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69화 (69/107)

69장 5일전쟁 셋째날

중경의 여름은 그야말로 찜통이다.

동대륙에서 가장 더운 곳 중에 한 곳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찜통 속에서 2개의 검은 군세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한제국군 국경수비대 소속 302백인대의 백인대장 화영문은 지금 다른 병사들과 함께 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화문성의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격을 받는 입장에서 성 밖으로 나와 적을 맞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고래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리이다. 성 안에서 싸우는 것은 그만큼 편하니 말이다.

하지만 저 병사들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나. 칼밥 인생 10년의 화영문 역시 전투가 이렇게 진행 될 줄은 몰랐다.

우리를 이끄는 저 전투의 마왕,

그래 전투의 마왕이다.

어찌 그를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는 적군이 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점을 없애 버렸다. 그것도 철저하게. 저 병사들을 지휘하는 자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지금 성 밖으로 나와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성안에 있어 봤자 무조건 죽을 테니깐 말이다. 우리를 이끄는 저 녹안의 사내의 귀신같은 화포술은 방금 전 훗 그래 방금 전이다. 2번의 전투만으로 증명되었다.

그것은 나도

나를 따르는 백인대도

그리고 적군도 알고 있다.

‘그랬기에 저렇게 악수(惡手)를 두는 것이겠지.’

화영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손에 들린 한제국 3호 장도와 지금까지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해준 방패를 다시금 점검했다. 자신들 앞에 있는 적의 수는 대략 1000여명 자신들과 비슷한 병력수다. 과연 어떻게 이번 승리를 얻을 것인가 궁금했다.

패배?

패배라는 생각은 들지도 않는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궁금할 뿐이다. 화포대나 기마대만큼 힘들지는 않았지만 우리 보병대, 그것도 돌격대의 훈련 역시 그에 못지않게 힘들었다.

함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의 10분의 9가 떨어져 나갔다.

물론 보병대의 수가 다른 병과에 비해 많았기도 했지만 어찌됐건. 이제 전투는 시작되려 하고 있다.

녹안의 사내는 누군가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는 자신의 말 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꽤 들었지만 정말 저렇게 고저가 없는 목소리가 존재할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목소리였다.

‘뭐 목소리가 나쁘면 어떠나.’

장군에게 필요한 능력은 전쟁을 하는 능력이지 목소리가 아니다.

“훈련한 대로만 하면 된다. 훈련한 대로 하지 않으면 너희가 맞이하는 것은 쓸데없는 죽음뿐이다. 백인대 모두 돌격.”

아까 저 사내와 이야기를 마친 그 장군은 자신들을 이끌고 적군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아군의 진지와 적군의 진지는 약 600미르 차이.

이제 곧 있으면 아군의 화포가 불을 뿜을 것이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라! 훈련한 대로만 하면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훈련한대로 해라! 알겠지!”

화영문은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에게 외치며 스스로 각오를 다졌다.

훈련한대로.

훈련한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아군의 포탄에 자신이 죽는다!!

자신들은 천천히 진형을 맞추면 전진한다.

적군이 점점 다가온다.

거리는 이제 약 300미르 정도...

일제돌격을 하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서로 마주 칠 것이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에게 증오가 가득한 칼을 휘두르겠지.

‘훗. 뭐 너희들도 군인이고 나도 군인이다. 군인인생이 뭐 그런 것 아니겠나?’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화영문의 머리위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살이 떨린다.

가슴에 숨겨져 있는 나의 심장이 쿵쾅쿵쾅 터질 듯이 꿈틀댄다.

아군의 포탄이 지금 자신의 위로 날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 !그리고 병사들은 그 포탄이 떨어지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자신의 머리위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우리를 이끄는 저 장군! 저 장군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전장의 모든 이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큰소리로 웃어가며 달려 나간다. 명령은 없지만 저 장군의 행동을 보고 그것이 뭘 의미 하는지 모르는 병사들은 없다!

자 이제 일제 돌격이다!!

“훈련한 대로! 훈련한 대로! 절대로 개죽음 당하지 마라! 우리의 적은 앞에 있는 적군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포탄이다! 명심해!”

화영문은 그렇게 병사들에게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손에 든 장도와 방패를 서로 겹쳐 들고 적군을 향해 달려 나간다. 이미 최전선에서 자신들에게 달려들던 적군은 뜨겁게 달궈진 하늘위에서 날아온 작렬탄으로 인해 고기 덩어리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다시금 포탄이 날아온다!

“온다! 조심! 이제부터 시작이다!!”

화문성은 저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장군의 명령을 들었다.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병사를 한 점의 망설임 없이 장도로 베어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 자신의 앞을.

우리의 군을 막아내는 병사들은 적군이라고도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 했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들 뒤에서 몰려오고 있는 녀석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녀석들도 이제 이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변하겠지.’

