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장
설기룡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 나가는 녹안의 사내와 어둠에 묻혀버린 23명의 병사들을 따라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보통 기마대의 돌격은 보병전이 시작되고 난 후 난전이 된 상태에서 적의 양 측면을 파고들어 진형을 흩트리거나 적의 양면을 치고 나가며 포위해서 뒤를 치는 것이 정석이다.
절대로 전투 초반부터 기마대가 보병대에게 뛰어드는 일은 없다.
뭐 무능한 지휘관이라면 그런 명령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전투 초반에는 기마대끼리 서로를 견제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보병대를 향해 뛰어들고 있는 무모한 장군의 뒤를 따르고 있다!
흔히들 기마대가 뛰어들면 대기하고 있던 보병대가 진형이 흩어지며 기마대가 그 보병대의 진형을 뚫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기마대가 대기하고 있는 보병대에 달려드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기마대는 기마대와 기마대의 싸움에서나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하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런 날씨에는 다르다!
그리고 자신을 이끄는 저 장군이라면 다른 생각이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특별히 배운 이 창술과 진형 역시 기마대는 보병대에게 뛰어 들 수 없다는 사실을 뒤엎어 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어둠과 빗줄기를 타고 스며든 어둠의 물결은 허영인이 이끄는 범천성의 병사들의 진형을 파고들었다.
콰과과과광
‘흐음... 역시. 변형기병돌격(improved lance charge)이 되기는 되는군. 일회용인 기병돌격을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불편해서 바꾸어 봤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더 쓸만하군.’
용악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말발굽소리에 떨고 있던 범천성의 궁병대의 측면을 파고들면서 자신의 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의 창날이 달린 새로 만든 창... 역시나 좋군. 그나저나 그래도 뒤따르는 녀석들이 꽤 선전하고 있군. 호표기 녀석들은 두 말 하나마나 잘할 것이고. 그럼. 한 움큼 파먹었으니 이제 다시 빠져야겠지.’
검은 물결들은 범천성의 병사들을 측면에서 돌격해 들어와 한차례 쑤시고는 완만하게 방향을 돌리고는 왔던 방향에서 정확하게 90도를 돌려 다시금 빠져나갔다.
‘대체... 뭐지 방금?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뚫어 버릴 수 있는 것이지?
대체 뭘로?’
허영인은 자신의 병사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고 대책을 새우기도 힘들었다. 이미 사방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거기다가 거세게 내리는 빗줄기는 자신들의 시야를 가린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적군보다 한 곳에서 뭉쳐서 움직이지 않는 자신들이 시야의 영향을 더 받는 것이 당연하다.
‘젠장. 그래도 적의 기병은 소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는 없지.’
“기마대를 이끌고 적의 뒤를 쫒아라! 여기는 내가 맡겠다.”
허영인은 자신의 부관에게 그렇게 소리치고는 다른 장수들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적은 모든 곳으로 공격이 가능하다! 궁병대와 화포대는 빨리 안쪽으로 이동하고 중보병들은 대 기마용 진형으로 변형!”
하지만 허영인과 다른 장수들이 명령을 채 다 내리기도 전에 다시금 검은 물결들이 파고들었다.
콰과과고광
그야 말로 송곳처럼 파고들어서 어찌할 틈도 없이 우측의 화포대를 파먹고 다시 빠져나갔다.
‘젠장! 이래서야 어디서 올지 예측 할 수가 없잖아! 부관은 뭐하고 있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저기서 부관이 적의 뒤를 쫒아 기마대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 보인다.
‘젠장. 약한 부분부터 뜯어 먹겠다. 이거냐! 젠장. 날씨가 이래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군. 아니. 그래도 날씨가 좋은 것보다는 낫다! 화포의 화력보다는 기마대의 화력이 더 약하니까!’
“빨리빨리! 움직여라! 적군은 소수다!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난전으로 만들어라!”
두두두두두
콰괔과과광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르는 말발굽소리와 함께 다시금 어둠의 물결들이 파고든다.
이번에는 최전방에서 좌측에 있던 중보병 들이다.
