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70화 (70/107)

70장 5일전쟁 넷째날

중경의 대(對) 한제국 군사 요충지인 무계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마지막 군사관문인 범천성.

범천성의 성주인 허영인은 지금 병사들과 함께 성 밖으로 나와 진을 친 채 적군을 맞이하고 있었다.

대체 저 병사들을 이끄는 장군이 누구인지 정말 무지무지 궁금했다. 그것이 그의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빼앗아 갈지도 모르지만서도

‘대체 무슨 수로 3일 만에 3개의 성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그것도 난공성을 무슨 수로 뚫고서.’

난공성에는 신형 화포까지 배치됐다고 했는데 말이다. 허영인은 난공성에 배치된 화포가 터져 성을 날려버린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허무하게도 화문성이 무너진 것을 오늘 아침에서야 알았다. 그것도 패잔병을 통해서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적군이 먼저 도착하고 패잔병이 도착했다.

그리고 패잔병은 어떻게 자신들이 졌는지를 말해 주었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고민했다.

패잔병이 말하기를 성에 있어도 화포에 의해 성이 무너진 댄다. 그래서 자신들은 성 밖에 진을 쳤는데 그 역시 화포에 의해서 무너졌다고 한다.

‘대체 뭘 어쩌라는 것이냐? 보통 한 성에 배치된 화포의 수는 20~30문 정도이다. 적군이 얼마나 많은 수의 화포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무너진 것이냐...’

그래서 허영인은 고민했다. 분명 성안에 버티고 있었는데 2개의 성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에게 왔다고 했다. 패잔병 한명이면 모르되 백이 넘는 패잔병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도 적군의 함정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그리고 적군이 먼저 와서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고 말이다. 패잔병을 보내려 했으면 더 빨리 보냈어야 했다.

그래서 허영인은 지금 성 밖으로 나와 진을 쳤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전투가 시작하기도 전에 한 수 물리고 시작했다.

성을 포기 한다?

그건 후발대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이고 성을 포기하고 자신들이 갈 곳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곳에서 무계성 까지는 정확히 반나절이 걸린다. 빠져나가려면 진작 빠져나가야 했다.

지금에야 와서 후퇴를 하는 것은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리고 적군 역시 1000여명뿐이지 않은가.

이곳, 범천성에 있는 병사들은 1500명이다.

화포의 수가 절대적으로 밀리기는 하지만 병사가 500명이나 차이가 나니 그래도 한번 싸워 볼 만 했다.

그랬기에 허영인은 이렇게 성 밖으로 나와 진을 친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해가 떨어져 어둠이 대지를 감싸고 있는 지금.

오후부터 대치하고 있던 두 군의 사이로 추적추적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전부터 심상치 않던 먹구름이었다. 아마도 제대로 한번 쏟아 낼 듯 했다.

그래서 지금 허영인은 다시금 고민이다.

오후에 왜 화포공격을 하지 않았는지 약간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이제, 그리고 미래의 일을 생각할 때이다. 비가 오면 화포와 궁수대, 쇠뇌대 모두 무용지물이다. 비가 오기 시작한지 30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말 엄청나게 쏟아져 내렸다.

지금 전장을 뒤덮는 소리는 포성과 병사들의 비명과 고함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순수한 굉음.

수많은 물방울이 대지와 충돌하면서 일으키는 그 굉음이 전장을 뒤 덮고 있었다.

시간은 자신의 편임에 분명했다.

자신은 버티기만 하면 되고 적군은 자신을 뚫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장군으로서 호기가 솟아오르기도 한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뛰어난 장군과 한번 손을 섞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말이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인가. 그런 호기로움은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흐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적이 화포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성 밖에 나와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럼 당연히 성안으로 들어 가야한다. 하지만 지금 성으로 후퇴하다가는 뒤를 잡힐 위험이 있다.

“장군님?”

“음. 알아. 알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글쎄요. 적에게 한 수 먹히고 들어갔지만 지금은 비가 옴으로서 우리가 한 수 먹었습니다. 그럼 이제 동등. 적군이 화포대에 비중이 크다면 우리와 적군과의 병력 차는 지금 이 순간만은 더욱 크겠지요.”

“그래. 하지만 이미 3개의 성을 무너뜨리고 온 적이다. 그렇게 단순히 산술 계산적으로 쉽게 생각하면 안 되지.”

“네.”

허영인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부관의 대답에 만족했다. 수도에서 배우고 온 후로 확실히 생각이 깊어 졌다.  자잘자잘한 전투로 잔뼈가 굵은 자신과 비교해서 그렇게 꿇리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게 허영인과 휘하 장수들이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비는 계속해서 아니 더욱더 기세 좋게 땅을 내리쳤다.