다시금 포탄이 적군을 후려갈긴다. 허공에서 폭발한 작렬탄은 뜨겁게 달 구워진 쇠 조각들을 땅에서 열심히 뛰어다는 전쟁이라는 허무한 일을 행하는 이들에게 던져주었다. 한차례 쇠의 비가 떨어지고 난 후 다시 화문성과 다른 병사들은 돌격하기 시작했다.

한번에 15미르 이상 전진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15미르는 무조건 돌파하라고 했다.

만약 그 명령에 따르지 못한다면 저 하늘에서 날아오는 화포에 자신의 몸이 찢겨져 나갈 것이다.

바로 지금 자신의 앞에 서서 울부짖는 병사처럼 말이다! 화문성은 한 팔이 날아가 버린 채 피범벅이 되어버린 전장에 쓰러져 꿈틀대고 있는 어린 병사를 바라보았다.

‘너도 지독하게 재수가 없구나. 하지만 적은 적!’

화문성은 그 어린병사의 가슴에 칼을 박아주고는 다시금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적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이제 포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대신 전장을 찢어발기는 병사들의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자신의 귀를 멍멍 하게 만든다.

아마도 사거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자신들이 깊숙이 들어 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더 이상 화포를 쓰지 않아도 전장을 정리 할 정도가 되었기도 하기 때문이다. 적군의 후군이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아마도 우회를 해서 적군의 뒤로 간 기마대가 적의 후군을 쳤을 것이다. 그 정도 시간이 됐으니깐 말이다.

온 몸에 힘이 다 빠진다.

지난 10년도 넘게 들어온 이 장도가 지금처럼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적군과 열심히 싸워서?

‘훗, 웃기는 소리.’

적군과 싸운 지는 이제 겨우 30분이나 될까?

적군과 싸워서가 아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심력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등 뒤에서 날아오는 포탄의 그 무시무시한 소리를 그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신이 몸소 체험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여민은 말을 마치고 다시금 다 식어 버린 안주를 몇 점 주워 먹고 옆 탁자를 정리하는 점소이를 불러 술과 안주를 더 시켰다.

물론 점소이에게 눈을 찡끗하며 동전을 던져 준 것은 당연한 사실.

“그러니깐... 지금 포격과 진격을 동시에 했다. 이 말이지?”

‘그래!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거다.’

제갈소문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손뼉을 치고는 여민의 대답을 기다렸다.

“네! 그것도 완벽하고 정확하고 날카롭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포격과 진격

이 둘의 조화는 모든 병과의 군을 상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환상의 작전-전술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병사들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만한 실력을 가진 화포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화포가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사용 된지 이제 300년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제갈소문이 세가에 있을 때 읽은 책에는 아마 서대륙의 에스판국의 레옹이라는 장군이 그런 작전을 만들어 내고 그 전술을 실행한 유일한 장군이라고 적혀 있다.

물론 그 장군은 이미 오래 전에 죽고 없다. 그런 환상의 전술을 지금 용악은 해냈다.

그것도 단지 한달 반만의 훈련을 거친 병사들로 말이다. 물론 평소 때도 훈련을 받지만 저 전술을 훈련 받으려면 한달 반 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정말... 이건 내가 뭐라 할 말이 없군. 그 전술은 이론으로만 가능한 것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 중년인은 약간 어이가 없었는지 점소이가 새로 가져온 안주를 집어 먹으며 의자에 푹 주저앉은 채 말을 했다. 제갈소문도 얼른 안주를 주워 먹었다. 그가 한 일은 그저 여민이 해주는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뿐 이었지만 왜 이렇게 배가 고픈지 몰랐다.

물론 여민이 긴장감 있고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잘하기는 했다. 이야기꾼으로 먹고살아도 될 만큼 말이다.

“네. 제국관.(군무관, 사관관과 함께 한제국군 군사학교. 사관관을 졸업한 후 가는 곳이며 실질적인 군 장교를 만들어 내는 군사학교) 에서도 그냥 이론으로만 가르치는 그 전술을 해냈습니다. 어쩌면 지금쯤이면 제국관에서 난리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용악을 대려다가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기 위해서 말이지요.”

여민은 탁자에 꼽았던 젓가락을 언제 뺐는지 손가락으로 빙빙 돌려가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국관이 그렇게 시끄러웠던 거군. 어쩐지 제국관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유공은 제국관에서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이런저런 요청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는 별 생각 없이 무시하고 잊어먹고 있었는데 지금 여민이 한 말에 그 사실을 이제야 떠올렸다.

“짭쩝쩝. 그래서 3일 동안에 3개의 성을 함락시켰고 적군의 사상자 수는 대충 봐도 3000명이 넘어갑니다. 그리고 4번째 전투.

범천성의 전투는 추적추적 내리는 후끈한 빗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민은 안주를 몇 개 더 집어 먹으며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해 나갔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절로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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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흑영기병대 - 25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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