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75화 (75/107)

75장

“좋군.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군.”

“예. 단주님 저기 전선 중앙에서 46백인대를 이끌고 있는 진명헌이라는 자, 정말 대단하군요. 하지만 저렇게 혼자서 날뛰다가 힘이 다 빠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옥영은 진명헌을 바라보고며 그런 말을 하는 마길수 부단주에게 진명헌에 대해 말을 하려다 참았다.

‘아직은 그의 정체를 모른다. 괜히 말해서 이상한 오해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 지금은 그저 잘 써먹으면 충분하니까.’

*****

역시 전투는 용악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십자포화를 견디지 못한 오크족은 반으로 갈라져 양 측면을 노리고 있고 46백인대를 중심으로 한 4.6천인대가 중심부로 파고들며 오크족을 점점 양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다른 천인대들은 오크족이 화포대와 쇠뇌대에 다가가지 못하게 잘 막고 있었고 화포대와 쇠뇌대는 길게 늘어서서 뭉쳐있는 오크족에 포화를 날려주고 있었다.

‘좋군. 이 상태로 라면 무난히 이길 듯 하군.’

“단주님! 우측의 강의 낮은 부분으로 진령골에 있던 오크족 2만이 도하를 준비 하고 있습니다.”

“저한테 맡겨 주시죠. 단주님 북경수비군과 함께 도하 하는 것을 막겠습니다.”

아까부터 계속 자신도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발버둥 치던 제 8천인대 천인대장 장각이 옥영에게 소리쳤다.

‘어차피 만약에 대비해서 싸우지 않고 있던 천인대니까 빠져도 상관은 없겠지. 좋아. 그렇게 원하더니. 가라.’

“좋아! 오른쪽에 있던 북경수비군 일천과 함께 적의 도하를 막아라!”

“예! 와하하아! 그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제 8천인대의 장각이 뛰쳐나간 후 옥영과 마길수는 다시 전장을 살폈다.

‘흐음...’

왼쪽은 아직 변함이 없었다. 아니 아까와 똑같다. 오른쪽이나 중앙의 경우 밀리기도 하다가 밀기도 하다가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천천히 밀어내고 있었지만 왼쪽의 전선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왼쪽은 변함이 없군.”

“예, 단주님 이상할 정도로 변화가 없습니다. 아마도...”

마길수 부단장은 말을 하다가 뒤를 흐렸다.

‘아마도 뭐? 그나저나 저쪽은 그 건방진 전투의 마왕이 있는 곳 아니던가?’

“그 전투의 마왕이 있는 곳이 저곳이지?”

“예.”

‘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기에 저렇게 한 치의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냐. 아군들뿐만 아니라 적군까지 말이다. 궁금하군... 으음??’

한 마리 범 같은 병사가 그 전투의 마왕을 만나고는 다시 악진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 보았지만 옥영 자신이 아는 아이가 맞는 것 같았다.

아니 맞았다. 미안하게도 옥영이 아들보다 더 좋아하는 그의 손자인 옥항이니 말이다.

‘그런데 저 아이의 무예가 저리도 뛰어 났던가? 저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그 전투의 마왕에게 무언가를 배웠다고 들었지만 그것은 54백인대가 단체로 함께 배운 것이지 옥항만 따로 배운 것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흐음... 모르겠군. 그런데 갑자기 악진 천인장에게 왜 간 것이지? 흐음??‘

옥영 단주는 왼쪽의 전장 모습을 다시 보고는 의문을 담은 눈썹을 움직였다.

‘백인대가 단체로 이동하는군. 악진이 오히려 북경수비군이 있는 곳으로 후퇴를 하면서 말이야...’

하나

셋, 넷, 다섯,

옥영은 백인대의 숫자가 적혀있는 깃발의 개수를 세어 보았다.

‘다섯 개의 백인대라. 전투의 마왕이 저들을 지휘를 하는 것인가? 악진이 그것을 승낙했고. 다른 백인장들 모두 그것을 승낙한 것인가? 모르겠군.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하지만 옥영의 이런 의문은 잠시 후에 풀렸다.