‘젠장. 우리군의 양쪽으로 돌면서 가속력을 얻는다는 것인가! 중보병으로 막고 있는데도 저렇게 속수무책으로 쓰러질 수 있는 건가!’
그 어둠의 물결의 최전선에 서서 달리는 백마가 얼핏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 있던 자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녹색의 빛도 함께 보였다.
부관이 저 물결의 뒤를 따라 잡는 것이 보인다.
‘그래 그렇게 가속력을 얻지 못하게 방해만 하면 돼! 아직 병사들은 많이 남았다!’
하지만 그 어둠의 물결은 다시금 굶주린 늑대처럼 양 때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허영인은 보았다.
녹색의 눈에서 터져 나오는 푸른 귀화와 그의 입가에 머물던 비릿한 웃음까지도!!
.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자신이 배운 것이 정말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
적군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분이 너무 좋다.
이것은 마치 신세계를 맛본 기분이다!
설기룡은 전투의 마왕을 따라 적을 파고들어 다시금 뚫고 나오는 자신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대단하다.
당신은 정말 엄청나다!
이런 것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적군은 자신의 창을 막지도 못한다.
자신들은 유령처럼 어둠속에서 나타나 적을 할퀴고 지나간다. 저 선두에선 23명의 검은 갑주를 입은 자들과 자신을 이끄는 전투의 마왕을 그 어떤 적도 막지 못한다.
자신은 방금 보았다.
저 전투의 마왕의 앞을 막고 있는 중보병3명이 그야말로 그의 창에 맞고 뒤로 날아가 버리는 것을 말이다.
완벽한 힘의 조화.
꽤 되는 거리를 달림으로써 얻은 가속력을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정확하게 파괴력으로 바꾸어 적군에게 돌려준다.
그래서 지금.
그의 창은 멀쩡하지만 그의 창을 맞은 병사들은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자신도 하고 있다! 비록 자신의 손에서는 이미 찢어진 듯 쓰라리고 피가 나고 충돌 시에 창끝을 지탱하고 있는 자신의 갑옷 자신의 옆구리는 마치 멍이든 듯 아프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다!
계속하고 싶다!
이것은 희열이다.
전장의 희열.
첫 여자를 안았을 때 겪었던 희열을 지금 이곳에서!
설기룡은 겪고 있었다.
자신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뒤를 따르는 기마대들 모두 그럴 것이다.
이번에는 좀 더 크게 원을 돌며 돈다. 옆으로 돌면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뒤를 쫒아오는 적군의 기마대가 보인다.
하하.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정면충돌이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뚫고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콰과과고광
쩌저저저쩍.
어둠속에서 두 검은 물결은 정면으로 부딪쳤다. 비록 전장에 있던 병사들 누구도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폭우소리를 뚫고 창과창이 마주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날카로운 소리를 뚫고서 둔탁한 말발굽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설기룡은 속도를 늦추어 자신의 뒤에 있던 병사와 자리를 자연스럽게 바꾸었다. 아니 설기룡 뿐만이 아닌 설기룡 주위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자리를 바꾸었다.
한번 충돌은 하고 나면 뒤에 있는 병사와 자리를 바꾼다. 그리고 그 병사의 뒤를 바쳐준다. 그리고 다시 충돌한 다음 다시금 자리를 바꾼다.
설기룡은 지독히도 힘들게 배웠던 진형을 자연스럽게 행하며 다시 한 번 적군의 기마대와 충돌했다.
적 기마대 병사의 투구속의 얼굴이 순식간에 스쳐지나 간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의 창은 적의 팔을 노리고 있다.
-절대로 적군의 몸통을 직접적으로 노리지마라!
그것은 속도를 잃게 되는 가장 큰 실책이다!
그리고 속도를 잃으면 너희는 죽는다! -
설기룡은 다시금 전투의 마왕에게서 들은 명령을 되새기며 적군의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 충격만으로도 설기룡을 상대했던 적 병사는 말에서 떨어져 생사를 점칠 수 없었다.
그렇게 3번을 더 부딪치고 나자 더 이상 자신들을 막던 기마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은 다시금 뭉쳐있는 적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검은 물결은 야금야금 병사들을 잡아먹었고 마지막으로 적 진형의 후군에서 전군까지 관통하면서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
“...”
