의 대상은 누구이며 너의 증오의 대상은 누구이냐.
-킥킥 너의 분노의 근원은 무엇이며 너의 증오의 근원은 무엇이냐
-과연 대답할 수 있나? 반역자의 아들. 용악? 대답할 수 있겠나?
-호호호 나의 사랑스런 어린아이를 너무 들볶지 말라고, 아이야 걱정 말아라. 너는 조금씩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단다. 그것이 비록 너를 파멸로 이끌 것이지만 말이다. 오호호
‘제발 좀 닥쳐... 제발 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란 말이다!’
이 녀석들은 확실히 달랐다. 이 녀석들에 비하면 전의 그 망령들을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용악의 분노와 증오가 망령들에게 향하면 아침햇빛에 사라지는 안개처럼 사라지던 그 놈들과는 달리. 이 녀석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체 없는 혼을 가르는 이 검붉은 도(刀)로도 배어지지 않는 놈들이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것이냐. 왜. 저승의 강이라고? 지옥이라고? 그것이 뭔데! 그것이 뭔데 나한테 이러는 것이냐!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로 그 저승의 강인지 뭔지 하는 데 들어가지도 않았다!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고통을 얻어 갔으니 그 대가로 또 다른 고통을 얻어가라는 그 말이냐!
대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대체 뭘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냐! 내가 잘 못한 것이 무엇이냔 말이다!’
용악은 막사안의 간의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검붉은 도를 뽑아 들었다.
도를 뽑아 들자 언제나처럼 웅웅 울어대며 작은 귀곡성을 뿜어낸다.
탁자에 누워 졸고 있던 주홍이 칼이 빠져나오자. 털을 곤두세우며 으르릉 거린다.
‘대체... 대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뭐란 말이냐! 날 내버려 둬!
난 그저 인형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뿐이다!
단지.
다만, 그 길이 힘들고 어려운 것뿐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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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흑영기병대 - 256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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