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73화 (73/107)

73장

이 사람.

녹안의 사내.

전투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자가 옥항의 천황기갑단. 정확히 말하면 54백인대에 합류하게 된 것은 고작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워낙에 명성이 높은 그였고 다른 대원들 역시 저 사내가 옥영 단주와 한판 한 것을 알았기에 그의 명령에 대해 뒤에서 뭐라 하지는 않았다.

뭐 사실 그의 앞에 서면 무서운 것이 사실이니까.

무공의 여하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무섭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어찌됐건 그 후로 이 사람은 46백인대의 진명헌.

옥항을 잠깐 가르쳤던 그 사람과 함께 천황기갑단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진명헌 그 사람은 통제가 안 되던 46백인대를 의외로 잘 이끌어 갔고 또 워낙에 46백인대에 강한 이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에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백인대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옥항의 54백인대는 원래부터 무림인들보다는 군인들로 이루어진 곳이었기에 -마길수 부단주는 무림인들 보다는 군인들이 나을 것 같아서 용악을 이곳으로 보낸 것이었다. -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던 부대였는데 이 사람이 오고 나서는 완전히 침묵의 백인대로 변해 버렸다.

물론 훈련의 성과는 46백인대에 못지않게 매우 우수하다. 하지만 워낙에 말이 적은 그였고 그런 그 밑에서 훈련을 받던 녀석들 역시 군인답게 시끄러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완전히 무슨 유령의 부대로 변해버린 듯 했다.

예외로 그 사람과 함께 온 유천 그 만이 이 침묵의 부대 가운데 유일하게 시끄러운 존재라고 할까.

옥항은 그런 생각을 하며 천막을 나서는 용악의 뒤를 따라 나갔다. 용악을 비롯한 다른 백인대들의 천막은 다른 후속부대가 챙겨 줄 것이다. 그들은 미리 앞서 나가 전장의 고지 중 유리한 곳을 점령하러 가는 것이니까.

용악이 도착하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54백인대는 바로 출발했다. 이미 다른 5천인대에 속한 백인대들은 출발했다. 그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뭐 그래도 사실 별 차이는 없엇다.

오크족을 이끄는 족장이 누구더라? 도마후악토 라던가? 뭐던가 하여간 어쨌든 그 놈이 진령하에 먼저 도착해서 진을 치기 전에 천황기갑단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야 했다.

대충 듣기로는 병력이 10만 정도라고 하던데. 뭐 그 정도는 천황기갑단과 화포대와 쇠뇌대로 이루어진 북경수비군이라면 싸워 볼만 하다.

병력차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화포이며.

무림인이다.

그리고 54백인대를 이끄는 저 전투의 마왕도 있다.

옥항은 자신의 앞에서 달려 나가는 백마에 탄 그 사내를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

‘흐읍..’.

용악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느 순간부터. 아마도 현상 그 녀석에게서 도를 다시 찾았을 때부터 이러는 듯 했다.

이유 없이 눈이 아프다.

그것도 꽤나.

그렇다고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단지. 짜증날 뿐이다.

‘부작용이라 이건가. 주홍? 그래도 어둠 속을 꿰뚫는 눈을 가진 것에 대한 대가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않겠는가?’

밤이 돼서 그런지 그의 주위에 망령이 달라붙는 것이 그의 털끝 하나하나에 느껴졌다.

예전에는 망령들의 속삭임이 들려오긴 했지만 실체적으로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피를 너무 많이 보았거나 만월(滿月) 일 때에만 아지랑이처럼 흐느적거리는 무언가가 보였을 뿐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 놈들이 보였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빌어먹을 놈들이. 젠장...’

용악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상태가 약간 걱정이 됬다.

그래도 마도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피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단지. 어쩔 수 없는 것뿐이다.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그거나, 그거나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 일 테지만.’

-웃기고 있군 큭큭 넌 인간이 아니라니까!