“휴유...”
그 중년인은 아무 말 없이 또다시 식어버린 안주를 끄적거리며 집어 먹었고 제갈소문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내쉬었다.
굉장하다. 여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손바닥에서 땀이 차고 가슴은 첫사랑을 고백할 때보다 더 뛴다.
‘여민 너 정말 이야기 잘한다. 물론 그 이야기가 보통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렇게 범천성의 전투는 끝났습니다. 사실 전투는 2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 전의는 꺾였으며 적은 전투력을 상실했습니다. 적군기마대를 제외하고는 범천성의 병사들 중 죽은 자는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부상자입니다. 그것도 거동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다친 자가 부지기수입니다.”
“...”
“휴유...”
유공은 계속 침묵했고 제갈소문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유공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여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렇군. 대체 뭘 어떻게 한 것이냐? 너는 기마대와 함께 하지 않았나?”
“아. 네. 저는 그때 보병대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음...서대륙에서 기사라고 불리던 자들이 쓰던 랜스차지라고 아십니까?”
‘랜스차지?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것도 세가에 있는 서고, 최근의 책이 모여져 있는 곳에서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활용하던 것인가? 거기에 나와 있기로는 몬스터라 불리는 마물들과 싸울 때나 승리를 확신하는 경우에 적군에게 달려들어 진형을 무너뜨리는데 사용한다고 써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는 한번 부딪쳐서 진형을 무너뜨린 다음에는 난전으로 몰고 간다고 했는데?’
“안다. 지금 랜스차지가 아닌 것 같으니깐 묻는 것 아니냐.”
그 중년인는 약간 신경질 난다는 말투로 여민에게 말을 했다. 식욕은 이미 떨어졌는지 그저 술만 따라서 조금씩 마시면서 말이다.
“그저 약간 술수를 부린 것입니다. 가속력을 모조리 파괴력으로 바꾸어서 적군에게 퍼부은 것이 아니라 파괴력 줄이면서 가속력을 유지하도록 말이죠. 그래서 처음에는 야금야금 조금씩 파고든 것입니다. 뭐 나중 가서는 진형이 완전히 무너졌기에 좌우로 전후로 관통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어쨌든요.”
“그게 약간의 술수면 그저 한번 받아버리고 끝나는 그 서대륙의 기사들은 모조리 병신이냐! 어께 위에 있는 그것은 장식품이고?”
중년인은 아까보다 더 신경질 난다는 목소리로 여민의 말에 대꾸했다. 왜 신경질을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지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힘든데.’
“에.. 뭐 저도 뭘 어떻게 했는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저도 배웠으니깐 나중에 제국관에서 애들에게 가르쳐보지요 뭐. 사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용악이 뛰어나서 그런 결과가 발생한 것이라고 보이지만 말이지요. 그리고 다음날 바로 무계성에 도착했고 무계성은 뭐 싸워보지도 않고 그냥 조금 두들기자 성문을 열고 항복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무계성주가 지난 1년 동안 아주 죽으려고 작정을 했더군요. 무계성내의 백성들이 오히려 반기던 눈치였습니다.”
‘음. 그랬군. 어쩐지 다른 성에 비해서 무계성은 부서진 곳이 적다. 했다. 무계성 정도라면 그 방어가 난공성에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현상 그 개자식 잘됐다. 썩을 놈의 자식이 정말 귀찮게 하고 그 자식 때문에 고생한 것 생각하면 아직도 정말 골치가 아프다. 그렇게 된 것이군. 그나저나 여민 이 자식 정말 이야기 재미있게 한다. 이거 배고픔도 잊은 채 빠져들었는걸...’
제갈소문은 배고픔을 느끼고는 점소이를 시켜 안주를 더 시켰다. 물론 동전도 함께 주었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뭐야?
‘음? 나?’
“에... 그게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여민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이다.
여민과 제갈소문이 들어올 때는 그래도 햇살이 남아 있던 오후였지만 지금은 어느덧 해는 지고 달빛이 주루 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범한 주루에서 평범하지 않은 비명소리가 한차례 흘러 나왔다.
“에에엑!!!”
‘이 사람이 황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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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흑영기병대 - 256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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