이 전투의 승리를 쐐기를 박으면서 말이다.

*****

녹색의 안광이 줄줄 흘러나오는 사내의 뒤로 수백의 기마가 빽빽이 달라붙은 채 강가를 가로지르며 달려 나간다.

옥항은 물론이거니와 뒤따르는 다른 이들도 지금까지 기마전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밀착해서 달린 적은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발이 닿을 정도로, 타고 있는 말과 말이 투레질을 할 때마다 머리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밀집해서 달리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위험한 행동이다.

한명이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진형이 무너지는 것은 둘째 치고 그야말로 다 죽는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은 그런 무모한 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녹색의 안광을 내뿜는 전투의 마왕이 앞장서서 말이다.

강가에 바로 옆에 붙어서 말이 땅을 힘차게 밟을 때마다 물방울이 조금씩 튀어 오를 정도로 가까이 붙어 달리고 있지만 말을 달리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옥항을 비롯한 다른 백인대들 보다 앞에 서서 달려가는 저 전투의 마왕은 신기에 가까운 기마술로 그야말로 말의 옆에 달라붙어서 창대 끝으로 땅을 그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고.

옥항은 그가 지나간 길로만 말을 이끌고 달려간다.

‘대체 저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이냐. 저렇게 창으로 땅을 그으며 달려가는 것만으로 우리, 수백의 기마대가 달릴 수 있는 땅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냐!!? 그 촌각의 시간에!’

오크족이 자신들을 막으려 하지만 그들은 강물에 충분히 적신 물렁한 흙에 말이 빠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쪽은 강가에 너무 붙어 있기에 애초에 기마대가 돌격을 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오크족들도 돌격을 하지 않은 것이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곳을 달려 나간다!

세상에 물을 튀기며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 본적이 없다!!

이런 미치고 황당한 일을 자행하는 그 뿐만 아니라 그가 타고 있는 저 파란 눈의 백마 역시 대단하다.

대체 어떤 종(種)과 교배를 했기에 파란 눈을 가진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은 오크족, 말에 대해서는 최고라고 자부하는 녀석들의 말조차 빠지면 빠져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곳을 저 녀석은 마치 평지라도 되는 양 뛰어 다닌다.

그래서 지금 옥항을 비롯한 다섯 개의 백인대원들은 정말 황당하게도 옆에는 오크족을 두고서 오크족과 마주치며 반대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오크군들의 황당해 하는 표정이 보인다.

‘그래, 이러고 있는 나도 황당하다.’

그렇게 땅바닥을 긁으며 달려가던 그 녹안의 사내는 벌떡 일어나더니 강의 어느 한쪽을 창을 들어 가리켰다.

낮은 고저 없는 목소리였지만 여기서 달리고 있는 자들 중 누구도 그 목소리를 못들은 자들은 없었다.

사방에서 고함을 지르고 말발굽 소리가 가득 매우고 있음에도 말이다.

“저기를 건넌다. 진형은 칠성마참진”

그리고는 그 녹안의 사내는 속도를 하나도 줄이지 않은 채 고삐를 잡아 당겼다.

그가 타고 있는 백마의 얇은 발목이 부러진 듯 꺾어지고 백마의 날씬한 등허리가 반으로 접혀진 듯 꺾어지면서 그 둘은 확 방향을 바꾸고는 자신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뭐야... 저 말은... 저기서 저렇게 선회가 돼? 그게 가능하냐? 이런 속도에서 저렇게 90도로 회전을 하는 것이?’

유천과 옥항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서로를 바로 보았다.

‘형도 어이가 없군요.’

옥항은 피식 웃고는 그가 시킨 대로 진형을 바꾸었다.

마왕(魔王)이 타는 마왕(馬王)이다.

그가 가리킨 곳은 바로 갑자기 폭이 좁아진 강의 어느 부분. 저기를 건너라는 뜻일 것이다.

강을 건널 때 지금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가다가는 죽기 딱 좋다.

수심이 낮고 높고의 문제가 아니라 강바닥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깐 말이다.

옥항과 유천은 서로 같은 조를 이루며 진을 형성했다.