-왜 자꾸 인간인 척 하는 거지? 인간은 너처럼 살지 않아! 절대로 너처럼 피 속에서 뒹굴며 살진 않지!

-이힛힛힛 불귀도에서의 일을 벌써 잊은 것이냐! 넌 비인의 존재. 인간에서 벗어난 존재가 될 것이다.

전과는 다르다. 용악이 처음 이 도(刀)를 다시 잡기 전과는 달랐다.

그때는 이 녀석들이 그저 저주에 찬 목소리로 두서없는 말을 그냥 뿜어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녀석들이 갑자기 지능이 생긴 것 같았다. 논리 정연하고 그의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이 녀석들이 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 녀석들에게 한 발짝 가까워 진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대로 지지 않는다. 절대로. 적어도 나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는 말이다!!’

-후후후후 얼마나 갈지 두고 볼까? 너의 그 얄량한 각오가?

-후후후. 넌 이미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어. 무엇을 해도 빠져 나올 수는 없지. 너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파멸의 구렁텅이에

-큭큭 기대되는군. 이번엔 또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을 밟고 지나갈 것이냐? 또 어떤 핑계를 대며 자기위안을 하면서 밟고 지나갈 것인지 말이야. 후후후 기대하겠어. 용악. 반역자의 아들.

‘뭐라고... 반역자의 아들이라고...’

용악은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서서 갑옷 안으로 손을 집어나 가슴을 움쳐 쥐었다.

아니 심장을 뽑아내듯 움켜쥐었다. 마치 막아두었던 둑이 터져 사방으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억눌려 있던 적의와 분노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마치 상처 입은 짐승처럼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신음소리와 그르럭 거리는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살기가 푸르른 귀화로 실체화되어 그의 녹색의 두 눈 밖으로 튀어 나온다.

“큭......”

용악의 뒤를 따르던 다른 대원들은 갑작스럽게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살기에 대항하기 위해 기를 끌어 올렸다.

정말로 진득한 살기다. 달라붙으면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살기다.

‘대체 왜..?’

전마들은 살기에 놀라 날뛰지도 않았다. 놀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감당하고 인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살기였기에 그저 온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다.

‘반역자라고! 반역자라고!’

용악의 머릿속에 이곳에 오기 전 북경에서 조비대장군과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에게 반역자의 자손이라는 오명을 벗을 기회를 주마. 그 기회를 얻기 위해서 너는 너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라. 바로 천황기갑단에서!!-

‘뭐라고!!!!! 네 녀석이!!! 찢어 죽여, 죽는 날까지 한 점 남김없이 씹어 먹어도 부족할 네 녀석이 감히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반역자로 만든 것이 누군데 감히 네 녀석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냐! 그 자리에서 네 녀석을 죽여 버리려다 참았다. 내가 겪었던 고통의 수십배 수백배의 고통을 선사해 주기위해 참았다.

너와 관계된 모든 이들.

반역죄를 주장한 모든 이들!

너의 9족을 모조리 죽여 버리기 위해 참았다. 그런데 너는 나에게 그따위 말을 했던 것이냐!! 감히 나에게! 이런 나에게!’

-큭큭큭.. 흥분하지마.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어. 네 녀석은 너의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생각하지만 너는 영원히 인형일 수밖에 없어. 전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하... 복수라. 복수라는 명분으로 너의 살인욕구를 정당화 시키려 하지말지. 구차하게 보이는군. 킥킥

‘너희들이!! 너희들이 대체 무엇을 안다고!!’

용악은 자신이 들고 있던 창을 땅에 꽂아버리고 허리에 매단 도를 순식간에 뽑았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면서 피처럼 검붉은 도신이 혀를 날름거리듯 도집에서 빠져 나왔다.

끼야야야악

도집에서 나온 검붉은 도는 무시무시한 귀곡성을 내질렀다.

‘너 마저 나한테 이러는 것이냐! 아니군 너는 그래도 나의 뜻에 따라 주는 구나! 죽여 버릴 테다! 너희들. 나를 막는 자들 모조리 다 죽여 버릴 테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베기로 용악은 허공을 향해 수십번 내리 그었다.