허영인은 고개를 들어 전장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 달이 떴지만 구름에 가려 달빛은 대지에 전혀 자신의 존재를 피력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어둠.

어둠뿐이었다.

거기다가 빗줄기가 워낙 거세니 100미르 앞이 잘 보이자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거 정말 와도 너무 많이 오는군. 그것도 너무 갑작스럽게 많이... 하긴 장마철이 올 때도 됐지만 말이야...’

“잠깐... 무슨 소리지?”

빗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우며 다른 소음들을 집어 삼키고 있었지만.

지금.

땅이 약간씩 흔들리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자신이 북군부에 들어오면서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말발굽소리가 말이다.

한제국 국경수비대의 얼마 되지 않는 기마대에 소속되어 있는 1031백인대장 설기운은 지금 추적추적 내리는 비속에서 가만히 서서 적군을 바라보고 있는 전투의 마왕을 감탄과 존경이 서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설기운.

그래도 호북에서는 조금 이름난 가문인 호북설가의 직계 중에 한명인 그는 제국관에서 수학하고 나서 자신의 고향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용악이 방금 아니 하루 전에 보여준 그 환상의 전술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같이 학교를 나온 다른 동기들에게 두고두고 자랑을 해도 될 만한 사건이었고 전투였다.

그야 말로 완벽 그 자체였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끌고 있는 저 전투의 마왕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은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제국관에서 지겹게 들어 왔으니까.

열개도 넘는 수식어의 주인공.

흔히들 귀혈쌍도라 불리던 그.

이제는 전투의 마왕이라 불리는 그.

그래서 그는 더욱더 감격스러웠다. 저 정도 되는 사람의 지휘를 받아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도 됐다. 이번에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패배?

패배는 생각되지도 않는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궁금할 뿐이다. 특히 그의 신의 경지에 다다른 화포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상황에서...

전장을 살피던 녹안의 사내는 빗방울이 맺힌 자신의 창날을 한차례 쓰다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빗줄기에 가려 그의 모습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도깨비 눈처럼 허공에 떠 있는 그의 녹색의 눈은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터져 나오는 푸른 불꽃도 조금씩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있던 장군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의 입에서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기마대 진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앞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옆으로 23명의 검은 갑옷을 입은 자들이 횡으로 늘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지 않아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다.

그들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게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설기룡은 조용히 진형을 유지하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본대에서 꽤 떨어져 나왔지만 다들 아무도 입을 여는 자는 없었다. 이제 속도를 좀 낼 때도 된듯했지만 그냥 걸어가던 그 속도 그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100미르 앞도 보이지 않는 이런 날씨에 이런저런 작전을 세우는 것은 무의미 하겠지.’

적군은 어차피 가까이 올 때까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알아차린다면 그때는 이미 날카로운 이빨에 살점이 한 움큼 파여 나간 후 일 테고 말이다.

‘역시 그냥 돌격을 하는 것인가?’

설기룡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창을 다시금 꽉 쥐었다.

빗물에 젖어 약간 미끈하긴 했지만 손에는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창을 잡기에 힘들지는 않았다. 화포대와 보병대의 훈련도 힘들었지만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자신들 기마대였다.

장강과 함께 수많은 물길로 이루어져 있는 이곳 호북과 중경지역에 기마대가 대규모로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랬기에 다른 병과의 병사들이 한 무더기씩 낙오되어 떨어져 나갈 때도 자신들은 고작 몇 명씩 떨어져 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새로 익힌 이 창술과 진형.

이것은 제국관에서도 배워보지 못한 것이다.

제국관에서 다른 쟁쟁한 유명가문의 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무시 받고 싶지 않아서 남모르게 열심히 수련했던 그다. 그 곳에서 엉터리로 배웠거나 배운 것을 잊어버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체 저 사람은 이것을 어디서 안 것일까?

곤제국과 젠국의 전술에서도 이런 것은 없었다.

아마도 서대륙에서 건너온 진형이며 전술인 것 같은데...

하여튼 기대된다. 어떤 식으로 과연 저 적군을 무너뜨릴 것인지.

설기룡이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멈춰선 앞사람과 부딪칠 뻔하고는 놀란 가슴을 가다듬었다.

“지금까지 훈련한대로만 하면 된다. 잘 따라 올 것이라 믿는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빗물에 흠뻑 젖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뒤로 넘기고는 말을 이었다.

“전군(全軍) 진군(進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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