산개에 가까운 진이지만 7명이서 한 방위를 점하고 다시 7조가 한 방위를 정하는 진이니 산개를 하는 것 보다는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데 왜 저 뒤로 달려 나간거지? 무엇을 봤기에?’

옥항은 그런 의문을 가졌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전장을 지배하는 자.

적어도 이곳에서 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

크르륵...

쿨럭...

퉤엣!

“젠장...”

알 수 없는 시큼한 무언가가 목구멍을 넘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주체 할 수 없는 살의가 온몸을 뜨겁게 달군다.

적군의 피가 비늘에 튀어 수증기로 변해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허공으로 뿜어져 나온다. 알 수 없는 희열이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자신의 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면서 뜨겁게 달구어진 그의 성기가 하늘 뚫는 듯 높이 고개를 쳐든다.

녹색의 안광은 더더욱 진해져 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푸르른 귀화가 눈 밖으로 튀어나와 불꽃을 피워 낸다.

‘대체... 뭐냐... 이것은 뭐단 말이냐... 뭐가 나를 지금... 뭐가 나를 이렇게 만드는 것이냐!!!!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냐! 갑자기 왜! 대체 왜!!!! 내가 이런 발정난 개새끼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냐!!!’

-후후... 드디어 진정한 마인이 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지.

-멋져. 정말 사랑스럽군. 나까지 타오르는 군 그래. 유후... 진정한 마(魔)가 인세에 강림하는 것인가?... 후후 영광이야

-큭큭큭. 저승의 강에서 그저 다른 이의 기억만 얻어 갔다고 생각 하면 곤란해.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지.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것이 세계의 법칙. 후후후 자. 네가 원하는 것을 행하라.

-저들의 피를 마셔라. 나의 피를 마셔라. 그것은 우리가 너에게 주는 내 피의 잔이니. 너는 그것을 마시고 진정한 너를 일깨워라.

‘누구냐!!!

너희들은!!!

망령들이 아니었던 것이냐!!

갑자기 왜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냐!!’

지금까지의 망령들의 목소리는 그야 말로 망령들의 목소리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별할 수 없고 어린아이인지 늙은이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저 잔뜩 갈라진 혼탁한 목소리.

하지만 이 녀석들은 달랐다!

방금 똑똑히 들었다.

‘요사스러운 마녀의 목소리를!!!’

용악은 요사스러운 녹색 안광 사이로 피눈물을 흐르면서 소리 없이 절규했다.

‘네 녀석들이 무슨 존재이든지 상관없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적어도 내가 이루는 것을 이루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며! 지옥의 마왕과 싸워서라도 지옥에서 벗어날 것이다! 너희들 따위에게 굴하지는 않는다.’

-후후후후. 귀여운 어린 아이여. 그럼 너는 왜 지금 저 불쌍한 이들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냐

-어째서 너는 너를 피해 도망가는 저들의 심장에 창을 꽂는 것이냐

-어째서 너는 너와 관계도 없는 저들의 목을 가르는 것이냐!

-너의 몸속에서 타오르는 그 분노와 증오는 무엇이더냐

‘시끄럽다!!!

너희들과는 상관없는 일!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너희들이 나에게 아무리 뭐라고 해도. 아무리 어쩌려 해도 나는 굴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에 대한 나의 맹세. 나에 대한 하늘의 맹세이다.’

차갑다.

‘젠장... 빌어먹을...’

용악은 백풍이 자신을 강에 내던지고 나서야 차가운 강물을 몇 번 들이마시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뭐였지. 방금... 대체 뭘 한 것이냐...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지 백풍? 응?’

용악은 어둠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백풍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 전에는 파란 눈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바뀌었다. 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안 그러냐?’

백풍은 용악의 비늘을 깨물어 용악을 일으켜 세웠다.

‘그래. 일단은 이번 전투가 끝나고 생각하자. 일단은 말이야...’

용악은 백풍의 도움을 얻어 일어난 후 백풍에게 올라탔다. 고개를 들어 보니 푸르른 만월 하늘 한쪽 귀퉁이에 걸쳐 이제야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요염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써 보름달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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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흑영기병대 - 256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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