-후후후. 너무 흥분하는군. 그래. 오늘은 이만 하지.

-그래. 오늘은 너무 흥분하는군. 별일 아닌데 말이야. 내일도 열심히 죽이려면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좋겠어.

“으와와와!!!!!”

용악의 살기 가득한 처절한 외침은 지금 이곳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심장을 후벼 팠다.

용악이 이끄는 54백인대는 진풍령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멈춰있었다. 그냥 그렇게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산에 위치한 꽤 큰 계곡이었다.

다른 5천인대 소속 백인대와 3천인대는 벌써 진풍령 안쪽에 있는 오크군을 기습했다고 병사하나가 와서 보고해왔다.

어제 밤, 용악의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인대 병사들은 뭐라고 하지도 그를 피하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용악는 감탄했다. 그가 발작을 일으켰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전에 이 녀석들 말고 다른 병사들이 있을 때는 난리도 아니었다.

‘이래서 강병인가? 그건 그렇다 치고 숨어 있는 오크군이 천여 명 정도라고 했으니 두개의 천인대가 기습을 했으면 지금쯤이면 마무리를 지었을 테군.’

천황기갑단은 거의 5배가 넘는 적과 싸워도 지지 않을 정도의 무력을 가진 집단.

수적 우위를 질적 우위를 통해 뛰어넘는 특수군 중 하나. 그랬기에 용악은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고 질풍령 통과하고 바로 진령하로 향해 나아갔다.

진풍령을 통과하자 진령하가 녹색의 평야를 가로지르며 구불구불 꺾여 흘러내려 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쪽 멀리서 달아나는 오크군을 뒤쫓는 천황기갑단의 모습이 간간히 들어왔다.

‘흠... 이곳에서 아마도 한바탕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넓은 평원이라면 오크족이 좋아하겠지. 기습이 그들의 특기라지만. 10만이 넘는 병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당연. 수적우위에 있을 때에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최고의 전술이니까. 그렇다면...’

용악은 자신이라면 어떻게 전투를 이끌 것 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측 화포는 무려 300문, 쇠뇌 역시 300문, 오크군이 화포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 아마도 기마대로 돌격해 오겠지. 궁기병도 있을 것이고. 그럼... 일단은 흑풍기갑단으로 기마대를 견제하면서 화포대와 쇠뇌대를 주력으로 이용하겠지. 괜히 흑풍기갑단으로 정면 승부를 해서 병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야. 그렇다면 저곳에 화포대와 쇠뇌대를 배치하는 것이 좋겠군. 물길이 굽혀지는 곳이니깐 적어도 측면과 후방은 방어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그런 다음...’

-어차피 다 죽을 텐데 무슨 생각이 이렇게 많으시나.

-설마. 네 뒤에 있는 저 녀석들을 살려 보겠다는 생각은 아니겠지? 큭큭큭 언제부터 네 녀석이 그런 것을 신경 썼다고 말이야. 큭큭. 그럼 지금까지 죽어온 이들에게 미안하지. 안 그래?

‘글쎄? 미안? 별로 미안하지는 않아. 그들이 원하던 죽음이었으니까. 내가 강요했나? 그렇지는 않지. 살인계획이라... 그래 살인계획이다. 이미 칼을 든 순간 살인계획은 세운 것 아닌가? 지금까지 격어 봤으면서 아직도 모르겠나? 겨우 그 정도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큭큭. 알고 있다. 저주 받은 장군이여.

-반역자의 아들이라는 너의 유일한 약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주홍이 너에게 남긴 상처를 우리는 알고 있지

-킬킬킬. 뭐 이러나, 저러나. 한번 잘 해보라고. 해가 떠오르는군. 나중에 다시 보지. 광기에 휩싸인 피의 밤에 말이야 훗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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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흑영기병대 - 256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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